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화 포기? 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
강현의 목이 떨어지는 모습을 본 순간.
서윤진이 느꼈던 감정들.
절망, 후회, 공포, 그리움.
그리고 분노.
분노, 끝없이 타오르는 분노.
발끝에서 타고 올라와 척추와 뇌를 태울 듯이 몰아치는 분노!
난생처음 느껴 보는 감정에 광폭화가 그녀의 이성이 조절할 틈도 없이 발동되었고.
[광폭화 스킬 발동. 분노가 최고조에 이르렀습니다! 모든 능력치가……]
서윤진이 떠오르는 알림을 모두 무시하며 눈앞의 원수를 향해 달려들었다.
죽인다, 반드시 죽인다!
강현의 복수를 결심하며 오직 상대를 죽이기 위한 살수를 펼쳤으나.
채채채챙!
얼굴 없는 검수는 마치 서윤진의 행동을 예측이라도 한 듯 모든 공격을 방어.
“크허헝!”
그녀가 커다란 울음을 토하며 다시금 광폭화의 한계를 뛰어넘었다.
[광폭화 심화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경고 당신의 이성이 광기에 완전히 잡아먹힐 수 있습니다. 경고……]
상태창의 경고 메시지가 연속해서 떠올랐지만.
“크아악!”
이미 이성을 잃은 서윤진이 더욱 거칠게 울부짖으며 달려들었고.
서걱.
몸을 파고드는 검의 선명한 감촉을 느꼈다.
암전되는 시야.
꺼져 버린 정신.
“윤진아. 괜찮다, 괜찮아. 이겨 낼 수 있을 거야.”
“그럼 우리 딸, 엄마랑 아빠는 언제나 우리 딸 믿는 거 알지?”
외면하려 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들이 그녀에게 파도와 같이 밀려들어 왔다.
붉은 털을 가진 이단아.
저주받은 혈통.
자기 길드원을 잡아먹을 수 있다는 남들의 편견보다.
자신을 향한 조롱과 미움보다.
“아빠가 방법을 찾아볼게 그러니 좀만 기다려 보자.”
“엄마가 미안해. 엄마가 이런 능력자라 미안해.”
그런 시선 속에서도 끝까지 자신을 고쳐 보려는 아버지의 믿음과 어머니의 사랑 어린 눈물이 더욱 힘겨웠다.
그때는 참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엄마, 아빠…….’
죽음을 맞이하자 막상 아버지의 응원과 어머니의 눈물이 그리워지다니.
그때 좀 더 응석을 부려 볼걸.
서윤진이 후회하며 모든 것들을 흘려보낼 때.
“흑, 흐흑, 흐흐흑.”
그녀의 입에서 작게 울음이 터져 나왔고.
“야, 울잖아. 이거 괜찮은 거냐?”
검성 이석천이 몸을 웅크린 채 울고 있는 그녀를 보며 강현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야, 진짜 괜찮은 거냐고 이거.”
“…과정입니다.”
검성의 재촉에 강현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처음 이런 작전을 떠올린 건 강현.
산군 서대호가 죽여도 죽여도 끊임없이 되살아나는 아들을 보며 미쳤듯.
‘서윤진 대위님을 검탑에 몰아넣고 계속 분노를 폭발시킬 겁니다.’
‘윤진이를? 그러다 광기에 완전히 먹히면?’
‘그 전에 죽여서 재구성시켜야죠. 그러면 광폭화 스킬이 취소될 테니까요. 반복하다 보면 광폭화 제어의 실마리를 찾을 겁니다. 중대장님은 해낼 겁니다.’
‘와, 너 완전히 미친놈이구나?’
‘…이제 아셨습니까?’
‘뻔뻔하기까지! 역시 이래야지! 너 헌터가 되어 가는구나?’
서윤진의 광기를 폭발시킨 후 완전히 잡아먹히기 전에 죽여서 리셋할 계획.
그리고 이를 반복.
얼핏 듣기엔 너무 거칠고 무식한 방법.
그러나.
[전우 서윤진의 광폭화 제어 정도: 5%]
상태창 메시지가 지금 강현이 생각한 방법이 틀리지 않았음을 알려 주었다.
지금 웅크려 우는 서윤진을 보니 너무 심했나 싶기도 했지만.
‘조심스럽기만 해선 아무것도 할 수 없어.’
강현이 다시금 마음을 다잡았다.
광폭화가 무서워서?
여기라면 그런 걱정할 필요 없다.
그렇기에 이런 거친 방식을 택했고 실제로 효과를 보았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건.
“중대장님.”
강현이 서윤진을 불렀고.
“흑, 흐흑, 으, 으응?”
서윤진 대위가 멍한 눈으로 강현 쪽을 바라보았다.
분명 강현이는 죽었는데?
“어, 어어? 나도 죽었는데? 어떻게 된 거지?”
서윤진이 자신의 몸을 더듬으며 의문을 표하다.
“죽은 게… 아니야?”
“제가 말씀드렸잖습니까. 이곳은 누구도 죽지 않고 다치지 않는다고.”
“아, 아아. 그럼?”
강현이 했던 말을 떠올린 그녀가 얼굴을 빨갛게 물들였고.
“눈물 자국… 설마 우셨습니까?”
항상 당당하고 강건하던 중대장의 부끄러워하는 모습에 강현이 슬쩍 웃으며 놀리려는 순간.
“아냐, 아냐! 크르릉!”
서윤진 대위가 순식간에 혈호로 변신하며 이빨을 드러냈다.
너무나 급작스러운 반응에 강현이 움찔할 때.
“아냐, 안 울었어. 안 울었다고 답해. 내가 울었어, 안 울었어?”
크르르르릉.
짙게 울리는 위협으로 강현에게 답을 강요했다.
아니 운 거야 본인이 가장 잘 알면서 강현에게 이걸 물어보다니?
“울었어? 안 울었어?”
서윤진 대위의 위협에 강현이 꿀떡 침을 삼키고는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답은 정해져 있다.
“안 우셨습니다. 완전히 안 우셨습니다!”
“아냐! 울었어!”
아니, 안 울었다는 게 답이 아니었어?
서윤진이 강현을 향해 한 발짝 한 발짝 다가가며 말을 이었다.
“이 중대장에게 응? 언질도 주기 싫었던 거니? 이렇게 사람을 놀라게 만들어야 했어? 진짜, 진짜 너무한 거 아니니?”
서윤진의 눈이 점점 벌겋게 달아오르기 시작.
강현이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뒤로 물러났다.
뒤에선.
“거봐라. 내가 미친 짓이라고 했지? 광폭화가 괜히 광폭화인 줄 아냐?”
검성 이석천이 강현 등 뒤에 숨어서 종알거리기 시작.
“대답해! 최강현!”
“상병 최강현!”
“진짜… 진짜!”
서윤진이 벌게진 눈으로 화를 내려던 순간.
검성 이석천이 강현의 고생을 예감하며 킬킬거리던 순간.
강현이 죽음을 예감하던 순간.
“얼마나 놀라고 걱정했는데.”
서윤진 대위가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곤 그렁그렁한 눈망울로 강현을 올려다보았다.
오히려 그 모습에 강현이 무슨 말을 할까 우물쭈물했고.
“와, 저건 말이 안 되지. 야, 윤진아. 네 할애비도 못 본 모습을…….”
검성이 나지막이 한탄을 흘렸다.
본래 서윤진이라면 화를 내고 발톱을 휘둘렀어도 모자랄 일!
아무리 강현이 좋다고는 하지만 제 성격까지 바꿀 만큼이란 말인가!
“죄송합니다, 중대장님. 다음부턴 꼭 말씀드리겠습니다.”
“응. 강현이 믿어. 다음부턴 꼭 말해 줘야 해?”
강현의 사과에 서윤진이 안도하며 자리에서 일어섰고.
자신의 예상과 다르게 단번에 해결된 갈등을 보며 검성 이석천이 황당하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될 놈은 된다더니… 이 더러운 놈의 세상!”
카악 퉤!
문득 자신의 쓸쓸했던 솔로 인생을 떠올린 검성이 투덜거릴 때.
“그럼 이제 저 달걀귀신을 상대로 마음껏 싸워도 된다는 거지?”
“그렇습니다. 광폭화를 최대한 폭파하되 이성이 먹히기 전에 다시 리셋할 생각입니다.”
“그럼 강현이는? 그냥 있을 생각?”
“아닙니다. 저도 같이 싸울 겁니다. 저와 중대장님이 합심해서 저 달걀귀신을 물리치는 겁니다.”
서윤진과 강현이 어느덧 광폭화 제어 방향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었다.
그러던 중 같이 싸워야 한다는 소리에 서윤진이 난감해했다.
“그건… 잘못하면 오히려 널 공격할 수 있어.”
“상관없습니다.”
그러나 강현은 서윤진의 걱정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다쳐도 다시 살아나면 됩니다. 여기서만큼은 누군가를 해칠까, 누군가를 죽일까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게 서윤진을 이곳에 데려온 이유니까.
그리고.
“중대장님이 절 믿으시는 만큼 저 또한 중대장님을 믿습니다.”
“아…….”
그녀가 지금까지 강현을 믿었던 것만큼 그 또한 서윤진을 믿었다.
언제나 가장 먼저 자신을 도와주었던 전우였으니까.
그리고 자신의 죽음에 슬퍼하고 분노했던 사람이니까.
강현과 서윤진이 다시금 서로에 대한 굳건한 신뢰를 확인할 때.
“웃기지 마! 이런 세상은, 이런 따뜻한 세상은 없어!”
어느새 얼굴 없는 검수로 돌아온 검성 이석천이 비통하게 외쳤다.
“세상엔 싸움과 피! 그리고 전투뿐이다! 그딴 따뜻한 표정과 눈빛은 없단 말이다!”
누구를 향하는지 모를 분노와 아픔.
비록 얼굴이 없어 표정은 보지 못하지만 아마 있었다면 괴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으리라.
아니, 눈물이라도 흘리지 않았을까?
그의 연기인지 진심인지 모를 외침에.
“근데 저 사람은 대체……?”
서윤진 대위가 의문을 표했고.
“아, 그 있습니다. 평생 싸움만을 쫓으며 강해지기 위해 노력했던 검수가.”
강현이 차마 검성 이석천이라는 사실은 밝힐 수 없기에 둘러댔다.
어차피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 않은가.
강현의 말을 들은 서윤진이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이석천을 보며.
“아, 불쌍한 사람이구나. 싸움 말고 인생의 다른 즐거움도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
“아무래도 너무 검에만 미쳐 살았나 봅니다.”
“후우, 괜히 그분이 떠올라서 더욱 마음이 아프네.”
그녀가 달걀 검수를 보며 동정 어린 표정을 지었고.
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자신을 향한 친우의 손녀와 후배의 동정 어린 시선에.
“…….”
잠시 침묵하던 검성 이석천이.
“으아아악! 그런 눈으로 보지 마! 죽인다! 죽여 버린다!”
발작하듯 외치며 검을 치켜들었고.
강현과 서윤진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럼 부탁할게!”
“맡겨 주십시오!”
이미 상대의 실력은 알고 있다.
서윤진이 실로 오랜만에 이성을 완전히 놓아 버렸고.
“크르르!”
금세 눈이 시뻘게지며 광폭화 상태로 돌입.
“크허엉!”
광풍을 일으키며 검성 이석천에게로 쇄도했다.
다시 시작된 싸움.
그리고 둘의 어지러운 움직임을 보며 강현이 깊이 심호흡했다.
이곳에 서윤진을 데려온 게 단순히 그녀의 광폭화 제어만을 위한 건 아니었다.
‘서른다섯 번.’
현재 강현이 휘두를 수 있는 해파칠십이검은 총 서른다섯 번.
한 번만 더 추가한다면 드디어 절반에 이른다.
‘서른여섯. 딱 절반에 이르는 순간 또 새로운 세계가 펼쳐질 거다.’
분명 과거 강현의 검술 훈련을 지켜보던 검성 이석천이 했던 말.
그가 새로운 세계라 말할 정도이니 분명 뭔가 있어도 있을 터.
‘중대장님의 광폭화도 제어하고 삼십육검까지 성공한다!’
강현의 의도는 바로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기 위함!
그가 호흡을 가다듬고는 눈을 번쩍 뜨자.
“크르르.”
점점 뒤로 몰리는 서윤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지금.
피잉!
강현의 몸이 활을 떠난 화살과 같이 앞으로 튀어 나갔고.
전심전력을 다한 해파칠십이검을 펼쳐 냈다.
검을 타고 폭발하는 마나!
“하압!”
물론 이석천이 자신의 검술에 당할 리가 없었고.
강현이 쏟아 낸 파도를 단숨에 휩쓸어 지워 버렸다.
강현이 다시 검술을 펼쳐 내는 순간!
“크허엉!”
이미 광폭화에 이성을 잠식당하기 시작한 서윤진이 강현이 휘두른 검술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중대장님!”
덕택에 강현의 검과 서윤진의 공격이 얽혔고 서로의 기운을 방해했다.
티잉!
검성을 몰아치려던 둘의 기운이 오히려 서로를 밀어내며 튕겨 버렸고.
“크윽.”
“커헝!”
강현과 서윤진의 공격 방향이 엇나가며 둘 모두 커다란 빈틈을 노출했다.
물론.
평생 검만을 훈련하며 싸워온 솔로 검성 이석천이 이 커다란 빈틈을 놓칠 리 없었고.
서걱, 서걱!
방금까지 불태우던 원한을 풀겠다는 심정으로 둘의 몸을 갈랐다.
어두워지는 시야.
다시 깨어나기 전까지 눈앞에서 복기 되는 싸움.
[검탑주 최강현의 복구를 끝마쳤습니다]
[전우 서윤진의 복구를 끝마쳤습니다]
강현과 서윤진이 다시 멀쩡한 모습으로 눈을 떴고.
“미안.”
서윤진이 먼저 사과를 건넸다.
광폭화의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
“분명 뭔가 실수를 했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미안.”
광폭화를 하면 개인 전투력은 크게 상승하지만 이성이 날아가 버리기에 합공은 꿈도 못 꾼다.
사실 방금도 검성 이석천이라는 너무 강한 적을 마주했기 때문이었지.
조금의 여유라도 있었다면 강현도 적으로 인식했을 터.
“조금 제어를 하려고 노력을 해 볼까?”
서윤진이 심각한 표정으로 어떻게 할까 고민할 때.
“아닙니다.”
강현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중대장님 오히려 더욱 광폭화로 날뛰어 주십시오.”
“진짜? 그러다간 훈련 전체가 망가질 수도 있는데?”
생각지 못한 반응에 서윤진이 의문을 표했으나.
“더욱 거세게, 더욱 힘차게 날뛰십시오. 부탁드립니다!”
강현이 눈을 반짝이며 서윤진에게 부탁했다.
어쨌든 문제가 없다니.
“알았어. 최선을 다해 날뛰어 볼게.”
서윤진으로서야 괜찮다니 반가운 제안.
그녀야 알지 못하겠지만.
‘오히려 좋아.’
강현은 서윤진의 광폭화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다.
언제나 그랬듯 어려운 상황.
그러나 강현은 포기하지 않았고.
[전우 서윤진과의 신뢰가 깊습니다! 둘의 공격을 융합합니다!]
[융합 실패!]
[융합 시도 1회, 융합 시도 횟수가 늘어날수록 융합 성공률이 증가합니다!]
[깊은 신뢰도로 인해 인물 퀘스트 ‘호랑이 힘이 솟아나요’가 전우 퀘스트로 진화했습니다! 전우 퀘스트 ‘호랑이와 함께 춤을’로 진화하였습니다]
상태창은 새로운 길을 보여 주었다.
그렇다면 할 건 한 가지.
강현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포기만 안 하면 된다는 거 아냐?’
포기? 그거 뭔데? 어떻게 하는 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