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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자들-2화 (2/266)

# 2

<공략자들 2화>

“박철환……!”

인한은 절규했다.

전신을 두들기는 격통도, 머리를 태울 듯 타오르는 살의에 잊혀졌다.

모두가 죽었다.

그 많은, 그 수많은 데스파티의 길드원이 모두.

그리고 그들의 피해를 가장 먼저 줄어야 했을 박철환은, 그 누구보다 먼저 보스존에서 이탈해 도망쳤다.

길드장의 부재.

당연히, 권한이 없는 길드원들은 보스존에서 탈출할 수 없었다.

“흐음.”

그때.

나지막한 숨소리가 귓전을 자극한다.

인한은 땅에 주저앉은 채 덜덜 떨며 고개를 들었다.

“죽지 않은 놈이 있었구나?”

[?왕 [email protected]#이렉$%틴 [email protected]@$입니?.]

100층의 보스.

그가 천천히 인한에게 걸어왔다.

‘시발.’

보스의 인터페이스는 여전히 알 수 없다.

아니, 그가 정말 보스이기는, 몬스터이기는 한 걸까?

“분명 즉사의 저주를 쏟아부었는데, 어째서 먹히지 않은 거지?”

사내는 의아한 듯 짜증이 묻어나는 어조로 말했다.

하지만 곧 피식 웃었다.

“뭐 어차피 죽을 놈. 상관은 없겠지. 그래, 네놈은 내가 직접, 아주 천천히 죽여 주마. 그때까지 나와 대화를 좀 할까?”

뚜벅, 뚜벅.

정적만이 가득한 공간에 발소리만 울렸다.

“네놈들 같은 버러지 때문에 나는 또다시 1천 년의 노예 생활을 해야 하거든.”

무슨 의미일까.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온 사내는 분노로 일그러진 얼굴로 인한의 목을 움켜쥐었다.

왜 그가 화를 낸단 말인가?

피해자는.

죽은 자는.

절망한 자는 우리인데.

뿌득! 뿌득!

인한의 몸이 허공에 들려졌다.

숨이 막혔다. 인한의 목뼈가 비명을 질렀다.

“드디어 자유를 얻었나 싶었는데, 네놈들 때문에 또 한 번의 천 년을 노예로 지내야 한다. 그들과의 거래를 네놈들이 전부 망친 거야.”

“커흑!”

퍽!

복부에 끔찍한 고통을 느꼈다. 붉게 물든 시야에 놈의 팔뚝이 복부를 관통한 것이 보였다.

인한이 고통에 입을 쩍 벌렸다. 뜨거운 피가 왈칵 쏟아져 나왔다.

“으음, 홧김에 저도 모르게……. 그런데 저주를 맞고도 아무렇지도 않은 것에 비해 너무 연약하군. 고작 이 정도로 중상이라니.”

사내가 팔을 쑥 뽑아 인한을 땅바닥에 내동댕이쳤다.

배에서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사내가 인한의 머리 위에 손을 가져다 댔다. 시커먼 기운이 미간으로 스며들었다.

“이걸로 죽진 않을 테니 됐고. 그럼 이야기를 계속할까? 지금부터 꽤 재밌는 이야기를 할 건데 말이야. 집중해서 들으라고.”

관심 없다. 그저, 지금은 이 고통이 사라지길 바랄 뿐이다.

그런데, 어째서…… 도대체 왜 죽지 못하는 것일까.

정신이 또렷하다. 피가 이렇게 많이 흘러나왔는데 죽음은 찾아오지 않는다.

“그렇게도 궁금해한 탑의 정체에 대한 이야기다. 좀 관심을 가져보는 게 어떨까?”

“……?”

탑의 정체?

인한의 흐릿한 눈동자가 사내를 향했다.

사내가 마음에 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이었다.

“이제야 들을 생각을 가졌군? 흐음, 네놈들은 그렇게 말했던가? 재앙이다, 천벌이다……. 좋은 표현이야. 좋은 표현이긴 한데……. 이 탑 말은 말이다, 그렇게 거창한 건 아니야.”

“무슨…….”

도대체…… 그는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이건 다 유희에 불과하다. 오락이라고 하면 되겠지? 탑이 나타나고, 아등바등 탑을 오르고, 결국 클리어가 늦어져 종극! 이 정해진 클리셰가 모두 그들을 위한 오락이다. 다른 선택지는 애초에 없다. 애초에 이 탑에는 끝이 없으니 결국 멸망만이 정해진 운명이란 말이다.”

“이게 다 오락이라고……?”

“물론, 원래 쓰임새는 따로 있지만, 일곱 명의 !@#$가 정해진 후부터는 그냥 좀 특이한 놀이터일 뿐이야. 내가 그렇게 만들었으니까.”

“하지만…… 우린 분명 100층을 올랐는데……!”

“아, 여기? 여기가 탑의 끝이라고 생각하나? 애초에 여긴 100층 따위가 아니다. 그냥 내 거처일 뿐이야. 그래, 그것은 칭찬해 줘야겠군. 실패하게끔 만들어 둔 90층대를 돌파한 세계는 여기가 처음이었으니.”

“그, 게 도대체…….”

“멸망은 정해진 일이라는 의미지. 너무 억울해하지 않아도 된다. 지금껏 많은 세계가 그렇게 멸망해 왔다.”

인한의 얼굴에 허망함이 깃들었다.

그게 무슨 소린가.

그렇게도 많은 비극이 찾아왔는데.

그게 전부…….

“크하하하! 정말 만족스러운 얼굴이구나! 네놈들의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구나! 무의미하다! 시시한 이야기다. 네놈들이 이룬 모든 것들은 쓰레기였다. 그런 이야기란 말이다!”

인한은 눈을 부릅떴다.

버러지 같은 삶?

무의미?

쓰레기?

아니다.

감히, 어떻게 감히 그런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이 탑에는.

이 땅에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흔적이 쌓여 있다.

수많은 인연이 실타래처럼 얽히고설켰고, 하루 이틀로는 말할 수 없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넘치고 넘쳤다.

그들의 삶도.

그들의 죽음도.

그들의 이야기와 지금의 이 실패를 그 누구도 무의미하다 말할 자격이 없다!

“어차피 네놈들 탓에 모든 일이 틀어졌다. 몬스터들을 풀어 모든 것을…… 아니, 아니지. 아니야. 내 직접 네놈들의 세계를 멸망시켜 주마. 쉽게는 끝내지 않을 거야. 천천히, 아주 절망적으로…….”

사내가 몸을 획 돌려 걸어갔다.

인한은 손을 뻗었다.

아니, 뻗으려고 했는데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씨, 발…….”

힘이 필요했다.

무력한 자신이 원망스럽다.

힘이 없기에 동료들을 죽음에 빠뜨렸고, 힘이 없기에 팔을 잃었다.

힘이 없기에 박철환을 어찌할 수 없었고, 힘이 없기에 살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아등바등 살며 힘을 바랐건만, 탑이라는 이름의 재앙에 종막을 내리기를 바랐건만.

‘난, 무력하다.’

그때, 시야에 제멋대로 천문이 떠올랐다.

왕의 권세 <사용불가>

[등급 : ??]

[숙련도 : Lv.?? (??%)]

[재사용 대기시간 : ??]

[효과 : ??]

‘이건……?’

그것은 탑에 있는 정체 모를 유적에서 얻은 퀘스트의 보상이었다.

누군가 얻었다는 이야기는 들리지만 누가 얻었는지는 모르는, 정말 존재하는지조차도 알 수 없는 스페셜 원(Special One) 등급.

하지만 인한은 이 스킬을 사용할 수 없었다.

40층에서 팔을 잃은 후로 몇 개의 연결된 퀘스트를 완수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왕의 권세 발동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사용불가>에서 <사용가능>으로 변경됩니다.]

[계약자 ‘최인한’이 활동 불가 상태에 빠졌습니다. 스킬이 강제 발동됩니다.]

두근!

그 알림과 함께.

느려지던 심장이 크게 튀어 올랐다.

“응?”

사내가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보았다.

정적이 내려앉았다.

조용히 귀를 기울이던 사내가 다시 몸을 돌리려는 순간.

투확!

인한은 무언가가 자신의 몸 안쪽에서 쏟아져 나오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와 함께 시야가 백색으로 물들었다.

촉각도, 시각도, 후각도, 미각도, 청각도.

모든 감각이 지우개로 지워 내듯 천천히 사라져갔다.

[!#@#$의 %@$ 왕이 [email protected]#$합니다.]

“네, 네놈! 어떻게 각성기를!”

인한의 몸에서부터 백색으로 일렁이는 기운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백색의 선이 올올히 풀려나와 인한을 감싸기 시작했다.

마치, 고치처럼.

“어떻게!”

결국 인한은 정신을 잃었다.

이것이 죽음인가.

인한의 마지막 생각이었다.

* * *

따뜻한 햇살을 받고 있는 듯, 인한은 기분 좋은 포근함 속에 있었다.

어느 순간, 몸이 어딘가로 쑤욱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것과 동시에.

“허억! 허억!”

갑자기 숨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잠깐, 숨이 차오른다고?

다시 한번 생각했다.

숨이 가쁘다.

목에서 쇠 맛이 나고 폐부가 쑤신다.

어떻게?

‘내가 달리고 있어?’

인한은 달리고 있었다.

그것도 꽤 한계까지 달렸는지 다리 근육이 쑤셨다.

‘뭐야?’

인한은 멈춰 서서 주변을 살폈다.

검은 벽돌로 이루어진 어두컴컴한 공간.

눅눅한 냄새가 코를 찌르고 습한 공기가 피부에 끈적끈적하게 달라붙었다.

‘상태창.’

이제는 습관이 되어 버렸다. 상황이 이해가 안 되면 일단 인터페이스부터 띄우고 보는 것.

“어?”

아무런 반응이 없다.

‘스테이터스. 스킬창. 퀘스트창.’

속으로 아무리 외쳐도 반응이 없었다.

인한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 순간, 몸이 앞으로 확 쏠렸다.

“달리다 말고 뭐해! 정신 차려!”

솥뚜껑만 한 손이 인한을 잡아끌었다. 힘이 너무 강해서 인한이 뭘 할 새도 없이 발이 땅바닥에 질질 끌렸다.

“도대체 무슨……!”

인한이 숨을 멈췄다.

“어?”

부리부리한 눈에 짙은 눈썹, 짧게 친 머리, 2미터가 넘는 거구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근육으로 가득 찬 사내.

이 사내를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태, 태호 형님!”

“뭐? 너 나 알아? 너 누구야!”

임태호.

인한의 튜토리얼존 시절부터 해태 길드 창립까지, 가장 긴 시간 동안 같이 탑을 올랐던 사람. 그리고 40층에서 죽은 사람.

그를 그리워하며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데.

“어, 어떻게…… 어떻게 살아 있는 겁니까. 아니, 살아 있었던 겁니까? 어떻게 꿈에서 깨어난 겁니까? 누구도 몽마왕의 스킬을 해제할 수 없었는데, 어떻게!”

인한은 임태호를 붙잡고 목이 찢어지라 외쳤다.

임태호는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렸다.

“뭐? 살아 있어? 뭐라는 거야, 이 새끼가! 죽을 뻔한 걸 살려 줬더니 불길하게 시발! 꺼져!”

임태호가 인한의 팔을 뿌리치고 째려보았다.

인한은 적개심마저 느껴지는 눈빛에 당혹감을 느꼈다.

‘어떻게!’

임태호는 죽었다.

인한은 임태호와 동료들의 시신을 두 눈으로 똑똑하게 확인했다. 직접 그들을 묻어 주기까지 했다.

다시 뛰어가려는 임태호의 팔을 움켜쥐며 인한이 외쳤다.

“잠시만 멈춰 봐요! 이야기 좀 합시다.”

“도망쳐야 한다니까!”

“도대체 뭐에 도망친단 말입니까?”

“몬스터!”

인한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상하좌우 모두 검은색 벽돌로 만들어진 길, 횃불이 일정 거리마다 벽에 달려 있어 어둑한 공간을 비추고 있었다.

그제야 눈치챘다. 아무리 오랜만에 봤어도 잊을 수 있을 리가 없는 장소였다.

‘여긴…… 튜토리얼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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