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화 하고 싶었던 거야? 진화?
“경기도 남양주 국도에서 헌터와 빌런 간의 전투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었으며 빌런의 공격으로 민간인이 사망. 빌런은 현장에 있던 헌터에 의해 제압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총 사망자는 2명, 사상자는 3명으로 심각한 화상을 입었다고 하는데요.”
강현과 빌런의 전투 이후.
당연히 이 싸움은 매스컴을 타고 퍼져나갔고.
몇몇 기자가 현장에 있던 헌터가 누구였는지 추적하려 했으나.
“산군 길드의 책임이며 관련자를 찾아내고 있습니다. 화상을 입은 직원들에게는 최선의 치료와 이후 보상을 약속하였으며 사망 직원 가족들에겐 보상금과 함께 이후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지원을 할 예정입니다.”
기자들이 무언가를 하기도 전에 산군 길드에서 선수를 쳤다.
모든 사건은 헌터들 간의 다툼 때문에 생긴 사고이며 자신들의 책임.
이후 피해자들과 그들의 가족들에게 최대한 많은 보상과 함께 사과가 이어졌고.
“쯧, 운이 없었지 뭐.”
“그래도 산군 길드 소속이라 그 정도 보상이라도 받은 거지. 100억 넘게 받았다며?”
“연금 형식으로 생활비도 꾸준히 지원하겠다고 했다더라.”
“죽은 사람들만 안됐네.”
“다른 길드였으면 쥐도 새도 모르게 덮었거나 제대로 보상도 못 받고 끝났을걸?”
여론 또한 금방 관심을 거두었다.
오히려 산군 길드가 건네주었다는 거액의 돈과 완벽한 사후 처리에 관심이 쏠렸다.
남의 죽음은 그저 화젯거리에 불과한 법.
게이트가 생기고 빌런들이 등장한 이후.
이런 허망한 죽음이 익숙해진 시대였기에 다들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
처음엔 빌런을 잡았다던 헌터를 찾아다니던 기자들도.
“산군 길드 내부에서 알력 다툼이 있답니다. 한진명 그 사람이 반기를 들었다는 소문이 있더군요.”
“한진명이요? 그럴 리가… 혈족들이 산군 서대호의 실각을 노린 사건이라는 말이 나돌던데요.”
“그래? 한번 파 봐. 뭐라도 나오겠지.”
산군 길드 내부에 문제가 있다는 걸 감지하고는 시선을 모두 그쪽으로 돌렸다.
물론 이 모든 과정은.
“처리 끝났습니다, 길드장님.”
“고생했어, 한 팀장.”
산군 서대호와 한진명 팀장의 의도.
분명 산군 길드 내부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이 흘러 나가면 길드 이미지에 타격이 있을 거다.
거기다 이번 빌런 사건의 희생자가 산군 직원들이니 더욱 위험한 선택.
보통이라면 내부 균열에 대해선 적당히 무마하고 적당히 가리며 넘어갔을 터.
그러나 서대호와 한진명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 친구는?”
“좀 충격이 있는 듯하지만… 잘 이겨 내고 있습니다.”
“최대한 언론 시선 돌리게… 그 친구의 이름도, 흔적도 나와선 안 돼. 길드 살점을 내주는 한이 있더라도 지켜야 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한 팀장의 대답에 산군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산군 서대호의 의지는 분명했다.
최강현. 승냥이 같은 언론과 다른 길드들의 정치 싸움에서 그 친구를 지킬 수만 있다면 자신의 팔 한 짝도 아깝지 않을 정도.
왜냐면 이제 강현은 단순히 서대호가 시험하고 이끌어 줄 후배가 아닌.
“나와 내 아들의 은인이니까 말이야.”
“길드장님의 은인은 곧 길드의 은인. 맡겨만 주십시오.”
산군의 그리고 산군 길드의 가장 중요한 은인이니까.
한진명이 길드장의 결심을 읽고선 힘차게 답했다.
“…길드에서 도려낼 부위는 잘 보고 있나?”
“그것도 얼추 잡아 놓은 상태입니다.”
“망설이지 말고 잘라내야겠지. 남김없이.”
“제가 처리할까요?”
“아닐세, 살을 베어 내는 건 내가 할 테니 수술 준비만 해 놓게.”
“알겠습니다.”
이후에도 서대호의 실각을 노렸던 이사, 본부장 등 길드에 위험이 되는 세력과 인물을 어떻게 처리할지 논의하길 잠시.
자연스레.
“아, 안전 가옥은 제대로 섭외했고?”
“네, 안 그래도 사람 보냈습니다. 강현 군도 가족분들도 허락했고요. 그리고…….”
“그리고?”
“서윤진 아가씨도 거기에 갔다고 합니다.”
“…왜?”
“…살겠다던데요?”
“그러니까 왜……?”
“강현이 없는 동안에 안전 가옥에서 같이 지내면서 가족들 지켜 주겠답니다.”
“그러니까 왜!”
“제가 윤진이 속마음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아무리 산군 서대호가 강현을 은인으로 생각한다곤 하지만!
“안 돼! 동거는!”
결혼하기 전에 동거는 안 돼!
김칫국을 거나하게 마시는 그였다.
* * *
게이트에서 나온 이후.
강현에겐 걱정거리가 하나 있었다.
‘나는 강하지만 할머니와 서연이는? 괜찮을까?’
이번 빌런을 상대하며 생긴 걱정.
자신이 군대에서뿐만 아니라 전역하고 나서 헌터 활동을 할 때.
과연 이번처럼 강현만 노린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그럴 리가 없다.
만일 강현이 없을 때 할머니와 서연이가 위험에 처한다면?
또는 둘을 빌미로 강현을 협박하려 한다면?
강현의 고민이 깊어질 때쯤.
[산군 서대호의 호감도가 대폭 올랐습니다. 새로운 혜택을 획득합니다]
[새로운 거주지 안전 가옥을 선물 받았습니다!]
산군 길드에서 강현의 걱정거리를 단번에 해결해 주었다.
“강현 군, 나 한 팀장이야. 다름이 아니라… 그 서연이랑 할머니 말이야. 좀 더 안전한 곳으로 옮겨 드리는 게 어떨까 싶어서. 어어, 그래. 산군 길드에서 따로 준비해 놓은 안전 가옥이 있는데 어때?”
원래 살던 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
자그마치 3층짜리 단독 주택을 안전 가옥으로 내주기로 한 것.
그곳에 도착한 서연이와 할머니가.
“우와!”
“어머…….”
입을 가리며 놀랐다.
집 크기 자체만으로도 놀라웠지만.
“우와, 할무니! 마당! 마당 대따 커!”
서연이가 곧 드넓은 마당을 뛰어다니며 외쳤다.
이전 지내던 곳은 마당이라 할 수도 없는 시멘트 바닥이 전부였고.
아파트에선 층간 소음 때문에 조심스럽게 걸어 다녔던 나날.
그런데 이렇게 커다란 마당이 생기다니!
“구찌야! 구찌야아! 같이 놀자아!”
“뀨뀨!”
서연이와 같은 마음이었는지 구찌가 포로롱 날아오르며 동생의 뒤를 따랐고.
“너무 빠르게 뛰다가 넘어지면 다치니까 조심해.”
강현이 잔뜩 신난 동생을 보며 말과는 다르게 미소 지었다.
안 그래도 한창 뛰어놀아야 할 나이에 그러지 못해서 안타까웠는데.
마당이 생겼으니 이제 마음껏 뛰어놀겠지.
그리고.
“여기 텃밭 만들기도 좋겠구나.”
서연이뿐만 아니라 할머니도 꽤 이 집이 맘에 든 듯했다.
강현이 안에 들어차는 가구와 집기를 보며 이전에 아파트로 이사할 때를 떠올렸다.
이젠 더 크고 좋은 집으로 옮긴 셈.
거기다.
“우선 마나 홀로그램을 집 밖, 집안 전체에 둘렀고, 산군 특별 경호 팀에서 24시간 경호할 예정입니다. 물론 눈에 보이는 곳이 아닌 보이지 않는 곳에 위치할 것이니 가족분들의 스트레스나 불안함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렇군요.”
“뿐만 아니라 원하시면 차량 운전기사와 소규모 경호 팀은 직접 거주할 수도 있습니다.”
“모든 게 공짜라고요?”
“네, 집 비용부터 시설 일체, 경호 팀, 그리고 관리비까지 어떠한 서비스든 일체 무상으로 지원하라는 길드장님의 지시입니다.”
“…그렇군요.”
“원하신다면 즉시 고용인들을 붙일까요?”
잠시 할머니와 서연이를 보던 강현이 고개를 저었다.
“아뇨, 고용인은 괜찮습니다. 다만 주변 경호만 좀 신경 써 주세요.”
“알겠습니다.”
산군 길드 관계자가 공손히 고개를 숙이고는 다시 자신의 업무로 돌아갔다.
‘특별 경호팀에 고용인이라.’
뭐 있으면 꽤 화려하긴 하겠지만.
‘할머니와 서연이가 불편해하겠지.’
강현에겐 둘의 편안한 일상이 최우선이었다.
한창 마당에서 뛰어노는 서연이와 구찌, 그리고.
“크와앙! 호랑이가 나타났다!”
“꺄악! 이뿐 호랑이다!”
“뀨, 뀨!”
서윤진 대위가 보였다.
“크아앙! 서연이 잡아먹어야지!”
“꺄하항! 오빠, 살려 주세여!”
“뀨!”
마당에서부터 오도도 달려온 서연이가 재빨리 강현의 뒤로 숨었고.
서윤진 대위가 그 앞까지 달려와서는.
“다 잡아먹어 버리겠다! 우선 오빠부터 한입! 크앙!”
“아앗, 오빠 안 돼!”
강현과 서연이를 동시에 껴안더니.
강현의 어깨를 쿡 물었다.
둘의 시선이 물끄러미 마주쳤고.
“…크앙.”
“…저 중대장님?”
“…웅?”
“왜 여기에 계신 겁니까?”
강현의 물음에 그녀가 함빡 물었던 강현의 어깨를 놓으며 투덜거렸다.
“쳇, 너희 오빠는 다 완벽한데 단점이 뭔지 아니?”
“웅, 알 거 같아.”
“뭘까아?”
“뭘까아?”
“뀨우~?”
어느새 합심한 셋이 강현의 보며 빙긋거리며 웃었고.
“너모 진지해!”
“그래! 좀 어울려 주면 덧나냐!”
“뀨뀨!”
기껏 즐거운 놀이에 어울려 주지 않는 강현을 타박했다.
“오빠아, 같이 놀면 안 돼? 호랑이 온니도 같이.”
“뀨우…….”
“한입 먹고 싶은데…….”
그리곤 강현 주변에 바짝 붙어선 눈을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마지막 발언은 좀 문제의 소지가 있긴 했지만.
어쨌든.
“그럼 이삿짐 정리 끝나면 그만 노는 겁니다?”
“웅!”
“뀨!”
“좋아!”
셋의 성화에 못 이긴 강현이 잠깐 놀아 주고 난 뒤.
“구찌야! 정리 끝났데. 우리 홀로그램 놀이하러 가자.”
“뀨!”
이젠 거의 한 몸이 된 서연이와 구찌가 함께 거실로 뛰어 들어갔고.
“후우, 동생이랑 구찌랑 너무 귀엽네.”
서윤진 대위가 흐트러진 머릿결을 정리하며 밝게 웃었다.
항상 병사들을 다루는 것만 보다 이런 의외의 일면을 보는 건 처음.
“아이 좋아하십니까?”
“동생이 없다 보니까… 그리고 서연이가 좀 귀여워야지.”
그녀의 가식 없는 칭찬에 마주 웃던 강현이 어두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 사람들도 자식이 있었을 겁니다.”
“강현아…….”
“모두를 지킬 수 있다는 헛된 생각을 하진 않았습니다만… 이런 상황을 원한 건 아니었습니다.”
“알아, 하지만 누구도 널 탓할 순 없어. 넌 최선을 다했고, 잘했어. 큰아버지도 같은 마음이었을 거야. 나도 할아버지도 모두 네게 고맙게 생각하고 있고. 그리고 그 사건에 대해선 우리의 책임이지 네 책임이 아니야.”
어떤 일이 있었는지 들은 그녀이기에 강현을 위로했다.
그리고 그가 지금 어떤 마음인지 이해했다.
“다들 겪은 아픔이고 고민이니까, 조금은 무뎌질 거야. 나도 그랬고, 지금까지 모든 헌터가 모두 그랬거든.”
그녀 또한 겪었고 또 앞으로 겪을 아픔이기에.
강현도 자유롭지는 못할 터.
“무뎌지는 겁니까.”
“물론 무뎌지더라도 익숙해지지는 말아야지, 우린 헌터니까.”
“헌터…….”
“헌터가 된 걸 후회하니?”
서윤진의 물음에 어느새 텃밭 자리를 가꾸는 할머니와 그 옆에 찰싹 붙어 있는 서연이의 모습을 보며 강현이 고개를 저었다.
“후회하진 않습니다. 그저 더 강해지고 싶습니다. 더 강해져서 더 많은 사람을 지키겠습니다. 그리고 웃게 만들겠습니다. 지금껏 그래 왔듯이.”
때로 고난은 사람을 넘어뜨리기도 한다.
그러나 이를 딛고 일어선 이들은 한 단계 성장을 이룬다.
지금 강현은 다시 한번 분명한 목표를 발견했고.
목표를 이루고자 결심했다.
아마 그 누구보다 잘 해낼 거라고, 반드시 이루어 낼 거라고.
서윤진은 강현의 굳건한 눈빛을 보며 확신했다.
“으이구… 때로는 옆 사람에게 기대기도 하라니까.”
오히려 그녀가 본 강현은 너무 홀로 굳건해서 문제.
옆에 있는 사람에게 좀 의지해도 될 텐데.
그럼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텐데.
‘네가 의지한 만큼 나도 의지하고.’
서윤진이 강현의 어깨를 보며 아쉬운 표정을 지을 때.
“난 이 만남 찬성이다. 윤진이가 속이 깊고 마음이 따뜻하다. 너도 알겠지만 멋지지, 능력 좋지, 속까지 깊지. 그런 색싯감이 어딨겠냐.”
검성 이석천이 누가 산군 친구 아니랄까 봐 김칫국을 거나하게 마셨고.
‘이 인간들이 진짜.’
강현이 황당함에 고개를 저었다.
서윤진의 직책은 대위, 바로 강현의 중대장이다 중대장!
실망의 대명사 중대장!
지금은 이렇게 검붉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가련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훈련과 전투 중엔 얼마나 강하고 엄격한지 잘 알고 있다.
물론 합리적이며 현명한 성품, 전우를 위하는 마음, 군단 아니 전군을 통틀어서도 가장 아리따운 외모 등 장점이 넘쳐 났으나 지금 강현이 가장 신경 쓰이는 건 바로.
‘대체 이게 뭘까?’
강현 앞에 떠오른 상태창의 알림.
[인물 진화를 시작하시겠습니까?]
처음엔 외면하려 했으나.
[호랑이 길들이기 퀘스트를 강화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인물 진화를 경험하세요! 이쁘고 능력 있는 길드장 부인 옆에서 먹고 놀고 싶다고요? 바로 지금입니다!]
[인물 진화 시 중요 비밀 정보 획득 가능!]
마치 홈쇼핑에서 물건을 팔 듯 상태창이 퀘스트를 강요하기 시작했고.
[진짜 진짜 중요한 비밀 정보! 놓칠 수 없는 기회!]
결국 강현이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중대장님, 혹시 요즘 진화하고 싶거나 하지 않으십니까?”
“…롸?”
[…롸?]
“강현아, 대체 정신이 있는 거냐 없는 거냐 이놈아… 어휴!”
그의 엉뚱한 질문에 서윤진과 상태창, 이석천 모두가 식겁했고.
“롸?”
“뀨ㅏ?”
강현과 서윤진을 놀래 주기 위해 살금살금 다가오던 서연이와 구찌가 오히려 오빠의 말에 놀랄 때.
서윤진이 얼굴을 붉히며 답했다.
“…어떻게 알았어?”
이번엔 모두의 얼굴이 서윤진에게 향했다.
하고 싶었던 거야? 진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