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물수집으로 무한성장-224화 (224/277)

224화 지옥으로

검성마저 사라진 자리.

“당분간은 좀 쓸쓸해지겠네요.”

강현이 이석천이 서 있던 자리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옆에서 떠들어 대는 통에 시끄럽기도 했으나 그만큼 심심하지 않았다.

뭐, 옛날이야기 들어주는 것도 나름 재미있었고.

실제로 도움받은 경우도 많았으니까.

김두식과 이석천.

“두 분께 맡기겠습니다. 새로운 조력자들을 데려와 주시기를요.”

강현이 그들이 이룰 일을 읊조리고는 이번엔 황세아 중사를 바라보았다.

“중사님도 미리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여명단이랑 산군, 태풍 님께 말입니다.”

“뭐라고 말하면 될까?”

“대주교, 주교 위에 주교가 오고 있다고 말입니다.”

“따로 지시할 일은 없어?”

“이미 해 온 것들이 있으니 준비는 스스로들 할 겁니다.”

강현이 그들 나름의 싸움을 준비하라 일렀고.

황세아가 강현의 말을 전하러 가기 전.

“두렵진 않니?”

문득 발걸음을 멈추고는 물었다.

강현을 본 지 꽤 되었고 같이 여러 일을 겪었다.

그러나 정작 그에게 묻지 못했던 질문.

‘너무 무심했네.’

그녀가 막상 말을 꺼내 놓고는 자신의 무신경함을 탓했다.

지금껏 강현에게 기대어 왔으니 그냥 괜찮다고 생각했던 걸까.

그녀가 걱정하는 표정으로 강현을 보자.

“빨리도 물어보십니다.”

강현이 킥킥거리며 웃었다.

그러고 보니.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강현 스스로가 생각해도 참 황당했다.

익숙해진 걸까?

위기를 해결하는 데 급급해 두려워할 틈이 없었던 걸까?

물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으나.

“두렵지 않다는 거짓말을 하진 않겠습니다.”

강현이 고개를 저었다.

두려웠다.

지금껏 겪은 일들, 모든 위기 앞에서 두려움을 느꼈다.

지금도 마찬가지.

대주교가 자신의 목숨을 노린다는 말을 듣자 머리털이 곤두설 정도였다.

어찌 두렵지 않다고 말할까.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많습니다.”

두려움마저도 찍어 누르는 가치가 강현에겐 있었다.

“사람들을 지키는 것, 놈들을 이기는 것, 승리하는 것.”

두려움에 내리눌려 발걸음을 멈추기보단 해내야 하는 일을 위해 움직였다.

치열하게.

그러다 보니 두려움을 느낄 새도 없이 승리했다.

그뿐이었다.

“이번에도, 앞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두려움에 집중하기보다 방법을 찾고 싸워서 이길 거다.

강현의 결심.

그리고 그가.

“서연이랑 평생 살아야 하니 절대 질 수 없습니다.”

자신의 바지춤을 꼬옥 붙잡은 어린 여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미소 지었다.

“무릎이 안 좋아지신 할머니를 부축해 드리고 간병하기 위해서라도 질 수 없습니다.”

어쩌면 이것들이 가장 큰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사소하지만 가장 소중한 이유.

강현의 따뜻한 표정에 비로소 서연이가 미소 지었고.

“언제나 생각하는 거지만. 너 참 멋있다.”

황세아가 강현을 향해 감탄을 표하고는 뒤돌아섰다.

잔뜩 붉어진 목덜미를 보니 여러 감정이 올라오는 모양.

“말 전할게 그리고 나도 준비해서 올게.”

그녀가 그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사라졌다.

어느새 휑해진 탑.

“다들 어디 가신 거야?”

서연이만이 유일하게 강현의 옆에 남아 물었고.

“각자의 자리로 가셨어.”

강현이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답했다.

서연이의 순진무구한 눈망울이 오빠의 모습을 담았다.

“자리? 왜? 바빠?”

“준비하려고.”

그리고 이기려고.

강현의 답이 어려웠는지 서연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오빠도 이제 자리로 돌아가야 해.”

“오빠도 준비하고 이기려고?”

“응.”

“오빠 꼭 이겨야 해!”

“그럼.”

동생이 모두 이해하진 못해도 오빠를 응원했고.

오빠는 이에 반드시 응하리라 결심했다.

* * *

내리쬐는 햇빛이 따가운 시기.

태양열을 함빡 머금은 땅에서 후텁지근한 아지랑이가 피어올랐고.

“헉, 허헉, 헉!”

곳곳에서 병사들의 거친 숨소리가 울렸다.

“으윽, 으으윽!”

분명 신체적으로 뛰어난 특임대라지만.

“자! 멈추지 말고 뛰어! 완전 무장 하고 뛰는 거야 다반사 아니냐!”

등에는 완전 군장을 메고 몸에는 방어구를 완전 착용.

거기다 개인 무기들까지 주렁주렁 매달고 있으니 힘들 수밖에 없다.

거기다.

“으으! 이놈의 산은 왜 이렇게 더운 거야!”

이상하게도 밖보다 산속이 더 더운 느낌.

온풍기라도 틀어 놓은 듯 후끈했다.

구불구불한 산을 따라 달리는 특임대 3중대.

그리고 그 뒤에선.

“2중대 지지 마라!”

“1중대 따라잡아!”

그들을 뒤따르는 다른 특임 대원들.

3군단 특임대 전체가 모여 훈련하는 중.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전체 휴식!”

가장 먼저 휴식 구간에 도착한 3중대가 휴식을 명 받고선 자리에 앉았고.

“우웩!”

유덕창 이병이 결국 참지 못하고 구석으로 달려가 속을 게워 냈다.

“후욱, 후욱, 제가 봐주고 오겠습니다.”

오목교가 후들거리는 다리를 간신히 옮기려 할 때.

“내가 갈게 쉬고 있어.”

강현이 먼저 일어나 유덕창이 엎어져 있는 곳으로 향했다.

속을 게워 낸 그가 흐느적거리며 힘겨워했다.

“으윽, 이건 사람 죽으라고 하는 거잖아. 차라리 죽여 줘.”

살면서 처음 겪는 강도 높은 훈련.

눈 좀 부라리고 주먹 좀 휘두르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제야 왜 선임들이 자신의 협박에 코웃음을 쳤는지 이해했다.

이런 고통 속에서 매일매일 훈련하는 사람들이 무엇이 무섭겠는가.

“나, 난 이런 거 못 한다고.”

유덕창이 이젠 거의 눈물까지 글썽거리며 자신의 신세를 한탄할 때.

“괜찮냐?”

“……!”

강현의 목소리가 머리 위에서 들려왔고.

“이, 이병 유덕창!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방금 전 흐물거리던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유덕창이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입에 묻은 거나 닦고 말해라, 인마.”

강현의 말에 그가 급히 입을 닦는 사이.

“자, 입 대지 말고 마셔.”

강현이 자신의 수통을 내미니.

“제 것도 있습니다.”

“그냥 마시라면 마셔.”

“감사합니다!”

그가 강현의 양철 수통에 담긴 물을 한 모금 마시고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분명 방금까지만 해도 온몸에 진액이 빠진 듯 힘겨웠는데.

“와! 이제 살 것 같습니다!”

강현이 준 물을 마시자 마치 훈련 이전 때로 돌아간 듯한 느낌.

얼마든지 다시 뛸 수 있을 듯싶었다.

수통을 돌려준 그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다가.

“그런데 최강현 상병님은 힘들지 않으십니까?”

강현의 땀 한 방울 없는 얼굴을 보며 물었다.

유덕창 이병처럼 토를 하지 않았을 뿐 다른 선임들도 힘들어하긴 마찬가지.

그런데 강현은 유독 멀쩡했다.

누가 보면 산책이라도 나온 줄 알겠다.

후임의 물음에.

“왜 안 힘들겠냐.”

강현이 크게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

“분대장인 내가 지친 티를 내면 옆에 분대원들이 더 지치니까.”

자신은 짊어진 게 더 많으니 티를 내면 안 된다.

그 한마디에.

“아.”

유덕창의 입이 벌어졌다.

이 얼마나 멋진 말인가.

같이 지치지만 이들을 이끄는 사람이기에 지칠 수 없다.

그가 사회에서 만났던 사람 중에서도 이런 식으로 말하는 이들은 많았다.

말만 번지르르해서 문제였지.

우리는 평생 가는 거다, 내가 지켜 주겠다, 나만 믿어라, 누구 아냐? 그분이랑 형제처럼 지낸다 등등.

그러나 막상 어려운 상황이 오면 다들 도망가기 바빴다.

자기네들 힘들다고, 네가 희생하라며 남의 등을 떠미는 놈들투성이였다.

‘최강현 상병님은 진짜 형님이다.’

그런데 강현은 달랐다.

행동으로 우선 보여 주고 말을 한다.

선후가 바뀌었을 뿐이지만 거기서 나오는 신뢰감은 차원이 달랐고.

“어, 입은 닫는 게 좋겠다.”

“냄새… 납니까?”

“가기 전에 물로 입 헹구고 가라.”

“이병 유덕창 위치하겠습니다!”

“그래, 물 너무 많이 마시지 말고. 탈수 온다.”

“감사합니다! 최강현 상병님!”

유덕창이 억지로 허리를 곧게 펴고선 분대로 돌아갔다.

“야, 괜찮냐? 좀 들어 줄까?”

“괜찮습니다!”

“진짜? 그러다 퍼지지 말고.”

“이병 유덕창 끝까지 할 수 있습니다!”

방금까지만 해도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고 투덜거리던 녀석이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고.

“짜식! 그래 그거지! 야, 우리도 힘내자!”

“이등병한테 질 수야 없지!”

“누가 집니까? 저 완전 멀쩡합니다!”

“아까 보니까 다리 후들거리던데?”

“아닙니다. 완전 멀쩡합니다!”

곧 분대원을 비롯한 중대원 전체가 이등병의 패기 어린 대답을 듣고는 다시 힘을 냈다.

“자, 이제 저 능선만 넘으면 유격 출발 때까진 휴식이다!”

서윤진 대위가 힘차게 미소 지으며 중대원들을 격려하니.

“다들 파이팅!”

“3중대 파이팅!”

“3군단 파이팅!”

서로를 응원하며 모두가 힘을 내었고.

탈칵. 강현이 유덕창에게 내밀었던 수통과 달리 새까만 수통 뚜껑을 열자.

[잠재력 주머니에 응원, 사기, 희망 긍정적인 잠재력을 담습니다! 피곤, 지침, 괴로움 부정적인 잠재력을 담습니다!]

군단 특임대원들이 뿜어내는 잠재력이 안으로 흘러 들어왔고.

그중에서도 특히.

[부정적인 잠재력 전부를 빨아들입니다!]

병사들의 몸에 쌓인 피곤함과 근육통 등 부정적인 잠재력 전부를 빨아들이자.

“오오오!”

“할 수 있다!”

“자, 다들 가자!”

몸이 개운해진 특임대원들이 우렁차게 소리치며 주섬주섬 장비를 챙길 때.

강현이 이번엔 아까 유덕창에게 주었던 수통을 들어서는 긍정적인 잠재력 일부를 섞었다.

[잠재력 주머니에 담긴 긍정적인 잠재력 일부를 꺼냅니다]

[검탑에서 가져온 생명력이 가득한 물에 긍정적인 잠재력을 섞습니다!]

[활명수를 완성하였습니다!]

그러자 수통에서 시원한 냄새가 확 풍겼다.

1층 생명의 숲에 고이다 못해 이젠 검탑 밖으로까지 흐르는 생명력 가득한 물.

거기에 긍정적인 잠재력을 섞으니.

“크흐.”

그야말로 군용 회복약 따위와는 비교도 못 할 물약이 만들어진 것.

유덕창의 말대로 책임감으로 버티는 것도 있지만.

‘책임감만으로는 안 될 때도 있지.’

강현이 다시금 활명수를 입에 털어 넣으며 힘을 내고는.

“이리 줘.”

“최강현 상병님?”

힘들어하는 오목교와 이성민, 유덕창의 장비를 대신 짊어진 채 가장 앞서 발걸음을 옮겼다.

“강현이, 괜찮겠어?”

“괜찮습니다!”

몸에 후임들의 장비까지 주렁주렁 매단 강현을 보며 서윤진이 물었으나.

강현이 다시금 활명수를 꿀떡 넘기고는 앞서 달려 나갔고.

“다들 전진!”

1군단 특임대가 강현을 따라 일제히 산을 뛰었다.

지난 몇 주간 이어진 군단 합동 훈련.

강현은 항상 가장 앞에서 뛰었고 어떤 어려운 훈련이든 끝까지 이겨 냈다.

[군단 특임대 신뢰도가 상승했습니다! 군단 특임대 신뢰도가 일정 수준에 달했습니다]

[신뢰도 혜택으로 군단 스킬 광분을 획득했습니다!]

[광분 스킬을 발동합니다!]

[일시적으로 신체 능력이 상승하고 고통을 느끼지 못합니다!]

“우와아아아악!”

“모두 달려어어엇!”

뒤에서 머리털이 쭈뼛 설 정도의 광기 어린 외침이 울렸고.

“어어? 어어어!”

강현이 어느새 바짝 쫓아온 이들을 돌아보곤.

“크아아악!”

유덕창의 하얗게 뒤집힌 눈과 오목교 입가에 허옇게 올라오는 거품에 식겁했다.

“정신 차려! 덕창아! 목교야!”

이젠 그들을 이끄는 게 아니라 쫓기듯이 달려야 할 판!

“왜 너희들이 미쳐?”

서윤진 대위마저 당황할 정도의 광기.

광폭화는 자신의 스킬인데 왜 병사들이 갑자기 날뛴단 말인가.

3군단 특임대는 원래 코스보다 한참을 더 뛰고 나서야 간신히 광기를 가라앉혔다.

* * *

주말 동안 체력을 회복한 후.

월요일 아침 군단 연병장.

3군단 특임대 전체가 긴장한 얼굴로 서 있었고.

그중에서도.

“말년에 유격이라니. 말년에 유격이라니.”

“유격 으으, 제발 이건 피해 가고 싶었는데.”

김대영과 장만수가 군장을 멘 채 죽을상을 하고선 중얼거리는 중.

“그 정도입니까?”

웬만한 훈련은 웃으면서 받는 그들이기에 이렇게까지 울상을 짓는 건 오랜만.

오목교가 처음 가는 유격도 긴장되는데 선임들까지 정신을 잃어 가니 침을 꿀떡 삼키며 물었고.

“넌 몰라. 그곳은 지옥이란다.”

“지옥이지. 진짜 지옥.”

김대영과 장만수가 몸을 부르르 떨며 생각만으로도 고통스러워했다.

장건철마저도 유격을 피해 간다는 사실에 싱글벙글 웃지 않았던가.

“이등병 때 전입 오자마자 유격하러 갔었지. 그래, 군 생활 최악의 선택이었어. 한 달만 늦게 입대할걸.”

장만수가 당시를 생각하곤 몸을 떨었다.

오목교가 반쯤 얼이 나간 그들의 얼굴을 보며 괜히 물었다 후회할 때.

“그래도 특임대 정도면 유격도 견딜 수 있지 않습니까?”

이번엔 이성민이 물었다.

유격의 악명은 이미 익히 들었다.

요즘은 군 관련 프로그램도 많으니 어떤 훈련을 받는지도 알고 있다.

물론 일반인들의 눈으로 보기엔 힘들어 보여도.

“PT 체조가 아무리 어렵다고 해 봤자 헌터가 받기에 그리 어려운 수준은 아니지 않습니까?”

3대 천이 넘는 헌터들이 받기엔 그리 어려워 보이지 않았다.

그냥 견디기만 하면 되는 정도?

“참호 격투 같은 건 오히려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후임의 순진무구한 생각에.

“흐흐흐흐, 크흐흐흐흐.”

“후후후, 후후후훗.”

“PT체조? 어려운 수준이 아니야?”

“받으면 알게 될 거야.”

“그래, 가기 전엔 다들 그렇게 생각하거든.”

“그곳은 그래, 지옥이지. 진짜 지옥.”

둘이 음침한 웃음을 흘릴 때.

“자! 3군단 특임대! 버스에 탑승! 올빼미들 모두 지옥으로 출발한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