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화 훈련이 우선이지
헌터 또한 사람이다.
사람이 한 번, 두 번, 열 번은 성공해도.
만 번, 십만 번 중 한 번은 실패하기 마련.
문제는 다른 것들이야 십만 번 중 한 번 실패하면 다음 기회가 있지만.
[던전 파훼 실패, 던전 브레이크까지 남은 시간 1시간]
헌터에게 다음 기회란 없다.
이미 실패한 순간 죽었을 테니까.
그들이야 죽고 나면 그만이지만 더 큰 문제는 바로 남은 사람들.
던전 브레이크.
흔히 말하는 공략 실패의 결과로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나는 순간.
웨에에에에엥!
“실제 상황입니다. 실제 상황입니다. 현재 던전 브레이크 상황 발생. 던전 브레이크 상황 발생. 주변 거주민들께서는 최대한 빨리 거주지를 벗어나 주시기 바랍니다.”
시끄러운 사이렌 소리에 이어 꿈에서라도 듣기 싫은 방송이 울리고.
지역 경찰, 소방대원 전부가 사이렌을 울리며 시민들의 대피를 돕는다.
그러나 인원이 많은 지역이나 쉽게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
[게이트 브레이크 발생. 안에 있는 몬스터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현실과 게이트 환경이 융합됩니다!]
“쿠오오오!”
남은 시간이 끝남과 동시에 몬스터들이 쏟아져 나오면 이들을 처음 맞이하는 자들이 바로.
“전군 정렬!”
군인들이었다.
게이트에서 쏟아져 나오는 몬스터 웨이브를 막는 최초 방어선이자 길드들이 도착할 때까지 버티는 최후의 안전장치.
“야, 그거 고기 방패잖아!”
혹자는 그저 고기 방패, 시간 벌이용 희생양이라고 말하곤 했으나.
“모두 잘 들어라! 훈련이 완벽해야 실전에서도 살 수 있다! 명심해! 우리가 제대로 해야 사람들을 살릴 수 있다는 걸!”
“알겠습니다!”
군대가 유지되는 가장 큰 이유이자 명분이기에 허투루 훈련할 수 없었다.
길드들이 출동하기 전, 그들이 뭉치기 전에 가장 먼저 움직일 수 있는 무력 단체이기 때문.
그러나 문제점은 항상 있기 마련.
“만일 군부대가 전멸당하고 나서 길드가 뒤늦게 도착한다면?”
군대의 출동이 빠를지는 몰라도 화력의 한계는 분명했고.
만일 길드의 대처가 늦거나 역으로 군대가 늦을 경우도 생각해야 했다.
그래서 탄생한 게 바로 태극 훈련.
최악의 게이트 브레이크 상황을 가정.
군부대와 민간 길드 간의 협력 작전을 세움과 동시에 인프라를 만들어 두기 위한 훈련.
“협력 길드와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유사시 완벽한 방어 태세를 구축! 몬스터 놈들을 완벽하게 막는다!”
“네!”
특히 지휘관들 사이에선.
“이번 협력 길드는 어때?”
“뭐 작년이랑 똑같지.”
“계속 같이 훈련하던 길드 책임자가 더 큰 곳으로 옮긴 덕분에 이번에 그곳이랑 같이 하기로 했지 뭐야.”
“이번 훈련은 폈네, 폈어.”
같이 협력하는 길드의 규모가 어떠하냐, 그들과 얼마나 긴밀하게 협동을 이루어 내느냐가 관건.
협력 길드의 크기가 지휘관의 능력을 평가하는 매우 중요한 척도기도 하다.
“아, 이번에 그래도 강소 길드랑 하는 덕에 좀 편하겠네.”
“어중이떠중이보단 강소가 좋지.”
“들었나? 이번에 옆 대대에서 중견 길드랑 협력하기로 했다던데?”
“이런.”
“이번엔 그쪽에서 모두 가져가겠구나.”
물론 길드들이 돈 되는 게이트 놔두고 굳이 훈련에 참여할 리 만무.
지역 강소 길드만 잡아도 좋은 성과는 당연하고.
혹시라도 중견 길드라도 잡는다?
그럼 대박이었다.
그런데.
3군단 그중에서도 1대대가 맡은 훈련장엔 희귀한 풍경이 펼쳐지는 중이었다.
“아니, 지금 뭔데?”
“산군이랑 청연이라고?”
“한국 5대 길드 중에 2개가 왜 저기 있어?”
“지금 내가 잘못 보고 있는 거 아니지?”
훈련장에 당당히 꽂혀 있는 깃발과 그 옆에 서 있는 트레일러들.
그곳엔 분명 창연과 산군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었고.
“자, 다들 내려!”
“다들 내려 주세요!”
소속 헌터들이 차량에서 내렸다.
그들의 등장만으로도.
“으으, 저 사람, 저 사람 그 창연 공격대장 황금창 아냐?”
“미친! 저 사람 산군 선봉장 서던 사람이잖아? 뉴스에서나 보던 사람인데?”
“저, 저기! 그 이번에 A급 받았다는 루키지?”
“미쳤다. 지금 대체 뭘 잡으러 온 거야?”
자리에 있던 병사들을 비롯해 군인들이 모두 호들갑을 떨었다.
산군이나 창연이나 워낙 거대 길드니 거기에 속한 인물들도 모두 이름 날리는 헌터들.
유튜브에서나 보던 스타들을 이렇게 만날 줄이야!
놀랄 일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트레일러 열어 주세요!”
“트레일러 열어!”
창연 매니저 김소희와 산군 훈련 대장 서대천이 지시하자.
삐, 삐, 삐.
각 길드에서 수십억을 투자하여 구매한 게이트 공략용 캠핑 트레일러들이 거대한 몸체를 펼쳤다.
안에 보이는 수많은 장비와 편의 시설들.
아무래도 국내 더 나아가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길드이기에 재력의 차원이 달랐다.
그리고 물론.
“24인용 텐트에서… 자는 거지? 우리는?”
“아무래도 저 세계랑 이 세계라는 다르지.”
“그냥 저긴 또 다른 세상이라 생각하고 우린 텐트나 치자.”
그들의 화려한 등장을 지켜보며 다들 침만 꿀떡꿀떡 넘길 때.
“아하하! 이거 반갑습니다! 이번 훈련을 같이할 2대대장입니다!”
“3대대장입니다. 여기 3대대 소속 중대장들도 왔습니다.”
“군단 지원과에서 왔습니다. 이거 이곳까지 직접 오시다니요. 필요한 전투식량과 물자들도 준비해 놨는데 지금 가져다드릴까요?”
군단 간부들이 자신들이 있어야 할 곳을 벗어나 속속들이 대길드의 트레일러 주변으로 찾아왔고.
어떻게 해서든 그들과 이야기라도 해 보려 노력했다.
아마 할 수만 있다면 그들을 향해 손이라도 비비지 않았을까.
그러나.
“비켜, 당장.”
산군 훈련 팀을 이끄는 서대천은 그들을 귀찮다는 듯 지나쳤고.
“죄송합니다만 지금 급히 만나야 할 분이 있어서요. 대화는 다음에 나누기로 해요.”
창연 책임자 김소희는 부드럽게 웃으며 자리를 떠났다.
비록 둘의 태도는 달랐으나 결국은 거절.
다들 입맛을 쩝쩝 다시고는 이번엔 트레일러 주변에 있는 헌터들을 찾아가려 했다.
처음부터 책임자들과 친해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어차피 여기 있는 헌터들 하나하나가 자신들로선 상상도 못 할 강자들.
누구 한 명이라도 안면이라도 터놓으려 할 때.
“가자고!”
“오! 가서 오랜만에 얼굴 좀 보자!”
산군 트레일러에서 일련의 무리가 황급히 어딘가로 향했고.
“매니저님, 같이 갑시다!”
창연 쪽에서도 몇몇 헌터가 김소희를 따라나섰다.
그 대부분이 이번 훈련 팀에서도 핵심 인력들.
선두엔 김소희와 서대천.
그 뒤에는 창연과 산군 정예 헌터들이 따르니.
“어디, 국가 점령전이라도 가는 건가?”
“미친, 지구방위대가 왜 동내 조기 축구장에 나타난 거야?”
그 장엄함에 가슴이 웅장해질 정도.
걸음을 서두른 그들이 도착한 곳은 바로.
한창 훈련 준비를 하고 있는 3중대의 주변.
아직 다른 중대들이 이제 막 도착한 것에 반해.
“다들 정신 똑바로 차리고 텐트 설치부터 해! 24인용 텐트 설치하고 물자 안으로 옮겨 놔!”
3중대는 벌써 24인용 텐트를 설치하는 중이었다.
다른 부대에 비하면 놀라울 정도의 속도.
그중에서도.
“저거, 지금 혼자 하는 건가?”
“뭐야, 텐트 혼자 치는 거야? 뭐 저런?”
강현의 모습은 독보적이었다.
홀로 24인용 텐트를 손쉽게 치는 중.
지금껏 오른 근력과 많은 보조 특성 덕에 전보다 더욱 빨라진 속도.
심지어 대여섯 명이 붙은 옆 텐트보다 강현이 홀로 치는 텐트 올라오는 속도가 더 빨라 보일 정도.
마치.
“뭐야, 텐트 치는 게 스킬인가?”
“요즘 텐트 특기병도 있던가?”
“이거 게임 아니지? 누가 스피드 핵 썼냐?”
게임에서나 보일 법한 신기한 풍경.
평소 워낙 대단한 것들을 많이 본 유명 길드 헌터들이라도 이런 건 예상치 못했는지 놀라서 수군거렸다.
물론 그중에는.
“쯧, 텐트만 잘 치면 뭐하나. 전투를 잘해야지.”
강현을 그저 그런 헌터 취급하는 자들도 있었으나.
“아, 최강현 헌터 모르시는구나?”
산군 길드 소속 헌터들이 창연 길드 헌터들을 보며 묘한 웃음을 띄웠다.
그리곤.
“아, 최강현을 몰라? 헌터 생활 헛 했네.”
“우린 완전 잘 아는데.”
“아, 강현이 모르면 헌터 인생 손해 보는 거지.”
“뭐 창연이야 뭘 알겠냐고.”
“그렇지 같이 싸워 봤길 하겠어. 같이 아주 개고생을 해 봤겠어.”
“쟤네들은 뭘 몰라. 그냥 편하게 헌터 생활 하거든.”
창연 길드 헌터들의 성질을 살살 긁어대기 시작.
그들이 산군 길드 헌터들의 놀림에 어이없어할 때.
“누가 보면 같이 작전이라도 한 줄 알겠어요. 최강현 상병님이랑.”
김소희가 그들을 보며 밝게 웃었고.
“아, 그럼요! 우리가 지난번 탑에서 얼마나 같이 개고생을!”
“야! 그건 말하지 말아야지!”
자연스레 산군 길드원에게 정보를 캐내곤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지금 강현을 보러 온 건 지난번 강현과 같이 탑에서 산군을 구했던 특별 팀 인원들.
그들이 강현과의 친분을 자랑하고 있을 때.
“흥! 산군의 헌터들이 어떻게 외부인 칭찬을 하나!”
오히려 김소희가 아닌 서대천이 그들을 타박했고.
“왜요? 능력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 포용하는 게 길드를 이끌어 갈 사람의 자세 아닌가요?”
오히려 김소희가 그의 말을 반박했다.
“내 길드원 다루는 거에 왈가왈부하지 마.”
“거, 산군 팀장님 너무 성격이 날카로우시네. 매니저님에게 무슨 말버릇인가요? 못 배우셨나?”
창연 길드원들이 대번에 매니저인 김소희를 감싸고 돌았고.
길드들끼리야 원만하게 지낸다고 해도 게이트 현장에서 종종 부딪히기도 하는 그들이기에 서로를 향해 슬며시 이빨을 드러냈고.
“근데 창연은 왜 갑자기 껴든 거야?”
“그쪽은 이 부대랑 연도 없잖아.”
“뭐 그래서 꺼지라는 건가?”
“그래 주면 좋고.”
길드원들끼리 간단한 말싸움을 벌이는 것만으로도.
우우우웅.
주변 공기가 떨릴 만큼 강한 기세가 피어올랐다.
물론 3중대원들도 이러한 기운을 느끼지 못할 리가 없었고.
“어, 어떻게 하지.”
“중대장님 불러야 하는 거 아니냐?”
“지금 중대장님 어디 가셨어?”
“아, 중대장님 방금 보고하신다고 대대장님 막사에 가셨습니다.”
“가서 상황 말씀드리고 오시라 해.”
병사들을 비롯한 다른 간부들마저 함부로 참견하지 못한 채 서윤진 대위를 기다릴 뿐이었다.
마치 훈련장의 주인이 바뀐 듯한 분위기.
본래 주인이어야 할 군인들은 눈치를 보고 손님인 두 거대 길드가 서로를 향해 눈을 빛낼 때.
“무슨 일 있습니까?”
강현이 막 24인용 텐트를 완성하고는 밖으로 나왔다.
“소대장님, 지금 텐트 완성했습니다. 안에 물건 옮기면 됩니다.”
강현이 묘해진 바깥 상황을 살피며 소대장에게 다가가 텐트 완성을 보고했고.
“어! 최강현 헌터!”
“최강현 상병님!”
강현의 얼굴을 보러 온 산군 특별 팀 인원들은 물론 창연의 김소희 매니저마저 강현을 보며 손을 흔들었다.
마치 자기들을 좀 봐 달라는 듯한 태도.
물론 이를 처음부터 끝까지 바라보고 있던 타 부대 간부들과 병사들은.
“와, 뭐야? 쟤 최강현이 설마 산군이랑 창연에도 연 있었어?”
“저런 실력에 산군, 창연에 지인까지 있다고? 무슨 소설 주인공이냐?”
“아니지. 저런 실력이니까 산군, 창연 사람들을 아는 거지.”
강현을 보며 반갑게 다가가는 그들을 보고선 부러움과 질투 섞인 눈으로 강현을 보았다.
아니 대체 저 인간은 뭐 하는 인간이길래 그 많은 전공을 세우고 아이돌과 방송까지 나온 거로 모자라 산군, 창연의 관심까지 받는단 말인가.
소대장에게 보고를 마친 강현이 오랜만에 보는 특별 팀의 얼굴을 발견하고는 작게 고개를 숙였다.
“반갑습니다.”
“그래! 아주 건강해 보이네요. 최강현 헌터!”
“특별 팀 헌터분들도 건강해 보이십니다.”
“같이 인사 좀 하죠! 오랜만인데!”
특별 팀이 그를 반갑다는 듯 맞으며 다가갔다.
생명의 은인을 보는데 반갑지 않을 리가 없다.
거기다.
“안녕하세요, 최강현 상병님. 저 창연 길드 소속 매니저 김소희라고 합니다.”
“아, 네 반갑습니다.”
“예전에 게이트 입구에서 뵙고는 처음이네요.”
“아, 그렇습니까?”
“잠시 이야기 괜찮으세요?”
창연 길드 매니저 김소희까지 직접 나서 강현에게 살갑게 말을 붙이는 중.
평소 그들의 도도하고 값진 모습만 보다가 저렇게 누군가에게 말을 붙이려 노력하는 면모를 보는 건 처음.
“와, 부럽다.”
“나 같았으면 당장 트레일러 내놓으라고 했다.”
“아니, 난 간부들부터 조져 달라고 하지.”
“미친, 군대 그만둬야지 뭣 하러 군대에 있겠냐?”
“일단 훈련 뺐지. 트레일러에서 지내면 개꿀인데.”
다들 자신이 저 상황에 놓이면 얼마나 기쁠지 또 어떤 행동을 할지 상상하며 수군거릴 때.
“네, 반갑습니다.”
강현은 오히려.
“죄송하지만 지금은 훈련 중이라 많은 이야기를 나누기가 어렵습니다.”
특별 팀에게 눈짓으로 양해를 구하고는 김소희의 제안을 거절했다.
모두의 예상과는 다른 행동.
당연했다.
‘훈련이 우선이지.’
지금은 훈련 중, 그들이 누구든 훈련을 방해해선 안 된다.
강현에겐 현재 이들과 친분을 자랑하는 것보다 훈련 준비를 하는 게 우선.
그리고 이런 모습은 오히려.
“아, 하긴 이게 최강현 헌터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게 참 믿음직스럽단 말이지.”
[산군 길드 특별 팀의 신뢰도가 상승했습니다. 당신에 대한 호감도가 더욱 올랐습니다]
“네, 그럼 훈련 집중하시고 훈련 후에는 가능하시면 시간 좀 내주세요.”
[새로운 인물 김소희의 호감도가 올랐습니다]
산군 길드 특별 팀은 물론 김소희에게도 호감으로 비쳤다.
특별 팀이야 이미 강현에게 매료된 상태니 어떤 행동이든 좋게 보는 게 당연했지만.
‘역시, 들었던 대로 거만하지 않고 자기 일에 집중하는 사람이구나. 생각보다 소문이 정확하네.’
강현을 처음 본 김소희마저도 강현에 대한 정보가 사실임을 확인하곤 호감을 품은 것.
물론.
어디에나 미친놈은 꼭 있기 마련이었고.
“아, 거 뒈지게 비싸게 구네. 야, 너 좀 뭐 되냐?”
산군 길드 서대천이 강현을 보며 대뜸 시비를 걸었다.
“아는 척 좀 해 주니까 뭐 된 거 같아?”
감히 산군과 창연 길드 앞에서 이렇게 목이 뻣뻣한 놈을 보자 그냥 넘길 수가 없었다.
사실 어떻게 해서든 시비를 걸었겠지만.
서대천이 다시 입을 열려는 순간.
“입 닫아요.”
“어어, 그러지 마십쇼.”
“뭐라는 거야, 미친놈이. 안 닥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