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화 자주포 소환술!
마지막 싸움이 끝나기 직전.
“죽어라! 죽어! 죽어엇!”
사제가 얼굴에 핏줄을 세우며 마구 힘을 뿜어냈다.
그의 목표는 오직 강현.
[어둠의 대적자를 죽였을 시 혜택 부여, 실패 시 페널티 부여]
사제도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강현을 죽이지 못하면 어떤 페널티가 있을지 모른다.
아마 가장 편한 게 죽음이겠지.
그뿐만 아니라.
“저 벌어진 틈으로 왜 아무도 못 들어가는 거야!”
하수인들이 조금만 흔들면 무너질 것처럼 보이는 저 열린 틈을 도저히 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강현에게 집착하기 시작했고.
싸움 내내 사제는 강현을 노렸다.
그리고 이게 바로 강현이 노린 효과.
그가 잠깐만 눈을 돌려 다른 분대원을 공격했다면 위험했을지 모른다.
“모두 저 새끼를 죽여!”
벌어진 틈 속 홀로 서 있는 강현이라는 미끼를 문 사제와 하수인들이 몸부림을 쳤지만.
강현은 몰려드는 괴물과 날아오는 사제의 공격을 완벽히 방어해 냈다.
[검존의 효과로 범위 안에 들어온 모든 적의 움직임을 파악합니다. 연구자의 눈과 결합하여 적의 공격을 대략적으로 예측합니다]
[상대의 능력이 사용자보다 낮습니다. 공격 예측 확률이 대폭 상승합니다!]
바로 이번에 새롭게 얻은 검존의 효과 덕이었다.
범위 안에 들어온 적들의 움직임을 읽어 내는 능력.
자연스레 완벽한 대처가 가능했고.
거기다 연구자의 눈을 더하자 적들의 공격까지 예측할 수 있었다.
두려울 것도, 불안할 것도 없다.
때로 날아오는 사제의 공격마저도.
[강력한 기운이 검존을 침범합니다]
이미 알고 있는 이상 모두 막거나 피할 수 있다.
그렇게 치열한 15분이 모두 지나가 버린 순간.
[사명 실패! 죽인 생존자들 숫자: 0, 어둠의 대적자 살해 실패, 모든 사명 실패!]
사제의 눈앞에 그가 가장 두려워하는 알림이 떠올랐다.
사명 실패.
곧 이어질 알림은 당연히.
[어둠께서 분노합니다. 당신에게 실패의 책임을 묻습니다. 페널티를 부여합니다]
“자, 잠깐! 제 잘못이 아니… 끄아아악!”
사제가 무어라 변명을 하기도 전에 회당에서 겪었던 고통이 다시 엄습했다.
그가 죽기 싫다는 듯 고개를 흔들어 보았지만 소용없었다.
[부여되었던 특권을 회수. 사제의 권능을 회수, 회색 숲의 주인 칭호 회수]
지금껏 남의 피를 바쳐 얻었던 모든 능력이 하나씩 사라져갔다.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능력에 사제의 얼굴이 점점 하얗게 질려갔다.
온몸이 뒤틀리는 것보다도, 죽는 것보다도 오히려 모든 능력을 잃는다는 사실이 두려웠다.
“으아, 으아아악!”
놈이 소리 지르며 몸부림치다가 주변에 널린 씨앗과 시체를 발견했고.
꿀럭, 꿀럭!
이를 탐욕스럽게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능력이 빠져나가 공허해진 몸 안에 억지로 집어삼킨 어둠의 씨앗들과 하수인들의 능력을 채워 넣었고.
“으으윽!”
사제의 몸에 열병이 번지듯 붉은 씨앗들이 우둘투둘 솟아났다.
마치 수백 개의 눈을 가졌다던 신화 속 괴물과 같은 모습.
그의 변화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사제가 점점 많은 씨앗을 빨아들일수록 괴물의 시체가 찰흙 뭉개지듯 그의 주변을 감쌌다.
[일정량 이상의 씨앗을 흡수. 숙주로 변모]
[변화 – 1%… 5%……]
점점 거대해지며 변하는 모습에.
“저, 저거 뭐야…….”
힘차게 노래 부르고 춤추던 이혜원이 움직임을 멈췄다.
“어어어, 괴물이다…….”
“저거… 괜찮은 거야?”
덩달아 뒤를 돌아본 생존자 몇이 점점 몸을 불리는 괴물을 보며 입을 벌렸다.
지금까지는 어떻게든 견뎠지만.
“저거… 이길 수 있는 거 맞아?”
이제는 한계.
이미 끝없는 두려움에 떨었던 그들이기에 더는 견디기 힘들었다.
거기다 전투가 처음인 그들에겐 저런 괴물은 공포 그 자체!
그러나 강현은 겁먹지 않았다.
이미 이런 위기는 지긋지긋하게 겪어왔다.
그리고.
“작전 3-2!”
언제든지 헤쳐 나갈 방법은 있는 법!
강현의 외침에 잠시 넋을 놓고 있던 1분대 전체가 화들짝 놀랐다.
“작전 3-2라니! 저, 저런 미친놈!”
“진심이냐?”
“그걸 여기서 하겠다고? 제정신이야?”
그리고는 강현을 보며 다들 황당하다는 듯 물었으나.
“작전 3-2!”
강현은 한 치의 물러섬 없이 단호히 했던 말을 반복할 뿐이었다.
곤란해하는 모두와 다르게.
“작전 3-2의 가치를 드디어 알아보았구나! 강현아! ”
“간다! 우리가 간다! 끼요오옷!”
전역을 얼마 남겨 두지 않은 말년 병장 둘이 미친 인간들처럼 강현을 향해 뛰었다.
이전 혹한기 훈련 복귀 후.
오랜만에 모두가 모인 1분대 훈련 시간.
다들 이번 신병들을 어떻게 기존 작전에 녹일지 고민할 때.
두 똥 병장이 심상치 않은 표정을 지으며 다가왔다.
“야야! 강현아, 너 정말 자주포로 거인 머리 터뜨렸냐?”
“그렇습니다.”
“우와, 대박! 대체 강현이의 한계는 어디란 말인가!”
“…감사합니다.”
“크으! 강현이와 군 생활을 계속하고 싶은데… 참, 국방부 시계가 야속하다! 야속해!”
“이거 그냥 전문 하사 확 질러 버려?”
혹한기 이후, 강현과 같이 훈련했던 인원들이 이야기해 준 덕에 모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게 되었고.
강현이 자주포로 거인을 단번에 제압한 이야기는 전설처럼 회자되었다.
유성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줄 알았다는 둥 빔을 발사했다는 둥 온갖 살이 붙는 건 당연.
이미 강현은 부대 내에서 거의 마법사 취급을 받고 있을 정도.
“둘 다 그만하십쇼. 진짜 할 생각도 없으면서. 그리고 부대에서 받아나 준답니까?”
둘의 말에 심기가 상한 장건철 병장이 투덜거릴 때.
“건철아, 장건철아. 그래서 말인데 우리한테 좋은 생각이 있다.”
“자주포에 준하는 위력을 낼 방법을 생각해 왔거든!”
똥 병장 둘이 당당하게 고개를 치켜들었다.
물론.
“그래서 성민이 같은 경우는 원거리 겸 저격으로 사용해야 하나? 이미 강현이 있잖아.”
“그럼 강현이를 메인 딜러로 두시고 성민이를 보조 저격으로 해서 나누는 건 어떻습니까?”
“그게 좋겠습니다. 성민이 생각은?”
“이병 이성민! 어떤 포지션이든 좋습니다!”
아무도 주의 깊게 듣지 않았다.
같이 복무한 게 몇 개월인데 딱 보면 안다.
저 얼굴은 장난치려 할 때 짓는 표정이다.
그러나 역시 군인은 짬을 먹으면 먹을수록 뻔뻔해지는 법.
“이름하여 작전 3-2! 우리가 직접 붙인 이름이거든!”
“작전 내용은 간단해. 우리 1분대가 자주포가 되면 된다!”
“하면 된다!”
“그럼 하면 된다!”
그리고는 이어진 그들의 설명을 듣고 나서는.
“제발 미친 소리 좀 그만하십쇼!”
장건철 병장이 폭발했다.
“야, 뭘 화까지 내고 그러냐.”
“그래, 근육은 큰 게 속은 작아서. 근육이 너무 많아서 속이 좁아진 거야 인마.”
“그래, 마음속까지 근육으로 차 버린 거라고.”
“이이익!”
“자, 장건철 병장님! 참으십쇼!”
똥 병장 둘 덕분에 그날 훈련은 엉망으로 끝났다.
당시엔 강현도 우스갯소리로 듣고 넘겼던 작전.
그런데 지금은 방법이 그것밖에 없다!
사실 강현도 하기 싫었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
물론 작전을 창안한 똥 병장 둘은 신나서 달려왔고.
“작전 3-2! 시작!”
“시작!”
둘이 서로의 기운을 엮어 길게 뽑아내기 시작했다.
마치 엿가락처럼 늘어나는 보호막.
이전 보급품이 하늘에서 떨어질 때 보여 주었던 기술.
군 생활 내내 탱커질 하면서 처음엔 장난으로, 나중엔 특기로 변모시킨 스킬이었다.
둘이 최대한 멀리 떨어져 기운을 팽팽하게 만든 뒤.
“방열 완료! 자주포 합체!”
“합체!”
듣기에도 낯 부끄러운 명령어를 외쳤고.
장만수 일명과 김대영 상병이 방패를 그 앞에 거치했다.
그 뒤.
“이런 제기랄…….”
장건철 병장이 욕을 중얼거리며 둘의 허리를 잡았다.
나머지 분대원들이 양쪽으로 나뉘어 똥 씹은 표정으로 두 병장의 몸을 붙잡았다.
“1분대 자주포 합체 완료!”
“합체 완료!”
“합체 완료! 외쳐! 합체 완료!”
“합체 완료…….”
마치 시험용 쥐라도 된 것 같은 기분에 다들 괴로움에 떨었으나.
두 병장만은 미친 듯이 신난 상태였다.
이들이 떠올린 방법은 바로 죽 늘어나는 자신들의 보호막을 이용.
양 끝은 고정, 중앙의 방패를 발사대 삼아 최대한 뒤로 당긴 후 발사!
쉽게 말해 거대한 새총을 만드는 거나 다름없었다.
마침내 인간형 이동식 자주포 k-1분대의 설치가 끝났다!
“포탄 장전!”
“장전!”
그럼 포탄은 뭐로 하는가?
그들의 답은 간단했다.
자주포도 인간이니 당연히 포탄도 인간!
1분대 전체의 눈이 이번에는 강현에게로 향했고.
“…장전.”
인간 포탄이 된 강현이 이를 악물며 김대영과 장만수가 거치해 놓은 방패 앞에 섰다.
그러면서도 방금 전의 결정이 정말 옳은 일이었는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 다른 방법은 없었던 걸까?
머리통은 왜 이 안일한 작전밖에 떠올리지 못한 걸까.
천이 넘은 하수인 앞에서도, 20미터가 넘는 거인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던 강현의 굳건한 정신이 지금 처음으로 흔들릴 정도.
“강현아, 우릴 믿어. 우리 1분대다.”
“그래, 대한민국 국군을 통틀어 우리만 가능한 작전이다. 강현아, 이 순간을 자랑스러워해라.”
강현의 흔들림는 표정을 읽었던 걸까.
두 병장이 진지한 얼굴로 강현에게 힘을 북돋웠고.
“그래, 국군 통틀어서 어떤 미친놈들이 이런 작전을 하겠냐. 우리밖에는 없지…….”
장건철 병장이 반쯤 체념한 듯 중얼거렸다.
그래, 우리밖에 없다.
바로 뒤에 있는 사람들을 지킬 사람들은!
강현이 마음을 굳히고는 방패에 등을 기대며 외쳤다.
“탄환 장전!”
그러자 장건철 병장이 김대영, 장만수와 힘을 합쳐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고.
거꾸로 두 병장은 분대원들과 함께 그 자리에서 버티기 시작했다.
끼이이익!
길게 늘어진 보호막이 팽팽해지며 비명을 질렀고.
“으으윽! 더 당겨!”
“모두 텐션 유지해!”
1분대원들이 이를 악물며 아득바득 버텼다.
물론 그 중앙 강현도 놀고 있는 건 아니었다.
[연구자의 눈을 발동합니다. 지금까지 쌓아온 사격 경험을 불러옵니다. 탄환의 경로를 예측합니다!]
“왼쪽으로 반 발! 각도 좀 더 눕히십쇼! 좀 더! 좀 더! 좋습니다!”
아직 몸을 완전히 숨기지 못한 사제를 향하여 포격 방향을 지시하고 있는 중.
자신이 날아갈 경로를 수정하고 있는 꼴에 때때로 회의감이 들었지만.
이것 또한 이겨 내야 하는 시련!
그런데.
“우와아아아! 너희 진짜 미친놈들이구나!”
검성 이석천이 오히려 흥분하며 좋아했다.
“이건 군사 작전의 혁신이야!”
대체 뭐가 혁신이라는 걸까, 이 인간은.
“저런 천재들과 함께 군 생활을 하다니! 미쳤어, 이건 미쳤다고! 저 둘은 천재야!”
이젠 아주 방방 뛰며 좋아하는 그의 모습에 강현이 이를 악물었다.
“지발, 조옴 닥츠여. 진짜르 화가 나는 거 가트니깐!”
어째 검성을 만난 이후 더 스트레스를 받는 기분.
그리고 마침내.
“장전 완료!”
인간형 자주포 포격 준비가 끝났다.
꿀꺽.
강현이 잠시 침을 삼키고는 마지막 명령을 내렸다!
“발포!”
“발포!”
“발포오오오!”
“이젠 나도 모르겠다! 발포!”
강현의 지시에 장만수, 김대영, 마지막으로 장건철 병장이 복창하며 팽팽히 당겼던 보호막을 놓았고.
투웅!
묵직한 소리와 함께 보호막이 제 모습을 되찾으려 빠르게 수축.
그대로 방패에 실린 강현을 발사했다.
“우와아악!”
“으윽! 버텨!”
엄청난 탄력에 양 끝에 버티고 있던 1분대원들이 휘청이면서도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여기서 힘을 빼 버리면 궤도가 흔들린다!
마침내 두 똥 병장의 군 생활의 집합체!
인간형 자주포가 인간 포탄을 발사한 순간!
“가라!”
“가서 조져 버려!”
넘어지는 와중에도 똥 병장 둘이 강현을 보며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휘우우웅!
귀청을 때리는 바람 소리 속에서 아련히 들리는 그들의 응원에 강현이 이를 더욱 악물었다.
‘그래! 사람들을 지킬 수만 있다면야!’
인간 포탄이 되든 탄환이 되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이 눈가에 흐르는 물은 자신의 처지가 한탄스러워서가 아닌 거센 바람 때문이다!
그래, 바람 때문이지 우는 게 아니다!
강현이 마음과 함께 검 손잡이를 굳게 다잡았다.
이 모든 일의 원흉!
붉은 눈 수백 개를 뜬 사제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으하핫! 더! 더욱 강해진다! 이젠 내가 어둠의 숙주다!”
놈이 미친 듯 웃음을 터뜨리면서도 끊임없이 하수인들의 능력을 탐했고.
이제 곧 완전한 숙주로 변태하기 직전.
“야! 이 새끼야!”
강현이 분노를 담아 고함을 질렀다.
저 새끼 때문에 지금 자신이 이 꼴을 당하고 있다!
어느새 눈앞에 있는 강현을 보며 사제가 놀라 몸을 떨었고.
수백 개의 붉은 눈동자도 일제히 강현을 쳐다보았다.
“자, 잠깐! 아직 변태가 안 끝났……!”
마지막 변명을 외쳐 보았지만.
“그냥 죽어엇!”
강현이 무자비하게 몸을 부딪쳤다.
이윽고.
[해파칠십이검을 발동합니다. 거인의 강골, 세 개의 폐, 능숙한 몸놀림, 강인한 팔뚝, 강인한 하체와 연계하여 위력이 대폭 증가합니다!]
[정밀함, 연구자의 눈, 약점 파악을 발동합니다. 적의 약점을 정확히 베어 냅니다]
[중급 마나 운용법, 월하심법, 마력지체를 사용하여 마나 일체를 사방으로 뿜어냅니다!]
그대로 해파칠십이검을 전력으로 펼쳤다.
퍼엉!
그야말로 폭격과 같은 위력!
한순간에 사제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핵을 잃은 괴물이 와르르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강한 충격으로 인해 위로 튀어 오른 강현이.
“으아아아!”
그대로 추락하려는 순간.
[뽑기권을 발동합니다! 강력한 행운을 적용합니다!]
촤르르륵!
[완벽한 착지자세를 획득하셨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아름답게 착지합니다!]
상태창, 이 새끼!
강현이 욕을 뱉어 내기도 전.
무너진 괴물의 시체 가장 위.
착!
그가 체조 선수처럼 완벽한 자세로 착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