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7화 피땀눈물
마나.
상태창이 생긴 이래 가장 신비한 능력이자 물질.
누군가는 우주의 에너지다.
누군가는 이세계에서 넘어온 힘이다.
누군가는 신이 주신 은혜다 말이 많았지만.
“기적이지.”
대부분은 이렇게 말했다.
“불가능한 걸 가능하게 만들어 주는 기적.”
만화, 게임에서나 보던 능력을 사용하게 해 주고 스킬의 근간이 되며.
마나 홀로그램이라는, 과학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장치를 만들어 내는.
기적.
그야말로 상태창이 기적이 보여 주는 현상이라면 마나는 밑에 흐르는 근간.
강현이 PT 체조를 받으며 생각한 의문.
‘정말 모든 스킬과 특성이 사라진 걸까?’
그러나 머릿속으로 밀려드는 경험을 보면, 가파르게 상승하는 스탯을 보면.
‘작동한다.’
비록 상태창 알림은 뜨지 않지만 자신의 고물수집 능력이 작동함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우연하게도 허벅지에 맴돌았던 마나.
“올빼미 자리로 돌아갑니다!”
“악!”
강현이 자리로 돌아온 뒤에도 끊임없이 마나를 움직이려고 시도했다.
그러자 흩어져 있던 것들이 꿈틀거렸다.
얼핏얼핏, 가물가물 모이는 기억들.
이전 유격을 받았던.
‘으으! 말년에 유격이라니! 말년에 유격이라니!’
‘이러다 죽는다. 이대로는 죽어!’
‘으으 차라리 죽여 줘…….’
고물에 담겨 있는, 철로 만든 두꺼운 장비가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거쳐 간 특임대 교육생들의 기억들.
그리고 개중에는.
‘진짜 못 쓰는 건가?’
강현과 같이 상태창 제한을 의심한 사람도.
‘편한 방법 좀 없나?’
조금이라도 훈련을 편하게 받고자 편법을 찾아본 사람들도 있었다.
‘모두 실패했나.’
강현이 PT 8번 온몸 비틀기를 하면서도 계속 경험을 읽어 나갔다.
물론 대부분이 실패, 하긴 그럴 만도 했다.
“으으윽!”
“누가 신음 소리 내!”
“제대로 비틀어! 각도 더 내려!”
“열외! 자세가 왜 그 모양이야!”
슬슬 체력적으로 부담이 오기 시작.
거기다 옆에선 조교들이 쪼아 대니 정신을 집중할 수가 있어야지.
‘으읍!’
이미 김대영, 장만수 등 1분대원을 비롯해 모두가 열외 장소에 들락거리는 상황.
조교들은 눈에 불을 켜고 잘못된 점을 찾았고 강준진은 마치 누구 하나 쓰러질 때까지 하겠다는 듯 특임대를 조졌다.
천하의 강현도 PT 8번을 연속해서 받고 나자 복근이 뻐근할 정도.
11번을 연속 다섯 세트 받고 나자 허벅지가 터질 듯 부풀어 올랐다.
그러나.
[신체 관련 스탯 경험치가 상승했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자세가 흐트러질만 하면 스탯이 상승하며 위기를 넘겼고.
강현이 서서히 마나에 집중하기 시작.
아까 느꼈던 감각을 떠올렸다.
3m를 붕 떠올랐을 때 허벅지에 담겼던 미약한 마나.
경험을 점점 구체화시켜 가자.
꾸물꾸물 몸 안에서 움직이는 작은 기운이 느껴졌다.
마나에 집중하다 보니 어느새 PT체조 시간 막바지.
“11번 100회! 몇 회?”
“100회!”
“110회! 몇 회?”
“110회에에엑!”
“105회 시작!”
강준진의 고문이 극에 달했고.
이젠 강현마저도 마나고 뭐고 버티는 게 전부일 때.
이전 사용자들의 경험이 발휘되기 시작했다.
조금 더 편한 자세를 조금 더 쉬운 움직임을.
일주일의 유격 훈련.
한 명 한 명은 상태창 제한 상태를 이겨내지 못했지만.
그들의 일주일이 모여 한 달이 되고 몇 달이 되자.
‘움직인다.’
아주 미약한 마나 줄기가 흐르는 게 느껴졌다.
이걸 어떻게 움직이냐고?
이미 강현은 알고 있다.
다만 모두 실패한 경험이라는 게 문제지만.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허나 실패했기에 이를 조합하면 새로운 성공 방법이 될 거다.
그가 지금까지 했던 수많은 경험이 그랬기에.
이윽고.
“PT 8번 100회! 몇 회?”
“100회!”
“95회 시작!”
이젠 다들 반쯤 정신을 놓은 채 마지막 PT를 소화할 때.
강현은.
‘온다, 온다!’
뱃속에 몽글몽글 뭉치는 마나를 느끼며 환호했다.
지금껏 마력지체와 중급 마나 운용법 이외에도 다양한 특성 덕에 항상 몸에 넘쳤던 마나.
비록 그에 비하면 정말 하잘것없이 작은 양이었지만.
천천히 이전 훈련병들이 시도했던 방법을 조합.
실패를 걷어 내고 성공한 방법들을 이어붙이니.
우우우웅.
뱃속에서 마나가 힘차게 꿈틀거리더니 몸을 휘젓기 시작.
크기를 점점 불려 나갔다.
‘큰 거 온다!’
강현이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하는 마나를 보며 즐거워했다.
마나가 몸을 휘감자 PT 8번이고 11번이고 장구류고 뭐고 모두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거기다 이전에는 마나가 하도 넘쳐 느끼지 못했던 감각들이 생생히 느껴져 마나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도 알겠다.
강현이 새로운 깨달음을 얻고 나자.
[마력 스탯의 경험치가 대폭 상승합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마치 물꼬를 튼 것처럼 마력 스탯의 레벨이 마구 올랐고.
“으으음.”
“흠… 잡을 데가 없군.”
어느새 강현의 주위에 조교 몇이 모여들었다.
첫째 날의 목표는 특임대의 정신을 쏙 빼놓는 것.
다들 여러 번 열외되어 기합을 받는 와중에도 강현만 자리에서 꿋꿋이 버티니 혹시나 하는 마음에 조교들이 그를 지켜보았지만.
“딴 곳 가야겠네.”
“3군단 친구인가?”
“아, 저 친구는 지켜봐도 별거 없을걸?”
오히려 조교들이 혀를 내두르며 자리를 떴다.
몇몇은 강현의 몇 시간째 이어지는 정석적인 자세에 감탄하느라 자리에 머무를 정도.
“전원 바로!”
끝까지 병사들을 괴롭히던 강준진이 비로소 PT 체조 교육의 끝을 알렸고.
“오전 훈련은 이로 마무리하겠다. 각 교관과 조교들은 올빼미들 이끌도록.”
1, 2, 3군단 특임대 모두가 오전에 보여 줬던 혈기왕성한 모습은 어디다 버렸는지 터덜터덜 발걸음을 옮겼다.
“으으윽!”
밥을 배식받고 나서 앉으면서도 입에서 나오는 신음.
“으으, 허리랑 허벅지 찢어질 것 같습니다.”
“내일이면 더 심해질걸?”
“이 훈련을 일주일이나 받는 겁니까?”
이성민의 경악과도 같은 질문에.
“앞으로 나흘. 아침에 상쾌하게 PT 체조로 시작. 이후에는 장애물 넘기. 물론 장애물 대기 중에 즐거운 체조 시간을 빼놓을 수 없지.”
장만수가 울상인지 미소인지 모를 표정으로 겁을 잔뜩 주었다.
“훈련장 이동도 빼놓지 말아야지.”
“훈련장 이동 중에도 설마 PT 체조합니까?”
김대영의 말에 이번엔 오목교가 와들와들 턱을 떨며 묻자.
“보면 알 거야. 아니, 경험하면 알 거야.”
김대영이 자신도 같은 처지라는 생각에 고개를 푹 내리깔며 어려운 앞날을 예고했다.
“저 먼저 나가 보겠습니다.”
강현이 말없이 식판을 정리하고 일어섰고.
다들 그의 등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강현이도 유격은 힘든가 보다.”
“그래도 가장 잘 버티지 않았습니까.”
“후우, 최강현 상병님도 힘들어하는데 저희는 어떻게 합니까.”
중대원들끼리 앞으로의 훈련에 대해 걱정을 나누었다.
강현마저 힘들어하는 게 이번 훈련.
자신들이 과연 버틸 수 있을까?
다들 우중충한 얼굴을 하고 있을 때.
“아냐, 최강현 상병님은 지금 괴로워하시는 게 아니다.”
단 한 명 유덕창만큼은 동기들 사이에서 전혀 다른 말을 내뱉었다.
그는 방금도 보았다.
피식.
강현이 밖으로 나가며 짓는 작은 미소를!
“그분께서는 즐기고 계신다!”
즐기시게 둬.
요상한 말을 주워섬기며 입가에 국을 질질 흘리는 유덕창의 모습은.
“어째 덕창이 형 맛이 간 거 같지 않아?”
“갔네 갔어. 완전히 갔어.”
지금 먹는 계란국처럼 맛이 간 모양.
처음 부대 올 때까지만 해도 동기들 앞에서 금방 중대 휘어잡겠다, 선임들 모두 잡아먹겠다, 하던 인간이.
“완전 변했구먼.”
이젠 동기들 중 가장 충성심 넘치는 후임이 되었다.
동기들의 말에 유덕창이 고개를 흔들며 한마디를 남겼다.
“결코 그들을 건드려선 안 돼. 그랬다간 아주 똥 되는 거야.”
“야, 덕창아 밥 다 먹었냐?”
“이병 유덕창. 다 먹었습니다!”
오목교의 부름에 쫄래쫄래 향하는 그를 보며.
“잘된 거지?”
“차라리 다행이지.”
“저 인간이 부대 먹는다 생각해 봐라. 훈련소 때 봤잖아?”
동기들이 내심 안도했다.
* * *
미리 밖으로 나온 강현이 잠시 주변을 둘러보다가.
3중대 막사 앞.
“자, 다들 가기 전에 물 담아 가라!”
마침 막사에서 대기하는 간부들이 떠 놓은 물이 가득 담긴 커다란 물통을 발견했다.
사람 둘은 들어가고도 남을 고무 드럼통에 담긴 물.
“다들 다음 훈련 받으려면 수통에 물 담아 가!”
이미 오전 훈련 동안 수통에 담긴 물은 모두 마셨다.
오후 훈련도 오전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진 않을 터.
강현이야 활명수가 있으니 지나쳐 가려다 문득.
‘어? 굳이 나만 먹을 필요는 없잖아?’
자신의 수통에 담긴 활명수를 떠올렸다.
어차피 모두가 힘든 훈련.
혼자서 편한 것도 좋지만 모두가 이겨 내면 좋지 않겠는가.
거기다.
‘아까 그놈들 기도 좀 눌러 주고.’
분명 앞서 마주쳤던 1, 2군단이랑 붙을 일이 있을 거다.
괜히 집채를 함께하는 게 아닐 터.
그렇다면 미리 체력을 안배하는 게 훨씬 유리하다.
“마침 실험해 볼 것도 있고.”
강현이 주섬주섬 허리춤에서 수통을 꺼내다가 문득.
“오늘… 말 처음 한 거 아닌가?”
종일 말 한 마디 하지 않았다는 걸 기억해 냈다.
오늘 한 말이라고는.
‘크흐흐흐, 푸흐흐흫, 아하하핳.’
이상하고 음침한 웃음이 전부.
생각해보니 근래에 분대원들과도 말을 잘 섞지 않았다.
그런데도 심심하다거나 이상하다고 느낀 적이 없었다.
항상 옆에서 떠벌떠벌 이상한 이야기를 하는 아저씨가 있었으니까.
“…아저씨?”
검성 이석천을 불러봤으나 강현 혼자.
방금도 항상 버릇처럼 홀로 식판을 들고 나왔다.
사람이 없는 틈에 검성 이석천의 기억과 대화를 나누는 게 버릇이 되었기에.
대부분은 이상한 소릴 해 댔지만 그래도 가끔은 웃긴 말도 하던 사람이었는데.
“같이 계시려나.”
강현이 사람들을 모으러 떠난 만물제작자와 그녀를 따라 떠난 검성을 잠시 생각하고는.
탈칵.
수통의 뚜껑을 따서 물통에 부어 넣었다.
용량보다 한참이나 더 많은 물이 쏟아져 나오는 중.
당연했다.
만물제작자가 직접 생명력 가득한 샘과 연결해 준 특제 수통이었으니까.
‘성능 한번 확실하구먼.’
강현이 끊임없이 떨어지는 생명력 가득한 물을 보며 감탄하길 잠시.
이번엔 까만 수통의 뚜껑을 따는 순간.
슈우우우우우욱!
[잠재력 주머니가 주변에 있는 부정적인 잠재력을 모조리 빨아들입니다! 고통, 피곤, 괴로움 일체를 흡수합니다!]
잠재력 주머니가 3군단 막사에 모든 부정적인 잠재력을 빨아들였고.
강현이 긍정적인 잠재력을 물에 풀어 대용량 활명수를 만든 뒤.
오후 훈련 시간.
“모두 군장 들어!”
이번엔 다른 고난이 올빼미들을 기다리고 있었으니.
“훈련장까지 군장 구보로 간다!”
“모두 구보 준비!”
자그마치 군장만 30kg. 거기에 장구류 30kg. 무기까지 합하면 평균 70kg이 넘는 수치.
그래도 평지는 어떻게든 견딜 수 있다.
그러나 여긴.
맴, 맴, 매앰, 스피유우우우.
매미가 우는 한여름 산속.
후텁지근한 기운도 미칠 지경인데.
훈련장까진 모두 오르막길투성이.
어떤 미친 인간이 이런 곳에 훈련장을 세웠는지는 모르겠으나.
훈련장까지 자그마치 70kg 무게를 온몸에 두르고 뛰어야 한다.
“헉, 허억! 못 뛰겠습니다!”
이미 오전 훈련으로 잔뜩 지친 상태의 병사들이 곳곳에서 낙오했고.
“뭐해? 분대가 나눠 들어 줘!”
그 짐은 다른 분대원에게 돌아갔다.
1, 2군단에서 신음과 낙오, 나지막한 욕설들이 이어졌다.
아무리 자신들이 헌터라지만.
“스킬도 특성도 없이 이렇게는 무리입니다!”
“올빼미, 누가 입 열어! 너희들이 할 수 있는 말은 악밖에 없어!”
“허리 펴! 특성이랑 상태창 사라지면! 그대로 죽을 거야? 모두 자리에 엎드려!”
이건 너무 힘들다!
스킬과 특성 없는 훈련이라니.
곳곳에서 고함과 기합이 이어지는 가운데.
“후욱, 후욱.”
“뭔가 이상하지 말입니다?”
“그러게 뭔가 이상하다?”
왜 몸이 가볍지?
3군단만 유독 낙오자가 없었다.
마치 하룻밤 푹 자고 난 듯 오전 훈련으로 인한 피로가 싹 풀린 상태.
힘들긴 했어도 못 할 정도는 아닌 수준.
“크으, 이거 물맛 죽이네.”
“뭐냐? 어디 샘물 떠왔나?”
특히 수통에 담은 물을 마실 때마다 힘이 다시 솟아나니, 마치 회복약이라도 먹는 기분이었다.
그들이 힘차게 발을 내딛는 동안.
조교들끼리도 그들을 보며 쑥덕거릴 정도.
그런 3군단을 보며 미소 짓던 강현이 이후 일정을 떠올렸다.
이전 올빼미들의 기억에 의하면.
‘첫 번째 코스는 통나무 넘기.’
다만 일반 유격과 다르게 그 통나무 개수가 수십 개요 몸에는 장비를 둘둘 두르고 넘어야 하는 게 문제였지만.
“올빼미들! 힘차게!”
“악!”
“구보 중에 군가한다! 군가는 전우!”
“악!”
“하나 둘 셋 넷!”
군가를 부를 만큼 체력들이 넘치니 충분할 거다.
이윽고 드디어 끝난 언덕길, 첫 번째로 보이는 훈련장.
그런데.
“어?”
“이게 뭐꼬?”
방금까지만 해도 힘차게 군가를 부르던 중대원들이 발걸음을 멈추곤 예상과 너무 다른 훈련장에 놀랐다.
그곳에는.
화르르륵!
불이 혀를 날름거리는 곳, 어슬렁거리는 살라맨더들.
그들 중앙.
“불지옥 코스에 온 걸 환영한다. 올빼미들!”
새까만 교관모를 눌러쓴 선설민 중령이 그들을 맞이했다.
[메인 퀘스트 피, 땀, 눈물을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