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물수집으로 무한성장-270화 (270/277)

270화 진정한 의미

벌컥, 벌컥, 벌컥.

쏴한 음료가 목구멍을 넘어갈 때마다.

갈라진 살이, 박살 난 뼈가, 잔뜩 죄어 있던 폐가, 쇼크로 인해 발작을 일으키던 몸이.

회복됐다.

“크아악!”

블러디 독이 정확히 구찌활명수 세 병째를 비우며 사나운 미소를 지었다.

“검쟁이 새끼. 너흰 이런 것 없지?”

“…….”

그의 비아냥에도 상대는 묵묵부답.

사실 블러디 독은 내심 피어오르는 두려움을 떨치려 허세를 부리는 중이었다.

첫 번째는 단 일격.

두 번째는 몇 합.

세 번째는 그나마 좀 길었으나.

‘고작 몇 분이 다인가.’

이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가 회복된 몸을 추스르며 다시금 능력을 휘돌리기 시작.

상대와의 싸움을 상기했다.

놈은 강했다.

S급, 그중에서도 발군의 실력을 갖췄다던 그가 제대로 파악도 못 할 만큼 강했다.

“너 대체 왜 이런 나쁜 새끼들 편에 붙은 거냐?”

궁금했다.

놈의 검술은 신기할 정도로 정직했고, 정직했으나 강직했다.

자신의 능력을 파괴할 정도로.

블러디 독의 질문에도.

철그럭.

기사는 검을 들어 올리며 싸움을 종용했다.

마치 준비가 끝났으면 다시 덤비라는 듯이.

보통이라면 와락 인상을 구기며 달려들었겠으나.

“…….”

블러디 독이 이번만큼은 함부로 덤벼들지 못하고 망설였다.

세 번 싸워서 모두 졌다.

아마 강현이 준 구찌활명수가 아니면 첫 일격에 목숨을 잃었을 거다.

남은 구찌활명수는 둘.

“이런 제기랄.”

그의 입에서 욕이 흘러나왔다.

지금 적을 앞에 두고 망설이고 있는 건가?

천하의 블러디 독이?

이거 완전 꼬리만 개새끼가 되어 버렸구만.

어디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단단히 잘못되었다.

그가 상대를 관찰하다 문득.

“그렇게 대책 없이 덤비면 누가 상이라도 주냐?”

가장 듣기 싫은 목소리를 머릿속에 떠올렸다.

강현에게 대련을 빙자한 폭행을 당할 때마다 들었던 말.

너무 급하다, 상대의 전력을 가늠하지도 않고 덤빈다, 정신 차려라, 네가 사람이지 진짜 개새끼냐, 이름 따라가는 거냐, 진짜 말을 못 알아듣는 거 보니까 개가 맞구나, 우리 집 구름이도 너보다 말을 잘 알아듣겠다, 약한 놈이 강한 척하려 허세 부리는 꼴이다.

‘으으, 정신 나갈 거 같아! 정신 나갈 거 같다고!’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는 강현의 잔소리에 블러디 독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러나 지난 시간 동안 폭언과 폭력으로 각인된 가르침은 충실히 제 역할을 해 내기 시작했다.

‘보인다. 저 새끼도 멀쩡한 상태가 아니었어.’

그저 자신이 패배했기에 상대가 강한 줄로만 생각했다.

그런데 다시 보니.

블러디 독의 공격이 효과가 있었는지 흉갑은 크게 부서졌고 한쪽 팔도 너덜너덜했다.

꾸드드득, 곳곳 부서진 놈의 갑옷 속에서 까만 연기가 스멀스멀 새어 나왔다.

“그래 나만 아픈 게 아니었어. 그치?”

이내 블러디 독이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회복했다.

자신은 여벌 목숨이 있지만 놈은 없다.

결국 마지막에 사는 놈이 이기는 싸움.

거기다.

“그리고 확실히 넌 무섭지 않아.”

거검의 기사는 강했으나 무섭진 않았다.

강현이라는 절대적인 공포와 무력감을 떠오르게 하지 못했다.

블러디 독이 몸을 낮추며 다시금 피를 끓였다.

부글부글 끓는 피가 몸을 내달리며 시야를 붉게 물들인다.

전 같았다면 무작정 놈을 공격하려 했겠지만.

‘봐라, 놈의 전력을, 놈의 움직임을, 적의 약점을!’

지금은 붉어진 시야 속에서도 상대를 살피려 노력했다.

노리는 건 팔과 가슴.

블러디 독이 다시 땅을 박찼고 기사와 치열한 싸움을 시작하며.

이번만큼은 확신했다.

구찌활명수와 깨달음이 있는 한 이길 거라고.

‘그 새끼가 싫지만 대단한 놈이긴 해.’

그가 이젠 강현에 대해 두려움을 넘어서 경외를 품을 때.

“다들 정신 차려!”

다른 S급 헌터들 또한 힘겨운 싸움을 이어갔다.

적들은 지구에서 나름 한가락 한다는 그들보다 강했다.

“대체 이 새끼들은 어디서 나온 거야?”

“이런 몬스터가 있다는 건 처음 들었는데?”

“일단 막아! 최대한 막아!”

산전수전 모두 겪었다던 S급 헌터들도 당황할 정도로.

하지만 두렵지 않았다.

마나가 모자랄 땐 활명수, 목숨이 위험할 땐 구찌활명수.

지금껏 본 적 없는 뛰어난 물약 효과도 도움이 되었지만.

“기억하지? 합격? 그대로 간다!”

“오케이!”

진짜 그들을 살려 준 건 바로 지난 훈련 경험.

강현이 찔러 들어왔던 그들의 빈틈과 약점.

이를 보강하기 위해 했던 노력과 자존심을 굽혀 가며 펼쳤던 합격술까지.

당시엔 쓸 리 없다 생각했던 것들이 지금 와서 빛을 발했고.

그들의 목숨을 지켰다.

그리고 뒤에 선 수많은 병사의 생명도 지켰다.

강현이 아니었다면 이미 방어선은 무너졌을 거고 대학살이 벌어졌을 거다.

“이 정도면 할 만하지.”

“그래, 아직 버틸 수 있어.”

구찌활명수를 들이킨 S급들이 강현에게 지적받았던 약점을 유념하며 다시금 놈들에게 달려들었고.

최후의 전선을 유지했다.

* * *

“사도?”

“네, 사도들과 대부분의 병력이 나갔고 남은 건 층의 주인들과 잔챙이뿐이거든요.”

“그래서 때를 노린 건가? 빈집을 틈타 영향력을 확장하려고?”

검성의 물음에 강현의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그를 보며 검성이 우물우물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그러니까… 내가 말이야 진짜 검성이 아니라서 그… 이름이 기억이 안 나는데?”

게이트 진입 이후 기억이 없으니 둘의 이름을 모른다.

반면 저들은 자신과 함께 이 끔찍한 신전을 뚫었을 테니 기억할 터.

오해를 없애기 위해서라도 미리 말을 해 두어야겠다 싶어 이석천이 설명을 하려 할 때.

“알고 있어요, 석천 오빠.”

강현의 어머니 정수연이 먼저 이석천을 편하게 불렀다.

이를 들은.

“오빠……?”

김두식의 눈이 희번득 돌아가기 직전.

“그렇게 불러 달라 하셨거든요, 석천 오빠가.”

“오호 그렇단 말이지? 이거 이석천이가 게이트 안에서도 그럴 정신이 있었나 봐?”

“아니, 그냥 같이 있다 보니 친해진 거지.”

“그러면서 저한테 물어보셨죠. 친한 친구랑 어떻게 하면 연인이 될 수 있는지를요.”

“…….”

“저희 부부도 연구실 동료로 시작해서 결혼했거든요.”

정수연이 슬그머니 남편이랑 팔짱을 끼며 웃었고.

검성과 김두식이 멋쩍게 서로의 눈길을 피했다.

“그래도 걱정하셨던 거보다 용기를 내셨나 봐요.”

“내가? 그런 말을 했나?”

“네, 기억은 못 하시겠지만요.”

강현의 어머니, 정수연이 장난은 그만두고 하려던 말을 이었다.

“우선 검성 이석천 님의 기억은 저희가 보낸 게 맞아요. 저희가 보냈다기보단 스스로가 보낸 거지만요.”

“내가 직접?”

“네, 우리에게 향후 미래를 맡길 친구가 생겨나면 내 기억을 보내 돕게 하라고 하셨어요.”

“그건… 의외로군.”

“다른 층에서 기억을 보낼 방법을 획득했고 때를 노려 강현이에게 보낸 거고요.”

정수연의 말에 검성이 고개를 끄덕이다 문득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아! 그럼 혹시 능력도?”

그의 물음에 강현의 부모님이 빙그레 미소 지었다.

“놈들을 속일 방법이 필요했거든요.”

“뭐, 결국은 사용자가 어떻게 능력을 발전시키는지에 따라 다르니까. 강현이가 한 게 맞죠.”

강현의 능력 원천이 밝혀지는 순간.

“그럼 생존자들 모든 능력을 보낸 거야?”

“그렇지는 않아요. 대부분은 무작위고요. 다만 무작위로 포장한 의도가 간혹 있었던 거죠. 여기서 얻은 보상들로 시스템을 속였거든요.”

“그랬던 거군. 그랬던 거야.”

“산군님의 혈족 계승, 태풍님의 재단 설립 과정 등등 여기 안에서 놀기만 한 건 아니니까요.”

“김두식님의 검탑 제작에도 약간의 행운이 들어갔죠.”

“이거 밖에서까지 도움을 받았구먼.”

“그러게 우리는 아무것도 해 주지 못했는데.”

이제야 비밀을 알게 된 이석천과 김두식이 씁쓸히 미소 지을 때.

“아니요, 모두 검성님이 희생했기에 가능했던 겁니다,”

강현의 아버지가 고개를 흔들었다.

“검성님뿐만 아니라 스스로 희생한 이들 그리고 노력한 모두가 이루어냈죠.”

“맞아요. 그리고 만물제작자님도 상심하지 마세요. 검탑의 제작부터 지금까지 얼마나 노력하셨는지 아니까요.”

모두가 노력했죠.

이어진 말에 그들이 순간 익숙한 모습을 떠올렸다.

강현.

“성격이 어디서 왔나 했더니 진짜 부모님을 쏙 빼닮았어.”

겸손하고 남을 인정하는 성격이 부모님을 영락없이 빼닮았다.

검성의 감탄에 강현의 부모님이 서로를 멋쩍게 바라보길 잠시.

“그래서 강현이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고 말았어요. 그건 좀 미안해요.”

“오히려 강현이에게 못난 짓을 한 거죠, 저희가.”

강현에게 너무 무거운 짐을 지운 것은 아닌지 후회했다.

어린 나이에 아픔을 겪은 것으로도 모자라 지금 누구보다도 무거운 짐을 짊어졌다.

아들이기에, 부모이기에 마음이 아팠다.

그런 그들을 보며 이번엔.

“강현이 잘 컸더군. 놀라울 만큼.”

“그래요, 그러니까 걱정 말아요. 그 아이 누구보다 강하고 누구보다 잘해 낼 테니까.”

검성과 김두식이 강현의 부모님을 위로했다.

잠시간의 대화가 끝난 후.

“그럼 이 층을 점령만 하면 된다는 건가?”

“네, 현재 남은 건 층의 주인뿐. 사도가 없으니 훨씬 쉬울 겁니다.”

“그런데 그 사도라는 게 대체 뭐야?”

아까 97층에 들어섰을 때부터 들었던 단어.

주교는 들었는데 사도는 처음 들었다.

검성의 물음에.

강현의 부모님이 설명을 시작했다.

각 층이 어디서 왔는지 그리고 신전에 편입되는 순간 어떤 운명을 맞이하는지.

“원래는 독자적인 세계였다는 건가? 이곳이? 이런…….”

모든 층은 독자적인 세계였다.

어느 날 어둠이 세계를 잠식하기 시작.

마지막 전쟁에서 어둠에게 패하여 신전에 먹혔다.

먹힌 세계는 층이 되고 층의 주인이 선정된다.

그중 사도는 바로.

“층을 구하기 위해 가장 힘썼던 영웅. 그들입니다.”

세계를 구하기 위해 싸운 영웅들에게 내려지는 형벌.

패자이기에 감당해야 하는 굴레.

본래 자신의 세계를 구하기 위해 분투했던 그들은 지금 지구를 무너뜨리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그리고 검성은.

“검성님께서도… 지구의 사도 후보입니다.”

어둠 속에서 사도가 되지 않기 위해 견디는 중이었다.

어떻게서든 모두를 구하기 위해.

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참혹한 사실에 검성 이석천의 기억이 잠시 눈을 감았다.

예상은 했지만 그랬구나.

아직 버티는 중일까?

“본체가 버텨 주었길 바래야겠군.”

검성이 애써 담담한 신색을 유지하며 검을 들어 올렸고.

“그럼 저 드래곤을 상대하면 된다는 거지?”

하늘을 날아다니며 브레스를 뿜어내는 새까만 드래곤을 바라보았다.

강현의 부모님이 점령하려는 층의 주인.

“가 볼까, 도마뱀 잡으러.”

“우선 마법부터 분해해야겠는걸?”

검성과 김두식이 녀석을 향해 달려들었다.

* * *

싸움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강현의 검이 번뜩일 때마다 놈의 눈이 멀었고.

구찌의 불이 놈의 다리를 태웠다.

97개의 눈과 다리.

몸부림을 치며 강현을 공격해 봤지만 단단한 그림자 갑옷을 뚫지 못했다.

압도적인 힘의 차이.

검탑이나 다른 능력을 사용할 필요도 없었다.

그저 만련신검과 흑갑, 구찌의 불만으로도 충분했다.

얼마 안 가.

“…끝인가?”

층의 주인이라던 녀석의 몸이 축 늘어졌고 어떠한 반응도 하지 못했다.

생각보다 싱거운 싸움.

사실 녀석이 약한 게 아니라 강현이 너무 강해진 탓이었으나.

“층의 주인이라더니 약하네.”

본래 강함이란 상대적이니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시체는 변명할 수 없으니까.

이어서.

강현이 천천히 놈의 몸으로 손을 가져다 댔고.

[97층 층의 주인을 제압했습니다! 97층을 획득합니다! 97층을 검탑에 포함합니다!]

[새로운 고물 97층 신전의 중앙 연결체를 수집했습니다. 연결체에 녹아 있는 경험과 능력을 흡수합니다!]

놈의 몸에서 흘러나온 경험이 강현에게 흘러들어왔다.

97층 주인이 신전의 연결체였던 모양.

[신전의 1층부터 97층까지 접속합니다! 각층의 점령자를 확인합니다!]

[그림자의 왕 권능을 발동. 연결체의 회로를 그림자가 대신합니다. 층에 대한 장악력을 확보합니다]

[연구 책임자의 눈, 흐름 파악, 마나 분석을 통하여 신전의 구조와 각 층의 연결을 확인하여 흡수합니다]

연이어 떠오르는 알림.

강현이 지금껏 쌓아 온 스킬들이 연결체의 경험을 흡수하여 신전 깊숙한 곳까지 침투했다.

마치.

‘이 순간을 기다려 온 것처럼.’

강현이 다시금 느꼈다.

고물수집, 이 능력은 단순히 성장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오래된 물건에서 경험을 빼내고 이를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고물, 그 범위는 무한.

그렇다면.

“어둠, 네놈이 세운 신전은 얼마나 오래된 고물이냐.”

강현이 고물수집 능력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았고.

그의 깨달음 속 얼핏 비추는.

“드디어 강현이가 선물 포장지를 뜯었나 봐, 여보.”

“강현아, 선물이 맘에 들었으면 좋겠구나. 이 순간을 위해 준비했단다.”

어머니 아버지의 얼굴.

고물수집이라는 포장지 안에 숨겨진 진정한 의미.

“네가 쌓아 온 능력과 세월 받아가마.”

케케묵은 어둠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능력.

강현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연결체를 이용하여 신전 접속 회로를 접수했습니다. 각 층의 점령자 확인을 완료했습니다]

[생존자들이 점령한 층들이 일제히 검탑주 최강현의 소유로 이전됩니다!]

지난 시간 동안 확보한 생존자들의 영역이 일제히 강현에게 빨려 들어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