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화 잘못된 만남
“그럼 최 장군 좀 이따 보자고.”
“상병! 최강현! 부대 복귀해 보겠습니다!”
“그래 최 장군!”
“상병! 최강현!”
끝까지 자신을 최 장군이라 부르는 선설민과 끝까지 상병 관등 성명을 대는 강현.
자존심 강한 두 군인의 대결에.
“진짜 가슴이 웅장해진다.”
“…왜요?”
그 장면을 보고 있던 서대천이 감동했고.
김소희는 이해할 수 없는 감성에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 그녀를 보며 서대천이 고개를 흔들었다.
“쯧. 이 감성을 이해하지 못하다니… 이래서 샌님들이란.”
“그러니까 뭔데요? 그 감성이.”
“본인 계급이 중령인데 상병보고 장군이라잖아. 그게 뭐겠어?”
“미래를 맡긴다?”
“그렇지! 거기다 본인은 정작 자신의 계급을 대고 있잖아?”
“그렇죠?”
“자신은 병사로서도 이 군대를 이끌어 갈 수 있다는 말 아니겠냐고!”
“……!”
서대천의 설명을 듣고 나서야 김소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듣고 보니 정말 그랬다.
저 짧은 대화 속에 그런 깊은 의미가 담겨 있었다니.
“그러니까 지금……?”
“그래, 저 최강현 헌터는 지금 가장 겸손하면서도 거만한 말을 하고 있는 거다.”
그러니 가슴이 웅장해지지 않고 견뎌?
서대천의 말을 듣고 나자 김소희도 지금 둘의 대화가 좀 이해되었다.
“미래를 맡기려는 길드장과 이를 거부하며 자신의 위치에서 모두를 이끌겠다는 헌터라…….”
그거 멋있잖아!
“가슴이 웅장… 앗.”
자신도 모르게 서대천의 말을 따라 하던 김소희가 황급히 말을 멈췄고.
“그것도… 나쁘지 않지.”
서대천이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다가.
“진짜 미쳤어요?”
“아, 아니. 그 뜻이 아니라.”
김소희의 눈총을 받고 나서야 슬쩍 시선을 돌렸다.
사실.
“아, 아니면 최 장군도 작전 회의에 참여하겠나? 아니 하게나!”
“상병 최강현! 부대로 복귀하겠습니다!”
“미래를 위해서라도 미리 봐 두는 것이 좋지! 작전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말이야!”
“아닙니다! 제가 낄 자리가 아닙니다!”
강현과 선설민의 대화는 그런 멋진 게 아니었다.
어떻게서든 강현을 임관시키려는 중령과 직업 군인이라는 마수에서 벗어나려는 병사의 처절한 싸움!
자신을 억지로라도 지휘소에 데려가려는 선설민을 어떻게서든 피해야 한다!
지난번 대대 회의에 참여했을 때도 숨 막혔는데!
군단 특임대 작전 회의라니!
어림도 없지!
“으으, 점점 갈수록 심해지는 거 같아요.”
“원래 설민이가 좀 집착이 심해. 한번 꽂히면 그것만 파거든.”
“…그건 좀.”
간신히 선설민의 마수에서 벗어난 강현이 검성과 대화하며 중대가 파견 나가 있다는 전선 쪽으로 움직이던 중.
마침 3중대원들을 발견, 반갑게 그들을 향해 다가갈 때.
“이거 군인들이 민간 길드를 협박하는 거라고 봐야 하나? 너희들 지휘관 누구야. 직접 가서 따지게.”
익히 아는 목소리를 들었다.
“누구냐고! 너희 지휘관이!”
모든 대화를 듣지는 못했으나 대충은 짐작했다.
놈은 자신한테 하려던 것처럼 자신의 동생에게 화풀이했겠지.
3중대원들은 그래도 후임이라고 이성민을 보호하려고 나섰을 테고.
강현이 그쪽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갈 때.
“죽이진 마라.”
검성 이석천이 강현을 걱정스럽게 불렀다.
물론 놈을 죽이지야 않겠지… 대신.
‘인격적으로 죽여 주마.’
강현이 결심했다.
그래도 특별 타격대 훈련 때는 참아 보자 했는데.
이제는 못 참겠다.
“봐라. 눈치도 없고 능력도 없는 주제에 부모만 믿고 꺼드럭거리는 인간을. 너는 지금 어떻지? 저 인간이랑 같은 모습인가?”
강현의 물음에.
이성민이 절로 고개를 바짝 들며 답했다.
“아닙니다. 달라졌습니다.”
후임에 대답에 강현이 만족스럽다는 듯 다시 입을 열었다.
“처음 부대 왔을 때 어땠지? 어떤 마음이었나?”
“…….”
“자신보다 약한 상대를 찾아다니고 화를 풀고 자기 잘난 맛에 살고. 그랬었지. 기억나냐?”
“맞습니다!”
“지금은 어떻지? 지금도 그렇게 막돼먹었나?”
강현이 이성민에게 다가가며 물었고.
이성민이 잠시 지난 일들을 떠올렸다.
처음 입대했을 때만 해도 그 또한 형과 마찬가지였다.
자신은 군대에 있으면 안 될 사람이라고, 여기 있는 인간들은 모두 자신의 밑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아닙니다! 오히려 군대에서 많은 걸 배웠습니다!”
“뭘 배웠는데?”
다시 한번 이어진 강현의 질문에 이성민이 잠시 침묵에 빠졌다.
그래, 지난 시간 동안 많은 걸 배웠지.
자기보다 훨씬 뛰어난 사람이 많다는 사실도 배웠고.
강현 같은 사람을 화나게 하면 매우 무서워진다는 사실도 배웠고.
특히.
“사람을 구하고 같이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많은 전투, 누군가를 구하고 지키는 과정에서 가장 많은 것을 배웠다.
강현의 뒤에서 때로는 1분대의 옆에서 그가 배운 것들은.
“신뢰, 의지, 전우, 강인함을 배웠습니다. 지금까지 많은 사람을 구하면서, 배울 수 없었던 소중한 것들을 배웠습니다!”
셀 수 없을 정도였다.
처음엔 그저 강현의 뒷모습을 보며 따라잡고 싶다고 생각했고.
그의 능력을 보며 부러워했다.
그런데.
“최강현 상병님뿐 아니라 선임분들을 보면서 깨달았습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장건철의 굳건함과 김대영의 눈치, 장만수의 유쾌함이란 장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심지어 처음엔 자신보다 아래로 보였던.
“동기에게서도 항상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오목교의 열심 또한 자신에겐 없는 것.
새롭게 눈을 뜬 이성민에게 군대는 그리고 주변에 있는 전우들은 새로운 선생이었으며 좋은 동료였다.
그의 고백에 강현이 씨익 미소를 지으며 그의 옆에 섰다.
“그래, 그렇게 많이 배우고 변했는데. 누가 감히 너한테 부족하단 말을 하겠냐.”
“맞습니다!”
“잘 기억해라. 닫힌 집단에서 자신이 잘난 줄 알고 변화할 줄 모르는 인간의 말로를.”
강현의 말에 단번에 떠오르는 오성탁 준위의 얼굴.
이성민이 침을 꿀떡 삼켰고.
“네가 변하고 있다면 그 누구 앞에서도 고개 숙일 것도 창피해할 것도, 두려워할 것도 없다.”
“…….”
“옆에 전우가 있으니까.”
강현의 응원에 이성민이 답도 못 하고선 입술을 꾹 깨물었다.
사실 가장 먼저 떠오르고 가장 많이 배웠던 대상이 강현이었기에.
따라잡을 수 없어도 조금이라도 따라잡고 싶은 게 강현이었기에.
그런데 그런 선임이 자신이 옳다고 해 주었다.
이어서.
“그래.”
“뭔가 오글거리기는 하는데. 우리가 후임 처맞는 거 볼 정도로 핫바지는 아니지.”
“길드 사람들은 왜 안 말리는지도 모르겠고. 당신들 진짜 길드 소속 헌터들 맞아?”
“다들 구경만 하던데?”
“전우란 그런 게 아니지. 누가 감히 우리 딜러를 때려.”
강현의 말에 3중대 선임들이 화답하며 이성민 뒤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남인 선임들도 이성민을 그렇게 대하진 않았는데.
가족이라는 인간이, 거기다 같은 길드라는 인간들이 저런 식으로 행동하다니.
이해할 수 없는 모습.
그들의 쏟아지는 목소리에.
“뭐, 뭐라는 거야. 이런 미친. 너가 뭔데 끼어들어!”
이성수가 강현을 향해 버럭 고함을 질러 보았으나.
“목소리 낮춰. 어디서 목소리를 높여. 버릇없게.”
강현이 대놓고 살기를 뿜어내자.
[카리스마 하위스킬 위협을 발동합니다. 당신의 능력에 상대가 겁을 먹었습니다. 심리적으로 위축됩니다!]
아까 특별 임무 때 이미 강현의 능력을 확인한 이성수가 바짝 얼어붙었고.
“지금 네 뒤에 있는 헌터들 네 편 안 들어주고 있는 거 아냐? 설마 길드가 진짜 네 거라고 생각하나?”
강현이 이성민을 보호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선 3중대원들과 달리 아직도 침묵을 지키고 있는 한빛 길드원들을 지적했다.
이어 위협적인 목소리로 이성수의 가장 취약한 부분을 찔렀다.
“아버지 그림자에 숨어 현실을 외면하지 마라. 너희 동생은 이전보다 훨씬 성장했으니까. 아마 길드로 돌아가면…그때는 바뀔지도 모르겠네, 위치가.”
강현이 마지막 쐐기를 박는 순간.
[언변 하위 스킬 말싸움을 발동합니다! 상대의 불안감을 자극했습니다. 상대의 정신이 취약해집니다]
[카리스마 스킬 굴복 조건을 충족했습니다. 상대의 기억 속에 당신의 말이 깊게 남습니다]
[이성수의 정신이 위축됩니다!]
“…….”
이성수의 눈에 두려움이 들어찼고.
“형님, 그때 뵙죠.”
처음과 다르게 완전히 태도를 바꾼 이성민이 자신의 형을 마주 바라보며 인사했다.
그리고 나서도.
“나중에 뵙죠, 나중에.”
길드 소속 헌터들을 하나하나 마주 보며 인사를 남겼다.
반드시 복귀하겠다는 듯이.
순식간에 바뀐 이성민의 기세에 이성수도, 강현의 말에 내심 공감하고 있던 한빛 길드 헌터들도 아무 말 하지 못했다.
그저.
“네.”
“그러죠.”
이성민의 인사에 마주 답할 뿐.
그러나.
그들이 이성민을 마주하며 느낀 감정은.
‘정말 변했나?’
무언가 조금 달라졌다는 것.
처음에 이성수를 앞에 둔 이성민은 이전과 같았다.
그런데 강현이 나타나고 3중대원들이 뒤에 서자.
이성민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군대에 들어가기 전보다 더 커진 느낌.
3중대를 따라 멀어지는 이성민을 보며 대부분은.
“군대에 있더니 자신감이 좀 붙었나 보네.”
“뭐, 흔히 있는 일이니까.”
“어차피 전역하고 나면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겠습니까.”
일시적인 변화로 취급했지만.
“…글쎄.”
정작 이성수 옆에 있던 길드 핵심 전력이라 불리는 헌터의 의견은 달랐다.
‘아까 맞을 때부터 달랐어.’
예전 같았다면 이성수의 폭력에 분하면서도 이길 수 없다는 공포감을 내비쳤을 터.
그러나 이성민의 표정은 이전과 달랐다.
‘무표정.’
겁에 질리지도 않았고 두려워하지도 않는 표정.
그냥 참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
그러다가 강현이라는 병사가 나타나자 마치 허락이라도 떨어진 것처럼 당당한 표정을 드러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후임 이성민의 심리에 커다란 변화가 있었습니다! 이성민의 충성도가 대폭 올라갑니다!]
[후임 이성민의 진로가 변화합니다! 새로운 진로 한빛 길드 길드장을 획득했습니다!]
[후임에게 새로운 진로를 열어 주었습니다. 이성민의 운을 흡수합니다! 운빨 점수 300점을 획득합니다!]
[이성수의 기를 완전히 꺾었습니다. 앞으로 자신의 동생인 이성민에게 함부로 하지 못할 겁니다. 이성수의 운을 흡수합니다!]
[운빨 점수 200점 획득!]
후임의 진로가 바뀌었다는 말에 강현이 이성민의 어깨를 툭툭 쳤다.
“괜찮냐?”
“죄송합니다.”
“죄송하긴 뭐가?”
강현의 물음에 이성민이 머리를 긁적였다.
“최대한 피해 안 드리고 넘어가려 했는데 이렇게 되어 버렸지 않습니까.”
혹시라도 선임들에게 피해가 갈까 봐 참았는데 결국 이렇게 되어 버렸으니 미안하단 말.
본래 이기적인 성격을 생각해 보면 완전히 달라진 태도.
자신의 이런 변화조차 눈치채지 못했는지 이성민이 진짜 미안하단 표정을 지었고.
“뭘, 미안하긴.”
“맞지나 마라. 그게 더 미안한 거니까.”
“짜식, 좀 컸다?”
오히려 선임들이 그에게 괜찮다는 듯 손을 흔들었다.
같이 시간을 보내며 서로를 이해하고 가까워지는 과정.
강현이 더욱 강해지고 단단해지는 3중대를 보며 미소 지을 때.
강현이 없는 지휘소에서도 한창 강현의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고.
[조력자 강준진, 선설민이 검탑에서 있었던 당신의 활약을 전해 들었습니다. 신뢰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그들의 운을 흡수합니다!]
[운빨 점수 200점 획득!]
[김소희와 창연 길드 헌터들이 당신의 활약을 듣고 놀랐습니다! 그들의 운을 흡수합니다!]
[운빨 점수 150점 획득!]
[모든 활약을 들은 서대천이 당신을 롤 모델로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서대천의 운을 흡수합니다!]
[운빨 점수 150점 획득!]
[총 운빨 점수 6,000점을 획득했습니다!]
[운육기사 혜택을 부여받습니다!]
강현이 군대에서 어떤 활약을 했고 더 나아가 밖에서 어떤 활약을 했는지 들은 인물들이 모두 감탄했다.
강준진과 선설민은 다시금 강현을 반드시 임관시켜야겠다는 다짐을 했고.
김소희와 창연 길드 헌터들은 그의 뛰어난 능력에 강현에 대한 평가를 더욱 높게 수정했으며.
서대천은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강현을 자신의 롤 모델로 삼기로 결정.
강현이 없지만 강현이 중심이 된 자리가 만들어졌고.
그들의 운을 흡수한 덕에 다시 한번 운빨 점수 6,000점을 완성했다.
또 이번엔 어떤 행운이 찾아올지 기대할 때.
[히든 조건 강현 없는 강현 팀을 달성했습니다. 운육기사 혜택을 강화합니다!]
상태창이 보상 강화를 알렸고.
“저기, 여기 지휘 막사가 어딥니까?”
한 남자가 강현을 비롯한 3중대를 향해 말을 걸었다.
자연스레 강현과 3중대원들의 눈이 향한 자리엔.
하얀 가운을 입은 병약한 남자 하나가 서 있었다.
한눈에 봐도 연구에 찌들어 보이는 인상.
“그, 대연 시스템에서 파견 나온 책임 연구원입니다만. 혹시 대규모 홀로그램 장치 위치가 어딘지 알 수 있을까요?”
그가 다시금 자신의 목적을 알렸고.
“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이들 중 유일하게 지휘소 막사 위치를 아는 강현이 답했다.
“따라오십쇼.”
강현이 그를 지휘소로 안내하려는 순간.
[운육기사 혜택. 정말 운이 좋게도 당신이 찾던 적을 만났습니다!]
[연구자의 눈에 담긴 정보를 불러옵니다. 인물창에 상대의 정체를 보여 줍니다]
[어둠의 주교를 만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