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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수집으로 무한성장-116화 (116/277)

116화 함정

어째 이상하다 싶었다.

집에 전화를 걸 때마다 서연이나 할머니의 입에서 한진명의 소식이 들려왔었다.

-오빠! 오빠! 오늘 아조씨랑 같이 공원갔다? 막 허브? 있는 곳이었는데 언니랑 같이 놀았어!

-안 그래도 한 팀장이 병원 데려다 준 덕에 쉽게 검사받을 수 있었지 뭐니. 치료비도 산군 길드 쪽에서 해결해 준다더구나…….

자신이 없는 동안 한진명은 서연이와 할머니를 정말 가족처럼 챙겨 주었다.

그렇기에 오랜만에 얼굴도 보고 감사 인사도 하고 싶었는데.

이번 휴가 나와서는 단 한 번도 얼굴을 보지 못했다.

서연이나 할머니에게 물어봐도 모른다는 대답뿐.

전화도 걸어 봤지만.

-지금은 전화를 받을 수 없어…….

받을 수 없다는 알림음만 흘러나올 뿐이었다.

“이상타… 한 팀장이 그럴 리가 없는데 이번에 김치도 받아가기로 했는데 영 소식이 없구나.”

“오빠아, 아조씨 안 와? 아조씨 보고 시푼데… 언니한테 그림 배우고 시픈데. 히잉.”

조금 걱정스럽기는 했지만 큰일은 아니라 생각했다.

‘뭐 연말이라 바쁘신 거겠지. 산군이 작은 길드도 아니고 큰 길드인데.’

사실 틀린 생각은 아니었다.

국내 5대 길드 중 하나로 수장 산군 서대호는 세계에서도 내로라하는 1세대 강자.

그러다 보니 업무량과 강도가 때론 웬만한 대기업을 쉬이 뛰어넘을 정도.

그냥 그럴 뿐이라고 마음을 놓았다.

그러나.

‘좀 더 신경을 썼어야 하는 건데!’

스마트폰 넘어 한진명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강현이 이를 악물었다.

그래, 잠시 행복에 취해 있었다.

정작 가족을 챙겨 준 그를 찾아갈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니.

“무슨 일입니까?”

강현이 걱정 어린 목소리로 묻자.

“산군께서… 게이트에 들어가셔서 나오질 않아…….”

한진명의 침울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분명 들어가신 지 오래인데 나오시질 않아. 이대로 가다간…….”

무언가 말 못 할 사정이 더 있는 모양.

강현이 힘겨워 하는 한진명의 말을 가로막았다.

“알겠습니다. 내일 바로 가도록 하죠.”

“미안하네… 연말은 가족이랑 보내게 해 주고 싶었는데… 자네밖에는 도저히 떠오르지 않았어.”

이제야 알았다.

바빴던 게 아니라 연락을 피했던 거구나.

할머니와 서연이 그리고 자신을 위해서.

강현이 찬찬히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호의는 충분히 받았습니다. 이젠 제가 돌려드릴 때죠. 문자 주세요. 내일 반드시 가겠습니다.”

“…차 보내도록 하겠네.”

전화를 끊은 강현이 이번에는 아직도 가늘게 떨고 있는 서윤진의 등을 보았다.

[대상의 신뢰도가 일정 수준 이상입니다. 새로운 인물 정보 걱정거리를 볼 수 있습니다]

[걱정거리: 실종된 할아버지의 상태]

서윤진이 그리 피곤해 보였던 이유, 답지 않게 약한 소리를 했던 이유.

자신의 정신적 지주인 할아버지의 부재 때문.

강현이 찬찬히 숨을 들이켜며 결심했다.

서윤진과 한진명, 이들에게 산군 서대호는 중요한 사람이겠지.

‘서연이와 할머니가 내게 전부인 것처럼.’

중대장 서윤진은 이등병 때부터 자신을 챙겨 주고 응원해 주었다.

비록 그게 그녀의 일이라곤 하지만.

실제론 그마저도 제대로 못 하는 사람들이 다수.

한진명도 강현이 없는 동안 서연이와 할머니를 모른 척할 수 있었다.

사실 자신의 가족 챙기기에도, 산군 인사 팀장 업무를 소화하기에도 벅찼을 터.

그럼에도 그는 틈틈이 할머니의 서연이를 돌봤다.

‘오는 호의엔 가는 호의도 있어야겠지.’

첫 만남은 오해가 있었다지만 이젠 다르니까.

강현이 가늘게 떨리는 서윤진의 등을 억지로 외면했다.

지금은 등을 두들겨 줄 때가 아니다.

먼저 그녀의 걱정거리를 덜어 주어야 할 때.

“가요. 거기서는 행복하세요.”

최상익 하사가 미소 짓고 있는 부모님께 마지막 큰절을 올렸고.

홀로그램이 사라졌다.

그러고도 그는 일어서지 못했다.

“흐흑, 크흐흑!”

그렇게 하염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으면 자신의 부모님, 이미자 경사와 최봉식 경장이 그 자리에 계속 서 있을 것만 같았다.

물론 환상임을 알지만 작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

아니, 이 작은 환상이라도 평생 잡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러나 결국.

“흐윽, 후우, 후으으.”

가늘게 숨을 떨며 일어섰다.

눈물과 콧물로 엉망이 된 얼굴.

강현을 발견한 그가 억지로 환한 미소를 지었다.

“최고의… 크리스마스… 선물이었습니다!”

그가 기대한 어떤 선물보다 값진 선물.

최상익 하사의 눈물과 감사의 의미가 어떤 것인지 알기에.

강현이 고개를 떨궜다.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구하지 못했습니다.

두 분의 희생으로 이렇게 뻔뻔하게 살아 돌아왔습니다.

속으로 되뇌는 사과와 변명.

최상익 하사가 그런 강현의 손을 먼저 잡았다.

손안에서 만져지는 단단한 무언가.

바로 회색 숲을 나가기 전.

이미자 경사와 최봉식 경장이 강현에게 넘겨준 경찰 배지였다.

“체포왕…….”

그 안에 작게 적혀 있는 체포왕이라는 삐뚤빼뚤한 글씨.

“제가 어릴 적 적었던 글자입니다.”

최상익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어머니 아버지가 체포왕이 되길 바랐던 어린 시절이었죠. 비록 이제는 이룰 수 없지만요…….”

“…….”

“부모님은 끝까지 훌륭한 경찰이셨나요?”

“네, 제가 만난 그 누구보다 훌륭한 경찰이셨습니다.”

최상익 하사의 질문에 강현이 굳게 답했고.

“그거면 됐습니다. 이제 저에겐 이 체포왕이라는 건 의미가 없습니다. 최강현 일병에게 필요할 거예요. 그러니 나쁜 놈들 꼭 다 잡아 주십시오.”

[계승자의 허락에 따라 고물에 담긴 경험이 당신에게 이전됩니다]

[소중한 고물 경찰관 배지에 담긴 경험치를 흡수합니다! 새로운 스킬 기초 포박술을 습득합니다!]

[사용자의 마나를 이용하여 상대를 포박할 수 있습니다]

연속해서 떠오르는 알림에 강현이 놀랄 때.

“어떤 사연이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마 당신에게 특별한 능력이 있는 거겠지요. 하지만 제가 보기에 최강현 일병 당신의 가장 특별한 능력은…….”

최상익이 강현의 가슴팍을 툭 치며 말을 이었다.

“이 꺾이지 않는 의지와 모두를 구하려는 따뜻한 리더십입니다. 그래서 당신을 응원하고 싶습니다.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같은 아픔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그의 진심에 강현도 마주 고개를 끄덕였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최강현 일병의 최선만큼 믿음직한 건 없죠.”

산타는 없었지만 선물은 있었던 크리스마스가 끝났다.

* * *

“할머니.”

후다닥.

강현이 슬며시 방문을 열고 들어가자 할머니가 무언가를 황급히 숨겼다.

어제 너훈아 콘서트를 다녀오신 후.

강현과 서연이에게 무언가를 숨기는 모양새.

문득 어제 새로 얻은 인물창 기능을 떠올렸고.

[인물창에 새로운 정보 대상의 걱정거리가 보입니다]

[걱정거리: 너훈아 오빠 사인 걸어 놓기엔 좀 꼴불견일까]

서윤진과는 다르게 사소한 걱정이었지만 오히려 안도했다.

사소한 것에 걱정을 느낄 만큼 현재 삶이 좋아졌다는 뜻이니까.

강현이 할머니를 보며 슬쩍 미소 지었다.

“할머니, 훈아 오빠가 뭐 안 줬어요?”

“으, 으응? 뭘 말이냐?”

“아, 혜원 씨가 챙겨 준다더니 이거 안 되겠네. 제가 전화해서 사진이라도 한 장 찍어서 보내 달라고 해 볼게요.”

강현이 진짜로 스마트폰을 들어 올리자 할머니가 급히 손사래를 쳤다.

“아니다, 아니야. 안 그래도 어제 혜원이가 훈아 오빠 사인도 받아 주고 사진도 한 장…….”

급히 말을 멈췄지만 이미 들을 사람은 모두 들은 이후.

“후나 오빠아?”

옆에서 서연이가 배시시 웃으며 할머니를 놀렸고.

강현이 어린 동생을 마주 보며 답했다.

“후나 오빠아?”

“오빠아?”

그런 손자와 손녀를 보며 할머니가 뭐라도 변명을 하려 할 때.

“저기 벽에다 걸까요? 너훈아 씨 사인이야 가문 대대로 물려줄 만하죠.”

“할무이, 나도 볼래!”

강현과 서연이가 먼저 나서 할머니의 걱정거리를 풀어 주었다.

나이를 먹다 보면 당연한 행동들이 꼴불견으로 비칠 때가 있다.

주변에서도 저 나이 먹고 헛짓거리한다고 혀를 쯧쯧거리기도 한다.

하지만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사람.

사랑, 행복, 호감, 질투, 분노 등 감정을 느끼는 게 당연한 법.

오히려 강현은 이제 막 삶의 행복을 찾기 시작한 할머니를 응원하고 싶었다.

“주세요. 제가 걸어 둘게요.”

강현이 나서 너훈아의 사인을 받아 벽에 조심스레 걸었다.

이혜원에게 감사 문자라도 보내야겠다고 생각할 때.

“어디 나가니?”

할머니가 단번에 강현의 상태를 알아보고는 조심스레 물었다.

“네, 좀 갔다 와야 할 것 같아요.”

우리를 도와준 사람들을 도와주러요.

뒤에 말은 삼켰으나.

[걱정거리: 손자의 안위]

할머니의 걱정거리가 바뀐 것을 보아하니 강현이 무언가 중요한 일을 하러 간다는 걸 느낀 모양.

아니 못 느낄 리가 없었다.

매일매일 손자 손녀의 안위와 행복을 걱정하며 살았던 그녀이기에.

강현은 지금도 할머니에게만은 소중하고 보호해야 할 손자이지 않은가.

그 걱정을 이해했기에 강현이 일부러 더 밝은 표정으로 인사를 남겼다.

“갔다 올게요, 할머니. 오빠 갔다 올 게, 서연아.”

“조심히 갔다 오고.”

“오빠 일찍 와야 해…….”

둘의 배웅을 받은 강현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파트 현관으로 내려가자.

“최강현 씨……?”

거대한 세단 앞.

양복을 빼입은 남자가 강현을 기다리고 있었다.

“타시죠.”

마치 높은 사람을 수행하듯 문까지 열어 주며 강현을 모셨다.

“어디로 갑니까.”

“그리 멀지 않습니다.”

침묵하길 잠시.

“한진명 팀장님은요?”

“현장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상황 설명은 거기서 들으실 수 있을 겁니다. 저 또한 듣지 못한 상황이라.”

그의 곤란하단 표정을 보니 진심인 모양.

그런데.

[정보: 야망, 욕심, 줄타기, 기회주의자]

[추가 정보: 상대를 자연스럽게 속여 넘기려는 중]

[걱정거리: 이용만 당하고 버려질까 두려움]

그의 인물창을 본 강현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아마 상대는 자신을 말하는 것이리라.

‘속여 넘겨? 뭘?’

지금 가는 방향이 다른 방향인가?

이용만 당하고 버려진다?

한진명 팀장과 관련 있는 일인가?

아니면 이미 그의 손에서 벗어난 상황?

많은 생각이 휘몰아치길 잠시.

강현이 감았던 눈을 떴다.

고민보다는 행동이 우선이다.

한 팀장에게 전화하기 위해 스마트폰을 들었으나.

-통화권 이탈.

“…전화를 못 쓰나요?”

“아, 원래 중요한 임무 수행 시에는 혹시 모를 위치 추적이나 취재진의 미행을 방지하기 위해 통신, 데이터 일체를 차단합니다. 차에 그런 처리가 되어 있습니다.”

납득 가는 이유.

“그런데 누군가 이미 따라붙은 것 같군요.”

강현의 말에 운전자가 사이드 미러와 백미러를 힐끔거리며 확인했다.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만큼 바짝 다가선 검은 차량들.

상대도 이런 사항을 전달받지는 못했는지 당황한 모습.

그러나 이내 정신을 차리고는 아무렇지 않은 척 말을 이었다.

“…최강현 씨를 보호하기 위한 다른 수행 차량들입니다.”

“처음 보셨군요. 전달받지 못한 사항입니까?”

“VIP를 위한 비밀 호송은 기밀 사항이니까요.”

하하하.

애써 호탕하게 웃었으나 속에 숨겨진 불안감이 슬며시 튀어나왔고.

강현이 그의 불안감을 홱 낚아챘다.

“당신… 버림받은 거 같은데요? 저랑 같이.”

“…….”

[언변, 신뢰, 감화, 카리스마를 발동합니다. 상대가 당신의 말에 크게 흔들립니다]

“버림 패는 보통 모든 죄를 뒤집어쓰고 죽기 마련이죠.”

강현의 담담한 협박 아닌 협박에.

[상대의 평정심이 깨졌습니다. 본성을 드러냅니다]

“웃기지 마세요. 버려지는 건 당신 혼자니까.”

“…누가 시켰습니까. 어차피 같이 죽는 마당에 사실이라도 듣고 갑시다.”

강현이 말로 그를 조여 옴과 동시에.

주변 검은 차량들이 강현과 운전자가 탄 차량을 완전히 포위했다.

이미 경기도 어느 산골에 들어선 상황.

운전자의 눈이 이리저리 굴러가며 돌아가는 사태를 파악하려는 순간.

쿠웅!

차들이 일제히 세단을 압박.

한눈에 보기에도 차량을 산기슭에 처박으려는 모양새.

“으윽!”

그가 핸들을 돌리며 어떻게든 빠져나가려 했지만 역부족이었고.

강현의 말대로 자신도 버려졌음을 확신했다.

“이대로 같이 죽을 겁니까?”

“그, 그건!”

“당신 살려 줄 사람, 여기서 저밖에 없습니다. 어때요? 줄 갈아탈 생각 없어요?”

“정말 살려 주시는 겁니까?”

“제대로 된 정보만 준다면.”

강현에게 설득된 운전자가 결국 고개를 끄덕였고.

“누굽니까. 이 개 같은 짓을 저지른 새끼가.”

강현이 적을 찾기 위해 눈을 빛냈다.

“그, 그건… 사, 살려 주고 나서…….”

“저 혼자 살아 나가는 방법도 있습니다.”

“본부장! 본부장이랑…….”

“숙여!”

강현이 막 말을 꺼내려던 운전수의 머리를 내리눌렀고.

손목에 찬 실드 생성기가 강현의 마나를 빨아먹으며 푸른 막을 펼침과 동시에.

퍼엉.

방어막 위로 폭발이 터졌다.

“허억!”

정확히 운전자의 머리가 있는 높이.

아마 강현이 막지 않았더라면 그대로 머리통이 터져 나갔으리라.

그리고 반대편 차량.

창문으로 몸을 내민 남자 하나가.

“아니, 그러니까 비밀을 발설하면 죽음이라니까 그러네.”

강현을 보며 비열하게 웃었다.

그리고 그가 손뼉을 침과 동시에.

짝!

퍼퍼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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