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6화 완결
이석천이 스멀스멀 차오르는 어둠 속.
오랜 시간을 버티며 내린 결론.
능력, 스킬과 상태창은 축복이 아닌 놈을 먹여 살리는 저주.
다른 세계 또한 그리 먹어 왔다.
세계에 능력을 뿌려 그들을 성장시키고 성장한 세계가 오만해지면.
어둠이 그들의 오만을 이용하여 세계를 잡아먹었고.
그때까지 키운 힘은 모두 놈의 것이 되었다.
이를 알았기에.
“상태창과 모든 스킬을 끊어! 저주를 끊어라!”
강현에게 이를 요구했다.
놈의 양식이자 능력이 될 바엔 모든 것을 끊어 내리라 생각했다.
비록 자신은 해내지 못했지만.
“할 수 있다! 놈에게 연결된 모든 상태창과 능력을 잘라내!”
할 수만 있다면!
“이 저주에서 너희들이라도 도망쳐!”
모든 능력을 없애기만 한다면 어둠은 지구를 버리고 떠날 거다.
잡아먹을 가치가 없으니까.
그런데.
“글쎄, 내 제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걸? 아, 네 제자이기도 하고 말이야.”
자신과 같은 목소리.
아니, 이전 어둠에게 잡히기 전, 절망에 잠식되기 전 맑은 목소리가 귓가를 울렸고.
무언가가 몸에 닿자.
기억이 흘러 들어왔다.
검성 이석천의 기억이 강현과 함께 보낸 시간들.
검을 휘두르며 강해지기 위해 치열하게 보냈던 지난날들.
자신이 훈련했던 훈련장, 서대호와 서재원, 김두식, 태풍과의 합격.
강현이 겪었던 사건들과 그가 이겨 냈던 적들.
검성 이석천이 흘러들어오는 시간과 기억들을 느꼈고.
그 끝.
“어때, 꽤 괜찮은 녀석이지?”
자신의 기억, 자신이자 자신이 아닌 자의 웃는 얼굴이 보였다.
행복했던 시간.
비록 자리에 없었으나 있었던 것처럼 참으로 즐거웠다.
검성 이석천이 사라져 가는 자신의 기억을 보며 물었다.
“이제 더는 겪지 못할 텐데. 괜찮겠나?”
행복한 시간을 이렇게 나에게 주어도?
검성의 물음에 기억 조각이 피식 웃고는 고개를 저었다.
“내가 너고 네가 나인데 뭐가 문제겠냐. 다만.”
절망에 빠져 답을 외면하려고만 하지 마라.
기억의 말에 검성의 움직임이 멈췄다.
“알고 있잖냐. 끊어 내도 아무 소용 없다는 것을.”
“…….”
“그것마저 놈의 함정임을, 끊어 내도 바뀌는 게 없다는 걸 이젠 알잖아. 방금 기억을 보며 느꼈잖아.”
“…그래, 맞아.”
“그러니 내 제자, 아니 이제 우리 제자한테 말해 줘라.”
“뭐라 말해야겠냐.”
“뭐긴 뭐야. 이미 그 답도 알고 있잖아?”
그렇게 기억 조각 모음이 끝났다.
행복했던 기억을 남긴 채 강현과 함께했던 이석천의 분신은 사라졌다.
하지만 그가 보낸 시간은 진짜 이석천에게 깊이 남았고.
자신의 존재감을 뽐냈다.
자신이며 자신이 아닌 자.
그래서 더욱 현실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비로소.
“그래, 내가 착각했어.”
이석천이 잃은 눈이지만 현실을 바라보았다.
끊어 내야 하는 건 상태창, 능력이 아니었다.
그래도 놈은 모든 걸 집어삼킬 거다.
진짜 끊어야 하는 건.
“어둠을 죽여라! 강현아! 어둠의 목숨을 끊어!”
저 빌어먹을 새끼의 숨통을 끊어!
그의 고함에.
“돌아왔구나, 이석천이!”
“석천아! 정신이 들어?”
“이석천! 이 빌어먹을 새끼야!”
산군, 김두식, 태풍이 비로소 자신들이 알던 이석천의 모습을 보고는 활짝 웃었다.
그리고.
“직접 보여 주십쇼!”
강현이 만련신검을 휘둘러.
그의 몸을 칭칭 감은 어둠과 쇠사슬을 일시에 끊어 버렸다.
아직 이석천이 할 일이 남았다.
이석천과 이석천의 기억이 접촉하는 순간 떠오른 알림.
[이석천의 조각 모음 100% 도달]
[해파칠십이검 마지막 검술, 월하유성검의 완전체를 이석천에게 직접 사사합니다!]
[현재 이석천의 상태: 봉인]
[현재 상태로 인해 검술을 전하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봉인을 풀면 될 뿐.
강현의 뫼절이 이석천을 붙잡아 둔 어둠을 끊어 냈다.
그가 상태를 점검하길 잠시.
“선배! 아니 스승님! 검성의 마지막 검! 월하유성검을 보여 주십시오!”
강현의 말을 듣고선 씨익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얼마든지!”
자신의 등에 꽂혀 있는 말뚝 하나를 뽑아 들었다.
이상하게도 아프지 않다.
이상하게도 힘들지 않다.
이상하게도 즐거웠다.
말뚝을 든 검성이 너울너울 월하유성검을 펼치기 시작했다.
마나도 거의 없고 능력의 근원은 바짝 말랐다
그러나 남은 힘을 억지로 쥐어짜내고 짜내 작은 달을 띄워 올렸다.
덜그럭덜그럭.
가진 검이 없으니 등에 가득한 어둠이 쑤셔 넣은 말뚝을 빼내어 하늘에 띄웠다.
전성기에 비하면 참으로 덧없고 비참한 무력.
텅 빈 동공과 송곳이 빠져 숭숭 구멍이 뚫린 몸.
그러나 검성 이석천은 과거 그랬듯 당당히 미소 지었다.
추하겠지.
그러나.
“이게 월하유성검의 완전체이자. 지금껏 지켜온 영업 비밀이다.”
제자 앞에서 기죽은 모습을 보일 순 없다.
빼짝 말라 버린 몸으로나마 억지로 가슴을 펴며 자신의 비기를 전했다.
본래라면 여기서 끝이건만.
“그리고 이건.”
검성이 다시금 검을 휘둘렀고.
콰드득.
달이 깨졌다.
유성이 몸을 떨며 울었다.
그가 검을 휘둘러 하늘을 부수었고 부서진 조각들이 일제히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마지막 심득.”
한번쯤은 놈에게 일격을 날려 보고 싶었다.
자신의 세계를 산산조각 내어 적과 함께 부수는 검.
비록 지금은 힘이 부족하여 목표한 것을 완전히 이루진 못했으나.
분명 그 발판을 심어 놓았다.
기억이 전해 준 강현의 뫼절과 잡혀 있으면서 깨달은 심득을 합한.
“모두 전해 주었다.”
마지막 검술까지 모두 강현에게 전해 주었다.
“어떠냐?”
스승의 물음에.
“최고입니다.”
강현이 마주 미소 지었다.
어찌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
비록 모습은 초라하더라도 자신의 모든 걸 쏟아부은 사람이기에 검성 이석천은 멋졌다.
물론.
-크하하하! 그게 네가 생각한 마지막 심득이었나? 마지막 순간에 동귀어진하려고? 그게 끝이었나? 비참하구나. 비참해!
어둠은 이석천을 비웃었다.
-기회가 왔지만 힘이 부족해 고작 내 끝자락을 깨부순 게 전부라니. 추하다. 그렇게까지 발버둥 치는 이유가 뭐냐?
놈이 힘이 빠져 부들부들 떨리는 이석천의 등을 보며 비웃을 때.
“바로 지금 순간을 위해.”
이석천이 그 말을 남긴 채 쓰러졌고.
푸화학!
강현의 몸에서 그림자가 폭발했다.
쓰러진 이석천을 회수함과 동시에.
그림자의 끝이 깨져 나간 어둠의 끝과 접촉.
[그림자 왕의 호칭 발동, 깊은 그림자로 어둠의 영역에 도달하려 합니다]
[어둠과 그림자가 서로의 영역을 주장합니다!]
강현의 그림자와 어둠의 영역이 이리저리 뒤엉키기 시작했다.
“마지막까지 최고였습니다, 스승님은.”
강현이 그림자로 어둠을 잠식하며 이석천에게 엄지를 들어 올렸다.
정말 모든 걸 전해 주었다.
검술과 더불어 어둠을 잠식할 기회까지!
그가 펼친 마지막 심득은 어둠의 틈을 벌리기 위한 포석.
그리고 강현은.
“반드시 죽여 버릴 테니까 편히 쉬고 계세요.”
스승이 남겨 준 기회를 이용해 어둠을 쓰러뜨릴 계획.
“나 아직 안 죽었다.”
“당연히 천년만년 사셔야죠.”
“그래, 뒤는 부탁하마.”
검성 이석천을 그림자로 옮겨 김두식에게 보낸 뒤.
“석천아! 정신 차려 봐!”
“활명수로 치료 부탁드립니다.”
“응, 걱정 마! 저 개버러지 같은 새끼 반드시 죽여 버려!”
강현이 김두식의 응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어때? 본체마저 빼앗기는 기분이?”
놈에게 감상을 물었다.
[그림자와 어둠의 경계가 모호해집니다!]
[능력을 발동하여 어둠의 영역에 더욱 깊이 침범합니다!]
[흘러 들어오는 어둠을 백염을 이용해 막아 냅니다!]
그림자를 이용해 어둠의 영역을 잠식했고 흘러 들어오는 어둠은 백염으로 몰아내니.
어둠으로 가득한 공간, 그중 강현의 몸만이 하얗게 불타올랐다.
-이 모기 같은 새끼!
“응, 넌 대왕 모기잖아.”
-네놈은 이석천보다 더 끔찍한 취급을 받게 될 거다.
“어차피 죽거나 죽이거나니까 두려울 것도 없지.”
놈의 분노에도 강현이 태연하게 대답하고는.
“이번엔 좀 아플 거다. 좀 피를 세게 빨 거거든.”
당당히 놈의 피를 빨겠다 선언.
몸에서 더욱 강한 백염을 피워 올림과 동시에.
어둠에 먹혀들었던 바다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떨어지는 달을 모두 막아 낸 구찌가 하늘 높이 떠올라 날개를 퍼덕이자.
[대붕의 능력 대풍을 일으킵니다!]
거센 바람이 어둠을 몰아냈다.
[당신의 그림자와 바다, 백염에 대풍의 능력이 더해집니다! 위력을 더합니다!]
[어둠이 뿜어내는 힘을 밀어냅니다!]
구찌의 바람이 강현의 능력은 강화하고 어둠의 힘은 약화했다.
-크아아악! 죽어라!
어둠이 우선 강현의 힘을 약화시키기 위해 구찌를 향해 어둠을 뻗었다.
섬전과 같이 뻗어나간 어둠이 하늘에 떠 있는 구찌를 향했으나.
“웃기는 소리!”
[그림자로 어둠의 경로를 간섭합니다!]
강현이 그림자로 놈의 공격을 비틀었다.
놈이 일제히 눈을 틀어 강현을 노려보며.
-봐주었다고 우쭐대지 마라!
이윽고 자신의 모든 힘을 개방.
각 층에서 일으킨 어둠이 모조리 강현과 구찌를 향해 쏟아졌다.
“크으윽! 강현아!”
“이런, 막아!”
산군과 태풍, 김두식이 쏟아지는 어둠에 점차 파묻혔고.
[산군, 태풍, 김두식, 이석천을 그림자로 이동시킵니다!]
강현이 그들을 그림자로 감싸 안전한 곳으로 보냈다.
이후 쏟아지는 어둠을 마주하니.
“하압!”
백염과 파도로 버텨 보았으나.
-무한한 힘에 파묻혀라!
놈의 어둠은 끝이 없었다.
[어둠의 주도권이 강해집니다! 그림자가 옅어집니다!]
어둠이 지금껏 99개의 세계를 먹어 온 게 우연이 아니었다는 듯 능력을 과시.
지금껏 흡수한 사도들의 능력과 자신의 모든 힘을 강현에게 쏟아부었다.
역시 쉽지 않다.
하지만.
“나도 아직 모든 걸 보여 주진 못했거든.”
강현 또한 카드가 남았다.
자신의 모든 걸 걸어야 할 타이밍.
결심한 강현이 능력을 발동.
[검탑 1층 생명의 숲을 생성합니다! 2층 깊은 싱크홀을 만들어 냅니다! 3층 태극 훈련장을 소환합니다…….]
[검탑을 소환합니다!]
검탑 자체를 소환했다.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98층 검탑을 소환합니다!]
바로 강현이 복사한 어둠의 신전이 더해진 검탑.
강현의 발밑이 갈라지기 시작하더니.
굉음을 내며 솟아오른 검탑이 끝없이 자라났다.
하염없이 솟아오른 검탑 위.
강현이 어둠을 내려다보았고.
-감히!
어둠이 분노하며 크기를 더욱 불렸다.
놈이 자신을 내려다보는 걸 참을 수 없다.
감히 고작 인간에 불과한 강현이 신이 될 자신을 내려다보는 건 말도 안 된다!
어둠이 거대한 해일이 되어 모든 걸 휩쓸어 버리려는 순간.
강현이 만련신검을 검탑 안에 쑤욱 집어넣었다.
[검탑에 꽂혀 있는 검을 발동합니다! 탑의 능력이 강화되어 제어할 수 있는 검의 숫자가 더욱 많아졌습니다!]
[제왕제검을 발동 제어 가능한 검의 숫자가 증가합니다! 백염을 비롯한 스킬들이 이를 보조합니다!]
[신전에서 구한 이들의 영혼의 크기를 더합니다! 김두식이 만들어 낸 검탑과 만 개의 검 모두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강현이 구한 생존자들과 영면을 허락한 사도들의 영혼.
이들의 영혼을 더하고, 새로운 능력을 더하자 마침내 만 개의 검이 강현의 것이 되었다.
[전식 해파삼십육검과 후식 월하유성검을 더하여 해파칠십이검을 완성합니다!]
거기에 더해 이석천에게 배운 마지막 유성검을 더하자 드디어 검성의 검 해파칠십이검이 완성되니.
검탑 아래에 있던 바다가 더욱 거칠게 몰아치며 어둠을 밀어냈고.
강현의 검에서부터 시작된 백염이 검탑 전체를 휘감자.
9,999개의 검의 검탑에서 뛰쳐나가 하늘 높이 떠올랐다.
강현이 만련신검을 들어 달을 띄우니.
삐이이익!
깊은 어둠 속 푸르게 떠오른 달과 만 개의 은하수.
대붕이 상서로운 울음을 내며 공중을 떠다녔고.
아래에선 푸른 바다와 붉은 검고기들이 휘돌았다.
그 중심, 우뚝 서서 타오르는 검탑 가장 위.
강현이 만련신검을 든 채 적을 겨누니.
“마지막이다.”
그가 뿜어낸 기운이 어둠을 정확히 향했다.
마치 밤바다와 은하수가 흐르는 하늘 사이, 새하얀 등대가 어둠을 비추는 듯한 모습.
참으로 아름다운 풍경.
그러나 그 속에 담긴 힘은 결코 아름답지 않았다.
키이이잉.
하늘에 떠오른 9,999개의 별이 고속으로 회전하며 빛을 키워 갔고.
달은 점차 크기를 불려 나가며 어둠을 조준.
바다와 검고기들도 끝없이 몰아치며 어둠을 야금야금 뜯어먹었다.
검탑이 중심을 감당하니.
“이게 네가 나에게 허락한 힘이자. 오만의 대가다.”
강현이 탑 꼭대기에 당당히 선 채로 모든 힘을 조율하며 어둠을 노렸다.
이윽고 검과 달, 바다와 탑.
그가 가진 모든 힘을 내질렀고.
-웃기지 마라! 내 힘이니 내가 거두어가리라!
어둠은 강현에 맞서 다시금 몸집을 키우니.
둘의 능력이 부딪히고 터지고 깨지기를 연속.
바다가 범람하고 별이 떨어지고 달이 깨졌다.
대붕의 날개도 곳곳이 뚫려 점차 가라앉았다.
탑의 기운도 모두 되어 벽이 허물어지기 시작.
강현이 든 만련신검도 점차 빛을 잃어 가니.
-내 승리다! 내 승리야!
어둠이 자신의 승리를 주장했으나.
문득, 어느새 자신이 강현을 올려다보고 있음을 깨달았다.
몰아치는 의지에 깎이고 깎여 작아져 버린 어둠.
하지만 강현의 힘도 다했다.
-하하! 네놈이 힘을 잃었으니 이제 내 차지다!
어둠이 급히 몸을 움직여 강현에게 쇄도했다.
이 틈에 강현을 붙잡아 몸을 빼앗을 생각.
놈이 바다를 거슬러 올라 검탑을 기어오르기 전.
“그야… 말도 안 되는 걸 가져왔거든…….”
강현이 만련신검에 몸을 기댄 채 간신히 정신을 유지하며 올라오려는 놈을 비웃었다.
방금까지 모든 능력을 쏟아부은 주제에 무슨 소리란 말인가?
어둠이 강현의 말이 거짓이라 생각 다시금 바다를 거스르려는 때.
“이제야 도착했네.”
강현의 공격에 약해진 공간이 갈라지더니.
푸른 마나를 머금은 항공모함이 모습을 드러냈다.
* * *
모든 선원은 항공모함에서 내리라는 명령.
“전 함대에 있는 포탄과 미사일, 터질 만한 것들을 모두 항공모함에 실어!”
함대사령관이 명령을 내리며 이전 강현과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정말 뭐든지 지원해 주실 수 있습니까?”
“내 힘이 닿는 것이라면 얼마든지.”
함대사령관의 장담에 잠시 침묵하던 강현이 한 말.
“항공모함이 필요합니다.”
“우리에게도 도울 기회를 주다니 그거 반가운 소식이구먼!”
사령관이 드디어 강현과 함께 어둠에 맞서 싸울 수 있다는 생각에 들떴을 때.
“아닙니다. 같이 싸우는 게 아닙니다.”
강현이 고개를 저었다.
그럼 항공모함이 왜 필요하단 말인가.
“사람이 한 명도 타지 않은 항공모함이 필요합니다.”
“…사람이 타지 않은?”
순간 이해하지 못해 눈을 꿈뻑이던 함대사령관이 곧 창백한 얼굴로 되물었다.
“설마? 설마 아니겠지? 진심인가?”
“네, 진심입니다.”
“미쳤군! 미쳤어! 자네 정말 미쳤어!”
“마지막이니 미쳐야 이기지 않겠습니까?”
강현의 말대로다.
하나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한참을 침음을 흘리며 고민하던 함대사령관이 결국 결정을 내렸다.
“그래 따지고 보면 수천억 달러, 아니 세상의 모든 돈을 쏟아부어서라도 막아야 할 일이야.”
고작 항공모함 한 대로 멸망을 막을 수 있다고?
“할 만한 교환 아닙니까?”
강현의 물음에 함대사령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강현의 말은 이해했다.
항공모함을 이용한 자폭.
그래 항공모함 한 대로 지구의 멸망을 막을 수만 있다면 오히려 싸게 먹히는 셈.
“알겠네. 내 전투가 마무리될 즈음 준비시키지.”
“시원하게 결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닐세. 자네가 진 짐이 무거우니 이렇게라도 도와야지.”
“그럼 가 보겠습니다.”
강현이 막 사령관실을 나서려 할 때.
“이왕이면 자네가 전역하는 모습도 보고 싶군.”
마지막 남긴 사령관의 말에.
“보실 수 있을 겁니다, 반드시.”
강현이 고개를 끄덕이곤.
사령부를 나섰다.
그렇게 모든 선원이 내리고 포탄을 잔뜩 실은 항공모함을 준비.
얼마나 기다렸을까.
우우웅.
푸른 마나를 머금은 항공모함이 몸을 떨더니 공중으로 떠올랐고.
아직 입을 벌리고 있는 통로를 향해 천천히 항해했다.
이를 보던 사령관이.
“전군 차렷!”
명령을 내리자.
미군 네이비실과 한국 특임대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차렷.
S급 헌터들 또한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날아오르는 항공모함을 바라보았다.
“마지막 일격을 날릴 최강현 병장과 항공모함을 향해 경례!”
이어서 강준진의 외침에.
“충성!”
특임대는 우렁찬 구호를.
네이비실은 각 잡힌 경례를 건넸다.
모두의 안녕과 지구의 수호를 위해.
마지막까지 싸우는 강현을 향한 경외를 담은 경례.
비록 함께 싸우지는 못하지만 전우를 응원하는 마음을 경례에 실었고.
폭탄과 함께 그들의 마음을 실은 항공모함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이런 미친놈……!
이런 결말을 예상치는 못했는지 어둠이 경악했고.
이제 별이 가득한 밤하늘도 찰랑거리는 바다도 없는 낡고 힘이 빠진 검탑 위.
강현이 만련신검을 뻗어 놈을 가리키자.
미약한 빛이 거대한 항공모함을 인도했다.
지구를 지키려는 등대지기가 마지막 힘을 그러모아 적을 가리켰고.
이를 따르는 항공모함이 깊은 어둠.
적이 있는 목적지를 향해 전진하니.
삐이이!
구찌가 숭숭 구멍 뚫린 날개나마 펄럭이며 바람을 보탰다.
캄캄한 바다 위 미약한 희망에 의지해 항해했던 지난 시간.
부모님을 잃고 힘겨웠던 삶.
능력을 개화하며 남들보다 강해졌고.
남들의 고통을 보며 지켜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그 끝.
부모님을 비롯한 모두의 희망과 일상을 찾기 위해.
강현이 뿌려내는 마지막 희망.
그의 마지막 의지를 담은 일격이.
-안 돼! 안 돼! 제발!
몸서리치며 현실을 부정하는 놈을 향해 천천히 밀려들었다.
하얗게 번지는 빛과 소멸하는 검은 어둠.
모든 힘을 다한 강현이 아스라이 미소 지었다.
싸움은 이제 끝났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때다.
아팠던 시간을, 절망했던 순간들을 끊어 낼 때다.
그리고.
“이젠 돌아갈 때…….”
모든 이야기의 끝을 맞이한 순간 강현이 떠올린 건.
웃고 있는 부모님과 그들의 품에 안긴 서연이, 기쁨의 눈물을 훔치는 할머니의 모습.
검귀가 되었던 서재원과 스스로를 희생한 헌터들이 웃는 모습.
자식을 잃은, 부모를 잃었던 이들이 돌아온 가족을 보며 환호하는 모습들.
모두가 꿈만 꾸던 순간.
강현이 하얗게 번지는 빛 위로 현실이 될 환상을 보았고.
어둠이 빛에 파묻혀 사라졌다.
[마지막 퀘스트를 완료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