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7화 준비된 길
각자의 속성을 담은 마나.
붉은색, 푸른색, 하얀색, 노란색 등 색도 운용법도 완전히 달랐으나.
서로의 마나가 닿는 순간.
우웅.
공명음이 울리며 하나로 합쳐졌다.
그 숫자가 수천에 이르니.
마나가 합쳐지는 소리가 괴물들의 함성과 뒤섞여 울렸고.
곧 특임대와 네이비실을 완전히 덮는 거대한 연합 방진이 형성되었다.
마치 거대한 비눗방울을 덮은 듯 오색찬란한 빛에.
“볼 때마다 놀랍군.”
“그러게 말입니다.”
다들 감탄을 뱉었다.
보기에는 아름다웠으나.
“쿠워어어억!”
쾅, 콰쾅!
그 효과만큼은 확실하니.
몬스터들이 방벽에 부딪히는 순간 단번에 뭉개졌다.
마치 굳건한 성벽 뒤에 서 있는 듯한 기분.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다.
“방어는 튼튼할수록 좋으니까.”
황세아가 씨익 웃기를 잠시.
“장치 발동하세요!”
그녀의 말에 특임대와 네이비실이 펼친 방진을 놀란 눈으로 구경하던 연구원들이 정신을 차리고는 다급히 움직였고.
곧 거대한 장치들이 더운 숨을 내뿜으며 다시금 거센 마나를 뿜어냈다.
하늘로 뻗어 올라간 마나가 연합 방진에 섞여 들어가 방어벽을 겹겹이 덧씌웠다.
몬스터들이 바깥에서 방벽을 찢으려 했으나 소용없다.
놈들이 밖에서 아우성치는 동안.
“전원 공격 준비!”
강준진 준장의 우렁찬 명령에 모두가 각자의 무기를 들었다.
이어서.
“공격 개시!”
그들의 스킬이 하늘을 빽빽이 덮으며 날아들었다.
터지는 불꽃과 마나, 피.
집중포화에 몬스터들이 우수수 쓰러졌고.
특임대와 네이비실이 최선을 다해 놈들을 공격했다.
얼마나 쏘아 댔을까.
“크오오오!”
놈들 중 몇몇이 포화와 방어벽을 억지로 뚫고 몸을 들이밀었으나.
“찢어!”
그때까지 숨을 몰아쉬며 기다리고 있던 근접 딜러들에 의해 갈가리 찢겼다.
완벽한 방어.
지난 훈련의 성과일까 호흡이 착착 맞아 들어가는 게 느낌이 좋다.
“우와아악! 할 수 있다!”
“해내자!”
“이기자!”
그들이 마음속에 차오르는 투지를 입 밖으로 뱉어 낼 때.
[군작전사령부 능력을 발동합니다. 전투원들의 전투 수행 능력이 상승합니다! 작전 연계가 한층 더 치밀해집니다!]
[군단 능력을 모두에게 적용합니다! 특성 전체를 적용합니다!]
[지난 훈련의 결과로 능력 효율이 대폭 상승합니다!]
강현이 이들의 능력이 하나가 되었음을, 그사이 더욱 강해졌음을 확인했다.
그러나 이 정도로는 모자라다.
[작전사령부 부대 편성 및 구성원 상태를 확인합니다. 지금까지 쌓인 경험치 포인트를 분배할 수 있습니다]
[연구 책임자의 눈 발동 구성원들의 능력을 분석하여 각자에게 필요한 포인트를 배분합니다! 군단 능력을 강화합니다!]
작전사령부의 능력은 단순히 그들의 상태만을 지켜보는 게 아니다.
그들의 상태, 그리고 아직 발휘하지 못한 잠재력을 알려 주고 이를 발휘하게 해 주는 것.
지금껏 훈련한 과정들, 전투 경험이 그들의 능력이 되었고.
한층 힘을 끌어올린 병력들이 몬스터들을 완벽히 막아 냈다.
본래라면 이 거대한 몬스터 웨이브로 병력을 휩쓸었을 거다.
그러나 아무 소용없자.
키에에엑!
“S급 블랙 와이번, S급 블랙 와이번 등장!”
“S급 만티코어 무리도 보입니다! 몰려오고 있습니다!”
“저거 케르베로스 아니야? 저걸 뭐라고 해야 해? S급? 아니, 신화급인가?”
예상보다 빠르게 S급 몬스터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놈들이 방벽을 녹이기 위해 달려드는 순간.
“S급들은 가서 막도록!”
현장 지휘자 강준진의 명령에 지금껏 힘을 비축하고 있던 S급 헌터들이 앞으로 뛰쳐나갔다.
그리곤.
“저 도마뱀 아종 새끼는 내가 맡지.”
“그럼 저 불쾌하게 생긴 만티코어는 내 꺼다!”
“혼자서 되겠어? 같이 가자고.”
“으음, 마침 트윈 헤드 오우거도 오는군. 저쪽으로 가겠다.”
“누구 같이 혈마령 잡을 사람?”
그들이 각자 잡을 몬스터들을 향해 뛰쳐나갔다.
철저한 분업.
이로써 힘의 낭비를 막을 수 있다.
특임대와 네이비실이 방벽 뒤에서 몰려드는 놈들을 잡는 동안 S급들은 같은 수준의 괴물을 맡는다.
그리고.
“왕왕왕!”
“가자, 방울아!”
“왜 하필 나랑 같이 가는 거냐?”
“가자, 블러디!”
“빌어먹을! 개 취급하지 마!”
“물어! 가서 뜯어!”
“썅! 넌 케르베로스 죽이고 나서 보자!”
악마견 케르베로스를 상대하는 건 같은 신수 해태 방울이와 블러디 독.
이들을 이끄는 제니퍼를 보니 꽤 잘 어울리는 조합이었다.
미친개와 조련사.
해태가 물을 일으켜 케르베로스를 감쌌고.
안으로 뛰어든 블러디 독이 놈의 머리통을 뜯어내기 시작.
“블러디! 왼쪽!”
“캬악! 명령하지 마!”
블러디가 불만을 토하면서도 왼쪽 머리로 달려들어 성실히 이를 떼어 냈고.
“옳지, 잘했어!”
“너! 지금 일부러 이러는 거지? 정말 죽고 싶냐?”
“해태! 블러디를 도와!”
“쳇. 일단 죽이고 보자고, 죽이고.”
일단 눈앞의 적이 급하기에 블러디가 해태와 힘을 합쳤다.
예상보다 훨씬 선전하는 헌터들.
자신들도 놀랄 정도였다.
“어? 뭐야. 얘 죽었는데?”
“만티코어 처치 완료? 셋이서 충분하네?”
“미친놈들아 끝냈으면 이쪽 와서 도와!”
보통 같은 S급 몬스터를 상대로 싸운다고 하면 S급 헌터 여럿이서 하나를 레이드 하는 경우가 대부분.
그러나 지금은 오히려 그들이 적은 숫자임에도 놈들을 압도했다.
참으로 신기한 상황.
그러나 그들 모두가 이유를 알았다.
“최강현 그 인간 상대하는 것보다는 백 배 편하지!”
“암, 그런데 대체 왜 안 가고 지켜보고 있는 거야?”
“저 미소 보여? 설마 새롭게 때릴 곳을 찾아서 저렇게 신나게 웃는 거 아닐까?”
바로 강현과의 대련.
매번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로 얻어맞았고 다음번엔 어떻게 안 맞을까 치열하게 고민했다.
단순히 능력의 고하를 떠나 활용 방법에 대한 끝없는 고민.
힘을 절약하고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법.
잠깐의 방심, 힘의 낭비가 낳는 끔찍한 결과.
그들은 요번 훈련 동안 강현에게 진짜 전투가 무엇인지 배웠고.
“제대로 써먹는군요. 확실히 S급들답습니다.”
강현이 만족할 만큼 훌륭히 이를 소화했다.
강현이 보람찬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어째서인지 어깨를 흠칫흠칫 떠는 것 같긴 하지만.
“그렇게 늘씬하게 두들겨 패 놨는데 저 정도는 해야지.”
“음, 좀 심했나요?”
“뭐, 사실 나야 속 시원하긴 했다만. 어디 가서 맞을 녀석들이 아니니까 충격이 컸겠지.”
“충격 속에서 배운 가르침이 오래 남는 법이지요.”
“크하하! 맞다. 맞아 이거 아주 제대로 배웠구나.
크게 웃은 산군이 씨익 사납게 미소 지으며 전장을 쓸어 보았다.
별동대가 아직 떠나지 않은 이유.
강현이 전투를 시작하기 전 했던 말.
“우선 전황 판단 후 인원을 조정하려 합니다.”
안으로 들어간다고 해서 여기서 싸우는 이들을 무책임하게 두고 갈 생각은 없었다.
우선 전황을 보고 정 어렵다 싶으면 별동대에서 인원을 차출.
전선을 보강할 생각이었으나.
“이거 문제없겠는걸?”
“이대로 모두 들어가도 괜찮지 않겠어?”
강현을 비롯한 모두가 보기에도 현재 전선엔 문제가 없었다.
“케르베로스만 급히 마무리하고 왔어요!”
제니퍼도 해태를 데리고 복귀.
보아하니.
크르르르.
케르베로스를 먹은 덕에 해태도 더욱 강해진 모양.
강현이 해태의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는 방어선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문제없겠습니다.”
그가 보기에도 방어선은 굳건했고.
“모두 활명수 들이켜!”
조금이라도 마나나 체력이 떨어진다 싶으면 재빨리 활명수로 몸을 회복했다.
“후방 회복약 가져와! 전방으로 넘겨!”
보급선도 확실히 돌아가는 중.
유지력도 좋으니 꽤 오랜 시간 버틸 수 있으리라.
강현의 확인에 별동대 인원들이 긴장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어둠을 향해서.”
그리고 그의 말에 모두 결의 어린 표정을 지었다.
그 말만을 기다렸다.
“전원 피닉스에 탑승!”
각오를 다진 별동대가 거대화한 구찌의 등 뒤로 올라섰고.
“꾸우우우!”
구찌가 우렁찬 울음을 울자.
통로를 통해 쏟아져 나오던 비행 몬스터들이 일제히 하늘을 빽빽하게 메웠다.
구찌의 공간도약을 저지하려는 심산.
그러나.
[사멸의 불꽃을 뿜어냅니다!]
구찌가 날개를 한번 펄럭이니 거대한 불기둥이 하늘로 솟아났고.
화르르르륵!
앞을 가로막은 모든 것들을 태워 버렸다.
뻥 뚫려 버린 하늘.
구찌가 뿜어낸 불꽃과 어둠이 이어지는 순간.
[공간도약을 발동합니다! 어둠의 통로로 향합니다!]
구찌가 날개를 몇 번 펄럭거리길 잠깐.
시야가 늘어지더니 통로 안으로 순식간에 빨려 들어갔다.
하늘을 태우는 열기만이 남은 전장.
“제발, 제발 무사히. 무사히 돌아와라.”
전장에 남겨진 이들이 잠시나마 고개를 하늘로 향해 기도를 올렸다.
제발 지금 들어간 이들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돌아올 땐 생존자들과 함께이기를.
더 나아가 이 전쟁이 승리로 끝나기를.
그렇게 짧은 기도를 올린 전사들이 다시금 눈앞에 있는 적을 맞이해 싸워 나갔다.
* * *
강현이 구찌의 공간도약을 타고 어둠의 통로로 들어간 순간.
[어둠의 신전으로 향하는 길을 지납니다]
[구찌의 초고속 이동과 공간도약을 발동, 신전을 주파합니다!]
어둠의 신전에 들어섰다는 알람이 가장 먼저 그를 반겼다.
그와 동시에 구찌를 감싼 불꽃이 험하게 흔들렸다.
아무래도 어둠이 그들의 진입을 거부하는 모양.
“구찌 괜찮아?”
강현이 구찌의 머리를 짚으며 물어봤으나.
“뀨우우우!”
구찌가 우렁차게 울며 자신의 건재함을 과시했다.
아직 괜찮은 모양.
그리고 곧 모두의 눈앞에.
[신전의 1층을 지납니다… 2… 3… 7… 11층을 지납니다…….]
어둠의 신전을 지난다는 알림이 떠올랐다.
마치 이건.
“엘리베이터 같지 않아?”
“그러게 그 꼭대기에 괴물이 있다는 게 문제지만.”
“그래 반드시 죽여야 놈이지.”
다들 점점 높아지는 층수를 보며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 갔다.
얼마나 많은 적이 있고 얼마나 오래 싸워야 한단 말인가.
짐작이 가지 않는다.
벌써 층수는 40층을 돌파.
생존자들은 이 층을 모두 지났을까?
얼마나 살았을까, 어디에 모여 있을까.
불안한 표정으로 계속해서 상승하는 숫자를 바라볼 뿐.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산군도, 태풍도, 제니퍼도, 김두식도, 선설민과 서윤진도.
강현이 그런 그들을 살피다가.
“고생 많았겠어요.”
멍하니 서 있는 이석천의 기억을 향해 물었다.
그 또한 무언가를 떠올리는지 창백한 얼굴.
강현의 목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린 이석천의 기억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기억은 안 나지만 거쳐 왔겠지. 수없이 뚫고 또 뚫었겠지.”
“맞습니다. 고생 많으셨어요.”
“그래도 결국 해내지 못했다. 이번에는 다를 거라 생각하지만… 미안하기도 하구나.”
“왜 미안합니까.”
이석천의 사과에 강현이 오히려 밝게 미소 지었다.
지금 계속 층을 뚫고 올라갈 수 있는 이유.
[이전 지나간 이들이 헌신과 희생으로 닦은 길을 따라 올라갑니다. 그들이 견딘 고난이 구찌의 도약을 보호합니다!]
강현만이 본 알림.
그래, 분명했다.
이건 우리만의 싸움이 아니다.
“우리가 그들을 기다렸던 것만큼 생존자들도 우리를 기다렸던 겁니다.”
강현이 이석천을 비롯해 모두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 불안해할 거 없습니다. 우리가 지금 가는 이 길, 안에서 구조대를 기다리던 생존자분들이 직접 뚫어 놓은 길이니까요.”
“생존자들이? 생존자들이 지금 이 길을 뚫었다고?”
“그럼 다들 이 깊은 곳에서 싸우고 있었다는 거야?”
태풍과 김두식의 물음에 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바깥에 있는 자들만 싸워 왔던 게 아니다.
아니 오히려 안에서 이들은, 그리고 강현의 부모님은 더욱 처절한 싸움을 이어 갔다.
그러니 믿었다.
“흔들림 없이 그리고 끝까지 놈을 향해 나아갈 겁니다. 그러니 승리만을 생각하십시오. 우린 우릴 위해 싸워 준 이들을 구하러 가는 거니까. 불안해할 틈도 이유도 없습니다.”
강현에게 진실을 전해 들은 모두의 얼굴에 다시금 전의가 타올랐다.
그래, 그들이 마련해 준 길이라면 그 어떤 것보다 안전하리라 믿었다.
“그래, 우리보다 훨씬 오래 그리고 처절하게 싸웠겠지.”
“우리가 안 믿으면 누가 믿겠어.”
“이젠 우리가 답해야 할 차례로군.”
별동대가 끝없이 이어진 불길을 보며 마치 생존자들이 준비해 준 카펫 위를 걷는 것과 같은 기분을 느낄 때.
[97층 [email protected]#%!&에 도착했습니다! 올라갈 수 있는 한계입니다!]
마침내 통로의 끝이 비추었다.
얼핏얼핏 보이는 화면들과 적들의 형체.
크르르르.
서대호와 서윤진이 백호와 혈호로 변신하여 이빨을 드러냈고.
이어 제니퍼와 해태가 물방울을 띄워 올려 혹시 모를 공격을 대비.
선설민은 손에 든 예비 팔뚝을 점검했다.
검왕을 비롯해 그들을 따라온 헌터들도 각자 싸움을 준비하는 중.
태풍은 양손에 바람을 모았고, 김두식의 머리가 은빛으로 물들었다.
그녀의 옆에선 검성 이석천의 기억이 검을 꾸욱 쥐며 눈을 빛냈다.
“자기가 싼 똥은 자기가 치워야지.”
그의 농담에.
“뭐 이제 익숙해져야지. 같이 치워 줄게.”
김두식이 눈을 찡긋거리며 답했다.
마지막.
강현이 모두의 앞에서 만련신검을 뽑아 들었다.
“신속하게 적들을 제압. 97층을 확보합니다.”
명령이 떨어짐과 동시에 구찌가 통로에서 몸을 빼냈고.
강현이 쥔 만련신검이 허공을 가르며 새하얀 빛을 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