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3화 탕수육이 식기 전에
강현이 도착하기 전.
“…으음.”
“어허….”
“과연 그게…….”
무거운 신음과 탄성만이 중식당 내부를 떠돌았다.
자리를 가득 메운 간부들의 얼굴에 떠오른 복잡한 표정들.
감탄, 경악, 기쁨, 의심, 경계.
다만 3군단 소속 간부들의 얼굴에는 감탄과 기쁨이 주된 감정이었다면.
“정말 가능한 일이란 말입니까?”
타 부대 간부들의 얼굴엔 경악, 의심, 경계가 더욱 짙었다.
방금까지 강준진과 선설민의 입에서 흘러나온 이야기들.
강현의 활약은.
“그 모든 걸 혼자서?”
“대체 왜 군대에 그런 헌터가.”
“우리가 해 온 전투를 합한 것보다 더 위험한 작전들 아닙니까?”
그들로서는 쉬이 믿기 힘들 정도.
단순히 강현이 병사라서 믿지 않는 건 아니었다.
“그런 커다란 사건들이 어떻게 언론에 흘러나가지 않았단 말입니까.”
“누구라도 알 법한 활약들 아닙니까.”
군대라는 같은 조직에 있는 그들조차도 몰랐던 강현의 활약.
알음알음 퍼져나가긴 했으나 이어진 언론의 침묵과 어딘가 비어 있는 진실 덕에 가려진 이야기.
마치 누가 의도라도 한 것처럼 소문은 금세 사그라들었다.
“가려야 했으니까.”
“강현이가 노출되면 노출될수록 위험하다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강준진과 선설민이 누군가의 의도가 있었다 고백했다.
“…설마.”
“그분들도 인정하신 겁니까?”
그 누군가가 누구인지 짐작하는 모양새.
언론과 군대에 영향력을 행사할 정도라면 후보는 어차피 몇 없다.
강준진과 선설민의 묵언의 동의에 몇몇 간부가 얼굴에 덮여 있던 의심을 지워 냈다.
그렇다면 믿을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봐야겠습니다.”
“아직 너무 어린 친구입니다. 실제 전력이 되더라도 그를 앞에 세운다는 게…….”
“아직 더 성장을 시키고, 미래를 맡겨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직 나머지는 후일을 맡겨야 하는 것 아니냐며 고개를 저었다.
그들이 공에 욕심이 난다거나 또는 단순히 3군단의 위세를 막기 위해 그러는 것은 아니었다.
이미 뜻을 같이하는 동지들.
거기다.
“검성의 제자라는 것도 믿습니다. 그분들의 인정이라면 더욱요.”
“검성님의 제자라는 걸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이들은 자리에 없는 검성을 주축으로 똘똘 뭉친 사내들.
공과 명예 따위는 이미 사소한 것으로 치부하며 살아온 자들이다.
그렇기에 충성스럽고 가장 믿을 수 있는 전우들.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설득하기 어려운 부분도 존재했다.
“다른 이의 의견만으로 모든 걸 맡기기는 어렵습니다.”
“저희도 그를 보아야겠습니다.”
계급을 뛰어넘은 요구.
그러나 강준진과 선설민은 그들을 탓하거나 자신들의 의견을 강요하지 않았다.
이미 이 자리는 계급 따위에 얽매이는 자리가 아니다.
개인의 영광을 버리고 적을 맞이하기 위해 모인 이들.
대의 앞에선 계급은 사소한 것일 뿐.
스스로가 납득해야 한다.
그리고.
“안 그래도 이곳에 오라고 했다.”
“서윤진 대위가 함께 올 거니까 조금만 기다리세요.”
강준진과 선설민은 자신 있었다.
이들을 설득할 자신도 있었고 강현이 이들의 신뢰를 얻어 낼 거라는 자신도 있었다.
왜냐면.
강현이니까.
백 마디 말보다는 한 번 보는 게 나을 거다.
둘이 침묵을 지키며 기다릴 때.
“새벽, 첫 빛줄기가 될 남자를 데려왔습니다.”
서윤진이 강현을 데리고 등장.
강현과 여명단이 처음으로 조우했다.
그리고 방금까지만 해도 강현에 대해 회의적인 발언을 하던 대부분이.
“음.”
“이건 확실히.”
“인정할 수밖에.”
강현을 마주하고는 얼굴에 희미하게 남아 있던 의심마저 싸그리 지워 냈다.
단정하면서도 단단한 눈빛, 자연스레 풍기는 기운.
강하다.
강현에 대한 소문을 들어서일까, 왜인지 더 믿음이 가는 것은.
다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확실히 보기에는 믿음직스러워 보입니다.”
“보기에는 확실히요.”
소수의 인원이 아직도 강현에 대한 의심을 지우지 못한 채 자리에서 강현을 살폈다.
“하지만 저 친구가 정말 우리의 앞에 서야 한다는 건 아직 동의할 수 없습니다.”
“이봐, 그렇게까지 말할 건 없잖아.”
결국 계속된 의심에 지친 3군단 간부가 상대에게 핀잔을 주었고.
다른 이가 그 말에 반박했다.
“그렇게까지 해야 합니다.”
그가 강현을 똑바로 마주 보며 입을 열었다.
“우리는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세상을 위해 모였지 않습니까.”
“그건…….”
상대가 뭐라 하기 전에 그가 말을 이었다.
“단 한 번의 기회입니다. 여러 번이라면 이렇게까지 말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러나 한 번의 기회이기에 이렇게까지 확인하려는 겁니다.”
“수많은 사람의 목숨이 달린 일이니까 말입니다.”
그들의 말에 몇몇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으나.
대부분은 수긍하는 눈치.
강준진과 선설민을 믿는다.
그리고 강현에게 호감도 있다.
그러나 가장 선봉, 그것도 젊은 그를 죽음의 자리로 내모는 건 다른 이야기다.
“가장 강력한 적, 그것도 가장 위험한 자리에 저 젊은 청년을 내모는 건 글쎄. 고민이 되는군.”
이미 퇴역한 군인의 한마디.
그들이 싸울 적은 검성 이석천마저 잡아먹어 버린 괴물이자 모든 일의 원흉.
그리고 강현은 검성의 제자.
어쩌면 그분의 제자마저 같은 운명에 내모는 건 아닐까.
사실 이런 불안감도 존재했다.
그들이 서로를 보며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을 때.
“검성 이석천의 제자이자 3군단 헌터 특임대 상병 최강현.”
강현의 목소리가 중식당에 울려 퍼졌다.
크게 말하지 않았으나.
모두의 시선이 강현에게로 향했고.
“여명단 선배님들을 처음 뵙습니다. 충성!”
강현이 존경심을 담아 경례했다.
오는 길에 서윤진 대위에게 들었다.
“여명단. 네가 마주한 그것. 나도 옆에서 본 그걸 막기 위해 군대 내부에 만들어진 비밀 조직이야.”
차 안, 스치는 풍경.
서윤진이 강현에게 여명단이 어떻게 생겼는지 그들의 목적이 무엇인지 이야기해주었다.
“아저씨가 사라지고 난 후에 처음엔 그분을 그리워하는 군인들이 모였다더라. 그렇게 모이고 모여 처음 특임대가 만들어졌던 이유를, 그분의 유산을 지키자는 취지로 여명단을 만들었데.”
“그런데 왜 지금은 바뀐 겁니까?”
“그들도 마주했던 거지. 아니, 눈치를 챘다고 해야 할까?”
“눈치…….”
“그래, 바보가 아니니까.”
서윤진의 말대로 그들은 바보가 아니다.
군 생활을 하며 작고 큰 작전들에 참여하다 보니 수상쩍은 사건이 하나둘이 아니었다.
파고 들어가자 만난 건.
바로 어둠.
“놈에게 복수하기 위해. 놈을 죽이기 위한 모임으로 바뀐 거지.”
거기다 놈이 바로 검성 이석천의 실종과 비극의 원흉임을 알았으니.
강진준, 선설민, 주임 원사 모두가 여명단의 일원.
그리고 이제.
“나도 놈을 죽이길 바라고.”
서윤진도 여명단의 일원이 되었다.
여기 모인 이들의 목적도 의도도 알고 있다.
“저 또한 놈을, 어둠을 죽이기 위해.”
강현이 어둠이라는 단어를 꺼내자 몇몇이 숨을 들이켰다.
비록 놈을 죽이고자 하지만 본능적인 공포까진 어쩌지 못하는 모양.
그러나.
“어둠을 죽이고 놈이 일으킬 비극을 막기 위해!”
강현이 힘을 담아 목소리를 높였다.
마치 그가 여기 있는 많은 간부를 상대로 연설을 하는 모양새.
“그리고 일으킨 비극을 원래대로 되돌리기 위해!”
[언변, 감화, 전파, 카리스마, 불요불굴, 군중제어를 발동합니다! 당신의 말에 모두의 신뢰도와 호감도가 상승합니다!]
[당신을 믿는 광신적인 전우들이 호응합니다!]
“싸울 겁니다!”
“싸운다!”
“싸우자!”
“어둠을 몰아내자!”
강현의 말에 강준진, 선설민, 서윤진이 호응했고.
말에 담긴 위력에 모두의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다르다.
녀석은 뭔가 다르다.
군인들의 심장이 기대감에 부풀었고.
“그리고 믿음에는 본래 증거가 필요한 법입니다.”
강현이 그들의 마음속에 담긴 마지막 의심까지 모조리 지우고자 입을 열었다.
[메인 퀘스트 여명단을 시작합니다]
[성공 조건 – 여명단 모두의 신뢰를 획득하라]
[이전 메인 퀘스트 결과에 따른 현재 여명단의 신뢰도를 보여줍니다]
[현재 획득한 신뢰도: 90%]
열 명 중 아홉은 강현을 믿지만 하나는 아직 확신이 없다.
그러나 강현에겐 이들이 필요했다.
이들에겐 강현이 필요했다.
어둠을 죽이기 위해.
“보여 드리겠습니다.”
강현이 이들에게 자신의 능력을 보여 주기로 결심.
때마침.
따르르르릉.
띠리리리리.
웨에엥, 웨에엥.
자리에 있던 이들의 핸드폰이 각양각색으로 울기 시작.
화면을 확인한 이들의 미간이 구겨졌다.
“이런.”
서윤진도 자신의 핸드폰 화면을 확인하고는 인상을 찌푸릴 때.
어깨너머로 힐끔 내용을 확인한 강현이 씨익 미소 지었다.
“마침 잘되었습니다. 당장 확인시켜 드리겠습니다.”
강현의 발언에.
“가지.”
드르르륵!
여명단 전체가 의자에서 일어나 걸음을 옮겼고.
강현을 선두로 일제히 중국집을 벗어났다.
“이봐! 짜장면은 먹고 가야지!”
지금 짜장면이 중요한 게 아니다.
가게 주인장이 부름에도 다들 현장으로 출발하려 할 때.
“서비스로 탕수육도 얼마나 많이 튀겨 놨는데!”
가게 주인이 발을 동동 구르며 외쳤고.
잠깐 아주 잠깐 발걸음이 멈칫했다.
탕수육은 좀 아깝네.
그때.
“배달됩니까?”
강준진이 뒤돌아서며 카드를 내밀었다.
“있는 재료 전부 다 해서 가져다 주십시오. 지금 먼저 계산할 테니까요.”
“어디로?”
주인장이 오늘 장사 끝났다는 생각에 싱글벙글 웃으며 묻자.
강준진이 당당히 핸드폰 화면에 찍힌 주소를 보여 주었다.
“A급 게이트 앞으로요.”
* * *
강원도 한적한 도로 주변.
“아니, 군인 새끼들이 개빠져 가지고 이제야 도착했네!”
누군가의 커다란 목소리에 다른 이들이 낄낄거리며 웃었다.
“아, 지금 훈련받다 오느라 늦었나 보지. 어차피 따까리 나 할 건데 그냥 들어갈까.”
“그러니까. 굳이 기다려야 하나?”
“어쩔 수 있냐고 지네 관할이라잖아.”
“근데 게이트 하나 처리 못 하죠?”
“그야말로 따까리죠?”
다시 한번 특임대를 조롱한 이들이 낄낄거리며 좋아했다.
그리고 이들의 비웃음을 들은 특임대를 비롯한 군인들이.
“저 새끼들이.”
“개 같은 새끼들.”
작은 목소리로 불만을 토해 냈다.
그러나 대놓고는 하지 못했다.
그들이 더 강하다는 걸 알기에.
사실 틀린 말도 아니다.
3군단 관할 지역이라고는 하지만 결국 해결하지 못해서 이들을 부른 건 사실이니까.
간부들도 그들의 태도에 아무 말 못 하는 중.
“하긴, 길드도 못 들어가서 군대로 도망친 놈들이 얼마나 강하겠냐고.”
놈들이 재차 군인들을 조롱하려 할 때.
“거, 말이 너무 심하시네. 가정 교육들을 잘 못 받으셨나?”
누군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들의 조롱을 막았다.
“뭐?”
“상대를 존중해야 자신도 존중받을 수 있다. 이런 이야기 못 들어 봤어?”
“지금 뭐라 그랬냐?”
“특임대건 일반 군인이건 게이트를 막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고, 조금 능력이 부족하다고 조롱받을 이유는 없단 말이지.”
모두의 시선이 목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향했고.
그곳엔.
“3중대 정렬.”
3중대 소대장이 3중대원들을 이끌고 서 있었다.
그를 비롯한 3중대원 전체가 번뜩이는 눈으로 그들을 노려보았고.
“뭐지? 지금 뭐 하는 거지?”
길드에서 파견한 특공대 대장이 그들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도와주러 온 사람들에게 뭐라고?”
“도와주러 온 건 고맙지만 조롱에 대해선 짚고 넘어가야겠지.”
상대의 살벌한 기세에도 3중대원들은 겁은커녕 오히려 더욱 당당히 어깨를 폈다.
이 정도는 우습다.
지금껏 얼마나 많은 싸움을 겪었고 무서운 것들을 보았는가.
예전에는 무서웠던 길드 헌터들이 지금은 그저 같은 사람으로 보일 뿐.
이전에는 조롱받아도 한마디도 못 했던 특임대가 당당히 그들 앞에 섰다.
“야, 철수해.”
놈들이 자신들의 가장 비장의 카드.
파업으로 특임대를 곤란하게 하려 할 때.
“차라리 잘되었군.”
누군가 오히려 그들을 응원했다.
그리고.
“이딴 조롱을 받고도 참으면 특임대 견장 떼야지.”
그들에게 딴지를 건 3중대를 칭찬했다.
“당신은 뭔데 끼어들어.”
길드 헌터들이 눈치 없이 끼어든 이를 향해 목소리를 높이려 했으나.
“3군단 특임대장 준장 강준진일세. 지금 자네들은 군인들을 모욕한 것으로도 모자라 계약 사항을 불이행하려고 하는 거 맞지?”
강준진 준장의 말에 금세 입을 다물었다.
“계약 불이행으로 인한 위약금은 길드에 요청하면 되는 거고?”
그의 담담한 협박에 주춤하던 길드 특공대장이 억지로 허세를 부렸다.
“하! 그럼 이 게이트는 어쩌게요? 지금 해결할 방법도 없으면서 일단 배짱부리는 건가? 게이트 앞두고 시민 안전 뒤로하고 자신들 체면이나 챙기는 군인이라고 언론사에 전화해 볼까?”
물론 평소라면 이런 협박이 먹혔을 거다.
그러나.
“누가 해결을 못 해?”
강준진이 어이없다는 듯 물었고.
“강현이가 있는데.”
가장 믿음직한 카드 강현을 가리켰다.
그리고 강현이 자연스레 그의 말을 받았다.
“탕수육이 식기 전에 돌아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