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3화 달빛
“아아.”
“저건.”
서로 떨어진 강준진도, 선설민도 하늘에 떠오른 달을 보며 감탄을 머금었다.
빛 하나 없던 세상.
몬스터들의 살기 담긴 눈빛만이 유일했던 공간에 떠오른 달은.
“크르르르?”
“크와악!”
“으르르!”
몬스터들의 시선마저 빨아들였다.
모두가 홀린 듯 하늘을 바라볼 때.
“만… 월…….”
혈호로 변한 서윤진 또한 붉은 광기가 넘실거리는 눈동자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동공이 확장되더니 하늘에 떠오른 시린 보름달을 가득 담았다.
두근.
심장이 뛰었다.
달에서 뿜어져 나온 빛이 어둔 땅을 적셨고.
곧 다친 병사들의 붉은 피와 젖은 땀을 옅게 비추었다.
완전하진 않지만 공간에 빛이 깃들었고 색을 되찾자.
우우우웅.
“되, 된다!”
“드디어 연결됩니다!”
지금껏 불안정한 상태로 유지되던 간부들의 상태창이 본 모양새를 찾았고.
그들의 마나가 제 색으로 빛났다.
“기능, 회복. 이무기 격살 가능!”
선설민도 방금까지 반쯤 꺼져 가던 눈동자를 다시 불태웠다.
비록 한쪽 팔은 없지만 힘을 회복했으니 이길 수 있다.
그를 비롯한 다른 간부들도 다시금 전투 의지를 확고히 할 때.
“모두 무사합니까?”
서윤진의 입에서 멀쩡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괜찮아? 3중대장?”
분명 몸에는 살기와 광기가 넘치고 있건만 묘하게 침착한 목소리에 다른 간부들이 물을 때.
“전 괜찮습니다.”
서윤진이 그들을 바라보며 답했다.
몸에선 붉은 광기가 넘실거리나 눈은 푸른 침착함을 머금었으니.
“이제야 알겠습니다.”
광기를 극복한다는 뜻을.
그녀가 알 수 없는 말을 하고는 땅을 박찼고.
눈앞, 가득한 적을 향해 달려들었다.
“서윤진 대위!”
“같이 가야지!”
같이 있던 간부들이 화들짝 놀랐으나.
곧 모두가 입을 다물고는 멍하니 서윤진을 바라볼 뿐.
방금까지 힘겹게 상대하던 몬스터들을 서윤진 홀로 도륙 냈다.
그러나 오히려.
‘힘이 넘쳐.’
계속된 싸움에 지친 근육과 발톱이 가면 갈수록 부풀어 오르며 강해졌다.
보름달.
수인화의 원천이자 광기의 원천.
그러나 지금 떠오른 달은 오히려 서윤진의 마음을 안정시켜 주었고.
광기를 제어하게 해 주었다.
몸에는 거친 힘이 머리에는 차가운 이성이 자리 잡으니.
붉은 발톱 사이로 푸른 눈이 빛났고 몬스터들이 편육이 되어 흩어졌다.
강준진, 선설민, 서윤진을 비롯해 생존자 간부들의 능력이 일제히 향상됐다.
물론.
[군단 능력 전부를 발동합니다! 이면 공간에 있는 간부들의 능력이 일제히 향상됩니다!]
[작전사령부 스킬 효과로 기존 군단 능력 효율이 50% 상승합니다!]
모든 건 강현의 군단 능력과 작전사령부 덕분.
처음 강현이 그림자 뒤집기를 이용해 이면 세계로 진입했을 때.
[악의가 가득한 공간에 도착했습니다. 공간의 주인이 당신의 침입을 알아챘습니다!]
상태창이 경고를 울리길 잠시.
곳곳에서 몬스터들이 나타나 강현을 공격하려 했고.
검은 공간이 오그라들며 그를 속박하려 했다.
공간의 주인이 내뿜는 악의.
강현이 발을 들인 곳은 남의 공간.
[공간의 제약으로 상태창 기능 일부가 제한됩니다. 스킬과 권능 일부를 사용할 수 없습니다! 마나 움직임이 둔화됩니다!]
침입자에겐 당연히 패널티가 주어졌고.
놈의 의지에 따라 공간이 강현의 상태창을 제한하려 들었다.
물론 강현은.
“이래서야 마치 일부러 준비한 거 같잖아.”
상태창 메시지를 보고 겁에 질리기보다는 웃음을 머금었다.
상태창 제약이라니.
거기다 뭐? 마나 둔화?
분명 유격 훈련 경험이 없었다면.
스킬과 특성을 잃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 경험이 없었다면 당황했을 거다.
그러나 지금은 오히려.
“훈련은 전투다.”
강현은 자신감을 품었다.
훈련병 시절 가장 지겹게 외쳤던 구호.
훈련은 훈련일 뿐이라며 괴롭히기 위한 말이라 생각했는데.
진짜였다.
전투 같은 훈련은 효과 있다.
지금처럼!
우우우웅.
강현이 몸 안에 가득한 마나를 휘돌리기 시작하자.
푸른 마나가 몰려드는 공간을 밀어냈다.
오히려 유격 때보다 덜 힘들었다.
그때는 마나 한 줌 없었지만.
지금은 악의를 밀어낼 마나가 충분하다 못해 넘쳤으니까!
“상태창은 결과일 뿐 마나와 스킬을 다루는 건 나다.”
그러니 걱정할 것 없다.
흔들리지 않는다.
강현이 몸에서부터 시작한 마나를 만련신검의 날카로운 검신 위에 덧씌웠고.
찬찬히 해파칠십이검 전식을 펼쳐 나갔다.
[상태창 제한으로 스킬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상태창이 스킬을 발동할 수 없노라 알림을 띄웠으나.
“유격 자신!”
강현 스스로가 스킬을 펼치니.
푸르게 뿜어져 나온 마나가 하늘 땅 할 것 없이 강현의 주변에 들어찼고.
점차 공간을 확장해 나갔다
강현의 마나와 어둠이 자리를 다투길 잠시.
결국 강현의 쏟아지는 파도가 주변을 장악했고.
[공간 일부를 점유했습니다! 상태창이 제 기능을 회복합니다!]
다시 모든 스킬과 마나를 회복한 강현이 이번엔 더욱 거센 마나로 주변을 쓸어 갔다.
그러나.
‘이대로는 너무 늦어.’
강현이 검을 휘두르는 와중에도 새로운 방법을 찾으려 머리를 굴렸다.
간부들의 위치는 정확하지 않고, 그들 또한 몰려드는 몬스터들을 상대로 치열하게 싸우고 있을 거다.
거기다 만일 강현과 같이 상태창 제한이라도 걸렸다면 더욱 위험한 상황일 터.
이대로 공간 싸움만을 벌이다가는 간부들이 모두 죽을 때까지 검무만 추게 생겼다.
‘그렇다면 어떻게?’
백염을 피워 올릴까?
거대한 불꽃이라면 분명 주변에 영향을 미칠 거다.
어쩌면 봉화를 보듯 백염을 발견한 간부들이 모여들지도 모르지.
‘아냐. 그거로는 모자라.’
그러나 곧 강현이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커다란 불꽃도 모든 곳을 비출 수는 없다.
그렇다면?
“하늘…….”
강현이 문득 아무것도 없는 새까만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마치 무언가를 그려달라는 듯 까만 도화지와 같다.
“달!”
강현이 자신이 그릴 수 있는 것 중에서 가장 강력한 것을 떠올리고는.
[해파칠십이검 후식 월하를 사용합니다!]
[상급 검술, 마력지체, 정밀함, 백염, 와룡승천 외 보조스킬들이 일제히 월하를 보조합니다!]
망설임 없이 검을 뻗었다.
지금껏 쌓아온 스킬과 특성이 월하를 보조하니.
강현의 검에서 점차 새하얀 달이 피어났다.
반달까지 차올랐을 무렵.
[새로운 특성 마력이 스킬 및 특성들을 보강합니다!]
이번 훈련 때 새롭게 쌓은 마력 스탯이 스킬과 특성들을 보강.
즉, 같은 근육이지만 근력 스탯의 효과로 힘이 강해지는 것처럼.
마력 특성으로 인해 같은 마나, 같은 스킬의 위력이 상승.
휘영청.
새하얀 보름달을 하늘 위에 띄워 올렸다.
“와…….”
자신이 이루어 놓고도 놀랄 만함 아름다움.
유격 이전과 이후는 완전히 달라졌으니.
반절에 불과하던 깨달음이 완전에 달할 정도.
그리고 월하의 효과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당신이 띄워 올린 보름달의 빛이 공간 전체에 퍼집니다]
[공간에 가득한 악의를 씻어 내립니다! 공간 전체에 적용되었던 패널티를 해제합니다!]
적의 의지대로 움직이는 공간에 강현의 의지가 끼어들었다.
완전히 공간을 깨지는 못했어도 몸에 덧씌워진 악의를 벗겨낼 정도.
간부들의 스킬과 마나가 제자리를 찾았고.
[광신적인 전우 서윤진 대위가 광기를 완전히 제압했습니다!]
[월광을 받은 그녀의 능력이 한층 성장합니다!]
[새로운 경지에 발을 들였습니다!]
개중에는 악의를 벗어나다 못해 아예 새로운 세상에 발을 들인 경우도 있었다.
“일단 다행이네.”
강현이 서윤진의 강화를 확인하곤 안도했다.
이어서.
[작전사령부 능력 발동 편제표를 확인합니다. 각 인원의 위치를 파악합니다! 월광을 통하여 각 인원들의 통신을 연결합니다!]
3개 군단을 움직이는 작전사령부 능력이 월광을 타고 흘러 그들의 무전기에 깃들었다.
치지지직.
-들리십니까.
“……!”
“강현아?”
“최강현!”
막 다시 몬스터들을 맞이해 전투를 펼치던 간부들이 무전기를 통해 들려오는 목소리를 듣고는 반색했다.
이 상황을 타개할 유일한 인물.
목소리를 들은 것만으로도 힘이 난다.
거기다.
-자리에서 움직이지 말고 대기하십시오. 전부.
“설마 저 달이?”
“최강현 그 친구가 만든 달이라고?”
강현의 능력을 처음 보는 간부들은 경악을.
“그렇지! 그럴 줄 알았다니까!”
“그때 봤을 때는 흐릿했는데 지금은 보름달이구나!”
“어디까지 성장할는지.”
이미 그의 능력을 보았던 여명단 간부들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곧.
달빛이 생존자들이 있는 곳으로 모여들었고.
[간부들 전체 위치를 파악했습니다! 공간 지도를 생성합니다! 악의가 가득한 곳은 까맣게 표시됩니다!]
강현의 눈앞에 작전지도가 떠오르며 간부들의 위치가 표시되었다.
위치를 확인했으니 다음은 일사천리.
“크아아악!”
“죽어라! 죽어!”
몬스터들이 헐떡이는 간부들을 죽이기 위해 달려들 때.
달빛을 타고 내려온 그림자가 그들을 덮었고.
자리에 남은 건 달빛과 몬스터뿐이었다.
“허억!”
“대장님?”
“인원들은? 다들 무사한가!”
“확인해 보겠습니다!”
그림자가 떨어져 내릴 때마다 간부들이 모습을 드러냈고 서로를 보며 안위를 물었다.
그리고.
“선설민 중령!”
“대장님! 괜찮으십니까!”
“이런 빌어먹을, 자네부터 챙겨야지!”
강준진이 한쪽 팔이 날아간 선설민을 보고는 와락 인상을 구겼다.
그 외에도.
“대장님!”
“…군단 간부들은?”
“무사합니다!”
“다행이로군…….”
온몸에 선혈이 낭자한 1군단 특임대장을 비롯하여 다친 이들이 보였다.
모이긴 했으나 전황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다.
물론 이것만으로도 감지덕지긴 했다. 모두 죽을 위기였으니까.
“강현아.”
“중대장님, 새로운 능력입니까?”
“일단은 개화 중이야.”
서윤진이 제일 먼저 강현을 찾았고.
“아직 싸울 수 있어. 아니, 끝까지 싸울 수 있어.”
서윤진이 푸르게 눈을 빛내며 강현과 함께 싸울 걸 다짐.
모두의 얼굴에 비장한 빛이 들어찼다.
“간부란 때론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법.”
선설민이 핏기 없는 얼굴로 군인 정신에 대해 강론하려 할 때.
“일단 치료부터 받으십쇼.”
강현이 선설민을 그대로 눕혀 허리춤에서 수통을 꺼내 부으니.
치이이익.
선설민의 상처가 급히 아물었다.
바로 활명수.
“심각한 부상자들은 모두 이곳으로 옮겨 주십쇼!”
강현의 고함에 부상이 심한 순서대로 모여들었고.
그들의 몸에 활명수를 부을 때마다.
“으으윽!”
“후욱, 후욱!”
고통에 몸부림쳤지만 점차 몸이 회복되었다.
그러나.
“으으, 으으윽.”
부상이 심한 몇은.
그중에서도 1군단 특임대장은 이미 눈에 서린 빛이 꺼져가는 중.
“구했으면 됐지… 구했으면…….”
“이 새끼야! 정신 차려!”
“대장님!”
그런 그를 보며 강준진과 1군단 간부들이 다급히 외칠 때.
활명수를 부어도 소용없는 걸 확인한 강현이 잠시 고민하다가.
“아직 포기하긴 이릅니다.”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해 냈다.
바로.
[검탑 6층 흑백산에서 흑백산을 소환합니다! 검탑에서 흐르는 생명수 줄기를 소환합니다!]
아예 생명수가 흐르는 줄기 자체를 소환해 버리니.
쿠르르릉!
백색으로 타오르는 거대한 산이 솟아올랐고.
그 사이로 맑은 물줄기가 흘렀다.
강현이 생명력이 가득한 물속에 간부들을 담가 놓았다.
“이젠 맡겨야 합니다.”
할 수 있는 건 다했습니다.
강현의 말에 다른 간부들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할 수 있는 건 다했다.
“이제는 우리가 지켜야 할 차례로군.”
진짜 싸움을 대비하며 살기를 북돋을 때.
“아닙니다. 여기서 싸우는 건 저 혼자입니다.”
강현이 고개를 저었다.
그들이 무슨 소리냐 묻기도 전에.
[그림자 뒤집기 발동, 달빛을 이용하여 전원을 이면세계 바깥으로 이동시킵니다!]
강현이 전 간부들을 그림자 속에 넣으며.
“가서 훈련병들, 그리고 특임대를 이끌어 주십시오.”
마지막 부탁을 남겼다.
“최강현!”
서윤진의 마지막 비명을 끝으로 모두가 사라졌고.
남은 건 흑백산과 물줄기.
“우리를 버려…….”
죽어 가는 간부들.
그들도 보내고 싶지만 활명수가 없으면 당장 죽을 걸 알기에 어쩔 수 없다.
“걱정 마십쇼. 제가 반드시 데려갈 테니까.”
강현이 호언장담했고.
-오만하구나.
공간이 떨렸다.
마치 강현 홀로 남길 기다렸다는 듯한 타이밍.
-넌 차라리 선택했어야 했다.
놈이 악의가 뚝뚝 떨어지는 목소리로 강현을 꾸중하고는.
-살릴 수 있는 사람들만을 살렸어야 했다. 모두를 살리겠다는 그 알량한 욕심과 자만이 모두를 죽게 만들 거다.
번쩍.
검은 하늘에 붉은 눈동자 두 개가 떠올랐다.
이어 땅이 갈라지더니 거대한 입이 이빨을 드러내며 짙은 악취를 풍겼다.
-몇 번의 성공에 자만한…….
놈이 말을 이을 때.
“입 닫아. 입 냄새나.”
어휴, 위에 무슨 문제 있냐? 내시경 좀 받아라.
강현이 코를 막았고.
-…….
공격이 몰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