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화 전역자 장건철
“마치 알이 갈라지는 것 같았죠.”
밖에서 손톱을 물어뜯으며 기다리고 있던 최상익 중사는 그렇게 기억했다.
장건철이 안에서 세상이 갈라진다 느꼈다면.
그와 함께 밖에 있던 포병들이 보기엔 마치.
“알에서 태어나는 모습이었어.”
“맞습니다. 마치, 음… 그러니까, 진짜 뭔가 태어나는 모습이었습니다.”
알을 깨치고 나오는 모습.
완전히 어둠으로 둘러싸인 껍질.
짙은 죽음과 공포를 뿜어내는 외관.
수많은 포를 맞고도 작은 균열만 생겨났던 단단한 어둠 사이로.
얇은 선이 생겨났고 곧 영원할 것 같던 껍질이 무너지며 강현이 모습을 드러냈다.
“분명 봉우리가 없었습니다.”
“있었는데 없었다, 이 말입니다.”
“마치 원래 없었던 것처럼 말이죠.”
그 모습을 실시간으로 본 간부들을 비롯한 병사들이 흥분하며 말을 이었다.
그건 정말 놀라운 일이었노라고.
자신의 인생을 통틀어 가장 멋있는 광경이었을 거라고 추억했다.
평생 술자리 안주로 삼을 만한 경험이었노라고.
이것만으로도 놀라울진데.
“진짜 놀라운 건 안에서였지.”
선설민 중령의 말은 더욱 충격적이었다.
“안의 풍경을 보았어야 했어. 거긴 최악의 전쟁터였네. 내 군 경력을 걸고서 장담하지.”
평소 선설민의 허풍 없고 진솔한 성미를 생각하면 진실이리라.
그리고 이어진 그의 말.
“그리고 그 최악의 전쟁터 위에서 유일하게 빛나던 친구가 바로 강현이었지.”
잠시 꿈을 꾸듯 당시를 회상했다.
영혼마저 내리누르던 어둠 속.
강현을 비추는 달빛과 그가 추던 검무를.
“마치… 그래, 등대와도 같았어. 그렇게밖에는 표현이 안 되는군.”
입술을 달싹거리던 그가 결국 내뱉은 단어는 등대.
그러면서도 머리를 긁적이는 게 자신의 부족한 표현력을 원망하는 듯했다.
참으로 하고 싶은 말이 많았으나.
입으로 모든 감상을 전달할 수 있을 만큼의 말재주가 선설민에겐 없었다.
대신.
“가장 아름다우면서도, 간결하고, 유하면서도, 힘이 실린 검무였습니다.”
서윤진 대위는 그럴 재주가 있었다.
그녀가 이전 선설민 중령과 마찬가지로 꿈을 꾸듯 허공을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놀라웠습니다. 그러니까 그 검무는 지금껏 봐 온 어떤 것보다 아름다웠습니다. 그리고 강력했습니다.”
그녀 또한 강현과 함께 여러 경험을 했다.
싱크홀에서는 끔찍한 저주를 마주했고 강현이 하얀 불꽃을 피워 올리는 모습을 보았다.
태극 훈련장에서는 거대한 불기둥을 보았다.
그러나 그런 그녀에게마저 이번에 본 강현의 검무는 새로운 충격이었다.
아름답고 강하다.
번뜩이지만 절제되어 있다.
“어쩌면 진짜 목표를 찾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녀가 반쯤 홀린 얼굴로 조사실을 나간 후.
“아니, 대체 다들 뭐라는 거야!”
“어휴. 선배, 선배는 이해가 좀 가십니까?”
“이해가 가겠냐? 그냥 받아 적는 거지.”
사건 경위서를 쓰던 헌터 조사국 사람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온 사람들 대부분이 얼빠진 표정으로 알 수 없는 소리를 해 대니.
“이거 약물이나 정신 지배 검사 해 봐야 하는 거 아닙니까?”
“군인들 상대로? 아서라, 저 중 몇몇은 아는 얼굴들인데 그런 거 손대거나 당할 사람들이 아니야.”
“그럼 대체 뭡니까?”
오늘 새벽, 강원도에서 산봉우리 하나가 사라졌다.
심지어 아무도 모르는 새에.
더군다나 군부대에서 일으킨 일이니 사안의 심각성은 분명했고.
관리 부처에선 뒤늦게 사실을 알고서는 부랴부랴 조사단을 파견.
현장 조사를 실시한 건 물론 관련 인물 전체를 소환하여 동시다발적으로 증언을 수집.
한 가지 중요한 증거를 입수하니.
그건 바로.
“대체 뭐길래 하나같이 이 헌터 특임대 병사 이야기만 하는질 모르겠다니까요.”
강현의 이름.
그런데 그게 참으로 이상하고 이상했다.
“고작 상병밖에 안 된 친구가 진짜 이런 일을 해낸 걸까요?”
조사단에서 막내에 가까운 자신이 보아도 석연찮은 점이 한둘이 아니다.
심지어.
“저도 특임대 출신입니다만 이런 헌터가 병사로 있을 리가 없어요.”
본인 스스로도 특임대 출신이니 더욱 믿을 수 없는 말들뿐.
“무언가 숨겨져 있습니다. 이거 더 파 봐야 하는 거 아닙니까?”
헌터들이 모여 있는 특임대는 국가의 강력한 무력이기도 하지만 항상 살펴야 할 부대이기도 했다.
헌터 길드에 국가 권력을 내어 주지 않기 위한 방책이기도 하지만 자칫하다간 헌터 특임대가 국가 권력을 잡을 수도 있으니까.
퍽 타당한 의견.
그러나.
“글세, 위에선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수사단 중 가장 최고참의 의견은 달랐다.
“난 좀 다르게 본다.”
“혹시 3D로 보십니까?”
“…뒈질래?”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너무 피곤해서요.”
풉, 푸흡.
실없는 농담에 덩달아 웃는 후배들을 잠시 째려본 최고참이 다시 무게를 잡으며 말을 이었다.
“전혀 없을 만한 일은 아니야. 너희들이야 모르겠지. 내가 막내쯤 일이니까. 나 때도 이런 헌터가 한 명 있었거든.”
“선배님이 막내일 때면.”
“그때면 거의 헌터 초창기 아닙니까?”
“그런 헌터가 있었어요? 기억이 안 나네요.”
“그런 헌터면 다들 알 법도 한데요.”
잠시 수사단원들이 고개를 갸웃거릴 때.
“검성 이석천.”
그가 과거를 추억하며 누군가의 이름을 꺼냈다.
“그래, 그도 산봉우리 하나를 날리며 유명해졌지. 마치 그때를 떠오르게 하는군.”
최고참이 자기 앞에 놓여 있는 조사서를 보며 씨익 미소 지었다.
“어쩌면 진짜배기일지도 모르지.”
수많은 증언 사이 단 한 줄로 적혀 있는 조사서.
전역을 앞둔 병장이 급하게 남기고 간 증언.
그는 진짜입니다.
장건철의 이름이 얼핏 보였다.
* * *
세상이 갈라졌다.
그야말로 세상이 갈라졌다.
강현이 별빛처럼 날카롭게 빛나는 검을 위로 그어 올린 순간.
장건철은 보았다.
하얀 실선이 하늘에 새겨진 광경을.
이후 가라앉는 세상과 다시 만들어진 산을.
그리고 마침내 봉우리가 사라진 것을.
지금껏 군 생활을 하면서도, 처음 능력을 개방했을 때도 느껴본 적 없는 전율.
“강현이에 대한 이야기 말입니까?”
오늘 새벽, 조사관이 처음 장건철에게 종이를 던져 주며 강현에 대해 적으라 했을 때.
장건철은 딱 한 줄만을 적었다.
진심으로 한 글자, 한 글자 정성 들여.
물론 그 황당한 한 줄짜리 조사서를 본 수사관이 인상을 찌푸리며 장난치냐고 물었으나.
“진심입니다. 그 친구에 대해 할 말은 그뿐입니다.”
장건철은 대답을 끝으로 단호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녀석은 진짜배기다.
생활관 침대에 걸터앉은 장건철이 잠시 지난밤을 떠올리며 다시금 팔뚝에 돋아나는 소름을 쓰다듬을 때.
“건철아!”
누군가 장건철 병장의 이름을 불렀고.
“시간 다 됐다!”
때가 되었음을 알렸다.
그가 생활관을 둘러보며 잠시 숨을 크게 들이켰다.
흐으으읍, 이제 다시는 맡지 못할.
퀴퀴하면서도 섬유 유연제 향이 뒤섞여 있는 묘한 내음새.
지난 군 생활이 쌓여 있는 단출한 관물대와 자신이 방금까지도 앉아 있던 딱딱한 침대.
이걸로 마지막이구나.
생활관 문을 나서자.
그의 20대 초반, 18개월을 보냈던 막사 복도가 보였다.
“처음 왔을 때 만해도 침대가 아니라 평상이었는데 말이야.”
생각해 보면 은근히 바뀐 게 많았다.
생활관도 바뀌었고 막사도 바뀌었고.
자신도 바뀌었고.
장건철이 잠시 손을 쥐었다 펴기를 반복하곤 막사 밖으로 발걸음을 내디뎠고.
쨍한 햇볕에 잠시 눈을 감았다.
어제 밤을 새워서일까.
유독 햇빛이 눈을 찌르는 건.
그가 달아오르는 눈시울을 매만지며 앞으로 고개를 돌리자.
짝짝짝짝!
부대 입구까지 늘어서 있는 후임들이 보였다.
손바닥이 터져라, 대흉근과 이두박근을 열심히 움직이며 박수 치는 체단장 동지들.
“언젠간 건철이 네 기록 반드시 깬다!”
“덕분에 몸도 좋아졌고 근육도 많이 키웠다. 고맙다!”
그들의 감사 인사를 받으며 점차 거슬러 올라갔고.
“장건철이! 나중에 술 한잔하자! 전에 도와준 거 고마웠다.”
“그때 갈굼 먹을 뻔했을 때 도와줘서 살았다.”
다른 병사들도 장건철에게 고마웠던 일들을 나열하며 전역을 축하해 주었다.
그동안 군 생활 잘했구나 싶어 장건철이 뿌듯해할 때.
“…건철아.”
“장건철 병… 건철아.”
대열의 말미, 김대영과 장만수의 얼굴이 보였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서 있는 1분대원들.
김대영은 자신의 맞후임이었고 장만수는 분대장이 되어 처음 맞이한 신병이니.
같이 고생도 하고 즐거운 일도 많았기에.
감회가 새로웠다.
그러나 말이 길진 않았다.
“건강해라.”
“고맙다.”
“고맙습… 고마워,”
이거면 된다.
그들과 언젠간 다시 만날 테니까.
장건철이 김대영과 장만수의 어깨를 툭툭 쳐 주고는 옆으로 발걸음을 옮겼고.
대열 마지막.
강현과 마주했다.
“…….”
“…….”
말은 없었다.
그냥 강현은 담담하게 미소 지었고, 장건철은 멋쩍게 머리를 긁적였다.
뭐랄까.
참으로 신비한 그림.
분명 전역자는 장건철인데 마치 강현이 그를 사회로 내보내는 듯한 모습.
“그 뭐냐…….”
장건철이 입을 열었고 강현이 조용히 기다렸다.
그런데 막상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목이 콱 막히는 듯한 기분.
네크로맨서, 회색 숲, 혹한기 훈련, 싱크홀, 태극 훈련 외 자잘한 사건들까지.
강현에게 생명을 구원받았던 적이 몇 번이었는가.
그가 다칠까 봐 듀라한의 검을 온몸으로 받아 냈던 일.
그때 보았던 강현의 첫 검술.
회색 숲에서는 정말 죽는 줄 알았지.
그러나 결국 그 많은 사람을 모두 구해 냈다.
혹한기 훈련은 어떻고.
거대한 거인을 만나고 강현이 처음으로 자주포를 쏘아 내던 모습.
싱크홀에서 도플갱어를 처음 만났을 때.
천안룡과 어젯밤까지도.
어느 한순간 쉬운 일이 없었고 강현과 함께했기에 전역까지 하게 되었다.
그러나 진짜 기억에 남는 건.
훈련 때 같이 노가리를 까던 순간, 같이 운동하던 순간들.
일상에서 분대원들과 강현과 같이 즐겁게 했던 군 생활들.
지긋지긋한 군대였지만 그때만은 오랜 추억으로 남으리라.
이렇게 할 말이 많건만.
“…고맙다.”
장건철의 입에서 나온 말은 이 한 마디.
사실 이미 눈물을 참느라 말을 할 상황이 아니었다.
원래 눈물이 많던 사람이니 지금 정도면 잘 참았다.
그러나.
“나도 고마웠다, 건철아.”
강현이 마주 대답하자.
“크흐흡!”
장건철이 급히 고개를 들어 올리며 울음을 참았다.
근래 우는 횟수가 줄어서 마음이 좀 단단해진 줄 알았건만 아니었던 모양.
“고맙다, 고마워. 햇볕이 좀 맵네.”
그가 끝까지 눈물을 흘리지 않기 위해 허공을 쳐다보며 더듬더듬 발을 옮겼고.
중대장 서윤진 대위를 비롯하여 모두가 그 모습을 웃으며 지켜보았다.
본인은 숨긴다고 했지만 이미 모두가 그의 자제력 없는 눈물을 알았다.
그가 계속 고개를 들고 있는 동안 중대원들이 모두 도열했고.
가장 앞.
“부대 차렷!”
분대장인 강현이 섰다.
“전역자에 대한 경례!”
“충성!”
중대원들의 우렁찬 목소리가 아침 부대 정문을 울렸고.
“충성!”
그것보다 더 우렁찬 강현의 목소리가 다시금 장건철의 눈시울을 자극했다.
고생 많았단 백 마디 말보다 더욱 많은 뜻이 담긴 경례.
“크흡, 추, 충성… 흡.”
장건철이 울먹이며 마지막 인사를 남겼고.
“가자. 그만 울고! 중대장이 데려다 줄게!”
서윤진이 그를 위로하며 군단 정문까지 배웅했다.
“잘 가라!”
“건철아, 나가서도 건강해라!”
병사들이 그의 등을 향해 끝까지 손을 흔들었고.
그가 군단 밖으로 나선 후.
“가자, 만수야.”
“크흡. 알겠습니다.”
김대영과 장만수도 눈물을 훔치며 돌아가려던 때.
“강현아?”
“강현아, 너도 가자.”
그때까지 손을 흔들고 있던 강현의 어깨를 감싼 그들이 다 같이 생활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강현에게도 장건철은 특별한 선임.
처음 부대에 왔을 때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이끌어 주었던 믿음직한 이.
어제 장건철을 택한 것도 가장 믿었기 때문이었다.
어떤 헌터가 있더라도 강현은 장건철을 택했을 거다.
그는 강현의 전우니까.
‘또 보자, 건철아.’
강현이 미래를 기약하며 생활관으로 들어섰고.
마침 장건철 병장의 장구류를 정리하는 오목교와 이성민이 보였다.
“당직이다 뭐다 바빠서 정리를 못 했나 봅니다.”
“저희가 정리하겠습니다. 근무 취침하십시오.”
후임들이 강현보고 쉬라며 얼른 장건철의 물건들을 치우려 할 때.
“아냐, 내가 할게. 너희 일과 나가. 어차피 이제 쉬는 시간인데 뭘.”
강현이 둘을 보내고는 생활관에 홀로 남아 장건철의 관물대를 쳐다보았다.
뭔가 휑하면서도 사용했던 물건들이 아직 남아 있어.
“다시 돌아올 거 같지?”
전역이 실감 나지 않았다.
“그래도 떠날 사람은 떠나는 법이니까. 너무 그러지 마라.”
검성이 강현의 마음을 이해했기에 말로 위로를 건넬 때.
강현의 시선은 좀 다른 곳을 향해 있었다.
‘건철이가 검을 쓴 적이 있던가?’
관물대 맨 구석.
낡을 대로 낡은 검 한 자루.
분명 장건철 병장은 무투파.
무기를 쓰는 걸 본 적 없다.
해 봤자 방패 정도?
강현이 누구도 쳐다보지 않는, 누구도 알아채지 못했던 낡디낡은 검을 손에 쥐는 순간.
[오래된 연습용 검을 획득했습니다!]
[검성 이석천이 젊은 시절 휘두르던 검입니다! 검에 맺힌 피와 땀이 당신에게 흡수됩니다!]
[이전 주인들의 경험과 노력이 당신에게 흡수됩니다!]
[새로운 스킬: 월하유성검을 획득하셨습니다!]
[해파칠십이검의 후식을 습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