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화 새 시대가 오고 있다
강현과 특별 팀이 진입한 이후 다시 검푸르게 변하며 닫혀 버린 게이트 입구 앞.
“네, 특별 조사 팀 구성해서 파견해 주세요.”
“아니요. 알릴 필요 없습니다. 언론에는 최대한 축소해서 보도하도록 하죠. 관련 서류는 금방 보내겠습니다.”
“이봐! 거기서 뭐 하는 거야? 당장 와서 조서랑 언론 발표문 작성해야지!”
“엇! 네, 네 알겠습니다!”
“어, 나 산군 한 팀장이야. 그래, 좀 알아볼 문제가 있어서. 빌런 하나 잡았는데 이 녀석 계좌랑 행적 좀 추적하려고. 그래, 이제 슬슬 움직일 때가 됐지.”
“어, 여보세요! 어, 그래. 김 검사, 나 한진명이야. 아니, 다른 게 아니라 곧 사건 하나 터뜨릴 건데… 언론에서 물어뜯기 전에 자네한테 소스 좀 주려고.”
한번 움직이기 시작한 한진명의 일 처리 속도는 놀라울 정도로 빨랐다.
지난 세월 일선에서 활동하며 묵혀 두었던 인프라를 가동.
그의 눈동자가 실로 오랜만에 활활 불타올랐다.
혈족도 아니고 특별한 뒷배도 없는 그가 지금껏 산군 옆에서 신임받는 수하로 남아 있던 이유.
뛰어난 능력과 빠른 일 처리, 넓은 발.
“어, 그래. 맞아. 아니, 이번에 물어뜯을 건…….”
그리고 과감한 판단력.
“산군 길드 안에 있는 썩은 살들이거든.”
그의 스산한 목소리가 게이트 앞을 휘감았다.
한진명의 능력을 잘 알고 있고 경계하던 본부장, 상무를 비롯한 자들이 긴장했다.
‘이럴까 봐 그렇게 밀어내려고 했건만!’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단 말인가.
산군 서대호는 늙었고 한진명의 수족을 전부 잘라 냈다 자신했다.
그런데 지금 연락하는 사람들은 대체?
탁!
한진명이 오래되어 보이는 폴더 폰을 거칠게 닫으며 본부장과 상무 쪽을 노려보았다.
“옛날 핸드폰은 이렇게 닫는 맛이 있어서 참 좋아요. 그쵸? 본부장님. 상무님.”
“한 팀장…….”
“오래 묵으면 썩는 것도 있지만 오래 묵혀서 발효되는 것들도 있지요. 다행히 제가 묵힌 건 썩지는 않았나 봅니다. 누구들처럼요.”
“자꾸 위험한 발언을 하는군.”
그들이 아무렇지 않은 척 연기했지만 한진명의 눈은 그들의 얼굴을 찢을 듯 번뜩였다.
그리곤 입을 열었다.
“산군께 게이트… 정보를 흘린 사람, 빌런을 고용해 강현 군을 비롯한 민간인들을 공격하게 한 사람, 모두 찾아내겠습니다. 그리고 도려내겠습니다.”
“감히 협박하는 거야!”
“말조심해 한 팀장! 길드 전체에 민간인 공격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씌울 생각이야? 길드의 명예도 생각해야지! 대체 뭐 하는 짓이야!”
“감히? 감히라고!”
협박성 발언에 본부장과 상무가 오히려 역정을 내자.
한진명이 고함을 질러 그들의 말을 끊었다.
“산의 주인을 몰아내려 계략을 꾸민 자들! 또 죄 없는 민간인들을 죽이고 산군 길드의 소중한 협력자를 공격한 자들을 반드시 찾아낼 거요!”
그의 몸에서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길드의 오명? 웃기는 소리! 잠깐의 오해보다 썩은 살을 내버려 두는 게 더욱 위험한 일! 내 한 번은 참았습니다! 윤진이까진 참았는데, 더는 당신들의 미련하고 지독한 욕심을 두고 볼 수 없단 말입니다!”
그리곤 산군을 몰아내려 했던 혈족들과 그 주변인들에게 이빨을 드러냈다.
“게이트에서 산군께서 돌아오신다면. 모두 전쟁을 각오해야 할 겁니다.”
이젠 아주 대놓고 하는 협박에 다들 아무 말 하지 못했다.
지금 증거와 칼자루는 한진명이 쥔 상황.
그저 게이트 안에 들어간 특별 팀이 산군과 함께 영영 나오지 못하길 바랄 뿐.
그렇게 한 시간, 두 시간.
하염없이 시간이 흘렀고.
해가 뉘엿뉘엿할 때쯤.
“한 팀장님!”
마나 홀로그램이 벌어지더니.
막 일과를 끝내고 급히 달려온 서윤진 대위가 들어섰다.
연락을 받은 건 일주일 전.
“산군께서 게이트에서 나오시질 않아. 윤진아… 걱정 마라 곧 특별 팀을 구성해서 들어갈 거니까. 좀만 기다려 주겠니?”
할아버지가 게이트 안에 갇혔다는 소식을 들었고.
오늘 특별 팀이 진입한다는 걸 기억한 그녀가 결국 참지 못하고 현장에 달려온 참이었다.
그녀가 한진명에게 다가가 상황의 경과를 물으려 할 때.
우우웅!
[게이트 출구를 활성화합니다]
검푸른 색이었던 게이트 입구가 밝은 파란색으로 바뀌며.
“설마?”
“나온다!”
“던전 브레이크인가?”
“아닙니다. 상태 안전! 게이트 해결입니다!”
지옥 같았던 시련을 이겨 낸 특별 팀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 명, 두 명 익숙한 얼굴을 발견한 산군 길드 인원들이 천천히 박수를 보냈고.
“이, 이봐 어떻게 된 거야? 성공한 건가?”
“일단 와서 보고부터 해!”
마음이 급해진 본부장과 상무가 자신들이 꽂아 넣은 헌터들을 닦달했으나.
“우선 사냥 성공식을 해야 하니 나중에 이야기하죠.”
“뭐? 지금 나중이라 했어?”
“비켜요. 곧 선봉이 등장할 차례니까.”
오히려 특별 팀 소속 헌터들이 나서서 그들을 밀어냈다.
마치 본부장이고 상무고 안중에도 없다는 듯한 태도.
곧 주변 공간을 확보한 그들이 일제히 게이트 쪽으로 손을 뻗으며 외쳤다.
“우두머리 행차요!”
“선봉 최강현 헌터 나가신다! 길을 비켜라!”
“개선 헌터 출두요!”
그들의 손끝 너머.
‘이, 이게 뭐야!’
강현이 반쯤 썩은 얼굴을 하고는 산군을 부축한 채 게이트에서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옆.
“여윽시! 이번 사냥의 우두머리다우신 위엄입니다!”
김태진이 옆에서 양손을 비비며 아부를 내뿜는 중.
문제는 이들이 하는 행동이 강현을 놀리기 위한 게 아니라는 점.
“선봉이 첫 승리를 따냈다!”
“산군 길드 전체 박수!”
“최강현! 최강현! 최강현!”
특별 팀 전원이 진심으로 강현을 치켜세워 주었다.
산군 길드의 오랜 전통.
첫 선봉의 첫 승리 띄워 주기.
일종의 승리 축하 의식이자 앞으로 미래가 기대되는 헌터의 앞날을 축복하는 행위였다.
‘이, 이제 그만해… 제발.’
덩실덩실 춤까지 추는 특별 팀을 보며 당장 그만하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길드 전통이라니 막을 수도 없는 노릇.
그때.
“고맙구나… 여기까지 와서 날 구해 주다니… 신세를 졌어.”
산군 서대호가 힘겹게 눈을 뜨며 강현에게 속삭이듯 말을 걸었다.
“정신이 드십니까?”
“녀석들이 조금 소란이어야지…….”
산군이 고함을 지르고 춤을 추는 특별 팀을 보았고 강현이 쓰게 미소 지었다.
“결국 집착은 아무것도 해결해 주지 못하더구나. 고통만을 더할 뿐.”
“…….”
“꽤 긴 시간이었어. 7년 동안 난 미친 듯이 전우를 찾았고,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지. 아무것도…….”
산군의 후회 어린 목소리에 강현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재원이를 좀만 따뜻하게 대했더라면 이런 일이 없었겠지, 7년 동안 눈이 멀어있지 않았다면 길드에 혼란도 없었겠지. 모두… 모두 내 책임일세…….”
그가 자신의 부족함을 고백하며 고개를 떨구었고.
“이 미련한 늙은이 같으니라고… 이런 상황에서, 아들을 잃은 상황에서 마저…….”
검성 이석천이 그런 친우를 보며 답답하다는 듯이 가슴팍을 쳤다.
본인도 남들을 지키기 위해 살았던 사람이니 친우의 자책을 보자 가슴이 답답했던 모양.
그런 둘을 보며 강현이 담담히 입을 열었다.
“그런 미련함 덕분에 지금껏 많은 사람을 살린 것 아니겠습니까.”
“……!”
그의 말을 들은 산군과 검성이 동시에 말을 멈추었다.
“잘못 갈 수도 있죠. 때론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아직 젊은 제가 앞서 걸어가신 선배님들이 걸어오고 지켜 온 것을 어찌 폄하할까요.”
서로 똑 빼닮은 두 친구에게 전하는 위로.
“하지만 당신들이 걸어온 길이 있기에 저 또한 걸어갈 수 있다는 걸. 그리고 새로운 길을 찾아볼 힘과 용기를 얻었다는 걸 잊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당신들은 누가 뭐라 해도 영웅입니다.”
“후우… 이러니 미워할 수가 있나.”
강현의 말을 들은 검성이 고개를 들며 한숨을 내쉬었고.
산군은 말없이 쓸쓸한 미소를 지었다.
늙은이들의 회한과 젊은이의 위로.
산군이 단단한 강현의 어깨에 부축받은 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시간은 흘렀고 이젠 새로운 세대가 등장해야 할 때임을.
그런데.
“꼭 옆에 또 다른 사람이 있는 것처럼 말하는구나.”
“뭐, 산군 길드장님뿐 아니라 수많은 선배님께 드리고 싶은 말이기도 하니까요.”
강현의 너스레에 산군과 그가 그렇게 찾고 있으나 보지는 못하는 검성의 기억이 같이 웃을 때.
“할아버지!”
“길드장님!”
서윤진 대위와 한진명 팀장이 모두를 제치며 산군을 향해 달려왔다.
먼저 서윤진이 할아비의 넓은 품 안에 안겼고.
“할아버지! 으앙!”
울음을 터뜨렸다.
“이런 이제야 돌아오시면 어쩌잔 말입니까!”
이번엔 한진명이 한 발 뒤에 멈춰서는 잔뜩 붉어진 눈시울로 산군을 탓했고.
“미안허이… 윤진아, 한 팀장. 내가 미안해.”
산군이 둘을 향해 사과했다.
“아니에요. 할아버지! 아니에요! 제가, 제가 미리 살폈어야 했는데… 죄송해요.”
서윤진이 눈물을 닦으며 푹 가라앉은 산군 서대호의 얼굴을 들어 올렸다.
그는 이렇게 고개를 숙일 사람이 아니다.
모두를 지키기 위해 평생을 싸워 왔던 영웅.
서윤진의 마음속에선 언제나 당당하고 강했던 할아버지.
그가 이렇게 약해지다니.
그녀가 슬픈 얼굴로 할아버지를 살필 때.
“이 친구에게 우선 감사해야겠지.”
산군이 이번엔 강현을 앞으로 내밀었다.
이번 사냥의 진정한 영웅인 그를 치켜세우는 자리.
주인이 뒤바뀌어선 안 된다.
“강현아!”
서윤진이 이번엔 강현의 품에 안겼다.
이전처럼 포상의 개념이 아닌 진심으로 그를 반기고 고마워하는 마음.
“고마워… 나 대신 싸워 줘서 고마워… 할아버지를 구해 줘서 고마워!”
서윤진이 울먹이며 강현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었고.
강현이 그제야.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조금은 쉬셔도 괜찮다고. 그래서 제가 갔다 왔습니다.”
서윤진의 등을 천천히 두드렸다.
서로에게 감사와 위로를 전하는 둘을 보며 산군 서대호가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으음… 잘 어울리는군.”
“…강현 군이라면 어쩔 수 없지요. 으흑!”
“…윤진인 내 손녀일세, 자세 손녀가 아니라.”
“키운 건 태반이 제 손길입니다.”
“…부정하기 힘들군.”
이어서 산군이 한진명에게 나지막이 한가지 지시를 내렸다.
“돌아갈걸세. 산에 있는 불필요한 나무를 잘라내게.”
“길, 닦아 놓겠습니다.”
오랜만에 보는 길드장의 결의 어린 얼굴에 한진명이 굳은 얼굴로 명령을 받들 때.
“아, 한 가지 더.”
서대호가 한 가지 안배를 더 했다.
“다음 후계가 걸을 길도 닦아 놔야겠지.”
“길드장님?”
“이번에 깨달았다네. 난 너무 오래 해 먹었어.”
“하지만…….”
“그래서 이런 상황이 생긴 거야. 한 호랑이가 모든 걸 독식한 지 오래되니 다들 참지 못하고 터진 걸세.”
“…….”
“이젠 새로운 세대가 길드를 이끌어야겠지. 이번 혼란이 지나가면 자네가 닦아 놓은 길 위에 새로운 산군을 걷게 해 주게나. 내 소원일세.”
늙은 길드장의 부탁에 결국 한진명이 아무 말 못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산군이 서로 껴안고 있는 서윤진과 강현을 보며 비록 물러날 때는 물러나더라도 후배들의 길을 닦아 놓으리라 결심했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가 닦아 놓은 길을 걸을 새로운 산군은 혈족이 아닐 수도 있겠군.”
서대호가 그 자존심 강한 특별 팀 사이에서 떠받들어지고 있는 강현을 보며 어쩌면 완전히 달라질 산군 길드의 미래를 점쳤다.
“최강현 헌터, 자네 덕분에 살았어.”
“뭐, 처음엔 좀 맘에 안 들었는데. 첫인상이랑 다르게 아주 진국인 친구더라고!”
“너가 부족한 거 아니고요? 저는 처음부터 최강현 헌터가 해낼 줄 알았거든요.”
“아이고 최강현 헌터님, 제가 처음부터 보필했던 건 아시지요? 저 김태진입니다, 김태진.”
강현이 어느새 태도가 바뀐 특별 팀을 보며 아픈 머리를 쥐어 잡았다.
처음에는 그렇게 땍땍거리며 강현을 밀어내려 하더니.
[산군 길드 특별 팀의 호감도가 일정 수준에 도달했습니다. 분대에 산군 길드 특별 팀을 포함할 수 있습니다]
[산군 길드 특별 팀의 신뢰도 상승으로 새로운 분대 스킬을 획득합니다!]
이젠 아주 강현의 분대 능력에까지 포함되어 버렸다.
그리고 또 하나.
“이제, 놓아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으, 응? 그럴까?”
아직도 가슴팍에 안겨 있는 서윤진 대위가 아쉬운 표정으로 물러났다.
그때.
[조력자 서윤진 대위의 호감도가 일정 수준을 넘었습니다. 호감도가 포화 상태에 이르러 새로운 혜택을 부여받습니다]
[퀘스트 성공의 결과로 산군 서대호의 호감도가 일정 수준에 달했습니다. 새로운 혜택을 부여받습니다]
[조력자 한진명의 호감도가 대폭 상승했습니다. 새로운 혜택을 부여받습니다!]
[당신이 행한 결과로 산군이 다시 길드 장악에 힘을 쏟기 시작합니다. 산군의 길드 장악력이 높아집니다!]
[히든 조건 산군 길드의 반란자 색출을 완수했습니다. 한진명과 산군의 길드 장악력이 상승합니다!]
[위 두 현상의 결과로 조력자 서윤진 대위의 진로에 새로운 가능성이 싹틉니다!]
[강화된 보상와 서윤진의 새로운 진로, 조력자들의 높은 호감도와 신뢰도를 결합합니다!]
[기존 보상, 진로- 산군 길드 사외이사가 진로- 산군 길드 길드장으로 강화되었습니다!]
[조력자 서윤진으로 인한 새로운 진로 선택- 산군 길드장의 남편이 추가되었습니다]
[강력 추천! 능력 있고 예쁜 부인 옆에서 놀고먹을 절호의 찬스!]
‘상태창 이 녀석이!’
나쁘지 않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