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3화 만물제작자로서의 책임
매일매일, 한순간도 빠짐없이.
“나 왔어.”
김두식은 틈날 때마다. 아니, 바쁜 와중에도 시간을 내어서라도 매번, 매시간.
6층에 방문했다.
그녀가 문을 열고 들어가면 제일 먼저 찾는 것.
“끄으으으.”
숨죽여 고통스러워하는 귀신.
이미 버썩 메마른 몸이나마 어떻게든 가리려 산 깊은 곳에 숨었지만.
“오늘은 여기 있었구나?”
김두식이 놈을 찾아내고는 화사하게 웃었다.
활짝 휜 입꼬리와 눈꼬리가 너무나 행복해 보였지만 눈동자엔 휘몰아치는 분노뿐.
“끄으으윽!”
주교였던 귀신이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분명 흑백산에서 겪는 고통만으로도 괴로웠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느껴볼 수 없을 정도의 고통.
그러나 만물제작자를 만난 순간.
“키아아악!”
지금껏 느꼈던 고통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절망을 넘어선 고통.
이미 이지를 잃은 귀신이지만 살기 위한 마지막 몸부림으로 김두식에게 손톱을 세우며 달려들었고.
“이제 안 도망치네?”
그녀가 더욱, 과할 정도로 환하게 웃으며 자신을 향해 손톱을 세우는 놈을 바라보았다.
이내 그녀의 눈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자.
[만물을 이루는 눈을 발동합니다! 대상을 재구축 회복시킵니다!]
주교의 버썩 마른 몸이 완전히 가루가 되어 흩어졌고.
이내.
“끄아아악!”
검귀가 되기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비록 노인의 모습이지만 원래대로 돌아왔으니.
놈이 무언가를 시도할 법도 했으나.
“제, 제발 살려 줘, 제발! 제발 살려 줘어!”
주교는 오히려 회복되었다는 사실이 더욱 두려운지 몸부림쳤다.
놈의 살려 달라는 간절한 외침에.
“말해. 네가 아는 모든 것. 네가 가진 모든 것.”
김두식이 화사하게 웃던 표정을 지우고는 얼굴을 굳혔다.
살기가 휘몰아치는 눈동자에 딱 어울리는 표정.
그녀의 물음에.
“제발! 다 말할 테니까. 잠깐만! 잠깐만!”
놈이 모든 걸 말하겠노라고 자신이 아는 모든 사실을 답하겠노라 했으나.
“아직 눈알을 굴리는 걸 보니 생각할 정신이 있나 보네.”
김두식은 가차 없었다.
그녀가 눈길을 거두자.
[힘을 거두어 갑니다. 대상이 이전 모습으로 돌아갑니다]
주교의 몸이 다시금 메말라 갔고 타오르는 백염과 위에서 떨어지는 어둠에 고통스러워했다.
“끄아아아아, 아아아아!”
차라리 검귀로 있는 게 나았다.
귀신인 상태에서는 이지도 없이 그냥 몸만을 뒤틀면 되니까.
그러나 김두식에 의해 되살아나고 다시 귀신이 되는 과정은.
“으으으으.”
너무나 고통스럽고 절망적이었다.
기껏 다시 정신을 차렸는데 어떻게든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다시 모든 걸 빼앗기는 기분.
김두식에 의해 깨어났다 검귀가 될 때마다.
모든 걸 잃는 고통을 반복해야 했다.
그 과정을 수백 번 반복했을 때.
“검성 이석천이 곧 죽을지도 모릅니다. 지금 어둠은…….”
그가 비로소 모든 이지를 상실한 채 자신이 아는 정보를 줄줄이 뱉어 냈다.
검성 이석천이 처한 위기와 어둠 속에 살아 있는 사람들, 죽은 사람들의 목록까지.
모든 걸 뱉어 내고는 후련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부탁했다.
“이제 죽여 줘… 제발. 모든 걸 말했으니까.”
자신을 죽여 달라고 이제 좀 편하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자신이 모든 걸 잘못했으니 이제 놔달라고 빌었다.
그러나.
“개소리 마.”
김두식이 고개를 저었다.
“아직 넌 숨긴 게 남았어.”
그녀의 눈에는 보였다.
주교의 머리통 속, 몽글대는 악의와 비밀들이.
그녀의 머리카락들이 그의 머리통을 파고들었고.
“아, 안돼! 그것만은 안 돼!”
주교가 발악해 보았으나.
머리 깊은 곳에 숨겨 놓았던 마지막 비장의 수가 빠져나가는 게 느껴졌다.
이제 모든 게 끝이라고 생각했던 걸까.
“내가 죽였다!”
“뭐?”
“몇 년 전에 창을 준 어린아이의 영혼을 취했지! 부모님도 없는 고아 주제에 빼액거리며 널 찾아 대더군! 그리고 검을 준 일본의 검수! 놈 또한 죽였지!”
놈이 김두식의 약점이자 그녀가 가장 두려워하는 사실들을 입에 담았다.
“너의 무기가 잡아먹었다고? 하! 웃기지 마라! 네가 잡아먹은 거다! 네년과 관련 있는 자들은 전부 죽거나 불행해질 거야! 내가 그렇게 만들었다! 우리가 그렇게 만들었어! 그렇게 만들 거다!”
이를 끝으로 김두식의 이성이 끊겼다.
* * *
“미안, 미안해… 강현아, 정말 미안해.”
김두식의 이야기 끝, 사과를 들은 강현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김두식의 잘못이 아니다.
그녀는 영혼에 합당한 무기를 주었고 놈들이 그들을 노린 것뿐.
“한 명의 책임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강현이 곧 검성에게 눈짓했다.
“……?”
물론 이석천은 의미를 몰라서 어깨를 으쓱였고.
강현이 다시, 이번에는 확실하게 눈짓했지만.
“뭐?”
이석천은 의아한 표정으로 제자리에 있을 뿐.
퍼억.
황세아 중사가 거의 등짝을 때리듯 밀쳐 내어 이석천과 김두식을 밀착시켰다.
그제야.
“괘, 괜찮아.”
“석천아, 석천아 어떻게 해.”
이석천이 강현의 뜻을 알고는 김두식을 위로했다.
강현이 서로를 부둥켜안은 둘의 어깨너머.
“우으으으.”
흑백산에서 몸을 뒤틀며 괴로워하고 있는 주교를 보았다.
“이제 놈에게 캐낼 것은 없는 겁니까?”
“응, 모두 들었고 찾아냈어.”
“죽이길 원하십니까.”
그의 물음에 김두식도 검성도 놈을 바라보았다.
소용이 다했으니 죽이는 것도 방법이고 끝없는 고통을 감내하게 하는 것도 방법이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다만 그 결정은 김두식이 내려야 하는 것.
강현의 물음에 고민을 거듭하던 그녀가.
“죽이지도 살리지도 않을 거야.”
그리 말하며 놈을 바라보았고.
탁한 은색 빛이 놈을 향하자.
“크르르르륵!”
갈라지는 울음을 마지막으로 주교가 작은 보석으로 변했다.
흑백이 뒤섞여 있는 모양새.
“이 안에서 영원히 고통을 반복하게 되리라.”
그녀의 기도와도 같은 형벌이 떨어졌고.
몸을 떨던 보석이 이내 잠잠해졌다.
그녀가 이를 팔찌로 만들어 손목에 찼다.
“괜찮겠어?”
검성 이석천이 물어보자.
“놈의 업보기도 하고 나의 업보기도 하니까.”
김두식이 아프지만 굳건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자신이 무기를 준 건 일종의 축복.
그들을 찾아가 죽인 건 놈들의 저주.
모든 죽음을 막을 순 없다.
하나 그녀도 배운 게 있다면.
“그냥 무기를 쥐여 주는 것만이 내 일이라 생각했어.”
자신의 사명이 단순히 무기를 전달해 주기만 하는 게 아니라는 것.
그녀의 임무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선물이란 건 주고 나서도 그걸 잘 사용하는지 보아야 했던 건데.”
그냥 은혜를 베풀 듯 툭 던지고 마는 일이 아니다.
받은 이들이 잘 사용하고 있는지, 올바르게 나아가고 있는지 봐야 했다.
“내 두려움 때문에 봐야 할 것들을 외면했고 놈들이 그들을 공격할 틈을 주고 말았지.”
남들을 만나는 게 두려워서 홀로 깊은 공방에 숨어 있었다.
그러나 이젠 그러지 않으리라.
“나 잠깐 다녀와야 할 것 같아.”
그녀가 아픈 표정으로 손목의 팔찌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나에게 무기를 받은 아이들을 찾아 그들이 올바로 자랐는지 또 지금까지 어떤 노력을 해 왔는지 듣고 그들을 도와주어야 할 거 같아.”
새롭게 찾은 자신의 사명.
“이젠 숨어 있지 않고 나가보려고.”
김두식의 결심에.
“열려 있으니 언제든지 돌아오세요.”
“제가 배운 대로 열심히 하고 있을 테니 편하게 다녀오세요, 언니!”
강현과 황세아가 활짝 웃으며 그녀의 결심을 응원했다.
둘을 마주 보며 미소 짓는 김두식의 얼굴이 아까와는 달리 정말로 행복해 보였다.
“자, 이거 받아.”
그녀가 강현에게 무언가를 내밀었다.
“이건?”
“놈이 가지고 있던 거야. 아마 마지막 한 수였겠지.”
그녀의 손에 올려져 있는 새까만 파편 하나.
김두식이 이성을 잃기 전 주교의 머리 깊은 곳에서 빼낸 비장의 수.
아마 놈이 끝까지 버티고 버텼던 이유가 이것 때문이리라.
“괜찮으시겠습니까? 혼자 가셔도.”
“이젠 무섭지 않거든.”
조각을 받아든 강현의 물음에 김두식이 밝게 미소 지었다.
“분명 너와 같이 훌륭하게 자란 이들이 있을 테니까. 그렇게 믿으니까.”
많은 비극을 듣겠지만 그 속에서도 이겨 낸 이들은 분명 존재하리라.
혹시 지금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있다면 도와줄 거다.
그들에게 물건을 준 사람으로서 그리고.
“만물을 제작하는 자이니 그들의 삶도 제작해 주어야 완성이겠지.”
만물제작자로서 책임을 다하기 위해.
“필요하면 언제든지 부르십쇼.”
“언니, 저도 도울 테니 연락주세요.”
그녀의 확고한 결심에 강현과 황세아가 다시 응원을 보냈다.
김두식이 이번엔.
“…….”
“석천아.”
걱정하는 표정을 숨기기 위해 괜히 딴청을 부리고 있는 검성 이석천을 바라보았다.
같이 알고 지낸 세월이 얼마인데 그의 마음 하나 모를까.
그녀가 빙그레 미소 지었고.
검성 이석천이 딴청을 피우다 못 견디곤.
“큼, 크흠. 이거 하나 못 기다릴까.”
“갔다 와도 돼?”
“그럼.”
“진짜? 진짜루?”
김두식이 짓궂게 검성 이석천의 눈을 따라붙을 때.
“두식이 네가 기다린 만큼 기다릴 테니까 얼마든지 갔다 와.”
이석천이 갑자기 그녀의 눈을 빤히 바라보며 답했다.
김두식이 덜컥 멈추었고 이석천이 그녀의 떨리는 손을 잡아챘다.
검성이 진지하게 그러나 마음을 담아.
“오래 기다렸으니 나도 기다릴게. 대신, 약속 하나 해.”
“뭐? 무슨 약속?”
“힘든 일 있으면 가장 먼저 날 찾아오기로. 내가 약속했던 것처럼 그리고 지켰던 거처럼.”
“…알았어.”
검성의 말에 김두식이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야.
“언제든지,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검성 이석천이 굳게 잡았던 그녀의 손을 놓아주었다.
“그럼 모두 갔다 올게.”
어느새 반짝이는 은색으로 변한 그녀가 환하게 웃으며 외출을 알렸고.
[만물제작자 김두식의 의식 접속이 끊어졌습니다]
모습을 감추었다.
잠시간의 침묵.
“그럼 우리도 갈까요?”
강현이 어깨를 으쓱이며 6층을 나섰고.
딴청을 피우는 검성의 옆구리를 쿡 찌르자.
“아, 혹시 또 이성을 잃으면 안 되잖냐. 그때는 막아 줄 사람도 없는데. 그래서 그런 거야, 그래서.”
검성 이석천이 귓바퀴를 붉히며 횡설수설 말을 이었다.
참 솔직하지 못한 사람.
“그런데 앞으로 어떻게 할 거냐.”
“갑자기 진지한 주제로 바꾼다고요?”
“아, 좀 받아 줘라.”
검성이 대화 주제를 바꾸기 위해 강현에게 앞으로의 행보를 물었다.
“일단 확인된 거로는 내 본체가 위기에 처한 상태고 곧 대주교란 자가 널 찾아온다고 하지 않았냐.”
“그렇죠.”
강현을 찾아온다는 대주교도 문제였지만.
“정말 위기에 처했을 거라고 생각합니까?”
강현이 생각하기에 가장 큰 문제는 검성 이석천 본신이 위험에 처했다는 사실.
물론 검성의 생각은 달랐다.
“뭐, 죽을 위기는 워낙 많았어서.”
남들이 죽는다 할 때 항상 살아남았거든.
그가 콧대를 높이며 으쓱댔고.
“너는? 대주교 이길 수 있겠어?”
“언제 제가 지는 것 보셨습니까?”
강현도 누구 제자 아니랄까 봐 어깨를 으쓱댔다.
그런 둘을 보며.
“으휴, 둘 다 정신 차려욧!”
김두식 대신 황세아가 둘의 등짝을 팡팡 때리더니.
“지금 괜찮으냐 안 괜찮으냐가 문제가 아니잖아요.”
가장 중요한 점을 짚었다.
“대주교가 나타나고 검성님이 죽을 위기라는 건!”
물론.
“마지막 싸움이 다가오고 있단 거지.”
“그리고 그 시기를 당겨야 한다는 뜻이구요.”
이미 검성도 강현도 짐작하고 있는 사실.
거기다 강현은 한 발짝 더 나아가.
“놈들이 오는 것보다 먼저 움직여야 합니다.”
그냥 기다릴 생각이 없었다.
지금껏 그저 놈들이 나타나면 그들을 처리하기만 했다.
그러는 사이 어둠은 다른 이들을 죽이고 잡아먹었다.
김두식이 굳이 밖으로 나선 이유.
“만물제작자님은 그냥 그들을 만나러 간 게 아니겠죠.”
“그렇지.”
“그들을 돕고 규합하기 위한 외출.”
김두식이 직접 말하진 않았지만 의도를 짐작했다.
자신의 물건을 받은 이들을 모아 어둠에 대항하려는 계획.
그리고 강현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그녀에게 힘을 더욱 실어 줄 생각이었다.
강현이 그러기 위해 1층 생명의 숲으로 향했고.
숲 구석진 곳.
“서연아!”
자신의 동생을 불렀다.
“오빠아!”
마침 서연이가 강현을 기다렸다는 듯 나타나더니.
포옥.
강현의 품에 안겼다.
1층 관리자가 된 동생에게 강현이 부탁했던 일 하나.
“완성 끝났오!”
서연이가 오빠를 보고 신나서는 그의 손을 잡아 이끌었다.
강현이 서연이의 손에 이끌려 도착한 곳에는.
“짜란!”
어디선가 본 것 같기도 아닌 것 같기도 한 인물 하나가 서 있었으니.
“이거 나를 닮았다?”
검성 이석천을 닮은 남자.
강현이 얼떨떨한 표정을 짓는 검성을 보며 씩 미소 지었다.
“진짜 혼자 보내려 했습니까?”
“뭐?”
“옆에 검수 하나 있으면 든든하지 않겠습니까?”
“너 이 녀석…….”
강현의 말뜻을 단번에 알아챈 검성이 멍한 표정을 지었고.
“같이 가서 보호하고 규합해 오세요. 기다리겠습니다.”
강현이 검성에게 부탁했다.
자신은 군대에 묶여 있으나 검성이라면 또 김두식이라면 어둠에 대항할 이들을 모아 줄 거다.
그러기 위해 준비한 사람 모형.
“도플갱어의 잔해에 생명력과 상상력을 덧입혔구나.”
“네!”
“숲에 흐르는 생명력에 서연이가 만든 물감을 풀어 색칠한 거니?”
“넹!”
“오구, 우리 서연이 완전 똑똑한걸?”
황세아의 말대로 이 모형은 층에 흐르는 생명력과 상상력의 집대성.
그리고.
[권능 빙의를 발현합니다! 검성 이석천의 기억을 모형에 빙의시킵니다!]
[검탑의 생명력과 1층 관리자의 상상력이 도플갱어의 재현력을 보조합니다]
[잠재력 주머니를 개방합니다. 긍정적인 잠재력을 모형에 심습니다. 감정이 활성화됩니다]
[검성 이석천의 모형을 완성했습니다! 현실로 소환이 가능합니다!]
“나도 갔다 오마.”
“갔다 오세요.”
[검성 이석천 모형이 검탑을 벗어나 현실로 넘어갔습니다]
[김두식 이석천의 운명이 움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