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화 아, 나 이런 거 즐기네

강현의 무거운 목소리가 떨어지고 난 뒤.

“목표가 누구라고?”

“최강현 상병님?”

“강현아, 그게 무슨 소리야?”

모두가 잠시 의아한 목소리를 내었다.

이 거대한 싱크홀까지 만들어 가며 강현을 노린다는 말에 다들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러나.

“대체… 누가?”

“어떤 놈이 널 노린다는 거냐?”

곧 그들의 얼굴에 분노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서윤진도 장건철도 주변의 1분대원들도.

강현 때문에 위기에 휘말렸단 사실보다는 지금 누군가 소중한 전우를 노린다는 사실에 더욱 분노했다.

“어떤 놈인지는 몰라도 우리가 옆에 있으니까 걱정 마.”

“그래, 우리는 한 분대다. 무슨 일이 있어도 분대원을 버리지, 아니 분대장을 버리지 않아.”

“최강현 상병님 저희만 믿어 주십시오!”

강현을 향한 신뢰와 응원.

그들을 보며 강현이 작게 미소 지었다.

언제나 모든 어려움을 홀로 감당해야 한다는 부담감.

쓰러지지 않고 오롯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예전의 강현이라면 남들을 위기에 빠뜨렸다는 생각에 힘겨웠을 거다.

하지만 이젠 다르다.

‘그래, 혼자가 아니야.’

강현은 혼자가 아니었고 그를 지지해 주는 전우들이 주변에 있다.

그가 자신을 보며 굳건한 믿음을 보내는 이들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반드시, 반드시 모두 살아 나가게 만들겠습니다.”

그래, 누구도 포기하지 않으리라.

[메인 퀘스트 어둠을 피하는 방법을 시작합니다]

[성공 조건 – 이 깊은 심연에서 빠져나가세요. 혼자서라도]

[성공 시 – 검탑 사용권 획득 및 부모님 정보 획득]

[실패 시 – 이전 획득한 검탑 소유권 상실 및 이석천 저주 강화]

강현이 잠시 새롭게 떠오른 퀘스트 성공 조건을 확인.

[명심하십시오. 당신이 살아야 남들을 구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비정하고 때로는… 이기적이어야 합니다]

상태창의 조언을 보며 깊이 숨을 내쉬었다.

그래, 지금껏 상태창이 해 준 조언은 단 한 번도 거짓인 적이 없었다.

처음 능력을 얻고 고블린을 상대할 때부터 계속 강현을 위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상태창.

그러나 이번만큼은.

‘네가 틀렸어.’

강현이 고개를 저었다.

포기하지 않으리라.

지금 자신을 보며 굳건하게 미소 짓는 이들을 두고 홀로 나간다고?

‘웃기는 소리!’

그런 생존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강현이 결심을 마치고선 목소리를 높였다.

“우선 1분대 모두 버스에서 남은 무기 꺼내겠습니다!”

강현이 기운을 회복하자 서윤진과 1분대도 금세 힘을 내며 버스 트렁크에 실어 둔 방패와 무기들을 꺼냈다.

“우선 주변 경계 확실히 하면서 점차 순찰하기로 하자.”

서윤진의 명령에 1분대원들이 서서히 주변을 수색하기 시작.

그러나 새까만 땅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그때가 생각나네.”

“회색 숲 말입니까?”

“그래.”

김대영과 장만수가 이전 회색 숲을 떠올리며 몸을 떨었다.

“근데 어째 이번이 더 끔찍한 거 같다.”

김대영이 잠시 우울한 소리를 뱉어 내고는 땅을 무기로 쿡쿡 찔러보았으나.

“그냥 땅이랑 어둠밖에는 없네.”

“그러게 말입니다.”

그러다가 문득.

“야, 목교야. 혼자 그렇게 빠르게 나가지 말라니까.”

김대영에 떨어진 곳에서 땅을 짚어 보고 있는 오목교를 불렀다.

분명 방금까지 주변에서 같이 수색하던 놈이 어느새 저 앞에 있단 말인가.

“야! 오목교! 이쪽이랑 보폭 맞추라니까!”

원래 한 가지를 시작하면 정신없이 하는 놈인 걸 알기에 혹시라도 홀로 떨어질까 걱정되어 다시 후임을 불렀다.

그러나 오목교는 어지간히 수색에 집중하고 있는지 김대영의 부름에도 묵묵부답.

김대영이 결국 참지 못하고 버럭 목소리를 높였다.

“오목교! 새꺄! 보폭 맞추라고!”

그가 오목교를 향해 화를 벌컥 낼 때.

“이병 오목교! 부르셨습니까?”

“…이병 오목교! 부르셨습니까?”

같은 목소리가 연이어 울렸고.

“야, 이 새끼야. 자꾸 장난칠래?”

김대영이 슬슬 진짜 열받기 시작할 때.

“김대영 상병님, 김대영 상병님.”

장만수 상병이 그의 어깨를 뒤흔들었다.

그의 다급한 부름에 김대영이.

“아, 왜!”

짜증을 내며 돌아보자.

“목교 저기 있지 말입니다.”

장만수가 떨리는 손으로 근처를 가리켰다.

그들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

“잘못 들었습니다? 저 계속 보폭 맞춰서 수색했습니다!”

오목교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 있는 모습.

그가 자신을 왜 불렀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둘을 바라보았고.

“잘못 들었습니다? 아, 저 또 앞서 있었습니까? 죄송합니다.”

앞서 있는 오목교는 둘을 보며 죄송한 표정을 지었다.

“어어? 너 뭐야? 이거 뭐야!”

“어어? 너 뭐야? 이거 뭐야!”

이번에는 오목교 일병끼리 서로를 바라보며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마치 거울을 보듯 완전히 같은 모습.

곧.

“아닙니다. 김대영 상병님! 저 목교입니다!”

“아닙니다. 김대영 상병님! 저 목교입니다!”

둘이 자기가 진짜 오목교라고 다가오기 시작했다.

“어어, 오지 마! 일단 오지 마! 이 새끼들아!”

김대영과 장만수가 무기를 치켜들고는 둘을 경계했다.

같은 사람이 둘일 순 없으니 둘 중 하나는 가짜.

“도플갱어다!”

장만수가 방금 보았던 김준혁의 모습을 떠올리고는 급히 외쳤다.

먼저 상황을 전파하는 게 우선.

“전 도플갱어 아닙니다!”

“무슨 소리십니까. 도플갱어 아닙니다!”

둘이 동시에 자신이 진짜 오목교임을 주장했다.

“야, 너! 앞에 있었잖아. 너가 가짜지! 밖에서 다가온 거 아니야?”

“개소리 마! 저 새끼가 가짜입니다!”

둘이 점점 언성을 높일 때.

파앙!

어디선가 총소리가 울렸고.

퍼억!

김대영 장만수와 같은 선상에서 수색하던 오목교의 머리통이 터져 나갔다.

“으아악!”

“목교야!”

물론 김대영과 장만수가 화들짝 놀랐고.

제 머리가 터져 나가는 모습을 목격한 오목교도 같이 놀랐다.

그러나.

“우으으으.”

총에 맞고 쏟아져 나온 건 뻘건 피와 뇌수가 아니라 불투명한 하얀색 액체들.

가까이 있는 게 도플갱어였던 것.

놈이 잠시 몸을 흐물흐물 뒤틀더니.

“적의… 습격입니다… 분대… 집합.”

이번엔 서서히 강현의 모습을 복사하기 시작했다.

방금 터진 머리가 완전히 복구되지 않아 뒤죽박죽 섞인 이목구비.

놈이 어눌한 발음으로 분대원들을 불렀고.

“왜 그런 눈으로…….”

말을 이어 나가려 할 때.

빠앙!

다시금 총소리가 울리더니 놈의 상반신이 완전히 터져 나갔다.

김대영, 장만수, 오목교가 고개를 돌린 방향에는.

“도플갱어 확인.”

강현이 버스 위에서 K-2H를 든 채 총구를 겨누고 있는 모습.

“우선 분대 모두 집합해 주십쇼!”

그의 목소리가 어두운 공터를 울렸고 분대원들이 급히 버스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그, 그러니까. 그러니까. 방금 제가 있었고 최강현 상병님이 제 머리를. 그러니까 사격해서. 터뜨렸는데. 도플갱어였습니다. 어, 어어. 그러니까.”

급히 모인 분대원들 앞에서 오목교가 턱을 덜덜 떨며 횡설수설했다.

아무래도 방금 있었던 일이 어지간히 충격이었던 모양.

그런 그를 보던 강현이 후임의 어깨를 잡았다.

“목교야.”

“이병 오목교.”

“오목교 일병!”

“일병 오목교!”

“정신 차려.”

“알겠습니다! 정신 차리겠습니다!”

순간 자신의 계급마저 헷갈릴 정도로 오목교의 상태는 말이 아니었다.

처음 보는 자신과 같은 괴물의 모습.

그리고 자신과 같은 모습을 한 존재가 죽는 장면.

그를 죽인 게 선임이라는 두려움이 한꺼번에 몰려온 탓.

“네가 죽은 게 아냐. 죽은 건 도플갱어다. 분명히 구분해. 내가 쏜 건 네가 아니라 도플갱어야.”

[언변, 신뢰, 감화, 전파, 불요불굴을 발동합니다. 분대원들의 혼란이 하락합니다]

강현의 말을 듣고서야 오목교가 떨리는 숨을 진정시켰고.

분대원들도 내심 흔들리던 마음을 가라앉혔다.

버스 주변에 내려앉은 침묵.

“우선 수색은 중단하기로 하자. 도플갱어에 대한 면역이 없는 상태로는 혼란만 가중되겠어.”

서윤진 대위가 중대장답게 재빨리 상황을 파악하고는 수색 명령을 취소.

일단 모두 버스 주변에서 대기하기로 했다.

“…괜찮냐?”

“어, 어? 어어. 괜찮아. 이젠 좀 괜찮아.”

동기는 동기인지 이성민이 오목교를 위로할 때.

“…수색은 어려울 거 같지?”

“아무래도 힘들 듯싶습니다.”

강현과 서윤진 대위가 향후 방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위에서 여기까지 내려오는 데 얼마나 걸릴까?”

“…최대한 빨리 움직인다는 가정하에 일주일은 걸리지 않겠습니까?”

“…그렇겠지. 문제는 그때처럼 식량도 물도 없다는 건데. 그렇다고 하염없이 기다릴 수도 없고.”

“구찌도 움직일 수 없는 상태입니다.”

“그래. 아마 도플갱어는 아까 그놈이 끝이 아닐 거 같지?”

“아무래도 적들이 더 있다고 봐야 합니다.”

움직이자니 방금 본 도플갱어가 걸리고, 가만히 있자니 이대로는 말라 죽을 것 같고.

심지어 구찌가 떠나는 순간 그림자가 몰려올 게 뻔하니.

“진퇴양난이라는 말이 딱 맞네.”

“…그렇습니다.”

서윤진 대위의 말대로였다.

강현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항상, 언제나.

‘길은 있었다.’

하늘이 무너져도 구멍은 있다고 강현의 능력은 항상 방법을 제시했다.

그러나.

[연구자의 눈, 하급 길잡이 스킬을 발동합니다!]

[연구자의 눈 레벨이 부족합니다! 경험한 적 없는 현상입니다! 분석할 수 없습니다!]

[하급 길잡이 스킬이 길을 찾지 못했습니다. 스킬을 취소합니다!]

강현의 능력도 당장 뚜렷한 답을 찾아주지 못했다.

모든 게 꽉 막혀 있는 상황.

강현도 답을 내지 못할 때.

“강현아.”

검성 이석천이 그를 불렀다.

서윤진 앞에서 검성과 대화를 나눌 순 없었기에 강현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듣고 있음을 표현했고.

“이 말을 마지막으로 내 말을 믿지 마라.”

갑자기 엉뚱한 말을 꺼냈다.

강현이 이게 무슨 소린가 싶어 미간을 찌푸릴 때.

“흑복에 담긴 능력을 기다려라. 지금껏 네가 우리를 위해 싸웠던 것처럼. 그 안에는 너를 위한 안배가 있다.”

검성이 진지한 얼굴로 말을 맺고는 입을 꾹 다물었다.

미간을 찌푸리며 입술을 깨무는 게 무언가를 참는 모양새.

그러나 도저히 참을 수 없었는지 검성이 다시 입을 열었다.

“수색해라. 이 깊은 곳에 있다간 죽을 거다. 아니 수색하지 마. 아니 수색해! 함정이야! 아니야! 오히려 이게 함정이다!”

그가 고개를 흔들며 떠들어 대길 잠깐.

“아하! 아하하하하!”

크게 웃더니 깊고 깊은 어둠 속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믿어! 믿지마! 믿어! 믿지마!”

곧 그의 목소리마저 깊은 어둠 속으로 녹아 사라진 뒤.

강현이 잠시 눈을 감았다.

가장 믿을 만한 존재의 부재.

그가 남긴 혼란스러운 말들.

홀로 살아남길 권유하는 상태창.

강현을 뒤흔드는 상황들.

[특성 불요불굴을 발동합니다. 정신을 지배하려는 불안감과 혼란함을 극복합니다!]

아마 보통 사람이라면 절망적인 상황에 무너졌을 거다.

강현도 특성 덕에 혼란에 휘말리지 않는 게 전부.

그렇게 생각했다.

지금은 버티는 게 최우선이라고.

그런데.

“프흐. 프흐흐.”

강현의 입에서 미소가 번지더니, 그가 작게 웃기 시작했다.

즐거움을 참을 수 없다는 듯한 웃음.

너무나 갑작스러운 강현의 웃음에.

“강현아?”

“최강현 상병님?”

“야, 왜 그래? 강현아!”

다들 그를 보며 공포를 느꼈다.

때로 사람은 도저히 극복하지 못할 절망을 만나면 정신이 어긋나기도 한다.

특히 강현과 같이 강인한 사람이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기 어렵다.

휘지 않고 부러지기 때문.

항상 앞에서 그들을 이끌던 강현이 절망하다니.

다들 서로를 보며 다시금 결심했다.

‘만일 강현이가 쓰러지면 우리가 일으켜 주자!’

지금껏 강현이 그래 왔으니 이번에는 그들의 차례.

그들의 이런 결심은.

[분대 신뢰도가 대폭 상승했습니다! 새로운 분대 특성 굳건한 신뢰를 획득했습니다!]

[전우 서윤진의 정신이 더욱 굳건해졌습니다. 그녀를 얽매고 있는 광폭화를 일부분 극복했습니다]

다시금 능력의 상승을 가져왔고.

“푸하하하하! 하하하!”

강현의 웃음이 더욱 커졌다.

그러자.

“하하, 하하하하, 하하하하!”

지금껏 힘을 잃었던 김준혁을 따라 했던 도플갱어가 강현을 따라 웃기 시작했다.

강현의 공포와 절망을 더욱 끌어내기 위한 비열한 웃음.

둘의 웃음이 서로 겹치는 순간.

“아, 나 이런 거 즐기네.”

강현이 뚝 웃음을 멈추며 알 수 없는 소리를 뱉었다.

그리고는 자신을 보며 웃고 있는 도플갱어를 향해 당당히 뱉었다.

“그만 쳐 웃어, 임마.”

“강현아?”

“최강현 상병님?”

설마 압박감이 너무 컸던 탓에 성격이 바뀌기라도 했단 말인가?

다들 그를 걱정하며 바라볼 때.

“이게 진짜 위기지. 지금까지 너무 쉬웠잖아?”

강현의 말에 미소 짓던 도플갱어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두고 보자고 누가 이기는지. 아니 분명히 말할게.”

강현이 이번엔 깊은 어둠을 둘러보며 눈을 번뜩번뜩 빛냈다.

“끝까지 가면 내가 다 이겨. 이 고무찰흙 새끼들아.”

[극한의 고난 속, 정신이 새로운 단계로 나아갔습니다!]

[새로운 호칭 고행자를 획득했습니다!]

[호칭 효과로 고난 속에서 고물 경험치 흡수 효율이 20% 증가합니다!]

[최초의 흑복 경험치 흡수 속도가 빨라집니다!]

[특성 불요불굴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하위 특성 명경지수를 획득했습니다!]

[정신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분석, 탐지 등 정신 관련 스킬들의 효능이 증가합니다!]

[하급 길잡이 스킬 레벨이 올랐습니다. 스킬 레벨이 포화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진화 조건을 만족할 시 중급 길잡이 스킬로 진화합니다!]

강현이 처음 맞는 극한의 위기 속에서 절망보다는 끈기, 공포보다는 즐거움을 느낀 순간.

그의 의지를 따라 능력이 꿈틀거렸고.

다시금 희망의 불씨가 타올랐다.

그리고.

“누가 못 이긴다고?”

“강현이 너 못됐네. 중대장에게 그런 말을 하다니.”

“아무래도 이 중대장 발밑에서 좀 혼나야겠는데?”

“항상 너한테 길들여지는 상상만 했어. 이 중대장 좀 길들여 줄래?”

사방 곳곳, 어둠 속에서 서윤진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물론.

“아, 아냐. 난 그렇게 생각한 적 없어.”

강현의 옆에 있던 서윤진이 반박했다.

“하아, 상상만 해도 흥분돼.”

“강현아 마음대로 해도 돼.”

그러나 그녀의 부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선 어둠 속에서 계속 끈적한 목소리가 흘러나왔고.

꿀떡.

모두가 침을 삼켰다.

물론 강현은.

꿀떡.

‘아, 나 이런 거 즐기네.’

이것마저 즐겨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