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4화 새로운 탈출구
그들이 때로는 같이 있었을 당시의 이야기를.
때로는 검성 이석천이 사라지고 나서 있었던 이야기들을 나누었고.
꽤 오랜 시간이 지났으나 막상 만나고 나자 그 간극이 없었던 것처럼 즐겁게 떠들었다.
물론.
“그래서 한미연합작전 때 물자랑 인원을 후송하자고? 그쪽에서 해 준데?”
“할 수밖에 없지 안하면 뒈지게 생겼는데.”
“그럼 나랑 석천이랑 모은 친구들은? 그 친구들도 데려올 수 있어?”
“그건 알아볼게. 한국 쪽에서는 준진이 네가 좀 해 줘야겠다?”
“전체적인 훈련 일정이랑 지원 병력 배치 처리해 놓고 이야기 드리겠습니다.”
그 와중에도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 작전 논의가 오갔다.
각자 이끄는 세력이 있고 이를 규합할 장도 마련되었다.
어떻게 티 나지 않게 움직이느냐가 관건.
“강현아.”
“병장 최강현.”
“그림자에 사람을 얼마나 실을 수 있니?”
“으음, 단순 무게나 인원수로는 무한에 가깝습니다. 움직이는 건 다른 이야기지만요.”
“그렇단 말이지.”
“이 공간엔?”
“그건 만물제작자님이 더 잘 아실 겁니다.”
“검탑에도 제한은 없어.”
서로가 서로의 능력과 현재 어디까지 준비되었나 토의하길 한참.
“얼추 가닥이 잡혀가는군.”
“그래 병력들은 한미연합훈련 핑계로 집합시키고, S급 헌터들은 산군, 태풍 너희들이 헌터 협회 핑계로 데려와.”
“그럼 만물제작자님과 검성님께서 모은 분들은 구찌를 이용해서 데려오도록 하겠습니다.”
“지낼 곳은 내가 따로 만들지 뭐.”
“그래. 그렇게 하면 되겠군.”
분명 마지막 작전이다.
실패하면 모두가 죽을 수도 있는 작전.
그러나 그들의 얼굴엔 비장함보다 오히려 평온함이 맴돌았다.
불안함과 두려움과 분노보다는 기대감과 희망과 즐거움이 맴돌았다.
검성 이석천 단 한 명.
하나의 증거만으로도 그들은 다시금 힘을 얻었고 동력을 얻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을 생각하고 만들어 낸 건.
강현.
그들이 작전을 짜면서도 마지막 결정의 순간마다 강현을 바라보았고.
“그렇게 하면 되겠습니다.”
강현의 허락이 떨어지고 나서야 다음 이야기를 진행했다.
마지막 결정권자, 이 작전을 이끄는 핵심이 강현이라는 암묵적인 표시.
강현이 인상을 쓰며 목소리를 높이지 않아도 모두가 따랐고.
그들 또한 자신의 나이나 직위를 내세우지 않고 최선을 다해 마지막 작전을 세워 나갔다.
그렇게 지금이 밤인지 낮인지도 모른 채 마지막 싸움을 준비했다.
“이대로 진행하도록 하지.”
“후우, 혹시라도 변동 사항이 있거나 문제가 생기면 어느 쪽이든 연락하도록 하죠.”
“그래, 이렇게 진행하는 거로. 어때 강현아?”
모두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수립된 계획을 살피다가.
일제히 강현을 바라보았다.
최종 검수는 자신들의 몫이 아니니까.
강현이 지금껏 수립한 작전을 검토하길 잠시.
“저도 이렇게 알아 두겠습니다. 준비 끝나면 통로를 열겠습니다.”
“그래. 일제히 밀고 들어가면.”
“하지만 모두가 들어가진 않을 겁니다.”
“응?”
“부대를 나눌 생각이냐?”
그들의 의문에 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가 안에 들어갈 필요도 없거니와 놈들도 뛰쳐나올 겁니다.”
“이런 그건 또 다른 이야긴데?”
“들어가는 건 소수. 나머지는 쏟아져 나올 놈들을 막습니다.”
“소수라…….”
“사실 저 혼자 들어가고 싶지만. 그랬다간 판을 뒤엎을 분들이 몇몇 보여서요.”
강현이 그들을 훑어보며 웃자.
그들도 덩달아 미소 지었다.
“그렇지 잘 알아챘네. 혼자 들어갔으면 그냥 뒤집어 버리는 거야.”
“우리가 옆에 있어야지 어딜 혼자 들어간다는 거냐.”
“그러게, 쟤 은근히 응큼한 구석이 있다니까.”
모두가 서로를 보며 킥킥거리길 잠깐.
“귀환 작전 개시는 저로부터. 모두 마지막 순간을 위해 힘써 주시기 부탁드립니다.”
강현의 부탁에.
“걱정 마라.”
“그래 네가 해 준 게 있는데 기대를 배신할 순 없지.”
“이거 벌써부터 발톱이 간질간질하구먼.”
“전투만큼 즐거운 게 없긴 해.”
강준진과 선설민, 서대호, 김도현이 강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전의를 불태웠고.
“그래 이번에는 다를 거다. 내가 실패했으니 내가 수습해야지.”
“그러는 김에 너도 구하고.”
김두식과 이석천이 서로를 마주 보며 재회를 기대했다.
[김도현, 서대호, 강준진의 의식이 접속을 종료합니다]
선설민도 접속을 종료하려 할 때.
“선설민.”
“네?”
“그 팔, 불편하진 않고?”
“그냥저냥 쓸 만합니다.”
“그냥저냥 갖고 되겠어? 이 중요한 싸움에. 따라 와. 죽여주는 거로 붙여 줄게.”
“어? 정말이십니까?”
김두식이 선설민을 끌고 자신의 공방으로 향한 후.
“…….”
“…….”
강현과 이석천만이 자리에 남았다.
모두가 사라지고 난 뒤, 서로 데면데면하게 숲을 바라만 보는 중.
“거, 잎이 많이 푸르러 졌다.”
“그러게요. 검탑이 계속 튼튼해지고 있어요.”
“이번 싸움에 도움이 될 거야.”
“그렇겠죠.”
간단한 대화 후 다시 침묵.
머리를 긁적이던 검성이 결국 먼저 입을 열었다.
“고~ 맙다~!”
“……?”
“고오오맙다고!”
“비꼬는 겁니까?”
“아니, 고맙다는데 뭘 비꼬는 거냐?”
“말투가 이상하잖아요. 고마워 돌아가시겠네 그런 뉘앙스구먼.”
“큼, 크흠! 어색해서 그러지 어색해서! 자식이 고맙다는 데도 난리네 난리.”
강현이 감사를 받아 주지 않자 섭섭했는지 검성이 투덜거렸고.
“저도 고맙습니다.”
“응? 넌 또 뭐가 고맙냐?”
강현도 마주 감사를 전했다.
“뭐, 지금껏 도와준 일도 은근히 많았고. 이번 작전에 얼굴 비춘 결정도 따라 주셨잖아요. 사실 고집부리면 할 말 없죠. 저도.”
“으음, 지금 감사하는 거냐 까는 거냐?”
“왜요? 지금 이유 줄줄이 말했구만!”
“아니, 그게 좀 쓰읍?”
검성이 고개를 갸웃하더니 크게 웃었고 강현도 그를 따라 같이 박장대소했다.
“아, 이런 간지러운 거 못하겠다.”
“그러게요. 어색해서 말이죠.”
“야, 너 나중에 진짜 나 만나면 어쩌려고 그러냐? 너만 친하고 나는 모를 거 아냐.”
“그건 뭐 지금 성격 보니까 금방 친해지지 않을까요?”
“맞네, 조금만 같이 이야기해 보면 원래대로 친해질 거다.”
“이번에는 진짜로 구해낼 거니까 기다리기나 하세요.”
“그래, 한번 믿어 보마.”
강현의 장담에 검성이 고개를 끄덕였고.
“참 그 뭐냐. 나랑 두식이랑 모은 애들 데려올 때. 내가 애들 좀 가르쳐서 보내마.”
“응? 가르쳐요?”
“마지막 싸움이니만큼 전력을 조금이라도 강화해야지 않겠냐.”
검성의 적극적인 태도에 이번엔 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검성의 가르침이라면 분명 도움이 되겠죠.”
이석천마저 자리를 떠난 이후.
[탑주 최강현의 접속을 종료합니다]
눈을 뜨니.
익숙해진 방 천장이 보였다.
시간은 어느덧 아침.
아무래도 어제 오후부터 지금까지 회의한 모양.
강현이 주섬주섬 침대에서 일어나 나가보니.
“오빠! 할무니! 오빠 일어났어요!”
강현의 방앞에서 귀를 쫑긋 세우고 있던 서연이가 오빠가 깨어났음을 알렸고.
“서연이 오빠 방을 염탐하고 있었구나! 일루 와!”
“꺄아아악!”
“벌로 간지럼 태우기!”
“꺄하하항! 간지러! 오빠! 간지러어! 도와줘 구름아-”
“헥헥헥! 왕왕!”
그가 서연이를 붙잡고선 장난을 치는 사이.
“애들아 밥 다 됐다.”
할머니가 그들을 불렀고.
어제와 같이 거나한 진수성찬에 놀랐다.
“이런, 저도 좀 도와드릴 걸 그랬네요. 죄송해요. 어제 너무 피곤했나 봐요.”
“아니야. 우리 손주들 아침인데 힘들 리가 있나. 안 그래도 혜원이가 도와주고 갔다.”
“혜원이가요?”
“의외로 애가 손도 야무지고 금방 배우더구나.”
“아, 그래요? 그럼 혜원이는요? 음식만 도와주고 어디 갔어요?”
“아침에 급한 스케줄 있다고 나가더구나.”
할머니가 이혜원 칭찬을 하며 넘어가려 할 때.
“혜원 언니 손가락 다쳤어! 그래서 내가 치료해 줬어!”
“응? 손가락을 다쳐?”
“나랑 같이 옆에서 할머니 응원해 줬어!”
“서연아, 그건 서연이랑 언니 비밀이었잖니.”
“앗! 쉬잇.”
“쉬잇.”
아직 어린 서연이에게 거짓이란 없었고.
할머니와 서연이가 검지를 세워 입을 가리며 빙그레 미소 지었다.
“오빠도 쉬잇. 혜원 언니한테 말하지 마.”
“알았어 오빠도 쉬잇 할게.”
서연이의 부탁에 강현도 덩달아 비밀을 지키기로 했지만.
‘역시 응원단장 역할에 충실하네.’
벌써부터 혜원이를 골릴 생각에 싱글벙글 미소가 번졌다.
이상하게 이혜원은 골릴 맛이 난단 말이지?
그렇게 아침 식사가 끝날 즈음.
“부대 복귀는 언제니?”
“한 일주일 남았네요. 아마 좀 바쁠 거 같아요. 이것저것 할 일이 있어서요.”
“그래?”
강현이 일부러 대수롭지 않게 답하자.
“그래도 하루 한 끼는 꼭 집에서 먹고 가렴. 할미가 챙겨 줄 테니까.”
“제가 챙겨도 되는데요.”
“아니다. 할미가 차려 주마.”
“할머니?”
할머니의 단호한 답에 강현이 눈을 들었고.
인자하게 웃고 있는 할머니의 얼굴을 살폈다.
표정은 웃고 있지만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슬픔과 걱정을 담은 눈길.
강현을 키운 게 몇 년인데.
모를 리가 없다.
강현이 큰일을 앞에 두고 있다는 사실을.
“꼭 와서 밥은 먹고 가련.”
“…네. 꼭 먹고 갈게요.”
강현이 억지로 차오르는 감정을 밥과 함께 꿀떡 목구멍으로 넘기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거면 됐다. 으구 아가 입에 너무 많이 넣고 씹으면 목 막혀.”
할머니가 고개를 끄덕이며 서연이를 챙겼고.
강현이 그런 둘을 보며 묵묵히 밥숟갈을 움직였다.
일주일이란 시간은 금방이었다.
다른 이들이 서로 연락하며 작전을 구체화하는 동안.
“구찌야 부탁해.”
구찌가 공간도약 능력을 이용 김두식을 따라 무기를 받은 이들을 데리러 떠났다.
그리고 그동안 강현은.
[검탑 잠재력 개방! 구천구백구십구 검에 담긴 힘을 불러옵니다!]
[사용할 수 있는 검의 개수 1… 100… 1,100… 2,000]
[4,459개 돌파! 한계를 넘어섭니다!]
“으으으윽!”
매일 같이 검탑과 자신의 능력을 강화하기 위해 훈련 중.
어둠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힘으로는 역부족이다.
상식을 넘어서는 힘이 필요하다.
강현이 가진 능력 중 상식을 넘어서는 힘이라면 단연 검탑 벽면에 빽빽하게 꽂힌 9,999개의 검.
강현이 바깥으로 삐져나오려는 힘을 억지로 가둬 두며 통제했고.
[5,000개 돌파! 힘을 견디지 못한 공간이 허물어집니다!]
이용하는 검의 개수가 5,000개를 돌파하자 공간 곳곳이 흔들렸다.
그러나.
“아직이야!”
[그림자의 왕 호칭을 발동. 권능을 사용합니다! 그림자 권능 얽기, 뒤집기, 잇기를 발동. 무한한 공간이 당신을 보조합니다!]
[사용할 수 있는 검의 개수가 대폭 상승합니다!]
“하아압!”
강현의 몸에서 검은 기운이 뭉글뭉글 뿜어져 나왔고.
갈라지던 공간을 잇고 뒤집고 얽어 회복시켰다.
강현이 사용하는 검의 개수가 약 7,000을 돌파하였을 때.
[백염을 발동하여 탑의 정화능력을 상승시킵니다! 사용할 수 있는 검의 개수가 늘어납니다!]
검탑 전체가 하얀 불꽃에 뒤덮이기 시작.
“저 녀석 저거 완전 괴물이 되어 버렸구먼.”
“그러게나 말야.”
검은 그림자가 사방을 점유하고 한가운데 탑이 하얗게 타오르는 모습은 산군과 태풍마저도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그뿐만 아니라.
우우우웅.
강현을 따라 공명하는 수천 개의 검이 뿜어내는 예기는 금방이라도 모든 걸 갈라 낼 듯하니.
“큼, 크흠 우리 제자가 한가락 하지!”
검성 이석천의 콧대가 높아질 만도 했다.
하나.
‘모자라다.’
강현은 부족함을 느꼈다.
아직 모든 검을 다루기에는 능력이 부족했다.
무언가 새롭게 나아갈 방향이 필요했다.
그러나 어떻게?
마나를 다룸에도 이미 극한의 경지, 상태창 없이도 스킬 사용이 가능했다.
거기다 검술은 월하를 끝으로 획득하지 못했다.
검성 이석천의 기억 속에도 없으니 당장 어쩌지 못한다.
물론 구찌의 능력을 더하면 더 많은 검을 움직일 수 있겠으나.
‘그것만으로는 모자라.’
가진 스탯도 스킬도 성장할 수 있는 한계에 다다랐다.
새로운 탈출구가 필요한데 어떻게 해야 할까?
문득, 강현이 한 번에 검 여러 자루를 다룰 수 있는 사람을 떠올렸고.
모든 힘을 거두고선 마침 탑 아래에 있는 검성과 산군을 불렀다.
“검성 선배! 산군 아저씨!”
“응? 뭐냐?”
“무슨 일 있냐?”
“좀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는데 두 분이 도와주셔야 할 거 같아서요.”
강현이 얼마 전 새로 사귄 친구를 떠올리며 씨익 미소 지었다.
* * *
검성과 검왕.
그중에서도 만년 이인자라 불렸던 검왕과 그의 제자 남궁건.
스승과 제자는 지금.
“으으으! 검성, 검성 이놈아!”
“으윽! 내가 무슨, 내가 무슨 천재라고!”
끙끙 앓는 중이었다.
검왕은 한 번도 이기지 못한 검성의 검술이 아쉬워 앓았고.
그의 제자 남궁건은.
“나 따위는 그냥 쓰레기야!”
진정한 재능을 만나곤 끙끙 앓는 중.
물론 자신에게 허락된 재능이 얼마나 축복인지 안다.
유격 훈련 막바지, 군단 병사들과 함께 싸우며 마음을 다잡았다 생각했다.
그런데 휴가를 나오자.
“으으으!”
“끄으으!”
강현의 검이 자꾸만 떠올라 스승과 같이 앓아누울 지경.
그러던 중.
띵동, 띵동.
“누구야! 검성 아니면 꺼져!”
“날세 산군.”
“뭐? 자네가 날 왜 찾아와.”
“좋은 소식 전하러 왔다네.”
뭔 뚱딴지 같은 소리야, 그사이 노망이라도 났나?
검왕이 불퉁거리면서도 문을 활짝 열었고.
남궁건도 대선배인 산군에게 인사하러 나간 순간.
“하이!”
산군 옆, 강현이 그를 향해 손을 흔들었고.
“하이……?”
심마의 원흉을 발견한 남궁건의 얼굴이 썩어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