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물수집으로 무한성장-107화 (107/277)

107화 이름은 구찌, 명품이鳥

군대에서 가장 힘든 일 중 하나.

훈련? 힘들다.

작업? 짜증 나고 힘들다.

정말 말도 안 되지만, 장군이라도 막사로 찾아오는 경우?

아주 미쳐 버리는 거다.

그런데 이런 굵직굵직한 사건들은 어떻게 보면 지루하진 않다.

오히려 시간이 훅 지나가서 좋은 점도 있다.

“다들 버텨! 거꾸로 걸어도 국방부 시계는 간다!”

아무리 힘든 훈련도 훈련 준비, 예비 교육, 훈련, 마무리 정리 이후 정비까지 모두 거치면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한 달까지도 쉽게 잡아먹는다.

결국은 전역이 점점 다가온다는 뜻.

바쁜 만큼 힘들고 지치지만 견뎌 내기만 한다면 어느새 줄어든 복무 일자를 보며 웃을 수 있다.

오히려 병사들이 더 힘들어하는 건.

바로 무한 대기.

몸은 편할지 모르지만 정신적으로 큰 고통이 뒤따르기 때문이었다.

“으으으! 시간! 시간이 안가!”

“이곳은 시간과 정신의 방인가! 아직 백화점 안이었던 거냐!”

처음에는 좋았다.

마침 백화점에서 생존자를 구출하느라 몸도 지쳤겠다.

마지막 격렬한 전투로 인해 이미 진이 빠질 대로 빠진 상태.

이 기회에 일과 빠지면서 꿀이나 빨자는 마음.

그러나.

“자고 일어났는데 30분 흘렀다고? 미친!”

“왜 자도 자도 아침인데?”

하루하루 지날수록 1분대원들은 흐르지 않는 시간과 싸움을 벌여야 했고.

특히 두 똥 병장은 이젠 거의 어둠의 하수인이 되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몸을 뒤틀고 있었다.

“우으윽! 차라리 훈련이라도 시켜 줘! 키이잇!”

“작전 3-2! 아니 이번엔 작전 4-3이닷!”

본래 전역이 가까워져 오면 주말이 더욱 힘겨운 법.

가뜩이나 느린 시간이 더욱 느려지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고통 속에서 시간을 보낸 지 일주일.

강준진 준장이 부대에 방문한 날부터 생활관 대기 명령이 풀리자 1분대원들이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부대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악! 하나 더!”

“텐 랩스! 텐 랩스!”

장건철과 장만수는 체력 단련실로 달려가 미친 듯이 근육을 찢는 중.

“야, 먹어! 마셔! 부어!”

“감사히 먹겠습니다!”

김대영과 오목교, 이성민은 PX로 달려가 슈넬 치킨, 피자, 순대로도 모자라 빅팜을 넣은 간짬뽕을 위장에 때려 부었다.

“어찌~ 함니까! 어떻게 할까요오~.”

“오빤 강남 스따일! 오, 오오!”

“넌 내게 빠져! 넌 내게 미쳐! 아이 갓츄~.”

똥 병장 둘을 비롯한 나머지는 노래방, 철권 등 오락 시설을 즐기길 한참.

지난 일주일간 쌓인 스트레스를 풀었고.

개인 정비 시간이 끝날 즈음 다 같이 생활관 안으로 들어온 순간.

“뀨?”

귀염둥이를 만났다.

그날 이후.

“야, 요즘 장 병장님이랑 만수는 왜 저리 빨리 가냐?”

체력 단련실 지박령으로 불리던 장건철 병장이 운동을 재빨리 마무리하고 나가다니?

평소에 같이 운동하던 후임들이 그를 걱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1분대의 변화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김대영 상병님 오늘은 뭐 드십니까?”

“여기 곡식 없냐?”

“곡식은… 취사장에 있는 거 아닙니까?”

“이거 새가 좋아할까?”

“크림 우동을 새가 먹습니까?”

“…좀 오바지? 그럼 슈넬은?”

“그거 치킨입니다. 차라리 미숫가루가 곡물 아닙니까?”

“아! 야, 나 먼저 간다.”

“안 드심까?”

“어, 입맛이 없어서.”

평소 PX 회식을 즐기던 그가 아무것도 안 먹고 나가다니?

PX를 나서는 그의 손에는 미숫가루 한 봉지와 방한용품만이 들려 있었다.

“뭐야? 웬일로 안 먹고 그냥 가지?”

“미숫가루? 다이어트하려고 하는 거 아님까?”

“김대영 쟤가? 절대 그럴 리가 없지.”

갑자기 변한 김대영의 모습에 함께 자주 PX 파티를 벌이는 병사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심지어는.

“같이 철권 한판 조지지 말입니다.”

“철권 조지고 노래까지 싸악… 어떻슴까?”

평소 같이 놀던 후임들의 제안에.

“아, 좀 일이 있어서. 미안타.”

“잼게 놀아라.”

두 똥 병장이 오락거리를 마다하고 재빨리 생활관으로 향했다.

“……?”

“저 인간들이 웬일이랍니까? 평소에는 가겠다는 사람까지 붙잡더니.”

“전역할 때가 됐나?”

“설마 전역 후 인생 계획이라도 짜고 있는 거 아님까?”

“저 두 사람은 좀 짜야 할 필요가 있긴 하지.”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전역할 때가 됐다던데.

1분대원들이 오락거리, 맛난 음식, 운동마저 마다하며 모인 곳은 생활관.

그중에서도 바로 침대에 앉아 있는 강현 앞이었다.

“…….”

“…끄응.”

그들의 눈빛을 외면하던 강현이 결국 고개를 들었다.

“또 보러 오신 겁니까?”

강현이 곤란하단 표정을 짓는 순간.

“이걸 어떻게 참는데!”

“귀여운 거, 그거 어떻게 참는 건데!”

분대원들의 아우성이 몰아쳤고.

결국 강현이 한숨을 내쉬고는 작게 휘파람을 불자.

“뀨? 뀨뀨!”

작은 새 한 마리가 침낭 사이에서 고개를 쏘옥 내밀었다.

자주색으로 빛나는 복슬복슬한 솜털과 작은 부리, 까만 눈.

폴짝 뛰어오른 피닉스가 작은 보폭으로 강현 쪽으로 달려오기 시작.

찹찹찹찹.

그 작은 발이 움직일 때마다 분대원들의 얼굴에 아빠 미소가 번져 갔다.

그러던 중.

뀨!

아기 피닉스가 속도를 가누지 못하고 넘어졌고.

“괜찮냐!”

“다친 거 아냐?”

“다리! 다리 다칠라!”

“구급약 가져와!”

강현이 놀라기도 전에 1분대원들이 일제히 설레발을 치며 소리 질렀다.

“아, 소리 때문에 애 더 놀라겠습니다.”

“헙.”

“모두 침묵.”

강현의 한 마디에 입을 꾹 다문 1분대원들이 강현 옆에 머리를 비비는 피닉스를 바라보며 두 손을 모았다.

물론 강현의 눈에 보이는 것은.

근육이 우락부락한 빡빡머리의 군인들이 가슴 근육과 전완근을 구겨 가며 눈을 빤짝거리는 풍경.

‘그래도 차라리 다행인가.’

처음 1분대원들이 피닉스를 발견했을 때만 해도 어떻게 둘러대야 하나 걱정이 많았는데.

오히려 강현보다 그들이 피닉스를 더욱 귀여워하며 챙겨 주려 했다.

심지어는.

“따라라라, 따~. 따따, 따라~.”

선임들이 예전 집 고쳐 주는 유명 프로그램에서 나왔던 음악을 입으로 부르기 시작했고.

강현이 피닉스의 눈을 가린 후.

TV 아래 커다란 여닫이 서랍장 문을 열자.

“이 청소 용품만 가득하던 곳이 어떻게 바뀌었을까요? 짜잔!”

피닉스를 위해 한껏 꾸며 놓은 보금자리가 보였다.

안에 모포와 방한용품으로 잠자리를 만들고.

줄과 나뭇가지를 다듬어 만든 그네와 굵은 나무줄기를 놓아 놀 수 있는 자리까지 만들어 놓은 상태.

거기다 작은 페트병을 잘라 만든 물컵과 모이 컵까지.

1분대원들이 합심해서 만든 피닉스의 보금자리였다.

“저 그네는 누구 작품이냐?”

“이병 오목교!”

“…장비 관리를 저렇게 좀 해 봐라.”

“감사합니다!”

아니, 칭찬이 아니잖아.

이성민의 속삭임에 오목교가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을 보며 강현이 잠시 웃은 뒤 피닉스의 눈을 가리고 있던 손가락을 치웠고.

“뀨우!”

피닉스가 자신의 새로운 보금자리를 보고는 폴짝 뛰어 들어갔다.

주변을 두리번거리길 잠시.

뀨뀨뀨! 날개를 파닥거리며 뛰는 게 좋은 모양.

“오오! 좋아한다!”

“크으! 군 생활 보람차다!”

“으윽! 아기 새 최고야!”

1분대원들이 그 모습을 보며 감동했다.

그때.

“이름은 정하셨습니까? 최강현 일병님?”

이성민이 던진 질문.

“아직 못 정했어.”

그리고 강현의 답변에.

1분대원 전체가 고민에 빠졌다.

청소 시간이 끝난 후.

“오늘 분대 회의 중요 안건.”

모두가 진지하고도 심각한 분위기로 앉아 눈을 빛냈다.

1분대원들의 눈이 향한 곳은 강현의 품에 안긴 채 미숫가루와 달걀노른자를 섞은 이유식을 먹고 있는 아기 피닉스.

PX에서 구한 빨대로 이유식을 넣어 주자.

“짭짭짭.”

작은 부리로 이를 받아먹는 모습에 1분대원들의 얼굴이 다시 흐물흐물 녹았다.

“아기 새에게 어떤 이름이 맞을지 토론 시작하겠습니다.”

김대영 상병의 회의 개최 선언에 이어 모두가 피닉스에게 붙여 줄 이름을 제안하기 시작했다.

뀨야, 뀨, 새야, 하늘이, 굳건이.

“뒈진다.”

“쓰읍, 정신 안 차릴래?”

장만수의 마지막 말에 선임들이 일제히 인상을 찌푸렸고.

“붸에.”

피닉스도 먹던 이유식을 뱉어 냈을 정도.

장만수 일병도 그 격한 반응에 충격을 받았는지 입을 꾹 다물었다.

폴짝, 배가 부른지 강현의 품에서 뛰어내린 피닉스가 책상 중앙에 섰고.

“음, 복덩아?”

장건철 병장이 자신이 생각한 이름을 부르며 손가락을 내밀자.

삑.

피닉스가 고개를 휙 돌렸다.

딱 봐도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

“오복아?”

이번에는 오목교의 도전.

그러나 역시 피닉스가 고개를 돌려 거절했다.

“닉스?”

장만수 일병이 큰맘 먹고 다시 도전.

피닉스가 잠시 망설였고.

“오오, 닉스야?”

장만수가 기대를 품으며 다시 이름을 불러 보았으나 결국 고개를 돌렸다.

다들 피닉스의 선택을 받기 위해 이런저런 이쁜 이름을 부르던 와중.

“구찌?”

이성민이 문득 어느 명품 브랜드 이름을 떠올렸고.

“삐약!”

피닉스가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성민을 바라보았다.

그때.

“구찌가 그 친구라는 뜻도 있습니다.”

오목교가 옆에서 의미를 덧붙였다.

“경상도 쪽 사투리 중에 친구를 구찌라고 한답니다.”

오목교의 어시스트에 1분대원들의 표정이 대번에 밝아졌다.

“오, 오오! 구찌! 좋은데?”

“그래 딱 고급스러우면서도 뜻도 좋고. 이성민, 좀 한다?”

“최강현 일병님, 어떻습니까?”

이성민을 비롯한 분대원들의 눈이 강현에게 향했고.

강현이 미소 지으며 피닉스에게 손가락을 내밀었다.

“구찌?”

뺙!

그러자 구찌라는 새로운 이름이 마음에 들었는지 피닉스가 밝게 울며 강현의 손가락을 발로 붙잡았다.

마치 악수하는 듯한 자세.

[피닉스가 자신의 이름을 마음에 들어 합니다. 주인과의 친밀도가 한층 더 높아졌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다들 아빠 미소를 짓는 순간.

저벅 저벅.

선명한 군홧발 소리가 생활관 쪽으로 향하는 게 들려왔다.

강현이 급하게 구찌를 잡아 품 안으로 숨겼고.

벌컥.

“충성! 1 생활관 분대 회의 중!”

“쉬어.”

“쉬어!”

동시에 당직 사관이 생활관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오늘의 당직 사관 행정 보급관 상사 원중식.

노란 완장을 찬 그가 생활관을 잠시 둘러보고는 차가운 표정으로 1분대원들을 쓸어 봤다.

이전 혹한기 훈련 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분위기.

“새끼들, 생활복 똑바로 안 입냐?”

툭툭, 괜히 말년 병장 둘을 건드린 그가 이번에는 이성민을 향해 친절하게 웃었다.

“그래, 성민이. 군 생활은 할 만하고?”

“이병 이성민!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잠시 뿌듯하단 얼굴로 이성민을 바라보던 그가 오목교를 보고는 얼굴을 차갑게 굳혔다.

확연한 온도 차이.

그리고 강현에 이르러서는 두 눈에서 아주 꿀이 뚝뚝 떨어질 듯이 변했다.

“강현이는 아주 훌륭해, 앞으로 그렇게만 해.”

그러나 그 표정을 마주한 강현은 오히려 불쾌했다.

사람을 보는 표정이라기보단 비싼 물건을 보는 듯한 표정.

[추가 정보: 최강현의 정보를 비싸게 팔아먹을 생각에 들떴음]

이전 인물창에서 확인했던 정보를 보면 딱히 틀린 생각도 아니었다.

그가 강현과 이성민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생활관을 나가려 할 때.

“뀨!”

구찌가 답답했는지 소리 내어 울었고.

“뭐야? 어떤 새끼가 이상한 소리 냈어?”

그가 대번에 욕을 뱉으며 분대원들을 노려보았다.

혹한기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좀 엄하긴 했지만 이렇게 병사들에게 막 대하진 않았는데.

요즘 들어 병사들에게 욕을 하거나 심지어는 손찌검을 하려는 경우까지 생겼다.

완전히 뒤바뀐 행보관의 성격에 다들 침을 꿀떡 넘겼고.

“이 개새끼들이… 지금 행보관 무시하냐? 당장 아가리 안 열어?”

그가 곧 패악질을 부리기 시작했다.

“이 새끼들이 행보관을 우습게 보고 덤빈다 이거지?”

원 상사가 얼굴을 시뻘겋게 물들이며 생활관을 엎으려던 순간.

“뀨!”

생활관에 다시 한번 같은 소리가 울렸다.

그러나 이번에는 구찌가 낸 소리가 아니었다.

“뀨!”

“…뭐하냐?”

“이병 이성민!”

원 상사의 질문에 이성민이 답했다.

“그, 그! 제가 딸꾹질을 하면 이런 소리를 냅니다. 뀨!”

일순간 생활관이 정적에 휩싸였다.

아마 평소라면 어디서 귀여운 척이냐고 다들 욕이라도 했겠지만.

‘잘했다, 성민아.’

‘희생 잊지 않겠다!’

‘사회적 죽음을 택하고 구찌를 구하다니… 훌륭하다, 전우여.’

이번만큼은 모두 눈감기로 합의.

강현마저도 이번만큼은 이성민의 훌륭한 대처에 감탄했다.

행보관도 다른 병사가 했다면 자신을 놀리냐며 의자를 걷어차기라도 했겠지만.

이성민, 그의 아버지가 꽤 이름 있는 길드의 수장인 걸 아는 원중식 상사가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그의 어깨를 두들겼다.

“그래, 물 마시면 좀 나을 거다.”

“감사합니다! 뀨!”

행보관이 생활관을 나선 후.

끄흐흐흑.

이성민을 제외한 모두가 숨죽여 웃음을 터뜨렸고.

강현이 이성민의 어깨를 잡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다!”

“이병 이성민… 최선을 다했습니다.”

사회적 자아를 하얗게 태운 이성민이 의자에 축 늘어졌다.

그 모습에 다들 한 번 더 웃을 때.

[피닉스 서브 퀘스트 1생활관의 새로운 입주자를 시작합니다!]

[성공 조건 – 상대보다 우위를 증명하라, 단 피닉스도 임무에 참여해야 함]

[성공 시 – 피닉스 생활관 거주 허용]

[실패 시 – 피닉스 생활관 거주 불허]

웨에에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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