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3화 블러디 독
“그러니까 다음 안건으로는 최근 늘어난 해수 몬스터들과 영해 관계를 어떻게 조율할지에 대한 문제입니다.”
나무 탁자 앞에 선 의장이 연신 땀을 훔쳐 내며 눈치를 살폈으나.
대부분의 헌터는 따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나마 몇몇이.
“영해에 관한 문제는 결국 몬스터 부속물 판매에 관한 문제 아닌가요. 그렇다면 이를 공에 따라 나누는 게 제일 좋죠.”
“경계선에서는 연합하여 잡는 게 제일이라 보입니다.”
“게이트 같은 경우야 구역에 따라 간섭하지 않는 걸 1원칙으로 하고요.”
나름 답을 내놓았으나 그게 전부.
대부분은.
“하아암. 그러니까 이 지긋지긋한 회의는 언제 끝나는 건데?”
“뭐 그거야 어차피 길드 소관이니 알아서들 하라 합시다.”
관심도 없다는 듯 투덜거렸다.
그들에게 며칠간 이어진 회의는 지겨울 따름이었다.
영해에 나온 몬스터들이야 대충 때려잡으면 끝 아닌가?
그 외의 일들은 자신들이 신경 쓸 게 아니라 길드 실무자들이, 더 나아가 협회 관계자들과 국가 기관에서 처리할 일들이다.
“우리 붙잡고 그딴 이야기 그만하고, 검성 제자 그 녀석이나 데려와.”
“그래. 차라리 그게 훨씬 재밌겠네.”
특히 젊은 S급 헌터들을 중심으로 이런 분위기가 팽배했다.
“그래도 헌터들끼리 협의가 되어 있어야 현장에서 큰 충돌이 없을 걸세.”
태풍이 나름 좋은 말로 그들을 타일렀으나.
“의견이 다르면 치고받는 거지 뭘 그렇게 빡빡하게 그러십니까.”
“치고받지도 못하게 해 놨잖아 잊었어?”
“아, 그렇게 만드신 당사자분들이 계셨지? 이거 죄송하게 됐습니다.”
그들은 삐딱한 태도로 일관했다.
거기에 한술 더 떠.
“겁이 많아. 늙어서 그런가? 왜? 나 같은 놈이랑 붙을 생각 하니까 쫄려?”
덩치 큰 놈이 대놓고 산군을 향해 눈을 번뜩이며 도발했다.
입을 다물고 있던 산군이 뭐라 한마디 하려다가 결국.
“헌터란 사람들을 지키라 있는 것이지 싸우라 있는 게 아니야, 블러디 독.”
분노를 내리누르며 다툼을 피했으나.
“개새끼한테 물려 죽는 호랑이만큼 추한 게 없지. 언제까지 도망치나 보자고.”
블러디 독은 오히려 사납게 웃으며 산군을 모욕했다.
사실 마음 같아선.
‘저 핏덩이 새끼 옛날 같았으면 갈가리 찢어 죽였을 텐데.’
당장이라도 놈을 향해 발톱을 휘두르고 싶었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무서워서가 아니었다.
지금 여기서 삐악대며 협회의 엄격한 룰에 대해 불만을 토해 내는 녀석들은 모른다.
헌터가 처음 생긴 후 얼마나 혼란스러웠는지.
당시는 야만의 시대였다.
게이트에서 대놓고 누굴 죽여도 모르는.
오직 힘의 논리로만 돌아갔던 때.
산군과 태풍은 당시를 겪었고 이대로는 답이 없다고 생각하여 지금과 같이 헌터 협회와 엄격한 룰을 만들었다.
‘지금 같을 때는 좀 후회스럽기도 하네.’
자신이 만든 법을 어기고 남을 공격한다?
그것만큼 추한 일이 있을까.
산군이 간질거리는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며 살기를 억눌렀다.
옛날이었다면.
놈을 끌고 게이트에 들어가 아주 신명 나게 싸웠을 거다.
아니면 당장 여기서 죽여 버렸던가.
협회와 법이 없는 시절이었다면 누구도 뭐라 하지 못했겠지.
그만큼 헌터라는 존재는, 초월적 힘을 가진 개인은 위험했다.
그렇기에 만든 법과 제도, 기구를 통해 사태를 안정시켰다.
“아, 씨 재미없게, 쓰레기 같은 회의는 언제 끝나는 거야!”
“당장 불러내라니까? 그 어둠인지 흑막인지 하는 새끼. 그럼 내가 단번에 처리해 줄 테니까.”
그런데 그렇게 만든 평화가 새롭게 등장한 신세대 헌터들에겐 답답하고 지루한 것에 불과했다.
자신의 힘을 과시하고 싶다.
남들 위에 군림하고 싶다.
정제되지 않은 원초적인 욕망들이 속에서 꿈틀거렸다.
이미 길드, 미디어 등등 온 세계가 그들을 찬양하고 그들을 대신해 일했다.
그저 와서 힘 한번 보여 달라고, 잘난 척 한번 해 달라 애원했다.
얼마나 편한가.
그런데도 그들은 부족함을 느꼈다.
‘그 뒤에 얼마나 일이 많은지도 모르고.’
가서 무기 몇 번 휘둘러 몬스터들을 도륙 내면 미디어와 사람들은 열광했고.
앞에 선 자들은 벌벌 떨며 고개를 숙였다.
그들은 그저 그걸 즐기기만 하면 된다.
뒤에서 얼마나 많은 이가 사후 처리를 위해 밤을 새우고 고뇌하는지 몰랐다.
아니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건 자신보다 약한 이들이 감내해야 마땅한 일들이니까.
물론 그들 나름대로 이유는 있었다.
“우리한테 따져 물어도 어차피 협회 마음대로, 높으신 분들 마음대로 할 거잖아?”
“그럴 거면서 왜 자꾸 물어봅니까?”
어차피 의견을 말해도 결정은 높은 사람들이, 산군과 태풍 같은 1세대 헌터들이 내렸다.
경험이 없고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리고 실제로 그들이 정한 제도 중 몇몇은 너무 고리타분했다.
시대에 맞지 않았다.
흔한 세대 갈등.
이 정도까진 그러려니 할 수 있으나.
그중 몇몇이 자꾸 선을 넘었기에 문제가 되는 것.
‘강현이가 선녀긴 선녀였네.’
산군과 태풍이 시끌벅적한 회의장을 보며 문득 강현을 떠올렸다.
강현이라고 스스로가 강하다는 걸 모를까.
그가 이룬 전공이면 당장 전역시켜 달라 당장 나를 위해 무언가를 내놔라, 이것저것 요구할 만했다.
사실 힘으로 찍어 누르면 누가 무어라 하겠는가.
산군과 태풍이 보기에 회의장에 있는 헌터 중 자신들에게 위협이 될 만한 녀석은 없다.
산전수전 다 겪은 그들에게 불리한 상황을 뒤집을 비장의 수 한두 가지쯤은 있으니까.
늙어도 호랑이는 호랑이.
그러나.
‘강현이는 이제 괴물이 되었던데.’
얼마 전 검왕과 검성의 싸움.
강현이 남궁건을 상대로 싸우는 걸 보며 느꼈다.
녀석은 더 강해졌다.
아마 힘을 다해도 이기기 어렵겠지, 녀석이라면 비장의 수를 보고도 침착하게 막을 것만 같아 더 무서웠다.
“내일은 현장에 갈 테니 회의에 집중을 좀.”
“그럼 내일들 봅시다!”
그렇게 헌터 협회 S급 헌터들의 회의가 끝났다.
* * *
다음 날, 소풍 가듯 들뜬 이들을 이끌고 도착한 훈련장.
강준진을 비롯한 미 함대 사령관에게 작전 설명을 듣는 도중.
“비상입니다! 현재 블러디 독이 자리를 탈주! 최강현 병장과 조우했답니다!”
블러디 독이라는 이름에 군인들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반면 헌터들은 아쉬워했다.
“이런 제기랄… 내가 제일 먼저 만나려 했는데 새치기를 해?”
“그 최강현인가 하는 놈 잡히면 내가 블러디를 잡으면 되겠네.”
몇몇은 자신이 강현과 싸우고 싶다는 티를 냈고.
“이런 멍청한… 아무리 그래도 선 넘네.”
“하필 블러디 독이라니 이거 일이라도 나는 거 아닌가?”
몇몇은 걱정했다.
물론 블러디 독이 아닌 강현을.
그건 군인들도 마찬가지.
“블러디 독이? 얼른 비상상황 알리고 전 병력 현장에서 철수시켜!”
“경보 울려!”
“최강현 병장은? 이대로 괜찮겠나? 아니지, 지금 이럴 게 아니지.”
함대 사령관을 비롯한 미군들이 일제히 회의실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래도 며칠간 강현과 함께 훈련했다.
생판 모르는 블러디 독, 더군다나 무법자라 불리는 놈보다는 이번 작전의 책임자인 강현의 존재가 더 귀하다.
그들이 혹여라도 강현이 놈에게 험한 꼴이라도 당할까 걱정하며 뛰쳐나가는 동안.
“뭐… 그리 걱정 안 해도 될 거 같은데.”
“설마 강현이가 어지간히 잘했으려고.”
산군과 태풍은 태평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였다.
그들이야 강현의 성격을 잘 알고 있다.
그리 험한 성격도 아니고 뭐 해 봤자 가볍게 말다툼이나 하는 정도겠지.
진짜 많이 가면 힘 싸움 정도?
“얼른 나가 봐야 하는 거 아닌가요? 다칠지도 모르잖아요.”
제니퍼가 어슬렁어슬렁 나가는 둘을 보며 의아해할 때.
“누가 강현이가 다쳐? 글쎄,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될걸?”
“으음, 강현이가 놈을 두들겨 패는 것도 나쁘지 않지. 암.”
차라리 강현이 블러디 독의 오만한 콧대를 뭉개 주었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다.
“왜 직접 하지? 미친개한테 물릴까 봐 겁나나?”
“흥, 그럴 리가. 놈이랑 드잡이질할 나이가 아니니까 그렇지.”
“얼씨구, 산군 서대호 성격 많이 죽었네.”
“성격을 죽여야지 사람을 죽일 순 없잖아.”
둘이 티격태격하며 회의실 밖으로 나간 순간.
“어?”
“지금 뭐가?”
무언가를 보며 발걸음을 멈추었고.
“날아가는데요?”
제니퍼가 둘의 말을 받았다.
자리에 나온 헌터들, 군인들 모두의 고개가 지금 하늘을 가르며 날아가는 무엇인가를 쫓았다.
날아가고 나서야 울리는 풍절음.
마치 전투기가 날아가는 듯한 소음.
이어서.
-여기는 최강현 병장. 현재 훈련 장소에 수상한 거수자 침입을 확인.
강현의 목소리가 무전기를 타고 흘렀다.
-병사들의 안전을 위해 우선 제압하겠음. 이상.
흔한 선조치 후보고.
그러나 상대가 블러디 독이라는 게 문제.
헌터들이 지금 날아가는 게 블러디 독이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웅성웅성거렸고.
곧.
콰아앙!
홀연히 나타난 강현이 블러디 독을 아래로 걷어차자.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폭탄이 터진 것처럼 바다에서 거대한 물기둥이 솟아올랐다.
“방금 분명 성격이 좋다고……?”
제니퍼의 이어진 물음에.
“거수자를 제압하는 건 옳은 거지. 저런 성격이 참 좋아.”
“암 그렇고말고. 보고까지 챙긴 게 참으로 성실한 성격이란 말이야.”
산군과 태풍이 깊이 고개를 끄덕이며 헛소리를 주워섬겼다.
얼마 안 가 바다가 끓어오르듯 연이어 터져 올랐고.
거칠게 넘실대는 마나에.
“강현아 죽이면 안 된다!”
태풍이 다급히 무전을 하고 나서야 바다가 잠잠해졌다.
그런데.
“나오질 않는데요?”
“어, 아직 대화 중인가 본데?”
“바닷속에서요?”
그들 사이에 차가운 바닷바람이 스쳐 지나갔다.
* * *
처음엔 무슨 상황인지 알아채지 못했다.
블러디 독이 하늘을 날다가 문득.
자신이 날아가고 있다는 걸 깨닫고는.
“죽여 버린다.”
공중에서 자세를 바로잡으며 강현을 찾아 눈을 희번덕거릴 때.
“여기는 최강현 병장. 현재 훈련 장소에 수상한 거수자 침입을 확인.”
머리 위에서 강현의 목소리가 들렸다.
블러디 독이 고개를 올리는 순간.
“병사들의 안전을 위해 우선 제압하겠음. 이상.”
강현이 보고를 끝내고는 발을 높이 들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아래로 찍어 내릴 모양.
놈이 팔을 교차해 방어했고.
발과 손이 닿는 순간.
또 한 번 시야가 변했다.
몸에 닿는 충격도 충격이지만.
‘바다?’
놈의 속도를 따라가기 어려웠다.
거기에 자신을 단번에 바다로 날려 버릴 정도라면 속도 못지않게 파워도 강하다는 뜻.
‘좋아, 검성의 제자라면 이 정도는 되어야지!’
놈이 살기를 피워올리며 살벌하게 미소 지을 때.
섬찟.
등 뒤로 소름이 오소소 돋아올랐다.
이전 S급 게이트에서 보스 몬스터가 자신의 등 뒤에 섰을 때와 같은 감각.
놈이 뒤로 도는 순간.
‘보기보다 가볍네?’
강현의 입모양을 읽었고.
블러디 독이 신나서 웃음을 터뜨렸다.
‘이거 미친놈이잖아?’
미친놈이라면 언제든 환영이다.
여긴 아무도 못 보는 바다.
그렇다면 놈도 남의 시선 따위 아랑곳하지 않고 싸우겠다는 뜻이겠지.
오랜만에 재밌는 놈을 만났다며 즐거워한 블러디 독이 자신의 능력을 개방하려는 순간.
[무적호왕권을 발동합니다! 관련 스킬 전부를 발동합니다!]
강현의 주먹이 더 빨랐고.
상대를 바다 깊은 곳으로 몰아붙였다.
때리고 또 때렸다.
막아보려 했으나 강현의 주먹은 교묘하게 빈틈을 파고들어 블러디 독의 단단한 몸체를 타격했다.
그때마다 바다가 울리니.
그 충격파로 물고기들이 기절한 정도.
처음엔 신나서 웃던 놈이.
‘분명 검성의 제자라 하지 않았나? 산군? 아니, 이건 뭐지?’
강현의 파상공세에 더는 웃지 못했다.
뼈가 저리다.
분명 마나와 능력으로 몸을 강화했음에도 불구하고 아프다.
‘검을 꺼내! 안 그러면 죽는다!’
블러디 독이 다급히 강현을 향해 자신의 능력을 개방.
그의 피가 피부를 찢으며 솟아 나왔다.
블러디 독이라는 별명에 맞게 피를 변형시키고 강화하는 능력.
놈이 마치 톱니처럼 솟구친 핏줄기를 온몸에 두른 채 달려들었고.
강현을 향해 자신의 능력을 부딪치자.
강현의 단단한 손이 놈의 공격을 완전히 막아 냈다.
바짝 세운 손가락과 단단하게 쥔 주먹.
이를 감싼 짙은 마나.
때로는 치고 때로는 찢었다.
그리고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연구 책임자의 눈을 발동합니다. 마나 분석, 흐름 파악, 약점 파악을 통해 상대의 능력을 분석합니다!]
[블러디 독의 능력 블러디 체인지에 대한 이해도가 상승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놈과 손을 섞을수록 상대의 능력을 이해했고 파악했다.
아무리 피를 길게 뽑고 강하게 만들었어도.
강현의 손이 닿는 순간.
‘이런 미친 새끼! 대체 무슨 능력을 쓰는 거냐!’
자신이 자랑하던 강철보다 단단하고 어떠한 무기보다 날카롭던 피가 바닷속으로 덧없이 흩어졌다.
깨진다? 아니 흩어진다는 느낌.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닿지 않는 공격.
점점 피를 잃어가던 블러디 독이 이대로는 참패하겠다 직감.
[블러드 보일을 사용합니다!]
자신의 가장 강력한 기술, 끓어오르는 피로 모든 신체 능력을 강화.
주변을 초토화하는 능력을 발동하려는 찰나.
‘이렇게 쓰는 건가?’
강현이 그림자를 손에 두르더니.
블러디 독의 능력과 비슷한 효과를 재현했다.
이를 몇 번 반복하자.
[새로운 고물 블러디 독의 피에서 경험을 흡수합니다! 블러디 독의 능력 이해도가 더욱 빨리 상승합니다]
[블러디 독의 능력 블러드 체인지를 그림자로 대체 발동합니다! 그림자의 왕 호칭 효과로 그림자가 당신의 의지를 따라 움직입니다!]
[새로운 스킬 쉐도우 체인지를 습득했습니다!]
방금까지 블러디 독이 두르고 있던 날카로운 가시가 강현의 몸에서 솟아올랐다.
이어서 마나를 주입하자.
우우우우웅.
블러디 독의 것과 닮은 가시들이 떨리기 시작.
‘말도 안 돼…….’
순식간에 자신의 능력을 흡수당한 블러디 독의 피가 차갑게 식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