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7화 진짜와 가짜
연구실 중앙.
검을 늘어뜨리고 있는 검수.
검성 이석천.
정광이 넘치는 눈, 바른 자세와 몸에서 풍기는 위압감.
잠시 주변을 둘러보던 이석천의 눈이 강현을 향했고.
“자네는 이름이 무엇인가?”
나직한 목소리로 강현의 이름을 물었다.
“…상병 최강현. 특임대 소속입니다.”
강현이 어딘가 억눌린 목소리로 자신의 소속을 밝혔고.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전우였군. 노고가 많네.”
검성이 강현을 보며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아, 네. 네, 감사합니다.”
강현도 덩달아 마주 인사하며 힐끔 옆을 보자.
“그러니까…….”
또 다른 검성 이석천이 얼빠진 표정으로 자신의 홀로그램을 보는 중이었다.
“이게 나라고?”
저도 모르게 튀어나온 황당함 가득한 목소리.
강현이 터지려는 웃음을 억지로 참아 내었고.
“아, 아니지! 맞지! 이게 내 원래 모습이었지!”
검성 이석천이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서는 고개를 과장되게 끄덕였다.
그래 자신은 원래 이렇게 위엄 있고 멋지고 강인한 사내였다.
“큼, 크흠! 내가 원래 이렇게 멋지고 대단한 사람이었다. 이 말이야.”
콜록, 콜록, 큼, 크흠. 왜 사레가 걸리고 난리냐.
억지로 홀로그램의 위엄 있는 목소리를 따라 하려던 검성이 목을 붙잡고는 캑캑대는 동안.
“자네가 나의 전승자라는 이야기는 들었네.”
이번엔 홀로그램 이석천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전식을 모두 깨우쳤다지?”
“네? 네, 그렇습니다.”
“뛰어난 인재로군. 자네와 같은 친구가 군대에 있어서 참으로 다행이네. 미래가 밝아.”
하하하하하.
홀로그램의 인자한 웃음이 연구실로 퍼져 나갔고.
“타임! 타임입니다!”
강현이 다급히 손으로 T자 모양을 만들어 보이며 시간을 요청했다.
“왜? 왜 그래?”
뭔가 커다란 문제라도 있는 걸까.
강준진이 통제실에 있는 마이크로 이유를 물었고.
“그, 정말 검성 이석천 님의 성격도 복사한 것 맞습니까?”
강현이 되물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다.
그의 물음에.
“그럼! 당연하지! 우리의 기억은 물론 각종 미디어와 여러 사람의 증언으로 되살린 홀로그램이다.”
강준진이 너무나도 확신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자신감을 가져라! 자랑스러워해라. 그분이 바로 너의 스승이다!”
그래, 참으로 멋진 스승이긴 한데.
그럼 저기 옆에서 알짱거리는 사람은?
“쓰읍? 흐음. 오호. 이렇게 가슴을 부풀리고. 그렇지. 이 자세네.”
괜히 홀로그램 옆에 서서 비슷한 눈빛과 자세를 연출하려 애쓰는 검성 이석천의 기억 조각은?
“하아.”
뭔가 그 모습이 안쓰러워 보이는 건 왜일까?
강현이 까마득해지는 눈앞을 가리며 한숨을 내쉬자.
“도, 동정하지 마! 기억이 완전하지 않아서 그럴 뿐이니까!”
이석천이 그 한숨의 의미를 대번에 이해하고는 강현에게 버럭 소리 질렀다.
옆에서 강현을 인자하게 기다려 주는 홀로그램과 더욱 비교되는 모습.
검성도 이를 깨달았는지 재빨리 인자한 신색을 가장했으나.
“안 어울립니다.”
강현의 단호한 답에.
시무룩한 표정으로 비켜섰다.
“무엇이 말인가?”
홀로그램의 물음에 강현이 고개를 흔들며 아무것도 아니라 하자.
“그럼 슬슬 후식을 보여 줄 테니 가져가게.”
홀로그램이 흔쾌히 검을 들어 올리더니.
기대하고 기대하던 해파칠십이검 후식, 월하유성검을 펼치기 시작했다.
해파칠십이검 전식은 한 호흡에 몰아치는 검.
강현이 펼치는 검무나 뫼절 같은 경우는 재해석을 통해 이루어 낸 또 다른 경지일 뿐.
후식과는 이야기가 달랐다.
홀로그램의 검이 일정한 검로를 따라 움직인다 싶더니.
“와.”
허공에 작은 달이 떠올랐다.
홀로그램 검성의 검이 더해질수록 달이 점점 크기를 더해 갔다.
상반신을 넘어 몸 전체를 가릴 정도로.
이후에는 몸을 넘어 시야를 채울 정도로.
이윽고 그가 검을 위로 치켜드니.
둥실.
하얗고 시린 달덩이가 연구실 위로 떠올랐다.
회색빛 연구실 천장 위에 달이 떠오른 요상한 풍경.
“이것이 월하.”
그 아래, 눈을 반개한 검성 이석천의 가르침.
이어서.
그가 하늘을 향해 검을 찔렀고.
검이 허공을 찌를 때마다 달 주위에 별빛이 떠올랐다.
점차 연구실 천장을 메워 가는 달과 별.
그야말로 월하유성이니.
“해파칠십이검 전식이 바다와 파도를 만드는 것이라면 월하유성검은 하늘을 만드는 것이다.”
이석천의 홀로그램이 강현을 바라보며 가르침을 이어 갔다.
해파칠십이검 전식이 파도와 같이 적을 몰아치는 검이라면 월하유성검은 하늘을 만드는 검.
그리고 이 하늘은 검수의 검 끝을 따라.
우우우웅.
휘도는 세상.
“검 끝으로 하늘을 만들고 검 끝으로 하늘을 움직인다. 인력이 아닌 천력. 이게 바로 월하유성검의 요체이니.”
검성 이석천이 검을 아래로 내리긋자.
유성이 땅으로 쏟아졌다.
점멸하는 별빛 속 모든 걸 가르고 터뜨릴 듯한 살기.
아직 달은 움직이지도 않았으나.
분명 홀로그램이 펼친 월하유성검은 오싹거릴 정도로 강하고 아름다웠다.
그러나.
“안 어울립니다.”
강현이 고개를 저었다.
안 어울린다.
검성의 검이라고 하기엔 어색했다.
자신 또한 해파칠십이검의 전식을 배웠고 깨달음을 얻을 정도로 경지에 올랐다.
본능이 말해 주었다.
저건 아니라고.
“검성 이석천이 펼칠 만한 검이 아닙니다.”
강현의 부정에.
“내 검을 내가 펼칠 검이 아니라 본다?”
홀로그램이 의아하다는 듯 되물었다.
스승의 가르침을 거부하는 제자와 그의 부정을 이해 못 하는 스승.
하나 이는 단순히 어린 반발심에서 나온 말이 아니었다.
[퀘스트 보상 – 불완전한 해파칠십이검 후식]
불완전하단 의미를 알겠다.
홀로그램은 월하유성검을 따라만 하고 있다.
그리고 강현은 월하유성검을 아예 모르는 게 아니었다.
[연구 책임자의 눈, 흐름 파악, 마나 분석, 이전 사용자의 경험과 검성 홀로그램의 검술을 비교 분석합니다!]
[월하유성검 초반과 싱크로가 맞지 않습니다! 경험을 획득할 수가 없습니다]
전역한 장건철의 검에서 월하유성검의 초반을 얻었기에 더욱 확실했다.
무언가 이상하다.
그런데 문제는.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자신도 월하유성검 전부를 아는 게 아니니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그런데 그때.
“저게 월하유성검이라고?”
검성 이석천의 얼빠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는 전혀 다른 뜻.
“지금 저딴 검이 월하유성검이라고!”
열화판도 정도가 있는 거지!
그가 분노와 어이없음이 담긴 표정으로 홀로그램을 쏘아보길 잠시.
“저건 아니다. 저건 아니야. 강현아, 눈 감아라. 차라리 보지 않는 게 나은 검이다.”
검성 이석천이 강현에게 저건 네가 배워야 할 검이 아니라며 날뛰길 잠시.
“그래! 차라리 내가 알려 주면 되지. 그런데 어떻게?”
검성 이석천이 고민했다.
자신의 기억도 완전하지 않다.
“검은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저게 아니라는 건 알겠어.”
하지만 불완전한 기억으로 보기에도 저건 아니다.
자신의 홀로그램이라고 만들어 놓은 건 껍데기에 불과할 뿐.
따지자면 자신의 기억 조각 일부 중 일부에 불과할 뿐.
“잠깐, 기억 조각?”
그가 잠시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하다 손뼉을 딱 쳤다.
“아! 그거다!”
저 말 같지도 않은 검술이 아니라 진짜 월하유성검을 알려 줄 방법!
검성 이석천이 강현을 바라보았고.
손가락을 뻗어 홀로그램을 가리키며.
“가서 더듬어라.”
황당한 소리를 내뱉었다.
물론.
“뭘 더듬습니까? 정말 정신 차리세요!”
강현이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며 고개를 저었지만.
“야, 너 검술 배우기 싫어? 저런 가짜 검술 배울 꺼냐고!”
검성 이석천이 이번엔 월하유성검을 핑계로 강현을 내몰았고.
“으윽.”
강현이 느릿느릿 홀로그램 앞으로 다가가서는.
“저 스승님.”
“그래, 제자야.”
“악수라도 한번 할 수 있겠습니까? 이리 뵌 게 너무 감격스럽습니다.”
마음에 있지도 않은 말을 하며 악수를 청했고 너그러운 스승, 홀로그램 이석천이 손을 마주 잡자.
[고물 대연 시스템 연구실 홀로그램 장치에 접촉했습니다! 이전 수집한 적 있는 고물입니다]
[기존 고물 안에 담긴 새로운 경험 검성 이석천의 기억 조각을 획득합니다!]
[기억 조각을 흡수합니다! 닿은 면적이 클수록 흡수 속도가 상승합니다]
“스승님!”
상태창을 확인한 강현이 홀로그램을 와락 안았고.
엄청난 속도로 기억 조각을 흡수.
“바로 그거다, 제자야!”
검성 이석천이 신난다는 듯 손뼉까지 치며 환호했다.
강현으로선 어쩔 수 없는 선택.
이미 이상한 짓을 너무 많이 했다.
혼잣말은 물론이고 안 어울린다는 둥 또 지금은 홀로그램을 상대로 악수까지.
이러다간 의심을 받게 생겼으니 그 전에 얼른 기억 조각을 회수해야 한다.
그러나.
“킁, 크흠. 짜식이 괜히 사람 찡해지게.”
“그러게 말입니다…….”
“되살아난 검성님과 그의 제자가 재회하는 장면 같지 않은가!”
오히려 통제실에 있는 여명단 간부들은 찡해지는 코를 붙잡고선 감동을 삼켰다.
물론 정작 당사자는 이를 보며.
“어휴, 저놈들을 더 갈궜어야 했는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중.
[홀로그램에 담긴 검성 이석천의 기억 조각 회수 완료!]
[기억 조각 모음: 80% 도달]
[기존 보상을 강화합니다! 월하유성검 중반식을 획득합니다! 검성 이석천에게 이를 직접 사사합니다!]
곧 강현이 뭔가 싸한 느낌에 미간을 찌푸리자.
“으윽.”
홀로그램의 입에서 불길한 소리가 흘러나왔고.
“에잇.”
“아니, 진짜!”
강현과 검성 이석천이 후다닥 서로 거리를 벌렸다.
둘 다 처참하게 일그러진 얼굴.
분명 방금 그 소름 돋는 느낌은.
“왜 거기 들어가 있습니까?”
검성 이석천의 기억이 홀로그램에 깃든 느낌!
강현의 물음에 이석천이 껄렁거리며 검을 들어 올렸다.
“왜냐니? 직접 검술 알려 주려고 나타났지. 첫 계승자 되기 싫으냐? 엉?”
확실히 홀로그램과는 모양새가 달랐다.
장난기 가득한 눈빛, 어딘가 껄렁거리는 걸음걸이, 동네 마실이라도 나온 듯 편안해 보이는 자세.
그러나.
“이제야 어울립니다.”
강현은 피어나는 미소를 감출 수 없었다.
기세만은 진짜였으니까.
홀로그램의 기세가 어딘가 인공적이었다면 지금 보이는 검성의 기세는 실로 소름이 끼칠 정도.
강현이 긴장하며 검을 들어 올렸고.
검성이 마주 웃으며 하늘로 검을 휘두르니.
파스스스.
이전 홀로그램이 그려 놓았던 달과 별이 일제히 스러졌다.
그가 번뜩이는 눈을 들어 강현을 바라보며 진짜 월하유성검의 요체를 입에 담았다.
“달과 별이 어디에 떠오르냐?”
“하늘?”
“우주다. 그렇다면 우주는 어디에 있느냐?”
“…대기권 밖에?”
“이놈아, 정신 차려라. 대기권 밖으로 검을 휘두르면 뭐가 되겠느냐? 또 다른 우주 말이다.”
“소우주. 자신 말입니까?”
“그래, 우주는 내 안에 있으니. 이를 꺼내고 펼쳐 우주를 만들어라. 먼저 도화지가 있어야 그림을 그리지.”
말을 맺은 검성 이석천이 검을 휘둘렀다.
처음은 역시나 해파칠십이검의 전식.
연구실 전체의 소리가 사라졌고 공간을 장악하니.
위잉, 위잉, 위잉.
뭔가 이상함을 감지한 연구실 장치들이 경보를 울려 댔다.
“어어? 이거 왜 이래?”
“멈출까요? 아무래도 홀로그램이 과부하 되었나 본데요?”
“아무래도 연구 중이라 완전하지 않나 봅니다.”
연구원들과 간부들이 어찌 된 일인지를 몰라 웅성거리는 사이로.
“그냥 두셔도 됩니다.”
나긋한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충성. 중사 황세아. 도착했습니다.”
연락을 받고 막 연구실에 등장한 황세아가 고개를 저으며 실험을 중단하려는 연구원들을 말렸다.
“이제부터가 시작입니다. 그러니 다들 기다리십시오.”
그리고 그녀의 말대로.
“공간을 장악하고 그곳에 소우주를 쏟아내는 것. 이게 월하유성검의 첫걸음이다.”
검성이 전하는 요체에 강현의 눈이 점점 깊게 침잠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또한 자신의 검을 휘두르니.
잠잠했던 공간에 공명음이 들어찼다.
침묵과 공명, 검성의 공간과 강현의 공간이 어우러졌고.
“네가 획득한 초반을 보여 봐라.”
이석천이 제자의 검을 기다렸다.
강현이 잠시 자신의 소우주를 떠올렸고.
하늘을 향해 검을 흩뿌리니.
짙푸른 마나가 공간에 더해졌다.
일 검 일 검을 휘두를 때마다 마치 물감을 뿌리듯 퍼렇게 물들어 가는 공간.
그러나 곧.
[월하유성검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합니다. 공간이 사그라듭니다]
초반만 알고 있는 강현의 한계가 드러났다.
그리고 그때.
“그다음 검이니 잘 보거라.”
이번엔 검성이 제자의 검을 보조하니.
그의 마나가 더해지자 마치 노을이라도 지듯 붉은 기운이 뒤섞여 퍼져 나갔다.
강현이 휘두른 열두 번의 검.
거기에 얹은 검성의 여덟 번의 검.
총 스무 번의 검으로 생겨난 노을 진 하늘.
이후 검성이.
“소우주의 도화지를 펼쳤다면 자신의 심상을 그리는 것이 이치.”
네 번의 검을 하늘 중앙에 휘돌리니.
“달이다…….”
“진짜 달이야.”
연구원을 비롯한 모두가 입을 쩍 벌렸다.
아까는 분명 같은 달이었어도 이렇게 생동감이 넘치지 않았는데.
“이게 바로 진짜 월하유성검의 월하다.”
검성 이석천이 자랑스러운 듯 달을 바라보며 웃었다.
이른 시각에 뜬 달이라 희끄무레하고 흐릿했으나.
오히려 아까 홀로그램이 그린 선명한 달은 비교도 못 할 만큼 강하고 아름다우니.
[검성 이석천의 직접 사사로 월하유성검의 요체를 획득했습니다! 월하유성검 스킬 레벨이 대폭 상승합니다!]
[월하유성검 중반식을 획득! 이전 초반식과 결합하여 월하를 그릴 수 있습니다!]
강현도 새로운 깨달음에 만족하며 그를 따라 씩 미소를 지을 때.
“야, 너희 다 내려와.”
검성의 수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