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2화 소식
[검탑에 도착하였습니다]
우르르릉! 꾸르르릉!
강현이 처음 검탑에 도착하고 눈을 뜨기도 전에 들려온 소리.
천천히 눈을 뜨고는.
“난리가 났네.”
황당하다는 듯 관자놀이를 짚었다.
분명 얼마 전 황세아와 서윤진을 탑에 데려왔을 때까지만 해도 푸르른 숲 사이 생명수가 졸졸 흐르던 검탑이.
우르르르, 쏴아아아!
거칠게 울고 있었다.
하늘에는 천둥 번개가 끊임없이 번쩍였고 비는 내리다 못해 퍼부었다.
“푸후.”
강현이 눈을 제대로 뜨기 어려울 정도로 쏟아지는 빗줄기를 닦아 내며 발걸음을 옮길 때.
[시설관리부 황세아 중사가 접속했습니다]
“가, 강현아!”
아무래도 강현 혼자만 보낸 게 불안했는지 황세아가 따라 들어왔고.
“엄마, 이게 뭐야?”
그녀도 처음 보는 풍경에 당황했다.
“아까는 이렇지 않았습니까?”
“응, 이 정도는 아니었어. 그냥 화만 좀 내셨는데. 좀은 아니고 좀 많이.”
“지금은 정말 많이 나셨나 봅니다.”
황세아가 자신을 부르러 나간 사이에 무언갈 더 캐낸 걸까.
강현이 치덕치덕 달라붙는 발걸음을 더욱 빨리 놀려.
휘우우우웅.
폭풍우 한가운데 서 있는 검탑 앞에 도착.
“무엇 때문에 화가 났는지는 말 안 해 주셨습니까?”
“그게, 6층에 한참 들어가 계시더니 널 불러오라는 말만 하고 들어가셨어.”
“6층.”
“그래, 밖에서도 살기를 느낄 정도였으니까. 조심하는 게 좋을 거 같아.”
[6층 흑백산]
6층이라면 강현이 얼마 전 검탑에 포함한 층.
[어둠의 빗줄기, 백색으로 타오르는 산. 어딘가에 평생토록 고통받는 죄인이 있다]
다른 층과는 다르게 기다란 설명.
아마 상태창에 쓰여 있는 저 죄인, 검귀가 되어 버린 주교 때문에 김두식이 화가 났겠지.
검탑에 들어선 뒤에도.
마치 불이 꺼진 것처럼 모든 곳이 어두컴컴했다.
밖에서 아스라이 들리는 천둥과 빗소리.
덩달아 검탑 내부에도 마치 귀곡성이 울리듯 음침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괘, 괜찮을까?”
황세아도 불안했는지 강현의 옷 끝을 붙잡으며 목소리를 떨었다.
그런 황세아를 보며.
“괜찮습니다.”
강현이 그녀를 안심시켰다.
그리고.
짝.
그가 박수를 치자.
검탑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어두운 실내가 밝아졌고 밖에서 몰아치던 폭풍우도 뚝 그쳤다.
범람한 시내가 아직 나무들을 휩쓸고는 있지만 곧 원래대로 돌아가리라.
왜냐면.
“이곳은 제 공간이니 문제없습니다.”
검탑은 강현의 공간이니까.
그가 한 층 한 층 올라가며 검탑의 기능을 차근차근 복구시켰고.
마지막.
‘끄아아아악! 아악!’
끔찍한 비명이 흘러나오는 6층의 문 앞에 섰다.
목소리 하나는 이전 흑백산에 남은 주교.
나머지 하나는 김두식의 목소리.
‘괜찮다. 여긴 나의 공간이다. 나의 공간이야.’
강현이 잠시 심호흡을 한 뒤에 벌컥 문을 열었고.
콰앙.
바로 닫았다.
“…….”
“가, 강현아?”
문을 닫고는 침묵하는 강현과 그를 보며 두려움에 떠는 황세아 중사.
강현이 잠시 어질어질하다는 듯 눈을 껌뻑였다.
“그러니까 지금 절 부른 게 맞습니까?”
“응, 분명 강현이를 데려오라고.”
“사람을 만날 상태가 아닌 것 같습니다만?”
“으, 으응?”
“다른 말을 하지는 않았습니까? 모두 죽여 버린다거나.”
“응, 분명 데려오라고만 하셨는데.”
으음, 깊은 침음을 삼키던 강현이.
“우선 옥상으로 올라가야겠습니다.”
먼저 옥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혼자서 감당할 상황이 아니다.
그리고 거기엔.
“…왔냐?”
“오긴 했습니다만.”
홀로 하늘을 보며 서 있는 검성 이석천.
그리고 그의 눈을 보자마자.
“대체 무슨 소리를 들었던 겁니까.”
어떤 일이 있었던 거냐고 물을 수밖에 없었다.
“대체 저 주교라는 자가 무슨 소리를 했기에 선배도 그런 표정을 짓는 겁니까.”
검성 이석천도 눈물을 흘리지 않을 뿐이지 몸으로 표정으로 울고 있었으니까.
그래, 만물제작자 혼자 검탑 공간 전체를 그리 바꾸진 못한다.
검성 이석천도 같이 울었기에, 같이 화냈기에 그런 변화가 가능했던 것.
강현의 물음에 이석천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살아 있다더구나.”
“누가… 말입니까.”
강현이 떨리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주어 없는 말이었으나 직감했다, 그러나 물을 수밖에 없었다.
살아 있다는 말을 하며 이렇게 슬퍼하는 이유.
“누가 죽고 누가 살았습니까.”
누군가는 살았고 누군가는 죽었기 때문이겠지.
강현의 떨리는 숨을 본 검성이 그의 어깨를 짚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부모님은 살아 계신다더구나.”
“…….”
순간 강현의 귀에 이명이 터지듯 삐이 소리가 울렸다.
어떤 무거운 물건, 어려운 훈련에도 흔들린 적 없던 다리가 비틀거렸고.
“가, 강현아!”
황세아가 다급히 그의 몸을 부축했다.
“…괜찮습니다.”
그가 황세아의 손을 밀어내며 다시 자세를 바로잡았다.
아직 들어야 할 이야기가 남았다.
“그러니까, 그게.”
자세는 바로잡았으나 아직 어질어질한 정신은 바로잡지 못했다.
강현이 갈피를 잡지 못한 채 말을 흩뿌려 대었다.
뭐부터 물어야 할까.
아니 기뻐해야 하나?
부모님이 살아 계시니 먼저 기뻐해야 하나?
아니면 아직 듣지 못한 사망자들을 위해 슬퍼해야 하나?
어떻게 해야 하지?
“…….”
결국 강현이 방금까지 검성이 했던 것처럼 하늘로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의 마음을 이해했다.
갑작스레 찾아온 기쁘면서도 슬픈 소식.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다.
적을 상대하는 건 쉬웠지만.
‘제기랄.’
이건 너무나도 어려웠다.
그가 이를 악물며 터져 나오려는 감정을 추스를 때.
“어둠 깊은 곳에 살아 계신다고 들었다.”
이석천이 강현과 같이 하늘을 보며 말을 이었다.
“많은 사람을 구하셨다더구나. 내 본신 옆에서 혼란에 빠진 사람들을 훌륭히 이끌었다더구나.”
이석천에 이어진 말에 강현이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끝까지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다고 하더구나. 놈들도 몸서리를 칠 정도로.”
이번엔 강현이 몸서리를 쳤다.
그 또한 싸워 보았다.
어둠과 그를 따르는 추종자들과.
더욱 열악한 환경에서 놈들과 맞서 싸웠을 사람들.
검성과 자신의 부모님.
“그 부모님의 그 아들 아니겠냐.”
강현이 눈을 뜨자.
억지로 미소 지으며 농을 건네는 검성의 얼굴이 보였다.
강현이 입술을 꾸욱 다물 때.
“괜찮다, 기뻐해도 괜찮아.”
스승이 제자의 감정을 위로했고.
“슬퍼하셔도 괜찮습니다, 슬퍼하셔도 됩니다.”
강현이 그런 스승을 위로했다.
강현의 부모님이 살았다는 건 기뻤지만 죽은 친우들과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면 미안했다.
기쁘면서도 고통스럽고 슬픈 마음.
서로의 감정을 이해했기에.
“괜찮다, 괜찮아.”
“괜찮습니다, 괜찮아요.”
검성과 강현 둘이 서로를 부둥켜안은 채 위로했다.
* * *
감정을 가라앉히고 나자.
“그럼 만물제작자님은 왜 저렇게까지?”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가 떠올랐고, 강현의 질문에.
“나도 중간에 나와서 완전히는 모른다.”
검성 이석천이 지친 목소리로 답했다.
모두 듣지 못했다.
아니, 듣지 않았다.
“너무 괴로워서 중간에 뛰쳐나왔으니까.”
그가 처음 본건 만물제작자 김두식이 이미 귀신이 되어 버린 주교의 영혼을 수백, 수천 번 무너뜨렸다가 재구축하는 모습.
자신의 업보에 더해 김두식의 분노까지 뒤집어쓴 주교의 정신이 점점 허물어졌고.
“놈이 누가 살고 누가 죽었는지 의지 없이 떠들어 댔지.”
그 과정에서 강현의 부모님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들었고 또 자신의 친우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외에도 각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희생과 고통이 있었는지도 들었다.
그리고 그 끝.
“혹시 모를 위험을 모두 제거하려 했다더라.”
그래, 놈들은 그걸로도 모자라 혹시라도 위험이 될 만한 인물들을 하나하나 찾아 죽였다고 했다.
어둠에게 위협이 될 만한 이들을.
만물제작자 김두식이 무기를 준 이들을.
세상에 도움이 될 만한 이들을 찾아 죽였다 했다.
그중에는 서재원도 포함.
놈들은 죄도 없는 이들을.
그저.
“나와 두식이와 관계 있으니까 죽였다고 했지.”
검성 이석천이 고개를 꺾었다.
화날 만도 했다.
자신과 관련 있다는 것만으로도 놈들의 표적이 되었다.
검성은 자신의 실패로 인한 결과를 들으며 죄책감을 느꼈고.
하나, 둘 죽은 이들의 이름이 나열되자 견디지 못하고 뛰쳐나왔다.
반면 김두식은.
“이성을 잃을 정도로 화가 났던 거군요.”
“그래, 그렇지.”
강현이 쉬이 김두식의 반응을 짐작했고 황세아는 슬픈 이야기에 입술을 꼭 깨물었다.
“시간 지나면 화가 좀 풀릴까요?”
“아마 힘들 거다. 심마가 찾아온 듯싶더구나.”
심마, 과거 산군 서대호를 잡아먹었던 마음의 병.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심해지면 심해졌지. 시간이 해결해 주진 못하겠군요.”
“아무래도.”
“그, 욕은 써 보셨습니까?”
“이년아? 그것도 소용없더라.”
“심각하네요.”
“심각하지.
강현과 검성이 아직도 끔찍한 비명이 터져 나오는 6층을 눈앞에 두고는 잠시 심호흡했고.
강현이 황세아를 바라보았다.
“황세아 중사님.”
“으응?”
“들어가면 바로 얼음 장벽을 만들어 주십시오. 최대한 두껍고 최대한 크게.”
“그다음엔?”
잠시 망설이던 강현이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만일 회복이 어려울 시에는 가둬 놓는 방법도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의 비장한 결심에 검성도 황세아도 침묵했다.
이윽고 강현이 6층의 문을 벌컥 열었고.
“끼아아아악!”
날카로운 고함과 함께.
“죽여 버릴 거야! 반드시 찾아서 갈가리 찢어 죽여 버릴 거야!”
고통과 슬픔, 분노에 몸부림치는 김두식의 모습이 보였다.
이전에는 신비로운 은색으로 가득했던 머리카락과 눈동자였다면.
지금은 절망과 분노를 가득 머금은 검붉은 색.
그녀가 인기척에 강현이 있는 쪽으로 고개를 훽 돌렸고.
“하압!”
황세아 중사가 바닥에 손을 뻗으며 기운을 한껏 방출.
[흑백산의 마나를 재구성. 현실을 강화합니다!]
이전보다 더욱 단단하고 두터운 얼음벽을 세워 올렸다.
검탑에 들어와 김두식에게 배운 기술들을 종합하여 만든 능력 강화 방법!
[홀로그램 장치 발동. 마나를 덧씌워 현실을 보강합니다]
그녀의 양팔에 붙은 초소형 홀로그램 장치가 빛을 발하니.
꾸드드드득.
흑백산 바로 옆, 얼음으로 만들어진 산이 생겨났다.
이 정도면 잠깐은 버틸 수 있을 거다.
“두식아!”
“제작자님!”
검성과 강현이 그녀를 설득하기 위해 목소리를 높일 때.
피싱!
검붉은 빛살이 강현의 얼굴 옆을 스쳐 지나갔다.
“…….”
분명 방금 그 두꺼운 얼음산을 단번에 뚫은 거지?
“야, 강현아. 일단 물러나는 게.”
피싱!
다시금 소리가 울렸고 검성의 머리통이 사라졌다!
곧 스멀스멀 다시 재생되었으나.
“…….”
현장에 있는 누구도 입을 열지 못한 채 식은땀만 흘리고 있는 중.
그때.
강현이 오늘 훈련까지도 사용했던 물건을 떠올렸고.
허리춤에서 새까만 수통 하나를 찬찬히 꺼내 들었다.
‘조심조심 소리 안 나게.’
천천히 뚜껑을 열고는.
휑하니 뚫린 얼음 구멍에 입구를 가져다 대니.
슈우우우욱!
[잠재력 주머니가 부정적인 잠재력 분노, 광기, 원망, 절망, 슬픔, 애통을 빨아들입니다! 대상을 만물제작자 김두식으로 한정합니다!]
잠재력 주머니가 순식간에 김두식의 부정적인 감정을 빨아들였고.
“으으으윽!”
그녀의 고통스러운 신음이 흑백산을 메웠다.
분노와 절망이 빠져나간 자리.
후회와 무기력함이 차오르니.
검붉은 색은 사라졌으나 이젠 푸석한 회색으로 변한 김두식이 멍하니 서 있을 뿐.
“심마가 빠져나간 자리에 다른 심마가 들었구나.”
이석천의 말대로 심마가 뒤바뀐 거지 극복한 게 아니다.
물론 강현도 그 사실을 알았고 이대로 끝낼 생각은 없었다.
“흡수할 수 있다면 내뿜을 수도 있겠죠.”
[잠재력 주머니에 보관된 긍정적인 잠재력을 뿜어냅니다! 사기, 열정, 끈기를 만물제작자 김두식에게 주입합니다!]
김두식의 비어 버리고 메마른 마음에 강현이 긍정적인 잠재력을 뿌렸고.
스스스슷.
김두식이 점차 생기를 회복해 갔다.
비록 완전히 광택을 회복하진 못했더라도.
“강현아? 석천아? 세아도 왜 거기서 그러고 있어?”
셋을 알아볼 정도로 회복하긴 했다.
이성을 되찾은 그녀가 땅에 내려섰고.
-끄으으으.
그녀가 검은 비와 백색 불꽃 사이에서 고통받는 귀신을 보고는 퍼뜩 이전 일을 기억해 냈다.
이미 무너진 영혼을 흩어질 정도로 괴롭힌 끝에 알아낸 야기들.
이를 감당하지 못하고 결국 정신을 잃어버렸었지.
그녀가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을 떠올리던 중.
“강현아! 최강현!”
강현을 부른 이유를 떠올리고는 다급히 목소리를 높였다.
“괜찮습니다.”
달려오는 그녀를 살핀 강현이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야.
황세아가 세운 얼음벽이 사라졌고.
강현에게 뛰어온 그녀가 그의 옷소매를 붙잡았다.
“강현아, 그게, 그게!”
그녀가 무슨 말을 할지 몰라 허둥지둥할 때.
“들었습니다. 부모님의 소식이랑 돌아가신 분들에 관한 이야기.”
강현이 이미 들었노라고 그러니 괜찮다고 이야기하려 했으나.
“석천이, 석천이가 곧 죽는데!”
강현도 놀라 멈칫할 만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리고 이어서.
“그리고 대주교, 대주교가 널 죽이기 위해 오고 있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