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화 복구
치열한 싸움이었다.
아니.
‘치열한 싸움을 구경했었지.’
서윤진 대위가 자기 생각을 정정하며 씁쓸한 미소를 머금었다.
분명 커다란 위기였다.
저 깊은 싱크홀에 빠졌고 서윤진 대위 자신도 처음 보는 괴물을 만났다.
도플갱어 왕.
상대의 영혼을 파괴하고 잡아먹는 끔찍한 괴물.
놈이 만들어 낸 도플갱어들이 1분대와 강현의 모습을 복사하여 달려드는 끔찍한 풍경.
결국 이겨 냈으나 아쉬움이 남았다.
‘멋지게 싸우고 싶었는데.’
서윤진도 위기를 맞아 호쾌하게 앞장서고 싶었다.
중대장으로서 또한 헌터의 일원으로서 중대원들을 위협하는 위기를 멋지게 이겨 내 보이고 싶었다.
그러나.
‘요즘은 계속 끌려다니기만 하는 기분이야.’
서윤진이 깊이 한숨을 내쉬었다.
전으로 돌아가자면 데론, 최근에는 할아버지 실종, 그리고 오늘까지.
항상 앞장서고 주도적이었던 그녀답지 않은 모습들.
‘중대장으로서 실격이야.’
방금까진 탈출했다는 기쁨에 즐거워했지만 결국 자신이 한 일이 없음을 깨닫고선 입술을 꾸욱 깨물었다.
‘강현이에게만 의지해서는 안 돼.’
서윤진이 다시 한번 자신 또한 강해질 것을 다짐했다.
예전엔 자신이 강현을 키우는 입장이었다면 오늘 싸움에선 강현의 뒷모습을 지켜만 봤던 입장.
어느새 강현이 자신을 추월한 것 같아 기쁘면서도 아쉬웠다.
‘좀 더 같이하고 싶으니까.’
서윤진 대위가 슬쩍 강현의 옆얼굴을 쳐다보았고.
그의 날카로운 콧대를 보며 잠시 넋을 놓았다.
얘는 대체 어디서 온 괴물일까?
어떻게 이렇게 끊임없이 강해지는 걸까?
서윤진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을 속으로 삼킬 때.
“윤진아!”
“윤진 아가씨!”
싱크홀 주변.
서윤진이 사라졌다는 소식에 기다리고 있던 산군 서대호와 한진명이 그녀를 발견하고는 다급하게 뛰어왔고.
“최 장군!”
“최 참모총장!”
마찬가지로 강현을 기다리던 선설민과 강준진도 급히 달려왔다.
그런데 그를 부르는 호칭이 좀 이상한 게 흠이라면 흠.
그들이 시끄럽게 강현과 서윤진의 이름을 외치는 동안에도.
“…….”
강현은 말 한마디, 표정 변화 하나 없었다.
마치 어딘가에 잠시 넋을 두고 온 듯한 표정.
“움직이면 안 됩니다.”
“도망칠 기회도 안 주네.”
“어쩌면 지금 여기가 어둠 속보다 더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저기 저분이 산군이시거든요. 함부로 움직이지 마십쇼.”
“살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1분대원들도 수감자들을 상대하느라 정신없는 상태.
서윤진 대위가 아무래도 이상한 강현의 눈치를 살피다가.
“강현아?”
그의 어깨를 잡는 순간.
와락!
강현이 서윤진 대위를 끌어안았다.
꾸우욱, 그녀를 끌어안는 강현의 강한 힘.
처음엔 서윤진이 그를 밀어내려다.
“반드시, 반드시.”
그의 중얼거림을 듣고는 몸에 힘을 빼며 그대로 안겼다.
그리고 손을 들어 강현의 넓은 등을 천천히 쓰다듬어 주었다.
모른다.
왜 갑자기 자신을 껴안고 알 수 없는 소리를 하는지.
그러나 느껴졌다.
“옆에 같이 있을게. 괜찮아, 괜찮아.”
강현의 목소리에 서려 있는 고통과 결심이.
지금껏 항상 앞에 있기에 꿋꿋이 버텼기에 당연하다 생각했건만.
그 또한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사람.
서윤진이 조금 전에는 막연하게 생각했던 자신의 결심을 구체화했다.
‘더, 더욱 강해져야 해. 어떻게서든!’
그리고 그녀는 방법을 정확히 알고 있다.
광폭화 제어.
서윤진의 가장 큰 약점이자 가장 큰 문제.
그녀가 앞으로의 계획을 생각하며 강현의 등을 어루만지던 중.
‘그런데 등 근육이 많이 좋아졌네.’
문득, 강현의 옹골찬 근육에 잠시 놀랐다.
물론.
“저, 저게 무슨 풍경이냐?”
“그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녀와 강현의 포옹 장면을 발견한 산군 서대호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고.
한진명이 주군의 옆에 서서 멍하니 중얼거렸다.
“우리 딸도 언젠간…….”
그들이 다른 남자와 포옹하고 있는 손녀와 이제 성인이 될 딸을 생각하며 여러 감정을 느끼고 있을 때.
“진행시켜.”
“서윤진 장군, 최강현 장군 맺어 주기 프로젝트 실행하겠습니다.”
강준진 준장과 선설민 중령은 좀 다른 미래를 꿈꿨다.
서윤진 또한 강현만큼 군에서 촉망받는 인물.
저 둘이 군을 같이 이끌어 준다면?
“특임대의 전성기가 시작될지도 모르는 일이지.”
“그 전성기 반드시 이루어 내겠습니다!”
그때까지도 서윤진을 안고 있던 강현이 천천히 정신 차렸다.
* * *
방금까지 그가 보았던 풍경.
어머니가 강현을 보며 현명한 질문이라는 말을 남긴 후.
환하게 번지는 빛 속에서 떠오른 알림.
[퀘스트 성공 추가 보상으로 새로운 기능 검탑 꾸미기를 개방합니다!]
[당신이 소유한 도플갱어 숫자 99마리, 이들을 사용해 폐허가 된 탑을 복원하시겠습니까?]
떠오른 알림에 강현이 잠시 망설였다.
아무리 이젠 도플갱어라지만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의 몸.
함부로 사용하길 망설일 때.
“그들이 원해서 남긴 몸이란다. 그러니 망설이지 않아도 돼.”
어머니 정수연이 그의 앞에서 미소를 지으며 강현을 응원했고.
“네. 받은 만큼 꼭 보답할게요.”
강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들의 뜻을 받아들였다.
[당신에게 귀속된 도플갱어 99마리 전부를 사용합니다!]
[도플갱어 10마리를 사용하여 무너진 외관을 수복합니다. 도플갱어 30마리를 사용하여 각 층을 복구합니다! 도플갱어 20마리를 사용하여 탑의 높이를 더욱 높입니다!]
강현이 무언가를 명령하기도 전에 본래 서재원을 따랐던 이들이 남긴 도플갱어의 숫자가 줄어들며 탑 곳곳이 변해 갔다.
도플갱어들이 낡고 오래되어 보이는 탑에 달라붙더니.
스멀스멀 녹아들었고.
거기서부터 탑 곳곳이 수복되고 깨끗하게 변하길 잠시.
“본래는 이런 모습이었겠구나.”
“그러게 말입니다.”
이어서 생기는 각 층과 점점 덩치를 키워 가는 탑을 보며 강현과 검성이 감탄했다.
분명 짓다가 만, 버려진 탑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렇게 변하는 모습을 보니 꽤 정교하게 만들어진 모습.
둘의 감탄이 끝나기도 전.
“강현아.”
어머니가 강현을 불렀고.
그녀가 자랑스러움 대부분, 서글픔 조금이 담긴 얼굴로 장성한 아들을 바라보았다.
“이 탑은 너의 꿈, 그리고 꿈을 빼앗긴 사람들의 꿈, 또 앞으로 살아갈 사람들의 꿈을 담을 그릇이란다.”
강현이 했던 질문에 대한 답.
“꿈을 담는 곳 말입니까.”
“그래, 꿈이기도 하고 목표이기도 하며 의지이기도 하지. 이 검탑은 그런 곳이야. 네가 모은, 수집한 모든 것이 담길 곳. 너를 응원하는 사람들의 응원이 담길 그릇.”
어머니의 추상적인 말에 강현이 다시 질문했다.
“그럼 이 그릇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 건가요?”
아들의 질문에 어머니가 잠시 미소 짓고는 고개를 흔들었다.
“글쎄 그 답은 검탑주가 된 우리 아들이 직접 찾아야겠지?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잠시 말을 고르던 그녀가 자신이 전달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정보를 아들에게 남겼다.
“처음 생각했던 질문에 답이 될 수도 있단다.”
“……!”
강현이 그녀의 마지막 답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처음 생각했던 질문.
‘어둠, 놈의 정체와 죽일 방법.’
검탑이 놈의 정체에 대한 힌트는 아닐 테니.
‘놈에게 위협이 될 만한 무기라는 뜻.’
강현이 금세 뜻을 깨닫고는 고개를 끄덕였고.
어머니가 자신이 전할 수 있는 정보를 모두 전한 뒤.
“이제 헤어져야 할 때로구나.”
아쉬운 표정으로 강현의 얼굴을 아주 천천히 쓰다듬었다.
마치 아들의 얼굴을 촉감으로나마 기억하려는 듯한 움직임.
그리고 강현은 어머니의 얼굴을 기억에 박아 넣으려는 듯 빤히 바라보았다.
지금이 지나면 언제 만날지 모른다.
강현이 터져 나오려는 울음을 억지로 참아가며 어머니의 얼굴을 바라볼 때.
[히든 조건 특혜를 발동. 나머지 39마리 도플갱어를 사용하여 정수연의 의식 일부를 탑에 이식합니다]
벅차오르는 둘의 감정과는 다르게 무감정한 알림창이 어머니의 얼굴을 가렸다.
차가운 상태창 뒤, 서서히 옅어지는 어머니의 얼굴.
강현이 모든 걸 제쳐 두고 어머니를 와락 끌어안았고.
“구하러 갈게요. 반드시, 반드시!”
언젠가, 아니 반드시 만날 어머니와의 재회를 결심했다.
그리고 그가 눈을 떴을 땐.
“강현아, 이젠 좀 괜찮니?”
서윤진 대위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강현이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는 황급히 서윤진을 품속에서 놓으려 할 때.
이번엔 서윤진 대위가 강현을 꼬옥 끌어안았다.
“나도 네가 하려는 일을 도울 수 있도록 힘낼게. 그러니까 같이 힘내자.”
서윤진이 응원을 속살거리고는 그를 놓아주었고.
강현도 그녀를 마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전우 서윤진이 당신과 함께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전우애가 상승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당신을 믿고 함께할 것입니다!]
[서윤진을 묶고 있던 억압의 사슬이 더욱 느슨해졌습니다!]
그렇게 둘이 더욱 돈독한 전우애를 쌓아 나갈 때.
“크흠, 크흐흐흠!”
“어흠, 어허험!”
둘의 모습을 지켜보다 인내심이 바닥난 산군 서대호가 고함인지 헛기침인지 모를 소리를 내고서야.
“대위 서윤진!”
“상병 최강현!”
그들의 존재를 알아챘다.
“하, 할아버지! 대장님!”
서윤진이 화들짝 놀란 것에 반해 강현은 오히려 강준진 준장과 선설민 중령을 보며 한 가지 사실을 떠올렸다.
‘김준혁 이병.’
억울하게 살해당하고 누명까지 쓴 젊은 군인.
“충성. 대위 서윤진 및 1분대 무사히 복귀했습니다. 사고 와중 보고드릴 중요한 정보가 몇 가지 있습니다. 지금 보고드립니까?”
정신을 차린 서윤진이 강준진을 향해 먼저 복귀를 신고했고.
“아니야. 여기서 할 만한 이야기는 아닌 것 같군.”
모두의 얼굴을 살피던 강준진이 고개를 흔들었다.
보고 받은 것보다 적은 사람의 숫자를 확인하고 안 좋은 일이 있었음을 예상했기 때문.
“우선 의료 텐트에 가서 기본적인 부상이랑 몸 상태 검사받고 이후 이야기하도록 하지.”
강준진 준장이 그들을 이끌어 사람들의 관심과 기자들의 눈을 피하려 움직였고.
그를 따라 서윤진 대위와 1분대가 움직이던 중.
“강현아?”
“최강현 이병?”
순간 못 박힌 듯 멈춰 선 강현을 보고는 다들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강현이 잠시 숨을 깊게 들이쉬고는 한 가지를 부탁했다.
“저기 서 계신 분들… 따로 만나게 해 주시겠습니까?”
강현의 갑작스러운 부탁에 서윤진과 1분대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강현이 가리킨 쪽을 보았다.
모여서 웅성거리고 있는 사람들 앞줄.
“여보, 괜찮아. 아직, 아직 모르잖아. 잠깐만, 잠깐만 기다려 보자.”
몸을 떨고 있는 여인과 그를 위로하고 있는 남편.
허름한 복장에 하얗게 센 머리.
강현의 눈길이 그쪽에 못 박힌 듯 고정되었고.
“김준혁 이병의 부모님입니다.”
그의 말에 서윤진과 1분대 전체가 숨을 들이켰다.
아니나 다를까.
“준혁이 분명 살아 있을 거야. 그러니까 좀만 기다려 봐. 내가 가서 물어볼게.”
김준혁 이병의 아버지로 보이는 남자가 수감자들 쪽으로 다가가 얼굴을 확인하려는 때.
“출입 금지 구역입니다.”
앞을 막고 있던 특임대 병사가 그를 막아섰고.
“아들, 아들이 저기 있어요.”
아버지라는 말에 앞을 막았던 병사가 약해진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아, 특임대 소속이면 제가 확인해서 알려 드리겠습니다. 자녀분 성함이?”
전우의 아버지라면 그 정돈 해 줄 수 있단 생각에 특임대원이 아들의 이름을 물었고.
“…아닙니다. 아니에요.”
아버지가 고개를 푹 수그리며 뒤로 물러나려는 순간.
“들어오시라 해.”
강준진 준장이 나서 진입을 허용했다.
“두 분 다 들어오시죠.”
“여, 여보 들어오래. 어서 와요.”
남편이 황급히 부인을 데리고 바리케이드 안으로 들어왔다.
따로 마련된 의료소 텐트.
막 싱크홀에서 나온 수감자들과 분대원들 모두가 의료 검사를 받아야 하건만.
“주, 준혁인 어디에 있나요? 혹시 얼굴이라도 볼 수 있을까요?”
손을 벌벌 떨며 아들을 찾는 부모님을 보곤 아무 말 하지 못했다.
수감자와 1분대를 모두 더해 봤자 스물도 안 되는 숫자.
분명 알 거다.
이곳엔 김준혁 이병의 얼굴이 없다는 걸.
“준혁아, 아빠 왔다. 여기 아빠 왔어.”
그러나 아버지는 사실을 부정하듯 아들의 이름을 애타게 부를 뿐.
그때.
“…….”
어머니가 아버지의 옷깃을 잡고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들은 없다.
죽었다.
이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살인마로 살다가 이렇게 허무하게 죽어 버린 아들의 삶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들이 마지막까지 잡고 있던 희망의 끈을 놓으려 할 때.
“장건철 병장님.”
강현이 장건철 병장을 부르자.
장건철이 지금껏 밧줄에 꽁꽁 묶어 놨던 반투명한 물체를 끌고 왔다.
강현이 유일하게 남겨 놓은 도플갱어 하나.
바로.
“김준혁 이병의 모습으로 위장, 살인사건을 일으킨 도플갱어입니다.”
“네……?”
“뭐라고?”
“도플갱어?”
강현의 믿을 수 없는 말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의 표정이 멍해졌고.
김준혁 이병 부모님의 얼굴엔 황당하단 기색보다 먼저.
“크윽, 크흐흑! 설마 했는데… 흐흑.”
“…….”
눈물이 차올랐다.
아버지가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으며 울었고.
어머니는 뻐끔뻐끔 입을 크게 벌리며 고개를 흔들었다.
아마.
‘느꼈던 거구나.’
아들이 아들이 아님을 느꼈던 모양.
그를 어릴 적부터 애지중지 키웠을 테니 남들은 속아도 부모님만은 알았겠지.
그들의 의심이 확신이 된 순간.
강현이 도플갱어 위에 손을 올렸고.
[김준혁 이병이 남긴 기억 조각을 도플갱어에 사용합니다]
[김준혁 이병의 모습이 잠시 재현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