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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수집으로 무한성장-208화 (208/277)

208화 요체

쏴아아아아아!

검은 빗줄기, 어둠이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며 산과 공간을 잠식해 들어왔다.

어둠이 맺히고, 늘어지고, 떨어지고, 번졌다를 반복하는 시야 속.

“크하하하하! 맞아. 너도 원래 우리 편이었던 거지!”

놈의 늙수그레한, 어린, 맑은, 탁한, 높은, 낮은, 두꺼운, 얇은 목소리가 빗줄기를 타고 퍼졌다.

먹먹하고 선명하고 이지러지는 소리.

그 속에서 놈이, 놈들이 다시금 강현을 조롱했다.

각자의 얼굴을 하고 있으나 동시에 노인의 얼굴이 있으니.

“녀석의 영혼을 한 꺼풀 한 꺼풀 벗겨 낼 때 얼마나 즐거웠는지!”

“끝까지 아버지와 다른 이들을 지키려 하는 모습이 아주 감동적이었지.”

“만물제작자! 그년 검탑을 빼앗겼을 때 표정을 봤어야 했는데!”

“그년이 어쩌다 검탑을 빼앗겼는지 설명했던가?”

“검성이 있는 줄 알았거든! 검성 그 이름 하나면 모든 걸 제치고 달려들었지.”

“심지어 서재원과 그 수하들조차 검탑이 검성이 남긴 유산이라는 말에 달려들었지!”

사방에서 겹쳐 들리는 험담들.

소란스러운 와중에도 내용 하나하나가 모두 강현의 귓가에 그대로 박혔다.

서재원과 김두식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던 놈들이 일제히 입을 멈췄고.

“아! 그런데 김두식은 자기 때문에 서재원이 죽었다는 사실을 아나?”

놈들이 일제히 입매를 뒤틀며 같은 질문을 던졌다.

한점으로 모여든 악의가 강현의 포커페이스를 뚫었고.

“…….”

빠드득.

강현의 얼굴이 구겨지며 분노가 새어 나왔다.

그리고 이를 본 놈이 맛있는 디저트라도 본 것처럼 입을 쭉 찢어 올렸다.

“그래! 알았구나! 알았어! 어떻던가? 울던가? 몸을 뒤틀던가? 아아, 그거지 바로 그거야! 절망하고 포기하던가? 스스로를 원망하며 괴로워하던가 이 말이야!”

놈이 즐거움을 참을 수 없다는 듯 몸을 떨며 외쳤다.

“그래 바로 그거지! 남의 고통을 바라볼 때가 가장 즐거운 법이지! 포기해라, 포기하고 절망하고 쓰러져라!”

치덕치덕 떨어지는 빗줄기에 뒤섞인 놈의 욕망이 차갑고 지저분하게 강현의 몸에 눌어붙었다.

불쾌하다.

당장 이 어둠과 놈의 목소리 모두를 떨어내고 싶다.

강현이 머릿속을 슬금슬금 파고 들어오는 어둠과 분노에 참지 못하고 몸을 뒤틀려 할 때.

“…개소리.”

옆에서 어떤 어둠보다 더욱 깊고 어두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현이 옆을 돌아보자.

“개소리하지 마.”

검은 어둠을 뒤집어쓴 검성 이석천이 보였다.

치아가 부서질 듯 악다문 턱,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진 얼굴.

어깨에 올려진 짐이 무겁다는 듯 굽은 등과 휘청이는 무릎.

분노하느라 깊게 팬 주름을 타고 어둠이 흘러내리니.

마치 지금이라도 갈라지고 깨져 흩어질 것만 같다.

검성이 괴로움에 숨을 헐떡이며 말을 이었다.

“포기하지 않았다. 재원이도 두식이도 아무도 포기하지 않았어.”

그가 제일 잘 알고 있다.

서재원의 노력과 심성을, 김두식의 헌신과 집념을.

분명 비극은 그들을 힘들게 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다.

비록 자신은 검성 이석천의 기억에 불과하지만.

“나 또한 포기하지 않았다!”

게이트 어딘가에 잡혀 있을 진짜 이석천도 아직 포기하지 않았을 거다.

게이트 안에서 어둠에 맞서 싸우고 있을 거라.

그렇게 믿었다.

그렇기에 간절히 바랐다.

김두식이 포기하지 않기를.

“울었다! 재원이의 죽음을 듣고 절망하며 울었다! 그래! 괴로워했고 몸을 뒤틀었다!”

강현이 자리를 떠나고 난 뒤에 김두식은 진심으로 괴로워했고 미안해했다.

검성 이석천의 가슴팍에 안겨 몸부림치며 울었다.

그리고 절망했다.

“자신의 삶을 원망했고 죽은 재원이와 아버지인 산군에게 미안해했다!”

그래, 그녀를 위로하며 검성 이석천 또한 김두식에게 전해 들었다.

어쩌다가 검탑을 빼앗겼는지.

“나를 위해 검탑을 만들었고 나를 구할 수 있다는 생각에 빠져 검탑을 빼앗겼다. 그래! 미련하지! 미련하기 짝이 없지!”

심지어 서재원과 검수들 또한 검탑이 검성이 남긴 유산이라는 말에.

혹여라도 흔적을 발견할 수 있을까 하여 달려들었고.

슬프게 죽었다.

“내 친구는 나 하나 찾겠다고 헛짓거리를 하다가 길드를 말아먹을 뻔했고! 죽지도 못하는 자신의 아들을 보고는 정신이 나가 버렸다!”

산군은 검성 이석천을 찾겠다는 미련을 버리지 못해 헤매고 헤맸다.

그리고 아들의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고는 죽지도 살지도 못 한 채 미쳐 버렸다.

미련하고 멍청한 인간들.

그러나.

그런 멍청한 인간들이고 매번 실수를 저지르는 인간들이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검성 이석천이 어둠을 몰아내듯 소리쳤다.

“포기하지 않았어! 그 누구도! 절망은 했지만 다시 일어났고! 견디기로 작정했다!”

그래, 그 또한 강현의 옆에서 보지 않았던가.

“길드를 말아먹을 뻔했던 친우는 아들을 잃을 뻔한 고통마저도 딛고 다시 길드를 이끌고 있고! 또 한 놈은 미래를 맡길 이들이 필요하다며 학교에 매년 수백억을 쏟아붓고 있다!”

산군과 태풍.

“제자 서재원은 죽는 그 순간까지도 미소와 기개를 잃지 않았고! 두식이, 두식이는 자신의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라도 포기하지 않겠다고 했어! 그래! 포기하는 게 더 뻔뻔하다며! 지금도 참회하는 마음으로 헌터들을 위한 무기를 만들고 있다!”

서재원과 김두식.

이들이 끝이 아니었다.

“첫 휴가에 아들을 잃은 아버지는 너희들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 다시금 일어섰고! 결국 알아냈다! 죽을 뻔한 위기를 넘긴 하사는 지금도 국방의 의무를 다하며 기회를 노리고 있다!”

김준혁 이병과 최상익 하사.

그 외에도 강현이 구한 모든 이들.

“인간은 일어선다! 나 또한! 그리고!”

이석천이 강현을 바라보았고.

둘의 시선이 마주쳤다.

“내가 실패한 탓으로 부모를 잃고 평생 고생만 하던 한 아이는 이제 사내가 되어 너희와 맞서고 있지.”

이석천의 가라앉은 목소리가 강현의 마음에 와닿았다.

“녀석은 그 무엇도 포기하지 않았어.”

강현의 아픔도 기쁨도 싸움도 모두 보았다.

이석천이 강현을 보며 비로소 억지로나마 미소 지었다.

신뢰와 아픔, 위로가 뒤섞인 미소.

비록 그 위로 어둠이 흘렀으나.

“맞습니다.”

강현은 그의 표정과 마음을 선명히 보았다.

어둠이 가리지 못하는 증거.

강현 또한 그와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으리라.

놈의 악의에 깨져 나갔던 표정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고.

그의 눈이 더욱 깊어지며 맑은 빛을 발했다.

몸을 휘감던 어둠도 발바닥에 달라붙던 악의도 신경 쓰이지 않는다.

믿어 주는 사람들, 같이하는 사람들이 있다.

강현이 비로소.

“우리는 다시 일어날 거고 포기하지 않고 저들을 벨 것입니다.”

한층 더 단단해진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동시에 몸에서 기운을 뿜어내니.

촤르르르륵!

빗줄기가 강현의 몸에 닿지 못하고 그대로 흩어졌다.

강현이 고개를 들어 푸른 달빛이 비쳐 들어오는 봉우리를 보았고.

발걸음을 옮겼다.

“때로는 구정물에 몸을 담그기도 하고 때로는 나뭇가지에 걸려 피부가 찢어지기도 할 것이며 때로는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지도 모릅니다.”

한 걸음 한 걸음 어둠을 밀어내며 강현이 봉우리를 향했고.

옆에서 와글거리는 주교들의 저주마저 튕겨 내며 정상에 다시 섰다.

아래에 선 자들의 악의 어린 눈과 입.

지금껏 겪었던 괴로움을 되풀이하는 말들.

그러나 그중 어떤 무엇도 강현에게 도달하지 못했다.

강현이 만련신검을 천천히 들어 올렸고.

“하지만 우리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더욱 웅혼한 기운을 뿜어냈다.

“절벽을 깎아 내는 파도처럼 수백, 수천, 수만 번을 부딪치고 다시 일어나 밀려들 겁니다.”

해파칠십이검.

“그것이 제 검입니다.”

강현이 마침내 깨달은 자신만의 검, 자신만의 해파칠십이검 전식의 요체를 읊었고.

검성 이석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보여 주어라, 네 검을. 놈들에게 그리고 어둠에게.”

강현이 봉우리 위에서 천천히 그러나 강하고 빠르게 검을 내리긋기 시작했다.

* * *

강원도 산맥의 한 봉우리에.

꽈르르릉! 콰콰쾅!

맹렬한 폭격이 이어졌다.

주변 산 전체를 울릴 정도의 굉음.

그러나.

부우웅.

늦은 새벽 근처를 지나는 차들은 그 소리를 듣지 못한 듯 평온했다.

“어후, 졸려.”

새벽 배송을 하는 트럭 운전수는 하품까지 하며 졸음을 참고 있는 중.

졸음이나 쫓아내 볼까 라디오를 틀자.

치지지지지지직.

라디오에선 새벽 방송 대신 잡음이 섞여 나왔고.

“어? 이거 왜 이래? 원래 잘 터졌는데.”

그가 벌써 라디오가 망가졌냐며 투덜거릴 때.

트럭이 지나가는 도로 옆 산 건너편에선.

“포격 준비! 격발!”

격발 명령에 자주포들이 일제히 포탄을 쏟아 냈다.

이후 지축을 뒤흔드는 굉음!

자주포뿐만 아니라 전차들까지 포탄을 때려 박는 모습.

그야말로 전쟁을 방불케 하는 화력.

“포격 준비!”

포탄을 쏘아 내자마자 다시 장전한다.

급속 사격을 쏟아 내는 포 중에서도 유독 빠른 속도를 자랑하는 이들.

“빨리 움직여!”

“반장님, 준비 완료됐습니다!”

“포격!”

“최 중사님! 포탄 거의 떨어졌습니다!”

바로 최상익 하사, 이젠 중사가 맡은 포.

병사의 보고에 그가 버럭 목소리를 높였다.

“당장 추가 포탄 요청해!”

그러는 와중에도 어둠에 휩싸인 산에는 연속해서 탄이 떨어지는 중.

탄이 떨어질 때마다 검은 기둥이 터져 올랐으나 정작 뚫지는 못하니.

“이런 제기랄!”

그가 거칠게 욕을 뱉어 냈다.

단순히 포탄이 없어서만은 아니었다.

생명의 은인이자 그토록 그리워했던 부모님을 보게 해 주었던.

강현.

그가 저 안에 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

“포격 준비!”

제발 강현이 무사하기를 바라며 최상익 중사가 목소리를 높였다.

“…….”

장건철이 커다란 헬기 소리 속, 아련하게 들리는 포격 소리를 들으며 침을 꿀떡 삼켰다.

여러 훈련을 거쳐 온 그였지만 이 정도의 화력을 목격한 것은 처음.

장건철이 새삼스럽게 지금 자신이 있는 장소를 깨달았다.

그래, 이곳은 전쟁터.

두두두두두.

차누크 수송 헬기에 달린 두 개의 프로펠러 돌아가는 소리를 뚫고.

“병력 주목!”

강준진 준장의 목소리가 모두를 집중시켰다.

그때까지 작은 창문 밖으로 어둠에 휩싸인 산봉우리와 위로 떨어지는 폭격을 보던 그도 고개를 돌려 강준진 쪽을 보았다.

모두가 자신에게 집중한 걸 확인한 강준진 준장이.

“현재 산봉우리는 어둠에 잠긴 모양새다! 지금껏 포격을 쏟아붓고 있으나 아직 무너지지 않고 있다!”

상황 브리핑을 시작했다.

“현재 대연 시스템에서 제공한 시선 차단용 홀로그램이 주변을 가리고 있는 상태!”

지금껏 기자들도 다른 길드들도 끼어들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대연 시스템에서 제공한 홀로그램 장치 때문.

이번만은 다른 길드 도움 없이 해내야 한다!

왜냐면.

“안에는 군단 특임대 최강현 상병! 그가 잡혀있다!”

강준진의 말에 헬기에 타고 있던 이들의 눈이 번쩍 빛났고.

장건철 또한 입술을 짓씹으며 각오를 다졌다.

“포격으로 결계의 틈이 벌어진 순간 일제히 뛰어들어 적을 타격한다!”

자리에 있는 자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면면이 모두 화려한 자들.

선설민, 서윤진을 비롯한 대령, 중령, 원사, 상사 등등 군단 예하 부대에 소속된 핵심 간부들이 모인 자리.

장건철도 한자리를 맡았다.

곧.

“벌어진 틈 발견!”

군단 특임대 주임 원사의 보고에.

“포격 중지! 여명단! 낙하!”

강준진이 가장 앞서 차누크 헬기 밖으로 뛰어내렸고.

“여명단 낙하!”

간부들이 줄줄이 그의 뒤를 따라 뛰어내렸다.

그들이 뛰어내림과 동시에.

“포격 중지! 포격 중지!”

포격 중지 명령에 모두가 바삐 움직이던 손을 멈추었고.

강준진이 산 중간 작게 벌어진 틈을 발견.

“하압!”

스멀스멀 좁아지는 틈 사이로 창을 던졌다.

창에 담긴 강렬한 마나가 수복되는 어둠을 파고들었고 이어 선설민의 주먹이 창대를 때리니.

쩌엉!

아물던 틈이 다시 벌어짐과 동시에.

어느새 호랑이로 변신한 서윤진을 비롯하여 모두가 자신의 공격을 내질러 틈을 찢어발겼고.

“진입!”

일제히 구멍 안으로 몸을 욱여넣었다.

장건철도 자신의 탄력을 이용, 공격을 감행하여 어둠을 뚫고 진입.

퍼억!

그대로 바닥에 몸을 박은 그가 땅속에 박혀 허우적거릴 때.

“푸하! 감사합니다!”

땅 위에 가볍게 착지한 서윤진이 단번에 장건철을 일으켜 세워 주었고.

그가 주변 간부들 모두 땅에 제대로 내려선 걸 확인하고는 얼굴을 붉혔다.

실력의 차이.

그런데.

“이건.”

“어둠인가?”

“비가 아니잖아.”

간부들이 자신들의 실력을 자랑할 틈도 없이 처음 보는 생경한 풍경에 얼굴을 굳혔다.

본인들도 이런저런 게이트 전투로 잔뼈가 굵다 생각했는데.

“이건 정말 기분이 더럽군.”

강준진 준장의 말대로 지금 몸에 떨어지는 검은 빗방울들은 마치 악의를 형상화해 놓은 것같이 사람의 정신을 괴롭혔다.

다들 끈적하게 달라붙은 어둠에 인상을 찌푸리던 중.

“저, 저기 강현이 아닙니까?”

장건철 병장이 문득 손가락을 들어 어딘가를 가리켰고.

모두의 시선이 그가 가리킨 산봉우리로 향했다.

그리고 방금까지 불쾌하다며 투덜거리던 것도 잊고는 입을 쩍 벌렸다.

그들이 바라본 곳에는.

새까만 공간, 맑게 비치는 달빛 아래.

그를 둘러싼 어둠과 수백의 적들 사이.

백색으로 타오르는 검을 들고 검무를 추는 강현의 모습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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