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물수집으로 무한성장-248화 (248/277)

248화 네 탓이 아니야

훈련병들이 자대에 배치받은 첫날 저녁.

“야, 신병아.”

최고참이 은근한 목소리로 신병을 불렀고.

아직 군기가 바짝 든 신병이 소리쳐 자신의 관등 성명을 대자.

“그, 장기 자랑 같은 거 준비 안 했냐?”

은근히 기대하는 눈빛으로 물었다.

말년에 재밌는 일이 뭐가 있겠는가.

옆에 있던 선임들이.

“아, 요즘 때가 어느 때인데 장기 자랑입니까.”

“진짜, 어휴… 저 인간 얼른 전역해야지. 야, 신병아 참고해.”

“참고 장기 자랑 하라고.”

“아, 벌써 기대되네.”

처음엔 말리는 척하다가 곧 자리를 잡고선 신병의 장기 자랑을 기다렸고.

신병이 드디어 기다리던 때가 왔음을 직감.

비장한 표정으로 생활관 중앙, 무대에 섰다.

그리고.

“삐이이익!”

양팔을 활짝 벌려 활개를 치며 울었다.

“……?”

“뭐냐?”

“닭인가?”

선임들이 이해할 수 없는 장기 자랑에 표정을 굳혔다.

다들 불안한 표정으로 그를 보며.

“쟤 위험해 보인다. 잘 관리해라.”

“네, 책임지고 보겠습니다.”

“최단기간 관심 병사 등극 아니냐?”

수군거렸다.

순간 싸한 분위기를 감지한 훈련병의 얼굴이 울상이 되었다.

‘분명 훈련소에선 인기 폭발이었는데?’

훈련소 동기들은 자신의 장기 자랑을 볼 때마다 빵빵 터졌고.

몇몇은 박수까지 치며 좋아했다.

“와, 미친 진짜 똑같이 우네.”

“미친놈인가, 푸하하하!”

그들이 보았던 구찌, 피닉스와 똑같이 울었기 때문.

그러나 여기 있는 선임 중 피닉스를 실제로 본 사람은 당연히 없었고.

공감대가 없으니 웃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어, 어어! 어어어? 야, 그거 다시 해 봐!”

정신을 차린 최고참이 다시 장기 자랑을 요구.

신병이 조금 풀죽은 목소리로 다시 구찌를 흉내 내자.

“피닉스! 그거 피닉스 맞지? 졸라 똑같네! 씨 피닉스 온 줄 알았네.”

최고참이 펄쩍 뛰며 좋아했다.

평소 관물대에 피닉스나 해태 등 신수 사진을 붙여 놓을 정도로 좋아하는 그.

그런데 매일 너튜브에서나 보던 울음을 이렇게 가까이서 들을 줄이야!

그가 감동한 눈으로 신병을 바라보았고.

“어? 아, 피닉스? 그러고 보니 진짜 비슷하네?”

그제야 후임들도 선임이 지겹게 보던 다큐멘터리에서 들은 피닉스의 울음과 같다는 걸 알아채고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관심 병사 등극을 모면한 신병이 내심 안도할 때.

“야, 근데 대체 어떻게 그렇게 잘 따라 하냐? 너도 신수 좋아하냐?”

한 선임의 물음에.

“실제로 봤습니다.”

신병이 당당히 가슴을 펴며 답했고.

“그것 봐 관심 병사 맞다니까.”

“하, 저 새끼.”

다시 분위기가 흉흉해지려 할 때.

“진짜입니다! 훈련소에 특임대가 찾아왔는데 거기에 피닉스가 있었습니다!”

물론 쉬이 믿을 수 없는 소리.

곧 훈련소 동기들이자 자대 동기들이 모였고.

선임들이 보는 자리에서.

“그러니까 마지막 야간 행군할 때였습니다. 막 길을 걷고 있는데.”

“간부들이 다 사라진 겁니다! 다들 뭔가 이상하다 하고 있을 때.”

“갑자기 숲속에서 붉은 눈동자가 떠올랐습니다. 뭐지 하는 순간. 오크들이 숲속에서 팍!”

“와, 죽었다. 생각하는데 갑자기 특임대가 나타나더니 놈들을 쓸어버렸습니다. 그러면서 방어막이 산 전체를 덮는데 진짜 장난 아니었습니다.”

“그, 그 누구시지? 그분!”

“최강현 상병님!”

“그분이 뭐라 뭐라 하더니 특임대가 몬스터들 막고 저희는 대피소로 뛰었습니다.”

“그 논산 대휴식 장소에 몬스터 대비해서 대피소 생겼습니다.”

한 생활관에 모인 동기들이 그때를 떠올리며 열을 올렸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가 계속될수록 선임들도 입을 벌렸다.

행군 중 나타난 몬스터들, 간부들은 어디론가 사라진 상황.

대피소에서 이어진 처절한 전투!

“그러니까 그때 간부들 나타나면서 간신히 버텼습니다.”

“그중에 팔 잘린 분. 그분 대박이었잖아.”

“나는 솔직히 간부들보다는 특임대들이 대박이었지. 특히 최강현 상병님 분대, 그분들은 진짜 멋있더라. 끝까지 싸우는 것도, 버티는 것도.”

“맞습니다. 그러니까 간부들 없을 때 그분들이 특임대를 이끌었습니다.”

위기의 순간에 간부들이 나타났고 마침내 승리.

모두가 울며 행군을 무사히 마쳤다는 결말에 선임들도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근데 피닉스는 언제 나오냐? 대체?”

지금껏 피닉스 등장 타이밍만 기다리던 최고참의 물음에.

“방금 비 내렸다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갑자기 빗줄기가 싹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하늘에 태양이 뜬 것처럼 환해졌습니다.”

“와, 진짜 대박. 피닉스 위에 타서 온몸에 하얀 불꽃을 두르고 있는데 진짜 멋졌습니다.”

“크으, 그건 실제로 봐야 합니다.”

“진짜로 그렇게 울디?”

“진짜 똑같습니다. 다시 울어 보겠습니다!”

삐이이익!

자대에 배치받은 훈련병들을 통해 행군 중 무슨 일이 있었는지 퍼져나갔다.

최강현 그리고 1, 2, 3군단의 위대한 업적.

훈련병의 입에서 시작한 전설은 전역한 이들의 입과 손을 통해 주변 사람들, 더 나아가 인터넷에까지 퍼졌다.

* * *

전군 곳곳에서 강현과 특임대에 대한 찬양이 이어지기 전.

“…….”

정작 유격이 끝나고 모인 그들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이겼다.

커다란 위기를 만났으나 훌륭히 대처했고 공을 세웠다.

“중령 선설민, 일 계급 특진.”

공을 치하하는 자리.

당연히 선설민을 비롯한 많은 이가 특진했지만 아무도 웃지 않았다.

모든 행사가 끝난 이후.

“선설민 대령.”

“충성!”

“그래, 진급 축하해.”

“…감사합니다!”

“자네 같은 사람이 대장 해야지 이제.”

1군단 특임대장이 휠체어에 앉은 채 그를 올려다보며 축하해 주었다.

“허리는…….”

선설민의 물음에.

“뭐, 앞으로 계속 휠체어 신세라더군. 사실 죽을 뻔했는데 이 정도면 양호한 거지 뭐.”

“그렇… 습니까.”

“그래도 자네, 경례는 할 수 있어서 다행이야?”

1군단 특임대장의 너스레에 선설민이 쓰게 웃었다.

사실 그가 상대를 걱정할 입장은 아니었다.

지난번 싸움 때 잘린 왼팔 탓에 왼 어깨가 허전했으니까.

“내일 사망자에 대한 장례식이 있을 거라더군.”

“가겠습니다.”

“그래, 그때 보자고.”

기뻐하기엔 다친 이들도 많았고 죽은 이들도 있었다.

강현도 최선을 다했지만.

모두가 최선을 다했지만.

그 거대한 싸움 속 모두가 멀쩡할 수는 없었다.

공간에 빨려 들어가 순식간에 죽어 버린 이들의 장례가 다음 날 이어졌고.

“전사자에 대하여 묵념!”

전투에 참여했던 간부들과 특임대 전원이 고개를 숙였다.

그들의 고개를 따라 관악기 소리가 낮게 깔렸고.

헌병들이 절제된 동작으로 예를 표했다.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강현 또한.

“…….”

입을 열 수 없었다.

어떻게 해야 했을까.

어떻게 해야 막을 수 있었을까.

승리했다는 기쁨 뒤 찾아온 슬픈 현실은 강현의 고개를 무겁게 눌렀다.

묵념이 끝나고도 고개를 숙이고 있길 한참.

“아빠빠.”

어디선가 연약한 옹알이 소리가 들려왔고.

모두의 고개가 삐걱대며 돌아갔다.

시선이 몰린 자리, 검은 상복을 입은 어머니와 품속에 안긴 갓난아기가 보였다.

창백한 어머니의 표정과는 달리 분홍빛 혈색이 도는 아이는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 모르는 모양.

죽 늘어서 있는 사진 중 아버지의 얼굴을 알아본 아이가 다시금 손을 뻗었다.

“아빠바!”

몇몇 간부가 고개를 돌려 그 모습을 외면했으나.

“빠빠!”

아이의 철모르는 목소리가 유독 고요한 장례식장을 울렸다.

“어허헝! 불쌍해서 어떻게 해!”

지금껏 창백한 얼굴로 울음을 참던 어머니가 결국 눈물을 터뜨렸고.

그녀의 울음을 시작으로 유가족들이 허물어졌다.

땅에 주저앉은 어머니는 아들을 찾으며 땅바닥을 내려치고 풀을 뜯으며 절규했고.

어렴풋이 비극이 일어났음을 느낀 네 살배기 아들은 엄마의 치맛자락을 꾹 쥐며 뒤에 숨었다.

아들을 자랑스러워했던 아버지는 영정 사진만 하염없이 바라보며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강현이 그들의 눈물을 그리고 슬픔을 바로 마주 보았다.

‘다시는, 다시는!’

이런 일을 만들지 않기 위해.

강현이 붉어지는 눈을 들어 그들의 슬픔을 절규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가늘게 떨리는 그의 주먹에.

“뀨우.”

따뜻한 온기가 닿았다.

옆에서는 구찌가 강현의 손에 부리를 밀어 넣었다.

그러고도 모자랐는지 이젠 강현의 허벅지와 손에 머리를 부볐다.

주인의, 친구의 슬픔을 느낀 까닭.

그런 구찌를 보면서 강현이 다시금 이를 악물었다.

“나는… 그러니까.”

강현이 구찌를 보며 무언가를 말하려 할 때.

“네 탓이 아니야 강현아.”

옆에선 서윤진이 고개를 저었다.

“그러니까 제발 스스로 탓하지 마”

너마저 무너지면 못 견딜 것 같아.

그녀의 울음 섞인 애원에 강현이 다시 허리를 꼿꼿이 폈다.

그래, 자신은 울면 안 된다.

강현이 장례식이 끝날 때까지 눈을 부릅뜬 채 버텼다.

장례식이 끝난 후, 부대로 복귀하는 차 안.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평소와 달랐다.

평소라면 훈련에서 누가 잘했고 누가 멋있었고 자랑에 자랑이 꼬리를 물었을 거다.

물론 마지막에는 모두 강현을 바라보았겠지.

그러나 이번만큼은 모두가 침묵했다.

“다들… 하차.”

복귀하는 내내 애써 울음을 삼키던 서윤진이 잔뜩 잠긴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고.

“하차.”

특임대 전원이 묵묵히 버스에서 내렸다.

마지막 강현이 내리려 할 때.

“강현아.”

서윤진이 그를 불렀다.

그리고 울음을 참느라 잔뜩 충혈된 눈으로 강현의 얼굴을 바라보길 잠시.

“휴가 가기 전에 중대장 좀 보고 가자.”

“…알겠습니다.”

강현이 서윤진의 얼굴에 가득한 슬픔을 외면하며 버스에서 내렸고.

“…….”

다들 훈련 장구류를 정리하면서도 말이 없었다.

삐이, 삐이이.

구찌도 그들의 분위기를 느끼곤 눈치를 보는 중.

“그, 휴가 전에 잠깐 오라 하셔서 갔다 오겠습니다.”

“그래.”

“알겠습니다. 뭐 해 놓을 거 있습니까?”

“생활관 정리만 좀 해 놔. 휴가 준비 끝나면 지통실 앞에서 기다리고.”

“알겠습니다.”

강현이 간단하게 휴가 준비를 끝내고는 복도를 지나쳐 중대장실로 향했다.

“후우.”

타 분대 생활관 곳곳에서 들리는 한숨 소리.

몇몇은 장구류조차 정리하지 않은 채 침대에 앉아 머리를 쥐어뜯고 있었다.

강현이 애써 그들을 모른 척하며 중대장실 앞에 도착.

“…상병 최강현입니다.”

“…들어와.”

훌쩍거리는 소리를 봐서 울었던 걸까.

강현이 일부러 중대장실 문을 천천히 열었고.

막 정리를 끝냈는지 서윤진이 휴지 뭉치를 휴지통에 던지며 강현을 맞이했다.

강현이 의자에 앉은 뒤.

“…….”

“…….”

둘이 딴 곳만 바라보고 있길 잠시.

“강현아.”

“중대장님.”

둘이 동시에 말을 꺼냈고.

서윤진이 아픈 표정을 지으며 먼저 입을 열었다.

“네 책임 아니야.”

“그렇습니까…….”

“그럼 넌 최선을 다했고. 모두가 최선을 다했어. 오히려 더 큰 비극을 막아 냈으니 기뻐해야 하는 게 맞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막상 마음이 그렇지가 못합니다.

강현의 솔직한 고백에.

“그래, 이해해. 나도 마찬가지니까.”

서윤진도 고개를 끄덕이곤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얼굴 좀 펴. 넌 누구보다 잘했고, 열심히 했고, 훌륭히 해냈어. 알았지?”

“감사합니다, 중대장님. 항상.”

“그래, 그거면 됐어. 이제 그럼 휴가 나가야지?”

“알겠습니다.”

서윤진이 강현의 어깨를 툭툭치고는 지통실로 향했고.

“최강현 외 아홉 휴가 다녀오겠습니다!”

“어 그래 잘 갔다 오고.”

3중대 중 강현과 1분대가 가장 먼저 휴가를 나왔다.

유격 포상을 받았고 이번 전투에서도 큰 공을 세웠으니 훈련 끝나자마자 휴가 출발 지시를 받은 것.

그들이 군단 정문을 나선 후.

“후우.”

“크흠.”

“하아.”

“으음.”

일제히 하늘을 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곤.

“그래, 금방 보자.”

“복귀해서 뵙겠습니다.”

“다들 잘 갔다 와.”

억지로 미소를 띄워 보이며 서로에게 인사했다.

그런 그들을 보던 강현이.

“그러지 말고 다 같이 밥이랑 술 한잔 어떻습니까? 너무 많이 말고 딱 한 잔.”

술 한잔을 권했다.

이런 날 맨정신으로 갔다간 휴가고 뭐고 엉망이지 싶었다.

평소 이런 제안을 하는 강현이 아니었기에.

처음엔 다들 눈을 끔뻑이다가.

다들 분대장을 따라나섰다.

“들어가십쇼!”

“그래 부대에서 보자!”

한참 말없이 밥이랑 술을 때려 먹은 후.

모두가 아까보단 좀 더 밝은 얼굴로 헤어졌고.

강현도 처음보단 가벼워진 마음으로 복귀.

슬슬 익숙해져 가는 길을 터벅터벅 걸어 대문을 열고 들어간 순간.

“오빠아아!”

마침 요정들과 흙장난을 치고 있던 서연이가 휴가 나온 오빠를 맞이했다.

솜털 가득한 뽀얀 볼과 자신을 향해 뻗은 흙이 묻은 손을 보자.

“아빠빠!”

장례식장에서 아버지의 영정 사진을 향해 손을 뻗던 아기가 생각났다.

서연이도 갓난아기 때 부모님이 사라졌지.

이어 어머니의 치마폭에 숨던 네 살배기 아이를 떠올렸다.

서연이는 어머니의 치마폭에 숨을 기회조차도 없었다.

취기 때문일까 서연이에게 오늘 보았던 아이들의 모습이 겹쳐 보였고.

“서연아!”

강현이 서연이를 꽈악 껴안았다.

“으윽! 오빠 숨 막혀!”

동생이 오빠의 품에서 버둥거리는 동안.

“아이고, 강현아! 왔니? 전화라도 하고 오지.”

할머니가 집 안에서 더욱 느려진 발걸음으로 걸어 나왔다.

그사이 무릎이 더 안 좋아지신 모양.

할머니도 아버지와 어머니가 사라지신 후 많이 우셨다.

땅을 쥐어뜯고 자신의 가슴팍을 쥐어뜯으며 우셨다.

그런 할머니를 보자.

“우리 강아지 왜 그래? 왜 울어?”

강현의 눈에서 절로 눈물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그가 잔뜩 목이 메어 입술을 떨었다.

“제가, 제가 지키지 못했어요. 제가 지키지 못했어요.”

강현의 입에 맴도는 말은 그뿐.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을 반복할 때.

할머니가 그런 강현의 머리를 꼬옥 품에 안아 주었고.

“괜찮다. 강현아, 괜찮아. 모두를 지킬 순 없는 거야. 최선을 다했다는 거 이 할미가 보지 않았어도 안다.”

강현의 등을 두들기며 위로했다.

“흐아앙. 오빠!”

강현의 울음에 서연이도 덩달아 울음을 터뜨릴 때.

“뀨, 뀨우-”

지금껏 눈치만 보고 있던 구찌가 강현과 서연이의 울음이 서글펐는지.

“뀨우우우우-”

같이 기대어 울음을 터뜨렸고.

피닉스의 까만 눈망울에 고인 눈물이 툭 할머니의 옷깃에 떨어지는 순간.

슈아아아악!

[피닉스의 눈물로 신체를 복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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