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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수집으로 무한성장-134화 (134/277)

134화 제로백

무겁다.

강현이 처음 선설민 중령의 주먹을 마주하고는 느낀 감상이었다.

그런데.

‘무거워도 지나치게 무겁잖아!’

한 번의 주먹질이라 하기엔 너무 묵직했다.

마치 거대한 철퇴를 상대하는 기분.

강현이 해파칠십이검을 휘두르면.

서른다섯 번의 빡빡한 검격 사이로 주먹이 머리를 들이밀었고.

투투투투퉁!

공격을 그대로 받아 내며 안으로, 더욱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파도를 밀고 들어오는 단단한 바위!

정확히 서른다섯 번째 검격이 주먹을 때리자.

파앙!

“흡!”

“으윽!”

비로소 선설민의 주먹이 뒤로 튕겨 나갔다.

“놀랍군. 이 정도의 깊이일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그가 튕겨 나온 주먹을 당겨 자세를 바로잡으며 감탄한 눈으로 강현을 보았다.

“아직 더 남았습니다.”

강현이 마주 얼굴을 굳히며 목검을 치켜들자.

“그 깊이, 확인할 예정이네. 직접.”

선설민이 예전 처음 만났을 때처럼 짧게 끊어 말했고.

“하, 저 녀석 아직도 버릇을 못 버린 건가?”

검성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저놈 종종 말을 이상하게 하곤 했거든. 나랑 강준진이가 그렇게 뭐라 했는데도 그대로구먼.”

강준진 준장이 검성의 후임이었듯 선설민 중령도 마찬가지.

지금이야 지휘관급이니 현장에 잘 나가지 않았지만.

“한창 활동할 때 녀석에게 붙여 준 별명이 있었지.”

예전에는 검성과 강준진, 선설민이 한 필드에서 활동하던 때가 있었다.

“선설민, 말수가 줄어들수록 강해지는 인간. 즉 감언증력이라고 말이야.”

감언증력.

이석천이 농담처럼 붙여 준 별명.

그리고 여기엔 한 가지 법칙까지 있었다.

“방금 세 번 끊어 말했으니까 3단계. 최소 대위급 전투력으로 평가받았네. 축하한다, 강현아.”

두 번 끊어 말하면 2단계, 최소 소령에 준하는 능력.

물론 자신의 계승자가 높이 평가받는 것만큼 좋은 일은 없겠지만.

‘말로만 떠들지 말고 좀 말려 봐요!’

당사자인 강현의 입장에선 오히려 황당한 소리.

아직 2단계, 1단계가 더 남았다는 소리 아닌가!

선설민이 더는 기다릴 생각이 없는지 오른 주먹을 허리춤에 붙이곤.

“간다, 주먹, 견뎌라.”

정말 세 번 끊어 말함과 동시에.

오른 주먹을 천천히 내밀었다.

콰르르!

진짜 소리가 들리진 않았으나 귓가에 무언가 휘몰아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선설민이 뿜어낸 힘 때문에 일그러진 공간이 그의 주먹을 중심으로 강현을 향해 전진했고.

“하압!”

[예민한 감각 특성을 대여합니다. 검존을 활성화합니다!]

강현이 이에 맞서 자신의 공간을 점유했다.

공간과 공간의 부딪힘.

마치 일류 헌터들의 싸움을 보는 듯한 풍경.

강현이 일 호흡, 서른다섯 번의 검으로 선설민의 위력을 찢었고.

선설민이 자리에서 뛰쳐나오며 이번에는 진짜 주먹을 내뻗었다.

단순하지만 강한 연계.

강현이 아슬아슬하게 선설민의 주먹을 피했고.

이어지는 공방.

한 치 양보 없는 싸움처럼 보였으나.

“왼팔 사용 안 하실 겁니까?”

선설민은 강현에게 군단 마크를 뜯긴 이후 의도적으로 왼팔을 사용하지 않는 중.

그렇기에 지금 이 팽팽한 균형이 유지되고 있었다.

강현으로선 다행이면서도 자존심 상하는 일.

그러나.

“군단 마크가 없으니, 왼팔도, 없다.”

선설민 중령은 무표정으로 자기 뜻을 관철할 뿐.

지금껏 흔들리지 않고 군인 정신에 매진해 온 그답다고 할 수 있겠으나.

“그럼 이번엔 다른 곳을 받아가겠습니다!”

강현은 다행이라는 생각 따위 하지 않았다.

버티라고?

‘이긴다!’

이번 산군 서대호와 싸우며 느낀 힘의 격차.

물론 지금껏 위기가 없었던 건 아니다.

타란툴라 때도, 듀라한 때도, 데론 때도.

강현은 목숨을 걸었고 능력 덕에 이길 수 있었다.

그러나 서대호는 달랐다.

‘이기지 못한 수준이 아니라 처참하게 졌어.’

심지어 죽기까지 했다.

수복되는 게이트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특임병 선발 대회에 참가하지도 못했겠지.

할머니와 서연인 다시 외롭고 춥고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을 터.

행복을 맛본 뒤에 찾아온 불행이기에 이전보다 더 고통스러웠을 거다.

그렇기에.

‘강해져야 한다. 누구보다, 더욱!’

강현은 더욱 강해져야만 했다.

무기력한 패배 따위 필요 없다.

패배 후 성장?

‘죽으면 성장이고 뭐고 없어!’

강현의 뜻은 확고했고.

전력을 다해 선설민에게 달려들었다.

“하압!”

강현이 해파칠십이검을 뿜어내며 선설민을 압박.

선설민의 팔과 몸 이곳저곳을 노리며 쓰러뜨리려 했으나.

상대의 묵직한 주먹에 점점 뒤로 밀릴 때.

[이전 얻었던 혜택 검성의 오래된 연무장에 접촉했습니다!]

[새로운 고물 검성의 오래된 연무장을 획득합니다! 연무장에 서린 경험치와 기억을 흡수합니다!]

[검성 이석전의 기억 조각 모음: 39… 40%!]

[기억 조각이 일정 비율 이상 모였습니다. 검성의 기억 조각과 장소 혜택을 결합합니다! 보상이 강화됩니다!]

‘연무장을 고물 판정했다고?’

강현이 새롭게 떠오른 고물 획득 알림을 보며 미소 지었다.

그래, 이번엔 어떤 능력이냐?

더군다나 이번에는 검성이 병사 시절 사용했다던 연무장이니 무언가 특별한 능력을 줄 터.

‘이왕이면 해파칠십이검을 강화해 주면 좋겠는데.’

강현이 선설민의 공격 막아 내며 새롭게 떠오를 알림을 기다릴 때.

[장소 특성으로 검성 이석천의 병사 시절 모습을 재현합니다!]

“야! 이것 봐라!”

오르라는 스킬 레벨은 안 오르고 검성 이석천의 목소리만 잔뜩 달아올랐다.

강현이 그쪽으로 고개를 돌린 순간.

“보이냐? 이거 보여?”

이석천이 강현과 같은 군복을 입은 채 서 있었다.

그런데 계급이 좀 이상했다.

‘병장?’

가슴에 달린 작대기 네 개.

변한 건 복장만이 아니었다.

“이 뽀송뽀송한 피부 보이냐고! 20대 때 모습으로 변했잖냐! 우하하!”

이전에는 삶에 찌든 중년 아저씨 같은 외모였다면.

지금은 강현과 비슷한 또래의 모습.

이러한 변화가 기분 좋았는지 검성이 방방 뛰기 시작했고.

“어어?”

강현도 덩달아 뛰었다.

물론 젊어진 검성을 보자 기뻐서 그런 게 아니었다.

검성의 행동과 완전히 같은 움직임.

[장소의 주인과 강력한 유대감을 보입니다. 직접 능력을 사사할 수 있습니다]

[검성 이석천의 행동을 그대로 복제합니다!]

물론.

“지금, 내 앞에서, 장난치는 건가?”

강현의 사정을 모르는 선설민의 눈에서 푸른 투기가 폭사되었고.

“아닙니다. 절대로 아닙니다!”

강현이 다급히 아니라고 외쳤지만.

“야, 선설민이 이거 보이냐? 이 형님 젊어진 거 보이냐고 인마!”

신난 이석천이 꿀렁거리며 춤을 추자.

꿀렁꿀렁.

강현의 몸도 덩달아 꿀렁거리기 시작했다.

누가 보아도 명백한 놀림.

“그 행동, 군인의 자세, 아니다!”

물론 그 찰진 꿀렁임은 선설민의 분노를 일으켰고.

그가 온 힘을 담아 강현의 머리통을 향해 주먹을 내뻗는 순간.

꾸우울렁.

강현이 허리를 기묘하게 젖히며 공격을 피해 냈다.

그리고 이어진 선설민 중령의 공격에도.

몸에 뼈가 사라진 것처럼 흐물거리는 움직임으로 모든 주먹을 회피.

심지어는.

“하앗!”

선설민이 강력하게 주먹을 내뻗자.

강현이 그 주먹의 힘을 역이용해 공격을 튕겨 냈다.

“…….”

연무장에선 끊임없이 꿀렁거리는 강현과 분노한 선설민이 대치한 상태.

“기억났다.”

비로소 선설민이 흥분을 가라앉힌 듯 입을 열었다.

“그분께서 사용하던 신법이군.”

선설민의 기억에도 있는 움직임.

흐물거리는 몸짓으로 적의 공격을 무력화, 오히려 상대의 허점을 파고드는 신법.

그러나.

“의외로군… 그분께서도 그 신법은 부끄럽다며 봉인했었는데. 어떻게 얻은 거지?”

검성 이석천마저도 부끄러워했던 숨겨진 기술을 강현이 어떻게 안단 말인가.

“어쩌다… 보니 얻었습니다. 뜻한 건 전혀 아니었습니다.”

강현이 곤란한 얼굴로 말을 얼버무렸다.

사실 필요 없다고 외치고 싶었으나.

옆에선 젊어진 검성이 신난 얼굴로 꿀렁거리는 중.

“관절이 이렇게 탱탱할 수가! 역시 젊음이 좋구나!”

그가 감탄하길 잠시.

강현을 보며 씨익 웃었다.

“봉인할 생각이었다만 생각이 바뀌었다. 이 제일의 신법을 가르쳐 주마.”

아니, 필요 없습니다.

“내가 아닌 네가 쓰는 거니까 부끄러울 게 없지! 나는!”

크하하하!

문득 그 모습을 보며 강현이 이빨을 갈아붙였다.

‘저 인간 사실은 부조리 때문에 잘린 거 아냐?’

그런 속마음과는 다르게 강현의 허리와 각 관절들은 빈틈없이 꿈틀거렸고.

“간다. 이번엔. 파훼하겠다!”

선설민이 진심으로 덤볐다.

그리고 참 기묘한.

“하하! 설민아! 그때도 못 잡았던 움직임을 지금에야 잡겠느냐?”

“으윽! 그 꿀렁거림! 짜증 난다!”

선임과 후임의 대련이 시작되었다.

사이에 낀 이석천의 대리인 강현은.

[새로운 신법 왕꿈틀이를 전수받습니다]

[전수율: 5… 10… 15%]

전혀 반갑지 않은, 듣기만 해도 끔찍한 이름의 신법을 전수받는 중.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하압! 으압!”

강현이 그의 공격을 피하면 피할수록 선설민 중령의 평정심이 깨져 나갔다.

이 치열한 대련 속에서.

“녀석아, 이름이 창피하다고 위력마저 별로일 거라 생각했냐?”

검성의 교육이 이어졌다.

“모름지기 강력한 힘은 탈력에서부터 나온다. 네 녀석도 해파칠십이검을 처음 휘둘렀을 때 느꼈을 거 아니야?”

물론 강현도 해파칠십이검을 펼칠 때 탈력 이후 일제히 힘을 폭발시키는 수법을 사용했다.

그러나 이를 이용해 적의 공격을 흘리는 신법이라니.

“이 탈력을 극대화. 적의 공격을 완벽히 흘리고 흘리다가.”

꾸울렁.

검성의 움직임을 따라 강현이 허리를 크게 뒤틀며 뒤로 물러났고.

“상대가 빈틈을 노출한 순간.”

흥분한 선설민의 주먹이 크게 빗나갔다.

자연스레 드러난 틈!

“탈력을 힘으로 전환! 적을 벤다!”

[전수율: 99… 100%!]

[새로운 스킬 신법 왕꿈틀이를 획득하였습니다!]

[기존 스킬 능숙한 움직임과 신법 왕꿈틀이를 결합합니다! 새로운 스킬 제로백을 획득했습니다!]

[완전 탈력 상태에서 스킬 최대 출력까지 걸리는 시간이 대폭 감소합니다!]

[제로백 스킬이 해파칠십이검을 보조합니다!]

꿀렁거리던 몸이 거칠게 약동함과 동시에.

강현의 몸 안에 담겨 있던 힘이 일순간에 튀어나왔고.

피피피피핑!

강현의 검이 선설민의 눈앞을 덮으며 몰아쳤다.

“하!”

선설민의 무감정하던 얼굴에 짙은 호승심이 피어났다.

자신을 몰아붙이는 자를 만나는 게 얼마 만이란 말인가!

물론 전력을 다한 건 아니었어도 눈앞에서 괴물같이 성장하는 사람과 실력을 겨룬 건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그래서 더 질 수 없지!’

아무리 그가 강현을 어여삐 여긴다 해도 져 줄 순 없는 법!

이래 봬도 대대장이다.

일병에게 밀릴쏘냐!

“간드악! 군인 정신! 최 소위!”

“일병입니다!”

둘의 목검과 주먹이 거세게 부딪혔고.

콰앙!

“끄으윽!”

거친 흙먼지 속,

튕겨 나온 건 강현이었다.

“크헉!”

그가 바닥에서 몇 번 구른 뒤 나무에 몸을 부딪치기 직전.

“잡았어!”

기다리고 있던 서윤진 대위가 강현을 받아 들었다.

그녀가 강현을 뒤에서 안으며 충격을 완화했고 그대로 나무에 기대며 스스륵 주저앉았다.

나무 아래, 강현이 서윤진에게 안긴 모양새.

“고생했어, 강현아.”

“일병 최강현. 감사합니다.”

서윤진이 강현의 어깨에 턱을 올리며 입을 열었다.

“너무 실망하지마. 대대장님은 현재 중령, 대령 라인 중에선 최강이시거든.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

서윤진 대위가 턱을 움직일 때마다 옅은 진동이 느껴졌다.

아마 강현이 패배에 마음 쓸까 봐 위로해 주려는 모양.

“아마 이번 본선에 나오는 친구들은 애초에 주먹 한 방에 떨어져 나갔을걸? 오히려 잘됐어. 대대장님이랑 대련한 만큼 실전 감각도 살았으니까. 이번엔 이 중대장이랑 어때?”

그녀의 질문에 강현이 곤란한 듯 볼을 긁적였다.

“너무 힘을 빼면 정작 본선에서 힘들 것 같습니다.”

“히잉, 그 꿈틀거리는 거 경험해 보고 싶었는데.”

서윤진이 아쉬움에 입술을 삐죽거릴 때.

“크윽! 최강현 이 녀석!”

먼지구름이 걷히면서 선설민 중령의 모습이 나타났다.

분명 상처 하나 없는 멀쩡한 모습이었으나.

잔뜩 구겨진 얼굴이 뭔가 문제가 있는 모양.

대대장의 얼굴을 마주한 강현이 씨익 미소지었다.

“그 왼팔 결국 쓰셨습니다.”

갑작스레 크게 성장한 강현의 실력에.

선설민이 본능적으로 왼팔을 들어 강현을 공격한 것.

사실, 보통이라면 달린 팔이니 사용했다고 변명하겠지만.

“이번엔… 나의 패배다!”

선설민은 그렇게 융통성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의 군인 정신이 용납할 수 없는 변명.

“내가 졌구나.”

그가 담담히 패배를 인정했고.

“아닙니다. 오히려 지금까지 봐주신 것 알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대대장님. 반드시 이번 최강 특임병 대회 우승하겠습니다! 충-성!”

“충성! 감사합니다! 대대장님!”

강현과 서윤진이 벌떡 일어서서 경례했다.

[특임제일병 연계 퀘스트 진짜 예선전을 성공했습니다]

[선설민을 이겨서 기존 성공 조건- 선설민 중령의 묵직한 공격을 버텨라를 초과 달성했습니다!]

[보상으로 썩은 물 역류 퀘스트에서 선설민의 조력을 받을 수 있습니다!]

[목표 초과 달성으로 인해 보상이 강화됩니다!]

[선설민 중령의 조력이 대폭 강화됩니다!]

[히든 조건 왼팔은 어디 두고 왔나를 완료했습니다]

[이후 메인 퀘스트에서 선설민의 생존 확률이 올라갑니다!]

본선 날 아침이 밝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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