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물수집으로 무한성장-141화 (141/277)

141화 생존자와 구출자

“그래도 군인도 설날은 좀 재밌지 않냐?”

“…뒈질래?”

군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날 중 하나.

민족의 명절 설날과 추석.

남들에겐 연휴이자 신나는 날이었지만.

“전 병력 집합! 아침 일과는 윷놀이, 농구! 오후 일과는 축구, 제기차기, 족구다! 모두 준비!”

“우, 우와아아아….”

“새끼들 목소리 봐라?”

“우와아아악!”

군인들에겐 가장 바쁜 날 중 하나였다.

윷놀이, 축구, 족구, 농구 등.

군대에서 할 수 있는 오락거리를 총동원하다 못해.

“생활관 열외 없이 집합!”

병사들 또한 강제적으로 참석해야 하는 축제.

거기다 만일 대장님이 병사들과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신다면?

“오늘 오후에 대장님께서 김밥 싸 주신답니다.”

“…….”

“전 병력 식당으로 집합! 치약 가져와! 미싱한다!”

“이런… 좀 쉬게 좀 해 줘!”

그야말로 설날 대작업이나 마찬가지.

그러나 지금 설날을 앞둔 3중대에선.

“최강현 일병님! 최강현 일병님!”

전혀 다른 의미로 소란스러웠다.

“최강현 일병님!”

“어, 왜?”

“중대장님께서 찾으십니다.”

오후 훈련이 끝나고 생활관 정리를 하던 와중.

오목교가 강현을 찾았다.

“중대장님실로 가면 돼?”

“그렇습니다.”

“그럼 목교가 성민이 도와서 생활관 마무리 좀 해 줄래.”

“알겠습니다!”

강현이 자신이 사용하던 빗자루를 오목교에게 넘겨주고는 중대장실로 향했다.

그 와중에도.

“야, 야. 거기 똑바로 치우라고. 아이돌님들이 먼지 마시면 책임질 거야?”

“알겠습니다!”

“아니, 치약 묻혀서 빡빡 닦아야지. 줘 봐. 짬의 위력을 보여 줄 테니.”

“크으, 미싱 실력 보고 아이돌이 반하는 거 아님까?”

“새끼, 이빨은… 그럴 가능성도 있을까?”

중대원들이 불만 하나 없는 얼굴로 열심히 막사를 청소하고 있었다.

강현이 군단 최강 특임 선발 대회에서 우승한 후.

아이돌이 생활관에 방문하기를 매일같이 기다리며 스스로 막사를 청소하는 중.

“야, 이거 군블럭 괜찮냐?”

“잘 어울리시지 말입니다.”

“그래, 아이돌 옆에 서도 잘 어울릴까?”

“아, 그건 얼굴이 안 어울려서 안 되지 말입니다.”

“이 새끼가.”

간부들이 뭐라 하기도 전에 머리까지 깎아 가며 소란들이었다.

그만큼 생활관에 아이돌이 방문한다는 소식은 3중대 군인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똑똑똑.

“중대장님, 일병 최강현입니다.”

“어, 들어와.”

서윤진의 밝은 목소리에 강현이 안으로 들어섰고.

“충성.”

“어, 강현이 어서 오고.”

중대장실 안에는 장건철, 김대영을 비롯한 두 똥 병장까지 모여 있었다.

물론.

“전역하기 싫습니다…….”

“아이돌 보고 전역하겠습니다…….”

두 똥 병장의 목적은 좀 다른 것이었다.

“으이구, 야! 어차피 내일 말년 휴가인 인간들이 뭐가 아쉬워서 자꾸 남으려고 해! 나가! 당장 중대장실에서 꺼져!”

서윤진이 떼를 쓰는 두 병장에게 윽박질러 보았으나.

“저 말차 반납하면 안 됩니까?”

“부대를 위해 헌신할 의지가 차고 넘칩니다!”

둘이 물러나지 않았고.

“아, 빨리 휴가증 들고 꺼지라고!”

서윤진이 질렸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 아직도 휴가 안 나가셨슴까?”

강현의 질문에.

“야! 너 같으면 나가겠냐? 나가겠어?”

“아니지. 강현아, 너가 좀 말 좀 해 봐라. 우리 필요하지? 우리 반드시 필요할 거야? 그렇지?”

하필 아이돌이 생활관에 방문하는 날짜와 말년 휴가 기간이 겹친 두 똥 병장이 울상을 지으며 강현에게 매달렸다.

물론.

“어쩐 일로 부르셨습니까?”

강현은 자연스럽게 그들을 외면했다.

그의 물음에 장건철과 김대영이 터지려는 웃음을 참았고.

서윤진이 작게 한숨을 내쉬곤 강현에게 의자를 가리켰다.

“일단 앉아서 이야기하자.”

“알겠습니다.”

그가 의아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고 나자.

“이제 내일이면 상병 달 건데 기분이 어때?”

중대장이 강현이 하루하루 손꼽아 기다리던 날을 슬며시 언급했다.

내일이면 드디어 일병, 일개미에서 벗어나 상병에 진입하는 날.

“내일이 기다려집니다!”

“그래… 그렇겠지…….”

강현의 우렁찬 대답에 서윤진이 말꼬리를 흐리며 장건철을 보았고.

장건철이 헛기침을 하며 강현의 시선을 끈 후 조심스럽게 본래 목적을 꺼냈다.

“나도 곧 전역이지 않냐. 저… 둘처럼.”

“그렇습니다……?”

“그래서 분대장을 슬슬 그만 내려 두려고 한다.”

“아, 그렇습니까…….”

강현이 입대한 이후 분대장은 당연히 장건철이었고.

계속될 거로 생각했지만 시간은 흐르는 법.

강현이 옆에 있는 김대영 상병을 쳐다보았다.

“그럼 김대영 상병님이 분대장 다시는 겁니까?”

“아니.”

“아니.”

“아니.”

“3 아니로 기각되었습니다.”

“땅땅땅.”

김대영, 장건철, 서윤진이 모두 고개를 가로저었고.

두 병장이 씩 웃으며 책상을 두들겼다.

그럼 누가?

강현이 의문을 표하려 하기 전.

“네가 해.”

셋의 손가락이 동시에 강현을 향했다.

“제가 말입니까? 이제 상병을 다는 제가 분대장을 말입니까?”

강현이 되묻자.

“아무리 상의를 해 봐도 대영이 뜻이 확고하더라.”

장건철 병장이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 분대장은 계급 상관없이 맞는 사람이 해야지.”

“둘이 충분히 합의를 보고 나한테 상담 요청하러 온 거야. 그리고 둘의 설득에 나도 동의했고.”

이어 김대영과 서윤진 대위도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해 주었다.

“전투력, 작전 수행 능력, 분대원들을 이끄는 리더십 모든 면에서 뛰어난 사람이 있는데 내가 그 자리를 차지할 순 없으니까.”

김대영이 솔직한 심정을 밝혔고.

강현이 곤란함에 볼을 긁적거렸다.

그때.

“그리고 그래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도 한 가지 있거든.”

이번에는 장건철과 김대영도 모르는 이야기인지 서윤진을 바라보았고.

“이번 아이돌 생활관 방문이 방송 촬영으로 바뀌었어.”

“잘못 들었습니다?”

“방송 촬영 말입니까?”

다들 멍한 표정으로 되묻자.

서윤진이 곤란함 반, 자랑스러움 반이 섞인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 국방TV에서 방송한 군단 특임대 선발 대회 시청률이 높았나 봐.”

“아! 저 유튭에서 봤습니다! 강현이 나온 영상이 조회수 이백만인가? 높았습니다.”

“거기다 최근 분위기가 안 좋잖아. 뭐 이런저런 사건도 있었고.”

서윤진의 말에 분대원들의 얼굴이 대번에 어두워졌다.

3중대에서만 해도 행보관을 비롯한 부사관 몇몇이 불명예 전역을 당한 탓.

썩은 부위를 도려내며 전군이 열병을 앓고 있는 지금.

“군 이미지 쇄신 겸 헌터 특임대 홍보도 할 겸. 설날 특집 방송 촬영을 한다더라.”

“설날 특집!”

“방송 촬영?”

방송사에서 특임병 선발 대회 유튜브 영상을 포착했고.

촬영 요청에 국방부가 군 이미지 개선 기회다 싶어 단번에 허락했다는 이야기.

“그래, 그래서 이번 아이돌 방문이 2박 3일 방송 촬영이 되었단 공문이 내려왔거든.”

“으아아아! 저 휴가 안 나가겠습니다!”

“휴가 따위 필요 없습니다!”

서윤진이 양팔에 매달린 똥 병장을 단번에 털어 낸 후.

강현을 가리키며 당당히 외쳤다.

“그래서 최강현 상병!”

“상병 최강현!”

“자네가 1분대장으로서 처음 맡을 임부는 바로!”

바로?

“아이돌들의 분대장이 되는 거다!”

서윤진의 호탕한 외침에.

“내 복을 내가 발로 찼구나…….”

일생일대의 기회를 놓친 김대영이 절망적으로 중얼거렸고.

이런 상황까진 예상치 못했던 장건철이 옆에서 그의 등을 토닥였다.

* * *

드디어 며칠 후.

모두가 생활관에 앉아 긴장하고 있을 때.

오목교가 지난번과 같이 막사 복도를 다급히 뛰었다.

“최강현 상병님! 최강현 상병님!”

달라진 점이라면 강현의 호칭.

그리고.

벌컥.

“최강현 상병님! 신병들 도착했습니다!”

생활관 문을 열어젖힌 오목교의 눈에.

“…그래?”

생활관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강현의 넓은 등이 보였다.

어깨에서 빛나는 초록색 분대장 견장.

그가 천천히 뒤돌자.

깔끔한 군복 가슴팍에 새겨져 있는.

-군단제일특임병

우승자의 황금빛 징표가 아름답게 빛났다.

그 위엄 어린 모습에 오목교가 잠시 넋을 놓았고.

“그럼, 새로운 특임병들을 맞이하러 가 볼까?”

강현이 진중하고 위엄 어린 목소리로 고개를 끄덕인 후.

저벅저벅.

생활관 밖으로 나가려는 순간.

“컷! 오케이!”

복도에서 대기하고 있던 PD가 오케이 싸인을 내림과 동시에.

“푸흐흡.”

“아, 분대장 안 하길 진짜 잘했다.”

“분대장 내리길 진짜 잘했다.”

분대원들이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아이돌이 생활관에 오는 것까진 좋았는데.

“그럼 이제 나가셔서 맞이하는 장면 가시죠.”

“아… 알겠습니다.”

이렇게 밀착 촬영까지 하는 줄은 몰랐다.

작가가 강현의 떨떠름한 표정을 보고는 다가와 말을 건넸다.

“처음 부분만 연출이 많이 들어가고요. 실제 훈련이나 생활 중에는 본래 모습 그대로 보여 주시면 됩니다.”

“끄응… 너무 어려운 주문입니다.”

“괜찮아요. 보니까 최강현 상병 같은 경우는 본래 모습 그대로 해도 캐릭터 확실히 나올 거 같으니까 오히려 부담 갖지 마시고 편하게 하세요.”

작가의 응원에 강현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촬영 팀과 함께 막사 밖으로 나섰고.

드디어.

“앗!”

“…….”

강현과 이혜원이 마주쳤다.

같이 촬영하는 아이돌이 이혜원이 속한 그룹인 줄은 몰랐다.

이런 장소, 이런 상황에서 만날 줄이야.

이혜원도 강현이 나타날 줄은 전혀 예상을 못 한 모양.

그녀가 놀란 표정으로 입을 가리길 잠시.

곧 눈물까지 글썽거리며 강현을 애틋하게 쳐다보았다.

“아… 여기서 근무하셨던… 건가요.”

“…오랜만입니다.”

반면 강현의 인사는 담담했다.

본래 대본대로라면 강현이 엄격한 목소리로 자신을 소개한 후 아이돌들이 겁에 질린 채 따라가야 하건만.

너무나 의외의 만남에 둘 다 대본을 까먹어 버렸고.

“혜원 씨…….”

조연출 하나가 본래 대본을 상기시켜 주려 할 때.

“껴들지 마. 다들 가만히 있어요. 카메라 촬영 계속하세요.”

PD가 끼어들려는 조연출을 다급히 말렸다.

지금껏 수많은 예능을 찍어 온 연출자로서의 감각이 날카롭게 울렸기 때문.

‘뭔가 있다.’

둘의 표정, 말, 분위기를 보면 알 수 있다.

둘 사이엔 뭔가 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냄새가 난다. 대박의 냄새가 나.’

설날 특집 파일럿으로 잡힌 프로그램이지만 시청률만 터져 준다면 정규 프로그램으로 바꿔 줄 거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건 시청률 대박.

이를 위해서 필요하다면 과한 연출도 서슴지 않으려 했건만.

‘오히려 훨씬 쉬워지겠어.’

지금은 흘러가는 대로 놔누면 될 듯싶었다.

PD가 숨을 죽이며 이혜원과 강현을 바라볼 때.

[아이돌 헌터 이혜원의 신뢰도와 호감도가 크게 올랐습니다]

이혜원은 지금이 촬영 상황이라는 것도 잊고선 감동하고 있었다.

‘이건 운명이 아닐까?’

그래, 운명.

백화점에서도 그랬다.

죽을 위기에 빠졌을 때 강현이 나타나 구해 주었다.

자신이 외로움에 떨 때는 그의 할머니와 동생에게 위로를 받았다.

지금도 마찬가지.

“아니, 우리가 이제 막 나온 신인도 아니고 군대 훈련을 어떻게 해요! 진짜 대표님 미친 거 아니야?”

멤버들이 군대 촬영을 반대할 때.

“가 보고 싶어요!”

오히려 이혜원만은 강력히 찬성했다.

그냥.

‘어쩌면 그 사람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단순하지만 강력한 예감 때문.

강현이 군인, 그것도 특임대 소속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설 특집 촬영으로 특임대를 간다고 할 때.

어쩌면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그리고 그 기대가 이루어진 순간.

“참 예상치 못한 곳에서 자주 만나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건강해 보입니다.”

“덕분에… 감사해요.”

이혜원은 확신했다.

‘운명이구나, 이 남자.’

강현과 자신의 만남은 운명이라고.

물론 아이돌 생활에 치여 제대로 연애 한번 해보지 못한 이십 대 초반의 순진한 상상이었으나.

그러면 어떤가.

“최강현… 님을 만나서… 다행이에요.”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히며 귀밑머리를 넘기는 그녀의 모습이 이렇게 아름다운데.

자리에 있던 현장 스테프, 조명, 카메라 할 것 없이.

그녀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싱그러운 기운에 압도당했다.

마치 드라마의 여주인공 같은 표정과 대사.

물론 이런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언니? 정신 차려요.”

“강현아? 아는 사이야?”

이혜원과 강현에게 대체 무슨 사연이 있는지 물었고.

“백화점 납치 사건 때 생존자 중 한 분이었습니다.”

“날 구해 주신 분… 이야.”

강현의 담담한 목소리와 이혜원의 촉촉한 목소리가 동시에 울리자.

“어머머! 정말? 정말로?”

“진짜야? 그때 생존자분이시라고?”

멤버들과 서윤진 대위가 눈을 둥그렇게 뜨며 놀랐다.

그러나 반응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미쳤어, 미쳤어. 대박 저 잘생긴 사람이랑 아는 사이라는 거네?”

“대박… 여기서 구해 준 특임병이랑 만난 거래! 그냥 아는 사이가 아니라 생명의 은인인 거네!”

“이거 완전 드라마잖아!”

여자 스태프들은 물론.

“와, 이거 말이 되는 소린가?”

“이런 우연이 있다고? 대박이네.”

“아, 그럼 저런 표정이 나올 만하지.”

“이 드라마 몇 시에 하냐?”

평소 무신경한 남자 스태프들마저도 둘을 흥미진진한 눈으로 볼 정도.

주변의 술렁거리는 반응을 본 PD가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며 확신했다.

‘시청률 대박이다!’

[인물 퀘스트 햇빛의 후예를 시작합니다!]

[출연자 맨발의 디바가 위기에 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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