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화 마지막 스트리밍
강현을 껴안는 이혜원을 본 시청자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이혜원이랑 최강현이랑 어떻게 되는데?
-진짜 달달함 미친 거 아니야?
-이게 예능이야, 드라마야?
-나 혜원 이병 사랑하는 거 같지 말입니다.
드라마였다면 오히려 뻔한 전개와 군대에서 이루어지는 말도 안 되는 상황에 거부감을 일으켰을지도 모르지만.
이건 예능.
어차피 예능이었다.
사람들도 둘의 상황에 쉽게 몰입했고.
“와, 근데 이혜원은 진짜 예쁘더라. 생각 외로 진짜 열심히 하던데?”
“최강현 그 사람 목소리 너무 좋지 않아? 오빠도 그런 선임 됐으면 좋겠다.”
“그건 쓰읍…….”
“왜 싫어?”
“아냐, 그럼 내가 최강현 상병, 자기가 이혜원 이병하는 걸로?”
“입대하라는 거야? 선 넘네…….”
이혜원과 강현이라는 사람, 즉 캐릭터에 강한 호감을 표했다.
-이거 봤어? 그 군인이 이혜원 구했던 사람이래!
-아, 그래서 첫 화에서 그런 이야기 했던 거구나?
-그런 둘이 방송에서 만난 거야? 대박.
-은근슬쩍 말 놓을 때마다 귀엽던데.
-훈련 때 확확 바뀌는 거 진짜 미쳤나 봐.
여자 시청자들은 최강현에.
남자 시청자들은.
-이혜원은 성격 진짜 좋더라 열심히 하는 게 눈에 보이던데.
-저런 후임 있으면 못해도 이쁘지… 그냥 이쁘지.
-미친놈아, 이혜원이면 고문관이라도 군 생활 쌉가능이지.
-어차피 2박 3일이니까 대충할 줄 알았는데 진짜 끝까지 하더라.
-아, 체력 검정할 때 진짜 극호감.
-난 고블린이 제일 부럽더라.
-너도?
-야, 나도!
-미친 새끼들인가? 어떻게 나랑 같은 생각을?
이혜원의 노력과 열정 그리고 특별한 능력에 열광했다.
이를 더욱 부추긴 건.
-실시간 예능? 아니 드라마! 군대에서 등장한 남주, 여주.
-아이돌과 군인, 그녀를 지켰던 기사의 등장.
포털 사이트를 가득 메운 기사들.
PD의 의도대로 끝없이 쏟아지는 기사들은 강현과 이혜원의 캐릭터를 공고히 해 주었고.
이후엔 딱히 둘의 관계를 강조할 필요도 없었다.
“그래서 그 둘이 어떻게 됐는데?”
자연스레 둘의 이야기와 캐릭터에 깊이 몰입한 시청자들이 상상의 나래를 펼쳤기 때문.
핑크빛 기류를 실시간으로 시청자들이 나서서 만들어 주었다.
짤방부터 사진, 각 게시판 인기 글까지.
그야말로 대부분의 커뮤니티가 강현과 이혜원의 이야기로 가득한 상황.
물론 강현이 안도한 건.
‘부상 정도가 내려갔어.’
이혜원이 좀 더 안전해졌다는 것.
“…….”
“괜찮습니까? 괜찮은 겁니까?”
그런데 웃긴 건 정작 이혜원이 강현을 엄청나게 걱정하고 있다는 점.
그녀의 눈물 고인 눈망울을 보던 강현이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습니다.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강현이 무사하다는 걸 확인한 이혜원이 다행이라는 듯 한숨을 작게 내쉬었다.
그녀야 능력이 있긴 했지만 전투 경험은 회색 숲에서 해본 게 전부였다.
그러니 데론과 같은 상식 외의 괴물을 만난 것도 처음.
항상 옆에 있을 것만 같았던 강현이 갑자기 어둠 속으로 사라지니 얼마나 놀랐는지.
사실 아직도 쿵쾅거리는 심장이 진정되질 않았다.
그렇게 잠시 놀란 가슴을 가라앉힐 때.
“이혜원 이병.”
“이병… 이혜원.”
“허리 좀 놔주겠어요?”
“…죄, 죄송합니다.”
강현이 아직까지 이혜원이 꼭 붙잡고 있는 허리를 가리켰고 그녀가 얼굴을 붉히며 떨어졌다.
아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잘 때 곰돌이 인형 껴안고 자는 성격입니까?”
강현이 짐짓 웃으며 농을 건네자.
“…아.”
“……?”
“어떻게 아셨어요?”
이혜원이 정곡을 찔렸다는 표정으로 놀랐다.
평소 거대한 곰돌이 인형을 안고 잔다는 걸 어떻게 알았단 말인가?
역시 강현도 자신을 관심 있게 지켜본 거다!
“설마 캐릭터 잠옷도……?”
“……!”
“…그냥 농담한 겁니다. 진짜인 줄은 몰랐어요.”
“아…….”
강현의 대답에 이혜원이 어딘가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고.
“그럼 다시 전진할 테니 바짝 붙어요.”
“네.”
“전진.”
강현이 다시 훈련에 집중하며 이혜원을 데리고 훈련장을 빠져나왔다.
오후 훈련까지 안전하게 마무리.
* * *
“이게 바로 최강현 상병님표 냉동 음식들이지!”
“강현이 솜씨는 믿어도 돼! 지금껏 이런 냉동은 없었거든.”
“물론 돈은 우리가 내는 거니까 많이들 먹고.”
그날 저녁.
PX에서 유명한 음식이란 음식은 모두 챙겨 온 1분대가 눈을 휘둥그레 뜬 걸그룹에게 신나 설명했고.
“오와!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으으! 이런 거 너무 먹고 싶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역시나 아이돌답게 그녀들이 방송용 리액션을 뽐내며 음식들을 입에 넣었다.
그리고.
“…어?”
“…음?”
“우와…….”
카메라가 돌고 있다는 것도 잊고는 진짜 말을 잊었다.
사실 군대 음식이 맛있어 봤자 얼마나 맛있겠는가.
큰 기대 없이 입에 넣었던 음식들.
그런데.
“이거 진짜 맛있습니다!”
“왜 이렇게 맛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짜고 달고 맵고 좋아하는 맛이 다 들어 있습니다.”
그녀들의 예상을 벗어난 맛이었다.
평소 체중 관리를 하느라 적게 먹는 그녀들이었지만.
지금만큼은 앞에 놓인 음식을 참 맛깔스럽게 먹어 치웠다.
“으음, 역시 강현이 냉동은 누구도 거부할 수가 없지.”
“뭔가 옛날 생각도 나고 더 맛있어진 거 아닙니까?”
“그러게 어째 점점 맛있어지냐?”
분대원들이 입안 잔뜩 냉동을 쑤셔 넣는 그녀들의 모습을 보며 즐거워했다.
이렇게 행복한 식사 자리가 세상에 존재하다니.
군대에서 아이돌과 PX 회식이라는 호사를 누릴 수 있다니.
‘군 생활 행복하다!’
지난 고생이 모두 씻겨 내려가는 기분!
물론.
[중급 요리 스킬을 발동합니다. 본 재료의 맛 이상의 맛을 끌어냅니다! 음식의 맛이 대폭 상승합니다!]
[중급 요리 하위 스킬 추억 보정을 발동합니다. 당신의 음식을 먹은 사람들이 새록새록 과거의 추억을 떠올립니다!]
모든 건 강현의 능력 덕분.
“히잉, 너무 맛있어.”
“그렇죠 언니?”
고작 2박 3일이었지만 나름의 고충을 겪어 온 걸그룹 멤버들은 울먹이기까지 했다.
같은 음식이라도 어디서 먹느냐가 중요하듯 아이돌들에겐 이 군대라는 곳에서 겪은 훈련은 충격적인 경험.
그곳에서 만난 익숙한 맛은 그녀들의 감상을 끌어내기에 충분했다.
[슈넬 치킨, 크림 우동 편의점 전격 출시. 그룹 멤버 전원 광고 모델 발탁! 매출 신기록 달성!]
강현이 막 냉동을 입에 넣으려다가 멈칫했다.
시청자 수 말고 다른 요인들도 작용하는 모양.
강현이 상태창에서 눈을 떼 이혜원을 바라보았다.
크림 우동이 어지간히 마음에 들었는지 입가에 크림을 묻힌 채 먹고 있는 모습.
“이거 진짜 맛있습니다! 최강현 상병님!”
“…어, 많이 먹어.”
순진하게 웃으며 좋아하는 모습에 강현이 고민하길 잠시.
‘시간이 없다.’
오늘이 지나면 걸그룹은 막사를 떠날 거다.
그러면 이혜원은 강현이 없는 사이 어떤 일을 당할지 모른다.
반신불수가 된다면.
그녀의 아이돌 생활도 끝날 거고 지금처럼 해맑은 미소를 짓는 일도 없어지겠지.
강현이 각오를 다지곤 손을 뻗었고.
“입에 묻었다, 이혜원 이병.”
이혜원 입가에 묻은 크림을 닦아 주었다.
시청자 수를 올리기 위한 행동.
그리고 예상대로.
[실시간 시청자 수 4만 명 돌파!]
시청자 수는 올랐으나.
아직 이혜원의 부상엔 변함이 없었다.
아무래도 기준을 충족하진 못한 모양.
강현이 아쉬움을 삼키며 손을 거두자.
“입에…….”
“안 묻었습니다.”
“볼에…….”
“제가 닦겠습니다.”
1분대원들이 강현을 따라 하려고 했고.
걸그룹의 철벽 방어가 이어졌다.
그때.
“아앗!”
그룹 막내가 먹던 짜장을 볼에 크게 묻혔고.
그녀가 강현을 빤히 바라보기 시작했다.
“……?”
강현이 처음엔 뭐 하는 짓일까 생각하다가 퍼뜩 의미를 깨닫고는 손을 뻗으려 할 때.
“아이참 우리 막내가 자주 흘리고 먹는다니까!”
이혜원이 먼저 나서 막내의 뒷덜미를 붙잡더니 얼굴을 뽀득뽀득 닦아 주었다.
말이 뽀득뽀득이지 좀만 더 힘을 주면 볼이 떨어져 나갈 듯한 강도.
“으윽! 어, 언니 잘못했어요.”
“잘못하긴 뭐가아? 우리 동생 얼굴에 묻은 양념 닦아 주는 건데? 이 언니가?”
“사, 살려 주세요오.”
막내가 팔을 버둥거렸지만 헌터인 이혜원의 완력을 이길 리 만무.
양념을 닦았음에도 벌건 볼을 부여잡은 막내가 서글퍼할 때.
“이거 좀 드셔보십시오.”
이성민이 막내의 서글픔에 공감이라도 했는지 그녀를 챙겼고.
“감사합니다, 이성민 일병님.”
막내가 그를 바라보며 살짝 웃었다.
그리고 그때.
[시청자 수 5만 명 돌파! 시청자들이 새로운 러브 라인을 기대하는 중입니다!]
[이혜원의 부상 정도: 반신불수… 신체 일부분 절단]
다시 한번 시청자 수가 올랐다.
* * *
2박 3일의 마지막 날.
이미 고된 훈련은 모두 끝났고 마지막 헤어짐을 준비해야 할 때.
다만 강현을 비롯한 1분대는 좀 색다른 모습으로 마지막 촬영을 준비 중이었다.
“이거 뭔가 어색하지 말입니다.”
“야, 성민아. 너는 좀 잘 어울린다.”
“아, 어릴 때부터 입을 일이 많아서 그럴 겁니다.”
“오? 그러냐? 야, 성민아 이거 넥타이 좀 도와주라.”
“일병 이성민. 저 주시면 제가 묶어서 드리겠습니다.”
스물 초반의 군인.
밖에서 얼마나 양복을 입어 봤겠는가.
거기다 평소에 군복은 자주 입었어도 사복을 입을 일이 없었으니.
다들 머리를 가다듬고 양복을 입자 어딘가 엉성하고 불편했다.
“아니 그냥 흑복 입으면 안 됩니까?”
“인마 그건 시가전 때 입는 거고. 오늘은 요인 경호니까 양복을 입어야 할 거 아니야.”
“그래. 너무 불만 갖지 말고 적당히 입어. 이런 날 아니면 언제 입어 보겠냐?”
“알겠습니다.”
장만수 상병이 영 어색한 양복과 왁스 바른 머리를 보며 투덜거렸으나 김대영 상병과 장건철 병장의 타박에 입을 다물었다.
이성민이 동기 오목교의 넥타이와 옷매무새를 다듬어 준 후.
슬금슬금 최강현에게 다가갔다.
“최강현 상병님 도와드립니까?”
평소에 완벽한 강현이라고 해도 양복은 어색할 거다.
오랜만에 잘난 척할 기회를 잡기 위해 이성민이 강현을 부를 때.
“어? 아냐. 준비 다 끝났다.”
막 뒤돌아선 강현을 보며 이성민이 멈칫했다.
보통 처음 양복을 입으면 넥타이도 삐뚤고 옷도 많이 접히기 마련.
이성민을 제외하고 오목교나 장만수, 장건철, 김대영 등 1분대 모든 인원이 그런 상태였다.
그런데.
“어… 원래 양복 같은 거 자주 입으셨습니까?”
“응? 아니. 그럴 리가.”
“야, 뭐냐. 뭔데 그렇게 잘 어울리냐?”
“잘 어울립니까? 예전 휴가 나갔을 때 산 양복입니다.”
“우와, 맞춤으로 사셨습니까?”
“아니, 백화점에서 샀는데?”
강현은 양복이 정말 잘 어울렸다.
비록 맞춤은 아니었지만 강현의 몸 선이 훤칠하고 양복의 재질이 좋다 보니 마치 맞춤 정장처럼 보일 정도.
모델 같은 강현의 모습을 보던 장만수가 김대영을 보며 중얼거렸다.
“것 보십시오. 군복 입어야 한다고 하지 않았슴까.”
“그렇네, 맞네. 양복이 아니라 사람이 문제였네.”
방금과 다르게 바로 동의하는 김대영이었다.
1분대가 평소와 다르게 양복까지 차려입고 대기할 때.
“자! 모두 준비 끝났어?”
서윤진 대위가 힘차게 생활관에 들어섰다.
오늘은 군복 대신 까만 여성용 정장을 갖춰 입은 모습.
붉은 적갈색 머리와 유독 잘 어울려 그녀의 미모가 더욱 빛났다.
그리고.
[서윤진 대위의 새로운 모습에 남성 시청자들이 열광합니다!]
[커뮤니티에서 서윤진에게 국민 중대장이라는 별명을 붙입니다]
[실시간 시청자 수 7만 명 도달! 시청자들이 마지막 스트리밍이라는 소식에 강한 아쉬움을 보입니다!]
[이혜원의 부상 정도: 신체 일부 절단… 화상]
드디어 시청자 수 7만 명에 도달.
이혜원의 부상이 신체 절단에서 화상으로 바뀌었다.
강현이 눈을 감으며 잠시 마음을 가라앉혔다.
죽음에서 혼수상태, 반신불수에서 절단 마지막 화상까지.
이제 이혜원을 살리기 위한 최종장에 돌입.
“마지막 임무를 설명하겠다.”
서윤진이 1분대를 보며 입을 열었다.
“오늘 저녁에 있을 군 위문 공연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우리 신병들을 경호한다. 즉, 그들을 위협하는 모든 상황을 사전 차단한다!”
“알겠습니다!”
“그럼 작전 설명하겠다.”
2박 3일의 마지막 스트리밍 방송은 바로 군 위문 공연.
1분대는 특임대 본연의 임무인 요인 경호를.
신병들도 본연의 임무인 아이돌로 돌아갈 시간.
공연하러 가는 아이돌들과 이를 경호하는 특임대 1분대의 모습을 시작으로 위문 공연이 끝나며 마무리될 예정.
사실 군부대 안에서 이루어지는 공연이니만큼 형식상 이루어지는 경호라는 걸 모두가 알고 있었으나.
강현의 마음가짐은 달랐다.
[인물 퀘스트 햇빛의 후예 마지막 방송을 시작합니다!]
[현재까지 이혜원의 부상 정도: 화상]
[새드 엔딩이냐 해피 엔딩이냐는 당신의 손에 달렸습니다]
[주인공의 업적을 계산합니다! 이전 메인 퀘스트 성공률을 분석합니다!]
[당신의 이야기 개입 능력: 100%!]
[일어날 비극을 맞이하거나 막아 내십시오!]
물론 막아 낼 거다.
전력을 다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