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화 더 치면 뒈진다
“여보, 여기 장어 꼬리 좀 먹어.”
“꼬, 꼬리? 아냐 난 몸통이면 충분한데…….”
“쓰읍! 안 돼, 좀 먹어야 할 필요가 있어.”
“…왜?”
“정말 몰라서 물어? 내 입으로 이야기해?”
“아냐, 먹을게…….”
동물의 어느 부분을 섭취함으로써 그 힘을 이어받는다는 미신.
작게는 장어 꼬리, 소꼬리, 사골 등 음식에서 이를 찾아볼 수 있고.
더 나아가선 말벌주, 뱀술, 웅담 등 혐오 식품에 가까운 것들도 있었다.
이를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정력에 좋다거나 몸에 좋다고 하면 대상을 가리지 않는 경우.
“뉴트리아? 그냥 정력에 좋다고 하면 바로 멸종 아니야?”
“아, 정력은 못 참지.”
실제로 유해종으로 지정된 동물들도 정력에 좋다고 하는 순간 멸종하는 거 아니냐고 말할 정도.
그리고 이런 정력 식단을 먹기 시작한 사람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특별한 것, 강해 보이는 걸 찾기 마련.
때론 불법적인 일을 서슴지 않기도 했다.
더욱 자극적인 걸 원하는 사람들의 눈이 닿은 곳이 바로.
몬스터.
“이 녀석들 꼬리가 바위도 부순다던데.”
“그… 이번에 꼬리 달여 먹고 임신 성공했다던데.”
“몬스터 먹고 자란 곰의 웅담 먹으면 수명이 늘어난다더라.”
“화기가 강한 몬스터를 어릴 때 먹이면 겨울에 반팔만 입고 다닌다더라. 그 정도로 애가 튼튼해진댜.”
사람들은 찾다 찾다 못해 이젠 몬스터에게서 건강과 정력을 찾았다.
상식을 벗어난 존재에 대한 두려움과 호기심을 이런 식으로 풀려는 미신.
그리고 어디에나 이런 심리적 허점을 노리는 장사꾼들이 있기 마련이었다.
“전체 봉쇄해! 길드랑 특임대는 아직 멀었어?”
군단 주변에 있는 산.
사유지 경고 팻말이 꽂혀 있는 산 주변을 경찰들이 부랴부랴 가로막기 시작했다.
“이런 썅! 왜 전화를 안 받아! 대체 어떻게 된 거야?”
그중 현장 책임자로 보이는 고위직 경찰이 신경질적으로 스마트폰 화면을 두들겼다.
경기도 한 사유지에서 불법 웅담 채취 및 야생 동물 거래가 있다는 제보를 받고 담당 팀이 현장으로 출동.
얼마 지나지 않아 날아온 문자는 검거 소식이 아니었다.
-몬스터 고기 및 피를 먹인 야생 동물들 확인. 헌터 협조 요청.
이를 마지막으로 끊어진 연락.
우선 정해진 행동 매뉴얼을 따라 주변을 봉쇄.
주변 길드와 군단에 협조를 요청하긴 했지만.
“이 새끼들 살아 있는지는 알려 줘야 할 것 아냐!”
후배들의 생사를 알 수 없는 상황이 그저 답답할 뿐.
마음 같아서는 당장 권총 하나라도 들고 산 안으로 뛰어들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다는 걸 알기에 더욱 속이 터졌다.
그때.
“충성. 3군단 특임대에서 나왔습니다.”
영내에서 대기하고 있던 몇몇 간부와 함께 3중대 특임대 병력이 현장에 도착했다.
마침 기다리고 있던 헌터들의 등장에 책임자의 얼굴이 조금은 밝아졌다.
“아, 어서오십쇼.”
“상황 설명 좀 부탁드립니다.”
우선 출동은 했으나 어떤 일인지 알아야 이후 조치가 가능하기에 대략적인 상황 설명을 부탁했고 현장 책임자가 자신이 아는 한도 내에서 설명을 이어 나갈 때.
“자, 무기 들었지? 가자!”
밖에서 갑작스러운 소란이 일었다.
3중대가 현장에 도착한 후.
소대장을 비롯한 간부들이 현장 책임자와 다른 곳에서 잠시 이야기를 하는 동안.
“잠시만요! 아직 진입하시면 안 됩니다!”
“안 되길 뭘 안 돼. 너희들이 우리 불렀잖아. 아냐? 비켜, 들어가게.”
각종 무기로 무장한 인원이 나타났고 경찰의 통제 따윈 필요 없다는 듯이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물론 경찰들은 신원도 확인되지 않은 이들을 막을 수밖에 없었고 자연스레 실랑이가 일어났다.
대충 말을 들어보면 경찰이 도움을 요청한 길드에서 파견 나왔다는 건 알겠는데.
문제는 이들의 태도.
“아, 능력도 없는 데 막으면 위험하지.”
“여기 바리케이드나 잘 지키고 있으십쇼. 안에는 우리가 알아서 처리할게.”
명백한 무시와 하대에도 경찰들이 기분 나쁜 티도 내지 못했다.
왜냐면 그들은 일반인이니까.
결국 길드 헌터의 무력에 기대야 하는 현실을 알기에 참을 뿐.
물론 특임대 인원들도 그들을 부럽다는 듯 바라보았다.
자신들도 전역하면 길드에 들어가길 꿈꾸기 때문.
그리고 그중에선 특임대와 연이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어? 이 쒸발놈들! 아직도 군대에서 X뱅이 까고 있었냐?”
뒤쪽에서 경찰들을 놀리는 다른 헌터들을 보며 히죽거리던 놈 하나가 특임 3중대를 보고는 걸쭉한 욕설을 뱉으며 다가왔다.
그중에서도 전역을 얼마 남기지 않은 병장들을 아는 눈치.
“아, 씨- 저 새끼가 왜 저기 있냐.”
“얼굴 보기 싫었는데.”
그를 마주한 3중대 병장들 전체의 얼굴이 썩어 들어갔다.
심지어 평소에 농담 따먹기나 하며 시시덕대던 1분대 두 똥 병장도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릴 정도.
“확, 씨! 선임 보고 경례 안 하냐 X발놈아?”
그가 딴청을 피우고 있는 심 병장을 향해 손을 번쩍 치켜들었고.
심 병장이 움찔했다.
그 모습을 보고는 상대가 비열한 웃음을 터뜨렸다.
“아, 안 때려. 쫄지 마, 새끼야. 병장 짬 처먹고 쪼는 거 쪽팔리지도 않냐? 응? 뒤에 짬찌들은 후임들이야? 이야 많이 컸다?”
그리고는 주변을 둘러보더니 곧 두 똥 병장을 찾아내곤 다가왔다.
“어? 이 X벌 폐급 새끼들 아직 있었네? 이야 금방 뒈질 줄 알았는데 아직 살아 있잖아? 건철이가 똥 많이 닦아 줬나 보다? 아, 이런 새끼들이 뒈져야 헌터계가 깨끗해지는데.”
자기 나름대로는 반가움을 표하는 거라고는 하지만 전혀 반갑지 않았다.
---
이름: 김수창
직책: 예비역
나이: 24
호감도: 0
정보: 폭력배 출신, 후임들 구타가 특기.
추가 정보: 후임 하나를 너무 때린 나머지 허리를 부러뜨린 전력 있음. 하반신 마비 직전까지 감.
---
이런 인간을 누가 반가워한단 말인가.
그가 껄렁거리며 두 병장의 뺨을 툭툭 치고는 이번에는 1분대원들을 보며 비웃음을 띄웠다.
“이 병신들이랑 군 생활 하느라 힘들지? 알 만하다.”
김수창이 처음 보는 김대영, 장만수, 오목교의 가슴팍을 치기 시작.
“하긴 너희들이라고 다르겠냐, 다 같은 병신들이지 X발. 크크큭.”
“이병 오목교.”
툭.
“이병 오목교.”
툭.
“이병 오목교.”
오목교의 관등 성명에 상대가 즐겁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야 봐라? 목소리 그거밖에 안 나오지?”
이번엔 힘을 실어 오목교의 가슴팍을 치려는 순간.
“더 치면 뒈진다.”
싸늘한 음성이 주변 공기를 얼렸다.
전역자 김수창을 비롯한 모두의 시선이 목소리의 주인, 강현을 향했다.
“뭐? 야, 이 개새끼들 애들 교육 똑바로 안 하냐? 요즘 군대는 선임도 몰라보냐?”
그가 장건철을 비롯한 두 병장을 돌아보며 욕을 뱉었다.
선임한테 욕을 함으로써 자신의 위신을 세우려는 얄팍한 수.
그러나 강현은 흔들리지 않았다.
“너, 이 새끼… 다시 말해 봐. 선임한테 뭐라고?”
“선임 몰라봐서 말하는데 전역했으면 조용히 아가리 닫고 꺼져. 자꾸 욕 찍찍 뱉으면서 신경 건드리지 말고.”
“뭐?”
“그리고 한 번만 더 우리 분대 선임들한테 ‘뒈져야 헌터계가 깨끗해지는데’ 이딴 말 지껄이면 평생 입 닫게 해 줄 테니까 가서 사과해. 헌터 계속하고 싶으면.”
“이… 개 썅!”
텁.
강현이 자신에게 욕을 하려는 놈의 머리통을 가볍게 쥐었다.
그리곤 상대를 그대로 공중에 띄워 올렸다.
꾸우욱.
손아귀에 힘을 주자.
“이! 으윽!”
강현에게 주먹을 휘두르려던 놈의 움직임이 멈췄다.
남을 많이 때려 본 만큼 본능적으로 알아챘다.
지금 함부로 굴었다간 목이 부러진다.
강현의 강한 손아귀 힘은 그의 머리통을 꽉 잡고 있었고 발은 떠 있는 상태.
자신이 주먹을 휘두르는 순간 강현이 가볍게 손을 털기만 해도 목뼈가 위험하다.
그리고 사실.
“으으…….”
머리통을 누르는 힘 때문에 고통에 허우적대기도 바빴다.
이대로는 머리가 빠개질 거다!
김수창의 몸이 점점 흐느적거리기 시작할 즈음.
“야! 너 뭐야!”
경찰과 한창 실랑이를 벌이던 같은 길드원들이 둘의 다툼을 발견하고는 목소리를 높였다.
방금까지만 해도 후임들 조지러 간다고 낄낄거렸던 놈이 왜 저런 꼴이란 말인가.
“너 손 안 놔? 이 새끼가 강력 길드를 뭐로 보고!”
고함에 현장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몰릴 즈음.
강현이 김수창의 머리통을 놓았다.
그러나 남들의 시선이 쏠린 상황에 부담감을 느껴서가 아니었다.
“사과해.”
“뭐……?”
“사과해. 이런 새끼들이 뒈져야 헌터계가 깨끗해진다고 말한 거.”
바로 사람들 앞에서 사과받기 위함이었다.
자신과 함께 위기를 헤쳐 나온 전우를 모욕했다.
그것도 어디서 굴러먹는지 모를 새끼가.
마음 같아선 뼈를 작신작신 부수고 싶었지만.
보는 눈이 너무 많았다.
그래도 방금 발언에 대해 사과를 받아야 화가 좀 가라앉을 것 같다.
“야, 너 뭐야? 이 새끼야.”
길드원 중에 참지 못한 몇이 끼어들려 했지만.
“사과해.”
강현의 눈은 김수창에게 못 박힌 듯 떨어지지 않았고.
무시당했다고 생각한 강력 길드원들이 강현에게 다가가려 할 때.
“특임대 사이 일이니까 잠깐 기다리십쇼.”
1분대원들을 시작으로 3중대 전체가 이들을 막아섰다.
안 그래도 그들 또한 김수창의 행동에 화가 나 있는 상태.
놈이 중대 전역자든 뭐든 상관없었다.
지금 군 생활 같이하는 선임들이 개무시 당했다는 게 불쾌했고.
처음 보는 사람의 가슴팍이나 치며 낄낄대는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강현이 나섰던 것.
“이런 씨…….”
“욕, 하지 마십시오.”
서로의 분위기가 점점 거칠어질 때.
“야! 너희들 뭐해?”
마침 소대장과 간부들이 경찰과 대화를 마치고 다시 돌아왔다.
“아! 이거 강력 길드에서 오셨군요. 이쪽 오셔서 상황 설명 들으시죠!”
현장 책임자도 특임대보단 강력 길드를 더욱 반가워하는 눈치.
무언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소대장과 경찰 관계자가 고개를 갸웃할 때.
3중대가 어쩔 수 없이 물러났고.
“산에서 보자.”
“특임대 새끼들이 감히.”
강력 길드가 다음을 기약하며 경찰 간부 쪽으로 향했다.
“넌 두고 보자, 이 새끼야.”
김수창이 벌건 눈으로 강현을 노려보며 자리를 떴다.
아무리 막 행동한다지만 경찰 앞에서 진짜로 무력 충돌을 일으킬 순 없는 일.
놈들이 경찰 간부에게 입에 발린 아첨을 받으며 작전 설명을 듣는 동안.
“아, 씨… 사람들만 없었으면 내가 처발라 버리는 건데.”
“한 방이면 컷이지.”
두 똥 병장이 애써 분위기를 풀려 농담을 던졌고.
“맞습니다. 살인날까 봐 제가 나섰지 뭡니까.”
“하하하! 아, 이거 강현이가 나서는 바람에 어쩔 수가 없었네.”
“그러게… 응? 내가 아주 이렇게 저렇게 작살을 낼 수 있는데 말야.”
강현이 분위기를 맞춰 주었다.
방금의 화가 남아 있어서야 작전에 집중하기가 어렵기 때문.
비로소 딱딱하게 굳어 있던 3중대원들의 얼굴이 좀 풀렸다.
“뭐라는 거야. 자, 작전 설명할 테니까 잘 들어라.”
그런 그들을 보며 소대장이 간단한 상황 설명에 장황한 작전 설명을 곁들였다.
결국.
“산 안에 있는 요원들 구하고! 몬스터 피 마셨다는 곰이랑 뱀 확보한다! 만일 이미 몬스터화가 되었다면 모두 사살하도록!”
“알겠습니다!”
소대장의 마지막 요약과 함께 작전 시작.
“자, 맡은 구역에 도착하면 무전하고! 시작 명령 떨어지면 생존자랑 야생 동물들 찾으면서 구역 훑도록!”
소대장이 각 분대 수색 구역 하달과 이후 행동에 대한 간단한 지침을 내렸고.
3중대 각 분대가 맡은 구역으로 향했다.
반대편에선 강력 길드가 수색하며 올라갈 예정.
-후, 여기는 통제 본부. 수색, 수색 시작할 것.
곧 무전기에서 동시 수색 명령이 떨어졌다.
그리고 어두컴컴한 산을 보며 강현을 비롯한 1분대가 씨익 웃었다.
“왠지 생각나지 않습니까?”
“아아- 회색 숲. 그곳에 비하면 너무나도 쉽겠군.”
“쏘 이지.”
이미 그들은 지금보다 더한 최악의 상황을 겪어 본 적이 있었다.
비록 황세아 중사는 같이 없지만 지금은 작전 지도도 있고 인원도 많았다.
거기다 그들에겐 가장 큰 자산.
경험이 있었다.
[높은 분대 신뢰도로 인한 새로운 분대 특성 교감을 형성합니다]
[이후 작전 시 서로의 행동을 예측하여 지체 없이 작전을 수행합니다]
그리고 이런 경험과 신뢰는 능력이 되어 발휘되었고.
1분대는 그 어떤 분대보다 빠르고 완벽하게 맡은 구역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딱 한 가지 난관.
야간이라는 장애물이 그들의 발목을 붙잡았다.
그때.
“뀨!”
강현의 가슴팍에 숨어 있던 구찌가 고개를 쏙 내밀었다.
‘구찌는 아기야, 아직 지켜 줘야 해.’
상태창은 구찌를 작전에 참여시켜야 한다고 했지만 이제 갓 태어난 새를 함부로 위험에 노출시킬 순 없는 법.
그래서 그냥 가슴 주머니에 넣고 같이 움직이기만 하려 했는데.
구찌가 강현의 가슴 주머니에서 나와 포로롱 공중으로 날아오르더니.
[구찌의 고유 권능 무한의 불꽃을 발동합니다!]
호로로록!
작은 불방울 수십, 수백 개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분명 불인데 손으로 만져도 따뜻할 정도의 온도.
작은 불꽃들이 1분대의 수색 구역 전체를 훤히 밝혔고.
“뀨우!”
[구찌가 칭찬해 달라며 강력하게 어필합니다]
구찌가 강현의 어깨에 앉아 가슴팍을 활짝 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