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화 상태변화
훈련소 4주차 훈련의 꽃이라는 각개전투가 끝나고 나면.
“훈련병들 모두 군장 챙겨!”
“각 생활관 조교들 군장 상태 점검하고 내용물 확인해라.”
“여분 양말 꼭 챙겨라. 중간에 갈아신어야 하니까.”
20km 야간 행군이 남아 있다.
햇볕을 오래 쬐어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
각개전투하며 이리저리 구르느라 몸에 난 생채기들.
힘겨운 얼굴로 군장을 싸는 손길들.
“야, 어떻게 하라고 했지?”
“양말 두 겹 신으면 물집 안 잡힌다던데?”
“인터넷에선 뒤꿈치에 비누 바르면 된다더라.”
모든 게 처음이지만 특히 행군은 악명 높았기에 다들 긴장했다.
주간 행군을 해 보긴 했으나 야간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
제대로 싼 군장은 대략 20kg.
특임대에겐 가벼운 무게일지 모르나 일반적인 훈련병.
더군다나 운동이라곤 학교 다닐 때 운동장에서 축구 정도가 전부인 스무 살, 스물한 살 청년들에겐 무거운 짐.
그것도 4주 동안 처음 겪는 열악한 환경, 힘겨운 훈련 끝에 이 무거운 걸 지고 걸으라니.
“자, 훈련병들 모두 연병장으로 집합!”
“네!”
“다들 서두르지 말고 누워서 군장 제대로 메고 일어나라! 전우 도와주고.”
그래도 젊음이 있기에 버둥거리며 일어난 그들이 연병장으로 발걸음을 옮겼고.
“야간 행군 출발!”
앞에서 깃발을 들어 올린 첨병을 시작으로 조교들의 인솔하에 훈련병들이 발걸음을 옮겼다.
그 숫자만 1,700명 이상.
가장 훈련병이 많이 모인다는 논산훈련소의 야간 행군.
곧 어두컴컴한 도로로 발걸음을 옮겼고.
기나긴 자신과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그들을 처음 맞이한 건.
“아, 딸기 냄새.”
“먹지도 못하니까 더 빡치네.”
여름철 논산 곳곳에서 피어나는 딸기 향.
코를 파고드는 달달 시큼한 냄새에 훈련병들이 코를 찡긋거리며 걷길 잠깐.
“헉, 허억.”
“끙.”
곧 입을 다물고는 한 발 한 발 집중했다.
아직 가시지 않은 낮의 열기 때문에 후끈한 바람.
몸의 열기 또한 그에 못지않게 피어올랐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다들 잠시 휴식!”
꽤 오래 걸었다 생각할 즈음 조교의 휴식 명령이 떨어졌고 훈련병들이 군장을 내려놓고는 간신히 한숨 돌렸다.
입에 수통의 물을 머금자 살 것 같은 기분.
“얼마나 온 거지?”
“아직 4분의 1도 안 왔다.”
훈련병의 혼잣말에 조교가 친절히 답했고.
훈련병들의 얼굴이 썩어들어갔다.
“이제 4분의 1이라고? 지금 한 10키로는 걸은 거 같은데?”
“아직 5키로도 안됐다고?”
분명 한참 걸었는데? 여기가 한국의 정신과 시간의 방입니까?
다들 혼란스러워하는 도중.
“그런데 야간 훈련… 괜찮은 건가?”
훈련병 하나가 불안감을 표출했다.
문득 몇몇 훈련병이 불안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는 공도.
인가도 사람도 없다.
어두컴컴하다 못해 새까만 주변.
뒤에 따라오는 레토나와 각자 들고 있는 랜턴 빛이 전부.
“요즘 몬스터들 내려온다고 하던데.”
“그래, 나도 들었어. 게이트도 랜덤으로 열리고.”
“우리도 만나는 거 아냐? 이러다가?”
어디서 도사리고 있을지 모를 위협에 몸을 떨었다.
“요즘은 안전지대 없다더라. 저번에 이야기 들었냐? 그 창연 초등학교에 몬스터 나타났다던데.”
“거기뿐이 아니라 이번에 잠실역에도 나타났잖아.”
“씹, 우리 몬스터 밥 되는 거 아냐?”
“야, 각개전투 안 배웠냐? 나오면 바로 총검술로 대가리 빡!”
다들 농담 반 진담 반, 허풍을 떨었지만.
눈에 깃든 불안감을 지울 수는 없었다.
그런 그들을 보던 조교가.
“걱정 마라 우리만 있는 게 아니니까.”
그들의 불안감을 해소해 주기 위해 입을 열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건만 뭐가 있다는 건가.
“지금 보이지 않지만 주변에 있거든.”
“누가 말씀입니까?”
“특임대가.”
훈련병들이 의아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볼 때.
“그리고 혹시 아냐?”
조교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너희 중에 능력자가 있을지.”
“에이, 말도 안 됩니다.”
훈련병들이 조교의 말에 손사래를 칠 때.
“왜? 예전에 나 훈련병 때 그런 일 있었어.”
“정말입니까? 훈련병 때?”
“그래, 같이 야간 행군 중이었는데 몬스터가 나타났거든. 너희 고블린 못 봤지? 실제로 보니까 진짜 개무섭더라. 안 그래도 특임대가 그때 나타나질 않았거든.”
“우와, 그래서 어떻게 됐습니까?”
“이제 죽는구나 싶을 때 동기 중에 에이스 있었거든. 걔가 갑자기 능력 개방해서는 총으로 고블린 머리통을 터뜨려 버렸어.”
와.
다들 입을 벌린 채 조교의 말을 듣던 훈련병들이.
“에이, 거짓말 아닙니까?”
“허풍도 정도가 있지 말입니다.”
그의 말을 의심했고.
“새끼들이 진짜야. 본 조교. 훈련병들에게 거짓말하지 않습니다.”
조교가 농담을 섞어 진실임을 밝히고는 다른 훈련병들을 살피러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문득.
훈련소 동기이자 자신이 보았던 가장 멋진 훈련병.
그리고 생명의 은인.
“특임대면 강현이도 와 있으려나?”
특임대로 배치받았다던 강현을 떠올렸다.
동기가 그때를 추억하며 훈련병들의 장구류를 점검할 때.
“여기는 올빼미 현재 행군 이상 없습니다.”
강현이 실제로 그들을 보고 있는 중.
-확인.
무전기에서 답신이 흘러나온 뒤.
-그, 훈련병들 보는 곳에선 그렇게 튀어 오르면 안 된다. 애들 몬스터 나타난 줄 알고 놀라.
“…확인.”
강현이 억눌린 목소리로 답했고.
푸흡, 크흡, 키키킥.
주변에 있던 분대원들이 숨죽여 웃었다.
강현이 벌게진 귓바퀴를 만지작거리며 낮에 있었던 추태를 떠올렸다.
“으아아악!”
처음 행군을 시작하고 나서 몇 분간은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공중을 떠다녔다.
다름이 아니라 이미 감각을 마나와 스킬 없는 상태로 맞추어 놨는데 갑자기 돌아온 힘 때문에 주체가 안 되었던 탓.
실제로.
“어어? 군장 왜 이래?”
“야야, 쟤 넘어진다 잡아 줘.”
다른 특임대원들 중에도 군장을 번쩍 들어 올리다가 제힘 못 이겨 휘청이는 이들이 있었다.
감각이 뒤틀려 그런 것도 있었지만 실제로 힘이 이전보다 강해져서 벌어진 일.
다른 이들이 돌아온 스킬과 상승한 스탯 때문에 휘청일 정도이니.
강현의 성장 속도와 스탯, 스킬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았다.
이젠 모든 감각을 원래대로 돌려 놓았지만.
“큼, 크흠. 앞으로는 그럴 일 없을 겁니다.”
중대원들의 좋은 놀림거리가 되었다.
“그럼 알지. 거의 메뚜기인 줄.”
“나중에는 그냥 날아서 부대 복귀하는 것 아닙니까.”
분대원들이 킥킥거리며 서로 농담을 주고받는 동안.
강현이 아직도 몸 안에서 들끓어 오르는 마나를 가라앉혔다.
이미 상태창 없이도 마나를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몸.
거기다 스킬 사용도 자유롭다.
그런데 상태창이 더해지니.
‘이거 힘 조절 잘못했다간 큰일 나겠는데.’
생각 외로 출력이 너무 강해져 조심스러웠다.
실제로 지난 며칠간 스킬과 마나 없이 고생했던 특임대 병력도.
“근데 100kg가 이렇게 가까운 거리였습니까?”
“생각보다 쉽긴 하더라.”
“아, 이번에 스킬의 소중함을 제대로 경험했지 말입니다.”
스킬과 스탯이 돌아오자 자그마치 80km에 달하는 행군 거리를 단 반나절 만에 주파할 정도.
달리다시피 도로와 산길을 내달렸으나 피곤하거나 힘들지 않았다.
-현재까지 80km. 남은 20km는 은엄폐 유지한 채로 주변 경계하며 이동한다.
훈련장부터 논산훈련소까지 행군 거리는 총 80km 남은 거리는 야간 행군 하는 병력을 보호하며 이동해야 했다.
“사주 경계 철저.”
“사주 경계 철저.”
앞에서 뒤로 이어지는 명령을 시작으로 특임대 병력들이 산속에 몸을 숨긴 채 훈련병들의 주위를 엄호.
강현이 날카로운 눈으로 주변을 경계하던 중.
“근데 저거 보니까 옛날 생각나네.”
“……?”
“응?”
문득 예전 추억을 떠올렸다.
자신도 훈련병 시절이 있었는데.
더군다나 야간 행군이라니.
인생의 분기점이자 모든 게 뒤바뀐 순간이었지.
‘아마 그때 고블린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더라면.’
새까만 어둠 속에서 튀어나온 고블린에 맞서 싸우지 않았다면.
지금쯤 일반 부대에서 능력을 숨긴 채 지내고 있을까?
아마 어떻게서든 사고는 있었을 것이고 결국 특임대가 되지 않았을까.
강현이 잠시 감상에 젖어 있을 때.
강현의 말에 이성민과 오목교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특임대는 어차피 다른 훈련소로 가지 않습니까?”
“저도 특임대 교육대에서 훈련받아서 일반병 행군은 처음 봅니다.”
대부분 특임대는 보통 훈련소 대신 교육대를 가기 마련.
“아, 원래 강현이가 일반병 출신이었거든.”
하나 강현은 특임대 교육대를 건너뛰어 바로 자대로 배치받았다.
강현이 일반병 출신임을 아는 장만수가 이를 알려주자.
“우와 진짜 일반병 출신이십니까?”
“그럼… 자대 배치받기 전에는 능력이 없었다는 거 아닙니까?”
오목교와 이성민이 화들짝 놀랐다.
강현의 강함을 보고는 당연히 처음부터 헌터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일반병 출신이었다니.
“입대 전에는 그냥 일반인이었지 뭐.”
강현이 별것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일 때.
빠드드득.
어디선가 부서지는 소리가 울렸고.
모두의 시선이 몰린 곳.
“마, 말도 안 돼…….”
이를 꽉 깨문 남궁건이 보였다.
턱 말고도 손아귀에 얼마나 힘을 주었는지 그가 잡고 있던 나무 기둥이 부서질 정도.
그러나 그는 지금 그런 것들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방금 들은 이야기가 너무나 충격적이었기 때문.
“지금 뭐라고?”
“응? 뭐가?”
강현의 어리둥절한 표정에 남궁건이 와락 인상을 구기며 다시금 물었다.
“원래 검성의 제자가 아니었던 거냐?”
“그렇지 원래는 헌터가 아니었으니까.”
“헌터가 아니었다고?”
“그래.”
“그러니까 네가 일반인이었다고? 입대 전에는?”
“그렇다니까. 같은 걸 몇 번 묻는 거야?”
강현이 저 녀석 심마 때문에 이해력이 떨어졌나 걱정할 때.
“그럼 나는 뭐냐?”
“응?”
“검왕님께 어릴 적부터 검술을 배우고 자란 나는… 널 이길 수 없는 거냐?”
그가 이젠 강현을 바라보지도 못한 채 중얼거렸다.
“분명 다들 날 천재라고 했었는데. 군대 와서 능력 개방한 놈한테 지면 난 뭐가 되냐?”
그가 홀로 중얼거리며 자신의 처지를 비관할 때.
“뭐라는 거야 미친놈이.”
강현이 대뜸 욕을 했다.
“최, 최강현 상병님?”
“강현아.”
“어어. 야 왜 그래?”
강현의 평소 성격이라면 거친 욕 보단 위로를 건넸을 거다.
아마 오목교나 이성민이 저랬다면 등을 두들기며 응원의 말을 건넸겠지.
그러나 남궁건은 달랐다.
“너보다 노력해도 그 자리까지 못 가는 사람이 천지야. 그럼 그들은? 노력할 가치도 없다는 거냐? 뭐가 되긴? 검왕의 제자가 되는 거지.”
강현이 남궁건을 쏘아보며 몰아붙였다.
“그 자리 감당 못 할 거면 남 주던가. 아니면 이겨 내던가. 찡찡거리지 마. 여기 너보다 노력 적게 한 사람 없고 고생 안 한 사람 없어. 자신이 얻은 행운마저 외면하는 건 무슨 경우야?”
다른 이들이라면 이해하겠다.
그러나 남궁건이 그것도 검왕이라는 훌륭한 스승 밑에서 최고의 스킬을 배워 온 놈이 그러는 건 못 참겠다.
지난 시간 동안, 하루하루 보잘것없는 스킬을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하던 장건철, 김대영, 장만수를 보았기 때문.
그들과 함께했기 때문.
“명심해. 네가 가볍게 던진 실망이 누군가에겐 평생 지울 수 없는 절망이 될 수도 있다는 거.”
강현이 남궁건에게 충고를 남기고는 돌아섰고.
1분대원들도 찝찝한 얼굴로 남궁건을 힐끔 보고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강현의 마지막 말은 모두의 마음속에 남았다.
실제로 남궁건의 말에 상처를 받았기에.
본래 사람에겐 높은 것만 보이는 법이라지만.
자신들은 그런 행운조차 받아보지 못한 머저리가 되어 버린 기분이었기에.
강현이 다른 이들의 마음을 헤아렸고 남궁건의 배려 없는 욕심이 답답했다.
마지막으로.
‘어차피 이겨 낼 거면서.’
강현이 남궁건의 눈빛이 깊어짐을 확인하고는 속으로 투덜거렸다.
녀석은 응원보다는 자극을 위로보다는 질책이 필요한 성격.
어떻게 아냐고?
[인물창 정보 및 연구 책임자의 눈으로 대상을 분석 완료했습니다. 대상에게 가장 맞는 방법: 질책, 호통]
[작전사령부 편제표 확인 대상의 상태: 심마를 극복 중]
[남궁건의 호승심과 호감도가 올랐습니다! 인물이 성장합니다!]
인물창, 연구 책임자의 눈부터 언변, 감화, 신뢰, 카리스마 등.
‘상태창이 편하긴 편하네.’
강현이 오랜만에 발동하는 상태창의 위력에 만족했다.
거기다 새로 생긴 작전사령부 능력 덕에 현재 인원들이 어떻게 이동하고 있는지 어떤 상태인지 파악되니.
‘일이 생기면 바로 알 수 있겠어.’
혹시라도 대주교가 무슨 수작을 부리면 바로 알 수 있으리라.
강현이 안심하며 발걸음을 옮길 때.
[강준진 준장: 공석]
[선설민 중령: 공석]
[서윤진 대위: 공석]
강준진을 시작으로 간부들의 상태가 변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