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화 전멸
처음 게이트에 들어왔을 때.
수복되는 주변 풍경을 보면서 떠올랐던 알림.
[산군 서대호의 자취를 발견했습니다. 연구자의 눈을 발동합니다. 싸움의 흔적과 경과를 분석합니다]
[서대호의 무투술을 분석합니다]
연구자의 눈이 알려 준 바로는 게이트 안을 처참하게 부순 건 산군 서대호였고.
전투 흔적을 보면 볼수록 산군의 무투술 분석률이 올라갔다.
1,045번째 수복이 끝난 순간.
서대호의 무투 분석률은 12%.
그런데.
덩치 큰 남자의 몸이 조각조각 붙을 때 다시 떠오른 알림.
[산군 서대호 무투 분석률: 12… 13%]
알림을 본 강현의 팔에서 소름이 우수수 돋아 올랐다.
연구자의 눈에 따르면 저 남자를 죽인 건 바로 산군의 무투술.
부정해 보려 해도 점점 올라가는 분석률을 보니 분명했다.
즉, 저 남자는 자신의 수장에게 죽었다.
‘대체 왜?’
가장 머릿속에 들어찬 의문.
그리고 뒤이은 의문.
‘설마 특별 팀 모두를?’
지금까지도 들리는 비명의 주인들이 특별 팀이고 그들 모두가 산군에게 죽은 거라면?
“당신들… 산군께 죽었습니까?”
강현이 사실 확인을 위해 물었고.
“그래… 맞다. 산군께선… 미치셨다.”
그가 사실을 인정했다.
충격적인 소식에 강현의 머리가 재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산군, 수복되는 게이트, 특별 팀의 죽음, 1,046번째, 불완전한 해파칠십이검, 검귀들.
그러나.
‘아니, 생각은 나중에 하자.’
강현이 곧 떠오르는 잡생각을 떨쳐 냈다.
현재 가장 중요한 사실은 바로.
‘산군과 싸워야 한다.’
심지어 단순한 대련 따위가 아니다.
‘그것도 살의를 가진 산군과.’
자신의 길드원들을 찢어 죽일 정도라면 이미 정상적인 상태가 아닐 터.
지금 다른 걸 신경 쓸 틈조차 없었다.
강현이 생각을 정리하고는 공격 대장이라 불린 남자와 김태진을 번갈아 보며 명령을 내렸다.
“우선 이곳에 대기. 내가 올라갔다 올게.”
그의 말에 둘이 고개를 끄덕였고.
강현이 검을 뽑아 들며 재빠르게 계단을 타고 달리기 시작했다.
우선은 산군에게 죽은 특별 팀을 모두 모으는 게 우선.
홀로 산군에게 맞설 생각은 하나도 없었다.
아무리 강현이 지금껏 성장했다고 하나 산군은 게이트가 생김과 동시에 사선을 넘나들며 세상을 지킨 1세대 헌터.
명성도 실력도 경험도 하늘과 땅 차이.
다만 강현이 둘을 떼어 놓고 홀로 탑을 오른 건.
“흐으윽!”
[산군 서대호 무투술 분석률: 14… 15%]
서대호의 무투술을 더욱 쉽게 파악하기 위해서이기도 했고.
“어떻게 생각합니까?”
“…….”
산군과 가장 친한 전우였던 검성 이석천에게 의견을 물어보기 위함이기도 했다.
눈앞에서 사람이 재조립되는 모습을 보며 검성이 이를 악물었고.
“이런 X발… 나도 이게 대체 무슨 지랄인지 모르겠다.”
결국 욕을 뱉어내고야 말았다.
대체 옛 친우인 늙은 호랑이는 뭐 때문에 미쳐 날뛴단 말인가.
그러나 곧 검성 또한 강현과 같이 혼란스러운 감정보다는 사실에 집중했다.
그 또한 수없는 사선을 헤쳐 온 백전노장.
지금은 자신의 감정보다는 계승자의 안전이 최우선이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전력을 사용한 게 아니라는 거다.”
“……!”
그러나 오히려 더욱 충격적인 소식만을 전할 수밖에 없었다.
강현의 놀란 표정을 본 검성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녀석아, 아무리 늙었어도 산군이다. 진심으로 휘둘렀으면 사람 정도가 아니라 단번에 탑이 날아갔을 거야.”
“…하긴 그렇겠군요.”
예전 검성 이석천이 산봉우리 하나를 날린 일화는 유명했다.
그런 그와 자웅을 겨루던 산군이니 충분히 가능하겠지.
문제는.
“이성이 남아서 전력을 휘두르지 않은 걸까요. 아니면 전력을 휘두르지 않을 정도로 이성이 날아간 걸까요?”
산군 서대호의 상태.
만일 전력을 사용하지 않은 게 완전히 미치지 않았다는 증거라면.
어쩌면 설득 또는 진정이 가능하단 이야기와 같았으니까.
만일 그게 아니라면?
“…전자이길 바란다. 후자라면… 너희가 거세게 달려들수록 강하게 대응하겠지. 그땐 이기기 어려울 거다.”
강현을 비롯한 특별 팀 전체가 달려들어도 막기 어려울 터.
아니, 막는 정도가 아니라 전멸해도 이상하지 않다.
곧.
“히이익! 히이익!”
죽었다 살아난 충격이 너무 컸던 탓인지 이제 막 정신을 차린 산군 길드 특별 팀원 하나가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며 몸을 바들바들 떨었고.
“구찌.”
“뀨!”
강현이 어깨 위에 있던 구찌를 부르자 피닉스가 포로롱 날아 아직 정신을 못 차린 상대의 머리 위로 올라섰다.
[피닉스 구찌가 상대의 혼란을 정화합니다!]
[상대에게 적용된 정신 이상 상태를 해제합니다!]
그리곤 이전 산에서 몬스터의 피를 먹은 동물들을 정화했듯 특별 팀 인원의 정신 이상 상태를 정화했다.
피닉스 중요 속성 중 하나인 정화의 힘 덕에 가능한 방법.
곧 정신을 차린 상대가 강현을 알아보았고.
“아래로 내려가세요. 밑에서 다른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우선 모인 뒤 생각하죠.”
[언변, 감화, 신뢰, 카리스마를 발동합니다. 상대가 당신의 말에 따릅니다]
강현의 능력이 실린 말에 상대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아래로 내려갔다.
이후부터는 같은 일의 반복.
“크으윽!”
“꺄아아악!”
“기, 길드장님!”
계단을 올라가며 산군에게 찢겨 죽은 길드원들을 하나씩 만났고.
그들을 통해 산군 무투술 분석률을 올림과 동시에.
“호왕권… 이다. 그 늙은이의 첫 무투술이었지.”
[새로운 정보 산군의 호왕권을 들었습니다.]
“빠르고 강하며 호쾌하다 못해 잔혹할 정도의 수법. 상대의 몸을 찢고 가르는데 특화되어 있는 무술이다.”
[호왕권의 요체에 대해 들었습니다. 무투술 분석률 증가 속도가 빨라집니다!]
검성 이석천에게선 자신이 직접 겪었던 산군의 무투술에 대해 들어가며 분석률 상승 속도를 높였다.
이후에는 구찌의 정화 능력으로 이성을 되찾은 팀원들을 아래로 내려보냈다.
그렇게 꼭대기에 이르렀을 즈음.
“맨 아래에 나머지 특별 팀 인원이 모여 있을 겁니다.”
총 9명.
김태진을 제외한 특별 팀 인원 전부를 아래로 보냄과 동시에.
[1,046번째 수복이 끝났습니다]
보기만 해도 아득한 횟수의 수복이 끝났다.
강현이 계단 끝, 탑의 꼭대기로 나가자.
후우우웅.
날카로운 바람 소리와 함께 발 딛기 어려울 정도로 빽빽하게 꽂혀 있는 검들이 보였다.
“아무도 없군요.”
“…….”
산군이 있을 줄 알았던 꼭대기의 중심에는 유독 낡고 날이 나간 검 한 자루만이 있을 뿐.
강현이 산군을 마주칠 것에 대비해 긴장시켜 놓았던 몸의 힘을 풀었다.
“일단 내려가서 다음 계획을 세우겠습니다. 산군을 상대하려면 저들의 힘이 필요하니까요.”
강현이 탑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을 특별 팀을 찾아가려 몸을 뒤로 돌렸으나.
“아저씨?”
“…….”
검성 이석천이 그 자리에 못 박힌 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고 서 있었다.
강현이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보았고.
“첫 제자의 검… 이다.”
이석천이 이유를 알려 주었다.
어찌 제자의 검을 스승이 못 알아볼까.
그러나 단순히 첫 제자의 검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내 첫 제자이자… 산군의 첫째 아들이기도 했던 녀석의… 검이지.”
처음 듣는 비화에 강현의 발걸음이 멈췄다.
“산군의 첫째 아들이 검을요?”
“그래. 녀석은 호랑이의 피를 받지 못했거든.”
검수로서도… 스스로 만족하지 못했지.
이석천의 씁쓸한 뒷말에 강현이 한 가지 가능성을 떠올렸다.
“설마 게이트 안에 따라 들어갔습니까?”
“아니, 녀석은 그전에 자신의 검을 찾겠다며 나의 품을 떠났다. 늙은이에게도 연락 한번 없었다더군.”
“…그렇다면 여기 있을 가능성은요?”
강현의 물음에 검성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건… 너무 고약한 비극이야.”
“…….”
잠시 침묵과 바람만이 탑의 꼭대기를 휘감았다.
강현이 주변에 널린 검을 밀어내며 안으로 다가가려 할 때.
꾸르릉!
무언가 무너지는 소리가 울렸고.
탑 안에서 처절한 고함과 함께 치열한 싸움 소리가 들려왔다.
“설마!”
강현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재빨리 다시 탑 안으로 뛰어들었다.
계단을 날 듯이 내려가길 잠깐.
저 아래 탑 중앙.
“흐윽! 흐으윽! 왜, 왜 이러시는 겁니까! 길드장님!”
“정신 차려리십쇼!”
“이런 X발, 이제 당신은 길드장이 아니야! 죽여!”
튀어 오르는 고함과 피.
고통과 분노, 공포로 일그러진 특별 팀의 얼굴이 보였고.
그 중심.
“크르르르!”
새빨간 호랑이 한 마리가 특별 팀 전원을 몰아붙이고 있었다.
마치 이전 보았던 서윤진의 능력, 혈호와 비슷한 모양새.
그러나.
“피다. 지독할 정도로 많은 피야.”
“느껴집니다.”
원래는 하얬어야 할 서대호의 털을 덮은 건 찐득찐득하고 두껍게 쌓인 피였다.
본래의 모습과 이성을 완전히 잃어버린 듯한 모습.
서대호를 살피는 잠깐 사이.
“끄, 끄으윽!”
특별 팀 인원들 절반 이상이 죽임을 당했다.
흔적만을 보았을 때는 와닿지 않았던 그의 강함이 피부가 저릿할 정도로 느껴졌다.
강현이 검과 권총을 뽑아 들며 전투에 참여하려 할 때.
“기다려라.”
검성 이석천이 그를 불러세웠다.
“가야 합니다. 저러다 모두 죽어요.”
“네가 끼어든다고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미 반절이나 죽었어. 다음 수복을 기다려라.”
실로 냉정한 말에 강현이 잠시 입을 다물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저 자신의 실력을 깎아내리기 위해 하는 말도 아닐 터.
“이미 늦은 김에 얻을 수 있는 걸 최대한 얻으라는 겁니까?”
강현의 물음에 비로소 검성이 옅게나마 미소를 지었다.
“내가 만난 게 네 녀석이라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음에도 강현은 이석천의 말을 단번에 깨달았다.
지금 강현이 서 있는 곳은 그들보다 위쪽.
“하압!”
“죽어!”
“크허엉!”
목숨을 걸고 처절하게 싸우고 있는 이들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곳.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산군의 전투를 연구자의 눈으로 직접 분석합니다. 산군 이대호의 무투 호왕권 분석 효율이 대폭 증가합니다!]
[산군 서대호 호왕권 분석률: 25… 26%]
더는 상승하지 않던 분석률이 오르기 시작했고.
그를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머릿속으로 그려 보던 중.
“사, 살려 주십시오, 길드장님…….”
마지막 남은 김태진이 울먹이며 자비를 구했으나.
산군의 날카로운 발톱이 그마저 갈가리 찢었다.
구역질이 나고 분노가 치미는 장면.
“참아라.”
“…알고 있습니다.”
강현이 이를 꽉 물며 때를 기다렸다.
마침내.
“크르르르!”
산군 서대호가 강현을 발견했다.
부글부글 거품이 끓어오르는 아가리를 벌리며 송곳니를 드러냈고.
콰앙!
단번에 그의 앞으로 도약했다.
눈으로 따라잡기 어려울 정도의 속도.
[예민한 감각을 대여합니다. 검존을 활성화합니다]
비록 보지 못했지만 강현에겐 공간을 점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고.
카앙!
산군의 첫 발톱을 간신히 막아 냈다.
그리고.
“흐읍!”
“크허엉!”
[해파칠십이검을 발동합니다. 거인의 강골, 세개의 폐, 능숙한 몸놀림, 강인한 팔뚝, 강인한 하체와 연계하여 위력이 대폭 증가합니다!]
[중급 마나 운용법, 정밀함, 월하심법, 마력지체를 사용하여 마나 일체를 사방으로 뿜어냅니다!]
자신이 가진 전력을 일시에 폭발시켰다.
[연구자의 눈, 약점 파악을 발동합니다. 호왕권 분석률을 적용, 대략적인 공격의 흐름을 예측합니다]
이로도 모자라 연구자의 눈으로 상대의 움직임을 예측하기까지.
강현 스스로가 생각해도 완벽한 한 호흡!
지금까지 얻었던 모든 능력을 집약한 검법을 펼쳤다.
강현과 산군이 만들어 낸 짧고 거센 폭풍이 지나간 후.
강현이 다시 호흡을 조절하려는 찰나.
“이런……!”
저도 모르게 탄식을 뱉어 냈다.
광기 가득한 산군의 한쪽 손에 들려 있는 건.
강현의 왼팔.
격통이 엄습하기도 전.
“크허엉!”
“정신 차리십쇼!”
강현과 산군이 다시 부딪쳤고.
이번에는 오른쪽 옆구리가 크게 갈라졌다.
풀 컨디션으로도 왼팔을 빼앗겼는데 막을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러나 강현은 포기하지 않았다.
몸이 완전히 만신창이가 될 때까지 계속해서 검을 휘둘렀고.
“정신 차리세요! 여기 있는 건 거짓이지 진짜가 아닙니다! 밖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설득을 이어갔다.
[언변, 감화, 신뢰, 카리스마, 불굴을 발동합니다. 상대의 혼란 수치가 점점 낮아집니다]
그리고 주변에선.
“뀨! 뀨욱!”
구찌가 서대호의 주변을 돌며 소리쳤고.
[구찌의 울음이 상대에게 적용된 정신 이상 상태를 완화합니다]
그를 지배하고 있는 광기를 걷어 내려 애썼다.
그러나 광기를 없애는 것보다 강현의 한계가 먼저 찾아왔다.
[신체가 심각한 손상을 입었습니다. 전투 불능 상태에 빠졌습니다]
왼팔에 이어 오른 다리가 잘리는 순간 강현의 몸이 무너졌다.
털썩.
무릎을 꿇은 강현의 앞에 산군 서대호의 커다란 그림자가 드리웠다.
이미 처참하게 패배한 싸움.
그러나.
“아직… 아직입니다.”
강현이 마지막까지 검을 들어 올려 상대를 겨누었다.
[불굴 특성을 발동, 고통과 신체적 한계를 극복합니다]
쿡.
강현의 검이 산군의 가슴팍을 찌른 순간.
호랑이의 억센 손톱이 그의 목을 향해 날아들었다.
잠시간의 어둠.
그리고.
[1,047번째 수복을 시작합니다]
“허어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