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9화 우리한텐 강현이 있거든
한미연합훈련.
키리졸브와 독수리 훈련 등 다양한 분야에서 꽤 긴 시간 이어지는 훈련.
부대에 따라 다르겠지만 훈련을 실제로 뛰는 경우 가장 큰 훈련으로 친다.
근래 쏟아지는 몬스터들 때문에 실전과 같은 훈련을 중요시한다고는 하지만.
“야, 훈련에 이 돈을 쏟아붓는 게 말이 돼? 지금 전쟁하냐?”
“실전과 최대한 같게 하라고 하셔서.”
“이거 미친놈 아냐. 그렇다고 진짜 전쟁 예산만큼 짜 오면 어떻게 해!”
“죄송합니다! 다시 해 오겠습니다.”
예산을 무한정 확보하는 건 어려운 일
그래서 폭발물 스티커 붙이고 입으로 빵야빵야거리며 훈련하는 거다.
그러나 미국은 달랐다.
실제와 같은 훈련을 위해 항모 편대를 보내고 돈을 아끼지 않는다.
한 번의 훈련이라도 진짜 실전처럼.
계속해서 병사 구성원이 바뀌는 징집제인 한국은 훈련의 질이 떨어지더라도 반복하여 숙달해야 했고.
미국은 전문가를 키워 내는 모병제이니 한국과 훈련을 대하는 태도가 다를 수밖에 없다.
작게는 체제 크게는 국가의 군사관 차이.
그리고 이러한 차이는.
“아무리 강해 봤자 2년만 있다 돌아가는 전력이지 않습니까? 정말 믿어도 되는 겁니까?”
“2년도 아니고 일 년 반이다.”
“응? 고작 18개월? 아니, 병장님 그런 녀석들이랑 무슨 작전입니까? 차라리 특전사 쪽이면 모를까요?”
“아마 그 강현 최라는 병사가 진짜 전력이겠지.”
그들의 자부심이 되었다.
그런 그들에게 고작 1년 반 동안 복무하다 전역하는 한국 병사들은 그리 믿음직스럽지 못했다.
거기다.
“한국 헌터 특임대들은 급 낮은 헌터들이 대부분이라 들었습니다. 인터넷에서 봤어요.”
“매일 인터넷 질이냐?”
“원래 훈련 전 상대 정보 확인은 국룰 아닙니까?”
“국룰? 그것도 인터넷에서 본 거냐?”
“네, 뭐 대충 기본이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녀석들보다 강할 것도 국룰이겠군.”
“음, 그렇게 사용하는 건 아닌데 뭐 대충 맞다 해 드리겠습니다.”
모집병과 징집병의 대우는 다를 수밖에 없었고.
미국 헌터 네이비실 같은 경우.
수준이 일반 길드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길드에 준하는 대우와 미 국방성과 기업에서 개발한 대몬스터용 무기들을 가장 먼전 쓸 수 있다는 특전.
거기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헌신한다는 명예까지.
꺼릴 이유가 없다.
그러다 보니 때로는 일반 길드 화력보다 오히려 미군 헌터들의 화력이 압도적이라는 평도 종종 있었다.
“그런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어쩌면 그 초이 병장은… 그들 사이에서나 특별할 수도 있다는 게 제 의견입니다.”
다른 군인들도 동료의 말에 은근히 동의할 때.
“방심하지 마라. 예상은 예상일 뿐. 지금껏 쌓은 전공을 보면 가볍게 볼 인물이 아니야.”
사전에 강현에 대해 전해 들은 팀장이 고개를 저었고.
“다른 이들은 모르지만 강현 최 그 병사만은 진짜일 가능성이 높다. 우리 쪽에서 그런 전공이라면 소령쯤은 벌써 달고도 남았을 거다.”
“그럼 그 친구만 인정하면 되죠. 나머지는 빼고요.”
“그건… 재량껏 해라.”
그들이 스스로의 강함과 훈련을 자부하며 훈련장소에 도착했을 때.
“우, 우와아. 저게 항모야?”
“입 크게 벌리지 마, 촌놈 같으니까.”
“그래도 저건 너무 큰데?”
오목교와 이성민은 영화에서나 보던 진짜 항공모함을 보고는 기가 질려 버렸다.
오목교는 대놓고 감탄을 연발 중이었고 이성민은 억지로 괜찮은 척을 해 보았으나.
“전투를 항공모함으로 하냐? 헌터가 하지!”
하늘을 나는 전투기와 다가오는 아파치 헬리콥터를 보며 떨리는 목소리를 감추지 못했다.
분명 몬스터를 상대로 현대 화기가 큰 소용이 없음을 알면서도 지금 자신들을 향해 날아오는 헬기 전대의 위엄은 그 사실마저 잊게 했다.
“흥! 어차피 헬기고 전투기고 항공모함이고 무슨 소용이냐! 우리한텐 강현이가 있는데!”
김대영의 커다란 목소리에 모두가 강현 쪽을 바라보았고.
“뭐 틀린 말은 아닙니다만. 굳이 싸울 필요가?”
강현이 어깨를 으쓱였다.
* * *
군단 특임대들이 함선에 나누어 승선한 뒤.
전력의 핵심, 항공모함 작전실에서는.
“그래서 지금 먼저 화력 시험을 해 보자는 겁니까?”
“먼저 전력을 확인하고 제대로 배치하자는 겁니다.”
“하지만 이전 협의 사항과는 다르지 않습니까.”
“이번에 도입한 신무기를 활용할 방법이 있을 거요.”
한국어와 영어가 혼재되어 들려왔다.
본래 미군은 한국 특임대와 헌터들을 보조하여 방어선을 구축하기로 했건만.
“항공모함은 그저 폼이 아닙니다. 분명 놈들에게 타격을 입힐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최정예 헌터들이 대기하고 있으니 이쪽이 더욱 효율적입니다.”
오히려 한국군을 방어선 후방에 배치할 것을 요청.
그래 뛰어난 무기와 헌터들이 있으니 그것까진 알겠다.
손해를 감수하기 싫어 뒤로 빠지는 것보다는 백배 나은 결정.
그러나.
“검성도 그 많은 이를 데리고 들어가서 실패한 일입니다. 어찌 한 명의 병사만을 믿고 모든 걸 맡긴다는 말입니까?”
“우리도 같이 들어가겠습니다. 밖에서 결과를 기다리기만 하는 건 성미가 아냐.”
강현과 함께 어둠으로 들어가겠다는 말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당연히.
“그건 불가합니다.”
강현 또한 고개를 저었다.
“들어가는 건 소수의 인원입니다.”
“모두 죽을 각오 정도는 되었네. 이봐 최 병장. 자네만 고결한 정신을 갖고 있는 게 아냐.”
미군 대령의 한마디에 분위기가 얼어붙었고.
“이 거대한 항모를 어떻게 넣는단 말입니까. 도시락에 싸서 가져가시게요?”
강현이 당당히 맞받아쳤다.
뭐 항모? 좋다, 거기에 탑재된 전투기도 좋다.
아니면 다른 함선에 달린 거대 포들도 좋지.
놈을 죽일 무기라면 환영이다.
하지만.
“도시락은 맞겠군요. 놈이 안에 있는 병사들을 아주 맛있게 먹어 치울 테니까요.”
불필요한 사상자는 막아야 한다.
강현이 어깨를 으쓱이며 주위를 둘러보고는.
“놈의 정신 공격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방금 그러셨죠? 검성과 그 많은 이가 가서 실패했다고요. 많은 이가 가서 그렇습니다. 우리가 필요한 건 숫자가 아니라 적재적소에 위기를 감당할 질 높은 병력입니다.”
강현이 번뜩이는 눈으로 미군들을 둘러보았다.
계급에 기죽을 만하기도 하건만.
‘뭐 어때 아저씨들인데.’
어차피 타 부대 아저씨라 생각하니 한결 편했다.
거기다 다른 나라 아저씨니 더욱 편했다.
“분명한 건 진입팀은 제가 팀장입니다. 그리고 인원은 철저히 팀장의 재량권이라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껴들지 마십쇼.”
강현이 명확히 자신의 권리를 주장한 후.
“번역해 주십쇼.”
옆에 있는 통역관에게 부탁했고.
“어, 어어, 진짜 번역합니까?”
통역관이 당황한 표정으로 한국 간부들을 향해 되물었다.
그러니까 지금.
‘미친 건가?’
안 그래도 고작 병장 나부랭이가 회의 자리에 있는 것도 황당했는데.
지금 뭐라고? 뭐라고 번역하라고?
강준진을 비롯한 다른 간부들도 눈을 끔뻑거리다가.
“해요.”
강준진의 허락에.
모두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대장님?”
“진심이십니까?”
고위 간부들이 사색이 되어 말리려 했으나.
“뭐 어때? 오히려 강현이가 이야기하는 게 맞지. 그리고 강현이야 전역할 건데. 그냥 받아 버려.”
아예 대놓고 강현의 리미트를 해제.
통역사가 땀을 뻘뻘 흘리며 강현의 뜻을 순화해 전달했고.
픽, 피식, 하핫!
미군들이 황당하다는 듯 웃음을 흘렸다.
이어서 들려온 통역사의 말에 강현의 미간이 구겨졌다.
“네? 다시 말해 주세요.”
“그게… 정예라면 네이비실이 정예고 힘이 없는 팀장의 재량은 들어줄 수 없다… 는 뜻입니다.”
축약하면 간단했다.
믿을 수 없다.
기껏 협력을 구하고 같이 움직이기로 해 놓고선 이딴 태도라니.
이번에는 강현뿐만 아니라 강준진을 비롯한 한국 군인들 대부분이 얼굴을 구겼다.
지금 이게 뭐 하자는 거지?
인제 와서 은근슬쩍 주도권을 채 가려 하는 건가?
“지금 이 전투는 한국만을 위한 전투가 아닙니다. 세계의 명운이 걸려 있는 전투지요. 그러니 개인의 사욕은 접어 두는 게… 좋을 거요. 랍니다.”
추가된 말에 다들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가장 먼저 검성을 기리며 어둠을 찾아 싸웠던 여명단의 입장으로선 기가 찰 노릇.
“지금 다들 얻는 거 하나 없어도 생명을 걸고 싸움을 준비하고 있는데… 뭐? 사욕?”
심지어 최근엔 전우를 잃지 않았던가.
마음 같아서는 쌍욕이라도 날리고 싶었으나.
그들이 날아가려는 이성의 끈을 간신히 유지하고 있을 때.
“뭔 개소리야 진짜. 이봐 당신들. 누가 누굴 못 믿어? 개인의 사욕? 진짜 말 같지도 않은 개소리를.”
강현이 한층 더 날뛰었다.
자신을 무시하는 것까진 참았다.
그러나 특임대 전체를 싸잡아서 무시하는 건 참을 수 없다.
“잘됐네. 그럼 붙어 보든가? 누가 정예인지.”
강현의 말에 강준진이 비로소 씨익 미소 짓더니.
“그래 그러면 되겠네. 훈련만큼 좋은 방법이 없지. 훈련 성과로 누굴 믿을지 판단해 봅시다. 당신들 그거 좋아하잖소. 근거.”
통역사의 말을 들은 미군들도 사납게 미소 지으며 동의했다.
물론.
“뭐? 코쟁이 새끼들이? 야, 우리가 보여 주자! k-군인의 위엄을!”
한국군도.
“모두 준비해! 한국 레이디들에게 우리 능력을 보여 줄 때다!”
“옛 설!”
미군도 자신 있었다.
물론 각자의 자신감엔 근거가 충분했다.
먼저 자신감의 근거를 보여 준 건 미군 측.
내려진 훈련 상황은 단순한 몬스터 웨이브가 아닌.
국가 전복 사태.
즉, 아포칼립스 발발을 가정했고.
“네이비실 준비!”
미군이 능력을 과시할 준비를 끝마쳤다.
물론 지금 눈 앞에 펼쳐진 끔찍한 풍경은 모두 홀로그램.
그러나 마치 서울이 몬스터들에게 수복된 듯한 풍경은 마음을 섬뜩하게 만들었다.
보통이라면 저 지옥 같은 전장터에 뛰어들어야 하건만.
“공중 지원 연락해! 함대 화력 집중!”
미군은 달랐다.
곧 항공모함에서 찢어지는 소리가 연이어 들리며 전투기 편대가 하늘을 날았고.
함대에 달린 포가 홀로그램 방향으로 고개를 틀었다.
그리고.
“발사! 폭격해!”
전투기와 함선에서 연이어 미사일이 발사되었고 폭음이 터져 나왔다.
사실 이해할 수 없는 행동.
아무리 미군이 돈이 썩어 넘쳐 난다고 해도 별 효과도 없는 무기들을 굳이 쏟아부을 이유가 없다.
“힘자랑인가?”
“요란하게도 하는군.”
“어차피 몬스터 사냥은 현대 화력으로 하는 게 아냐. 모두 긴장 풀어라.”
이를 알고 있는 한국군도 그냥 보여 주기식 힘자랑이라 생각했으나.
드러난 결과를 보곤 입을 쩍 벌렸다.
“지금 홀로그램 대부분 전멸한 건가?”
“전멸은 아니고 잔챙이들은 싹 날아갔습니다!”
“오우거도 죽였다고? 놈은 화기 안 통하기로 유명하잖아? 어떻게?”
예상과는 완전히 다른 풍경.
C급 이하 몬스터들을 대부분 무력화했고.
더욱 놀라운 건, A급 심지어 S급 몬스터에게도 타격을 입혔다는 점.
현대화기는 장식에 불과하다는 편견을 뒤집는 화력.
아니.
“이번에 새롭게 도입한 대몬스터용 마나 미사일과 탄두의 위력이지.”
기술.
미국은 연구에 연구를 거듭해 어떻게든 꾸역꾸역 몬스터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무기를 만들어 냈다.
물론 한 명의 헌터에 비하면 유지비용부터 개발비, 생산비 모두가 천문학적이지만.
“네이비실 투입. 남은 놈들 모조리 쓸어버려.”
대신 그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여 헌터들의 희생을 줄일 수 있다.
이 순환이 쌓이고 쌓인다면.
“투자 비용쯤은 우습게 뽑아내겠군.”
모인 국력, 헌터들이 위기의 순간에 빛을 발하리라.
그렇다고 헌터 네이비실이 현대 화기의 도움이 절실할 만큼 약한 것도 아니었다.
“브라보 팀, 현장 투입. 알파, 알파는 후방 지원 바란다.”
“알겠다. 오메가는 다른 곳으로.”
융단폭격 이후, 초토화된 전장터에 투입된 네이비실 팀들이.
시가지를 활보하며 순식간에 적들을 제압.
폭격 후 점령이라는 가장 기본적이지만 효율적인 작전을 훌륭히 선보였다.
“전투를 화기로 하는 게 맞았네…….”
몬스터와의 전투는 화력으로 하는 게 아니라던 이성민마저 인정했다.
어떻게 저 장면을 보고 부정한단 말인가.
특임대 전체가 순식간에 자신감을 잃었다.
시각적 효과와 청각적 효과 거기에 더해 결과까지 나무랄 게 없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전투기들이 하늘을 날았고 네이비실이 작전을 펼치다 공중 지원 요청을 하면 아파치 헬기가 날아들어 미사일을 쏟아붓는다.
반면.
“음…….”
자신들의 손에 들린 군용 보급검을 보던 병사 몇몇이 이를 슬쩍 뒤로 숨겼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보며 막 작전을 끝내고 복귀한 네이비실이 코웃음 쳤다.
봤지? 너희들과 우리의 차이.
이렇게 말하는 듯한 표정들.
물론 표정에서만 끝난 건 아니었다.
“이래도 통제권을 안 주겠다고 우길 겁니까?”
아직도 피어나는 연기를 배경으로 미군 참모가 승리를 확신.
씨익 입꼬리를 끌어올릴 때.
“뭐 인상적이긴 합니다.”
강준진도 마주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그런데 너무 낭비가 많아.”
통역을 들은 미군들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낭비? 지금 이 화력을 보고도, 결과를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는가?
몇몇이 황당함을 넘어 실망감을 드러내려 할 때.
“우리한텐 강현이 있거든.”
그가 강현의 이름을 꺼냄과 동시에.
다시 생겨난 홀로그램 필드 위로.
푸슈슈슈슈슈!
수십 발의 다연장 로켓이 푸른 마나를 머금은 채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