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화 상상의 나라
그건 그야말로 광기였다.
“우와아아아악!”
1군단 특임대를 비롯한 전부가 강현을 향해 달렸고.
그를 번쩍 들어 올려 이리저리 헹가래를 치기 시작.
너무 몰린 사람들 때문에 직접 움직이지 못했어도.
마치 락스타가 관중들의 손 위에서 공연하듯 이리저리 공중을 떠다녔다.
“자, 잠깐!”
강현이 처음에는 그만하라고 하려 했으나.
“대박이다! 대박!”
“덕분에 살았어!”
“고맙다! 진짜 고맙다!”
반쯤 정신을 잃은, 또는 반쯤 울먹이는 병사들의 얼굴을 보곤 강현도 더는 거부하지 못했다.
그들에게 방금 있었던 싸움은 아마 평생에 남을 만큼 충격적이었으리라.
어쩌면 죽을 뻔했다고 생각하겠지.
아니 사실 진짜 죽을 뻔하긴 했다.
그런 그들을 구한 게 강현.
“최강현! 최강현! 최강현!”
어쩌면 강현의 광신도가 되는 게 자연스러울지도 모를 일이었다.
특히 그는 같은 병사였으니까.
“이거 우리는 끼어들 틈이 없겠구먼.”
“그러게 말입니다.”
“지금은 즐기게 두자고. 얼마나 기쁘겠어.”
“우선 부상자들부터 이송하겠습니다.”
간부들은 끼어들 수 없는 병사들 간의 유대.
훈련장에 넘치는 잘났다는 간부들, 길드원들도 아닌 고작 상병 계급의 병사가 주인공이 되었다.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어찌 신나지 않겠는가.
비록 자신들이 주인공은 아니었지만.
“야, 3중대! 너희 멋있더라!”
“아까 산군이랑 같이 싸운 거 맞지?”
“아니 창연도 같이 있었어!”
“너희가 앞에 나서 준 덕에 살았다!”
“솔직히 겁 안 나디?”
같은 병사들이 거대길드 옆에서 당당히 맞서 싸우지 않았던가!
이번엔 다른 특임대 병사들이 3중대원들을 보며 물었고.
“어어? 그게?”
“아까 창연이랑…….”
“산군이랑 같이 있긴 했지?”
갑작스러운 관심에 3중대원들이 어물쩍거렸다.
항상 강현이 중대의 중심이었지 자신들이 관심받아 본 적은 없기 때문.
그때.
“많은 걸 배웠지!”
“그래! 우리도 같이 싸웠다!”
몇몇 3중대원이 당당히 가슴을 펴며 우리 또한 같이 싸웠다고 말했다.
그들의 말에 주변에 있던 병사들이 입을 다물었다.
산군, 창연과 함께 싸우다니.
부럽다는 생각이 들 때.
“모두를 대표해, 아니 1군단 특임대를 대표해 싸웠던 거죠. 우리가 싸운 겁니다.”
사람들의 손 위를 떠다니던 강현이 말을 덧붙였다.
방금까지 소리 지르던 이들도 일제히 강현을 쳐다보았다.
이어지는 침묵에 강현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3중대가 싸우고, 제가 이긴 게 아닌. 우리는 군단 특임대를 대표해서, 그리고 병사를 대표해서 싸우고 또 이긴 겁니다.”
강현이 이젠 별이 떠오른 하늘을 보며 손을 뻗었다.
지금 자신의 아래에 있는 병사들이 위로 손을 뻗고 있듯.
강현도 하늘을 향해 손을 뻗은 모양새.
병사들의 굳건한 팔 위에 있는 그가 뻗은 팔.
“어쩌면, 어쩌면 우리도 저 별을 잡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병사들에게 산군, 창연은 하늘의 별 같은 존재.
현실에 치여 도망치듯 입대한 군대.
그 안에서도 훈련에, 선임에, 후임에, 간부에.
온갖 것에 치이고 또 치이다가 전역하면?
그렇다고 탄탄대로가 놓여 있는 것도 아니다.
취업하기는 점점 어려워지고 그렇다고 좋은 곳에 들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들 앞에 놓인 막막한 현실 앞에서.
강현이 보여 준 무력은.
“그래, 그럴 수 있을 거야.”
“모르지 우리도 할 수 있을지.”
“군인 정신! 할 수 있다!”
병사들에게 꿈과 희망이 되었다.
물론 현실적으로 강현과 같이 될 수는 없겠지.
그러나 꿈은 꿀 수 있지 않겠는가.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꿈꿀 수 있지 않겠는가!
사고로 인해 훈련은 끝났으나.
이번 태극 훈련은 그 어떤 훈련보다 강렬하게 병사들의 기억에 남았다.
* * *
“후우우.”
서울 역삼역 근처, 높다란 빌딩 앞.
막 건물 앞에 선 이성민이 깊이 숨을 들이켰다가 내쉬었다.
두근두근 뛰는 심장.
다른 이유는 아니었다.
“휴가 나오면 집에 들러라. 이야기할 게 있으니까.”
휴가 나옴과 동시에 받은 아버지의 전화.
지난번 휴가 때에는 아버지의 출장으로 만날 기회가 없었지만.
이번에는 아버지가 먼저 이성민을 호출했다.
그가 양복을 입고 드나드는 직원들을 보길 잠시.
“저.”
“네, 어쩐 일로 방문하셨습니까?”
데스크에서 자신을 멀뚱히 바라보는 직원을 보며 이성민이 순간 멈칫했다.
평소 같았다면 자신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다급히 인사를 했을 텐데.
자신을 바라보기만 하는 친절하지만 무관심한 눈.
거기다.
“아, 오늘 약속이 잡혀 있어서요.”
그가 침착하게 자신의 용무를 밝히자.
“아 그럼 외부인 방문 명부 작성해 주시겠어요.”
심지어 데스크 직원이 명부까지 작성하라지 않는가.
군대에 가기 전이라면 이런 말도 안 되는 태도에 벌컥 화를 냈겠지만.
‘너는 어떻지? 똑같은가?’
순간 자신이 가장 따르는 선임, 강현의 목소리가 그의 귓가를 울렸고.
무덤덤하게 방문 명부를 작성해 넘겼다.
“아, 만나시는 분이 누군지도 알려 주셔야 합니다.”
그녀가 이성민을 답답하다는 듯 볼 때.
“뭐 하는 거야!”
마침 화장실을 갔다 오던 데스크 책임자가 이를 발견했고.
다급히 소리를 지르며 뛰어왔다.
“이, 이분이 누구신 줄 알고! 뭐 하는 짓들이냔 말야!”
그의 과도한 호들갑에 데스크 직원들이 무슨 일인가 싶을 때.
“막내 도련님 오셨는데 지금 명부를 왜 받아!”
이성민의 정체를 들은 모두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이젠 죽었다 싶은 얼굴들.
그러나.
“아, 괜찮습니다. 굳이 시끄럽게 만들기 싫어서 이야기 안 했어요.”
이성민이 대수롭지 않게 그들의 실수를 넘기다 못해.
“상대가 누구든 신원을 확인하는 게 먼저니까. 앞으로도 잘 부탁합니다. 대신 방문증은 좀 주세요.”
오히려 상대의 성실성을 칭찬하곤 방문증을 받아 들었다.
데스크 직원들이 어느새 발걸음을 옮기는 그의 등을 멍하니 보다 입을 열었다.
“어…….”
“어어?”
“그냥 가시는 거 맞나요?”
“우리 안 잘리는 거지?”
그의 성격을 소문으로 들어 왔고 실제로 형의 성격도 알기에 다들 어안이 벙벙한 표정.
뭐지? 무슨 일이 있었나? 다들 의아해할 때.
“군대 가셨다더니 철이 드셨나……?”
데스크 책임자가 식은땀을 닦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작은 소란이 있었으나 결국 길드장실 앞에 도착.
이성민이 잠시 널뛰는 마음을 다잡을 때.
날카로운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여긴 왜 왔냐?”
“아버지께서 부르셔서.”
바로 형 이성수.
이성민이 자신을 노려보는 형을 보지도 않은 채.
“그러니까 네가 왜 아버지…….”
“이성민입니다.”
길드장실 문을 두들기고는 문을 벌컥 열며 들어섰다.
이전과는 달라진 동생의 태도에 이성수가 이를 악물었으나.
“이익……!”
곧 아버지를 보고는 화를 감추었다.
“…….”
반면 한빛 길드의 길드장이자 둘의 아버지인 이낙수는 눈을 번뜩였다.
둘의 대화는 물론 데스크에서 있었던 일까지 들은 참.
원래라면 아버지의 눈빛을 받고는 주눅 들었겠지만.
“휴가 나온 참입니다.”
이성민은 침착하고 또 담담하게 아버지에게 인사를 건넬 뿐.
옆에서 아직도 숨을 씩씩 내쉬는 이성수와는 비교되는 모습.
“많이 좋아졌구나.”
“……!”
평소 듣기 어려운 아버지의 칭찬에 이성수가 눈을 둥그렇게 뜨며 놀라는 반면.
“감사합니다.”
이성민은 끝까지 담담한 신색을 유지했다.
마치 별것 아니라는 듯한 태도.
“어째 군대는 좀 편한 곳으로 옮겨 주랴?”
“아니, 아버지.”
평소 엄격한 아버지답지 않은 온화한 목소리와 온화한 제안.
이성수가 말도 안 된다며 항의하려 할 때.
“입 닫아라.”
이낙수가 이성수를 향해 날카롭게 질책했고.
분위기가 정리되자 이성민이 입을 열었다.
“그대로 있겠습니다.”
“왜지?”
아버지의 호기심 어린 질문.
무엇이 자신의 부족했던 아들을 이렇게 단기간에 변화시켰단 말인가?
조금의 변화라도 있길 기대했건만 이런 놀라운 변화라니?
그 이유가 궁금했고.
이를 알아차린 이성민이 작게 미소 지으며 답했다.
“아직 배워야 할 것이 많이 남았거든요.”
“배울 게 남았다?”
“네, 꼭 닮아야 할 사람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아직 같이 이겨 내야 할 훈련도 많이 남았기에.”
이성민이 항상 자신의 앞에 든든히 서 있는 선임을 생각하며 눈을 빛냈다.
“끝까지 뒤에서 배워 볼 생각입니다.”
모든 것을, 아니 모든 것이 아니라도 괜찮다.
조금이라도 좋다.
다만 뒤를 따르고 싶다.
그의 확고한 의지에 이낙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변한 아들이 원하는 대로 두어 보자.
아버지로서의 기대와 신뢰.
“좋다. 나가 보거라.”
아버지의 흔쾌한 허락과 함께 이성민이 길드장실을 나선 후.
하하하하하핫!
닫힌 문 뒤로 얼핏 아버지 이낙수의 웃음이 들려왔고.
형은 이성민이 나가고 나서도 문을 한참이나 노려보았으나.
뚜벅뚜벅.
이성민은 그런 것 따위 중요치 않다는 듯 건물을 빠져나왔다.
이윽고 로비 화장실에 도착한 그가.
“허억! 허억! 허억!”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이마 가득한 식은땀을 닦아 냈다.
방금까지 있었던 일은 그야말로.
“와, 지릴 뻔했다!”
지릴 뻔했던 경험.
사실 아무리 자신감이 붙었다 해도 감히 혼자서는 엄두도 내지 못했으리라.
그러나 이성민에겐 따라 할 롤 모델이 있었으니.
“최강현 상병님이라면 이렇게 하셨겠지.”
바로 강현.
훈련장에서 형을 만난 후 많은 걸 느꼈다.
자신만의 우물에서 성장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았고.
자신의 주변에 얼마나 뛰어난 선임들이 있는지 알았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분명 최강현 상병님이라면 이렇게 했을 거야.”
강현은 가장 빛났고 따라가고 싶은 선임이었다.
누구보다 그에게 가장 많은 걸 배웠고 많은 걸 얻었다.
그리고 이젠 자신이 해야 할 행동의 방향이자 지침으로 제일 먼저 강현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 결과는.
“분명 좋다고 하셨지?”
방금 보았듯 대성공.
그저 강현을 따라 했을 뿐인데.
아버지는 만족했고 형은 자신을 건드리지도 못했다.
그가 난생처음 느껴보는 즐거움에 떨리는 손을 바라보았다.
가장 어려웠던 사람에게 인정받고 가장 불편했던 사람을 이겨 냈다.
“하하, 하하하하하.”
이성민이 해냈다는 생각에 주먹을 쥐며 웃었다.
당사자는 너무 긴장한 탓에 못 들었지만 아버지 이낙수의 너털웃음을 들었다면 아마 너무 기뻐 그 자리에서 다리가 풀렸으리라.
그리곤 그가 자신에게 이런 행운과 기회를 쥐여 준, 이젠 가장 존경하는 선임.
강현을 생각하며 중얼거렸다.
“잘 들어가셨으려나. 최강현 상병님.”
휴가 중에 얼굴 한번 뵈었으면 좋겠는데.
* * *
[후임 이성민의 광신 수치가 더욱 올랐습니다! 중증 광신에 사로잡혔습니다!]
‘뭐야, 이거. 몰라, 무서워.’
강현이 막 눈앞에 떠오른 알림을 보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니 지난번 태극 훈련이 끝난 후부터 계속 이런 상태였다.
광신도 상태가 된 이들이 어디선가 강현 덕에 이득을 볼 때마다.
[선설민 중령의 광신 수치가 더욱 올랐습니다]
계속해서 광신 수치가 올랐다는 알림이 울렸다.
문제는.
‘대체 대대장님은 언제까지 이 수치가 오르는 거야?’
왜 오르는지도 모르는 채 오른다는 점.
이성민이야 방금 아버지에게 인정받은 기쁨이 광신 수치로 표현되었다지만.
강현은 그 이유를 모르니 황당했다.
[후임 서대천의 광신 수치가 올랐습니다! 엄청난 상승 속도입니다! 이미 훌륭한 광신도입니다!]
‘아니 그러니까 광신도 필요 없다고!’
무슨 사이비 교주 같잖냐!
끊임없이 울리는 황당한 알림에 강현이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을 때.
버스가 마침 집 근처 정류장에 도착.
그가 실로 오랜만에 집에 돌아왔다.
아직 늦은 아침이기에 한산한 골목.
“뀨우우.”
여느 휴가 때처럼 양손에 먹을거리를 가득 들고 들어가는 길이 즐거웠는지 구찌가 힘차게 울었다.
“구찌, 기분 좋아?”
“뀨우우!”
전투 때에는 커다랗게 변해서 신수의 위엄을 뿜어내더니.
지금은 영락없는 아기 새와 같은 모양새.
귀여운 삐악거림에 강현이 마주 미소 지을 때.
팔랑팔랑.
크리스탈로 이루어진 나비 한 마리가 강현의 눈앞을 지나쳤고.
“어?”
“뀨우?”
강현과 구찌가 서로를 바라보았다.
“서연이가 만든 거 맞지?”
“뀨우!”
분명 저 크리스탈 나비는 동생 서연이가 자주 만들던 것.
근데 지금은 아직 학교에 있을 시각인데?
강현이 순식간에 그림자 속으로 숨어들었고.
구찌가 날개를 펼치며 재빠르게 공기를 갈랐다.
혹시나 집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불안한 생각을 애써 떨치며 강현이 빠르게 내달렸고.
산군 길드에서 선물한 안전 가옥 앞에 도착.
“이건 또… 무슨.”
“뀨우우우.”
막 집 대문을 박차고 들어간 강현과 구찌가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보며 입을 벌렸다.
다행히 위기는 아니지만 전혀 생각지 못한 장면.
“오셨습니까! 행님!”
수백 똘마니, 아니 수백 그루의 나무가 그를 향해 인사했다.
일제히 허리를 깊게 숙인 모양새.
문제는.
“산이 인사를 하네…….”
“뀨우우.”
그 나무들이 바로 안전 가옥 뒤, 뒷동산에 심겨 있는 나무들이라는 점.
그뿐만이 아니었다.
“안… 녕하십니까… 형님.”
방금 분명 뒷동산 자체가 말을 꺼냈다.
그러니까 산이 말을 했다! 인사를 했다고!
지금껏 놀라운 풍경을 많이 보아 온 강현이지만 이런 경우는 또 처음.
“우리 손주 왔구나!”
그리고 곧 더욱 놀라운 장면을 보며 눈을 부릅떴다.
지금 보이는 게 맞지?
“할머니?”
“뀨우?”
지금 할머니가 산 중턱에서 구름 타고 내려오는 거, 맞지?
[동생 최서연이 만든 새로운 공간. 상상의 나라를 마주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