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화 36-23-37
강현이 지금껏 해파칠십이검을 휘두르며 생각한 고민.
“근데 이거 사람이 검을 한 호흡에 일흔두 번 휘두르는 게 가능한 겁니까?”
레벨이 오를수록, 점점 휘두를 수 있는 검격 횟수가 늘어날수록 드는 의문.
진짜 사람이 한 호흡에 검을 일흔두 번이나 휘두르는 게 가능한가?
강현도 한 호흡에 검격을 서른 번 이상 흩뿌리면서도.
“후우, 후우.”
때로는 차오르는 숨에 호흡을 골라야 할 정도.
심지어 강현 같은 경우 해파칠십이검만 휘두르는 게 아니었다.
[해파칠십이검을 발동합니다. 거인의 강골, 세개의 폐, 능숙한 몸놀림, 강인한 팔뚝, 강인한 하체와 연계하여 위력이 대폭 증가합니다!]
단단한 뼈와 강인한 근육, 거기에 남들보다 한참이나 깊고 넓은 호흡까지.
신체 능력을 보조해 주는 스킬과 특성만 여러 개.
그야말로 해파칠십이검을 위해 만들어진 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거기다.
[중급 마나 운용법, 월하심법, 마력지체를 사용하여 마나 일체를 사방으로 뿜어냅니다! 정밀함, 절약 정신을 적용하여 마나 사용 효율을 높입니다!]
지금껏 수많은 고물에서 획득한 마나 운용 노하우들은 마나를 최대한 통제하며 적재적소에 배치했고.
폭발하는 신체 능력을 조율, 힘의 균형을 유지해 주었다.
오래, 길게 그러나 힘차게 검을 휘두를 수 있도록.
마나를 이용해 이루어 낸 또 한 번의 신체 강화.
이 정도면 스킬의 등급을 바꿀 정도의 위력.
실제로 강현이 스킬의 보조를 받아 펼친 기초 방패술 같은 경우.
“저놈 저거, 총, 검에 이어 방패까지 사용하는 거야?”
“어째 우리보다 더 잘하는 거 같다?”
본래 방패술 스킬을 가진 1분대 탱커들보다 더욱 위력적일 정도였다.
이전 이무기와의 싸움에서도 확인했던 사실.
그럴진대.
“후욱, 후욱… 하압!”
이러한 강현의 신체 능력과 마나 스킬로도 서른다섯 번의 검격이 때로 힘에 부쳤다.
그나마 능숙한 움직임, 제로백 스킬과 같이 폭발력을 더한 스킬들을 추가로 덧입혀 지속성을 늘리는 정도.
“이거 정말 사람이 펼칠 수 있는 거 맞습니까?”
강현이 해파칠십이검을 훈련하다 때때로 검성 이석천에게 물었고.
“그럼 괴물이 펼치라고 만들었을까?”
그때마다 검성 이석천이 심드렁하게 답했다.
마치 당연한 걸 자꾸 묻는다는 듯한 표정.
“지금 서른다섯 번째에 이르렀는데 앞으로 여기서 두 배를 휘두를 수 있다구요?”
강현이 점점 높아지는 일격 일격의 벽을 생각할 때.
“우선 반절까지만 도달해 봐.”
검성 이석천이 옆에 놓여 있던 나뭇가지를 들고선 자세를 잡았다.
오랜만에 보여 주는 검수로서의 진지한 얼굴.
비록 잡은 건 나뭇가지였으나 풍기는 기세는 한 자루의 검과 같았다.
“명심해라. 검이라는 건 하나하나 늘려 가기만 하는 게 아니다.”
“늘려 가는 게 아니다……?”
“그래, 많은 검잡이들이 착각하는 사실이지.”
“그럼 무엇이 다른 겁니까?”
강현이 검성의 가르침에 덩달아 진지한 얼굴을 하며 물었고.
“벽. 벽을 깨는 거다. 늘리는 게 아니라 넘는 거다.”
“벽…….”
“그래, 어느 극한에 이르렀을 때 검수의 검은 한계를 만난다.”
“그 한계가 반절이라는 겁니까.”
“그리고 한계에 도달하고 이를 넘는 순간!”
검성이 자신이 쥔 나뭇가지를 휘둘렀고.
일 검, 일 검을 쌓아 나갈 때마다.
우르르릉!
주변에 폭풍이 몰아치듯 공간이 일그러지며 울었다.
검성이 변함없는 표정으로 서른여섯 번의 검격을 끝내자.
“…….”
마치 TV 소리를 끈 것처럼 세상이 침묵에 빠졌다.
바람도, 숨결도 하물며 땅과 숲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의 기척마저도.
지워 낸 자리.
그곳엔 오롯이.
검성 이석천.
그만이 서 있었다.
일견 보기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보였으나.
[연구자의 눈으로 분석할 수 없는 현상입니다!]
[신체 내에 존재하는 모든 스킬을 발휘합니다! 불요불굴을 발동합니다! 정신적 충격을 극복합니다!]
[생명의 위협을 느꼈습니다. 현장을 벗어나야 합니다!]
[신체적 위협 극복 실패. 상대의 검에 당신의 검존이 잠식당했습니다]
강현의 눈앞에 경고를 알리는 알림창들이 끊임없이 떠올랐다.
검성 이석천과 직접 검을 부딪친 것도 아니다.
심지어 그가 손에 쥔 것은 검이 아닌 나뭇가지.
그저 허공에 대고 휘둘렀을 뿐.
강현은 단지 주변에 서 있었을 뿐.
[피할 수 없는 위험에 노출되었습니다! 극복할 수 없는 위기입니다!]
그런데도 모든 능력을 발동하고도 검성의 공간 점유를 벗어날 수 없었다.
강현의 관자놀이를 타고 흐른 땀이 턱에 맺혀 뚝뚝 떨어지길 잠시.
“후우.”
검성 이석천이 팽팽하게 당겼던 숨을 놓자.
후우우웅, 찌르르, 찌르르, 바스락, 후두두두두.
팽배했던 기운이 사방으로 퍼지면서 먹먹해졌던 공간에 소리와 바람, 생명의 기척들이 다시 존재감을 뿜어냈다.
그제야 강현이 소리가 사라졌던 이유를 깨달았다.
“존재감을 눌렀어……!”
공간을 점유하다 못해 공간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의 존재감을 눌러 버릴 정도의 위력.
거기에 더욱 놀라운 점은 바로.
“실제 위력을 터뜨리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아직 공격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
검성 이석천의 기억이기에 현실 세계에 위력을 행사하지 못했기 때문.
그저 자신의 검술을 보여 주기만 해도 이런 위력이라니.
강현이 떨리는 목소리로 질문했고.
“글쎄다. 음 상태창이 대충 알려 주지 않든?”
아마 못해도 훈련장 전체가 날아갔겠지?
이석천의 담담한 예상에 강현이 깊이 숨을 내쉬었다.
절반의 검이 이런 위력을 내다니.
“더하는 게 아니라 넘는 거다…….”
실제로 목격하니 이석천이 했던 말이 이해되었다.
방금 보여 준 강함은 차원이 달랐으니까.
그렇다면.
“얼마나 많이 넘어야 하는 겁니까?”
강현이 갈 길은 얼마나 먼 것일까?
오랜만에 느껴보는 스승과 제자다운 문답에 검성 이석천이 거드름을 피우며 답했다.
“한참 멀었지!”
이어서 시작된 잔소리 폭격.
평소에는 강현에게 찍소리 못 했지만 검에 있어서만큼은 이석천이 스승.
지난 시간의 분을 풀 듯 그가 앞으로 강현이 가야 할 길과 만나게 될 벽들을 설명했고.
“응? 이제 알았냐 후배야? 이 선배이자 스승인 나의 위대함을?”
뭐 부탁하면 좀 더 자세히 알려 줄 수도 있고.
마지막 말을 맺으며 검성이 슬쩍 강현을 훔쳐봤다.
그가 만나 왔던 대부분의 제자들은 이런 모습을 보는 순간.
“이 제자 검성님의 가르침을 기다립니다!”
넙죽 엎드리며 가르침을 구하기 일쑤였다.
강현도 당연히 그러겠지.
이 위대한 검술을 목격하고도 그냥 넘어갈 리가 없다.
사실 여기엔 비밀이 있다.
‘해파칠십이검을 완성해야만 낼 수 있는 위력이긴 한데, 어쨌든 완성할 거니까! 강현이라면 가능하지!’
지금 검성이 보여 준 공간 점유는 해파칠십이검을 완성해야만 낼 수 있는 위력.
그러니까 일단 끝판왕 보여 주고, 살살 꼬드긴다는 작전이었다.
그러면 뭣도 모르는 검에 미친 놈들은.
“아닛! 삼십육 검만에 저런 위력을 내다니! 이건 신의 검술이야!”
정신을 차리지 못했으니까.
좀 사기성이 짙긴 하지만 원래 인생이라는 게 그렇다!
“어허 이거 너무 놀란 나머지 말도 못 꺼낼 정도인가?”
검성 이석천이 아직도 묵묵부답인 강현을 재촉하는 순간.
“으음, 아직 갈 길이 멀었다면 그 위력을 바로 낼 수는 없겠군요.”
강현이 정곡을 푹 찌르고 들어왔다.
검성의 어깨가 움찔 떨렸고.
강현이 확신했다.
“거기다 상태창이 모두 다르듯 검수들이 겪는 깨달음의 벽도 다를 진데… 으음, 아직 한참 남았다라.”
“저기, 강현아? 나, 스승 여기 있는데? 나한테 물어보면 되는데?”
“삼심육 검을 완성해도 저런 위력을 낼 순 없다는 말이네.”
“저기, 강현아. 지금 막힌 벽 같은 경우에는 말이다.”
자신을 쳐다보지도 않고 혼잣말을 하는 강현을 쫓아다니며 검성이 주절주절 말을 이었고.
“아, 거 조용히 좀 해 보십쇼.”
강현이 역으로 검성의 입을 막았다.
“지금 깨달음에 대해 고민하는 거 안 보이십니까? 가장 즐거운 순간을 방해하십니까, 자꾸.”
“가장 즐거운 순간?”
“네, 그러니까 내버려 두십시오. 좀.”
강현이 고개를 홱 돌리며 검성을 외면했고.
살면서 처음 보는 인간 유형에 검성이 당황하길 잠시.
“아니, 내가 알려 주고 싶어서그래.”
“…그러니까 앞으로는 이렇게 해서 저렇게.”
“아니! 내가 알려 주고 싶다고! 내가 검 알려 준다고!”
결국 참지 못한 검성 이석천이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고 나서야.
“그럼 특별히 가르치게 해 드립니까?”
강현이 씨익 웃으며 검성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검성도 그제야 자신이 강현의 술수에 낚였다는 걸 알았으나.
“그래! 내가 알려 주마!”
이미 넘어간 거 그냥 하기로 했다.
‘그래 봤자 저 착한 녀석이 나를 얼마나 부려 먹겠어?’
어차피 자신이야 기억에 불과할 뿐 현실에 있는 것도 아니니 입으로만 떠들면 되리라.
그러나.
검성 이석천조차도 강현이 검탑주에 등극해 검탑을 이용할 줄 몰랐고.
심지어 자신이 도플갱어의 몸을 이용해 검탑 한정 물리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 결과.
강현과 서윤진은 마치 목마른 사슴이 우물을 찾듯 틈만 나면 검탑에 방문했고.
“팔백사십육 번째! 도즈언!”
“크러렁!”
이제는 정말 강현이 말했던 대로 천 번의 싸움을 향해 다가갔다.
합격 스킬을 획득한 이후에는 꽤 비등비등한 싸움을 이어갈 수 있었고.
“하하하하하!”
“아하하하하!”
죽음에서 되살아난 강현과 서윤진이 서로를 보며 밝게 웃어 젖혔다.
마치 지금 상황이 너무나 즐거운 듯한 표정.
그리고.
“방금 일부러 손을 거두신 겁니까? 설마?”
“응! 나도 모르게 손을 거뒀어! 이런 경우는 처음이야!”
강현과 서윤진이 방금 싸움을 신나게 복기했다.
147번째 도전에서 강현의 능숙한 움직임 스킬이 진화한 후, 드디어 서른여섯 번의 검격을 휘두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은 불완전한 상태.
그래서 선택한 게.
“같이 계속 훈련하는 것 어떻습니까?”
“같이?”
“그렇습니다. 어차피 훈련이란 건 끊임없는 것 아닙니까?”
서윤진에게 검탑 훈련을 계속할 것을 제안.
서윤진과의 합격 스킬도 완전히 익힐 겸, 그녀의 광폭화 제어력도 올릴 겸, 거기다 강현도 검술 훈련을 할 겸.
“저기 상대할 적은 사라지지 않으니까 괜찮습니다.”
그렇게 일석삼조 훈련을 진행한 것도 드디어 팔백 번이 넘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방금 상황이 기억나십니까?”
“……!”
서윤진이 팔백 번의 광폭화 끝에 처음으로 자신이 했던 싸움을 기억해 냈다.
처음엔 피아도 구별하지 못했던 걸 생각하면 엄청난 발전!
강현의 물음에 서윤진이 감격한 표정을 지었고.
“고마워, 강현아! 정말 고마워!”
그녀가 격한 감정을 이기지 못하곤 강현을 와락 껴안았다.
모두가 고개를 저었다.
핏줄에 짙게 밴 혈호의 광기는 제어할 수도 없고 제거할 수도 없다고 들었다.
처음엔 노력하던 사람들도 시간이 지날수록 포기했다.
그러던 중 그녀가 어릴 적 들은 한마디.
“왜 네 애미도 미친년이더니 너도 미친년이냐?”
자기보다 몇 살 위의 친척이 어머니와 서윤진을 싸잡아서 욕했고.
“크아악!”
어린 그녀는 간신히 제어하던 광폭화를 그날 처음으로 완전히 개방해 버렸다.
자신을 모욕한 친척을 포함, 주변에 있던 아이들까지 그 자리에서 중상을 입혔다.
아마 커다란 소란에 어른들이 달려오지 않았다면 분명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이 있었을 터.
어린 서윤진이 일으킨 한 번의 실수는 결과적으로.
“저런 미친 호랑이가 어떻게 길드 수장에 앉는단 말입니까!”
“적이 아닌 아군을 공격하면요? 누가 막는단 말입니까!”
서윤진을 공격할 가장 큰 빌미가 되었고.
시간이 지나.
“군에 입대하겠습니다.”
결국 서윤진 대위는 가문을 떠나 군에 입대했다.
그렇게 평생 광폭화라는 저주 속에서 살 줄 알았는데.
“처음이야, 이런 거 처음이야 진짜로!”
차츰차츰 변하는 모습에 서윤진이 감격한 목소리로 지난 아픔들을 털어 냈다.
그래, 어쩌면 자신이 군대에 들어온 이유가.
“강현아, 네 덕분이야 정말 고마워 정말!”
강현을 만나기 위해서는 아니었을까.
정말 이런 운명론까지 떠올릴 정도.
진심으로 기뻐하는 서윤진 대위를 보며 강현도 마주 미소 지었다.
“앞으로 많은 게 바뀔 겁니다.”
강현의 간단한 말이었지만.
“응!”
서윤진 대위는 진심으로 믿었다.
강현의 말이니까.
[전우 서윤진의 광폭화 제어 정도: 84… 85%]
[광폭화 제어 수치가 일정 수준에 달했습니다. 이제 서윤진 대위가 광폭화에 들어서도 피아를 구분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하는 행동의 기본적인 상황을 인지합니다!]
[전우 서윤진의 신뢰도가 일정 수준을 돌파했습니다! 서윤진이 당신을 절대적으로 신뢰합니다! 당신의 명령이라면 무엇이든 수행할 것입니다!]
[서윤진의 지위가 전우에서 영혼의 파트너로 격상되었습니다!]
[지위 격상 보상으로 대상의 가장 소중한 정보를 오픈합니다!]
[36-23-37]
‘이거 설마?’
강현이 황당한 심정으로 상태창을 다시금 확인할 때.
- 우리 아들 능력 좋네? ^^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