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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수집으로 무한성장-218화 (218/277)

218화 셋이 같이

강현이 한바탕 검무를 끝내고 통제실로 올라왔을 때.

딸칵. 치이이익.

“고생 많았어.”

황세아 중사가 통제실 한쪽에 놓여 있는 냉장고를 열더니 탄산음료를 강현에게 건넸다.

강현이 단숨에 음료를 꿀떡꿀떡 들이켜다가.

“어? 이거 뭔가 다르네요?”

평소에 먹던 익숙한 맛이 아니길래 확인해 보니.

‘핫나인 넘치는 에너지’라 적인 상표가 보였다.

그런 강현을 보며 황세아가 대수롭지 않게 손을 저었다.

“아, 이번에 새로 만든 제품이야. 회복약이 워낙 맛이 없잖니. 그래서 만든 건데, 어때?”

“맛있어서 놀랐습니다. 나오면 바로 사 먹겠습니다.”

강현이 진짜로 만족하며 음료를 마저 들이켰고.

“괜찮아? 걱정 마, 강현이한테는 무료로 무제한 제공이니까.”

황세아가 당당히 외치며 강현에게 앞으로 ‘대연 시스템에서 개발한 약물 전반을 제공하겠다’ 선언.

[광신적인 전우 황세아의 발명품 전달 수치가 100%에 이르렀습니다. 대연 시스템 최고급 회복약 핫나인을 무한정 제공받습니다]

“자, 여기 방금 마신 빨간 건 체력 회복, 여기 이건 마나 회복이니까 한번 쭈욱 들이켜 보셔.”

치이익, 그녀가 손수 뚜껑까지 따 주며 강현에게 또 다른 물약을 권했고.

강현이 다시금 호쾌하게 물약을 목으로 넘겼다.

알싸하면서도 달달한 맛.

방금 검을 휘두르느라 빠져나간 마나가 금세 차오르는 기분.

그림처럼 목울대를 움직이며 탄산을 마시는 강현의 뒤로.

“으아아악!”

선설민 대령이 연구실 하늘까지 떠올랐다 떨어졌다.

철푸덕!

그가 대 자로 뻗음과 동시에.

“다음 놈!”

검성 이석천의 홀로그램, 이제는 홀로그램의 몸을 빌린 기억 조각이 우렁차게 외쳤다.

검성 이석천에게 불려 나간 결과 벌써 바닥에 널브러진 여명단 숫자만 열댓 명.

이상 상황을 감지한 경보기가 계속 울려 댔으나.

“마나 홀로그램 마나 수치 급격히 상승! 홀로그램 정보 상황 갱신!”

“마나의 움직임이 이전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홀로그램 정보 전체 갱신 중입니다!”

연구원들의 얼굴에는 오히려 즐거움이 피어올랐다.

그들이 보기에도 이전 홀로그램과 지금 홀로그램은 무언가 달랐다.

아니,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이전에는 억지로 만들어 낸 사람과 같이 어색했다면.

“이노무 새끼들아 아주! 잘! 하는! 짓이다!”

지금은 마치 살아 있는 사람처럼 생생하니.

“성격 업데이트 중! 데이터를 수집합니다!”

연구원들도 처음 보는 상황에 정신이 없었고.

“으, 으윽! 왜 이러십니까!”

검성의 검을 받아 내야 하는 여명단 간부들도 정신이 없었다.

분명 자신들이 만든 검성은 이런 성격이 아니었는데?

“아직도 환상에서 못 벗어나서 과거에 사는 놈들! 정신이 있는 거냐 없는 거냐!”

검성 이석천의 우렁찬 호통 소리에 모두가 움찔했다.

그제야 떠올렸다.

본래 검성 이석천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래, 그라면 이랬을 거다.

자신의 홀로그램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면 분명 그들을 혼냈을 거다.

“대체 왜 이런 말도 안 되는 짓에 힘을 쏟은 것이며! 너희들의 환상을 집약한 검성 이석천은 무엇을 위해 존재한단 말이냐!”

더군다나 그것이 개인의 만족을 위함에야!

검성 이석천이 실로 오랜만에 분노했다.

어차피 자신은 세상에 없는 사람.

그저 지나가듯 살피려 했다, 친우의 아픔에도 다른 이들의 한심한 짓을 보고도 강현이 해결하도록 놔두었다.

방법도 없었거니와 약간은 동떨어진 기분이었다.

그런데 이번만큼은 달랐다.

“너희는 대체 무엇을 바라고 원하는 거냐!”

검성 이석천의 호통에 여명단 간부들이 입을 꾹 다물었다.

“진짜 강대한 적을 쓰러뜨리기 위함이야, 아니면 기댈 명분이 필요했던 거야!”

“…….”

“대답해!”

“적을 쓰러뜨리고 싶었습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나아갔어야지!

검성 이석천이 비통한 목소리로 외쳤다.

“앞으로 나아갔어야지. 나는 잊어버리고 너희들의 시대를 위해 수련했어야지. 어째서 홀로그램에 매달려 있는 거냐…….”

강준진을 비롯한 모두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있을 때.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입니다.”

선설민이 억지로 몸을 일으키며 다시금 주먹을 쥐었다.

방금 공격을 막으며 한쪽 팔에 문제가 생겼는지 축 늘어진 왼팔.

그러나 선설민의 눈빛은 오히려 타올랐다.

“당신을 이기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입니다!”

선설민의 고함에 강준진과 다른 간부들이 숨을 들이켰고.

비로소 검성 이석천이 작게 미소 지었다.

“차라리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검성 이석천의 그늘이 얼마나 거대한지! 그리고 넘어서고자 했습니다! 그 그림자에서! 그래야 놈을 이길 수 있으니까!”

선설민의 진심.

강준진이나 다른 간부들의 속은 모르겠다.

그러나 그는 단순히 검성 이석천이 그립기만 해서, 그냥 다시 보고파서 홀로그램을 만든 건 아니었다.

그와 싸워 보고 싶어서.

그리고 넘어서고 싶어서.

그래야 남은 미련을 털고 적을 상대로 싸울 수 있을 것 같았다.

검성을 잡아먹은 상대라는 두려움을 털어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그의 마음이 전해졌던 걸까.

“맞습니다. 우린 나아갈 겁니다.”

강준진을 비롯한 여명단 간부들이 다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곤 이석천을 향해 다시금 무기를 겨누었다.

그 선두에는 선설민 중령.

그가 한쪽 팔을 크게 휘두르더니.

“하압!”

주먹을 내지르자.

공간이 일렁였다.

“지금껏 논 게 아니었단 말입니다!”

일제히 달려드는 여명단 간부들을 보며.

“와라! 하극상의 말로를 보여 주마!”

이석천이 거칠게 미소 지었다.

* * *

싸움이 끝난 후, 다들 어딘가 부러지기라도 했는지 끙끙거리는 모습.

그러나.

“흐흐, 흐흐흐흐.”

“그래, 바로 이거야.”

“좋았어. 그렇게 되는 거였군!”

모두가 만족스러운, 어딘가 좀 무서운 웃음을 흘리며 쓰러지더니.

“후욱, 후욱. 가르침 감사했습니다.”

유일하게 끝까지 버티고 서 있던 선설민이 마지막 감사 인사를 남기고는 풀썩 쓰러졌다.

까무룩 하게 정신을 잃은 와중에도 입가에 떠 있는 만족스러운 미소.

그런 그들을 보며.

“어휴, 징글징글한 놈들.”

검성 이석천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나 입가에 번지는 미소는 참기 어려운 모양.

그럴 만도 했다.

“아주 신나게 쥐어패시던데요?”

강현의 핀잔 아닌 핀잔에.

“쥐어패긴 누가 쥐어패! 다 가르침을 내려 준 거지!”

검성이 화들짝 놀라며 손사래를 쳤으나.

“은근히 봐주면서 신나게 이곳저곳 두들기지 않았습니까. 저는 무슨 고기 두들기는 줄 알았습니다.”

“손맛이 제법 좋더구나. 아니, 그게 아니라.”

입으로는 저도 모르게 사실을 인정.

에라 모르겠다며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뭐, 가르침 값이라 생각하고 좀 쥐어팼다. 어휴,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더구나.”

“대체 기억이 얼마나 왜곡되어야지 아까 같은 홀로그램이 나오는 걸까요?”

강현과 검성이 덩달아 고개를 젓길 잠시.

“그래도 다들 개운해 보입니다.”

“이제 명확해졌을 테니까. 가야 할 방향이.”

[검성 이석천의 가르침으로 여명단 전체의 수준이 한층 올랐습니다!]

[여명단 전체를 사용자의 군단에 편입합니다! 군단 특수부대 여명단을 생성합니다!]

[군단 스킬과 특성을 적용할 수 있습니다!]

[특수부대 생성으로 군단 전력이 강화되었습니다. 이후 특수부대의 활약에 따라 군단 기능이 추가됩니다]

이번 만남을 통해 또 다른 전력을 얻은 셈.

검성 이석천은 자신의 그림자를 지움과 동시에 깨달음을 주어 전력을 강화하려 한 것.

“고맙습니다. 덕분에 싸움이 좀 편해지겠네요.”

강현 또한 그의 의도를 알아채고 감사를 전했고.

“녀석, 눈치만 빨라서.”

검성이 멋쩍은 듯 괜히 머리를 긁적일 때.

-홀로그램 해제하겠습니다.

검성 이석천의 모습이 파스스스 사라졌다.

“…….”

문득 강현이 미간을 찌푸렸다.

이석천의 기억도 언젠간 이렇게 사라져 버릴까.

모든 싸움이 끝나고 나면.

이렇게 덧없이?

“강현아! 다른 분들 괜찮아? 살아 계신 거지?”

“일단 핫나인 나눠 드리겠습니다. 중대장님, 좀 도와주십시오. 강현아, 좀 도와줘!”

서윤진 대위와 황세아 중사의 부름에 강현이 걱정을 뒤로 미루어 놓고 발걸음을 옮겼다.

방법이 있을 거다.

이석천의 기억을 사라지지 않게 할 방법이.

* * *

“계급에 상관없이 여명단이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불러 줘.”

“그분의 제자인 자네가 이제 단장이라 생각하고 있으니까.”

“국가를 보호하고 적을 멸하는 것. 그게 첫 번째 가치니 계급 따윈 중요치 않지.”

강현이 차 안에서 스쳐 지나가는 풍경을 보며 여명단의 마지막 인사를 곱씹었다.

가장 중요한 가치 앞에선 계급 따위 중요치 않다.

상대가 상병이든 장군이든 목표에 부합하는 의견을 따른다.

“흥, 녀석들 그래도 마지막엔 쓸 만한 말을 하더구나.”

검성 이석천도 칭찬할 정도.

다만 강현이 고민하는 건 한 가지.

‘나는 그러고 있는가.’

자신 또한 목표를 위해서 어떠한 조건도 따지지 않고 움직이고 있는가.

저들처럼 자신의 위세나 걱정거리 등을 버리고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여명단의 말에 강현이 자신을 되돌아보았다.

‘목표는… 사람들의 일상을 지키는 거.’

이전 많은 위기 속에서도 강현을 움직이게 했던 목표.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여겼다.

오히려 손에 넘친다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아니.

‘이건 목표일 뿐이지 원인이 아니야.’

어쩌면 강현은 이제껏 자신이 원인이 아닌 현상에 집착하고 있던 건 아닐까 고민했다.

“그걸 무어라 부르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놈이 지난 비극의, 아니 모든 비극의 시작이라는 건 안다.”

분명 강준진이 그리 말했다.

“그래, 누군가는 놈을 신, 우주, 운명 등등으로 부른다. 벗어날 수 없는 그 무엇이라고들 하지. 하지만.”

그가 번뜩이는 눈으로 강현을 보며 꺼낸 말.

“우린 놈을 어둠이라 부른다.”

강현이 보았던 놈의 정체와 같다.

강준진을 비롯한 여명단 간부들이 두려움 속에서도 확고한 의지를 표명했다.

“그리고 그 어둠을 살랐을 때 지금껏 우리를 괴롭혔던 저주들, 비극들, 상처들이 멈출 거라고. 그리 생각하고 있지.”

강준진은 현상이 아닌 원인을 멈추어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강현도 동의했다.

이전 타란툴라를 죽였을 때나 어머니의 기억 조각을 만났을 때는 아직 시기가 아니라 생각했다.

당시에는 적은 멀리 있었고 자신은 약했으니까.

하지만 분명 그 순간은 올 거다.

지금도 점점 다가오고 있고 그리 멀지 않았다.

‘어둠과 마주치는 순간.’

그때를 위해.

강현이 진지하게 앞으로의 방향과 당장 해야 하는 일들에 대해 고민할 때.

쿡, 쿡쿡, 쿡쿡쿡.

“…….”

“얘는 왜 이럴까아?”

뒷자리에서 몸을 내민 황세아가 강현의 볼을 콕콕 찔러 댔다.

“황세아 중사, 위험해요.”

운전하던 서윤진 대위가 그녀를 타일러보았으나.

“흐음, 볼은 말캉말캉하네?”

그녀가 강현의 볼을 주욱 잡아당기며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요즘 뭐가 그렇게 바쁘고 고민이 많아서 우리한텐 신경도 안 쓰실까?”

그녀의 물음에 막 위험하다며 재차 경고하려던 서윤진도 입을 다물고는 힐끔 강현의 눈치를 살폈다.

그래, 안 그래도 그녀도 묻고 싶었다.

아니, 묻기는 했는데 직설적으로 묻기가 어려워 이리저리 돌려 물었다.

그러나 황세아는 그런 성격이 아니다.

“이 굳건한 입매 안에 뭔가를 숨겨 놓은 게 분명한데 말이야. 입이 간질간질하진 않니?”

그녀가 이제는 강현의 얼굴을 떡 주무르듯 입매를 올렸다 내렸다 했다.

“말해도 괜찮아 어차피 다들 볼 거 못 볼 거 다 봤는데 이제 와서 새삼스레?”

“볼 거, 못 볼 거?”

황세아의 과감한 발언에 서윤진이 눈을 꿈뻑거리며 침을 꼴딱 삼켰고.

“어머, 중대장님도 가끔 내숭 떠신다니까. 이미 강현이랑 그렇고 그런 거 다 했잖습니까? 저도 그렇고.”

황세아가 이번엔 타깃을 바꾸어 서윤진을 공략했다.

“뭐, 뭘 해요!”

그녀가 다급히 목소리를 높이자 차가 출렁였고.

강현과 다르게 즉각적인 반응에 황세하가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은근히 놀리는 맛이 있다니까.

그녀가 만족하며 이번엔 어떻게 놀릴까 입맛을 다실 때.

“두 분도 여명단에 입단하신 겁니까?”

강현의 입이 열렸다.

“그렇지.”

“난 예전부터 포함되어 있었고.”

“아, 정말요? 황세아 중사 원래 여명단이었어요?”

“네, 그래서 입대한 겁니다. 홀로그램 장치 재현 때문에.”

“아아, 그래서 군대에 입대했구나.”

비로소 밝혀진 황세아 중사 입대의 진실에 서윤진이 감탄했고.

강현도 꺼내려던 말을 잠깐 멈추고선 감탄했다.

그만큼 대연 시스템의 자제인 그녀의 입대는 의문이 많았으니까.

“그래서 할 말은?”

황세아가 괜히 이야기가 옆으로 흐르지 않게 다시 줄기를 잡았고.

“검성 이석천의 홀로그램. 그것보다 더 현실감 있는 게 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강현의 질문에.

“검성님을?”

“홀로그램보다 더?”

서윤진은 검성에 황세아는 홀로그램에 집중했다.

그리고 서윤진이 문득.

“설마 거기를 말하는 거니?”

이전 강현과 함께 훈련했던 죽어도 죽지 않는 공간을 떠올렸다.

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더는 망설이지 않으리라. 어떠한 사정에도 상관없이 놈을 만날 때를 준비하리라.

놈을, 비극의 원인인 어둠을 죽이기 위해.

결심을 했으니 실행에 옮기는 게 당연.

“두 분의 힘이 필요합니다.”

강현이 둘을 돌아보며 부탁했고.

서윤진이 강현의 부탁에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의 부탁인데 거절하겠는가.

“그럼 저기서 쉬었다 갈까? 힘을 주려면 휴식도 필요하니까.”

황세아의 손가락이 가리킨 곳은 바로 호텔.

“셋이 같이?”

그녀가 끈적한 목소리로 물었고.

“진짜 미쳤나 봐!”

서윤진이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며 버럭 할 때.

“좋습니다.”

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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