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화 먹잇감이 나였어?
학교 정규 수업 외에도.
“학교 끝나면 피아노 갔다가 태권도, 저녁 먹고 바로 종합 학원 가기로 했으니까 그렇게 알아.”
“아니, 애가 좀 쉴 시간도 있어야지.”
“그러다가 다른 애들한테 뒤처지고 이도 저도 못 하면 당신이 책임질 거야?”
“그래도 너무 심하잖아.”
“아니, 내가 나 좋자고 그래? 어릴 때부터 많은 걸 해 보라고 하는 거 아냐.”
어릴 적부터 많은 사교육과 학원에 시달리는 아이들.
“그래도 어릴 때는 흙도 좀 만지고 애들이랑 같이 놀고…….”
“당신은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런다. 지금 밖에 흙이 어딨어. 병 걸릴 일 있어? 거기다 애들이랑 놀아? 학원을 안 가면 애들이랑 놀지도 못한다고! 그렇다고 당신이 주말에 놀아 주기를 해? 으이구!”
“아니, 그걸 왜 나한테 잘못을 돌려?”
“애한테 관심 좀 가지라고! 일만 한다고 잠만 퍼질러 자지 말고!”
“야, 너 말 심하게 한다?”
“뭐, 왜!”
아이의 미래를 위해 또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
많은 명분으로 이루어지고 권장되는, 아니 하지 않으면 바보가 되어 버릴 것만 같은 불안감이 드는 사교육.
그러나 헌터라는 능력자가 생긴 요즘은 좀 달랐다.
“근데 그 종합 학원에선 뭘 배우는데? 수학, 영어, 국어? 그게 베이스긴 하니까.”
“아니? 그런 거 안 배우는데?”
“그런 걸… 안 배워? 그럼 뭘 배워?”
“마나 홀로그램 적응, 신체 능력 향상, 전투 영상 시청, 다양한 환경 겪기.”
“그게 뭐야?”
“뭐긴 뭐야? 헌터 되기 교육이지.”
“헌터를 만들어 주는 학원이 있어?”
“당신의 자녀를 헌터로 만들고 싶으신가요? 혹시라도 숨겨진 능력이 없을지는 모른다구요? 그럼 바로 이곳이 정답입니다!”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헌터를 만들어 주는 학원.”
“헌터 스터디 지금 전화하세요!”
자식을 헌터로 만들어 주겠다는 학원들이 우후죽순 생겨났고.
“엄마! 나 헌터 스터디 다닐래!”
아이들 또한 헌터 학원에 다니고 싶어 하는 추세.
사실 국어다 영어다 수학이다 앉아서 공부하는 것보다 차라리 재밌지 않은가.
그야말로 대 헌터 학원 시대가 온 것.
그리고 이런 거대한 헌터 교육 시장의 정점에는.
“창연 재단에서 헌터 특수 학교를 설립하겠다 밝혔습니다.”
“이사장이자 창연 길드 길드장인 태풍 김도현 헌터에 따르면 국가의 미래를 위해 헌터들을 발굴하고 육성하여 한국을 헌터 강국으로 만들겠다는 취지라고 합니다.”
한 사립학교가 군림했다.
창연 재단에서 만든 헌터 학교.
어떤 학원보다 믿음직하고 어떤 학원보다 유망한 곳.
거기다.
“창연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로 이루어지는 교육과정으로 우수한 성적을 거둔 학생 같은 경우 이후 창연 길드 우선 취업 혜택이 주어지는 형태로서.”
초, 중, 고로 이루어지는 그야말로 헌터계의 로열 로드.
그러다 보니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부터 그들의 부모님까지 특별한 사람들이 참 많았다.
유명한 헌터부터 재력가, 고위 공무원 등등.
물론 평범한 집안의 아이들도 있었으나 두각을 드러내기 쉽지 않았다.
이런 운동회 점심시간에는 더욱 재력이 드러나기 마련.
그런데.
“자, 잠깐만요! 어디서 오신 거죠?”
“아니, 이렇게 막 들어오시면!”
지금 초등학교 운동장 한쪽엔 푸드 트럭, 아니 푸드 트레일러라 할 만한 차량이 세 대나 들어섰다.
“최강현이라는 분 여기 안 계세요?”
“어, 저도 최강현이라는 분 찾아왔는데?”
“응? 아니 밥차 세 대를 불렀어?”
다른 사람들은 버거왕 햄버거 세트, 고급 도시락 등으로 재력을 자랑할 때.
푸드 트럭 세 대를 동시에 불러 재력을 자랑하는 건 학교 역사상 처음.
“아주 뷔페를 차려라.”
검성 이석천이 강현의 지극한 동생 사랑에 혀를 찰 때.
“제가 안 불렀는데요?”
강현 또한 황당한 상황에 눈을 끔뻑였다.
원래는 햄버거 세트를 준비하려 했건만.
운동회 날 며칠 전.
- 혹시 점심 아직 안 정했으면 저한테 맡겨요
- 괜히 햄버거 세트 같은 거 사지 말고 기다려 내가 보내 줄게
이혜원과 황세아의 톡을 받기는 했다.
집에 자주 들락거리다 보니 서연이 운동회 소식을 들은 모양.
마침 햄버거냐 도시락이냐 고민하던 중 둘의 문자를 받고 걱정을 덜긴 했는데.
설마 푸드 트럭일 줄은 몰랐다.
푸화아아악! 보글보글보글.
한쪽에선 웍에 불질을 해 가며 해물 짜장면을 만들고 있었고.
한쪽에선 김치찌개와 꼬마 돈까스 냄새가 퍼지는 중.
거기다.
“스테이크 들어갑니다!”
옆에 있는 양식 트럭에선 나머지 트럭의 활약에 자극을 받았는지 커다란 고깃덩이를 철판에 굽기 시작.
“우와아아아.”
“엄마! 엄마 저것 봐!”
초등학생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리고 곧 그들의 눈이 자신의 손에 있는 반쯤 식어 버린 햄버거와 도시락에 미쳤다.
분명 방금까지만 해도 맛있었는데.
“나도 먹고 싶다.”
“아빠 나도 저거 먹으면 안 돼?”
역시나 아이들은 솔직한 법.
다들 자기가 먹는 음식에 싫증을 느꼈는지 부모님을 조르기 시작했고.
“우리 음식이 아니라 1학년 1반 거라 그럴 수가 없어.”
“일단 이 햄버거부터 먹자.”
아이들을 달래는 모습이 곳곳에서 보였다.
물론 곤란한 건 선생들도 마찬가지.
“푸드 트럭은 생각도 못 했네. 근데 왜 세 대지?”
강현도 괜스레 피해를 준 거 같아 멋쩍어할 때.
“아, 최강현 님 맞으세요?”
“여기 보내신 분 성함입니다.”
중식과 한식 차량을 보낸 사람은 역시나 황세아와 이혜원.
그렇다면 나머지 하나는?
“서… 대천?”
서대천? 그 서대천?
강현이 황당한 표정으로 양식 차량을 보낸 사람의 이름을 확인했다.
그리고 마침.
위이이잉.
- 강현 형님, 차량은 잘 도착했는지요. 동생분이랑 맛나게 드십쇼!
지난번 태극 훈련이 끝난 뒤 교환한 서대천의 번호로 온 문자.
강현이 일단 문자로나마 감사를 전한 후 각 트럭에 물었다.
“혹시 준비한 인분이 어떻게 되나요?”
“아, 넉넉히 50인분 준비했습니다!”
세 차량 모두 준비된 음식은 50인분씩.
총 150인분이니 한 반이 먹기는 많다고 하지만.
“모두를 먹이기에는 좀 부족하겠는데…….”
강현이 머리를 긁적였다.
차라리 1반만 먹으면 모를까 오히려 애매하게 음식이 넘치는 상황.
“아아앙! 나도 먹고 싶어!”
급기야 어떤 아이들은 울기까지 하는 모양.
괜히 분위기를 흐린 건 아닌가 싶었고.
“오빠… 다른 친구들이랑도 나눠 먹으면 안 돼?”
서연이도 착한 마음씨에 모른척하기 미안한 표정.
강현도 곤란한 듯 미간을 찌푸릴 때.
우우우웅.
저 운동장 입구부터 헤드라이트를 빛내며 트럭들이 연이어 등장.
자그마치 열 대가 넘는 푸드 트럭이 새롭게 들어왔고.
“최강현 님! 최서연 님 계십니까!”
일제히 목소리를 높여 강현을 찾았다.
지금 그러니까.
“이 트럭들 전부가 날 찾아왔다고?”
강현이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렸고.
- 강현아! 서연이랑 운동회 즐겁게 보내! 중대장 선물이야!
서윤진 대위의 톡을 시작으로.
산군 특별 팀 헌터들, 창연 훈련 팀 헌터들의 톡이 이어졌다.
훈련 때 강현에게 목숨을 구원받았던 사람들이 보낸 푸드 트럭들이 운동장에 가득 들어찼고.
“혹시 50인분 준비해 오셨나요?”
“네, 혹시 모자랄까 봐 넉넉히 가져왔습니다!”
강현이 각 트럭을 돌아다니며 준비된 음식을 체크.
이윽고.
“모두 와서 드세요!”
두 팔을 활짝 펼치며 외쳤다.
뒤에는 양식, 중식, 한식, 일식, 닭강정 등 푸드 트럭들이 주르륵 서 있는 풍경.
마치 축제라도 벌어진 것처럼 다양한 음식들이 조리되는 중.
거기다 총 600인분이 넘으니 걱정할 것도 없다!
강현의 외침에 처음엔 다들 머뭇머뭇하던 사람들도.
“고마워요. 잘 먹을게요.”
“감사합니다! 형!”
“서연아, 잘 먹을게.”
강현과 서연이에게 고맙다 인사하며 각자 먹고 싶은 트럭 앞에 서서 음식을 받아 가기 시작.
봄 운동회 점심시간이 봄 축제 점심시간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그들의 얼굴에 핀 웃음을 보며.
“다행이다, 오빠. 다 같이 먹을 수 있어서!”
서연이가 활짝 웃었고.
“그러게. 다행이다, 서연아.”
강현도 서연이를 보며 미소 지었다.
다 같이 나누어 먹으면 행복이 배가 되는 법.
“맞다! 서연아 잠깐, 잠깐만 기다려 줄래?”
강현이 문득 무언가를 떠올리고는 동생에게 양해를 구했고.
“잠깐 좀 도와드릴까요?”
“아뇨, 괜찮은데요?”
“도와드릴게요!”
강현이 각 푸드 트럭을 돌아다니며 음식들에 손을 댔다.
특별히 조리에 간섭한 건 아니고 간단하게 무언가를 추가하거나 볶는 걸 도와주었을 뿐.
그리고.
[새로운 고물 중식용 밥차를 획득했습니다. 안에 담긴 사용자의 경험을 받아들입니다!]
[새로운 고물 한식용 밥차를 획득했습니다. 안에 담긴 사용자의 경험을 받아들입니다!]
[새로운 고물 닭강정 트럭을 획득했습니다. 안에 담긴 사용자의 경험을 받아들입니다!]
강현이 각 트럭을 돌 때마다 트럭에 담긴 경험이 빨려 들어왔고.
[중급 요리 하위스킬 대량 조리를 획득했습니다! 대량 조리 실력이 향상되었습니다!]
[연구자의 눈 발동 요리를 분석합니다. 부족한 부분을 분석합니다!]
[중급 요리 스킬을 발동합니다! 하위 스킬 추억 보정, 대량 조리를 발동합니다! 요리의 맛이 대폭 상승하고 음식을 먹은 사람들의 추억을 불러일으킵니다!]
곧 더욱 맛있어진 음식이 사람들의 손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역시나.
“우와! 엄청 맛있다!”
“대박! 진짜 맛있어!”
제일 먼저 아이들이 화들짝 놀라며 그릇에 고개를 박고는 마구 음식을 삼켰고.
처음엔 운동회 날 먹는 음식이 원래 그러려니 하던 부모님들도.
“어머! 이거 뭔데 이렇게 맛있어?”
“그래? 한식 트럭이 유독 맛있나 보다. 아닌데? 짜장면도 진짜 맛있는데?”
음식을 입에 넣어 보고는 화들짝 놀랐다.
그냥 푸드 트럭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울 정도의 맛.
“아니, 전에 먹었던 맛집도 이런 맛 아니었나?”
“그러게. 완전 맛집인데?”
“맛트럭! 엄마 맛트럭!”
나른해지는 봄 오후에 먹는 맛있는 음식.
절로 기분이 좋아지는 맛에 다들 함박웃음이 피어났고.
“서연아, 우리도 밥 먹을까?”
“웅!”
좋아하는 사람들을 보며 즐거워하던 서연이도 강현의 물음에 더욱 밝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서연이와 먹을 음식은 특별히 강현이 따로 만든 것.
서연이야 강현이 해 준 음식을 종종 먹었기에 익숙하지만.
“우와 맛있어!”
오늘따라 익숙하지 않은 맛.
생전 처음 맞이하는 운동회, 오빠와 보내는 소중한 시간.
거기에 다 같이 먹는 음식과 친구들의 행복한 표정.
마치 축제 같아서 더욱 추억에 남을 순간.
[동생 최서연의 상상의 나라에 새로운 추억 봄 운동회가 추가되었습니다!]
[이전 얻은 호칭 한창 자랄 나이로 경험치 두 배 획득! 행복한 순간 상상력이 극대화됩니다. 전설적인 상상력 호칭 적용으로 성장 속도 총 400% 달성!]
[능력 일부가 새롭게 개화했습니다!]
서연이가 성장을 맞이했다.
오빠에게는 너무나 기쁜 이야기.
그리고.
[긴급 퀘스트 어린 시절의 운동회 퀘스트를 성공했습니다!]
[성공 조건 그 누구보다 멋진 오빠가 되어 주세요를 완벽하게 이행했습니다!]
[추가 조건 모두가 즐거운 운동회를 달성했습니다! 학생들의 기억 속에 길이 남을 운동회를 만들었습니다!]
[퀘스트 성공 보상 강화! 학부모 및 선생 전체 작전 지시권을 획득했습니다!]
강현이 조금 의외의 보상에 고개를 갸웃했다.
자신이 학부모와 선생에 대한 명령권을 획득해서 무엇 한단 말인가?
이제 저학년 차례는 다 끝났고 고학년 몇 경기만이 남은 상황.
강현이 이 보상을 대체 어떻게 하라는 건지 고민할 때.
“저기, 혹시 자리 있나요?”
부드러운 목소리 하나가 강현의 정신을 일깨웠다.
어딘가 익숙한 목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리자.
“어머? 여기는 어쩐 일이세요?”
태극 훈련 때 보았던 익숙한 얼굴.
창연 길드 매니저 김소희가 강현을 발견하곤 생글생글 웃었다.
내리쬐는 봄 햇볕 속, 강현을 보느라 숙인 고개를 따라 늘어진 머리.
이를 넘기자 보이는 가는 목선.
어디선가 나는 풋풋한 봄꽃 향기까지 더해지자.
마치 드라마의 한 장면 같았으나.
“…….”
강현은 담담했다.
이전 부대에서 이혜원의 진실한 반응을 보았을 때와는 다른 느낌.
왜일까.
당연히.
[이름: 김소희]
[직책: 창연 초등학교 이사장]
[정보: 타고난 머리, 준비된 연출가, 교묘한 전략가, 서연이의 입학을 직접 추진함]
[추가 정보: 지금 아주 중요한 먹잇감을 노리고 있음]
이 모든 게 그녀가 의도한 상황이었기 때문.
동생의 입학을 추진한 게 그녀인데 강현이 왜 와 있는지 모를 리도 없거니와.
직책이 학교 이사장인데 아무도 인사를 오지 않는다는 게 이상하지 않은가?
그리고 특히 신경 쓰이는 정보.
‘아주 중요한 먹잇감을 노리고 있다고?’
강현이 설마 그 대상이 서연이인가 싶어 보는 순간.
“웅? 어? 어어?”
서연이가 어디선가 많이 본 얼굴에 눈을 점점 휘둥그레 떴고.
“저기 그분 아냐?”
“어? 이사장님?”
다들 수군수군거리며 그녀를 가리킬 때.
“혹시 자리가 빈다면 옆에 좀 앉아도 될까요?”
김소희가 주변 반응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으며 오직 강현만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분명 방금.
‘혀로 입맛을 다셨지?’
노리는 먹잇감이 나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