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화 다행입니다!
차가운 조명 아래.
“그러니까 지금, 횡령, 비자금 형성 등 모든 혐의를 부정한다는 말이죠?”
“그래요.”
“…몬스터의 시체를 빼돌린 사람이 당신이라는 증언이 나왔는데도 말이죠?”
“모함이네요.”
“군데카솔이라고 조롱받는 물약. 그쪽에도 손대셨던데. 그것도 거짓이고?”
“잘 아시네요.”
씨발.
가무사 소속 수사관이 욕과 함께 화가 가득 담긴 웃음을 터뜨렸다.
체포된 이후 지금까지 오성탁 준위는 나는 모르는 사실이라며 계속 혐의를 부정할 뿐.
어떤 증거를 들이밀어도 변함없는 뻔뻔한 태도에 열이 오른 수사관이 드디어 비장의 카드를 꺼내 들었다.
“자식분들 지금 길드 생활하시죠? 그런데 보니까 경력이 영 이상하던데?”
“…….”
“특임대 입대도 안 했는데 관련 표창은 왜 있으며 능력도 대체 복무 가능한 수준이 아닌데 대체 복무하고 바로 거기 취업했던데…….”
“…….”
“원래 대체 복무했던 길드에 바로 취업 안 되는 거 몰랐나? 설마? 수사관 아들이?”
“길드에서 먼저 요청했기에 대기 기간 동안 인턴을 했을 뿐 바로 취업한 건 아니지. 그것도 모르고 말하는 건 아닐 테지요?”
오성탁이 자식을 건드리는 건 참지 못했는지 드디어 입을 열었고.
“길드에선 요청한 적 없다는 답변이 왔어요. 이 사람아, 당신이 요구했다며.”
수사관이 드디어 꼬투리를 잡았음을 느끼고는 씨익 웃었다.
빠드득.
오성탁의 이빨 가는 소리가 취조실에 울려 퍼졌고.
“어때? 그렇게 입 꾹 닫고 있으면 아들부터 한번 털어 볼까? 아버지 덕분에 취업한 길드, 아버지 때문에 쫓겨나는 그림. 괜찮지 않아요?”
“…….”
“거기다 부인분도 받은 게 꽤 되시던데? 이거 가족 전체 터는 맛이…….”
“…그만.”
“어때요? 이제 좀 이야기할 마음이 생기셨나?”
평소 자신이 써먹기 즐겼던 수법에 역으로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조사가 끝난 후 오성탁의 수십 억짜리 집안 서재.
“으아아악! 씨바알!”
와장창!
그가 책상에 있는 집기들을 박살 내며 분노하고 있었다.
분명 이번에도 같을 줄 알았다.
처음엔 잡혀 들어갔어도.
분명 자신이 수십 년간 쌓아 온 인맥들이, 자신이 건넨 더러운 돈을 먹고 자란 이들이 도우러 오리라.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이 개새끼들이 날 버려!”
더럽게 쌓아 올린 탑은 너무나 허무하게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자신을 도와야 할 이들이 하나둘 잡혀 오더니 나중에는 무더기로 자신의 이름을 팔았고.
오성탁이 잘나갈 때는 형님, 수사관님 하며 아첨 떨던 이들이.
“감히 배신을 해? 날 배신한다고? 이 개새끼들!”
자신들도 피해를 볼까 봐 먼저 나서 오성탁 준위의 죄를 고발했다.
이제 수사관이라는 이름을 달고 이곳저곳 영향력을 미치던 준위 오성탁은 없다.
남은 건 죄인이라는 비참한 결말뿐.
숨을 씩씩 내쉬던 그가 이번엔 머리를 잡아 쥐며 절망했다.
“으으, 으으윽! 끝났어, 끝났다고!”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그 빌어먹을 최강현이라는 병사 하나 때문에?
그가 고개를 저었다.
강현이 처음 시작은 맞았다.
그러나 사실 진짜 원인은 아주 오래전에 저지는 일 때문이 아닐까.
“이석천…….”
자신이 쫓아낸 영웅.
검성 이석천.
그때 이루었던 승리가 지금의 패배로 돌아온 거다.
그래, 벌을 받았구나.
“여보…….”
“나가악!”
남편을 걱정한 부인이 방문을 열자 오성탁이 눈에 핏발을 세우며 고함쳤다.
부인이 다급히 방문을 닫았고.
“크흐, 크흐흐흐, 크하하하하!”
홀로 남은 방안, 그가 광기에 젖은 웃음을 터뜨렸다.
드디어 벌을 받았구나!
검성 그 인간이 내게 벌을 내린 게 틀림없어!
오성탁 준위가 갑자기 웃음을 뚝 멈추더니.
“혼자… 죽을 순 없지.”
음침하게 중얼거리며 서재 가장 깊은 곳.
자신이 숨겨 놓은 수많은 군 비리와 길드들의 약점을 적어 놓은 USB를 꺼냈다.
가도 혼자 가지 않으리라.
“악역은 악역답게.”
오성탁은 마지막에 이르러서 참회하는 추한 꼴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악역인 만큼 끝까지 악독하게 모두를 끌고 갈 생각.
그가 자신과 함께 나락으로 추락할 이들을 떠올리며 웃을 때.
“끄윽?”
오성탁 준위가 갑작스레 숨 막히는 소리를 내더니.
“끄으으!”
입에 거품을 물며 고통스러워하기 시작했다.
손을 바들바들 떨며 몸부림을 쳤으나.
소리를 지르려 해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 모양.
그렇게 홀로 보이지 않는 무언가와 분투하던 그의 몸이.
축 늘어졌다.
혀를 길게 빼문 모습이 정말 죽은 모양.
그것만으로도 놀라울진대.
진짜는 그다음부터였다.
스르륵.
분명 방 안에는 아무도 없건만.
오성탁의 축 늘어진 몸이 마치 춤을 추듯 흐물거리며 움직였고.
곧 스스로 자신의 목에 넥타이를 매었다.
이후에는 문고리에 이를 걸어 버리니.
마치 자살한 모양새.
“…….”
곧 방 안에는 차갑고 무거운 침묵만이 감돌았다.
소름 돋는 일련의 과정 끝.
구찌가 포로롱 방안으로 날아들었고.
바닥에 떨어진 USB를 입에 물려는 순간.
번쩍.
굳게 닫혀 있던 오성탁의 눈이 번쩍 뜨였다.
흰자위 없는 온통 검은색의 눈.
순간.
구찌와 오성탁의 눈, 아니 구찌의 기억을 보는 강현과 오성탁 안에 있는 무엇인가의 눈이 마주쳤다.
마치 무저갱같이 깊은 어둠에 강현의 몸에 오소소 소름이 돋아올랐고.
“찾았다.”
놈이 구찌, 강현을 발견하곤 입을 쭉 찢으며 미소 지었다.
방금 보았던 무형의 힘이 구찌의 주변을 감싸려 할 때.
구찌가 전속력으로 그 속을 빠져나왔다.
쉬이이익!
귀를 찢는 바람 소리와 바짝 쫓아오는 무형의 힘.
이리저리 흩날리는 한 줄기 불꽃이 되어 내달리는 구찌.
놈이 구찌의 몸을 잡아챘고.
“뀨우!”
구찌가 몸 안에 담아 놓은 정화의 불꽃을 폭발.
놈의 힘을 무력화하며 틈 사이로 다시 내달렸다.
끊임없는 추격전.
강현이 손에 땀을 쥐며 이를 바라볼 때.
“최강현 상병님.”
“최강현 상병님!”
[펫 구찌의 기억 재생을 종료합니다]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강현이 퍼뜩 구찌의 기억 속에서 깨어났다.
그가 찬찬히 눈을 뜨자.
“어머! 구찌야?”
이혜원이 지난번 본 구찌를 기억하고는 기쁜 목소리를 냈고.
“뀨우!”
어느새 본래 크기로 작아진 구찌가 포로롱 날개를 흔들며 그녀를 맞이했다.
“아핫! 간지러워 얘! 이제 곧 훈련 시간이라고 중대장님께서 찾으십니다. 최강현 상병님.”
“알겠습니다.”
강현이 자리를 털고 일어설 때.
“…최강현 상병님?”
“네?”
“괜찮으십니까?”
이혜원이 강현의 상태가 뭔가 이상함을 느꼈고.
“별일 아니에요.”
강현이 고개를 저었다.
오성탁의 죽음과 그 안에 깃든 무언가.
강현을 찾았다고 했던 말.
방금 보고 들은 건 남에게 이야기할 수 없는 것들뿐.
“방송에선 구찌랑 아는 척하면 안 됩니다.”
“뀨우?”
“그러면 원래 아는 사이인 거 들킬지도 몰라요.”
“앗! 그렇네요. 헙! 죄송합니다!”
강현의 말에 비로소 상황을 깨달은 이혜원이 아쉬운 표정으로 구찌를 놓아 주었다.
“중대장님, 상병 최강현입니다.”
훈련 직전, 강현이 중대장실에 방문하자.
“그래, 훈련 준비는 끝났고?”
서윤진이 옅게 미소 지으며 강현을 향해 물었다.
“철저히 확인했습니다.”
“그래, 역시 강현이답네.”
그녀답지 않게 뜸 들이길 잠시.
“강현아, 놀라지 말고 들어.”
“…설마 오성탁 준위 이야기입니까?”
강현의 역질문에 서윤진 대위가 오히려 놀랐다.
“맞아. 아직 촬영 중이기도 하고, 훈련도 앞에 두고 있지만 소식은 전해야 할 거 같아서.”
“…알겠습니다.”
강현이 이미 알고 있는 오성탁 준위의 비극적인 소식을 기다렸다.
정말 자살로 판명이 났을까?
‘아니, 어쩌면 실종되었을지도.’
구찌의 기억을 전부 읽지는 못했지만 마지막을 미루어 보건대 무언가 오성탁 준위의 몸을 차지했다.
강현에게 적대감을 가지고 있는 적.
‘어둠.’
지난번 서재원도 그들이 강현을 찾고 있다고 했으니 틀림없다.
오성탁 준위의 몸을 빌려 강현을 찾으려는 속셈일 터.
그러나.
“오성탁 준위가 모든 죄를 인정했어.”
“……!”
서윤진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전혀 다른 내용이었다.
순간 살아 있는 겁니까? 물으려던 강현이 튀어나오려는 목소리를 간신히 참았고.
그의 울렁거리는 목울대를 보며 서윤진이 쓰게 미소 지었다.
“그래, 그럴 사람이 아닌 것처럼 보였는데. 그렇지?”
“…그렇습니다.”
“사실 오성탁 준위가 구치소에 들어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너와 면담을 신청했거든.”
“오성탁 준위가 말씀입니까?”
“응, 그래서 네 의사를 물어는 봐야 할 거 같아서.”
“만나지 않겠습니다.”
“그래, 잘 생각했어.”
서윤진의 물음에 강현이 억눌린 목소리로 답했다.
일단 답은 했지만 머리는 뒤죽박죽인 상황.
그런 강현의 혼란스러움을 느꼈는지 서윤진이 조심스레 강현의 이름을 불렀다.
“강현아.”
“상병 최강현.”
“걱정 마. 죄책감 느끼지도 말고. 벌 받아야 할 사람이 받은 거니까.”
“…알겠습니다.”
“나머지는 우리가 처리할 테니까 방송이랑 훈련에만 집중하면 돼.”
“상병 최강현. 알겠습니다.”
강현이 곧 평소의 표정을 회복하자 서윤진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좀 있다 훈련장에서 보자.”
“충성!”
강현이 중대장실을 나오는 순간.
[악한 기운에 잡아먹힌 자가 당신을 노리고 있습니다. 항상 주변을 경계하세요]
오랜만에 상태창의 조언이 떠올랐다.
강현이 이를 잠시 보고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어.”
그래, 방심해선 안 된다.
언제, 어디서든.
* * *
커다란 건물 입구.
평소와 같은 모습의 서윤진 대위가 1분대원들과 아이돌들을 앞에 두고는 입을 열었다.
“이 입구는 이전부터 특임대가 훈련하던 던전 재현 홀로그램으로써. 앞서 훈련에서 보았던 몬스터들을 실제 던전과 같은 환경에서 맞이할 수 있게 설계되었다.”
평소 자주 했던 던전 홀로그램 훈련.
시청자들을 위한 설명이 이어졌다.
“그리고 최근, 개인 홀로그램 장비의 도입으로 이전보다 더욱 실전과 같은 훈련이 가능해졌고. 특임 1분대와 신병들은 오늘 오후, 건물에 생긴 던전을 파훼하는 임무를 맡은 것을 가정. 훈련을 진행하도록 하겠다. 알겠나?”
“알겠습니다!”
모두의 우렁찬 목소리에 서윤진이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곤 훈련을 진행.
“어떤 던전이 나올지 모르니 긴장하는 게 좋을 거야.”
목소리를 내리깔며 겁을 주었고.
“으으.”
“아, 알겠습니다!”
던전에 처음 들어가 보는 아이돌들이 목을 움츠렸다.
곧 서윤진이 씨익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시커먼 입구를 가리켰다.
“자, 그럼 진입!”
[홀로그램 던전으로 진입합니다]
1분대와 걸그룹이 건물 안으로 조심스레 입장.
겉보기에는 건물과 같았으나 안은 어두컴컴한 던전이었다.
곧 눈에 보이는 통로 네 개.
이미 경험해 본 미궁형 던전.
“그럼 작전 설명하겠습니다.”
강현이 자연스럽게 예정된 대로 조를 나누고 지시를 내리기 시작.
분대원들이 각자 맡은 바 임무를 숙지했다.
물론 모두 미궁형 던전이 나타날 걸 알고 있었기에 당황할 부분은 없었다.
여기까진 모두 짜여진 각본.
특임대의 작전이 얼마나 뛰어난지, 군인들이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멋있게 작전에 임하는지 보여 주기 위한 쇼였다.
“그럼 진입하겠습니다.”
강현의 진입 명령과 함께 각자 맡은 통로로 이동.
이제부터는.
“실 작전과 같다고 생각. 긴장할 것.”
“이병 이혜원 알겠습니다!”
대본에 없는 진짜 훈련.
강현이 왼손에 든 거대한 전술 방패를 치켜들고 한 손에는 K-1H를 들어 앞을 겨눴다.
“이혜원 이병은 내 뒤에 위치. 전진할 테니 바짝 붙어서 따라와.”
“네!”
던전에 들어온 후 완전히 바뀐 강현의 말투에 이혜원이 긴장하며 강현의 뒤에 붙었다.
“…….”
“이혜원 이병?”
“이, 이병 이혜원!”
“허리를 잡으란 말은 안 했는데.”
“죄송합니다!”
그리고 너무 긴장한 나머지 바짝 붙으라는 강현의 말에 진짜로 그의 허리를 감싸 안아 버렸다.
“바짝 붙으라 하셔서.”
“바로 뒤에서 따라오기만 해.”
“앗, 네.”
“다시 전진.”
강현이 천천히 길을 인도했고 이혜원이 말없이 그 뒤를 따랐다.
물론.
[하급 길잡이, 연구자의 눈을 발동하여 미로의 출구를 찾아냅니다!]
[연구자의 눈을 발동합니다. 익숙한 마나의 흐름입니다. 현상을 분석합니다. 분석률 70% 이상!]
[대연 시스템 던전 홀로그램 장치를 간파했습니다. 미로형 던전의 길을 완벽하게 파악합니다!]
강현의 능력 덕에 달려서라도 빠져나갈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지금 강현은 진지하게 작전에 임하는 중이었다.
‘습격한다면 지금이 가장 좋다.’
분대원들은 모두 찢어져 있는 상태.
촬영팀이 뒤에 있긴 하지만 어차피 소수.
이혜원을 노린다면, 아니 강현을 노린다면 지금.
[이혜원의 부상 정도: 전신 마비]
강현은 이혜원에게 찾아올 끔찍한 사태를 막을 생각이었다.
그래서일까.
“숙여!”
두두두두두!
던전 공략에 임하는 강현은 유독 더 엄격했고 어떤 적이 나타나던 완벽하게 분쇄해 버렸다.
방패로 막고 총으로 쏜다.
방패, 총이라는 새로운 조합으로 던전을 완벽하게 파훼하고 있을 때.
터텅, 터텅, 터텅.
방금까지와는 다른 소리가 울리길 잠깐.
새까만 그림자 하나가 무서운 속도로 강현과 이혜원을 향해 다가왔고.
“뒤로 물러서!”
강현이 총과 방패를 버리고는 그대로 그림자 속으로 뛰어들었다.
나타난 건 바로 그림자 괴물 데론.
홀로그램 던전에서 데론이 나타날 리가 없기에 강현이 급하게 움직인 것.
그러나.
[홀로그램 분석 완료. 데론을 무력화합니다]
강현의 예상과는 다르게 데론은 홀로그램 중 하나였을 뿐.
순간 그림자를 찢어발기며 튀어나온 강현이 급히 이혜원을 찾았다.
“이혜원 이병!”
자신이 없는 사이 무슨 일이라도 난 것 아닐까 살필 때.
이혜원이 먼저 달려와.
“다행입니다!”
강현의 품에 안겼다.
[실시간 시청자 수 3만 5천 명 돌파! 방송 채팅창 일시적 마비!]
[이혜원의 부상 정도: 전신 마비… 반신불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