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화 경고
몸을 휘감은 그림자와 그 속에서 타오르는 백염.
흑백의 상반된 기운의 조화 속에서 강현이 방아쇠를 당겼고.
두두두두두!
그의 총구에서 새하얀 백염탄들이 폭죽 터지듯 뿜어져 나왔다.
그런데.
“크흐흐흐! 어디다 쏘는 거냐! 그거로 위에 있는 인간들이라도 부를 셈이냐?”
강현의 총구가 향한 곳은 도플갱어들이 아닌 바로 공중.
무너져 내린 싱크홀, 어둠만이 존재하는 하늘 위로 백염탄이 하릴없이 퍼져 나갔다.
상대가 비웃든 말든 강현은 그저 묵묵히 하늘로 총알을 뿌려 댈 뿐.
철컥, 두두두두!
가진 총알을 모두 비워 내려는 듯 탄이 다 떨어지면 탄알집을 교체해 가며 계속해서 하늘로 방아쇠를 당겼다.
물론 그가 그러면 그럴수록.
“하하핫! 그러면 누가 오기라도 하는 거냐? 아, 아들을 잃은 그 비루한 늙은 호랑이라도 올까 기대하는 건가? 아니면 이렇게 정신을 잃었으니 자신만이라도 살려 달라는 신호인가?”
도플갱어 왕이 입을 더욱 크게 벌리며 웃었다.
그가 보기엔 강현의 행동이 공포로 인해 벌이는 헛짓거리로 보였기 때문.
“그래, 바로 그거다. 너희 인간들은 나약하다! 내가 먹은 놈들 모두가 그랬지!”
도플갱어의 왕이 자신에게 먹혔던 자들을 떠올리며 입맛을 다셨다.
“놈들도 마찬가지. 자신이 믿었던 게 부서지면 미친 짓을 하곤 했다.”
놈이 도플갱어의 왕이라 불린 이유.
복사하는 능력이 특별히 강하고 괴물 같아서 그런 게 아니었다.
“그 공포와 절망! 바스러진 신념이 가장 달콤한 건데 말이야!”
가장 악랄하기에.
상대의 정신을 무너뜨리고 그 무너진 틈을 파고 들어가 상대의 몸을 지배하고 영혼마저 잡아먹는 도플갱어.
“이번에 먹을 절망은 가장 맛있겠구나!”
놈이 자신의 승리를 확신한 것인지 입을 쩍 벌리더니.
우르르르르.
토사물을 쏟아 내듯 사람들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지금껏 도플갱어의 왕이 먹어 왔던 자들의 영혼.
이내 쏟아져 나온 영혼들이 사방 하늘로 뻗쳤고.
도플갱어 왕이 마치 거대한 나무와 같은 본모습을 드러냈다.
일반적인 나무와 다른 점이라면 가지 끝에 달린 게 과실이 아닌 그가 잡아먹은 인간들의 영혼이라는 것.
“너도… 같이 하자…….”
“우리와 같이… 고통을…….”
“죽고… 싶어.”
희생자들이 고통 가득한 손을 뻗어 강현을 붙잡고자 했고.
“삐이이익!”
그 모습을 본 구찌가 날카로운 고함을 질러 댔다.
[펫 구찌가 자신을 위협했던 적을 만났습니다!]
구찌의 기억 속에서 본 무형의 힘.
그건 바로.
“너도, 너도 같이 고통을 받자.”
도플갱어의 왕이 잡아먹은 희생자들의 손.
그때 놓친 구찌를 보자 반가웠는지 수백의 팔이 흔들거렸다.
역하고 끔찍한 광경.
곧.
철퍽.
도플갱어 왕이 완전히 빠져나간 오성탁 준위의 시체가 땅 위로 철퍼덕 엎어졌고 흐물흐물 녹아내리더니.
“우으으으…….”
도플갱어가 되어 일어섰다.
아직 능력이 완전하지 않았지만.
놈이 강현의 모습을 꾸물꾸물 따라 했다.
“너, 너 때문이야. 아니 나 때문이야.”
원한은 남아 있는지 강현을 탓하며 꿈틀거렸고.
어설프게 흉내 낸 강현의 얼굴이 주르륵 녹아내렸다.
반면 도플갱어의 왕이 뻗은 가지 수백 개 중 하나가 분리되더니.
“끄아아아악!”
그 위에 새로운 영혼 하나가 비참하게 피어났다.
한눈에 보기에도, 듣기에도 오성탁 준위.
그러나 그에게선 이전 볼 수 있던 카리스마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원망과 고통, 괴로움, 공포, 절망 등
모든 악하고 부정적인 기운의 집합체.
이게 놈의 생존 방식.
인간의 정신을 무너뜨리고 그 속을 파고들어 영혼과 부정적인 감정을 먹고 자라는 괴물.
그리고 영혼이 비어 버린 껍질은 도플갱어로 만든다.
그런데 남은 궁금증 하나.
“서재원 선배도 그런 고통을 당한 거냐?.”
“…….”
강현의 물음에 놈이 가지를 흔들며 몸을 떨었다.
“내가 비밀 하나 이야기해 줄까?”
“…….”
“서재원이 구한 건 진짜 사람들이 아닌… 도플갱어들이었다.”
“뭐?”
“하하하하! 놈이 구하려던 건 내가 먹고 버린 껍데기들뿐이었다고! 놈은 도플갱어들을 구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 거야! 그것도 모르고 놈은, 놈은!”
크크크큭!
비열한 웃음이 놈에게서 터져 나왔고.
흐으으으으.
가지 곳곳에서 비통한 울음이 흘러나왔다.
서재원이 구하려 했던 자들의 영혼.
그들이 서재원을 생각하며 울었다.
“닥쳐!”
끄으으윽!
곧 놈의 호통에 비통한 울음을 흘리던 영혼들이 고통에 몸부림쳤고.
이내 다시 강현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서재원 선배를 따르던 사람들까지, 선배가 구하려던 사람들까지 다 먹은 거냐?”
질문이 아닌 확신.
“그리고 선배를 잡아먹고 또 그렇게 만들었겠지. 죽지도 못하는 검귀로!”
강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놈이 황홀하게 미소 지었다.
“그래, 잘 기억해 둬라. 네놈도 그렇게 될 거니까. 아니 더 끔찍하게 만들 테니까!”
이제 떠들기도 지긋지긋해졌는지 놈이 강현을 향해 달려들려 할 때.
“유언은 그게 끝이냐?”
강현이 살기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고.
“뭐?”
황당한 소리에 놈이 잠시 멈췄다.
지금 누가 누굴 죽인다고?
“크크큭, 저 별빛보다도 못한 것들로 날 죽인다고?”
도플갱어 왕이 하늘을 보며 한껏 비웃었다.
자신의 가지 위.
아직도 반짝거리며 머물러 있는 백염탄들.
마치 검은 하늘 뿌려진 은하수와 같이 빽빽이 박혀 있는 별빛을 본.
“푸하하하하!”
“죽인데, 죽인데!”
“고작 저걸로?”
도플갱어들이 덩달아 강현을 비웃었다.
그래 마음껏 웃어라.
그때까지도 몸에 백염을 두른 채 총알을 하늘에 뿌려 대던 강현의 총이.
철컥, 철컥.
갖고 있던 모든 탄알을 뱉어 냈는지 잠잠해졌다.
가져온 탄을 모두 허공에 쏘아 냈다.
낭비한 것처럼 보이겠지.
그러나.
[이성민 대여 스킬 곡사와 즉각 조치, 연구자의 눈, 타깃 설정을 결합합니다! 각 스킬의 효과를 연계하여 발동합니다!]
강현은 총알을 낭비할 생각 따위 없었다.
남을 부르기 위한 것도, 저 미약한 빛으로 어둠을 몰아내려 하는 것도 아닌.
[새로운 연계 스킬 만천화우를 획득했습니다!]
“쏟아져라!”
바로 놈들을 죽이기 위한 스킬!
강현이 장엄하게 손을 내리자.
하늘에 떠올라 있던 수백의 백염탄이.
후두두두두두두!
동시에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정제된 마나와 백염을 잔뜩 머금어 이글이글 타오르는 총알들이 일제히 설정된 타깃을 향해 내달렸고.
강현을 비웃던 도플갱어들과 그들의 왕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파파파파파파파팡!
하늘을 가득 메운 불의 비가 놈들을 때리며 담고 있던 마나를 퍼뜨렸고.
백염이 그 마나를 타고 다시 한번 터졌다.
작은 폭발들이 연이어 하얗게 타오르며 도플갱어들을 휩쓸었다.
끊임없이 울리는 폭발 소리와 바글바글 끓는 백염과 마나!
마치 기름에 튀기듯 만천화우 속에 잠긴 도플갱어들이.
“끄아아아악!”
“아악! 아아악!”
“으으윽! 이 새끼가!”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지르며 녹아내렸다.
그들이 겹겹이 뻗었던 짙은 어둠도.
백광의 번쩍이는 명멸에 서서히 녹아내리기 시작.
[상대의 그림자 농도가 옅어졌습니다! 당신의 그림자가 다시 상대의 그림자 조각을 흡수합니다!]
[그림자 조각 완전 회복! 약해진 적의 그림자를 빠른 속도로 빨아들입니다!]
위에선 백염이 쏟아져 내린다면 아래에선 강현의 그림자가 도플갱어들의 어둠을 잡아먹었다.
몸에 두르고 있던 어둠을 빼앗긴 놈들이 백염에 더 큰 타격을 입었고.
이내.
[상대가 갖고 있던 그림자 조각을 완전히 흡수하였습니다!]
[도플갱어 대부분을 무력화하였습니다!]
도플갱어들이 모든 능력을 잃고 본래의 찰흙 같은 모습으로 변했다.
“안 돼, 안 돼!”
자신이 만든 도플갱어들이 무력하게 사라지는 모습을 본 도플갱어의 왕이 비명을 질렀다.
“이럴 수는 없다! 이럴 수는 없어! 넌 여기서 죽어야 해! 내 새로운 몸이 되어야 한단 말이다!”
놈이 마지막 발악을 하며 무너져 내리던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퍼퍼퍼펑!
끊임없이 쏟아지는 백염탄에 결국 무릎을 꿇었다.
“으으윽! 으윽! 내가 내가 대주교가 되려 했단 말이다! 내가 대주교가 돼야 해!”
점점 흩어지는 자신의 몸을 보면서도 끝까지 욕심을 놓지 못하는 놈이 강현을 노려보았고.
“아니, 넌 무엇도 될 수 없다.”
강현이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으로 상대를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그냥 껍데기만을 따라 하는 도플갱어일 뿐이니까.”
그가 상대의 존재 자체를 부정한 후.
“우선 널 죽인 다음, 서재원 선배를 그렇게 만든 놈들을 찾아서 죽이고 또 죽일 거다.”
결심하듯 살기를 뿜어냈다.
서재원을 이렇게 만든 놈들이자 더 나아가 검성 이석천을 끌어들여 게이트 안에 가둔 놈들.
그리고 궁극적으로.
강현의 부모님을 앗아 간.
자신과 할머니, 서연이의 일상을 앗아 간 놈들을 찾아낼 거다.
강현은 놈들을 용서할 생각도 두고 볼 생각도 없었다.
“부모님을 찾고 난 이후에도! 너희가 남아 있다면 또 찾아가 죽일 거다!”
자신의 부모님뿐만이 아니다.
회색 숲에서 만났던 이미자 경사, 최봉식 경장 그리고 그들의 아들 최상익 하사.
그 외에도 고통받았고, 날마다 불안해하며 두려움에 떠는 사람들의 일상을 지키기 위해.
“어둠! 너를 비롯한 모두를 없앨 거다!”
강현의 마지막 고함과 그 안에 담긴 결의가 싱크홀 내부를 가득 메웠다.
그리고.
[중급 그림자 은신술을 발동합니다. 그림자 속에 완전히 녹아듭니다]
[이전에 획득한 그림자 사냥꾼 호칭 효과로 은신술 효과가 30% 증가합니다!]
강현이 이전 데론을 죽이고 획득했던 스킬을 발동.
자신이 펼쳐 놓은 그림자 속으로 녹아들었다.
어둠 속을 내달린 그가 불쑥 솟아난 곳은.
끝까지 더러운 욕망을 포기하지 못한 채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 대는 도플갱어 왕의 앞.
그림자 속에서 뛰어오른 그가 어둠을 흩뿌리며 날아올랐고.
놈의 머리 위에 올라섰다.
“크아아아!”
마지막 기회라 느낀 놈이 어떻게든 강현을 잡아먹기 위해 자신의 뿌리를 뻗어 그를 낚아채려 했으나.
푸화학!
강현이 몸에서 찬란한 백색 불꽃을 뿜어내어 놈의 뿌리를 태워 버렸다.
[이전 구찌가 겪은 상대입니다. 백염으로 상대의 능력을 무력화합니다!]
다음으론 강현의 발밑에서 일렁이던 그림자가 넓게 퍼지며 놈을 덮었고.
[그림자 얽기 스킬을 발동! 상대의 몸을 속박합니다!]
[하급 포박술 스킬이 이를 보조합니다!]
[그림자 얽기 스킬과 하급 포박술 스킬 연계, 새로운 하위 스킬 그림자 포박술을 획득하셨습니다!]
기존 스킬과 결합하여 도플갱어 왕을 꽁꽁 묶어 버렸다.
“으으으! 으윽!”
놈이 몸을 이리저리 뒤틀며 발악해 봤으나.
백염탄에 의해 자신의 권능은 사라졌고 강현에게 그림자마저 빼앗긴 탓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처음으로 느끼는 무력감.
그리고 공포.
도플갱어 왕이라 불리며 다른 인간들을 괴롭히고 그들의 정신을 무너뜨리는 걸 즐겼던 놈이지만.
정작 자신이 이런 상황에 부닥치자 하나도 즐겁지 않았다.
거기다.
“어때? 아무 능력 없는 껍데기가 된 기분이.”
놈의 영혼을 찌르는 강현의 한마디.
[언변, 카리스마, 위협 스킬을 발동. 상대의 정신을 뒤흔듭니다]
[카리스마 하위 스킬, 위협 스킬 레벨이 일정 수준에 달해 새로운 하위 스킬 굴복을 획득했습니다!]
[당신에게 패배한 상대의 정신을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굴복 스킬을 발동 상대의 정신을 허물어뜨립니다!]
강현의 말에 놈이 괴로움에 몸부림쳤다.
지금껏 남들을 괴롭히는 즐거움에 살았다.
남의 절망과 고뇌를 빨아먹으며 커졌다.
그런데 처음 겪은 절망과 고뇌는.
“괴로워! 괴로워어! 제발, 제발 용서해 줘! 살려 줘!”
견딜 수 없이 아픈 것이었다.
그러나 놈의 구걸에도.
강현은 봐줄 생각이 없었고.
손을 뻗어 놈의 머리통을 쥐자.
치이이이익.
백염에 닿은 놈의 얼굴이 타오르며 녹아내렸다.
그 고통에 다시 한번 몸부림치는 도플갱어 왕.
아니.
“이젠 왕도 뭣도 아니군. 그냥 더러운 진흙일 뿐이야.”
[상대의 정신이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강현의 말에 무너져 버린 놈이 이젠 구걸마저 멈췄고.
강현이 권총을 꺼내 놈의 머리통에 겨눴다.
죽음 앞에 놓였건만.
“우으. 우으으으.”
도플갱어 왕이라 불리던 거대한 진흙 덩어리는 모든 이지를 상실한 채 깊은 신음만을 흘릴 뿐.
강현이 상대의 눈을 마주하며 입을 열었다.
“보고 있는 거 안다.”
이 공허한 동공 뒤.
강현과 놈의 싸움을 지켜봤을 누군가들.
어둠, 놈을 따르는 괴물들, 괴물이 되려는 인간들에게 날리는 선전 포고.
“너희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할 거다. 영원히.”
강현이 그들을 향해 엄중한 경고를 날린 뒤.
빠앙, 빠앙, 빠앙!
도플갱어 왕의 얼굴을 향해 연이어 권총을 발사했고.
권총탄이 모두 떨어지고 나서야 사격을 멈췄다.
그리곤 강현이 죽은 놈의 몸에서 거칠게 경험치를 빨아들였다.
[S급 도플갱어 왕을 무력화했습니다! 새로운 고물 S급 도플갱어 왕의 시체를 수집합니다!]
[도플갱어 왕의 능력 뻗치는 나뭇가지를 획득했습니다!]
[이를 당신이 획득한 공간, 생명의 숲에 이식합니다!]
싸움은 끝났고 마침내 승리했다.
그리고 그때.
[도플갱어 왕에게 잡혔던 영혼들이 풀려납니다!]
[주인을 잃은 도플갱어들이 힘을 잃습니다]
[도플갱어 왕이 만든 함정이 힘을 잃고 무너집니다!]
꾸르르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