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화 13대 1,992
크르…….
“또 놓쳤어! 이 빌어먹을 새끼들!”
촤학!
사제의 손짓 한 번에 주변에 있던 어둠의 하수인 하나가 터져 나갔다.
벌써 이게 몇 번째란 말인가.
실패, 실패, 또 실패!
“사람 하나 죽이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란 말야? 너희 같은 쓰레기 괴물들의 역할이 뭔지 잊었단 말이냐! 어둠께 제물을 바치라고! 제물을! 지금까지 벌써 몇을 놓친 거야!”
퍽! 퍽! 퍽! 퍽!
사제가 연속에서 손을 휘둘렀고 그의 손짓에 주변에 있던 하수인들이 터져 나갔다.
물론 사제의 얼굴엔 한 점 죄책감도 없었다.
오직 분노뿐.
“너희 같은 인간쓰레기 새끼들을 거둬주신 어둠께 보답을 하란 말이다!”
아마 어둠의 하수인들이 조금의 이지라도 남아 있었다면 사제를 갈가리 찢어 죽이기 위해 달려들었을 거다.
능력을 주겠단 달콤한 속임수에 넘어가 이런 괴물이 되어 버릴 줄은 생각지 못했을 테니까.
크르…….
그러나 이미 씨앗에 모든 이지를 잡아먹힌 그들은 그저 몸을 말며 두려워할 뿐이었다.
자신보다 강한 자를 두려워하는 괴물의 본능.
자신을 두려워하는 수백의 괴물을 보며 사제가 옅은 즐거움을 느꼈다.
사실 그도 어둠의 하수인들과 다를 바 없었다.
사제가 되면 엄청난 권세와 명예를 누릴 줄 알았건만.
작은 회당에서 쥐새끼처럼 몸을 숨기고 살아야 하는 처지.
거기다 어둠의 하수인들을 모으기 위해 다단계 같은 짓이나 반복하는 일상.
자신의 기대와 현실은 너무나 달랐다.
그러나.
‘여기서는 내가 왕이다!’
그의 눈에 광기와 함께 희열감이 퍼졌다.
자신의 행동 하나하나에 목숨이 스러지고 두려움을 품는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사제가 고깃덩어리가 된 어둠의 하수인 쪽으로 손을 뻗자.
[회색 숲 주인의 권능을 발휘. 어둠의 씨앗을 회수. 자신의 권능으로 변환]
붉은 씨앗이 둥실 떠오르더니 사제의 손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울룩불룩.
씨앗을 삼킨 손등이 꿈틀거리길 잠시.
“푸후.”
[권능 흡수 완료. 능력 강화]
그가 한층 강해진 어둠의 권능을 느끼며 깊은숨을 내쉬었다.
순간 몰려오는 고양감에 방금까지 화내던 것도 잊고 웃기 시작했다.
이렇게 쉽게 강해질 수 있다니!
왜 이런 즐거움을 이제야 알았을까!
“프흐, 프하하! 하하하하하!”
사실 지금 당장이라도 이 쓸모없는 괴물 전부를 죽여 버리고 싶었다.
버러지 같은 놈들이 어둠의 권능을 품고 있는 것보단 자신이 흡수하는 게 더 가치 있지 않겠는가.
“그건… 나중에 천천히 하기로 하고…….”
그러나 사제가 입맛을 다시며 다음을 기약했다.
지금 당장 강해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제물들이 모여 있는 곳은 찾았느냐?”
사제의 물음에 몇몇 하수인이 손을 허우적거리며 어느 방향을 가리켰고.
뒤에서 버티고 있던 가장 큰 어둠의 하수인이 고개를 숙였다.
사제가 그 위로 올라서자.
높아진 시야.
천이 넘는 괴물들이 보였다.
비록 괴물들이지만 자신의 권세.
“가자.”
그의 한 마디에.
[회색 숲이 주인의 명을 따릅니다]
쿠아아악!
모든 괴물이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두두두두!
그들을 발소리만으로도 땅이 진동했고, 회색 나무들이 풀썩풀썩 쓰러지며 잿가루를 뿜어냈다.
괴물들의 행군을 보며 사제가 입술을 뒤틀었다.
이 엄청난 숫자를 막을 수 있을 리가 없다.
군세와 더불어 행군하길 한참.
저 멀리.
“하! 고작 저건가?”
사제의 눈에 강현과 특임대 1분대가 힘써 만든 생존자 캠프가 눈에 들어왔다.
그가 이를 보고는 다시 한번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도 살아 보겠다고 작은 땅덩어리에 옹기종기 잘도 모여 있구나!
멀리서도 눈에 띄는 형형색색의 텐트와 자신들의 운명도 모른 채 모여 있는 사람들의 꼴이 우스웠다.
차라리 잘 되었다, 저리 모여 있으니 한꺼번에 제물로 바치기도 쉬울 터.
살의로 번들거리는 눈으로 캠프를 살펴보던 사제가 문득 인상을 구겼다.
저건 뭐란 말인가?
“단상이라도 세웠나?”
나무로 얼기설기 만든 무대 위에 어떤 여자가 올라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이를 본 사제의 눈에서 희열이 번지기 시작했다.
“흐흐흐, 자신들이 죽을 제물대를 만들어 놓았군. 저 위에서 하나씩 하나씩 피를 뿌리면 어둠께서 기뻐하며 받으시리라.”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무대에서 심장이 뽑히고 제물로 바쳐진다면 대체 어떤 기분일까.
사제가 그 즐거운 광경을 생각하며 몸을 떨 때.
때마침 1분대 탱커들이 뿜어낸 방어막이 스멀스멀 캠프를 둘러쌌다.
이 거대한 군세를 막기 위한 미약한 몸부림!
“가서 저 징그럽고 가엾은 이들을 모두 쓸어버려라. 모두 죽여라!”
사제가 생존자들의 피를 취하고 더욱 높은 곳으로 오르기 위해 공격을 명했고.
크와아악!
1,992명, 아니 1,992마리의 하수인이 일제히 캠프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떨리는 땅과 무너지는 숲, 높이 튀어 오르며 달려오는 괴물들.
“어… 어어…….”
그 압도적이고 두려운 광경에 이혜원이 부르던 노래마저도 까먹고 굳어 버렸다.
그녀가 겁쟁이라서가 아니라 누구라도 지금 이 광경을 본다면 그럴 거다.
파도처럼 몰려오는 괴물을 보고 겁먹은 이혜원이 뒷걸음질 칠 때.
“이혜원! 이혜원! 이혜원!”
사람들이 일제히 그녀의 이름을 외치기 시작했다.
즐거워서가 아니었다.
그들의 눈엔 이혜원과 마찬가지로 두려움이 가득했고.
몇몇은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이혜원의 이름을 연호하는 생존자들 또한 두려웠다.
비록 뒤를 돌아보지는 않았지만 울리는 땅의 진동과 선명한 살의를 느꼈다.
하지만 뒤를 돌아보며 비명을 지르는 대신 이혜원을 응원하기로 했다.
“힘내요! 특임대가 있잖아!”
특임대를 믿으니까.
그리고 그들을 구했던 강현을 믿으니까.
그가 부탁했고 살기 위해서 하라고 했던 일이다.
그러니까 지금 무서움에 목소리를 죽여선 안 된다.
저들이 목숨 걸고 이곳을 지키듯 우리도 우리만의 임무를 다해야 한다!
“모두 다 같이! 이혜원! 이혜원! 이혜원!”
“모두 같이 손 흔들어요!”
경찰관 부부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마구 손을 흔들며 사람들을 독려했고.
76명의 생존자가 호응했다.
그러자.
[사람들의 응원을 받았습니다. 닫혀 있던 상태창 기능을 활성화합니다!]
이혜원의 눈앞에 생전 처음 보는 상태창 메시지가 떠올랐다.
지금껏 자신의 능력을 봉인하다시피 했으니 본 적 없는 알람.
드디어 지금까지 잠들어 있던 그녀의 능력이 본격적으로 발휘되었다.
[능력, 맨발의 디바를 개방합니다!]
그녀의 진정한 능력은 발바닥 정화 따위가 아니었다.
이혜원의 능력은 바로 맨발의 디바.
발바닥으로 물건의 부정적인 기운을 정화하고 생명력을 북돋아 주는 능력은 본 능력의 극히 일부분일 뿐.
자신의 제대로 된 능력도 알아보지 않고, 지레 겁에 질려선 상태창을 쳐다보지도 않았던 탓에 몰랐던 사실.
그리고 드디어 제 무대를 만난 이혜원의 시스템이 만개하기 시작했다.
[스킬 응원의 노랫가락을 획득했습니다! 노래를 들은 대상의 공격력 및 방어력이 상승합니다]
[정화의 춤 스킬을 획득했습니다! 춤을 추면 일정 범위에 사악한 기운 전부를 정화합니다]
[디바의 응원 스킬을 획득했습니다! 사용자가 응원하는 사람의 능력치 전체가 일시적으로 상승합니다]
아마 버프 계열 능력자들이 보았다면 기함을 토했을 거다.
보통은 일대일로 버프를 적용하는 경우가 많았고.
간혹 광범위 버프가 있긴 하지만 그마저도 공격력 또는 방어력 등 한 가지에 국한되는 게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대규모 그것도 복합 버프를 부여하는 능력이라니!
“이거 대박이잖아!”
이혜원의 버프를 받은 1분대원들이 경악했다.
이 정도 버프라면 웬만한 중형 길드 버프 능력자가 전부 달려들어야 가능할 수준.
그런데 이혜원의 능력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특성 관객 호응을 획득했습니다. 관객들의 응원을 받을수록 버프 능력이 강화됩니다!]
[현재 관객들의 응원을 받고 있습니다. 버프 효과가 증가합니다!]
[특성 무대 체질을 획득했습니다. 무대에 섰을 때 정화의 춤 버프 효과가 증가합니다!]
[특성 마이크 조던을 획득했습니다. 마이크를 잡았을 시 응원의 노랫가락 버프 효과가 증가합니다!]
강현이 준비한 무대와 마이크 그리고 관객의 효과가 발휘되기 시작했고.
이혜원의 버프 효과가 한층 더 강력해졌다.
“우오오오!”
“다 덤벼, 이 새끼들아!”
연속된 버프 중첩과 특성으로 인한 효과 상승으로 인해 힘이 끓어오르듯 넘쳐났다.
저 시야를 가득 메운 괴물을 모두 죽일 수 있을 것만 같은 힘!
웬만큼 불리한 전황은 쉽게 뒤집을 수 있을 정도의 버프 효과였다.
“1분대! 방패 들어!”
장건철 병장의 힘찬 지시에 모두가 방어벽을 두텁게 세웠고.
“후우.”
가장 선두.
강현이 검을 잡으며 잠시 심호흡을 했다.
몸에서 끓어오르는 힘!
방금까진 몰려드는 적이 마치 파도 같이 위압적이었다면 지금은 오히려 기대되었다.
‘와라!’
백화점에서 죄 없는 사람들을 대량 학살하려 했던 죄!
이 척박한 땅에 사람들을 끌어들여 끝까지 괴롭히고 말려 죽이려 했던 죄!
지금도 수백, 수천의 괴물을 몰아 모두를 죽이려 하는 죄!
이를 물으리라!
크아아아!
이윽고 군세의 첫 파도가 캠프를 보호하고 있는 방파제까지 도착했다.
그리고 이들의 맨 앞.
첨병이자 어둠의 하수인을 가르기 위한 검.
강현이 능력을 폭발시켰다.
[정밀함, 연구자의 눈, 약점 파악을 발동합니다. 적의 약점을 정확히 베어 냅니다]
[현재 어둠의 하수인 연구율: 99%]
[높은 연구율 효과로 단번에 적의 약점을 확인합니다]
황세아 중사의 연구 결과로 이제 어둠의 하수인들 속에 있는 씨앗 위치가 단번에 보였다.
이어서.
[후임 오목교의 예민한 감각 특성을 대여합니다]
[검존을 활성화합니다. 사용자 주변 1미터 공간을 지배합니다]
[특성 절약 정신을 발휘합니다. 스킬에 사용되는 힘, 마나, 체력, 호흡을 효율적으로 분배합니다]
[맨발의 디바 버프 효과 중첩으로 모든 능력치가 크게 상승합니다!]
강현이 방어벽이 벌어져 있는 틈만큼 주변을 장악했고.
솟아오르는 모든 에너지를 검에 집중했다.
후우웅.
바람 부는 소리와 함께 몸을 비롯해 검 끝까지 푸른 마나로 넘실거렸다.
마지막.
[해파칠십이검을 발동합니다. 거인의 강골, 세 개의 폐, 능숙한 몸놀림, 강인한 팔뚝, 강인한 하체와 연계하여 위력이 대폭 증가합니다!]
파앙!
해파칠십이검을 발동하는 동시에.
막 몸을 부딪쳐 오던 어둠의 하수인들이 폭발했다.
연속해서 터져 나오는 검격.
일검 일검에 몸이 갈라지며 죽어 나가는 괴물들.
강현이 뿜어낸 단 일격에 군세의 전열이 터져 나갔다.
이후에는 마치 파도를 가르듯 몰려드는 녀석들을 죽여 나갔다.
“모두 후속 공격 대비!”
강현 덕에 첫 공격은 완벽히 방어해 냈으나.
곧 쭈욱 반으로 갈라진 괴물들이 이번에는 1분대가 세워 놓은 방어벽을 두들겼고.
자리에 선 탱커들이 놈들을 막아 내기 시작했다.
“하아압!”
“다 죽여 주마! 이 새끼들아악!”
처음엔 이혜원의 버프 효과 덕에 기세 좋게 싸움을 시작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으, 으윽!”
곧 힘에 겨워 하는 곳이 생겨났다.
당연하다.
아무리 버프를 받고 분대 능력까지 발휘를 했다지만 그들은 D, E급 능력자.
절대적인 능력을 뛰어넘긴 어려운 법이었고 거기다 적은 훨씬 숫자가 많았다.
그리고 그때 비로소.
“저기는 내가 지원할게! 목교, 너는 대영이 지원! 성민이, 너는 여기서 강해 보이는 놈만 요격해!”
“알겠습니다!”
“김대영 상병님, 제가 갑니다!”
후방으로 빠져 있던 딜러들이 나섰다.
우선은 황세아 중사.
그녀가 방어막이 가장 흔들리는 곳으로 다가가 손을 뻗자.
후우웅!
곳곳에 얼음벽이 생겨 놈들을 막았다.
이어서 얼음벽에서 튀어나온 송곳이 괴물들을 꿰뚫었고.
“하압!”
그녀가 그 위에 올라 손을 흩뿌리자.
차가운 우박이 쏟아져 내렸다.
그 외에도 얼음덩어리, 창을 쭉쭉 뽑아내어 괴물들을 공격.
순식간에 밀리던 방어선을 지켜 냈다.
원래라면 이 정도까진 못했겠으나.
“꺄하하하!”
이혜원의 버프 효과로 인해 가능한 화력.
이어서 오목교는.
“제가 왔습니다! 아뵤오!”
김대영 옆으로 가 몰려드는 적을 하나하나 쳐 죽였고.
[은밀한 화살, 곡사 능력을 발동합니다.]
투투투투투퉁.
이성민은 전 범위에 미친 듯이 화살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그의 목표는 괴물들 중 덩치가 크고 강해 보이는 놈들.
또는 다른 분대원들이 미처 파괴하지 못한 어둠의 씨앗을 주로 노렸다.
그렇게 모두들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방어선을 지켜냈고.
“이 쓰레기들이 끝까지 쓸모가 없구나!”
사제가 무너지지 않는 특임대를 보며 분통을 터뜨렸다.
천이 넘는 숫자가 저 열 남짓한 군인을 못 죽인단 말인가!
그러나 하수인들에게도 사정은 있었다.
[정화의 기운이 범람합니다. 적들의 어둠을 정화합니다]
이혜원의 정화 스킬이 하수인들의 능력을 낮추었고.
덕분에 특임대와 하수인 간의 격차가 더욱 벌어졌다.
그리고 특임대 1분대가 아득바득 괴물들의 범람을 막아 낼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
쿠와아아악!
“흐읍!”
퍼퍼퍼펑!
하수인 대부분이 쏠려 있는 2미터 남짓한 틈.
그곳을 틀어 막은 강현이 한 치의 흔들림 없이 놈들을 조각 낸 덕분이었다.
가장 무거운 하중을 견디는 기둥이 버티고 있으니 지붕이 무너지지 않는 셈.
강현이 점차 무아지경에 빠져들고 있던 차에.
[같은 장소를 지나쳤던 자의 흔적을 발견하였습니다]
[회색 숲에 버려진 검성 이석천의 기억 일부를 소환합니다!]
[기억 조각 모음 – 1%]