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화 적에게 작은 불행을
순간 강현이 숨을 멈추었다.
잘못 봤나 했지만.
분명 방금 떠오른 알림은.
[어둠의 주교를 만났습니다]
어둠의 주교를 만났다는 알림창.
여러 번 확인했지만 확실했다.
지금 강현의 앞에 있는 이 연구원은 바로.
‘어둠의 주교.’
어딘가 맹해 보이는 저 남자가?
강현이 멍하니 자신을 보는 남자를 보며 눈매를 좁혔다.
순간 든 생각 한 가지.
‘벨까.’
악의 근원은 미리 싹을 자르는 게 좋다.
상대가 진짜 어둠의 주교라면 당장이라도 베어 넘기는 게 나중을 위해 좋을 거다.
강현의 손이 슬금슬금 검 손잡이로 향했고.
문득.
“최강현 상병님?”
옆에 서 있던 이성민이 강현을 불렀다.
그리고 그제야.
“응?”
강현이 정신을 차렸다.
상대에게 고정해 두었던 눈을 돌리자.
“괜, 괜찮으십니까?”
식은땀을 흘리며 강현의 상태를 살피는 이성민이 보였고.
“강현아? 무슨 일이야?”
“최강현? 괜찮아?”
장건철 병장과 김대영 상병의 목소리도 들렸다.
분명 걱정하는 얼굴이었으나.
덜덜덜, 달그락, 달그락.
장건철 병장의 손은 떨렸고 김대영 상병의 방패도 언제라도 자신을 보호할 수 있게 움찔거렸다.
방금 그 지독한 살기는 무어란 말인가!
“강현아? 최강현?”
장건철 병장과 김대영 상병의 떨리는 손을 보고서야.
‘방금 무슨 생각을.’
강현 또한 자신이 방금 무슨 짓을 하려고 했는지 깨달았다.
사람이 이렇게 많은 자리에서 상대를 베어 죽인다고?
‘잠시 정신이 나갔었군.’
그건 살인이고 범죄다.
상대를 죽이고 나서 놈이 주교라고 해 봤자 소용없을 터.
욕심 같아서야.
‘당장 죽여 버리고 싶은데.’
그냥 죽이는 것도 아닌 해파칠십이검으로 갈가리 찢어 죽이고 싶었다.
어둠의 주교.
강현을 비롯하여 김준혁 등 수많은 사람을 괴롭게 만들었던 어둠의 하수인.
자신이 찾던 자를 앞에 두었는데.
‘지금은… 참아야겠지.’
그냥 두고 보아야 한다니.
강현이 몸에서 폭발하듯이 뿜어내던 살기를 순식간에 지워 냈고.
“후우.”
“허억, 허억. 방금 뭐였지?”
“아니, 방금 긴장 풀려서 그런가?”
중대원 전체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강현에게서 뿜어져 나온 살기는 그만큼 짙고 강렬했다.
오히려 너무 크고 강렬하게 덮쳐 와 이를 뿜어낸 게 강현인지 모를 정도.
3중대원들을 비롯해 주변에 있던 헌터들도 갑작스레 몰아치다 사라진 막연한 두려움에 몸을 떨 뿐이었다.
분명 헌터들도 이렇게 놀랐을 진데.
“길 안내는 안 해 주시나요?”
정작 강현의 살기를 정면에서 마주한 연구원은 너무나 태연하게 되물을 뿐.
오히려 눈웃음을 지으며 여유까지 내비쳤다.
강현이 잠시 간질거리는 손가락을 꾹 움켜쥘 때.
“강현아, 휘두르면 안 된다.”
검성 이석천이 고개를 저었다.
그 또한 강현이 이렇게 흥분하는 이유를 알지는 못했으나.
“지금 휘두르면 네가 쌓아 놓은 모든 걸 부정하는 게 된다. 지금은 아니야. 참아야 한다.”
만일 여기서 이유 없는 살인을 저지른다면 강현이 쌓아 놓은 업적과 공이 모두 허사로 돌아가기에 그를 말렸다.
곧 강현이 손아귀에 힘을 풀고선.
“잠시 지휘소 방향이 어느 쪽인지 떠올렸습니다.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따라오십시오.”
평소의 담담한 얼굴로 상대를 이끌었다.
“잠깐 갔다 오겠습니다.”
“어, 같이 갈까?”
“아닙니다. 분대 좀 이끌어 주십시오.”
“…알았다. 갔다 와.”
강현의 말에 장건철이 잠시 망설이다 고개를 끄덕였고.
강현과 연구원, 단둘이 같이 지휘소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
아슬아슬한 침묵 속.
흥분을 가라앉힌 강현이 차근차근 생각을 정리해 나갔다.
놈을 죽인다 못 죽인다의 문제가 아니다.
무조건 죽인다.
다만.
‘지금은 아니다. 지금은 아니지만 만일 때가 온다면 그때.’
아무 짓도 하지 않은 놈의 목을 다짜고짜 딸 수는 없는 노릇.
그러니 기다릴 거다.
그래서 놈이 무언가를 하는 순간.
반드시.
‘죽인다.’
어둠의 주교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여기까지 온 것도 이유가 있을 터.
다만 놈의 계략에 사람들이 다치기 전에 놈을 죽이기만 하면 된다.
강현이 앞으로의 행동 방향을 정하고는 분노를 가다듬었다.
나중에 기회가 오면 터뜨리기 위해.
그때.
“기분 나쁜 일이 있으셨나 봐요?”
연구자가 강현에게 스스럼없이 말을 걸어왔고.
“아, 아까 후임에게 안 좋은 일이 있었습니다.”
강현이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넘겼다.
그리고 다시 이어지는 침묵.
훈련도 멈춘 상황.
다들 참호 안에서 쉬고 있는 통에 고요한 훈련장을 가로지르는 둘.
“이거 어쩌나.”
그때 연구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더욱 불쾌한 일이 생길 것만 같은 날씨인데 말이죠.”
그가 강현의 신경을 슬며시 건드렸고.
돌아보지도 않는 강현의 옆에 바짝 붙어 속삭이듯 목소리를 낮추었다.
“제가 관상을 볼 줄 아는데 말이죠.”
그가 강현의 얼굴 옆, 바짝 자신의 얼굴을 붙이고는 말을 뱉었다.
“관상에 아주 커다란 불운이 끼어 있습니다, 불운이. 주변 사람들을 불행에 빠뜨릴 불운이 끼어 있어요.”
많은 걸 잃을 불운을 만나겠군요.
연구자의 불길한 예언에.
“…….”
놈을 빤히 바라보던 강현이 저도 모르게.
“푸흡.”
입에 비웃음을 머금었다.
지금 불운을 논한 건가?
자그마치 운빨 점수 6,000점을 모은 자신의 앞에서?
그냥 지금 상황도 잊고 웃음이 튀어나올 정도로 황당한 말.
물론 상대는 어째서 강현이 웃는지 몰랐고.
“여러모로 궁금하시겠지만 그래요. 언젠간 많은 걸 알게 되실 거니까요.”
끝까지 협박하듯 강현에게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강현이 자신을 보며 히죽히죽 웃는 연구원 너머, 가까워진 지휘부 막사를 발견하곤 마주 미소 지었다.
“저도 관상을 볼 줄 아는데 말입니다.”
물론 거짓말.
상대가 고개를 갸웃할 때.
“계속 실패만 거듭하다가 목이 떨어질 관상이시로군요.”
강현이 연구원, 아니 어둠의 주교가 맞이할, 더 나아가 어둠이 맞이할 미래를 예언하고는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만일 그게 미래가 아니라면?
‘내가 그렇게 만든다.’
강현이 결심했고.
[언변, 카리스마 스킬 발동. 하위 스킬 말싸움과 위협을 발동하여 적대자의 심리를 뒤흔들었습니다. 상대의 운을 흡수합니다!]
[운빨 점수 150점 획득!]
이번엔 오히려 적의 운까지 흡수.
강현의 흔들리지 않는 태도를 본 연구자의 얼굴이.
“…….”
이리저리 갈라지며 비열하고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최강현 저놈이 망친 계획이 몇 개인가.
이번만은 반드시 놈을 죽이고 능력을 빼앗기 위해 자신이 직접 행차했다.
생각 외로 놈을 쉽게 찾아냈고.
자신을 향해 폭사되는 살기에 내심 웃었다.
뭔가 눈치라도 챈 걸까?
그런데.
‘감히 날 놀려?’
방금 강현의 반응은 자신을 처음 만났을 때와 완전히 달랐다.
순간 놈이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해 보았으나.
‘그럴 리가 없지.’
그럼 방금 그 발언들은?
목이 떨어진다?
놈이 차오르는 의문에 입술을 잘근잘근 씹을 때.
“아! 혹시나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강현이 문득 뒤를 바라보며 활짝 미소 지었다.
“직업이 사라진다는 뜻입니다.”
“아…….”
그 뻔뻔한 핑계에 연구자가 이빨을 빠드득 갈았다.
말렸다.
놈의 말장난에 말렸어!
[적대자와 기세 싸움에서 우위를 점했습니다! 상대의 운을 흡수합니다! 운빨 점수 50점 획득!]
[현재 운빨 점수 6,200점]
강현이 일그러지는 놈의 얼굴과 쌓인 운빨 점수를 보며 미소 지었다.
운이 없다고?
‘나보다 운이 좋을 순 없지.’
운빨 싸움은 지고 싶어도 못 지지.
* * *
이내 강현과 연구자가 지휘소 막사 앞까지 도착했고.
“아하하하! 정말 그랬단 말이야? 이거 놀랍구먼 놀라워! 그런 비밀이 있었을 줄이야!”
“그러다 보니 최강현 헌터와 친해지지 않으려야 친해지지 않을 수가 없었거든요.”
“으음, 그런 일이 있었다는 말이죠.”
막사 안에서 강준진 준장의 너털웃음에 이어 산군 특별 팀 헌터의 들뜬 목소리와 무언가를 골똘하게 생각하는 김소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딱 들어도 강현을 주제로 이야기하고 있는 모양.
‘이래서 운빨 점수가 올랐던 거구나.’
아직도 이어지는 대화를 듣고서야 아까 올랐던 운빨 점수의 비밀을 알았다.
강현이 곧 막사 천막 앞에 서서 목소리를 높였다.
“상병 최강현. 지휘소에 용무가 있어서 왔습니다! 용무는 책임 연구원 안내입니다!”
강현의 목소리가 들리자.
“오, 들어오게! 최 장군!”
“최강현 헌터님, 들어오십쇼!”
“최 헌터님, 들어오세요! 마침 최 헌터 이야기 중이었어요!”
안에서 강현을 반기는 목소리가 들려왔고.
강현과 연구원이 안으로 들어가자.
“하하하!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진짜로 왔구먼?”
“아, 그러니까 최강현 헌터는 산군에 들어와야죠. 호랑이지 않습니까.”
“푸하하하하!”
선설민 중령의 농담에 서대천이 능글맞게 답했고 다들 크게 웃으며 강현을 바라보았다.
참으로 신기한 풍경.
소속도, 걸어온 길도 다른 이들이 한 사람의 이야기로 이렇게 즐거워할 수 있다니.
창연 소속 헌터들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저 친구가 얼마나 대단하길래?’
처음에만 해도 어디 소문이나 좀 난 루키 정도인 줄 알았는데.
‘저 녀석들까지 인정할 정도야?’
군대에서는 물론 그와 함께 작전을 펼쳤던 산군 길드 특별 팀 헌터들까지 강현을 인정.
거기다 강현은 들러리가 아닌 핵심이었다.
사실 군대에서야 그렇다고 하지만.
‘어디서나 중심이잖아?’
산군 소속 헌터들의 인정은 무게가 달랐다.
라이벌이 괜히 라이벌이겠는가.
실력과 수준이 비슷해서 라이벌이라 불리고 서로 경쟁을 하는 것.
그리고 어느 한쪽이 이기지 못하고 비등비등하니까 라이벌이라 불리는 것.
그런데 강현이 그들의 인정을 받았다고 들으니.
‘하긴 아까 훈련 중에 했다는 행동도 그렇고.’
‘쓰읍, 매니저님 반응도 나쁘지 않으니까. 아니지, 오히려 좋지.’
‘뭔가, 뭔가 있는 친구인가 본데? 아냐, 분명 뭔가 더 있어. 지금도 자기 칭찬하는데 안 웃고 있잖아?’
괜히 강현의 사소한 일거수일투족이 뭔가 있어 보였다.
그리고 그들의 이런 호기심은 강현에게 호감으로 작용했고.
[창연 길드 훈련 팀의 호감도가 대폭 올랐습니다! 그들의 운을 흡수합니다! 운빨 점수 100점 획득!]
[호감도가 일정 수준에 달했습니다! 호감도 혜택을 얻습니다. 호감도 혜택으로 창연 훈련 팀 명령권 1회 획득!]
강현이 평소 같으면 웃는 사람들을 보며 마주 웃었겠지만.
당장 등 뒤에 적을 둔 현재로선 미소가 나오질 않았다.
“충성! 상병 최강현 지휘소에 용무 있어 왔습니다! 홀로그램 책임 연구자를 데려왔습니다.”
“오, 드디어 오셨구먼! 어서 이쪽으로 오세요. 대연에서 나오셨습니까?”
강현의 뒤에 있는 연구자를 발견한 강준진이 반색하며 그를 맞이했다.
드디어 멈췄던 훈련을 재개할 수 있단 생각에 미소가 번질 정도.
강준진이 재빨리 연구원이자 어둠의 주교를 데리고 홀로그램 장치로 향하자.
“우리도 가서 볼까?”
“같이 가서 보시죠. 대연 시스템에서 개발한 새로운 홀로그램 장치니까요.”
“그래요. 어차피 구매하실 거잖아요?”
선설민 중령의 제안에 서윤진과 산군, 창연 길드 헌터들이 우르르 뒤를 따랐다.
강현만 홀로 막사에 남아 있을 수는 없기에 자연스레 합류했고.
어느새 거대한 홀로그램 장치 앞에 선 연구원이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 이건 말이죠. 마나 감응 회로와 여기, 여기 있는 구현 장치의 입력값 오류로 인해 생긴 현상으로서…….”
연구원이 무언가 알 수 없는 소리를 떠들어대고 있었고.
“아, 그런 거군요? 어서 고쳐 주세요.”
“그런 거니까 금방 고치시겠군요.”
강준진과 선설민은 영혼 없이 고개를 끄덕이곤 신속한 수리를 강요할 뿐.
당연히 군인들이 장치의 원리를 알 리는 없기에.
“흠, 흠, 그럼 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연구원이 자기 멋대로 장치를 주무르기 시작.
“자 이제 누구 운이 좋은지 볼까요?”
눈을 반달처럼 휘며 강현을 바라보았고.
자신이 펼칠 마수를 홀로그램 장치에 찬찬히 심기 시작했다.
대놓고 모두를 조롱하듯이 함정을 펼쳐도 아무도 모르는 이 우매함!
그가 지금껏 사람들을 조롱하고 이용해 온 방법이었다.
‘네놈도 똑같아. 뭔가 다른 척했었지? 그래 끝까지 그럴 수 있나 보자.’
방금 강현이 했던 말을 생각하며 연구원이 광기에 젖은 눈을 번뜩였고.
[연구자의 눈을 발동합니다! 대연 시스템 제작 대규모 홀로그램 및 대규모 필드 구현 장치를 분석합니다!]
[이전 마나 홀로그램 경험치를 토대로 대략적인 원리를 분석합니다!]
[무언가 알 수 없는 오류가 감지되었습니다]
강현은 지금 놈이 무언가 이상한 짓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그러나.
‘어떻게 밝히지?’
놈의 계략을 어떻게 밝히느냐가 문제.
그때.
“최강현! 왜 이렇게 오랜만이야!”
홀로그램 장치 바로 옆, 황세아 중사의 반가운 얼굴이 보였다.
활짝 미소 짓고 있는 게 강현이 어지간히 반가운 모양.
그리고 그제야 강현이 깨달았다.
‘혼자가 아니야.’
자신을 보며 비웃는 어둠의 주교 옆.
지금껏 함께해 온 이들이 보였다.
내가 분석하지 못하면 황세아 중사에게 맡기면 된다.
사실을 밝히지 못하면 서윤진 대위의 힘을 빌리면 된다.
그녀는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믿을 테니까.
그 옆에는 특임대 썩은 물을 정화할 때 커다란 도움을 준 강준진과 선설민도 있다.
거기다 검탑에서 함께 죽음을 극복했던 산군 특별 팀 또 창연 길드 헌터들을 움직일 명령권도 있다.
순간 강현이 깨달았다.
‘단 하나의 불운에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지금 세상이 자신을 중심으로 움직이지 않는가!
순간 어둠의 주교를 만났다는 다급함과 분노 때문에 막혔던 시야가 탁 트였고.
강현이 자신의 운을 다시금 깨닫는 순간.
[사용자가 자신의 운빨을 깨달았습니다! 스스로의 운을 신뢰합니다! 사용자 최강현의 운을 흡수합니다!]
[운빨 점수 700점 획득! 총 운빨 점수 7,000점 도달!]
[운칠기삼 혜택을 획득했습니다!]
[운칠기삼 특별 혜택으로 적에게 작은 불행을 선사합니다]
[홀로그램 장치가 정상 작동합니다!]
우우우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