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화 강현 강림
“일반인들이 헌터들이랑 어떻게 같이 살아? 주변에 목줄 없는 괴물들이 돌아다니는데.”
처음 게이트가 열리고 헌터들이 많은 희생을 감내하며 막아 낸 후.
작은 평화를 되찾자 놀랍게도 헌터들에 대한 회의론이 스멀스멀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일반적인 사람들이 보기에는 헌터들은 그저.
“사람 모습을 한 괴물일 뿐이잖아요. 사실 좀 무서워요.”
생김새가 인간과 같은 괴물일 뿐.
몬스터들이나 헌터나 불을 뿜어내고 작은 바위쯤은 쉽게 부수며 주변을 초토화하긴 마찬가지.
그래도 몬스터는 겉보기에 다르기라도 하지.
헌터들은 구별할 수 없지 않은가.
만일 그런 괴물이 지금 당장 옆에 있다면?
그리고 언제 어떻게 난폭하게 변할지 모른다면?
“그냥 지켜 주니까 우리는 그저 목숨 내놓은 채 살라는 거야 뭐야!”
상태창이라는 능력을 부여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능력자들이란 이해하기 어렵고 낯선 신인류일 뿐.
물론 헌터들도 사정이 있었다.
“기껏 목숨 바쳐 살려 놨더니 괴물 취급을 해! 그래, 차라리 진짜 괴물이 뭔지 보여 줘?”
그들도 원해서 능력을 받은 게 아니었고.
게이트 속에서 쏟아지는 몬스터와 처절한 전투를 벌이며 많은 동료를 잃었다.
그런데 돌아온 게 감사 인사가 아닌 회의론이라니.
게이트가 열리고 몬스터들이 쳐들어올 때는 영웅이라며, 당신들 때문에 세상이 돌아간다며 추켜세워 주던 이들이.
상황이 바뀌자 입을 싹 닦고는 자신들을 괴물로 몰아가다니!
“그냥 괴물이 되어 버리자!”
“그래, 이제 우리가 신인류다.”
실제로 몇몇 헌터는 무력을 통한 국가전복 또는 사회 시스템 파괴에 열을 올리기도 했다.
이런 취급이 억울해서이기도 했고.
힘을 가진 만큼 욕심이 들어서이기도 했다.
이들을 지칭하는 말이 바로 빌런.
그리고 이런 빌런들을 막는 것도 헌터들.
한동안 사회는 혼란에 빠졌고.
모두가 지쳐 갈 즈음.
“결국 헌터들도 사회의 일부분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헌터들을 자신들의 아래에 두려는 자들이 손을 뻗어 왔다.
사실 이런 혼란 뒤에는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고 기존 시스템을 유지하려는 자들의 계산이 깔려 있었다.
힘에 의한 권력의 전복을 막으려는 속셈.
그래서 힘을 가진 자들을 갈랐고 서로 싸우게 만든 후.
“함께 영웅이 되시죠.”
슬며시 권력과의 결탁을 제의했다.
헌터들의 국가 전력화를 노리며 재력, 권력, 무력의 합일을 꿈꿨으나.
헌터들도 바보가 아니었기에 이를 눈치챈 자들이 있었다.
“헌터들의 무력을 일반인에게 사용하지 않을 것을 약속합니다.”
“헌터들은 헌터들의 생태계를 구성할 것이며 국가 권력에 휘둘리지도 않고 이를 뺏지도 않겠습니다. 능력과 일상의 공존. 이게 새로운 시대의 과제입니다.”
그중에서 몇몇 영향력 있는 이가 먼저 혼란을 종식하기 위해 나섰다.
결국 국가에 종속되면 게이트가 아닌 다른 헌터를 향해 무기를 겨누게 될 거고.
아직 게이트란 위험이 사라지지도 않은 상태에서 서로를 향해 전력을 낭비했다간.
“멸망이라는 결과만이 남겠지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할 수도 있는 바.
헌터들이 먼저 선수를 친 것.
그렇게 몬스터와 게이트에 대한 소유권을 공익 사업으로 전환.
헌터들의 권익 일부를 내주는 대신.
수익을 정당한 대가로 받으며 길드라는 기업을 창설.
자체 생태계를 유지하되 고용 창출을 이루어 자연스레 사람들 사이에 섞이기를 유도했다.
물론 그 선두엔 검성, 산군, 앤서니 데이비스, 크루세이더 등 세계적인 헌터들이 있기에 가능했던 일.
그렇게 헌터들과 세상은 교집합을 둔 채 서로 분리되어 공존하게 되었다.
그중 가장 중요한 원칙 하나.
“헌터는 결코 일반인을 해하지 않는다.”
현재 세상을 유지하는 가장 중요한 원칙이자 근본.
헌터들끼리의 알력이야 본인들 사이의 일.
그러나 일반인과 헌터 사이에 문제가 생긴다면?
필연적으로 힘의 불균형이 생길 수밖에 없다.
능력이라는 치트키가 개입하는 순간 일반인은 그저 자비를 구걸할 수밖에 없기에.
절대적으로 지켜지는 룰.
그러나.
“아니 그러니까 비밀을 발설하면 죽음이라니까 그러네.”
짝! 콰콰캉!
녀석이 박수를 친 순간.
강현이 탄 세단을 포위한 차량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폭발했다.
“으아악!”
“끄아아악!”
“사, 살려 줘! 아악!”
안에 있는 운전자들이 갑작스러운 폭발에 휘말렸고.
불에 휩싸인 차들이 뒤엉키고 구르며 자리에 멈춰 섰다.
놈이 불타오르는 차 위에 서서 비열하게 웃었다.
“크하하핫! 그거 하나 지키면 나머지는 무사할 줄 알았냐? 그럴 줄 알았어? 이래서 실전 경험 없는 헌터 새끼들 상대하는 게 재밌단 말야!”
놈의 광소와 함께 주변에 자욱한 연기가 차올랐고.
강현의 머리에도 분노가 차올랐다.
놈은 원칙을 깨 버렸다.
아니 원칙을 깨 버린 정도가 아니었다.
놈은 망설임 없이 사람을 죽였다!
“이…….”
강현이 입 밖으로 욕을 뱉어 내려 할 때.
“저 개쌍놈의 새끼! 죽여 버려!”
검성 이석천이 먼저 분노하며 욕을 뱉어 냈다.
“이 개새끼! 망설임도 없이 사람을 죽여? 반쯤 죽여서 누가 이딴 개같은 짓을 시켰는지 진실을 들어야겠다. 그 뒤에 있는 놈들을 찾아서 뿌리를 뽑아!”
검성의 눈이 이글이글 불타올랐고.
오히려 강현의 머리가 침착해졌다.
만일 이석천이 먼저 화를 내지 않았다면 무작정 녀석에게 달려들었을 거다.
놈은 분명 강현을 얼뜨기 헌터라 생각하는 듯했고 흥분해 봤자 상대의 의도대로 흘러갈 뿐.
그리고 한 가지 확인해야 할 것이 있었다.
“…민간인을 공격한 헌터에 대한 처우는 어떻게 됩니까?”
“빌런으로 규정. 사살 또는 체포 후 능력 박탈 및 평생 복역!”
바로 놈에 대한 처리 규정.
검성의 불꽃을 토해 내듯 터지는 대답에 비로소 강현이 입을 열었다.
“넌 뒈졌다. 쌍놈의 새끼야.”
콰앙!
일순간이었다.
강현이 얼굴에 욕을 뱉음과 동시에 손을 뻗었고.
어젯밤에 최상익 하사에게서 얻은 포박술을 발동.
[기초 포박술을 발동합니다]
마나로 만들어 낸 밧줄을 뻗어 웃고 있는 놈의 얼굴을 잡아채고선 산으로 내던졌다.
땅에 처박힌 놈이 일어섬과 동시에.
어느새 다가든 강현이 빌런의 얼굴을 쥐어 다시 땅속으로 내리눌렀고.
그대로 산 깊은 곳으로 달렸다.
“크아악!”
적 또한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는지 재빨리 몸을 일으키려 할 때.
[기초 포박술을 발동합니다]
다시 굵은 마나 밧줄로 놈을 꽁꽁 휘감기 시작했다.
“크하핫! 고작 이딴 걸로 날 가둬? 고작 이딴 걸로?”
놈이 분노한 듯 능력을 발현하려 했으나.
[마력지체, 중급 마나 운용법, 월하심법을 발동합니다. 기초 포박술의 위력이 대폭 향상됩니다!]
강현이 뽑아낸 포승줄이 마나를 삼켜 가며 팔뚝만 하게 몸을 불렸고.
슈루루룩!
끊임없이, 끊임없이 뽑혀 나왔다.
“이이익!”
놈이 능력을 발현할 틈도 시간도 주지 않은 채 온몸을 꽁꽁 감싸 버린 후 이어진 건.
“넌 뒈졌다.”
강현의 일방적인 폭행.
포승줄을 잡은 채로 빌런을 앞뒤 좌우 할 것 없이 땅에 패대기쳤고.
심지어는 고치처럼 묶여 있는 놈을 공중에서 빙빙 돌려 두꺼운 바위에 그대로 내리꽂았다.
굉음과 흙먼지가 펑펑 터져 나오는 모습에.
“미친… 일방적이잖아.”
유일하게 살아남은 강현이 탄 차량의 운전수가 겁에 질린 채 중얼거렸다.
“하압!”
말 그대로 강현은 빌런을 완전히 압도하고 있었다.
놈이 자신의 능력으로 포승줄을 폭발시키려 해 봤지만.
그럴수록 더 많은 밧줄이 놈을 감쌌고 오히려 자신이 일으킨 폭발에 손해를 보는 상황.
거기다 몸을 때리는 강한 충격에 점점 정신을 잃어 가고 있었다.
‘이런 괴물 새끼가!’
순간 방심했다고는 하지만 자신은 B급 빌런으로 나름 이름 있는 능력자.
일정 거리 안에 대상을 지정, 지정한 대상을 폭발시키는 까다로운 능력 덕에 지금까지 많은 헌터를 이겼고 사냥했다.
강현보다 헌터를 상대로 한 싸움 경험이 월등히 많은 베테랑.
심지어 이번에도 허투루 싸움에 임하지 않았다.
처음 운전수를 죽이려 한 것도 유리한 싸움을 시작하기 위한 안배.
그러나 강현이 이 첫수를 막아 냈고.
‘여기서 끝이 아니지! 작은 폭발을 막아내면 더 큰 폭발로 돌려줄 뿐!’
놈은 빌런답게 강현의 정신을 흔들기 위해 주변 차량을 모두 폭발시켰다.
일을 맡긴 놈들이야 사람들을 해하지 말라 했지만 알 바 아니었다.
빌런의 목적은 산군 길드와 강현 모두를 망가뜨리는 것.
그래서 싸움의 시작을 폭발로 택했다.
보통 자기가 정의로운 줄 아는 헌터놈들은 민간인이 죽으면 눈을 뒤집고 분노한다.
그리고 자신의 화려하고 위대한 능력을 보며 두려워한다.
그때 생기는 잠깐의 주저함이 놈들의 목숨 또는 한쪽 팔 정도는 앗아 가기 마련.
그런데.
“커헉!”
강현은 달랐다.
빌런은 자신이 준비한 공격을 펼치기도 전에 잡혀 버렸다.
그뿐만 아니었다.
[능숙한 움직임, 강인한 하체, 강인한 팔뚝, 거인의 강골을 발동합니다. 적이 받는 충격이 더 커집니다]
[해파칠십이검을 발동합니다! 검이 아닌 물체로 발동해 위력이 감소합니다. 휘두르는 횟수가 감소합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단호하고 무자비한 공격.
마치 헌터 간의 전투가 처음이 아닌 듯한 느낌!
[본래 휘두를 수 있는 해파칠십이검 횟수: 32번]
[현재 휘두를 수 있는 해파칠십이검 횟수: 20번]
콰카카캉!
강현이 적을 단숨에 스무 번 땅에 처박는 순간.
‘분명 초보랬……!’
놈의 정신줄이 그대로 끊어졌다.
아무리 헌터라지만 거의 폭격과 비슷한 수준의 충격을 견뎌 낼 순 없는 법.
“무기가 없어서 땅으로 때렸다, 이 새끼야.”
강현이 약하게 흐트러진 숨을 정리하며 기절한 놈을 몇 번이고 땅에 내리꽂았다.
“강현아, 잘한다! 반쯤 죽여 버려!”
“뀨뀨, 뀨뀨규! 뀨뀨, 뀨뀨규!”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며 검성 이석천과 구찌가 응원하길 잠시.
[연구자의 눈을 발동합니다. 상대의 피해량을 파악합니다]
[현재 상대가 입은 피해: 65%]
반가운 소식에 강현이 씨익 미소 지었다.
“더 때려도 되겠네.”
왜인지 이미 기절한 놈이 잠시 몸을 부르르 떤 거 같았지만.
강현이 신경 쓸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한참 폭탄 터지는 소리가 울리길 오래.
[색다른 사용으로 인해 경험치가 대폭 상승합니다! 경험치 상승으로 해파칠십이검의 레벨이 상승합니다. 휘두를 수 있는 검격 횟수가 증가합니다]
[현재 사용할 수 있는 검격 횟수: 33회]
[현재 상대가 입은 피해: 91%]
빌런을 죽기 직전까지 몰아붙인 강현이 다시 현장에 도착했고.
탁, 타탁.
자욱한 연기와 함께 타오르는 차들이 보였다.
아무런 잘못도 없는 민간인들이 싸움에 휘말려 죽었다.
자신들이 죽을 걸 알고 온 걸까?
그럴 리가 없지.
“빌어먹을…….”
강현이 후회와 함께 욕을 짓씹자.
“모든 걸 막을 순 없다. 놈이 악한 거지 네 잘못이 아니야.”
검성 이석천이 강현을 위로했다.
그는 최선을 다했다.
다만 놈이 너무 거리낌 없이 사람들을 공격했을 뿐.
강현이 잠시 화를 삭이며 이후 어떻게 움직일지 생각할 때.
탈탈탈탈.
자욱한 연기 속, 앞 범퍼는 반쯤 떨어져 나가 있고 곳곳에 깨지고 부서진 차량 하나가 앞에 멈춰 섰다.
바로 강현을 태웠던 차.
속에서 강현 덕에 목숨을 건진 운전수가 고개를 내밀었다.
“타십쇼! 이 나쁜 새끼들! 제가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죽은 사람이 있으면 산 사람도 있는 법.
[목숨을 건진 생존자가 당신에게 충성합니다!]
* * *
경기도 성남 어느 곳.
폐허가 된 건물.
그러나 마나로 이루어진 허상의 안으로 들어가면.
“이쪽! 이쪽으로 물자 옮겨!”
“이제 곧 특별 팀이 진입할 예정입니다.”
커다란 게이트가 입을 벌리고 있는 모습.
주변에선 양복을 입은 산군 길드 직원들이 마나 홀로그램 장치를 비롯한 여러 연구 장비들을 다루는 중이었다.
그리고 검푸르게 물들어 있는 게이트 앞.
“잠깐! 이제 곧, 이제 곧 올 겁니다!”
한진명 팀장이 홀로 외로이 소리치고 있었다.
“…….”
“쯧…….”
화려한 무구를 착용한 자들이 그의 목소리를 외면했다.
유일하게 단 한 명만이 한진명을 말릴 뿐.
“한 팀장님,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일단 좀 진정하세요.”
“지금 오고 있단 말야! 특별 팀이 들어가면 언제 다시 이 게이트가 열릴 줄 알고 기다리란 말인가!”
“팀장님…….”
곤란한 표정을 짓는 청년 앞에서 한진명이 씩씩 숨을 몰아쉬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지금 이 특별 팀에 속한 유일한 같은 편.
나머지는 모두.
‘믿을 수 없는 자들뿐.’
한진명이 다른 헌터들을 노려보며 이를 갈 때.
“진명이, 자네가 이렇게까지 기다려 달라는 그 친구는 도망쳤나 보구먼.”
뒤쪽에서 느물느물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쪽을 바라보자.
늙수그레한 노인 한 명과 머리를 모두 깔끔하게 넘긴 중년인 한 명이 보였다.
“쯧, 그깟 군인 하나를 기다리느라 모두의 시간을 빼앗을 참이냐.”
노인의 말에 이어 중년인이 한진명을 쏘아보며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찼다.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지만.
“오셨습니까. 이사님, 본부장님.”
몸은 그들을 향해 공손하게 허리를 숙였다.
한진명을 내려다보는 둘의 머리카락은 서대호와 같은 하얀색.
바로 백호의 피를 공유하는 직계 혈족으로서 산군 길드의 중요 직책을 맡은 자들이었다.
산군 길드의 가장 큰 위험 요소 중 하나.
서대호의 직계 자손들뿐 아니라 같은 혈족이라면 종종 백호 또는 호랑이 수인의 능력을 개방한다는 점.
그리고 이들 또한.
‘산군의 자리를 노리는 자들.’
길드를 이끌고자 했다.
그리고 드디어 찾아온 산군의 실각 위기.
이런 상황에서 굳이 외부인을, 그것도 산군의 충복이자 길드 창립 때부터 같이 해 온 한진명이 데려올 어중이떠중이를 개입시키고 싶지 않았고.
“진입하게.”
의도적으로 일을 서둘렀다.
그들 또한 방금 자신들이 준비한 수가 실패했다는 걸 보고받은 바.
기다릴 시간이 없었다.
“잠깐! 잠시만 기다려 주시면!”
“언제까지 당신 말 듣고 기다려 줘야 하지?”
“이익! 그건 당신들이!”
중년인의 물음에 순간 한진명이 발끈하려 할 때.
콰앙.
“여기 최강현 님 도착했습니다!”
강현이 현장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