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9화 검무
“웃기는 소리 마라!”
강현이 산봉우리에 오른 순간.
놈들이 한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마치 자신들을 깔보듯 봉우리 위에 있는 강현.
아래에서 그를 바라보는 수백 명의 주교.
같은 얼굴이나 같은 얼굴이 아닌 자들.
그들이 강현을 올려다보며 사나운 표정을 지었다.
“왜 너는! 왜 너는!”
어둠 속에서 비를 맞고 있는 자신들.
끈적한 어둠에 절여진 추레하고 볼품없는 꼴.
반면, 강현을 내리쬐는 달빛과 하얗게 빛나는 검.
마치 그가 주인공인 것 같았다.
유일하게 정상에서 빛나는 주인공.
보는 것만으로도 화가 나고 시기와 질투가 솟아났다.
어째서, 어째서!
“넌 절망하지 않는 거야! 왜 포기하지 않는 거야!”
“너도 포기해, 우리처럼 어둠 속에서 절망하라고!”
“왜 너만 행복한 건데, 왜 너만 그런 행운을 거머쥐고 사는 건데!”
주교이자 평범한 사람이며 인생에 절망하고 스스로를 포기해 버린 자들이 강현을 향해 아우성을 쳤다.
왜 나를 제외한 세상은 행복한가.
왜 나만 빼고 잘 사는가.
왜 나만 불행하고 괴로운가.
이 지긋지긋한 인생, 언제까지 살아 내야 하는가!
“왜! 왜! 왜!”
이젠 그들이 강현을 보며 짖듯이 악을 질러 댔다.
자신들이 겪은 아픔과 슬픔을 나열하며 강현에게 끝없이 질문했다.
왜 너는 행복하냐고, 왜 너는 그런 능력을 얻었냐고, 왜 너는 포기하지 않는 거냐고.
“…….”
문득 그들이 동시에 입을 꾹 다물었다.
광기에 가득했던 외침이 질척이는 어둠에 씻겨 내려갔고.
비 내리는 소리만 울리는 산.
간간이 들리는 메아리와 거친 숨소리.
그들이 고요하게 빛을 발하는 강현을 보며 한 가지 욕망을 떠올렸다.
끌어내리고 싶다.
그래, 저 높은 곳에서 끌어내려 놈도 우리와 같이 처참하고 비참하게 만들고 싶다.
끌어내리고 싶다.
“끌어내리고 싶다.”
그들이 같은 욕망을 품었고.
“그래, 그게 우리가 할 일이다.”
모두의 몸을 잠식한 노인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얼굴은 모두 다르지만 하나의 표정을 하고 있으니.
시기와 질투.
그리고 짙은 악의.
주교 전체가 서서히 하늘로 떠올랐고.
강현을 보며 기운을 엮기 시작.
이내.
“죽여라.”
그들 안에 깃든 노인이 명령했고.
일제히 강현을 향해 자신들의 능력을 내던졌다.
아까는 어딘가 어설프고 엉망이었던 공격들.
그러나 마음속에 악의가 깃든 순간.
질투와 시기가 그들의 마음과 시야를 점령한 순간.
망설임도 두려움도 벗어던진 이들의 공격이 마치 오래 합을 맞춘 것처럼 강현을 부수기 위해 달려들었다.
쏴아아아아!
그들의 악의를 먹고 자란 어둠이 더욱 거센 빗줄기를 쏟아 냈고.
어둠 속 모습을 드러낸 공격이 어둠을 먹고선 몸을 불려 강현에게 짓쳐 들었다.
촤르르르륵!
위에서 맹렬하게 쏟아지는 수십 발의 화살, 아래에선 촉수가 강현의 발목을 잡아채려 했고 사방엔 적들의 공격이 동시에 몰려오는 중.
아까처럼 빠져나갈 수 없으리라.
놈들이 자신할 때.
강현의 눈동자가 움직이길 잠시.
스으윽.
한 발짝, 단 한 발짝을 움직였을 뿐인데.
“……!”
그들의 모든 공격을 피해 냈다.
마치 공격을 통과한 듯한 모양.
더욱 거세진 공격도 거세진 비도 강현의 몸을 건드리지 못했다.
그들이 하늘을 날아다니며 강현을 향해 끊임없이 공격을 감행했다.
계속해서 자리를 바꾸어 가며 그를 죽이기 위해 움직였다.
점점 빨라지는 공격과 더불어 어둠 속에 녹아들었다 나타나는 놈들.
그러나.
“이이익!”
“죽여!”
“끌어내려!”
“너도 우리와 같아지리라!”
놈들의 아우성과 다르게.
“…….”
강현의 표정은 너무나 평온했다.
이전에는 그들의 공격을 보기라도 했다면 지금은 보지도 않고 피하는 중.
마치 그를 일부러 맞추지 않는 건가 싶을 정도.
점점 빨라지는 공격에 반해 강현의 움직임은 점점 적어지니.
“뭐 하는 거야! 맞춰!”
그들 안에 깃든 노인이 그들을 탓하기 시작했고.
이윽고.
“내가 못 맞춘 게 아냐!”
“화살 그따위로 쏘지 말란 말이야!”
“저기요! 뭐 하는 거예요! 지금 일부러 안 맞췄죠!”
서로를 향해 비난을 시작했다.
누구도 자신이 문제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저놈이, 저년이 실수하는 바람에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는다.
그래, 그런 거다.
“난 문제없이 잘하고 있는데 왜 다들 그 모양이야!”
남들이 못해서, 너희들이 잘못해서 그런 거다.
점점 서로를 탓하는 목소리들이 커졌고.
그들의 얼굴에 서로를 향한 분노가 채워지자 그 안에 깃든 노인의 얼굴이 서서히 옅어졌다.
한뜻이었던 공격의 연계도 위력도 자연스레 줄기 시작.
그리고 그제야.
번쩍.
강현의 검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처음엔 느리게.
아주 천천히 허공을 그었고.
다시 한번 검이 허공을 갈랐다.
한 걸음을 떼며 다시금 검을 휘둘렀다.
허리를 돌리며 검을 크게 흩뿌리니.
점차.
치이익.
빗줄기가 봉우리에서 시작하여 바깥쪽으로 밀려났다.
강현이 한 번 한 번 검을 휘두를수록 어둠이 공간을 잃고 튕겨 나갔다.
그제야 화들짝 놀란 놈들이 다시 강현을 공격했지만.
이미 봉우리는 강현의 공간.
공격들이 힘을 잃다 못해 강현을 두려워하듯 빗나갔다.
더는 공격을 피할 필요도 없다.
그의 검무가 점차 속도를 더해 갔고.
우우우우웅.
산이, 강현이 점령한 공간이 같은 울음을 토해 냈다.
공명이 커지면 커질수록.
“으으윽!”
“어억!”
놈들이 몸을 뒤틀며 괴로워했다.
자신들의 악의, 분노가 어긋나고 깨져 나가는 기분.
덩달아 아래로 내리꽂히던 빗줄기도 이리저리 흔들리며 혼란스러워했다.
하늘에 떠올랐던 이들이 하나둘씩 땅으로 추락했고.
자신들의 원동력이었던 어둠과 악의 속에서 허우적거렸다.
강현이 첫 번째 검식을 쌓고는 눈을 들어 그들을 보니.
“으으으윽!”
“자, 잠깐.”
“괴물 같은 놈이!”
강현의 말간 눈동자를 마주한 이들이 몸을 떨었다.
이윽고 그들의 머릿속을 점령한 생각.
놈은 우리와 다르다.
“저런 놈을 어떻게 이기라는 거야!”
“그래! 우리랑 다른 인간이잖아!”
“고작 이딴 능력만 주고는 우리한테 놈을 이기라고!”
그리고 이번엔 그들의 원망이 자신들에게 힘을 준 첫 번째 주교.
노인을 향했다.
끝까지 어디에도 자신들의 잘못은 없다.
그들이 와글와글 노인을 향해 원망을 뱉어 댈 때.
화르르르륵!
강현의 검에 하얀 불꽃이 타올랐고.
그가 검을 휘두르고 휘두르자.
검에 맺힌 백염이 파도처럼 산 전체에 몰아치기 시작했다.
* * *
“우리 저 친구 구하러 온 것 맞습니까?”
문득 그 광경을 지켜보던 선설민이 자신도 모르게 물었다.
그리고 다들 그의 말을 듣고는 침묵했다.
강현이 어둠 속으로 뛰어들었다는 말에.
위치를 추적하여 여기까지 왔건만.
“누가 누구를 구한다고?”
“아름답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아름답고도 무서운 광경을 보고만 있는 중.
처음엔 검에서 시작된 하얀 불꽃이.
사방으로 뻗어 나가며 끊임없이 어둑한 빗줄기를 몰아내기 시작.
우우웅, 우웅, 우우우웅.
그가 있는 공간이 공명했고.
화르륵! 화륵! 화르르르륵!
공명의 박자를 따라 불꽃이 밀려드니.
“백염검무…….”
이를 보던 강준진마저도 자신의 지위와 책무를 잊고선 감탄을 토해 냈다.
강현이 휘두른 백염이 파도처럼 밀려와 어둠에 몸을 부딪칠 때마다.
어둠의 영역이 깎여 나갔고.
그 위로 검은 빗줄기가 쏟아져 내렸으나.
치이이이익!
하얀 산불은 꺼지지 않았다.
“으아아아아악!”
백염에 휩싸인 주교들이 처절한 고통에 몸을 뒤틀 때.
“이 버러지 같은 놈들!”
노인이 버럭 목소리를 높였다.
“쓸모없는 버러지 같은 새끼들! 너희에게 준 힘이 얼마인데 고작 이 정도도 버티지를 못해!”
강현 한 명을 상대로 이 추태라니!
“자그마치 천 명이다! 천 명이야! 버러지 같은 새끼들! 능력을 받고도 고작 이 정도란 말야!”
놈들에게 준 능력은 결코 작은 게 아니었다.
특공연대에 있던 놈만 해도 그렇다.
인간의 정신을 점령하고 제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능력.
사용 여하에 따라서는 특공연대뿐만 아니라 군단 사령부 정도는 쉬이 점령할 수 있는 능력.
그러나 놈은 고작 특공연대 하나를 붙잡고선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능력을 사용했고.
“끝까지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고 할 수 있는 것도 없다는 거냐!”
그가 능력을 부여한 나머지 구백구십구 명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이 그토록 원하던 능력을 얻었으나 이를 발전시킬 생각도 의지도 없다.
그저 남을 원망하고 주교가 자신들을 더욱 강하게 해 주길 꿈꿀 뿐.
그들은 나아가기보다는 머물길 택했고.
스스로 하기보단 의지하길 선택했다.
그래서 강현의 능력을 보는 순간.
“우, 웃기지 마! 저 괴물을 어떻게 이겨!”
“난 못 해 못 한다고!”
“우린 그저 희생양이잖아! 그냥 버리는 패였다고 우린!”
이번에도 싸우기보다는 도망치기를 택했다.
남을 원망하기를 택했다.
그들의 아우성을 강현의 백염이 덮어 갈 때.
“이 쓰레기 새끼들! 이제 필요 없다!”
노인이 버럭 소리를 지르더니 자신이 나누어준 힘을 일제히 회수했다.
“끄아아악!”
“안 돼! 싫어!”
“왜 나만! 내 인생만!”
“제발, 제발!”
능력과 생명력을 빼앗긴 주교들의 몸이 메말랐고.
어둠의 비라도 마셔 갈증을 풀어보려 했으나.
“아아, 아아아.”
이미 그들의 영혼을 잠식한 끝없는 욕망은 어떠한 것으로도 채울 수 없었다.
타오르는 목에선 깊은 울음만이 흘러나올 뿐.
이들을 본 검성이 속에서 끓어오른 분노를 입에 담았다.
“검귀.”
닮았다.
갈라지고 마른 피부.
목을 긁어대며 갈증을 호소하는 모습.
이전 검탑에서 보았던 수많은 검귀의 모습과 같았다.
그때는 천 갈래 만 갈래 찢긴 서재원의 영혼이었다면.
지금은 자신이 죽는 길인 줄도 모르고 주교에게 능력을 받았던 자들의 종말.
그리고.
“파하하하하하!”
단 한 명의 주교.
구백구십구 명의 능력과 생명력을 갈아 마신 자가 천천히 공중으로 올라서며 강현과 눈높이를 맞추었다.
“비록 쓰레기 같은 녀석들이지만 그래, 맛이 좋구나.”
놈이 입맛을 다시며 즐겁다는 듯 강현을 보았다.
이전에는 늙고 추레한 몰골이었건만.
“젊음이라는 건 이렇게 좋은 것이었어!”
지금은 완전히 젊어진 모습.
자신의 젊어진 얼굴을 만져 보던 놈이 황홀하다는 듯 웃으며 비를 흠뻑 맞이했다.
그래 이거다.
“이거야! 쓰레기들도 모이니 이런 생명력을 이루는데.”
놈이 문득 고개를 내려 강현을 빤히 바라보았고.
“네놈은 어떨까.”
넘치는 능력과 생명력을 생각하며 입맛을 다셨다.
“서재원보다도 맛있겠지. 아니, 어쩌면 네놈을 먹는다면 대주교… 아니, 그 이상이 될 수도 있겠지!”
그래, 놈의 능력이라면 가능할 거다.
이 산을 뒤덮을 정도의 화염을 보라!
“네놈이 강한 만큼 나 또한 강해지겠지.”
정말 어쩌면!
“새로운 어둠이 될 수도 있을지 모르지!”
놈이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며 강현을 노려볼 때.
“지랄하지 마.”
강현이 그를 보고는 차갑게 일갈했다.
“넌 대주교도, 그 이상도, 어둠도 못 돼. 왜냐면.”
강현의 말이 이어질수록 백염이 환하게 타올랐고.
“넌 오늘 죽는다.”
그의 선고가 공간을 울렸다.
강현의 확언에 주교의 젊어진 육신이 깨질 듯 떨려 왔다.
웃기는 일이다, 분명 말에 불과하건만!
“개소리!”
본능적인 두려움을 이겨 내고자 놈이 크게 소리 지르며 흡수한 생명력을 권능으로 전환.
[권능 어둠의 산 발현. 대상을 매몰. 흡수한 생명력 전체를 사용]
비와 바람 흙과 나무 전체가 강현을 향해 달려들었다.
마치 자연을 움직여 강현을 죽이려는 듯한 모양새.
강현이 검을 휘두르고 공간을 점유했으나.
공간 자체가 강현을 향해 몰려드니.
고오오오!
하늘에 떠오른 주교를 따라 산 전체가 떠올랐고.
본래 가장 꼭대기에 있던 강현이 가장 아래에.
주교가 움직이는 흙과 어둠이 그를 둘러싸고 있는 모양새가 되었다.
화르르르륵!
백염이 이를 막아 내고 거스르려 했으나.
휘몰아치는 공간이 백염의 침범을 막아 내었고.
점차 강현을 묻기 위해 둥글게 뭉쳐 갔다.
그가 점유한 공간도 뿜어낸 백염도 밀리고 밀려 이제 주교의 공간이 거대한 원이 되어 강현을 감싸기 시작.
“파하하학! 그렇게 묻혀 죽어라! 일어난다고? 다시 걷는다고? 거기에 파묻혀서도 그딴 말을 내뱉나 볼까!”
그가 강현이 했던 말을 떠올리고는 비웃었다.
이 깊고 깊은 무저갱 안에서도 그딴 말을 내뱉나 보자!
“산 아래 깊이 묻혀서 신음하며 괴로워해라! 절망하고 포기해라! 그 절망과 포기를 먹고 자란 산이 내 힘이 되리니!”
막 강현을 향해 산을 쏟아부으려던 때.
딱!
어디선가 커다란 돌멩이가 날아와 놈의 대가리를 때렸고.
“야, 이 개새끼야. 내 후임 괴롭히지 마!”
장건철이 몸을 떨면서도 놈에게 욕을 뱉었다.
지금껏 놀라운 싸움을 보면서 끼어들 생각도 못 하던 간부들을 대신해 장건철이 나선 것.
주교가 핏발 선 눈으로 싸움터에 끼어든 이들을 힐끗 보고는.
“쥐새끼들은 좀 있다 맛있게 먹어 주마.”
다시 강현을 향해 공간을 쏟아부으려 할 때.
“감사합니다, 장건철 병장님.”
강현이 비로소 준비를 끝마치고는 씨익 미소 지었다.
몸이 굳었던 것도 두려웠던 것도 아니다.
“준비할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잠깐의 틈이 필요했던 것.
장건철의 쥐어짜 낸 용기가 잠깐의 시간을 벌어 주었고.
강현이 검무의 마지막을 완성해 냈다.
“예전 산봉우리를 날린 적이 있다죠?”
강현의 질문에.
“뭐, 종종 있었지. 나나 산군이나 태풍 녀석이나.”
이석천이 답했고.
“그렇다면 저도 가능하단 이야기겠군요.”
강현이 말을 맺으며 만련신검을 하늘로 흩뿌림과 동시에.
번쩍!
하늘이 갈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