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화 영원한 고통
꾸드드득!
세상이 뒤집히듯 산이 뒤집히며 끈덕진 어둠이 그를 잡아먹고자 아가리를 벌렸고.
하늘과 땅 모두가 강현을 파묻으려 할 때.
[의식을 검탑으로 이동합니다!]
몸이 검무를 추는 사이 강현의 의식이 잠시 검탑으로 이동했다.
“두식 누나!”
“두식아!”
눈을 뜬 강현과 검성이 급히 김두식을 찾았고.
“…왜, 왜?”
검탑의 문이 열리며 김두식이 다급히 뛰쳐나왔다.
“아니, 지금 한창 추가 보수 중인데 왜 갑자기 와서 난리들이야?”
그녀가 짐짓 화난 표정을 하며 강현과 검성을 바라보았으나.
“너 아이스크림 먹었냐?”
“과자 드셨어요?”
김두식의 입가에 묻은 아이스크림과 초코 과자 부스러기가 돋보였다.
“아, 아냐! 무슨 여기서 아이스크림이랑 과자를 먹어!”
그녀가 더욱 열을 올리며 화를 내어 봤으나.
원래 사람이 비밀을 들키면 역정을 내는 법.
“화내는 거 보니 맞네.”
“그러게 말입니다.”
“그 얼굴에 묻은 아이스크림이나 닦고 말해라.”
“손에 초코 과자 들고 계시네요.”
검성과 강현의 지적에 김두식이 그제야 부정할 수 없는 증거들을 발견하곤 재빨리 입가를 훔쳤다.
“그래! 먹었다! 왜!”
“우리 아무 말도 안 했는데?”
“그렇죠 그냥 물었을 뿐인데요?”
검성과 강현이 서로를 마주 보며 대체 왜 화를 내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고.
그 얄미운 행동에 김두식이 입술을 깨물 때.
“아,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강현이 퍼뜩 자신이 이곳까지 온 이유를 떠올리고는 다급히 고개를 돌렸다.
“검탑! 검탑 능력이 필요해요!”
급한 순간, 검탑에 찾아와 김두식을 만난 이유.
바로 검탑의 능력을 이용하기 위해서.
“뭐? 그건 갑자기 왜? 너 이미 소환이랑 사용할 줄 알잖아.”
김두식이 강현의 말을 듣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이미 각층에 사용할 능력들도 많고 실제로 이를 사용도 했으면서 무슨 추가 능력이 필요하단 말인가?
“아직 안정화도 안 끝났고 할 게 많아.”
김두식이 고개를 흔들며 말을 이었다.
“재생은 그냥 겉모습을 재현한 것뿐이지 실제 완성되었다는 게 아니야. 아직 각층 능력 연계도 부족하고 거기다 내구도도 보강해야 할 부분이 많거든.”
그녀가 계속 강현을 향해 현재 검탑의 문제점과 앞으로 보완해 나가야 할 방향에 대해 설명하려 할 때.
“검탑을 빼앗은 놈을 만났습니다.”
강현이 그녀의 말허리를 잘랐다.
“…뭐?”
잠시 강현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김두식이 되물었고.
“검탑을 빼앗고 서재원 선배의 영혼을 찢어 검귀로 만든 놈을 발견했습니다.”
강현이 간략하게 상황을 말했다.
지금 검탑의 상태, 사용할 수 있는 능력, 앞으로의 발전 방향이 중요한 게 아니다.
“그런데 그림자는 없고 힘은 부족합니다.”
강현이 김두식을 보며 자신의 상황을 밝혔다.
“놈이 산을 들어 절 묻으려 합니다. 자그마치 구백구십구 명의 사람을 잡아먹고!”
지금은 미래를 생각할 때가 아니다.
현재에 집중해야 할 때.
강현의 눈에 깃든 의지를 본 김두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알았어.”
김두식 또한 놈에게 커다란 원한이 있다.
김두식이 강현을 끌고 검탑 최상층에 올랐고.
꼭대기 정중앙 혹처럼 솟아오른 재단 위.
딱 검을 찔러넣을 수 있을 정도의 구멍을 가리켰다.
“내가 신호하면 저기에 만련신검을 꽂아.”
김두식이 긴장한 얼굴로 강현에게 지시했고.
강현이 비장한 얼굴로 만련신검을 치켜들었다.
곧 김두식이 머리카락과 눈을 은색으로 물들이며 만물제작자로서의 능력을 발휘.
촤르르르륵!
그녀의 머리카락이 하늘, 땅, 검탑 할 것 없이 온 천지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더 나아가 탑 안으로 흘러 들어간 머리카락이 각층에 거미줄처럼 빽빽하게 들어찼고.
그녀의 눈이 빛을 발하자.
[검탑 제작자 김두식이 검탑의 근원에 접속했습니다! 검탑 잠재력 강제 발동을 요청합니다! 이를 허락하시겠습니까?]
검탑주인 강현에게 허락 알림이 떠올랐다.
“허락한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지금!”
김두식이 재단에 검을 꽂아 넣으라 소리쳤다.
“흐읍!”
강현이 검을 역수로 쥐고는 높이 들어 올렸다가 재단에 힘차게 찔러 넣자.
스르릉.
만련신검이 손잡이만 남긴 채 안으로 빨려 들어갔고.
우우우우우웅.
검탑이 몸을 떨기 시작했다.
탑을 따라 안의 공간들도, 더 나아가 하늘과 땅도 떨려왔다.
[검탑 잠재력 강제 개방 구천구백구십구 검에 담긴 힘을 불러옵니다!]
[경고, 검에 담긴 힘을 견디기에는 검탑의 완성도와 층수가 부족합니다! 이대로는 검탑이 붕괴합니다!]
강현의 눈앞에 시끄러운 경고 알림들이 연속해서 떠올랐고.
경고가 거짓이 아니라는 듯 검탑을 비롯한 땅 곳곳, 하늘 곳곳에 균열이 일어났다.
검탑에 꽂힌 구천구백구십구 개의 검이 진동하는 힘을 이겨 내지 못한 탓.
탑이 허물어지기 전.
“웃기지 마악!”
김두식이 버럭 소리를 지르며 자신의 머리카락을 양팔로 휘어 감아 당겼고.
꾸드드드득.
막 벌어지려던 균열들이 간신히 입을 닫았다.
“시간 없어억!”
그녀가 강현을 향해 고함쳤다.
“이젠 탑주의 몫이야! 네가 정해!”
그리고 마지막 결정권을 강현에게 넘겼다.
“몇 개의 검을 쓸 건지! 검의 힘을 얼마나 뽑아낼 건지!”
그녀의 말을 들은 강현이 만련신검의 손잡이를 움켜잡으며.
[검탑 잠재력을 강제로 사용합니다. 구천구백구십구 검 중 사용할 능력을 계산합니다!]
간단한 계산식을 입에 담았다.
“놈을 죽일 수 있을 만큼.”
그래, 지금 강현에게 필요한 힘은 그 정도.
“놈과 놈의 능력을 가를 수 있을 만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그 정도!
강현의 의지가 발현되자.
재단으로부터 시작된 의지가 꼭대기를 넘어 벽면에 이르렀고.
이와 만난 검들이 부르르 몸을 떨더니.
검탑에 더욱 깊이 파고듦과 동시에 강렬한 힘을 만련신검에 전달했다.
그리고 검탑주의 의지를 받든 능력이 강현의 몸에 파고들었다.
마나와는 다른.
날카로운 예기.
“으으윽!”
강현이 이를 견뎌 내고자 이를 악물었고.
“아아악!”
만물제작자 또한 점점 벌어지는 균열을 막기 위해 간신히 버티고 있을 때.
[계산 완료! 사용할 검의 개수 백서른두 자루!]
검탑이 최종 계산이 끝났다는 걸 알림과 동시에.
“복귀!”
강현이 현실로 복귀를 명했고.
“야, 이 개새끼야. 내 후임 괴롭히지 마!”
눈을 뜸과 동시에 장건철 병장의 목소리가 강현의 귀를 파고들었다.
그가 잠시 끌어 준 시간이 아니었다면 늦었을 거다.
강현이 그 기막힌 타이밍에 미소 지었고.
“감사합니다, 장건철 병장님.”
입대 후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가장 믿음직한 전우 장건철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가 자신을 향해 몰려드는 흙과 하늘을 보며.
“예전 산봉우리를 날린 적이 있다죠?”
전에 들었던 검성의 무용담을 떠올렸고.
검성의 답에 문득 생각했다.
“그렇다면 저도 가능하단 이야기겠군요.”
이젠 자신이 그 전설을 이어받을 때라고.
강현이 검탑 속 백서른두 자루의 검이 뿜어낸 예기와 자신의 모든 깨달음.
지금껏 쌓은 검무의 위력과 백염.
끝없이 솟아나는 마나를 집약하고 집약하여.
누워 있던 용이 하늘로 솟아나듯 몸의 탄력으로부터 시작, 하늘이 준 힘과 무를 위한 뼈를 통해 이를 그대로 전달.
마지막, 만 번을 만들어 낸 날카롭고 아름다운 검날에 모든 힘을 실어.
갈랐다.
그저 갈랐다.
자신이 춘 검무도, 끊임없이 밀어내던 해파칠십이검 전식도, 세상 가득했던 백염도.
악의와 어둠과 몰려드는 시기와 질투, 이를 닮은 흙과 바위와 빗줄기도!
단 일 검에 갈랐다.
“…….”
강현이 만련신검을 휘두르고 난 후.
세상이 멈췄다.
그를 향해 쏟아지던 세상도 강현을 지키기 위해 흔들리던 백염도 정지했고.
검은 빗줄기도 허공에 멈추었다.
어둠의 주교도 정지한 상태.
그런데 놈의 생명력만은 흘렀다.
주교의 얼굴이 급격히 쭈글쭈글해졌다.
마치 세월을 한꺼번에 겪듯 한껏 빨아들였던 생명력이 빠져나가듯.
꽃이 시드는 모습을 고속 카메라에 담은 것처럼 순식간에 말라비틀어졌고.
“아, 아아아, 아아아아.”
시들다 못해 몸이 뒤틀릴 정도로 바싹 마른 놈이 깊은 절망을 토해 냈다.
자신의 입에서 나온 소리에 그가 스스로 흠칫 놀랐다.
검귀.
자신이 서재원을 그렇게 만들었고 방금 구백구십구 명의 사람들을 그리 만들었다.
그들 외에도 많은 사람을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괴물로 만들었다.
그리고 지금은.
“아아, 아아아아!”
자신이 그 귀신이 되었다.
몸이 뒤틀리고 피부가 갈라진다 목은 마치 불이 타오르는 것처럼 뜨겁다.
그러나 가장 커다란 고통은 신체의 고통이 아니다.
“아아아…….”
뻥 뚫린 듯한 가슴.
끝없는 갈망과 배고픔.
자신의 몸을 먹어서라도 채우고 싶지만 버썩 마른 몸은 먹을 것조차, 먹을 힘조차 없다.
최악의 형벌.
남들에게 내릴 땐 즐거웠던 벌이 자신에게 내려지자 가장 고통스러운 저주가 되었다.
그리고 그때야.
“푸후우우우.”
지금껏 잠잠하던 강현이 푸른 숨결을 뿜어냄과 동시에.
세상이 다시 움직였다.
쩌어어억!
강현을 향해 몰려들던 것들이 다시 원래 자리를 찾아 갔다.
하늘들 뒤덮었던 어둠이 알이 깨지듯 갈라졌고.
뒤집혔던 산이 다시 땅에 자리를 잡았다.
강현을 향해 몰려들던 검은 빗줄기도 의지를 잃고 이리저리 흩어지는 모습.
강현이 끊어 낸 건 단순히 하늘만이 아닌.
“내가 말했지. 넌 아무것도 되지 못한다고,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고.”
놈과 놈의 능력.
다시 선 산봉우리.
가장 낮은 곳에 떨어진 채 사방을 휘저으며 고통스러워하는 주교를 내려다보았다.
능력을 잃은 놈은 이전 자신이 만들었던 자들과 같은 신세가 되었다.
그리고 놈이 남들의 절망과 고통으로 쌓은 산은.
“타올라라.”
남김없이 정화되리라.
강현이 손가락 끝에 피워 올린 백염을 튕겨 새까만 웅덩이에 던져 넣었고.
화르르르륵!
이를 기점으로 하얀 불이 검은 땅 위로 맹렬하게 번져 나갔다.
위로 내리는 검은 빗줄기.
흑백의 대립 속.
“끄아아아악!”
놈이 메말라 버린 목을 찢어 가며 소리 질렀다.
그 소리가 너무나도 고통스러웠다.
“끄악! 아아악!”
백염에 정화되어 사라지는 살갗, 그 위로 떨어지는 검은 비가 다시 살을 재생시킨다.
검은 웅덩이를 찾아보아도 그 위에는 백염이 덮고 있으니.
그래도 고통을 못 견뎌 허겁지겁 이를 삼키자.
“끄르르륵!”
목이 타오르고 다시 재생되길 반복.
방금까진 마음의 공허함이 더 괴로웠다면 지금은 이를 생각하지도 못할 정도로 괴로웠다.
죽고 싶다.
죽고 싶다!
입을 열어 죽여 달라 애원했으나.
“끄르륵! 끄르르르륵!”
타오르고 재생되기를 반복하는 목은 그저 동물의 비참한 울음을 토해 낼 뿐.
그때.
[흑백산을 검탑에 이식하시겠습니까?]
강현의 앞에 알림이 떠올랐다.
지금까진 보상으로 주어졌던 층.
그러나 이번엔 강현의 의사를 물어본 이유가 있었다.
[흑백산을 이식할 시 땅에 있는 구성 요소를 모두 옮깁니다]
단번에 이유를 알았다.
바로 주교.
[소멸을 택할 시 흑백산을 포함한 구성 요소 전체가 소멸합니다]
강현이 얼굴을 때리는 빗줄기를 느끼며 잠시간 아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두말할 것도 없다는 듯 단호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물론 옮긴다.”
[검탑주 최강현의 허락으로 흑백산 전체를 검탑에 포함시킵니다!]
강현의 답이 떨어지자마자 그가 밟고 있던 봉우리부터 서서히 사라졌다.
저벅저벅.
한 층 한 층 낮아지듯 놈에게로 걸어간 강현이.
“괴로운가?”
주교에게 물었고.
“으으으!”
놈이 몸을 뒤틀며 고통을 호소했다.
그 모습을 본 강현이 차갑게 입매를 비틀었다.
“축하한다. 이제 그 고통을 영원히 겪게 될 거다.”
그래, 놈을 소멸시키지 않은 이유.
놈이 흡수한 생명력만큼, 놈이 괴롭힌 사람들의 수명만큼.
놈 또한 고통을 받으리라.
강현의 선고가 떨어지고 난 후.
놈도 흑백산을 따라 검탑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두식이가 잔뜩 귀여워해 주겠구나.”
검성도 강현의 결정이 흡족했는지 고개를 끄덕였고.
강현이 이제야 맑게 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전투가 끝났다.
[긴급 퀘스트 특공연대에 숨어 있던 비밀을 완료했습니다!]
[배후에 있는 어둠의 주교를 훌륭히 처리했습니다!]
[히든 퀘스트 원한과 앙갚음을 완료했습니다!]
[보상으로 주교의 권능 빙의를 획득했습니다!]
[주교가 괴롭혔던 이들의 원한을 풀어 그들의 영혼의 무게를 넘겨받았습니다. 검탑의 활용도가 상승합니다!]
[사건을 완벽하게 해결하여 군단 명성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군단 명성도: 1,000점 달성! 군단 전 병사들이 당신을 알게 되었습니다!]
[명성도 달성으로 숨겨진 조직을 마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