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물수집으로 무한성장-130화 (130/277)

130화 작고 소중한

“사람이 능력을 개방할 때가 언제라 생각하나.”

“……?”

“심장을 고블린이 꿰뚫었을 때? 아니야.”

“무슨……?”

“불치의 병에 걸렸을 때? 아니지!”

“대체 뭔 개소리를.”

“특성석 스프를 마셨을 때?”

“그만…….”

“아니다!”

모두가 바라는 시스템 창과 능력은 대체 어떻게 찾아오는가.

한 박사는 말했다.

“그건 바로!”

“그건 바로?”

“사람이 가장 꿈꾸는 것을 만났을 때다!”

자신이 원하는 진정한 소망을 만났을 때 능력을 개방한다는 이야기.

얼핏 들으면 말도 안 되는 가설은 아니나.

“그럼 나는 노가다를 가장 꿈꿨단 말이네?”

“나는 똥 싸다 개방했는데?”

“난 대가리에 공 맞고 개방했는데?”

“난 트럭에 치여서…….”

실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말도 안 되는 소리.

아마 강현이 이 말을 들었다면 대번에 화를 냈을 거다.

“나는 그럼 군대를 꿈꿨냐!”

군대에서 능력을 개방했는데 그럼 군대가 아주 적성이겠네! 간부라도 해야겠어!

물론 이 소리를 들었다면 선설민 중령이 이때다 싶어 달려왔겠으나.

강현은 결코 이 이론에 동의하진 않을 거다.

다만.

“너무 많이 마주쳐서 그런가?”

강현이 거실을 보며 멍하니 중얼거렸다.

최근 마나 홀로그램, 서윤진, 황세아, 이혜원 그리고 오빠인 강현까지.

서연이 주변엔 온통 능력자, 마나 관련된 것들뿐이었고.

심지어 구찌는 신수 중에 신수라는 피닉스이니.

어쩌면 지금껏 쌓여 왔던 마나나 능력에 대한 잠재력이 이번 구찌가 흩뿌린 정화의 기운, 환상의 불꽃과 맞물려 깨어났을지도 모르겠다.

이성적으로는 그렇게 생각하긴 하는데…….

폴짝, 폴짝.

“차 한잔 드릴까요?”

“…어, 그래 줄래?”

쪼로로록.

강현의 앞을 걸어 다니던 찻주전자가 머리를 기울여 찻물을 쏟아 냈고.

“핫뜨뜨! 아직 너무 뜨거우니 좀 식으면 알려 드릴게요.”

“…어, 고맙다.”

찻잔이 자기 머리통 속 가득한 찻물이 뜨겁다며 호들갑 떠는 모습을 멍하니 지켜봤다.

그리고 밖에선.

“꺄르륵! 아, 간지러워!”

“서연 아가씨, 이쪽입니다! 이쪽!”

“같이 놀아요!”

마당에 서 있던 멋들어진 소나무와 이름 모를 키 작은 관목들이 뿌리째 걸어 다니며 서연이와 같이 뛰어노는 중.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눈을 비벼 봤지만 현실이었다.

“차가 알맞게 식었네요. 이제 드셔도 됩니다.”

찻잔의 자신 있는 말에 강현이 저도 모르게 호로록 찻물을 들이켰고.

“으음……!”

정말 완벽한 온도에 감탄했다.

더불어 맛과 향까지 좋았다.

분명 싸구려 티백에 불과했는데 어떻게?

“트월킹 차 제조 갑니닷!”

“꺄악! 주전자 오빠 멋져!”

“오빠 몸짓 화끈한 거 봐!”

상 중앙, 주전자가 티백을 담은 채 허리를 거칠게 흔드는 모습이 보였고.

주변에선 반투명한 날개를 단 요정들이 환호하며 박수를 치고 있었다.

그야말로 정신이 나갈 것 같은 풍경.

이 모든 건 서연이의 능력에서 비롯한 현상이었다.

“뀨우우우!”

구찌가 성장하며 정화의 기운과 환상의 불꽃을 내뿜는 순간.

[추가 정보: 능력 각성 중]

서연이의 인물 창이 갱신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추가 정보: 능력 각성 완료]

인물 창이 다시 한번 갱신되었다.

동시에.

파르르르르륵!

서연이의 방을 비롯한 집 곳곳에 쌓여 있던 8절지 스케치북들이 넘어가기 시작.

크래파스와 색연필로 그린 서연이의 작은 꿈들이.

퐁, 포퐁!

스케치북에서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곤 거실을 차츰 점령하더니 3층 주택을 가득가득 메워 버렸다.

“서연아, 일단 상태창 열어서 능력을 멈춰 보자.”

강현이 처음엔 서연이의 능력을 조절하려고 시도했으나.

“오빠… 나 친구들 생겼오!”

눈물을 글썽거리며 좋아하는 동생을 보자 말문이 턱 막혔다.

강현의 가슴 속에서 울컥 솟아난 감정을 뭐라 해야 할까.

측은함? 슬픔? 동정심? 기쁨?

어린 동생의 티 없는 미소에 강현이 침묵하길 잠시.

그래, 많이 외로웠구나.

예전 어느 날, 강현이 짬을 내어 지금보다 더 어렸던 서연이를 데리고 놀이터에 나가면.

어린 동생은 부모님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아이들을 한참 바라보기도 했다.

“오빠… 엄마 아빠는 오디 있어?”

“…잠깐 아주 잠깐 멀리 가셨어.”

저도 모르게 불쑥 튀어나오는 질문에 강현의 얄팍한 변명이 이어졌고.

“웅. 천 밤 자고 나면 오눈 거지?”

“그럼, 그럴 거야.”

지키지 못할 약속만 쌓여 갔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자 서연이는 체념한 듯 아니면 현실을 깨달은 듯.

다른 아이들을 바라보지도, 부모님의 행방을 묻지도 않았다.

그냥 오빠가 곤란해하는 게 싫었으니까.

이 소중한 시간을 그런 질문에 허비하는 게 싫었고 어차피 이해 못 할 소리를 듣는 것도 싫었다.

서연이의 어릴 적 기억은 기다림과 외로움.

강현과 할머니도 최선을 다했지만.

부모님의 빈자리를 완전히 채울 순 없었다.

사실, 하루하루 삶을 이어가는 게 더 급했다.

“할머니, 다녀오세요!”

“오빠, 다녀오세요!”

생존을 위해 할머니와 오빠가 나가고 나면.

슥, 스슥.

어린 서연이는 혼자 남아 스케치북 위에 그림을 그렸다.

투덜거리지도 울지도 않았다.

깊은 새벽, 어디선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 눈을 떠보면 눈물을 흘리며 무언가 기도하는 늙은 할미의 모습을 보았기에.

깊은 밤, 자신과 놀아 주던 오빠가 학교에 이은 아르바이트에 지쳐 자기도 모르게 잠든 모습을 보았기에.

“음, 우리 서연이 놀아 줘야… 하는데.”

심지어 잠꼬대 중에도 서연이를 생각하는 강현을 보았기에.

서연이는 어릴 적부터 참고 또 참았다.

그래도 최근에는 행복했다.

한지윤, 이혜원, 서윤진 등 이쁘고 착한 언니들과 놀 기회도 많았고 마나 홀로그램 같은 신기한 장난감들도 생겼다.

그러나.

“오빠, 군대에서 언제 와?”

그들이 강현의 빈자리를 채울 순 없는 노릇.

항상 옆에 누군가 있을 수도 없는 노릇.

당연히 서연이는 혼자 기다렸을 거다.

참고 또 참으면서.

‘이젠 같이 뛰놀 친구들이 있어서 다행인 건가…….’

강현이 밖에서 폴짝폴짝 뛰어다니는 서연이를 바라보고 있을 때.

“에그머니나! 이게 뭐야?”

마침 할머니가 대문을 열고 들어서다 이 광경을 목격했고.

화들짝 놀라며 손에 든 저녁 찬거리를 툭 떨어뜨렸다.

장바구니가 쏟아지기 전.

“아구구! 이거 집안으로 옮겨 드려요?”

마당에 누워 있던 잔디들이 일제히 일어나 낑낑거리며 장바구니를 옮기기 시작했다.

“대체… 이게?”

“오셨어요? 잠시 서연이에 대해 이야기 좀 해야 할 거 같아요.”

강현이 아직도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지 못하는 할머니를 보며 곤란한 미소를 지었다.

* * *

꽤 오랜 설명 끝.

“그랬구나. 그런 거였어.”

할머니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능력이 뭔지 시스템이 뭔지 완전히 이해는 못 했지만 이것만은 알았다.

“서연이가 행복을 찾았다는 게지?”

“……!”

할머니가 부드러운 얼굴로 찻잔을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내가 떠나도 저 어린아이가 자기 길 찾고 또 웃으며 지낼 수 있다는 게지……? 그거면 되었다. 어쩌면 하늘께서 내 소원을 이루어 주셨는지도 모르겠구나.”

“할머니…….”

이건 또 예상치 못했던 반응이라 강현이 당황했다.

강현의 놀란 얼굴을 마주한 할머니가 빙그레 웃었다.

“강현아.”

“네, 할머니.”

“이 할미도 언젠간 떠나지 않겠니?”

“그건…….”

생각하고 싶지 않아요.

강현이 속으로 투정을 삼켰고.

속마음을 듣기라도 했는지 할미가 주름진 손으로 강현의 손을 붙잡았다.

전해 오는 마음은 따뜻했지만 정작 할머니의 나이 든 손은 차가웠다.

“최대한 너희들이 어른이 되고 자신의 길을 걸을 수 있을 때까지 옆에 있고 싶지만. 사람 일이란, 또 하늘의 뜻이란 모르는 법이란다.”

“…….”

“세상에 홀로 남을 너희가 얼마나 외롭고 힘겹게 살아가야 할지. 얼마나 겁이 났는지…….”

“왜 그런 말을 하세요…….”

할머니의 갑작스러운 고백에 강현의 얼굴이 어두워졌지만 그녀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특히, 이 할미 떠나면 어린 동생까지 떠안고 누구에게 하소연도 못 한 채 속만 썩어 갈 강현이 널 생각하니 마음이 미어지더구나.”

아마 강현이라면 그랬을 거다.

“그런 오빠에게 의지하는 게 미안해 원하는 거 하나 말 못 하고 어린 시절 전부를 참고 인내한 서연이가. 커서도, 남들 앞에서도 그럴까 봐 얼마나 걱정했는지.”

서연이라면 그랬겠지.

할머니니까, 둘을 어릴 적부터 키웠으니까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기에 강현에게 연장자로서, 보호자로서 조언했다.

“강현아, 언젠가는 서연이도 네 나이가 될 테고 홀로 설 수 있게 해 주어야지. 걱정하는 부분은 이해하지만 차라리 하늘의 뜻일지도 모르겠구나.”

“그건…….”

“할미에게 삶을 찾으라 했듯이 강현이 너도 차차 삶을 찾아갔으면 한단다. 이 할미는.”

“저는 괜찮아요… 할머니랑 서연이가 행복할 수 있으면요.”

강현의 답에도 할머니는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아니 서연이가 힘들어할 거야. 강현아. 저 배려심 많은 아이가 오라비의 젊은 시절을 잡아먹고 난 삶을 편하게 살 것 같으니?”

“…아니요.”

“그래, 아마 오빠에게 뭐라도 하나 갚고 도와주기 위해 찾아보고 참아 보고 하겠지. 결국 서로가 서로를 희생하는 상황 밖에는 생기지 않는단다.”

오랜 연륜에서 나온 조언.

할머니가 강현이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던 부분을 정확히 짚었다.

“서연이… 아직 많이 어린걸요. 헌터는 너무 힘들고 위험해요.”

“알지. 강현이 네가 일주일 동안 돌아오지 않았을 때 얼마나 뼈저리게 느꼈는지. 그러니 지금 맞이한 축복은 축복으로 받아들이고, 찬찬히 길을 찾아보는 게 어떨까. 나중에 서연이가 더 크고 나면 우리가 찾아 준 길 중 하나를 선택하지 않겠니?”

“그래도 괜찮을까요?”

“그럼! 이 할미가 아직 살아 있잖니.”

할머니의 따뜻한 장담에 강현도 얼굴에 가득했던 걱정을 지우며 미소를 띄웠다.

이번 산군과 아들 서재원의 비극을 보며 강현의 마음속에 불안함이 자리 잡았고.

서연이가 능력을 개방한 순간.

미래에 대한 불안함에 정작 축하해 주지 못했다.

그러나 이젠 홀로 걱정하고 감당하려 하지 않아도 된다는 할머니의 말.

“그러니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고 일단 서연이가 작은 행복이나마 찾은 걸 먼저 축하해 주자꾸나.”

“네, 할머니.”

강현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의 미래를 위해.

* * *

“오빠… 다시 군대 가는 거야? 구찌야도?”

마당 앞, 서연이가 울먹거리며 강현을 올려다봤고.

“어쩔 수가 없네.”

“뀨우우…….”

서연이가 강현과 구찌를 보며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커다란 눈망울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게 울음을 참는 모양.

예전이었다면 혼자 있을 동생을 생각하며 마음 아파했겠지만.

“서연이, 친구들이랑 같이 놀면서 기다리면 오빠 금방 올게.”

“정말?”

“그럼!”

서연이는 이제 혼자가 아니었다.

주변에 주르륵 늘어서 있는 작은 요정들과 나무들, 찻잔과 장롱 등 가구까지.

서연이의 환상과 꿈이 만들어 낸 능력 덕에 외롭지 않을 터.

“다들 우리 동생 잘 부탁해.”

“알겠습니다! 행님!”

“맡겨만 주십시오!”

뭔가, 조직폭력배 같은 대답에 강현이 피식 웃고는 집 대문을 나섰다.

그리고.

“오늘은 데려다 주러 왔네. 혹시 몰라 내가 직접 왔어.”

“한 팀장님!”

한진명이 그날 봤던 것과 같은 세단 옆에서 강현을 맞이했다.

“타시죠, 도련님.”

“그럼 감사히.”

한진명이 너스레를 떨며 문을 열어 주었고 강현이 뒷좌석에 올랐다.

차가 부드럽게 집 앞을 벗어났고.

둘 다 부대 앞에 도착할 때까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냥 그래도 편했다.

부대 앞에 도착한 강현이 차에서 내렸고 한진명이 따라 내린 후.

“그럼 강녕히 들어가십시오! 도련님!”

“…아니 그렇게 안 하면 안 될까요?”

곤란해하는 강현을 보며 한진명이 밝게 미소 지었다.

그가 보기에 강현이라는 청년은 이런 점이 참 멋졌다.

흔들리지 않고 방방 뜨지 않는 거.

나이답지 않은 침착함과 겸손함 그리고 당당함.

‘다들 좋아하는 이유가 있지.’

마지막으로 둘이 서로 굳건한 악수를 나누었고.

“건강히 다시 봬요.”

“그래, 틈틈이 좋은 소식 전하마. 할머니랑 서연이 걱정 말고.”

그제야 강현이 한 가지 부탁을 기억해 냈다.

“참! 그 따님께 서연이 잘 부탁한다고 좀 말해 주세요. 아마 이렇게만 전해도 알 거예요.”

“알았다, 전하마.”

[동생 서연이 옆에 새로운 길잡이, 스카우터 한지윤이 붙었습니다. 서연이에게 알맞은 진로를 탐색합니다]

[서연이의 성장 속도 및 진로 탐색 속도가 높아집니다! 당신을 뜻을 알고 있는 한지윤이 안전한 진로를 찾아 줄 겁니다!]

강현이 눈앞에 떠오른 알림을 보곤 안도하며 부대로 발걸음을 옮길 때.

한진명이 얼굴을 굳히며 강현에게 충고했다.

“강현아, 누군가 네 정보를 팔아먹으려 한다는 거 알고 있냐?”

“네? 제 정보요?”

“역시. 강현아, 명심해라. 특임대에 있는 사람이 모두 전우가 아님을… 누군가는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움직이고 있다. 산군께서 한 말씀 기억하지?”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하라는 말이요?”

한진명이 고개를 끄덕거릴 때.

“최강현 일병? 맞나?”

대화를 나누는 강현과 한진명 쪽으로 누군가 다가왔다.

사복을 입었으나 짧은 머리, 자연스러운 하대.

강현이 의아한 표정을 짓자, 상대가 자신을 소개했다.

“어, 나 수사팀 정 중사야.”

“충성.”

“휴가 복귀?”

“네. 그렇습니다.”

“휴가라…….”

그가 강현과 한진명을 아니꼬운 눈으로 쓸어 봤고.

“들어가서 이야기하지.”

정 중사라 자신을 소개한 수사관이 강현의 어깨를 강하게 움켜잡는 순간.

[부대 퀘스트 썩은 물 역류를 시작합니다]

강현이 한진명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고.

[조력자 한진명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결과를 기다립니다]

한진명이 조용히 그러나 확고히 강현을 도울 것을 표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