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화 추적
연대 1대대 건물 막사.
안에는 총 400명이 넘은 병사.
그들이 묵는 생활관 문이 동시에 열렸고 모두가 무감정한 표정으로 한곳을 향할 때.
“이건 뭐냐, 강현아.”
강현은 물론 장건철 병장도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눈치챘다.
그림자 속에서 대규모로 움직이는 병사들을 바라보길 잠시.
그들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걸 눈치챈 강현이 그쪽으로 향했고.
화장실에 도착했다.
침묵 속에 몰려 있는 넋 빠진 사람들과.
상처 입은 짐승같이 다급한 소리를 내며 자살하려는 병사.
‘도망치려는 거다.’
강현도 단번에 병사의 의도를 눈치챘다.
죽음으로 이 끔찍한 상황에서 도망치려는 거다.
이지를 잃고 그저 인형처럼 걸어 다니는 선임들을 보고 차라리 이쪽을 선택한 거다.
그런데.
‘이 끔찍한 상황을 만든 놈은 어디 있지?’
지금 병사들을 꼭두각시처럼 조종하는 놈은 어디 있단 말인가?
그리고 낮에는 왜 아무렇지 않은 척 행동했단 말인가.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참새가 관찰하기에 문제가 없었다.
선임들과 대화하고 같이 담배도 피우고.
그런데 병사는 어떻게 이런 상황을 깨달았으며 지금 다른 병사들은 어쩌다 이렇게 되었단 말인가.
해결되지 않은 의문이 많다.
강현의 미간이 점점 깊어질 때.
콰앙, 콰앙, 콰앙!
선임들이 병사가 숨어 있는 변기 칸의 문을 부수고는 그를 우악스럽게 끌어냈다.
“으으, 살려 주세요. 잘못했어요! 살려 주세요!”
병사가 애원했으나 들어주는 사람 하나 없다.
홀로 몸부림치는 병사와 그를 붙잡는 다른 선임들.
“저, 저! 미친놈들! 강현아! 가서 말려야 한다!”
장건철이 와락 얼굴을 구기며 강현에게 당장 병사를 구해야 한다고 종용했으나.
“아직입니다.”
강현이 고개를 저었다.
저 겹겹이 쌓여 있는 사람 벽 뒤에 진짜 원인이 있다.
자신과 장건철 병장이 지금 나타나면 놈이 도망가거나 사람들 사이에 숨어 버릴지도 모른다.
때를 위해 강현이 장건철을 말렸고.
“이런 제기랄! 저러다 죽는다고!”
장건철이 막 강현을 향해 화를 터뜨리려다가.
“…….”
그의 하얗게 질린 주먹을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강현도 화가 나지 않아서 장건철을 말리는 게 아니었다.
다만 제대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기다릴 뿐.
그리고 때가 되면 화를 터뜨릴 생각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런 강현의 마음을 이해한 장건철이 턱 근육이 두드러질 정도로 이를 물며 화를 다스렸다.
마침내.
“왜 죽여 준다는데 그렇게 겁을 먹어.”
놈이 모습을 드러냈다.
특별한 점 하나 보이지 않는, 그저 군단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병사 중 한 명.
그러나 그가 나타나자 모두가 자리를 비켜섰고.
그만이 유일하게 살아 움직였다.
이 사건의 원인이자.
병사가 죽어서라도 벗어나고 싶어 했던 공포.
그리고.
[연구 책임자의 눈에 담긴 김주혁 이병과 그의 아버지가 수집한 정보를 불러옵니다. 상대의 정체를 판별합니다]
[어둠의 주교를 만났습니다]
강현의 적.
어째서 군단 내에 어둠의 주교가 있는지, 병사들을 조종하고 있는지 여러 의문이 남아 있으나.
“지금입니다.”
당장 그딴 건 중요치 않았다.
강현의 허락이 떨어지자 그들을 감싸고 있던 그림자가 사라졌고.
족쇄가 풀린 장건철이 가장 먼저.
“야, 이 개새끼들아 그만 안 둬!”
시원하게 욕부터 내질렀다.
시뻘게진 얼굴을 보니 어지간히 화가 난 모양.
강현 또한 그의 마음과 같았기에 침묵을 지켰고.
“너, 너는!”
자신을 발견한 놈의 얼굴이 하얘지는 것을 보고는 확신했다.
놈은 강현을 알고 있다.
즉, 어둠의 주교이며 자신의 적이 맞다는 소리.
용서할 필요도 봐줄 필요도 없다.
아니, 원래 그럴 생각도 없었다.
지금 강현이 가장 원하는 건 바로.
“특수임무헌터대 상병 최강현 외 한 명. 특공연대 이상 상황 발견.”
놈을 조지는 것!
“어둠의 주교를 발견. 선조치 후보고 하겠다.”
말이 끝남과 동시에 이전 태극 훈련장에서 뿜어냈던 것보다 더욱 강렬한 살기가 화장실에 휘몰아쳤고.
“으으윽!”
어둠의 주교가 살기를 정면으로 마주하고는 덜덜 떨었다.
강현이 사납게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지금껏 꾹꾹 눌러 왔던 말을 뱉었다.
“넌 뒈졌다, 새끼야.”
강현이 힘을 터뜨리려 할 때.
“막아! 뭐 해 막아! 새끼들아!”
상대가 재빨리 다른 병사들에게 명령.
이지를 잃은 특공연대 병사들이 강현을 향해 덤벼들었다.
물론 상대는 일반병, 다치게 해서는 안 된다.
놈들이 우르르 몰려와 강현을 향해 발과 주먹을 내지르고 온몸으로 매달렸지만.
“비켜.”
막을 필요도 힘을 쓸 필요도 없다.
강현이 이들을 매달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어차피 이들 모두가 강현을 향해 달려든다 해도 이미 근력의 차이가 어마어마했다.
사람 몇 명이 모인다고 해서 탱크를 손바닥으로 막을 수는 없는 법.
“으으, 뭐 해 이 새끼들아!”
놈이 한 발짝 한 발짝 다가오는 강현을 보며 발작하더니.
“저 새끼! 저 새끼 조져!”
이번에는 장건철을 가리켰다.
그러나 장건철도 강현만은 못하지만 특임대.
그것도 근력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인물.
당연히 병사들이 그를 제압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더욱 당황한 놈이 몸을 돌려 도망가려다가.
“저 새끼, 저 새끼 죽여!”
이번엔 간신히 살아서 목을 붙잡고 켁켁거리는 병사를 가리켰다.
죽이라는 단호한 명령에 일부 병사들의 손이 다시금 병사의 목을 향했고.
“이런 개같은 새끼가!”
강현이 재빨리 그림자를 뿜어내 주변에 몰려드는 선임들을 밀어내고 묶었다.
지금껏 반응 없던 강현과 장건철의 변화에 놈이 달리던 발걸음을 늦추더니.
우뚝 멈춰 섰다.
맹목적으로 충성하는 병사들 사이.
놈이 강현과 장건철을 보며 입매를 비열하게 뒤틀었고.
“서로 죽여라.”
가장 최악의 명령을 뱉었다.
“이 개새끼야!”
“넌 잡히면 뒈졌다!”
강현과 장건철이 놈의 끔찍한 명령을 듣고는 화를 참지 못하고 욕을 뱉었고.
주교가 유유히 병사들 사이를 빠져나간 직후.
“…….”
“…죽인다.”
“서로.”
병사들이 서로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망설임 없이 상대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퍽, 퍼억, 퍽, 쿠당탕!
신음도 고함도 없다.
그저 침묵 속에서 이루어지는 무감정한 싸움.
눈앞에 있는 상대를 죽이기 위해, 명령을 따르기 위해 주먹을 휘두르고 서로의 목줄을 잡을 뿐.
이빨이 빠지고 피가 흘러도 얼굴을 찌푸리지도 고통스러워하지도 않는다.
“으으으, 그만해! 그만해!”
선임들의 모습을 보며 병사가 공포에 질려 고함쳤다.
그래도 같이 훈련하고 잠을 자고 인사하고 밥을 먹던 사이다.
완전히 정신을 잃은 그들의 모습을 보자 자신의 선택이 맞았음을 다시금 깨달았다.
차라리 죽는 게 나았다!
갑자기 벌어진 아수라장에.
“멈춰! 그만! 그만!”
“이런, 지금 밖에도 난리입니다!”
강현과 장건철이 그들을 떼어 내려 했으나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지는 싸움이니 어떻게 방법이 없었다.
“강현아! 일단 먼저 가서 놈을 잡아! 내가 이 친구를 보호하고 있을 테니까!”
놈을 잡아서 족치면 멈출 수 있을 거다!
장건철이 병사를 보호하며 강현에게 출발하라 했으나.
강현이 미간을 찌푸렸다.
자신이 가 버리면 그사이에 다른 병사들이 죽는다.
‘할 수 있을까?’
강현이 고민하길 잠시.
‘할 수 있다.’
고민은 접어 두었다.
그래, 여기까지 찾아온 이유를 생각해라.
혹시 모를 비극을 막기 위해서였고 실제로 비극을 마주했다.
그렇다면 자신이 할 일을 하나.
‘막는다!’
[그림자 얽기 스킬 발동 하위 스킬 그림자 포박술 발동]
[연구자의 눈, 흐름 파악, 정밀함, 중급 마나 운용법, 월하심법, 절약 정신으로 이를 보조합니다! 그림자 포박술의 범위와 효과가 대폭 상승합니다!]
강현이 각오를 끝마치고선 자신이 가진 모든 그림자를 특공연대 건물에 들이부었고.
휘리리릭!
그가 끌어올린 그림자가 서로를 공격하는 병사들의 몸을 묶기 시작했다.
팔과 다리를 묶어 버리니.
“…….”
어떠한 명령도 수행하지 못한 채 눈을 꿈뻑거릴 뿐.
화장실 안, 나아가 주변에 몰려든 병사들이 일제히 나무토막 쓰러지듯 손발이 묶인 채 우르르 쓰러졌고.
“이익! 포탈 열어!”
도망치던 놈이 상황이 변했음을 느끼고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강현이 모든 병사를 제압하기도 전에.
[허용된 그림자 용량을 모두 소진하였습니다. 그림자 포박술, 이동 사용이 불가합니다]
그림자가 모두 소진되었다는 알림이 떠올랐고.
강편이 펼쳤던 그림자의 범위가 서서히 좁아졌다.
그림자는 다했고 남은 소수의 병사들이 아직 서로를 향해 주먹을 휘두르는 중.
이들을 마나 포승줄로 묶자니 한 명 한 명 찾아다녀야 한다.
그때.
“최강현! 출발해! 나머지는 내가 맡는다!”
장건철 병장이 당당히 외치며 앞으로 내달리더니.
퍼억!
아직 서로 싸우고 있는 병사 둘을 그대로 들이받자.
차에 치인 듯 날아간 병사들의 몸이 축 늘어졌다.
기절한 모양새.
“내가 나머질 기절시키마! 그러니 가서 그 새끼 잡아! 조져!”
이 정도 숫자면 자신이 해결할 수 있다!
전우의 응원을 받은 강현이 재빨리 놈의 흔적을 찾았고.
묶인 채 움직이지 못하는 병사들 사이를 내달렸다.
그림자를 모두 사용하는 바람에 비록 그림자 이동은 사용하지 못했으나.
[천력무골, 와룡승천 발동. 이동 속도가 대폭 증가합니다!]
강현의 속도는 이미 한계를 초월한 지 오래!
그렇게 흔적을 따라 1층 막사 앞으로 나온 순간.
“저 괴물 같은 새끼!”
놈이 강현을 발견하곤 얼굴을 와락 구겼다.
벌써 자신을 따라왔단 말인가!
이대로는 강현에게 잡힌다!
“하압!”
결국 도망치는 건 어렵다고 판단.
상대가 자신의 힘을 뿜어내며 어설프게 공격을 시도하려 할 때.
[어둠의 마나 사용 어둠의 통로 개방. 대상의 신체 강제 이송]
갑자기 떠오른 알림창과 함께.
놈의 머리 위로 시꺼먼 구멍 하나가 입을 쩍 벌렸고.
어둠의 주교라는 놈을 후루룩 삼켜 버렸다.
“끄아아악!”
어디론가 끌려 들어가는 듯 끔찍한 비명이 이어지길 잠시.
철퍽.
놈의 손목 하나가 바닥에 떨어진 걸 끝으로 주변이 침묵에 휩싸였다.
통로가 입을 벌리고 일렁이는 것이 강현이 들어오길 기다리는 모양새.
“…….”
강현이 이를 차분히 바라보았으나.
연구자의 눈도 평소와 다르게 묵묵부답.
선택해야 한다.
여기서 돌아가느냐 아니면 안으로 들어가느냐.
물론.
“가서 찢어라.”
“안 그래도 가서 찢을 생각입니다.”
강현이 망설일 것 없이 발걸음을 옮겨 어둠 속으로 뛰어들었다.
옆에 있던 검성도 만족스럽다는 듯 웃으며 따라 들어갔고.
막사 앞에는 불길하게 일렁이는 입구만이 남았을 따름.
[어둠의 통로에 입장했습니다! 공간이 뒤틀립니다! 이동합니다!]
강현이 어둠의 통로에 몸을 집어넣은 이후.
그제야 상태창이 경고를 떠올리기 잠시.
저 멀리 희끄무레한 빛이 훅 커지더니.
털썩.
강현을 뱉어 냈다.
혹시 쏟아질지 모르는 공격을 대비하여 몸을 뒤집으며 착지.
막 마나를 폭발시키려 할 때.
“끄아아악! 이런 씨발! 내 손목!”
오히려 적의 공격보다 먼저 들린 건 놈의 고함.
그제야 강현이 눈을 들어 주변을 살폈고.
자신이 어느 산봉우리에 서 있다는 걸 알아챘다.
휘이이이잉.
돌로 이루어진 꼭대기 위로 날카로운 밤바람이 불어왔고.
놈은 자신의 잘린 손목을 부여잡은 채 발버둥 치는 중.
“사, 살려 줘! 아무도 안 죽였잖아요. 저 아무도 안 죽였잖아요!”
이번엔 강현을 보며 살려 달라 애원했다.
자신은 죽이지 않았다고.
그러니 죄가 없다고.
그냥.
“힘이 있으니까 좀 장난 좀 쳐 본 거야! 씨발, 그냥 장난이었다고!”
장난이었다고.
병사들의 의지를 빼앗고 자살하려는 병사를 붙잡아 죽이려 하고 서로를 죽이라 명했지만.
그저 장난이었노라고.
그러니 용서해 달라고.
놈이 말 같지도 않은 변명을 해 대며 강현을 향해 자비를 구걸할 때.
“개소리 지껄이지 마.”
강현이 단호히 놈의 말허리를 잘라 내고는 허리춤에서 천천히 검을 뽑았다.
어두운 밤, 빛 하나 없는 곳임에도 번쩍이는 칼날이 유독 날카롭게 빛났고.
죽음을 직감한 놈이 도망치려는 순간.
휘이이익.
강현이 몰아치는 산바람을 거스르며 놈에게도 쇄도.
차가운 검날을 내리쳤다.
그리고.
까아앙!
강현의 검이 가로막은 곳.
검은 촉수 몇 개가 후두둑 떨어져 내렸다.
정확히 놈을 노린 공격.
강현이 검을 휘두른 건 놈을 향한 게 아니라 촉수를 막아 내기 위함.
곧 강현이 눈에서 살기를 번들거리며 막 공중으로 떠오른 누군가를 향해 입을 열었다.
“순서 지켜, 새끼야.”
그의 살기를 마주한 상대가 어둠을 몸에 두른 채 미소를 씩 지어 보였다.
“자신의 소명을 다하지 않은 어둠의 주교는 죽어 마땅합니다.”
동시에.
“자신의 소명을 다하지 않은 어둠의 주교는 죽어 마땅합니다”
산 전체에서 같은 말이 메아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