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화 두 열쇠
무수히 쌓인 시체 위.
강현이 양발로 깔끔하게 착지.
이후 양팔을 활짝 벌리며 턱을 도도하게 치켜들었다.
그리고 그 모습에 회색 숲 전체가 침묵에 휩싸였다.
‘상태창, 넌 두고 보자!’
물론 자신이 원해서 한 착지가 아니었기에 강현의 얼굴을 처참히 구겨져 있었지만.
뒤에 있는 모두는 그 사실을 몰랐고.
“백 점이오! 백 점!”
짝짝짝짝!
모두가 박수를 보내기 시작했다.
훌륭히 적을 처치한 것으로도 모자라 저런 쇼맨십이라니!
생존자들 모두가 박수를 보내는 동안.
“푸하하하하! 쟤 뭐 하는 거야! 강현아, 넌 최고야!”
“것 봐! 너도 미친놈일 줄 알았다니까!”
“강현아! 정신 차려! 넌 그러면 안 돼! 너만은!”
1분대원들이 배를 잡고 웃기 시작했다.
그냥 이 모든 상황이 웃겼다.
때로 그럴 때가 있지 않은가, 사소한 게 참을 수 없을 만큼 웃길 때가.
그리고 곧 그 웃음은 점점 주변으로 퍼져나갔다.
“아하하하!”
“푸흐흐흐!”
“끼익, 끼익, 끼익!”
사람들이 참을 수 없다는 듯 서로를 바라보며 킥킥대고 웃기 시작.
나중에는 눈물을 흘리며 웃는 사람들까지 생겨 났다.
황세아도 이혜원도 마찬가지.
모두 전염이라도 된 듯 웃을 때.
[회색 숲을 가득 메운 절망이 걷힙니다!]
알람이 떠올랐다.
그러자 회색 숲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한번 웃을 때마다.
퐁퐁.
오색 기운이 사방으로 솟아났고.
동시에 땅과 나뭇잎들이 제 색을 되찾기 시작했다.
“어? 어어?”
점점 생기가 차오르는 숲의 모습에 다들 눈을 휘둥그레 떴다.
회색 숲에 들어온 이후 계속 칙칙한 풍경만 보다가 오랜만에 싱그러운 풍경을 보아서이기도 했고.
“여기가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었어?”
“우와! 이 꽃 정말 이쁘다!”
“저기 열매도 있었네!”
비로소 색을 찾은 숲이 생각 외로 너무나 아름다워서이기도 했다.
회색 일색일 때는 보이지 않았던 나무의 싱그러움, 꽃의 청초함, 열매의 달큰한 향기까지.
색을 되찾자 숲 전체가 각자의 존재감을 내뿜기 시작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짹, 째잭!
“새소리다!”
봄이 찾아온 듯 어디선가 생명의 소리가 들려왔다.
곧 바람 소리와 졸졸졸 물소리도 들려왔다.
회색을 벗어던진 숲은 아름다웠고 또 포근하기까지 했다.
“아, 힐링 된다…….”
“진짜 이렇게 보니까 좀 더 있고 싶네.”
몇몇 사람은 이 안온한 풍경에 빡빡하게 낀 현대인의 스트레스를 털어 내기도 했고.
“새, 새 구이…….”
“으음, 여기서 생존을 어떻게 하려나?”
몇몇 사람은 이곳에서 확보할 수 있는 식량과 생존에 대해 고민했지만.
대부분은.
“이제 드디어 나갈 수 있는 거야? 그런 거야?”
“여보! 곧 갈게!”
“혹시 밖에서 이런 분 못 보셨어요?”
“아아, 이분 무사해요! 저 봤어요!”
“감사합니다! 엄마가 무사했군요! 무사했어!”
“크흐윽!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결국 살았다는 안도감, 이젠 나갈 수 있다는 기쁨을 만끽했다.
방금까지는 그렇게 웃던 사람들이 이번엔 마구 울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며 1분대원들이 서로에게 미소 지었다.
긴 싸움이었다.
어려운 시간이었다.
그러나 1분대는 포기하지 않고 사람들을 구했고 끝까지 버텼다.
그리고 해냈다.
그들에게는 해냈다는 사실이 가장 큰 기쁨이었고 지금 사람들이 흘리는 기쁨의 눈물이 즐거움이었다.
그들 또한 붉어진 눈시울을 감추기 위해 서로 등 돌릴 때.
“으, 으허엉!”
역시나 장건철 병장이 그 자리에서 울음을 터뜨렸다.
그의 비단결 같은 마음씨가 결국 참지 못하고 눈물샘을 터뜨린 것.
그런데.
“어엉!”
“야, 야! 너는 왜 울고 난리야!”
엉뚱하게도 오목교마저 울음을 터뜨렸다.
“고생했다, 성민아! 우리가 해냈어! 우리가 해냈다고!”
그가 눈물 콧물을 흘리며 자기 동기를 끌어안았고.
“으윽! 좀 떨어져 봐!”
이성민이 낯간지러운 게 싫어 오목교를 밀쳐 내려 할 때.
짝짝짝짝!
“감사합니다! 감사해요!”
“군인분들 덕에 살았어요!”
“이 은혜 잊지 않을게요!”
“특임대 최고다! 멋있다, 특임대!”
생존자들이 이번엔 특임대 1분대를 향해 박수를 보냈다.
강현에게 가려져 있었지만 그들도 영웅이긴 마찬가지.
“충성! 감사합니다!”
“충성! 모두 무사해서 다행입니다!”
그리고 1분대가 마주 경례하며 답했다.
서로 눈물, 콧물, 울음과 웃음이 혼재된 얼굴로 감사를 주고받는 모습.
우스꽝스럽기도 했지만.
“감동적이지?”
참 감동적이었다.
“그렇네요.”
숲이 색을 되찾으며 하수인들의 수북한 시체는 언덕으로 변했고.
그 위를 푸릇푸릇한 잔디가 잔뜩 뒤덮었다.
강현과 검성 이석천이 꼭대기에 선 채 기뻐하는 사람들을 보며 미소 짓고 있었다.
둘이 퍽 닮은 자세로 아래를 내려다보던 중.
“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했구나. 훌륭하다…….”
“…여기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많은 일이 있었지…….”
잠시 말을 고르던 그가 입을 열었다.
“게이트에 들어온 후, 몇몇 던전 비슷한 곳을 지나 이 숲에 도착했고 모두 살기 위해 몸부림쳤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고결함을 지킨 사람도 있었고 또… 명예와 생명을 잃은 자들도 더러 있었지… 치열한 생존이었어.”
많은 사실이 축약된 말에 강현이 아무 말 하지 못했다.
자신도 이 숲을 겪었으니 대략적으로 짐작은 갔다.
생존을 위한 투쟁과 배신이 있었으리라.
“하지만 결국 더 많은 사람이 협력을 택했고, 각자가 조금씩 희생한 덕에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
“다음 말입니까?”
강현이 이후 무언가 중요한 말이 나올 것을 짐작하며 긴장했고.
이석천이 입을 열려는 순간.
[현재 기억 조각 모음 30%, 정보를 열람하기 위한 기억 조각이 부족합니다]
[검성 이석천의 기억이 완전하지 않습니다. 정보를 전달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실망스러운 알림창이 떠올랐다.
“미안하구나.”
검성이 마치 자신의 잘못이라는 양 사과했고.
강현이 고개를 저었다.
‘다음이라.’
그래도 한 가지 정보를 들었다.
회색 숲 다음이 있고 사람들이 다음으로 넘어갔다는 사실.
거기엔 부모님도 포함되어 있었을까.
자연스레 강현의 얼굴이 어두워졌고.
검성이 말을 이어갔다.
“결국… 난 실패했나 보구나. 너의 표정을 보니 알겠어.”
“그게 무슨?”
“너가 보는 나는 불완전한 흔적일 뿐이니 진짜 내가 걸어간 길을 모두 알지 못하거든… 그래도 알겠어. 게이트 무력화에, 사람들을 구하는 일에 실패했나 보구나.”
“…어쩌면요.”
“커다란 아픔을 겪게 해서 미안하구나.”
순간 강현의 목울대가 울렁거렸다.
소리 지르고 싶었다.
우리 부모님은 어디 있냐고, 살아는 있는 거냐고, 정말 이 회색 숲 다음으로 넘어가면 부모님이 있는 거냐고.
한국 최강, 아니 세계 최강이라 불리던 당신이 왜 아무도 구해 내지 못한 거냐고.
어째서 우리를 덮쳤던 비극을 막지 못한 거냐고 따져 묻고 싶었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아니 못 했다.
비록 기억의 조각일 뿐이지만.
검성의 얼굴은 너무나 피곤하고 힘들고 후회로 가득해 보였다.
세상의 짐을 지고 또 져, 지치고 무너질 듯한 모습.
이게 그 말로만 듣던 검성 이석천의 본모습이었을까.
세상을 지키는 검이라 불리던 그의 진짜 얼굴일까.
문득 강현이 다른 질문을 꺼냈다.
“그 짐 무겁습니까?”
“뭐가 말이냐?”
“사람들을 지키는 일이요.”
“엄청 무거웠지. 보이냐? 이 승모근 뻣뻣하게 뭉친 거?”
“…힘드셨겠군요.”
“힘들다마다. 그래도… 기뻐하는 사람들만 보며 버텼다.”
“그럴 가치가 있었습니까?”
“…….”
강현의 물음에 검성 이석천의 기억이 잠시 침묵했다.
“강현아.”
그리곤 그의 이름을 나지막이 불렀다.
“…네.”
“꼭 어려운 길을 가지 않아도 된다. 그저 건강하게 그리고 바르게 자라 주길 바란다고 하더구나. 올바르게 생긴 남자와 유독 하얀 여자가 그리 말했었지. 자기 자식 사진을 보여 주며 말이다. 아이들 이름이 강현이와 서연이라 했던가.”
“…크흑.”
이석천의 말에 결국 강현이 신음을 흘렸다.
검성에게 전해 들은 부모님의 소원.
이석천이 가늘게 떨리는 강현의 등을 토닥이며 말을 이었다.
“동생은 건강하고?”
“…네, 건강하죠. 이제 초등학교 들어갑니다. 밝고 건강하게 잘 자라 주었어요.”
“기뻐하겠구나, 기뻐하겠어.”
강현이 잠시 감정을 정리했다.
검성을 만난 것도 놀라웠고 부모님의 소식을 들은 것도 기뻤다.
그러나 아직 한 가지 질문이 더 남아있었다.
“대체 이곳엔 무얼 버리고 간 겁니까. 그리고 나가는 방법은요?”
검성의 기억이 나타나기 이전 강현이 보았던 알람.
[같은 장소를 지나쳤던 자의 흔적을 발견하였습니다]
[회색 숲에 버려진 검성 이석천의 기억 일부를 소환합니다!]
검성 이석천은 분명 이 회색 숲을 지나갔다.
그런데 이 숲의 색은 여전히 회색이었다.
기억이 버려졌다는 뜻은 무엇일까.
강현의 표정에서 수많은 의문이 떠올랐고 이석천이 다시 입을 열었다.
“난 너처럼 완벽한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 결국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왔고, 나는 나의 일부분을 희생하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몇몇과 함께 이곳에…….”
[현재 기억 조각 모음 30%, 정보를 열람하기 위한 기억 조각이 부족합니다]
다시 한번 상태창이 답을 가로막았고.
검성 이석천이 고개를 하늘로 들어 올렸다.
마치 위에 있는 무언가를 바라보는 듯한 모습.
그때, 불쑥 다른 목소리가 이석천의 말을 맺어 주었다.
“남기로 했지요. 모두가 위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으니까요.”
[새로운 정보 깊은 어둠의 속내를 획득했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알려 주자면 두 사람은 위로 올라가셨어. 강현이 너희 부모님 말이야.”
“……!”
[새로운 정보 부모님의 소식을 들었습니다]
강현과 이석천이 고개를 돌려 그쪽을 바라보자.
“여보! 끼어들지 말라고 했잖아. 검성님 대화 중이신 거 안 보여?”
“아니, 이 아저씨가… 강현이 이대로 보낼 거야? 이야기해 줄 건 빨랑빨랑 해 줘야지!”
“어어?”
저분들은?
강현이 언덕으로 급히 올라오는 부부를 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여기는 어떻게? 그리고 검성님은 어떻게?”
강현의 질문에 지금껏 생존자 캠프의 치안을 책임졌던 경찰관 부부가 멋쩍게 웃었다.
“그 사실… 예전에 검성님이랑 같이 게이트에 들어와 버렸지 뭐니.”
“이 숲에 검성님이랑 같이 남기로 한 사람들이거든, 우리가.”
“검성님 일부랑 우리랑 남고 나머지는 올라갔으니까 됐지 뭐.”
“…항상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 둘한테는.”
“아유, 검성님이 살린 사람이 한둘인가요. 호호홋!”
“경찰관이 그런 일 하라고 있는 직업이지요. 뭐! 우리가 원해서 한 선택 아니었습니까! 와하핫!”
“……!”
그들의 대화를 들으니 상황이 짐작이 갔다.
이 두 분도 검성과 함께 게이트 안으로 들어왔던 사람들이구나!
“…혹시라도 나중에 들어올 사람들을 위해 안배를 해 놓긴 했지만 너무 잘 해내서 놀랐지 뭐니. 얘.”
“그래! 우리가 나름 선물을 준비했었는데 별로 티도 못 냈다. 하늘에서 라면이 떨어질 줄이야!”
“얘가 자기 엄마 아빠 똑 닮아서 아주 똘똘하고 멋있게 생겼네!”
이어서 경찰관 부부가 강현을 보며 따뜻한 눈길을 보냈다.
강현과 검성, 경찰관 부부.
넷이 동시에 언덕 아래에서 기뻐하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우리는 못 갔지만 갈 사람들은 집에 돌아가야지. 그게 맞지.”
“여보… 잘 생각했어요.”
“결국 그리 정했나.”
“저희의 역할이니까요.”
“이해해 주십시오, 검성님.”
“충분히… 이해하네…….”
검성과 경찰관 부부가 마주 보며 알 수 없는 대화를 나누었다.
곧 두 부부가 강현의 양손을 잡았다.
그러자.
[회색 숲의 열쇠 이미자 경사, 최봉식 경장과 접촉했습니다]
[열쇠의 의지에 따라 현재 어둠의 배 속으로 들어온 모두를 밖으로 탈출시킵니다]
[강제 탈출의 여파로 두 열쇠는 소멸합니다]
“잠깐만요!”
떠오르는 알람에 놀란 강현이 외쳤으나.
“말했잖니, 이게 우리의 역할이라고.”
“강현아, 너가 벌써 이곳에 들어오기는 이르단다. 그리고 저 사람들을 살리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야.”
“그렇게 가볍게 선택할 일이 아니잖아요!”
“아니, 해야만 하는 일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남아 있던 이유기도 하고.”
“그럼, 언젠가 더 큰 사람이 되어 모두를 구해 주려무나. 부모님과 만나기를 기도하마.”
둘이 강현과 검성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고.
알람이 연속해서 떠오르기 시작했다.
[연계 퀘스트 어둠의 배 속으로를 성공했습니다!]
[연계 퀘스트 성공으로 메인 퀘스트 어둠의 꼬리를 성공하였습니다]
[어둠의 신전 회색 숲을 클리어했습니다!]
[죽은 생존자 0명, 구한 생존자 76명, 사망한 분대원 0명. 모든 어둠의 하수인을 쓰러뜨렸습니다! 회색 숲을 정화했습니다. 회색 숲이 생명의 숲으로 바뀌었습니다]
[어둠이 이 공간에 대한 통제권을 잃었습니다]
회색 숲이 생명의 숲으로 탈바꿈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알람.
[놀라운 업적들로 퀘스트 보상이 대폭 강화됩니다!]
[두 열쇠가 당신을 생명의 숲의 주인으로 인정합니다]
[보상으로 생명의 숲이 당신에게 귀속됩니다!]
강현이 생명의 숲 주인이 되었다!
[현재 생명의 숲을 사용하기엔 능력이 부족합니다]
[이후 다시 어둠의 신전으로 진입했을 시 생명의 숲을 이용할 수 있게 됩니다!]
이 놀라운 알람에 기뻐할 법도 하건만 강현은 오히려 다급하게 외쳤다.
이전에 했던 경찰관 부부가 했던 말!
“아드님! 아드님은요? 그분 군인이시라면서요! 제가, 제가 뭐라도 전할게요!”
이대로 두 경찰관을 잊을 수 없다!
강현의 간절한 외침에 이미자 경사와 최봉식 경장이 눈물을 글썽거리며 미소 지었다.
“그래 주겠니?”
“아이에게 꼭 선물하고 싶은 게 있었거든.”
“우리 아들 이름은…….”
말을 끝낸 부부가 서로를 마주 보며 웃기를 잠시.
환한 빛을 내뿜으며 생명의 숲으로 변한 회색 숲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둠이 사라졌다!”
백화점을 감싸고 있던 어둠이 모두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