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화 상황 격상
기운이 좋을 땐 참 신기하게도 뭐를 하든지 잘 풀린다.
지금 강현이 그랬고.
[운삼기칠 혜택을 받습니다. 운이 좋게도 훈련 장소가 바뀝니다!]
강현의 옆에 있는 3중대가 그랬다.
운이 좋은 사람이 있으니 주변 사람들도 그 혜택을 받은 셈.
“3중대! 3중대는 자리 이동! 자리 이동!”
갑작스러운 자리 이동 명령에 다들 처음에는.
“아, 지금 참호 다 파놨는데 무슨 자리 이동입니까?”
“아니, 고생 다 했더니 이걸 쫓아내내.”
갑자기 바뀐 작전 지역에 불만을 표했으나.
막상 새로운 자리로 옮긴 후에는.
“와, 이런 꿀 자리가 있었어?”
“지금까지 이런 곳은 처음입니다.”
“우와, 대박. 다 보인다. 다 보여.”
다들 싱글벙글 즐거워했다.
3중대가 기존에 참호를 팠던 곳은 훈련장 방어 전선 가장 앞.
거기다 지대 또한 가장 저지대라 배수로도 파기 어려웠고 전투 시에도 불편한 점이 많았다.
그런데 지금 3중대가 이동한 곳은.
“자, 다들 고지대인 만큼 천막이랑 위장막 제대로 설치해!”
다른 전장이 환히 보이는 고지대.
거기다 서윤진 대위의 말대로 천막에 위장막까지 얹고 나니.
“이거 낮잠 자기 딱 좋은 온도 아니냐?”
“거기다 땅도 보들보들하니 습기도 없지 말입니다.”
“아니 올라올 때 빼고는 진짜 개꿀이네.”
“아, 근데 솔직히 이전 참호는 막사에서 거리가 멀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전황도 안 보이고.”
“미친 듯이 싸우기만 하는 자리지 거긴.”
누워서 농땡이 부리기 좋은 장소.
이전 있던 곳은 막사에서도 거리가 멀었고 저지대에 몬스터들과 가장 먼저 접하는 곳이니 불편했던 것이 사실.
거기다 뒤에서 느껴지는 지휘관들의 강렬한 시선에 뒤통수가 따끔거렸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지휘소와 비슷한 선상에 있으니 그들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다.
거기다.
“어, 저기 슬슬 뭐 꾸물거리는 거 아니냐?”
“맞습니다!”
“통신 넣어서 상황 전파해!”
고지대에 있는 만큼 몬스터들의 움직임이 잘 보였고.
이걸 다른 부대에 전파만 하면 되니 훈련 자체가 편해졌다.
“우와. 이런 개꿀이 있나.”
“작년에는 진짜 개고생했는데.”
특히 작년에 최전선에서 훈련했던 병장들은 혀를 내두르며 좋아할 정도.
“원래 거기 있으면 어떻게 됩니까?”
“엄청 힘들다고 듣기는 했는데 그 정도입니까?”
물론 훈련을 겪어 보지 못했던 후임들이야 어떤 줄 몰랐고.
그들의 순진한 물음에.
“으으… 그건 지옥, 지옥이었어.”
“너희 몬스터 웨이브가 왜 몬스터 웨이브인 줄 모르지?”
병장들이 몸을 부르르 떨며 전에 겪었던 훈련을 떠올렸다.
“끊임없이 몰아치는 몬스터들을 본 적 있나?”
“졸면서도 싸워야 했지. 눈꼽 뗄 시간도 없을 정도로 처절하고 힘든 싸움이었어.”
몬스터 웨이브.
게이트가 터지는 순간 쏟아져 나오는 몬스터의 숫자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
웨이브라 불릴 만큼 끝없이, 무수히 쏟아져 나오는 몬스터를 방어해야 하는 훈련.
그러니 이 태극 훈련이 특임대 병사들에겐 그야말로 지옥 같을 수밖에 없었다.
“뭐, 실패에 대한 패널티라 보는 게 맞겠지.”
검성도 그들의 말에 동의했다.
그의 설명은 간단했다.
“게이트라는 첫 번째 기회를 날린 이상 패널티가 부여되는 건 당연한 거다. 게이트 붕괴 이후 쏟아져 나오는 몬스터 숫자는 게이트 안에 있던 놈들의 적게는 몇 배 많게는 몇십 배가 쏟아져 나오니까.”
헌터들이 게이트를 해결하지 못한 이상 이미 패널티를 지고 하는 싸움.
그러니 힘들 수밖에.
거기다.
“원래 훈련은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야 하는 법이지.”
검성의 즐거움 가득한 목소리에 강현의 등 뒤에 소름이 주르륵 올라왔다.
설마.
“이 훈련 선배가 창안 거였습니까?”
“뭐, 혼자는 아니고. 내가 대부분 하긴 했지.”
검성 이석천의 대수롭지 않은 대답에 강현이 고개를 흔들었다.
알고 보니 고생의 원흉이 바로 옆에 있었다니.
강현의 질린 표정을 보곤 검성이 오랜만에 즐겁다는 듯 웃었다.
“첫날 오전은 진지 및 참호 공사. 그리고 오후 늦은 시각부터 상황 시작.”
“상황은 게이트 붕괴입니까?”
“그렇지.”
“지금 저기 보이는 몬스터 웨이브를 막아 내는 게 훈련 내용입니까? 참으로 단순하면서도 무서운 훈련이네요.”
강현이 훈련장 중간을 가로지르며 형성된 참호 전선 곳곳을 향해 몰려오는 몬스터 무리를 보며 말을 이었고.
검성 이석천은.
“응? 아직 시작 안 한 건데?”
강현을 보며 오히려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아직 진짜 훈련은 시작도 안 했다는 진심 어린 표정.
쿠오오오!
쿠르르륵!
그럼 저기 전선 곳곳에서 몰려드는 괴물들은 뭐란 말인가?
“분명 게이트 붕괴하면 안에 있는 몬스터 숫자보다 몇 배 더 나온다고.”
강현이 의문을 표하려는 순간.
검성 이석천이 아주 신나 죽겠다는 미소를 지으며 강현에게 되물었다.
“훈련은?”
“실전처럼…….”
“실전은?”
“훈련처럼…….”
“그럼 어떻게 해야겠어?”
“최악의 상황을 가정…….”
“그렇지!”
머리도 좋은 녀석이 괜히 여러 번 묻고 있어.
검성 이석천이 강현의 말에 동의하는 순간.
웨에에에엥!
훈련장 전체에 불길한 사이렌 소리가 우렁차게 울렸다.
훈련을 겪어 본 적 있는 병장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고.
후임들은 비록 경험해 본 적은 없지만 본능적으로 위기를 느꼈다.
그리고.
“전파합니다! 전파합니다! 상황 격상, 상황 격상! 기존 게이트 붕괴 상황 확장! 대규모 게이트 붕괴 상황으로 변경합니다! 상황 격상! 상황 격상!”
검성의 말대로 최악의 상황이 발동되었다.
머리를 뒤흔들 듯 울리는 사이렌 소리에 이어.
우우우우웅!
주변 공기가 떨리는 듯하더니.
쿠루룰!
크와악!
방금과는 비교도 못할 만큼의 몬스터들이 사방에서 생성되기 시작.
대규모 무리가 일제히 전선을 향해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저, 저게 뭐야.”
“으으 끔찍한데?”
“진짜 저기 한복판에서 훈련했던 겁니까?”
“그래, 그랬다니까.”
3중대는 고지대에 있기에 새까맣게 몰려드는 괴물들이 더욱 잘 보였다.
훈련장에 형성되어 있는 참호 전선을 쓸어버리겠다는 듯 몰려오는 몬스터들.
원래라면 저 최전선에 서서 몰려드는 놈들을 상대했겠지.
그러나 지금은.
“와, 저거 트롤이 몇 마리야?”
“오, 저기 가고일 아니야?”
“으으, 비행 몬스터 포함이면 거의 죽음이지 말입니다.”
“아니, 이렇게 보니까 지난번 훈련 PTSD 오네.”
멀리서 다른 특임대들이 고생하는 걸 보고 있는 중.
“와, 확실히 거대 길드가 붙으니까 다르긴 하구나.”
다들 기존 훈련 장소에서 이런 편한 자리로 이동한 게 어디 덕분인지 알았다.
바로 산군과 창연.
거대 길드를 앞에 둘 수 없다는 지휘부의 판단.
그리고 두 길드가 3중대에 붙은 이유는?
“강현아, 고맙다.”
“진짜 덕분에 살았다.”
“최강현 상병님, 전역 안 하시면 안 됩니까?”
오직 강현 때문.
물론 서윤진 대위도 있었으나 작년에는 산군 길드에서 오지 않았으니 아무래도 강현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거기다.
“인생에서 산군 창연 헌터분들에게 조언까지 얻을 수 있고.”
“아까 다 적어 놨지 말입니다.”
“이 은혜는 평생 기억해야지.”
“강현이는 이제 평생 까방권 획득이지.”
강현 덕에 산군, 창연 길드와의 경쟁에서 이겨 보기도 하고 같이 식사를 하며 조언까지 들었다.
항상 힘들고 괴로운 줄만 알았던 훈련에 이런 행운이 찾아올 줄이야.
“진짜 쟤는 뭔가 있긴 한가 보다.”
“하긴 지금까지 한 것만 봐도 그렇게 느껴지지 않습니까?”
“거대 길드 조언 구해, 훈련 편하게 해. 거의 군 생활의 신이지 신.”
중대원 모두 강현을 보며 수군거렸고.
“역시 뭔가 달라도 다르구먼.”
서대천이 3중대의 쏠린 시선을 보며 뜨거운 눈으로 강현을 보았다.
그는 아까 느꼈다.
최강현은 멋진 남자다.
처음엔 뭐 있겠어 했지만.
“내 시선을 사로잡을 사람은 흔치 않지.”
흔히 남자들이 그렇듯 한번 이미지를 뒤집자 점점 강현이 괜찮아 보였고.
“싸우는 것도 한번 보고 싶은데 말이야. 그렇게 잘한다며?”
저 최강현이라는 헌터는 대체 어떻게 싸울까 너무 궁금했다.
서대천의 물음에.
“아, 기대하셔도 될 겁니다. 저 친구 진짜 검을 귀신같이 쓰거든요.”
“움직임이나 상황 판단 능력, 그리고 전투 능력까지 확실히 탐나는 인재죠.”
특별 팀 전체가 입이 마르도록 강현을 칭찬했다.
그들이야 강현과 함께 그 끔찍한 검탑에서 같이 지겨울 정도로 싸워 봤으니 잘 알고 있는 사실.
강현의 검은 그들이 보기에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실력.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다.
“거기다 강현 헌터 같은 경우 필살기도 따로 있더군요.”
“네… 그건 진짜 놀라웠죠.”
“오? 필살기? 그게 뭔데?”
“아, 그게 진짜로…….”
“…….”
자신들이 본 강현의 진짜 필살기를 말하려던 산군 특별 팀이 묘한 느낌에 뒤를 돌아보았고.
“아, 아아. 그게. 큼, 크흠!”
“날씨가 좋죠? 매니저님? 어험!”
“그러게요? 오늘 훈련이 잘되려나 봐요.”
어느새 주변으로 몰려든 김소희 매니저를 포함, 창연 길드원들을 발견하고는 씨익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왜? 궁금해?”
“아니 뭐…….”
“아, 안 궁금하면 저리 가. 우리끼리만 이야기하게.”
“…아까 밥 드실 땐 잘만 이야기했잖아요.”
서대천의 이죽거림에 김소희가 쭈뼛거리며 서성였다.
아직 강현의 능력을 완전히 인정하진 않았지만.
‘궁금한데. 어떻게 캐내지?’
앞선 점심 식사 때 한 대화로 더욱 확실해졌다.
최강현 상병에겐 무언가 있다는 게.
그러니 자연스레 더욱 관심이 갔고.
[중대원들의 신뢰도가 대폭 올랐습니다! 그들의 운을 흡수합니다! 운빨 점수 300점 획득!]
[산군 서대천의 호감도, 특별 팀의 호감도가 올랐습니다! 그들의 운을 흡수합니다! 운빨 점수 200점 획득!]
[창연 김소희와 헌터들이 관심을 당신에게 집중합니다. 그들이 자연스레 당신의 주위에 맴돕니다. 그들의 운을 흡수합니다! 운빨 점수 100점 획득!]
강현은 그저 훈련장에 서 있는 것만으로 운빨 점수를 계속 벌어들였다.
진짜 나중엔 그가 숨만 쉬어도 운이 빨려 들어올 기세.
‘운이 SS급으로 좋군.’
강현이 자신의 불어나는 운빨 점수를 보며 다음에는 어떤 혜택이 기다릴까 즐거워할 때.
“3중대! 집합!”
지휘부 막사에 갔던 서윤진 대위가 3중대와 산군, 창연 길드가 머무는 고지대에 복귀.
병사들을 소집했고.
“자, 이제 쉴 만큼 쉬었겠지?”
“그렇습니다!”
“좋아! 드디어 우리가 움직일 때다!”
꿀 같은 휴식이 끝났다는 걸 알렸다.
지금 그들이 이 고지대에 머무는 동안에도.
“참호 지켜!”
“지원은? 지원은 아직 멀었어?”
“옆 전선 무너지기 직전! 일부 병력 그쪽으로 이동해!”
최전선에선 몰려드는 몬스터 홀로그램 군단을 상대로 분투 중.
“우리 임무는 간단하다! 여기서 전선을 지켜보다가 지원이 필요한 곳에 가서 전선을 유지하는 것!”
여기서 무작정 대기만 할 수 없으니 전력을 분산해 전선으로 투입하겠다는 작전.
“산군, 창연 책임자분들 조를 나누어 두셨습니까?”
“네.”
“좋습니다. 그럼 각 조를 섞어 배치하겠습니다.”
서윤진의 판단 아래 산군, 창연, 3중대원들이 뒤섞여 위태로운 전선으로 향했다.
강현도 1분대와 함께 전선으로 향하려던 그때.
“강현아.”
“상병 최강현!”
“강현이는 특별 전력으로 예외.”
“저만 말씀이십니까?”
“응, 대대장님 특별 명령이야.”
서윤진이 강현을 따로 불렀고.
“장건철 병장님, 부탁드리겠습니다.”
“어, 걱정 마라.”
강현이 전 분대장인 장건철 병장에게 1분대를 맡기고는 서윤진을 따라 움직였다.
그녀의 옆에는.
“우리도 함께하는 건가?”
“음, 저도요?”
서대천, 김소희도 함께였다.
그들 뒤에는 산군, 창연 훈련 팀 중에서도 가장 강한 전력이 한 명씩.
따로 움직인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는지 둘 다 어리둥절한 표정.
그렇게 서윤진을 따라 도착한 훈련 지휘 텐트.
그 안으로 들어가자.
자리에 있던 수십의 사람이 일제히 그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고.
“3중대, 산군, 창연 지휘관 및 핵심 전력 모였습니다.”
서윤진 대위가 본인들의 소속을 밝힌 순간.
“호오 산군, 창연…….”
“3중대장 서윤진…….”
“뒤에는 핵심 전력인가? 역시…….”
자리에 있던 모두가 눈을 번쩍번쩍 빛내며 그들을 바라보았다.
산군, 창연과 같은 거대 길드 헌터는 한 번쯤 만나 보고 싶은 존재.
거기다 같이 작전까지 한다니?
“이런 행운이.”
“훈련에 참가한 덕에 귀한 구경을 하게 생겼네요.”
각 길드의 지휘관, 핵심 전력으로서도 너무나 귀하고 귀한 기회였다.
그리고 이런 기회를 얻은 그들이 자연스레.
“3군단 쪽에 붙길 잘했지요.”
“그중에서도 태극 훈련에서 붙은 게 천운이네.”
“거기다 3중대장은 직계 혈족 아닙니까.”
“저기 김소희 매니저 아닌가? 놀랍군. 누굴 보러 왔길래 여기까지 행차했지?”
훈련에 참여한 것, 그중에서도 3군단, 그중에서도 태극 훈련에 참여한 걸 기뻐했다.
이런 분위기는 당연히.
[훈련에 참가한 각 길드 지휘관들과 핵심 전력들이 기뻐합니다! 훈련에 협조적으로 임합니다! 그들의 운을 흡수합니다!]
[운빨 점수 400점 획득! 운빨 점수 4,000점 도달!]
[운사기육 혜택을 얻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자리까지 빼앗는 건 아니지 않나?”
[운이 좋게도 당신의 능력을 보여 줄 훈련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더욱 운이 좋게도 당신을 빛나게 해 줄 멍청한 조연도 등장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