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4화 선조치 후보고
“이게 마지막 파일이야. 여기까지 끝나면 아침때까지는 그냥 CCTV 보고 있으면 돼.”
“아, 그게 끝입니까?”
“뭐, 사령분들에 따라 다르긴 한데.”
장건철과 강현이 당직대 컴퓨터 앞에 앉아 서로 대화를 나누며 인수인계를 이어가는 중.
마침.
“충성! 순찰 근무 교대 왔습니다. 어? 당직 사령님은요?”
“아, 자러 가셨어요. 투입하세요.”
“네, 고생하세요.”
“고생하세요.”
순찰 교대 인원이 도착했고 장건철과 강현이 그들에게 임무 교대를 지시했다.
“봐, 스쿼트 같은 경우 척추 중립이 가장 중요하지. 허리를 과신전하면 척추가 나간다니까?”
“척추가 나가면 그림자로 다시 이어붙이면 되니까 괜찮습니다.”
이후 장건철과 강현이 어딘가 자연스러우면서도 이상한 대화를 이어갔다.
분명 생김새도 말투도 목소리와 몸짓도 완전히 같지만.
“어우야, 뭔가 좀 이상하다.”
어딘가 어색한 느낌.
그림자 속에 숨어 이들을 지켜보던 장건철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분명 겉모습은 똑같은데 어딘가 빙빙 도는 대화를 듣고 있자니 무언가 어색하고 불쾌했다.
“이게 마지막 파일이야. 여기까지 끝나면 아침때까지는 그냥 CCTV 보고 있으면 돼.”
“아, 그게 끝입니까?”
“뭐, 사령분들에 따라 다르긴 한데.”
이제는 강현과 장건철이 했던 대화를 반복하는 중.
[제작 스킬 레벨 부족으로 도플갱어 잔해를 완벽하게 다룰 수 없습니다. 대상의 재현도가 떨어집니다]
강현도 자신이 만든 도플갱어의 대화를 들으며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참새까지는 가능했는데 실제 사람은 아무래도 어려운 모양.
그나마 섬세함, 연구자의 눈 등으로 보조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밀랍 인형보다는 괜찮지 않겠습니까?”
어디 박물관에 전시된 어색한 밀랍 인형 같은 꼴로 세워 두었을 거다.
“그래도 임무 투입이랑 교대까지는 문제없으니까 다행입니다.”
“그래, 그것조차 대단하긴 하다.”
장건철이 그림자 속에서 강현을 새삼스럽다는 눈으로 보았다.
지금껏 했던 활약들을 비롯해서 하도 괴상망측한 풍경들을 보아 왔기에 이젠 웬만한 일에도 놀라지 않을 자신 있었다.
그런데 지금 강현이 보여 준 능력은 장건철을 놀라게 하기 충분했다.
“대체 넌 뭐냐?”
문득 장건철이 전역하기 전 꼭 묻고 싶었던 질문을 던졌다.
사실 진짜 질문은 이거였다.
대체 넌 뭔데 그렇게 강하고 온갖 신비로운 능력을 뽐내며 더군다나 이젠 도플갱어까지 만들어 내는 거냐!
참 거기에 이 그림자 능력도!
많은 궁금증을 내포하고 있지만 말재주가 없는 터라 이렇게나마 표현한 것.
도플갱어와 그림자를 보며 떨리는 장건철의 눈동자를 본 강현이 입을 열었다.
그가 한 대답은.
“대한민국 특수임무헌터대 소속 상병 최강현입니다.”
너무나 상투적인 대답.
후임의 농담에 장건철이 피식 웃을 때.
“그리고 장건철 병장님의 후임이자 전우입니다.”
강현이 시원스레 미소 지으며 질문과는 가깝지 않지만 가장 현명한 정답을 내놓았다.
역시나 전입 왔을 때도 그렇게 말을 잘하더니 여전하구나.
이 대답이 오히려 강현다웠다.
그리고 장건철은.
“그래, 그거면 됐지.”
정말 그거면 만족했다.
장건철이 강현을 마주 보며 굳건히 미소 지었다.
녀석이 무엇이든 또 어떤 능력이 있든 결국 자신의 전우라지 않은가.
자신이 그를 위해 싸움에 뛰어들 각오가 되었듯.
녀석도 그렇다지 않은가.
장건철이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강현이 그림자를 움직여 지휘 통제실을 빠져나갔다.
지금 강현이 향하는 곳은.
[날려 보낸 참새를 추적합니다. 군단 지도를 띄웁니다. 목표까지 거리 1KM]
아까 병사를 따라가라고 지시했던 참새가 있는 곳.
마침 시간도 이제 막 새벽 1시를 넘겼으니.
‘슬슬 뭔가 일이 생길 만한 시간인데.“
강현이 지금껏 참새가 전해 준 정보를 확인했다.
[참새 소멸까지 남은 시간: 10분]
[현재 병사 상태: 생활관에서 자는 중]
참새가 관찰한 결과에 따르면 아까 불안에 떨던 병사는 생활관에서 편하게 자는 중.
분명 부대 부조리라던가 다른 문제가 있을 거로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평화로운데.’
틈틈이 확인한 정보에 따르면 아무런 괴롭힘도 따돌림도 없었다.
[휴가 복귀 신고 중]
[생활관 청소 및 휴가자 장구류 정비 중]
[저녁 점호 중]
아무리 봐도 일상적인 군대 생활표.
심지어.
[동기들과 같이 운동 중]
[선임과 담배 피우면서 대화 중]
부대 다른 병사들과도 관계가 원만해 보였다.
그렇다면 남은 건.
‘외부 문제 때문인가.’
부대 내부가 아닌 외부적 요소.
때로 집안 사정, 연애 때문에 탈영하거나 나쁜 생각을 하는 경우도 있으니까.
강현이 이전 김준혁 이병 사건을 떠올렸다.
분명 밖에서 도플갱어에게 당한 후 도플갱어가 위장해 들어왔었지?
‘일단 직접 봐야겠어.’
강현이 군단 내부 특공연대를 향해 더욱 속도를 높였고.
곧, 불 꺼진 커다란 막사가 눈에 띄었다.
강현이 지내는 중대 막사보다 몇 배는 커다란 크기.
특임대 3중대 막사가 한 중대 병력이 지내는 곳이라면 연대 막사인 만큼 인원이나 규모가 달랐다.
강현이 마침 눈에 보이는 건물을 보며 참새의 정확한 위치를 찾으려 할 때.
[현재 병사 상태: 침대에서 일어나 군화를 꺼냈음]
병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시간에, 그것도 군화를 꺼내는 거라면 분명 좋은 신호가 아니다.
강현이 다시금 지도를 확인하며 참새가 있는 정확한 위치로 이동했다.
마침 주변 나무에서.
짹, 째잭, 짹
이 시간에 들리기엔 어색한 참새 울음이 들려왔고.
강현이 나무 그림자를 타고 올라서는 순간.
[화장실로 이동, 군화 끈 푸는 중]
병사가 마침내 나쁜 결심을 한 듯했다.
강현이 그가 있다는 화장실로 가기 위해 막사 창문을 넘으려 할 때.
쓰윽, 쓰윽, 쓰윽.
슬리퍼 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화장실 가는 중인가? 구하게 만들면 되겠다.’
강현이 마침 잘 되었다고 생각하며 안을 들여다보자.
끼이이익. 끼이이익. 끼이이익.
기다렸다는 듯 생활관 문들이 연속해서 열렸다.
딱 보아도 무언가 이상하다.
강현이 우뚝 움직임을 멈추었고.
열린 생활관에서.
쓰윽, 쓰윽, 쓰윽.
분명 자고 있어야 할 병사들이 걸어 나왔다.
한두 명이 아니라 생활관에 있는 전부가!
이들이 동시에 오줌이 마려울 일은 없다.
강현이 그림자 속 깊이 스며들어 외벽을 타고 이동했다.
* * *
“후으으, 으으으으.”
화장실 맨 끝 칸.
“흐으으으, 으으윽.”
그 안에서 들려오는 깊은 한탄과 신음.
군단 정문에서 1분대를 마주쳤던 병사가 전투화 신발 끈을 풀며 마치 상처 입은 동물과 같은 소리를 내고 있었다.
떨리는 손과 얼굴에 흐르는 눈물.
전투화의 신발 끈을 급하게 푸느라 자꾸 헛손질이 이어졌다.
“으으, 빨리.”
본인도 답답한지 스스로를 재촉해 보았지만 공포로 인해 떨리는 손은 자꾸 엉뚱하게 움직일 뿐.
한 칸 한 칸 끈을 풀러 드디어 마지막.
“으윽!”
그가 튀어나오려는 욕설을 속으로 삼켰다.
훈련소에서 자살 방지용으로 해 놓았던 작은 매듭 세 개.
양 끝 그리고 중간.
아직도 갈 길이 남았다.
그가 얕은 숨을 헐떡이며 전투화 매듭을 풀어 보려 했으나.
끈 푸는 것도 힘들었던 상황에 이 작은 매듭이 쉽게 풀릴 리가 없다.
몇 번의 시도 끝에 간신히 하나를 풀어냈을 때.
덜컹.
“흡!”
밖에서 들리는 문 여는 소리에 병사가 움찔 숨을 멈췄다.
충혈된 눈을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며 다가오는 사람이 있나 긴장할 때.
쓰윽, 쓰윽, 쓰윽.
슬리퍼 끄는 소리가 울렸고.
곧 쪼로로록 오줌 누는 소리도 들려왔다.
그냥 새벽에 소변을 보러 온 선임인 걸까?
그가 내심 안도하며 다시 매듭을 풀어나갈 때.
“거기 누구 있냐?”
밖에 있는 선임이 병사의 존재를 눈치챈 듯 물어왔고.
“볼일 보고 있습니다.”
그가 억지로 태연한 목소리를 가장하여 상황을 넘기고자 했다.
곧 다시 슬리퍼 끄는 소리가 들렸고.
화장실이 잠잠해졌다.
병사가 눈을 이리저리 돌리며 귀를 기울이길 잠시.
사람이 없다는 확신에 다시 매듭을 풀기 시작했다.
참 이상했다.
자살하는 사람이 무언가에 쫓기듯 급하다.
수십 번을 망설여도 모자랄 순간에 오히려 빨리 죽고 싶다는 듯 손을 재촉한다.
드디어 마지막 매듭을 풀어내고 신발 끈을 꺼낸 그가 막 자신의 목을 줄로 감싸려 할 때.
“야, 볼일 본다며?”
“……!”
그의 머리 위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방금 들었던 목소리와 같은 목소리.
병사가 떨리는 고개를 들지도 못한 채 숨을 몰아쉬었고.
“볼일이 목매는 거였냐?”
이어진 질문은 다른 목소리.
그가 바들바들 떨며 고개를 올려 위를 보자.
“모를 줄 알았어?”
“군화 가져간 거.”
“모를 줄 알았어?”
“자살하려고 한 거.”
“모를 줄 알았어?”
“도망치려고 한 거.”
작은 변기칸 위에 빽빽하게 들어찬 선임들의 머리가 번갈아 가며 말을 뱉었다.
절대 벗어날 수 없다는 듯.
“도망칠 수 있을 줄 알았어?”
변기칸 위에 얼굴을 내민 선임들이 다 함께 물었고.
“우리한테서.”
답은 화장실 전체에서 들려왔다.
한두 명이 아니다.
모두가 그를 보고 있다.
이제 틀렸다.
“벗어날 수 없어…….”
병사가 절망하듯 흐느꼈다.
낮에 그 빌어먹을 놈들만 아니었어도!
차라리 탈영했을 거다!
이런 꼴을 당하진 않았을 거다!
어차피 끝까지 도와주지도 못할 거 도움의 손길이나 뻗지 않았으면 도망치기라도 했을 거다!
그가 자신의 상황을 원망할 때.
“어차피 도망 못 쳐.”
건조한 목소리들 사이.
유일하게 억양이 살아 있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병사의 턱이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떨리기 시작했다.
아니 몸 전체가 진동이라도 하듯 떨려왔다.
“죽어 봐. 죽을 수 있는지 없는지 보여 줄 테니까.”
마치 상대의 생명을 쥐고 있다는 듯한 자신감.
그러나 상대를 알기에 병사는 더욱 겁을 집어먹었다.
“죽어 보라니까?”
“으으… 잘못했습니다.”
결국 이어진 질문에 병사가 목을 죄었던 끈을 놓으며 용서를 구했다.
죽을 용기도 도망칠 용기도 없다.
그가 모든 걸 포기했으나.
“잘못했다고 하면 다냐? 새끼가 빠져서.”
상대는 용서할 생각이 없었다.
곧.
콰앙, 콰앙, 콰앙.
밖에 있던 선임들이 일제히 변기칸을 향해 몸을 날리더니.
문을 부수고 안으로 진입.
우왁스럽게 병사를 밖으로 끌고 나왔다.
“으으, 살려 주세요. 잘못했어요! 살려 주세요!”
병사가 겁에 잔뜩 질려 살려 달라 애원했으나.
“요 자를 쓰네? 이게 미쳤네?”
상대는 그저 병사의 잘못을 지적할 뿐.
“왜? 죽고 싶어서 그런 거 아니었어?”
화장실에 가득한 선임들, 그들의 무미건조한 눈동자들 사이.
병사만이 살려 달라고 고함칠 뿐.
“아악! 살려 줘! 제발 살려 줘!”
이리저리 몸부림을 쳐도 여러 사람을 당해 내지 못했고.
곧 병사들이 갈라지더니.
“왜? 원하던 대로 죽여 준다는데 그렇게 겁을 먹어?”
그들과 같은 생활복을 입고 슬리퍼를 신은 자가 걸어 나왔다.
다른 점이라면 입가에 걸린 뒤틀린 미소.
겁에 질려 몸부림치는 후임을 보며 마치 즐거운 장난감이라도 보는 듯한 눈.
곧 그가.
“죽여.”
내린 간단한 명령에.
옆에 있던 선임들이 그가 풀어낸 신발 끈으로 병사의 목을 졸랐고.
“끄으으윽. 사, 살려- 살려…….”
점점 까무룩 하게 정신을 잃어 갈 때.
화장실 구석에 맺혀 있는 그림자 속에서.
사람이 솟아났다.
그것도 하나가 아닌 둘.
한 명은 커다란 덩치에 단단한 얼굴을 한 자.
한 명은 훤칠한 키에 세련된 얼굴.
그들을 발견한 병사의 눈이 죽음의 공포도 잊은 듯 부릅떠졌다.
본 적 있다.
‘군단 앞!’
그래 자신을 호위하듯 군단 입구로 밀어 넣은 그 둘과 함께 있던 자들!
그런데 여긴 어떻게?
병사가 원망과 놀라움, 기대, 공포, 절망이 담긴 눈으로 그들을 바라볼 때.
“야, 이 개새끼들아 멈춰!”
장건철이 가슴을 크게 부풀리더니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야말로 화장실이 떠나갈 듯 엄청난 성량.
그러나.
누구도 장건철을 쳐다보는 이가 없었다.
그저 인형처럼 얼빠진 얼굴로 서 있을 뿐.
“뭐야, 저 덩어리는.”
단 한 명, 이들을 움직이는 병사만이 장건철을 보며 비웃음을 띄워 올렸다.
그러나.
“너, 너는!”
그의 옆에 있는 사람을 보고는 얼굴을 굳혔다.
놈이 어떻게 여기까지 왔단 말인가!
분명 철저히 정체를 숨기고 있었는데!
설마?
“이 개새끼! 네가 불러들였지!”
놈이 병사를 향해 막 화를 내며 추궁할 때.
장건철의 옆에 있던 남자.
강현의 입이 열리며 묵직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특수임무헌터대 상병 최강현 외 한 명. 특공연대 이상 상황 발견.”
강현의 눈은 오직 상대를 향해 번뜩이는 중.
녀석을 만난 이상, 이 상황을 본 이상 넘어갈 생각 따위 없다.
강현의 눈이 깊게 빛났고.
“어둠의 주교를 발견. 선조치 후보고 하겠다.”
살기가 휘몰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