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화 다시는 까불지 않겠습니다!
군대엔 온갖 사람이 몰려든다.
“우리 부대에 아이비리그 대학 다니던 사람 있었는데.”
“미친, 어디?”
“펜실베니아 경제였다고 들었는데.”
“아니, 그런 인재가 군대에서 뭘 하고 있었냐?”
“보급병이었어.”
“와, 경제적으로 보급품 나눠 줬겠네.”
때때로 이 사람이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는 걸까 생각이 드는 경우도 있다.
군대를 갔던 가지 않았던 흔히 듣는 농담.
군대에선 서울대 수학과가 물품을 세고 홍대 미술 전공이 족구 선을 그린다.
그리고 사실이기도 했다.
“야, 신병. 어디 대학 다닌다고 했지?”
“고려대 다니고 있습니다!”
“그래? 나 연대 다니는데.”
“…….”
“연고전이냐 고연전이냐?”
20대 청춘들이 모이는 군대 특성상 실제로 온갖 대학, 온갖 경험을 가진 이들이 모이기 마련.
대학생, 운동선수, 자영업자, 요리사 등등.
그리고 그중에 때로는.
“야, 너 밖에서 뭐 했냐?”
“대학 다녔습니다!”
“그래? 난 조직 생활했는데.”
“…….”
어깨들이 들어오기도 한다.
온몸에 문신은 물론 험악한 인상과 거친 언행.
물론 양아치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간혹 진짜배기들도 있었다.
물론 모든 이가 험악하기만 한 건 아니었다.
“나는 오히려 건달 했던 애가 후임이라 편했지. 선임들한테는 깍듯하게 하고 후임들만 졸라 잡았거든.”
“그래, 그런 사람들이 오히려 윗사람한테는 예의 바르다더라.”
하나.
“여기가 자대야? 뭐, 별거 없네?”
유덕창 이병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밖에서 못 나가던 건달이 어쩌다 능력을 개방했고.
좀 잘나가 보려다가 결국 능력이 있다는 사실이 발각.
반쯤은 도망치듯 반쯤은 쫓기듯 특임대에 입대했다.
“씨발, 씨발! 씨바알!”
훈련소에서 보내던 첫날밤 얼마나 욕을 되뇌었는지.
“아, 거 조용히 좀 하고 자지?”
“뭐? 이 씨발놈아? 너 뭐라고 했냐? 뒈질래?”
“아니, 그게 아니고.”
같은 훈련병의 핀잔에 그가 대번에 상대를 죽일 듯이 을러대었고.
모두가 그의 시선을 피했다.
생각보다 훈련병들은.
아니, 훈련소에 모인 헌터들은 순진했고 겁도 많았다.
이미 게이트에서 굴러먹을 만큼 먹은 베테랑이었다면 어설픈 협박 따위 신경도 쓰지 않았겠지만.
대부분은 게이트 공략 경험조차 없는 초보자들.
거기에.
“이 씨발. 조직 생활 그만두고 좀 조용히 살려고 하니까 서로들 건들지 맙시다. 괜히 다치기 싫으면.”
그는 어릴 적부터 험한 바닥에서 굴러왔으니.
풍기는 기세가 달랐다.
아직 스물 초반 새내기들이 상대할 짬밥이 아니다.
자연스레 훈련소 생활관은 물론.
“아, 훈련 뭣 같이하네! 정신 안 차리냐?”
“미안.”
“미안? 미안? 말 똑바로 안 할래?”
중대 훈련병들을 보이지 않게 갈궈 대었고.
다른 중대까지 소문이 퍼지며 마치 훈련소 대장처럼 지냈다.
그런 상황이 이어지자.
“뭐야? 헌터라는 새끼들 별거 없잖아?”
유덕창이 단번에 결론을 내렸다.
헌터들도 사람이라고.
겉모습에 겁먹고 욕에 흔들리는 같은 사람이라고.
“평소에 초인이다 뭐다 세상을 지킨다고 하더니만 지랄은… 카악, 퉤!”
헌터들도 자신과 별다른 게 없다는 걸 알고 나자 겁도 사라졌다.
놈들이 말하던 대의도 어차피 돈을 벌기 위함일 뿐.
자신이 그런 세상에서 살았으니 다른 이들도 그럴 거라 생각했다.
그러던 중 문득.
“어디 보자. 그럼 씨, 나도 돈 존나 쉽게 벌 수 있다는 거네?”
그의 생각이 거기까지 이르렀다.
어차피 밖에 있어 봤자 형님, 형님 하며 다른 새끼들 뒤치다꺼리나 해야 하는 삶.
그러다가 운 좋으면 형님 소리 듣는 거고 운 나쁘면 감옥 들어가는 거다.
그런데.
“이제 싸움박질 좀 하고 아가리 좀 털면 돈 번다는 거 아냐? 그것도 왕창?”
자기가 가장 자신 있는 게 싸움이고 아가리 터는 건데.
“존나 쉽네?”
앞으로 펼쳐질 편한 삶이 그려졌다.
뭐, 꼭 헌터로 성공하지 않아도 된다.
잠깐 빵 왔다 생각하면서 지내다가 전역한 후 능력으로 건달 짓 하면 못 해도 한 지역은 먹을 수 있을 터.
그 계획의 첫걸음이 바로.
“거, 신병 받으십쇼. 선임분들.”
내무반을 꽉 잡는 것.
그가 먼저 문신과 흉터를 드러내며 험악한 분위기를 조성했고.
“풋.”
“크흡.”
“피식.”
이어지는 웃음소리에 미간을 와락 찌푸렸다.
“이 씨.”
유덕창 이병이 자신의 전매특허 험악한 인상으로 선임들에게 위협을 가했으나.
“쟤 뭐하냐?”
“야, 눈썹에 쥐 나겠다. 힘 풀어.”
“아, 흥미롭네.”
다들 무슨 재롱이라도 본 것 같은 얼굴들.
지금까지와 너무 다른 반응에 그가 잠시 얼을 빼놓고는 눈을 끔뻑일 때.
“반갑다. 맞선임 이성민이라고 한다.”
이성민이 시원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섰다.
적의 하나 없는 참으로 깨끗한 눈빛.
유덕창이 순간 눈동자를 굴려 상황을 파악했다.
나머지는 다 상병장.
일병은 어리바리해 보이는 놈과 지금 자신에게 다가오는 놈 둘뿐.
맞선임이라는 말을 보았을 때.
‘일단 이 새끼부터 먹는다.’
그나마 가장 만만한 놈이라는 걸 단번에 파악했다.
그래 처음부터 생활관 전체를 먹는 건 어려워도 하나씩 차근차근해 나가면 된다.
유덕창 이병이 이성민의 손을 마주 잡았고.
손아귀에 힘을 주는 순간.
“……!”
첫째로 마치 쇠파이프를 잡은 것처럼 미동도 없는 이성민의 손에 놀랐고.
꾸우우욱.
이내 프레스 기계처럼 손을 쥐어짜는 악력에 두 번 놀랐다.
아무리 힘을 다해 봐도.
“끄으으윽.”
이성민의 손아귀에 자신의 손이 말려 들어가는 중.
유덕창이 고통을 참는 건지 아니면 온 힘을 다하는 건지 모를 신음을 낼 때.
“뭐하냐? 선임 손을 잡았으면 관등 성명을 대야지, 신병.”
이성민이 더욱 환하게 미소 지으며 유덕창을 압박했다.
분명 표정은 밝았으나.
눈에서 풍기는 살기와 손아귀의 힘이 한층 더 강력해졌고.
“어휴, 저놈 저거 성격 봐라.”
“본인 이등병 때 생각은 못 하나 봅니다.”
다른 선임들이 뭐라 하든 말든 이성민이 다시 한번 유덕창을 닦달했다.
“뭐해? 관등 성명은?”
그도 댈 수만 있다면 대고 싶었다.
그러나.
“으으으윽!”
이성민의 악력에 고통을 참는 것만으로도 이미 한계.
입을 열었다간 추한 비명이 나올 것 같아 입 뻥긋 못 하는 상황.
‘이, 이게 아닌데!’
유덕창이 자기 생각과 다르게 돌아가는 상황에 당황했다.
물론 이성민은 건방진 신병을 쉽게 봐줄 생각 따위 없었다.
‘이 새끼가 어디서 궁수한테 악력으로 시비를 걸어?’
활 당긴 세월이 얼만데.
활은 근육으로 당기는 거다.
그중에서도 손가락 힘으로!
이성민이 유덕창의 입술이 시퍼레질 정도로 손아귀를 쥐어짜고 나서야.
“이, 이병 유덕창.”
유덕창이 답할 수 있을 만큼 여유를 허락했고.
“그래, 덕창아. 일단 짐 정리부터 하자.”
기선 제압을 마친 이성민이 직접 유덕창의 더플백을 풀며 짐 정리를 도와주었다.
그 모습을 보며.
“뭐, 걱정은 없겠네.”
강현을 향해 장만수가 미소 지어 보였고.
“가르친 보람이 있습니다.”
강현이 어깨를 으쓱였다.
과거 강현에게 반항했던 기억이 떠올랐던 걸까.
이성민이 흠칫 어깨를 떨고는 더욱 빠른 손놀림으로 유덕창의 짐을 정리했다.
* * *
저녁 개인 정비 시간.
‘하필 이상한 새끼가 걸려서.’
유덕창이 속으로 투덜거렸다.
아까 막 전입 왔을 때는 예상치 못한 녀석 때문에 스타일을 구겼지만.
놈만 아니면 다른 선임들은 얼마든지 이겨 먹을 수 있다.
유덕창이 다음 타깃을 누구로 할지 고민할 때.
“신병아, 이름이 덕창이라고 했나?”
“예.”
마침 장만수 병장이 생활관에 들어왔고.
그가 눈을 빛냈다.
덩치는 좀 있지만 허여멀건 얼굴에 어딘가 멍해 보이는 표정.
딱 봐도 순두부같이 생겼다.
자신이 관등 성명을 대건 말건 신경도 안 쓰는 걸 보니 확실하다.
놈은 호구다.
“운동 가는데 같이 갈래?”
같이 체력단련장에 가자는 말에 유덕창이 벌떡 일어섰다.
이번이 기회다.
가서 여기 이 순두부처럼 생긴 병장을 눌러버리면 된다.
손아귀를 쥐어짠 놈의 선임이니 오히려 생활관 장악이 쉬워지겠지.
유덕창이 한껏 광배근을 펼친 채 장만수를 따라 체력단련장에 들어간 순간.
입구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으흑! 어헉! 으아악!”
“무게 너무 가볍잖아! 새꺄!”
“끄아아악! 하나만 더!”
“죽여! 죽여 버려!”
그의 눈에 펼쳐진 광경은 그야말로 근육 지옥.
어쩌면 무언갈 잘못해 벌을 받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로 고통받는 병사들이 가득했다.
“뭐해? 따라와.”
“어? 예, 예.”
장만수가 자연스레 지옥 속으로 발을 들이밀었고.
간단하게 몸을 풀더니 어느새 바벨을 세팅.
“흐으으읍!”
워밍업을 시작했다.
그런데 그 워밍업조차 심상치가 않다.
바벨을 놓을 때마다 땅이 진동할 정도.
꾸웅, 꾸웅!
“어우! 시원하다!”
대체 뭐가 시원하다는 건지.
장만수가 고개를 털며 좋아했고.
이내.
“어때 한번 들어 볼래? 몸풀기 용도로 괜찮을 거야.”
유덕창에게 자리를 양보.
그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바벨을 잡았고.
“흐으으으읍!”
온 힘을 다해 당겨 보았으나.
얼굴이 시뻘게질 정도로 당겨 보았으나.
바벨은 꿈쩍도 안 했다.
체단장에 들어 온 초보자의 신선한 냄새를 맡은 것일까.
“흐음, 이거 허리도 말렸고 견갑도 고정을 못 하네?”
“뼈는 굵은 게 힘은 좋을 거 같은데?”
“자세만 좀 알려 주고 옆에서 채찍질만 해 주면 금방 늘겠어.”
츄릅, 어느새 다가온 근육 괴수들이 유덕창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근육에 목마른 그들에겐 초보자는 언제나 좋은 먹잇감.
어느새 이리저리 들려오는 코치에 정신을 차리지 못할 때.
“어? 저거 링 아닌가?”
그가 근육 괴수들에게 휩쓸리기 직전, 체단장 한쪽에 마련된 옥타곤을 발견.
“저게 내 전문 분야지!”
얼른 바벨을 놓고서 그쪽으로 향했다.
방금은 뭔가 잘못됐다.
몸만 아프고 귀찮은 걸 왜 한단 말인가.
풍선 근육은 필요 없다.
“인생은 실전이지!”
어차피 싸움 잘하면 장땡이지!
유덕창이 웃통을 훌렁 벗어던진 후, 양손에 글러브를 끼고는 당당히 바깥에 있는 선임들을 훑었다.
몸에 가득한 문신과 흉터.
위협적인 표정과 눈빛.
그러나.
“으음, 저렇게 문신이 많아서야 데피가 잘 안 보이겠는데?”
“체지방이 많은 걸 보니 파워리프팅 위주로 가면 되겠군.”
체단장 근육인들의 눈에는 그저 그의 근육만 보일 뿐.
유덕창이 두들겨 팰 상대를 찾을 때.
“뭐야, 신병 어떻게 여기 왔냐?”
마침 운동하러 온 오목교가 그를 보고는 자연스레 옥타곤에 들어섰다.
“아, 뭐 선임이 데려와서 왔슴다.”
유덕창이 제 세상에 온 것처럼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답했고.
오목교가 눈썹을 꿈틀거리더니.
“좋아. 그 글러브 그냥 폼으로 낀 거 아니지?”
글러브를 끼고는 어깨를 풀기 시작.
“한 따까리 해볼까?”
이어지는 스파링 제안에.
유덕창이 속으로 웃었다.
자신에게 싸움을 제안하다니.
낮에 있었던 일은 액땜이었구나.
‘넌 뒈졌다.’
이건 선임들 앞에서 자신의 힘을 증명할 기회다.
그렇게만 된다면 손아귀 힘에서 밀린 건 아무것도 아니다.
어차피 진짜는 싸움.
신병이 오목교를 반 죽이리라 결심.
선임들이 말리러 들어올 때까지 패야겠다는 기세로 달려들었고.
뻐억!
오목교에게 한 대 맞는 순간.
‘어? 이게 아닌데?’
이번에도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아프다, 뒈질 정도로 아프다!
한 대를 맞았는데도 이렇게 아픈데.
“배에 힘 꽉 줘라. 잘못 맞으면 내장 터진다.”
오목교가 유덕창에게만 들리는 목소리로 작게 속삭였고.
뻑, 뻐억! 퍼퍼퍼퍼퍽!
화려한 연계기를 쏟아부었다.
주먹 한번 뻗어보지 못하고 맞는 와중.
“관등 성명 안대고 선임 함부로 대하고 아주 신났지? 군대가 장난이지? 밖에서 좀 나갔었나 보다?”
오목교의 살기 어린 눈을 마주 보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이러다간 진짜 죽는다.
그가 착각한 게 있다면 바로 훈련병과 자대 배치받은 선임들은 다르다는 점.
그중에서도 3중대, 그중에서도 1분대를 같은 선상에 둔 것.
이들은 이미 헌터 특임대 중에서도 험한 전투란 전투는 다 겪은 베테랑 중의 베테랑.
고작 겉모습에 떨 인간들이 아니다!
빠악!
과거 강현이 그랬듯 오목교가 시원한 어퍼컷으로 유덕창의 턱을 공중에 띄웠고.
바닥에 처참하게 널브러진 유덕창이.
“이병 유덕창. 사, 살려주십시오. 오목교 일병님.”
저도 모르게 목숨을 구걸했다.
그리고.
눈을 까뒤집으며 정신을 잃고는 축 늘어졌다.
신병이 감당하기엔 전입 첫날 스케줄이 너무나 힘들었던 걸까.
“야, 애 잔다. 생활관에 눕혀.”
선임들도 구경 끝났다는 듯 뿔뿔이 흩어진 이후.
“으으윽.”
흐릿하게 밝아지는 시야.
유덕창이 낯선 천장, 아니 이젠 익숙해져야 할 생활관 천장을 발견하곤 눈을 꿈뻑이다.
어디선가 들리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자 선임의 넓은 등판이 보였고.
“이, 이병! 유덕창!”
저도 모르게 힘을 다해 관등 성명을 댔다.
오목교의 가르침이 턱 속 깊이 박였던 모양.
“어, 일어났니?”
뒤를 돌아본 이는 바로 강현.
분대장이지만 존재감이 없던 선임이라 내심 안심할 때.
“이거 때를 잘못 골랐네.”
강현의 곤란하단 목소리가 울려 퍼진 후.
푸쉬시식.
그가 손에 쥔 무언가에서 뿜어져 나온 검은 연기가 생활관을 가득 메웠다.
갑작스레 벌어진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을 보며 유덕창이 후회의 눈물을 흘렸다.
‘다시는 까불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